00013 과유불급 =========================
12화
난 정말 열심히! 연구만 하고자 했다. 정말로…진짜로…말이다. 눈앞의 빌어먹을 박 팀장만 없었으면 말이다.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 어?!! 이 대리! 자네가 사수 아닌가? 어? 왜 일을 이딴 식으로 해서 남의 팀까지 피해를 주냐고? 어?!”
그래. 건수 잡았다 이거지. 후. 나는 터져오는 화를 참으며 죄송하다고 제대로 교육하겠다고 말했다.
“죄송하면 똑바로 사죄를 해야지! 머리 숙여서 똑바로 안 해?!! 이래서 여자한테 직위를 주면 안 된다는 거야!”
으아!!! 후. 호. 후. 호. 진정해 이두미. 어쨌든 진짜로 제대로 안 알려준 너의 잘못이야. 이두미. 죄송하다고 해. 어서!
내 잘못이니까 상사에게 고개 숙여 죄송하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다른 상사였다면 말이다. 다른 상사였다면 죄송하다고 백번, 천번 고개를 숙였을 텐데 박 팀장한테 만큼은 죽어도 하기 싫었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부하직원이 한 실수가 그렇게 큰 실수도 아니었다.
“저희 팀 직원의 실수로 피해보신 1팀 김 대리님께 제가 직접 사과드리겠습니다.”
어떻게든 박 팀장한테 고개 숙이는 일만은 피한 보려고 김 대리님이 계시는 자리에 가서 차라리 김 대리님한테 고개 숙여 사과하려고 했다. 그런데 김 대리님한테 가려고 움직이자 박 팀장이 내 목에 걸린 사원증 줄을 확 잡아당겼다.
“어디가?!! 나한테 사과하고 가야지!!!!!”
강하게 잡아당기는 힘에 대비하지 못한 목이 살짝 꺾였다. 하, 이게 무슨 일인지 순간 인지하지 못했다. 내 발을 멈춘 박 팀장은 잡고 있던 사원증을 세게 놔버렸다. 사원증이 블라우스 단추와 부딪히며 탁- 소리를 냈다. 나는 그 순식간의 순간에 화가 몰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참았다. 박 팀장을 한 대 치고 싶은 것도 꾹, 참았다.
“이게 진짜! 너 상사를 뭐로 보는 거야! 도대체!! 어?!!!”
박 팀장은 그 짤막하고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지 귀가 아프도록 소리치며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지도록 소리치던 박 팀장은 갑자기 날 때릴 것처럼 팔을 위로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이게 무슨 일 입니까?”
우리 팀장님이었다. 팀장님은 급히 온 건지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홍보팀과 하는 회의가 있어서 오후 내내 홍보팀에 계실 거라고 했던 팀장님이었다. 박 팀장도 아마 우리 팀장님이 없는 틈을 타서 나를 몰아붙일 계획을 했을 거였다. 숨을 몰아쉬는 팀장님 옆에 아까 옥상에서 만났던 신 팀장님도 함께 계셨다.
“아, 장…장 팀장. 그게 말이야.”
박 팀장은 우리 팀 부하직원이 한 실수를 말하며 내가 제대로 사과하지 않아 윗사람으로써 아랫사람 교육 좀 시켜주고 있었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박 팀장이 내게 한 짓은 교육이 아니라 폭력이었다.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제 실수네요. 제가 이 대리랑 애들 데리고 제대로 다시 한 번 교육하겠습니다.”
우리 팀장님이 사람 좋게 웃으며 박 팀장한테 사과하고는 박 팀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애들 데리고 갈 테니 이제 일 보시라고 하며 우리 팀을 데리고 회의실에 들어갔다. 팀장님은 회의실에 들어와 누구도 회의실 안을 볼 수 없도록 블라인드를 내렸다.
“이 대리 괜찮아?”
다정하게 물어오는 팀장님 말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울진 않았다. 고인 눈물을 들키기 싫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팀장님. 걱정하지마세요.”
“후, 그래 여기 10분 정도만 있다가 나가자.”
“그런데 오늘 오후 내내 홍보팀에 계실 거라더니 어떻게 오셨어요?”
“아, 갑자기 연구하는 모습을 직접 보면 참신한 홍보마케팅 방안이 떠오를 것 같다면서 신 팀장이 오고 싶어 해서 왔는데, 박 팀장이 이 대리 사원증을 잡아당기길래 놀라서 달려왔지.”
“그렇구나…. 감사합니다.”
“다음에 나 없을 때 또 그런 일 있으면 대충 둘러대고 도망친 다음에 나한테 말해 알았지?”
“네.”
“대리님 정말 죄송해요.”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인 명우씨가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그리고 사실 명우씨가 한 실수 큰 거 아니야 괜찮아. 괜히 나 때문에 건수 잡았다 싶어서 그런 거거든. 그러니까 기죽지 말고!”
“그래도 죄송해요. 정말. 저 이제 정말 실수 안할게요!”
“해도 돼. 신입이 어떻게 다 알아. 똑같은 실수만 안하면 돼.”
“네. 대리님.”
우리팀원들은 그렇게 10분정도 회의실 안에 있다가 자리로 돌아갔다. 장 팀장님이 홍보팀에 다시 돌아가자 박 팀장은 또 뭐 없나 해서 우리 팀 주변을 맴돌았지만, 우리는 신경 쓰지 않고 제 할일을 꿋꿋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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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늘어진 어깨와 질질 끌리는 발걸음으로 집에 도착한 나는 띡- 띡- 띡- 띡- 띡- 띡- 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섰다.
“왔어?”
요리를 하고 있었는지 앞치마를 두른 도건이 현관 앞으로 마중 나왔다. 집에 와서 도건이의 얼굴을 보니 울컥, 서러움이 몰려왔다.
“임도건!”
그를 소리쳐 부르며 그의 허리를 꽉 안고 다시 소리 질렀다.
“으!!! 오늘 완전 힘든 날이었어.”
그를 끌어안고 있자 참고 참아왔던 눈물이 참을 새도 없이 흘러내렸다. 너무 격하게 끌어안아서 놀랐는지 움찔한 도건은 갑자기 우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혹시 또 박 팀장이 괴롭혔어?”
“박 팀장이…흑…. 막, 나…흡. 막 때리려고 해써.”
조금 울었다고 금세 코가 막힌 나는 코맹맹이소리를 내며 우느라 제대로 된 발음도 하지 못했다.
내 말에 놀랐는지 도건이 품에서 날 떼어내더니 물었다.
“때리려고 했다고?”
“크읍, 응.”
“씹…감히……미친….”
내 대답에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던 도건은 날 다시 안아주며 토닥여줬다. 도건이 너무 걱정하는 것 같아서 박 팀장이 사원증을 잡아당겼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걱정 마. 그 인간이 때렸으면 나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았을 거야. 싸우면 왠지 내가 이길 거 같아. 근데 뭐했어? 앞치마 입고?”
“저녁. 스테이크 했어.”
“맛있겠다. 나 손 씻고 올게.”
씩씩하게 팔뚝으로 남은 눈물을 쓱쓱 닦은 나는 손을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식탁에 앉았다. 내가 앉자 도건이 물을 따라 내 앞에 놔주며 말했다.
“다음엔 네가 먼저 한 방 날려버려 내가 다 해결해 줄 테니까.”
“진짜?”
“응. 그리고 내가 못 해주면 우리 할아버지가 해줄 거야.”
“아! 그러네! 임산그룹 총수님이 날 얼마나 예뻐하는데, 죽었어. 박 팀장.”
“뒤 봐줄 사람 많으니까 당당하게 다녀. 기죽지 말고.”
“응!”
도건이가 구워준 스테이크는 아주 맛있었다. 특히 소스가 일품이었다. 분명 집 앞에 서있을 때만해도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도건이를 보니 하루 내내 쌓였던 화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집에 왔는데 결혼 전처럼 혼자 있었다면, 아마 더 슬프고 축 쳐졌을 것이다. 한사람의 존재가 이렇게 소중한지 몰랐다. 그리고 아마 그 한사람이 도건이었기에 더 안심하고 오늘의 감정을 다 토해냈는지도 모른다.
“맛있어!”
맛있다는 말에 도건이가 웃으며 내가 좋아하는 아스파라거스를 더 담아주었다.
“이제야 웃네. 더 있으니까 많이 먹어.”
도건이 해주는 위로이기에 힘이 난 것 같다. 그의 품에서 울었기 때문에 원 없이 울었던 것 같다. 그의 손길이었기에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그와 함께 사는 게 좋다. 그가 내게 더 소중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게 나는 좋았다. 내가 그에게 의지할 수 있어 기뻤다. 도건이에게도 내 존재가 그랬으면 좋겠다. 꼭 그러길 바랐다. 나는 사랑 같은 게 없어도 우리는 이렇게 쭉,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 작품 후기 ============================
선추가 늘었어요. 감사합니다^ㅇ^!! 재밌게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