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5 2장 - 정글포스 탐욕의 던젼 - =========================================================================
냉정하고 침착하게 생각해보자.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무슨 뜻일까?
아리와 나 사이는 엄밀하게 말해서, 슬레이브와 마스터의 관계다. 법적으로는 내가 노예 문서를 찢어버림으로써 자유를 주었지만, 실제로는 시스템으로 묶여있지.
물론 나는 그녀에게 실제적인 자유도 보장해 주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내 곁에 남기로 해 주었다. 물론 고용인과 피고용인 관계가 성립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그녀가 내 곁에 남은 이유는 되지 못한다. 내가 하는 일은 보통 위험한 일인가? 그런데도 그녀는 내 곁에 남아주었단 말이지. 그래서 나는 그녀를 보통의 남남이 아닌 조금은 특별한 관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아리가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일부러 꺼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쪽으로 특별한 걸 이야기 하는 거겠지? 남녀 사이의 특별한 관계.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리에 대해서.
아리는 예쁘다. 정말 무진장 예쁘다. 그리고 성격도 나쁘지 않다. 지금까지 같이 지내면서 짜증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다. 오히려 같이 있으면 편하고 안심이 된다. 아리와 특별한 관계가 된다고? 당연히 대환영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내 몸이 본체가 아니라는데 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이 몸은 아바타다. 실제 내 몸이라고 말하기는 힘든 것이다. 말하자면 가짜. 그리고 이 몸을 쓰고 있는 목적은 큐비의 부탁으로 몬스터를 사냥하고, 던젼을 클리어하는 것. 그 목적이 이루어 졌을 때, 과연 이 몸은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한데, 지금 내가 엄청난 헛다리를 짚고 있을 가능성이다. 아리는 전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뜻으로 말한 건데 괜한 설레발을 떨고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만약 이게 정말로 착각이라면, 함부로 대답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흑역사를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 뭐라 해도 나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서 말이야.
좋아, 일단은 진위를 확인해 보자. 나는 아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하는 이야기겠지?"
아리는 여전히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질문이 너무 애매했네. 이번에는 확실한 대답을 유도할 수 있는 질문을! 나는 아리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나로서는 아리와와 특별한 관계가 되는 것이 정말 기쁜 일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이건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야. 가벼운 마음으로 결정하고 싶지는 않아. 자, 아리. 너의 마음을 확실하게 표현해 주겠어? 너의 입으로 직접,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줘. 구체적으로."
음. 너무 직접적이었나?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리는 잠시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 저를…. 저를 강한님의 여자로 만들어 주세요!"
내 눈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한 아리는 곧 얼굴이 빨개진 체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내 심장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이건 착각이 아니다. 분명히 아리는 그런 뜻으로 말한 거야!
세상에 24년을 살아가면서 여자로부터 처음 고백을 듣게 되다니! 그것도 이렇게 미인에 마음씨도 예쁜 여자한테!
그 순간 마음속에 모든 고민이 깨끗이 사라져 갔다. 억지로 만들어낸 핑계들이 모두 사라지고 장밋빛 미래만이 남겨졌다. 아바타? 그래서 어쨌다고?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면 돼! 설마 무슨 방법이 없겠어?
그리고 머릿속에 지은양이라던가, 세리스, 벨이 떠올랐지만, 나는 애써 그 얼굴들을 지워버렸다. 물론 그녀들에게도 좋은 감정이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 아리를 놓친다면 엄청나게 후회할 것이 틀림없다. 나는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확실한 미래를 선택하겠어!
나는 최대한 침착하려고 애쓰면서 아리에게 내 마음을 고백하였다.
"아리의 마음, 무척이나 기뻐. 나도 아리를 내 여자로 만들고 싶어."
"강한님...!"
여전히 아리의 얼굴은 빨갰지만, 그 표정은 분명히 기쁨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기뻐해 주세요. 저 드디어 여자친구가 생겼어요!
"만세!"
이건 내가 내지른 소리가 아니다. 그리고 아리도 아니고 말이다. 지금 목소리는 텐트 밖에서 들려왔고, 지금 베이스캠프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우리 셋뿐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소리는 벨이 지른 소리라는 건데, 저 녀석 우리 대화를 엿듣고 있었구나!
뭐, 좋아하는 걸 보니 아리와 나의 관계를 축복해주는 모양이라서 기분은 좋구나. 나는 다시 한 번 아리를 바라보았다. 이 아름다운 여자가 내 여자친구라는 말이지? 왠지 아리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아리가 내 시선을 느끼고는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서 자신이 입고 있던 검은색의 치마의 단추를 풀었다. 그녀의 치마가 스르륵 흘러내렸다.
"아리야?"
내가 당황해서 아리를 불렀지만, 아리의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하얀색의 티셔츠마저 단숨에 벗어버렸다. 분홍색의 속옷만을 입은 아리의 모습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리는 이어서 가슴가리개까지 풀어버리고는 살며시 자신의 가슴을 두 팔로 가린 체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굳어져 버린 나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저를…. 강한님의 여자로 만들어 주세요."
내 이성은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나 보다. 왼팔에 느껴지는 기분 좋은 무게감에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보았다. 아리가 내 왼팔에 머리를 대고 잠들어 있었다. 이윽고 잠기운이 사라지면서 그녀의 부드러운 육체의 감각과 아찔 할 정도로 황홀한 그녀의 체취가 느껴졌다. 야전 침대가 그렇게 넓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녀와 나는 꼭 붙어서 잠들었던 모양이다.
꿈이 아니었구나. 정말로 나는 아리와 특별한 관계가 된 것이다. 설마 고백한 그 날 일을 치르게 될지는 상상도 못 했지만, 당연히 후회 따위는 없다. 지금 나는 무척이나 기쁘고 즐거운 기분으로 넘치고 있으니까.
"으음..."
잠들어 있던 아리가 조용히 눈을 떴다. 그리고는 나를 쳐다보며 멍하니 있었다. 아직 잠이 덜깬 모양이다. 나는 사랑스러운 그녀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잘 잤어?"
벌떡!
그녀가 순간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듯이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덕분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그녀의 적나라한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음음. 이제는 연인관계이니까 아무 거리낌 없이 마음대로 보아도 되겠지. 일부러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고 말이야.
아리는 자신의 옷차림은 신경도 쓰지 않은 체로, 서둘러서 침대 위에서 일어나다가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괜찮아? 왜 그렇게 당황하는 거야?"
"아야…. 아, 죄송해요, 강한님!"
아리가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어제 벗어놓은 자신의 옷을 주섬주섬 모아서 들어 올렸다.
"뭐가 죄송해?"
"그게…. 추한 모습을 보여드려서…."
"추한 모습이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모습인데."
"강한님..."
"아리야."
나는 몸을 일으켜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부끄러워하는 아리를 꽈악 끌어안았다. 그녀가 들고 있던 옷이 스르르 바닥에 떨어졌다.
"사랑해, 아리야."
"강한님..."
아리가 내게 기대면서 나를 마주 안아 주었다. 그때 머릿속에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 아티펙트 트윈엔젤의 부활횟수가 갱신되었습니다.
- 김강한 : 0 회
아르시아 스텐베르크 : 10 회(Max) ]
응? 저번에 8 회 였던걸로 기억하는데, 단숨에 두 단계를 뛰어넘어 max가 되었다. 하긴 서로 간의 관계에 의해서 올라가는 방식이니까. 우리 둘 사이는 무엇보다 특별한 관계가 되었으니, 최고치로 올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저, 강한님. 이제 그만... "
"왜? 좀 더 이러고 있고 싶은데?"
"저도 그러고 싶지만, 식사 준비도 해야 하고…. 벨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음…. 되도록 오랫동안 아리와 이러고 있고 싶지만, 벨이 소외감을 느끼게 될 가능성도 있겠구나. 아쉽지만 그만 아리를 해방 시켜줘야 할것 같다.
"그럼 마지막으로, 쪼옥~"
나는 아리의 입술에 살짝 키스한 뒤에 그녀를 놓아주었다. 앞으로도 시간은 많으니까. 아리는 내게서 벗어난 뒤 떨어트린 그녀의 옷들을 주운 뒤에 내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텐트 밖으로 나갔다. 옷은 입고 나가지.
그런데 나는 그녀의 태도에서 조금 위화감을 느꼈다. 아무래도 연인에게 보이는 태도가 아니라 메이드가 주인에게 보이는 태도에 가깝게 느껴졌다. 현실 세계와 이곳의 문화적인 차이인가? 나중에 확인해 보아야겠다.
나도 옷을 입고 텐트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텐트 안으로 벨이 들어왔다. 그녀는 얼굴에 미소를 띄운체 나를 바라보며 똑바로 걸어왔다. 나는 벨에게 아리와 나 사이의 일을 말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벨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런 건 내가 직접 알려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벨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후후훗. 드디어 강한님이 아리언니의 밤시중을 받아드리셨군요. 정말 다행이에요. 사실은 제가 먼저 강한님을 모시고 싶었는데, 일단 언니가 먼저니까 어쩔 수 없이 양보한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 밤은 저예요. 아시겠죠?"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리와의 일은 밤시중 따위가 아니라고. 그녀와는 마음과 마음이 통한 사이다. 그런 가벼운 관계가 아니야!
"쓸데없는 소리. 이미 아리가 있는데 다른 여자를 안을 이유가 없잖아."
이번에는 벨이 그게 무슨 황당한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회귀한 동물을 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설마 아리언니 한 명으로 만족하신다는 이야기인가요?"
"당연하지. 그럼 바람이라도 피란 말이야?"
"바람이라뇨? 이건 강한님의 당연한 권리예요!"
"그런 권리 필요 없어. 나는 아리 한 명이면 충분해."
"읔! 이게 아닌데!"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나는 아리를 연인으로 받아들였다.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올 이유가 없잖아. 벨은 물론 매력적인 여성이지만, 아리가 벨에게 꿀릴 건 전혀 없다. 아리가 슬퍼하는 일은 절대 할 생각이 없다.
"더 이상 할 말 없으면 나가. 옷 갈아입어야 하니까."
내가 내린 축객령에 벨은 계속 `이게 아닌데.`라고 중얼거리면서 텐트 밖으로 나갔다. 조금 미안한 기분도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미 내 마음속과 머릿속에는 아리가 가득 차 있었다. 하하하.
"강한님, 앙~"
"앙~"
아리가 직접 음식을 내 입으로 넣어주었다. 음, 맛있어. 원래 아리가 해준 음식은 다 맛있지만, 이렇게 먹여주니까 더 맛있는 것 같아.
"으으으으!`
반대편에서 벨이 이쪽을 바라보면서 분한 듯이 몸을 부들 부들거렸지만, 머릿속이 핑크빛으로 가득 찬 상태라서 벨에대한 배려를 해줄 여유가 없었다. 미안하다, 벨.
"자, 아리. 이번에는 내가 먹여줄게, 앙~"
"예? 아니요, 괜찮아요! 부, 부끄러워요!"
"괜찮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자, 앙~"
아리가 얼굴이 빨개진 체로 가만히 입을 벌렸고, 나는 그녀의 조그만 입에 직접 음식을 넣어주었다.
"오몰오몰. 맛있어요, 강한님."
"그래? 자, 그럼 이것도…."
그때, 가만히 음식을 집어 먹으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던 벨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그만! 제발 그만요! 자, 빨리 6 층계에 도전하자고요! 빨리!"
"아니,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돼. 시간은 많으니까."
"도저히 못 참겠다고요! 제발 제 앞에서 그런 모습 보이지 말아주세요!"
그 뒤로도 베이스캠프에는 벨의 한 맺힌 절규가 한동안 계속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