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2 과유불급 =========================
11화
1팀 박 팀장과 한바탕했던 금요일이 지나고 어쩌다 보니 주말도 금세 지나 월요일이 되었다. 오랜만에 주말에 늘어지게 도건이와 함께 빈둥거렸던 나는 내가 직장인임을 한탄하며 아침을 먹고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서는 별다를 것이 없었다. 평범한 아침이었다. 그래, 분명 오전까지는 별 다를 것 없는 평탄하고 좋은 하루였다.
아침 회의를 하며 팀원들과 오늘 시도할 연구를 체크하고, 서로가 뭘 해야 할지, 뭘 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그렇게 간단한 회의를 끝내고 각자의 일에 집중을 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팀원들과 다 같이 구내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고 자리에 돌아온 나는 내 책상 위에 누군가가 남겨놓은 메모하나를 발견했다.
메모지에는 ‘상무님 호출, 점심시간 후 상무님 방으로’라고 적혀있었다.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이 날 왜? 연구팀 상무이사님을 회사에 입사해서 독대한 적은 처음이었다. 항상 팀의 성과를 치하하기 위해 팀원들과 다 같이 상무님을 몇 번 뵀던 기억 밖에 없었다.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점심시간이 끝나고 상무님 사무실로 갔다. 비서는 날 보자마자 들어가 보라고 말했다. 나는 똑똑 노크를 하고 들어오라는 부장님의 말에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연구2팀 이 두미 대리입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아~아. 일단 앉지.”
“네. 실례하겠습니다.”
방 안에 있는 소파에 앉자 맞은편에 상무님이 앉으셨다. 상무님은 언제 봐도 항상 미간을 찌푸리고 계셨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두껍고 험상궂은 얼굴 때문에 항상 위압감이 흐르는 분이셨다.
“이 두미 대리라고 했지?”
“네.”
“그러고 보니 작년에 송진으로 바닥재 재료 만든 친구?”
“아. 네. 저희 연구2팀에서 만들었습니다.”
“자네 아이디어였다고 들었어. 아주 잘 했네.”
괜히 1년 전 일을 들먹이며 정작 본론은 아직 말도 안하고 있는 상무님 때문에 괜히 더 불안했다. 1팀 박 팀장이 눈앞에 있는 상무님 라인이라는 것은 우리 회사 청소를 해주시는 분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아무리 뛰어나도 위아래 구분은 해야지? 안 그런가? 이 대리?”
“….”
잘 했다고 말하던 목소리와는 딴 판이었다. 갑작스럽게 낮아진 목소리와 분위기에 놀라 차마 말을 못하고 있자. 상무님이 말을 이으셨다.
“회식자리에서 있었던 일 들었네. 밖에서 그렇게 상사한테 대들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 회사를 어떻게 생각하겠나? 상사한테 예의 없이 굴면 고과에 당연히 영향을 줄 텐데 왜 그걸 모르나? 똑똑하게 생각을 해야지. 쯧. 내 능력 있는 사원이니까 이번엔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로 끝내겠지만, 다음에도 또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승진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로 알고 있겠네.”
“…네. 새겨듣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 대리.”
나가려는 나를 상무님이 다시 한 번 불러 세웠다.
“아무리 자네가 성과를 많이 내는 능력 있는 사원이라 해도 자네 같은 사람을 대신할 사람은 많다네. 한 번 삐끗하면 진창으로 굴러 떨어지기 십상이니 잘 처신해.”
대답 없이 꾸벅 인사하고는 상무님 방에서 나왔다. 나는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생각했다. 와, 진짜 똑같은 것들끼리 친목을 다투네? 박 팀장의 성희롱을 회사에 고발해도 그저 경고에 그치는 것이 상무님이 막아줘서 그런 거라더니 그 소문이 사실인 것 같았다. 상무님 같은 분이 왜 박 팀장 같은 사람을 보호하고 감싸주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내가 그날 박 팀장한테 욕을 했나? 그 인간을 때리길 했나? 진짜 시원하게 욕을 해줬으면 억울하지나않겠네. 진짜. 내가 왜 시간 낭비하며 상무라는 인간한테 저런 소리나 듣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분노하며 쾅쾅 거리며 회사 옥상으로 올라갔다.
점심시간이 끝난 직후라 옥상엔 아무도 없었다. 여름의 더운 바람을 맞으며 나는 의자에 앉아 속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화를 가라앉히려고 노력했으나 바람까지 덥고 눅눅해서 오히려 더 짜증이 났다. 얼굴에 두 손을 파묻고 으, 으, 으, 으 차마 큰소리는 지르지 못하고 속 끓는 신음만 내뱉고 있었다. 결국 그러다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쾅-
갑자기 철문이 크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옥상으로 들어오는 문 앞에 신 팀장님이 서계셨다.
“어, 안녕하세요. 신 팀장님.”
“놀랐죠? 놀라서 문을 놓쳤더니 바람 때문에 세게 닫혔네요. 미안해요.”
“아니에요. 제가 갑자기 소리 질러서 놀라셨죠? 죄송해요.”
신 팀장님은 우리 회사 홍보팀 팀장님이다. 젊은 나이에 실력을 인정받아 다른 회사에서 공들여서 스카우트 해온 사람이었다. 회사 앞 포장마차에서 혼술을 하다 마주쳐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같이 그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셨던 술친구이기도 했다.
“지난주 회식 때 연구1팀 박 팀장님한테 한 소리 했다면서요?”
“아시네요? 회사에 소문 다 났나보다….”
“네. 소문 다 났어요. 다들 사이다라고 좋아하던데요? 우리 회사에 박 팀장님 좋아하는 사람 없거든요. 아, 연구팀 상무님 빼고.”
“사이다면 뭐해요. 전 오늘 그 일 때문에 상무님한테 한 소리 듣고 왔어요.”
“아…. 그래서 여기서 그러고 있던 거 에요?”
“네. 너무 화딱지가 나서요. 상무님 말에 반박하려다가 이러다 진짜 잘리겠다 싶어서 관둔 내가 너무 패배자 같아서요. 박 팀장님 고막이 터지도록 옆에서 소리질러버리고 싶어요.”
“큭. 하하하. 진짠가 보네요. 표정 장난 아닌데요?”
“네. 진심이에요. 완전요.”
“다음에 같이 술 한잔해요. 거기서.”
“좋아요!”
“아, 근데 참 남편 분이 남자랑 단 둘이 술 마시면 싫어하지 않나요?”
“아…하하. 괜찮아요! 걱정하지마세요.”
“그럼 뭐. 다행이네요. 좋은 술친구를 잃는 줄 알았어요.”
“잃다니요! 언제든 연락주세요!”
지이이잉-
<대리님. 상무님 뵙고 나면 빨리 와주셔야 할 거 같아요ㅠㅠ>
소연씨의 문자였다. 무슨 일이지?
“팀장님. 아무래도 저 가봐야 할 거 같아요. 다음에 같이 꼭 술 마셔요!”
문 쪽으로 걸어가며 팀장님께 인사했다. 신 팀장님이랑 술친구라는 게 지금 생각해보니 참 신기했다. 일할 땐 찬바람 쌩쌩 부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본 신 팀장님은 차가운 것이랑은 거리가 멀었다. 그러고 보면 저렇게 능력 있고 잘생긴 멋진 남자가 만나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신기했다. 아, 아니다 있을지도 모르는데…. 뭐, 사실 있든 없든 나랑 전혀 관계없는 일이다. 난 그저 이제 내려가서 연구나 열심히! 해야겠다.
============================ 작품 후기 ============================
상한울떡님 걱정마세요 두미는 별 일 없을 겁니다. 아마도요?...ㅎㅎ
선추코 감사드립니다!!^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