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치우와 구미호는 상당히 복잡한 관계다. 서로 장래를 생각했다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서로에게 깊은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무엇보다 치우는 진지하게 미래도 생각했지만 그런 그들의 걸림돌이 되는 것은 구미호. 그녀였다.
여우의 몸으로 요괴가 되고 반신의 자리까지 오른 그녀. 그녀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바로 치우. 그 자체였다. 이상한 말이지만 사실이었다.
치우는 인간이다. 평범한 그저 그런 인간. 구미호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인간이다. 하지만 문제는 치우의 무력이다. 신조차 감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 그것을 치우는 가지고 있었다.
신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인간과 반신의 위치에 있는 요괴. 이 둘의 만남은 참으로 이상하고 어색했다. 하지만 만나고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에 대한 묘한 자괴감도 가지고 있었다.
이 자괴감에서 문제가 생겨버린다. 황제와 한창 싸우던 치우. 그리고 황제는 치우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의 틈을 약점을 노렸으니 그것이 바로 구미호를 인질로 잡는 것.
구미호 또한 강자다. 하지만 치우보다는 약하다. 훨씬 약하다. 그렇기에 황제는 구미호를 인질로 잡고자 하였으나 반만 성공할 수 있었다.
치우가 마침 지나가다가 납치에 성공하고 도망치던 황제의 병사들을 보고 그대로 그 자리에서 그들을 모조리 도륙해 버렸기 때문이다.
치우의 구함을 받은 구미호는 고마워하면서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괴감은 더욱 커졌다. 요괴다. 인간보다 우월한 자신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반신이라고 불리는 대요괴 구미호가 인간의 도움을 받는다?
자존심이 상했다. 이것은 정말로 천천히 구미호의 마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에 손을 쓴 것은 로키다. 당시 자신의 정체를 숨긴 그는 구미호를 일부로 서서히 좋지 않은 쪽으로 꼬드긴 거였다. 구미호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그렇게 천천히 넘어가고 있을 때 결정적으로 치우가 신들 사이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며 그 질투가 자괴감이 드디어 완벽하게 폭발한다. 그리고 황제를 도와 치우를 배신하며 치우를 패배, 죽음의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하지만 치우는 모든 것들을 정면으로 돌파하며 황제도 구미호도 모든 것들을 베어버리는 무시무시한 힘을 보여주었다. 황제도 구미호도 그 공격에 겨우겨우 살아남았다. 아니 치우가 살려주었기에 살 수 있었다.
구미호에 일생에 다시없는 굴욕이었지만 치우는 이미 신이 되어 신계로 올라가 버렸다. 그리고 차후 로키의 등장으로 다른 이들과 함께 신에게 반역을 하고 구미호는 끈질기게 치우를 노렸다.
물론 구미호는 단 한 번도 치우를 이기지 못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악에 박친 구미호는 치우를 노렸다. 치우는 그런 구미호를 보며 안타까워하였다.
우워어어어!!!!!!
구미호. 아니 십미호의 거대한 포효와 함께 10개의 꼬리가 모이며 십미호의 입 앞에 거대한 흑색의 구체가 생기기 시작했다.
“... 그래. 이제 슬슬 끝을 내야 겠지. 이 길고 긴 인연의 끝을...”
그렇게 말하며 치우는 자신의 검에 자신의 모든 힘을 모았다. 저 공격은 정면으로 받아서는 안 된다. 치우 본인이라고 해도 위험할 정도의 강력한 공격. 하지만. 그는 치우다.
전쟁의 신이며 무의 신이며 단 한 번의 패배도 하지 않은 전설이자 신이다. 포기란 없으며 되돌아가는 것도 후퇴도 없다. 오로지 정면돌파. 그것이 그가 걸어 온 길이었다.
“고통없이 내 손으로 보내주마.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자비다.”
콰아아아앙!!!!
십미호의 입에 모인 흑색의 구체가 레이저처럼 흑색의 선이 되어 치우를 향해 빠른 속도로 쏘아진다.
“천검 6연참!!!”
이에 맞춰 치우는 빠르게 검을 휘두른다. 총 6번의 휘두름. 그것으로 6개의 붉은색의 참격이 흑색의 선을 막는다. 두 개의 거대한 힘의 충돌. 그 여파로만 순식간에 그들이 있는 주변 공간이 뒤틀린다.
“천지무멸참!!!!”
그리고 치우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한 번 검을 휘두른다. 앞서 나타났던 6개의 붉은색 참격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크기의 붉은색의 초승달의 참격이 십미호를 향해 쏘아진다.
자신에게 오는 참격을 보며 십미호는 전력을 다해서 대항하지만... 불가능 하다. 치우가 자신의 힘을 영혼마저 일부 소비해가면서 무리하게 한 공격이다. 십미호가 막을 수준이 아니었다.
“그저... 같이 서 있고 싶었을 뿐인데...”
피이이이이이잉!!!!!
인간의 귀를 넘어선 엄청난 폭음. 그 폭발은 서울을 뒤덮었다.
* * * * * * * * * *
“화려하게 하는 군. 그렇지 않아?”
“시끄럽네! 어서 맞고 죽으라고!”
“쯧쯧 사납기는. 천천히 하자고 천천히.”
그렇게 말하며 로키는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곳을 바라보았다. 십미호는 소멸되었고 치우는 힘을 과하게 사용하여 역소환 되었다. 그리고 방금의 폭발로 서울의 반이 사라졌다.
‘바다에서 싸우기를 잘 한 거지.’
그렇게 말하며 로키는 자신에게 쏘아지는 거대한 푸른색의 불꽃을 피한다. 그 사이 검은색의 털을 가진 커다란 늑대가 태천의 뒤를 노려 앞발을 휘두르지만 투명한 막에 막히며 늑대의 공격이 무산 된다.
“사기네. 사기야. 가이아에게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줄은...”
초월의 검과 방패. 두 가지 모두 가지고 있는 태천. 그는 무적이었다. 신들마저 죽인다는 펜릴의 이빨과 발톱을 너무나도 쉽게 막는 방패와 자신과 펜릴을 일격에 죽일 수 있는 검.
이 두 가지를 들고 있으니 인간이라고 하지만 무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
‘역시 그걸 해야 하나? 아파서 싫은데...’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로키는 태천을 바라보았다. 펜릴의 공격을 막으면서 반격을 하는 모습은 확실히 아직 미숙하지만 자신과 가이아를 만든 주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면도 있었다.
‘어쩔 수 없네. 쩝. 아프지만 참아야지 어떻게 하겠어.’
“펜릴!!”
로키의 외침에 펜릴이 로키의 옆으로 온다. 그러자 로키가 입술을 살짝 물며 말했다.
“먹어라!”
그 말에 펜릴은 그 커다란 입을 벌려서 로키를 먹었다. 그 모습을 본 태천은 놀라며 로키를 바라보았다.
“큭.. 큭큭. 죽을 때 죽더라도... 네놈은 데려가야지. 안 그래?”
순식간에 펜릴의 위장으로 들어가 버린 로키. 하지만 곧 펜릴의 정신에서 강력한 어둠의 힘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펜릴의 몸이 변했다. 덩치가 더욱 커졌으며 털색이 모두 하얀색으로 변하였고 발톱과 이빨은 흑색으로 변하였다.
“... 위험해 보이네.”
초월의 방패를 얻은 이후. 처음으로 태천은 목숨이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우우우!!!!!
펜릴의 긴 울음소리와 함께 펜릴이 태천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기 무섭게 초월의 방패에 무언가가 강하게 부딪쳤는데 그 충격에 태천은 뒤로 밀려났는데 더 놀라운 것은.
“금이 갔다?”
치우의 최고의 일격을 받아도 굳건하던 방패에 금이 가 버린 것이다.
챙! 챙! 챙!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이는 펜릴. 그리고 계속해서 금이 가고 있는 초월의 방패.
“젠장! 이래서야...”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염풍검과 염빙검을 사방 팔방으로 움직여 보고 있지만 펜릴은 전혀 잡히지 않았다.
“방어를 포기해야 하나...”
이 방패를 푸는 순간. 그 일순간에 펜릴은 충분히 태천을 죽일 수 있다.
찌직.
그리고 드디어 방패가 깨지기 직전까지 왔다. 그러자 펜릴은 모습을 들어내며 커다란 입을 벌려 아예 방패까지 통째로 입에 물어버리자 펜릴의 거대한 흑색의 이빨이 방패를 관통하며 서서히 태천의 몸을 위협하고 있었다.
“생각해라. 생각해...”
지금 이 상황을 넘어갈 방법. 그 하나의 방법. 그것을 생각해야 했다. 방패의 강화. 그건 지금 태천의 힘으로는 무리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수단은 단 하나 공격이다.
“도박은 정말로 싫어하는데...”
염빙검을 만든 태천은 천천히 염빙검의 크기를 키웠다. 하나의 창과 같은 크기로 만든 태천은 염빙검의 푸른 불꽃을 점점 더 강하게 키웠다.
“해 보자.”
그리고 초월의 방패가 부서졌다.
* * * * * * * * *
“끝났군요.”
“응? 뭐가?”
“왕께서는 무사히 로키와 펜릴을 처리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 치우거 저 모양으로 와서 불안했는데 다행이네. 그럼 가 볼까?”
“아니요. 지금은 쉬는 것이 좋을 겁니다. 어차피 곧 저희를 다시 부를 겁니다. 이제... 시작이지 않습니까?”
“하긴. 전쟁은 끝났지만... 그 뒷수습이 아직 많이 남아 있지. 히히 우리 왕도 바쁘겠네.”
“예. 저희도 바쁠 겁니다. 어지러워진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할 테니까요.”
“아. 그건 싫다.”
“후후후. 신인 이상 의무입니다. 아테나.”
“알아.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야. 쩝. 어쩔 수 없지.”
“예.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그럼 나 그만 갈래.”
“다음에 또 놀러 오세요. 그때는 더 맛있는 것을 준비하겠습니다.”
가이아의 인사를 받으며 아테나가 사라지자 가이아가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살아 있나요? 로키.”
“끙... 살아 있어.”
천천히 그림자에서 나오는 남성. 광대 가면을 쓴 로키였다.
“아. 진짜 펜릴도 아픈데 우리 주인도 사정없이 공격하더라. 죽는 줄 알았어. 미리 따로 여기에 피난처를 마련해 놔서 다행이야.”
“이제 전쟁은 끝났습니다. 로키.”
“알아.”
“차후. 당신의 역할이 아주 중요해요.”
“끙... 나 좀 쉬고 싶다. 가이아.”
“로키로서는 평생 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둠으로서는 열심히 움직여야 겠죠. 아니. 앙그라마이뉴라고 불러드릴까요?”
“하아. 내가 왜 절대 악인거야? 애초에 악이 이렇게 피곤하면 안 되잖아? 정의 가 피곤해야지. 뭔가 이상해.”
“후후후.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죠.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앙그라마이뉴.”
“쳇쳇쳇. 너나 주인이나 사람 부려먹는게 안 좋아.”
“사람이 아니라 절대악이겠죠.”
“확. 살이나 쪄라!”
그리고 다시 그림자로 사라진 로키. 아니 이제 앙그라마이뉴가 될 어둠을 보며 가이아가 미소 지었다.
“다음에 만나면 사지를 잘라드리죠.”
도발은 제대로 먹힌 모양이다.
* * * * * * * * * *
“... 이건 아니지. 이건 아니라고.”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어서 해.”
“아니 그렇지만 저번에도 내가 했잖아!”
“나 바빠.”
“나도 바쁘다고!”
“억울하면 네가 애를 낳던가.”
“젠장! 산후조리가 무슨 한 달씩이냐 하냐고!!!”
그렇게 외치면서 태천은 울고 있는 자신의 귀여운 딸의 기저귀를 갈아주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건 진짜 불공평해. 리셀.”
“다음에는 내가 할게.”
“진짜?”
“산후조리 끝이거든.”
“젠장. 이번에도 한 달간 내가 한 거냐...”
“후후. 누누이 말하지만 억울하면 애를 낳아.”
“불가능 한 소리 하지 말라고.”
그리고 태천은 투덜거리면서 능숙한 솜씨로 아기의 기저귀를 완벽하게 갈아주었다.
“이제 좋지?”
귀엽게 웃는 아기를 보며 태천도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아기를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거야?”
“몰라. 그 녀석들이 또 도와달라고 할 때까지겠지. 하여튼 신이라는 놈들이 왜 그 모양인지 원...”
태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태천의 앞에 공간이 열리며 가이아가 나타났다.
“... 또냐?”
“이번에는 정말로 금방 끝날 겁니다.”
“야. 너희가 신이지 내가 신이냐? 좀 똑바로 일 못 하냐?”
“죄송하지만 저희는 아직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기에... 무엇보다 숫자가 너무 적습니다.”
“끙. 젠장 또 안 간다고 하면 세계가 붕괴디고 그것을 연쇄작용으로 어쭈구 하면서 결과적으로 우주가 멸망한다고 할거지?”
“잘 아시는 군요.”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가이아를 보며 태천은 혈압이 올랐지만 참았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가야 했다. 웃으면서 가는게 그나마 정신건강에 좋았다.
“하아.”
품에 있는 아기를 리셀에게 건내며 말했다.
“갔다 올게. 또 빌어먹을 세계 구하러.”
“세계 잘 구하고 와.”
“하아. 젠장. 가자. 가.”
“후후. 예.”
오늘도 태천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세계를 구한다는 명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