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1 과유불급 =========================
10화
연참(2/2)
신혼여행을 다녀 온지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다. 신혼여행이 끝난 다음날 회사에 갔더니 회사에서 새로운 계약을 따냈다고 했다. 그 덕에 일주일동안 죽어라 바빴다. 하던 연구는 잠시 밀어두고 계약자가 요구한 연구를 연구하고 결과 보고하고 관련 서류 정리하고, 다시 연구하고…. 끝없는 반복이었다.
난 연구원은 그냥 연구만 하면 되는 직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연구 말고도 할 일은 넘쳐났다. 그래도 일주일동안 우리 연구 2팀과 1팀이 열심히 일에만 매달린 끝에 만족스런 결과가 나왔고 급한 일은 다 끝낼 수 있었다. 그래서 하게 된 예고 없는 회식 덕에 나는 도건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회식 한다….ㅠㅠ>
우리 팀 팀장님이 내게 술 한잔을 따라주셨다.
“이 대리 한 잔 받아.”
“네. 감사합니다. 팀장님.”
“확실히 이 대리가 손이 빨라서 아주 일처리가 순식간이야.”
“아니에요. 팀원들이 전부 야근도 불사하면서 함께 열심히 해줘서 더 빨리 끝났죠.”
하하하. 하며 나는 사무적인 미소를 짓고는 소주병을 건네받아 팀장님께도 술을 한잔 따라드렸다.
“이 대리. 이 대로만 하면 곧 승진 하겠는데?”
어머, 아니에요. 라고 하며 손사래를 치려고 했으나 1팀 팀장님이 갑자기 끼어들며 말했다.
“근데 이 대리 이번에 결혼 했잖아. 그럼 뭐 승진은 물 건너갔지.”
“네?”
“좀 있으면 임신해서 임신휴가 받고, 육아휴직하고! 그럴 게 뻔한 여자한테 중요한 직위를 어떻게 맡기나.”
여사원들이 결혼을 할 때마다 저딴 소리를 짓거리는 1팀 팀장이란 작자는 벌써 술이 올랐는지 목까지 빨갛게 물들이고는 여기저기를 보며 그렇지? 내 말 맞지? 맞지? 하며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아오. 눈앞에 있는 마늘을 죄다 집어 던지고 싶었다.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편협한 시각에 갇혀있는지 모르겠다.
“박 팀장님. 전 아이계획 없습니다.”
굳은 얼굴로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니 힘들었다.
“뭐? 쯧쯧! 아이를 왜 안 낳아? 요즘 여자들이 저러니까 우리나라 출산율이 그 모양인거야!”
“죄송한데요. 박 팀장님. 출산율 문제는 여성이 만들어 낸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런 기본적인 문제의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팀장자리에 앉아있으세요?”
“뭐?!! 뭐? 뭐…라고?!!”
“출산율 문제는 국가의 문제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에서 지원을 안 해주는데 누가 아이를 낳아요? 물가가 안정되지 않는데 무서워서 누가 아이를 낳나요? 아이한테 들어가는 비용이 한두 푼도 아니잖아요? 저한테 10억 정도 주면서 아이 왜 안 낳냐고 하시면 왜 아이 안 낳냐는 말 정도는 할 수 있게 해드릴게요. 근데 주는 건 아무 것도 없으면서 저한테 아이 안 낳느냔 소리 하지도 마세요. 부탁드립니다.”
“대리님 왜 그래요!”
내가 연구 성과를 보고하는 것처럼 고저 없는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하자 옆에서 부하직원 한 명이 소근 거렸다.
“뭐?!! 이 대리! 지금 뭐라고 했어? 어? 뭐?!!이런!!!”
분노한 박 팀장이 벌떡 일어나 내게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박 팀장. 진정해. 오늘 많이 취했어.”
옆에 앉아있던 우리 팀 장 팀장님이 박 팀장을 말렸다.
“너 아주! 임신하기만 해봐라! 어? 내가 아주 확 그냥 잘라버리라고 할거야! 너 앞으로 회사생활 얼마나 잘하나 보자. 어?!!!”
“우리 회사 내규에 임신하면 퇴사처분 한다는 조항은 없는 것으로 아는데요? 우리 회사 대표님도 직원이 임신했단 이유로 자를 수는 없습니다. 우리 회사에는 아주 잘 자리 잡혀 있는 노조가 있거든요. 박 팀장님.”
나는 눈을 부릅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저 작자가 오늘 처음으로 저런 개소리를 하는 거라면 오늘 따라 술 많이 취했다는 핑계로 나도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여직원들에게 저런 논리적이지 않은 말을 하는 것을 수도 없이 봐왔고, 지난 일주일 내내 혹여나 우리 팀에서 먼저 성과가 보이면 결혼했으면 집에 있을 것이지, 여자가 감히, 고작 여자주제에 등등의 수 없는 쓰레기 같은 말들을 듣고도 참아온 것이 회식자리에서 결국 터진 것이다. 나는 도저히 더 이상 저런 모욕적인 말들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저도 박 팀장님 회사생활 얼마나 잘 하시나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보겠습니다.”
“뭐?…뭐 저런!”
“오늘은 다들 그만 일어나지. 자. 박 팀장도 나가자고.”
“이런 씨! 장 팀장! 이거 놔봐! 내 저걸 아주 그냥!”
몸부림치는 박 팀장을 장 팀장님께서 힘겹게 끌고 나갔다. 두 사람이 식당에서 나가는 것을 함께 지켜보던 부하직원인 소연씨가 웃으며 말했다.
“대리님. 다음 주가 걱정되긴 하지만 오늘 완전 멋지셨어요.”
“소연씨도 참지 말고 다음에 또 저 인간이 얼굴이 어떻다는 둥, 두꺼운 다리로 치마 입지말고 바지를 입고 다니라는 둥 그런 개소리 하면 이번엔 진짜 성희롱으로 고소해버려. 회사에 고발하지 말고 경찰서에 가서 말해. 내가 증인해줄게. 아! 녹음기 들고 다녀. 꼭!”
“넵! 근데 대리님 결혼 하시더니 갑자기 겁 없고 더 당당해지신 것 같아요.”
“사실…그게 좀 있어. 내가 잘려도 남편 덕에 다시 직장 구할 때 까지는 먹고살 수 있으니까? 이래서 다들 결혼하나봐.”
큭큭큭. 1팀 사람들 몰래 웃던 소연씨와 나는 팔짱을 끼고 사이좋게 택시에 타고는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박 팀장에게 한 소리 해줬다는 성취감에 기뻐하며 집에 간 나는 이 일에 대한 후폭풍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상한울떡님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도건이는 두미를 천천히 자신에게 물들게 할 생각입니다.ㅎㅎㅎ
선추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