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나 정도의 운명이라...”
“사람은 많은 것들을 착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운명을 고친다는 것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니까 그렇게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왕.”
가이아의 말에 태천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까? 돌연 갑자기 이런 일에 끼어들게 되어서 참 머리가 어지러웠다. 물론 거기에 따른 대가도 많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 복잡한 것은 복잡한 것이었다.
“하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편하게 가면 됩니다. 편하게.”
“편하게 가서 내일 제우스 소환하고 황룡이랑 청룡이랑 맞짱 뜨라고?”
“후후후. 그렇죠. 싸움이라는 것은 간단하니까요. 복잡해지면 이렇게 다른 부분에 아예 신경을 집중해서 천천히 다음에 그 문제에 대해서 다시 떠올리면 되는 거예요. 애초부터 복잡한 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시면서요. 왕.”
“부정 못 하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네.”
“그러면 이제 그만 주무시죠. 내일도 바쁠 테니까요.”
“그래야겠지.”
* * * * * * * * *
“천공의 신 제우스. 자애의 여신 가이아. 2명의 신이 나타났다는 건가? 이거 꽤 하는 군. 인간주제에.”
= 어떻게 할 거지?
“어떻게 하기는 확실하게 힘의 차이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줘야 하지.”
= 우리 둘이서 말인가?
“그럴 리가. 내가 제우스를 상대로 싸울 수 있지만 너는 가이아를 상대로 1:1로 싸우는 것은 조금 힘들지 않아? 무엇보다 그 인간 녀석도 위험한 걸 들고 있고.”
= 그럼 누구를 부를 건가?
“누가 좋을까? 상성을 생각하면 역시 가장 좋은 것은 그림리퍼인데 말이야. 그 녀석의 공간이동은 엄청나게 도움이 되니까.”
= 하지만 그는 얼마전의 주작을 빼오기 위해서 한 시도에서 상당히 많은 힘을 잃었다. 그 인간에게 당한 상처의 회복 때문에.
“알고 있어. 그러니까 그 녀석을 부르지 않은 거야. 그렇다면 남는 놈들은 정말로 얼마 없네. 아직 다 못 넘어 온 놈들도 있고.”
= 여우를 부르는 것은 어떤가?
“에이. 그건 안 되지. 무엇보다 그년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기도 힘들고. 괜히 빚 같은 것 만들어 두면 골치 아프다고.”
= 그럼... 누구를 부를 거지?
“어쩔 수 없나. 아. 그녀석은 가능하면 부르고 싶지 않았는데.”
그 말과 함께 황룡이 어울리지 않게 핸드폰을 꺼내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뭐야? 노란 지렁이.
전화에서 들려 오는 말에 바로 욕부터 나오는 황룡이었지만 애써 참으면서 말했다.
“시비 걸기 위해서 전화 한 거 아니다. 너도 알다시피 이곳에 지금 제우스하고 가이아가 있다.”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지금 우리 보고 있을 거 아니야.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도와줘. 이거 우리들끼리 무리야.”
- 내가 왜?
“그럼 우리가 다 당하는 것을 원하는 거야? 그럼 너희들에게도 좋지 않을 텐데?”
- 큭. 고작 그런 이유로 나보고 너를 도우라고? 그걸 로는 부족하네.
“다 같이 죽자는 식인가?”
- 설마? 내 목숨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럼 이대로 보고 있겠다고?”
- 큭큭큭. 그렇고 싶지. 하지만 그 녀석이 나에게 너를 도우라고 해서 말이야.
“그가?”
의외인 듯이 말하는 황룡의 말에 핸드폰 너머에 있는 목소리도 그랬다.
- 정말로 귀찮지만 어떻게 할 수 없지. 그래서 뭘 도와달라는 거지? 그 인간 녀석이랑 싸워달라는 거냐?
“그렇게 해주면 좋지. 너의 능력이 가장 잘 통하는 대상이기도 하니까.”
- 큭큭. 뭐 그렇게 하도록 하지.
* * * * * * * * *
“이상하네.”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태천은 전방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건...”
도시를 뒤덮고 있는 보라색의 연기. 저것은 딱 봐도 위험해 보였다. 아주 위험해 보인다고 여기 오면 위험 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보다 이건 도대체 누가 한 거야?
“이건 좋지 않군.”
내 옆에 흰색 천으로 된 옷을 대충 걸처 입은 50대 후반의 아저씨가 말했다.
“알아?”
“아아. 이런 짓을 할만한 놈은 한 명밖에 없지. 그보다 지금까지 조용했는데... 이미 부활해 있는 상태였던가?”
“어찌되었든 이건 상당하게 곤란하게 되었군요.”
“저거 독이지? 딱 봐도 독이라고 쓰여 있는데.”
“예. 독입니다. 단지 단순한 독은 아니죠. 인간이라면 한 번 마시면 그걸로 끝입니다. 치유할 시간도 없이 바로 즉사입니다.”
“숨을 참아야해?”
“피부도 숨을 쉬기 때문에 의미 없습니다. 저기에 조금이라도 닿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흐음.... 그럼 나 저기 못 들어가잖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있어?”
“예. 생명의 검이라면. 그것이 있다면 즉사는 면하실 겁니다.”
“죽고 사는 것을 무한히 반복하라는 말로 들린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보다 저거 해독 못 하는 거야?”
“저로서는 불가능 합니다.”
“왜?”
“제가 해독할 수 없습니다. 정화도 할 수 없습니다. 신이 절대로 손을 댈 수 없는 독으로 유명한 독이니까요. 또한 거기에 대한 반작용으로는 신에게는 전혀 들지 않는 독이기도 합니다.”
“그럼?”
“예. 이건 누가 봐도 왕을 노린 것이네요.”
“거참. 그럼 나는 들어갈 수 없는 거잖아?”
“아무래도 그럴 것 같네요. 들어가면 즉사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 너희 둘이 갈 수도 없잖아? 저 독을 황룡이나 청룡이 했을 리가 없으니까.”
“저건 누가 뭐라고 해도 그 개구리다.”
제우스의 말에 태천이 제우스를 바라보자 제우스가 말했다.
“뭐 스스로는 개구리가 아니라 그냥 양서류라고 우기고 있지만 누가 봐도 개구리인 놈이 있다. 그 녀석을 죽이더라도 이 독무는 없어지지 않아.”
“바람이 안 불어서 다행이네. 그럼 이거 태워 버리는 것은 가능할까?”
“우리로서는 손을 쓸 수 없다. 하지만 왕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지. 우리가 불가능 한 것이지 인간이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니까.”
“그럼 해 봐야지.”
그리고 천지만신검을 불의 속성으로 만든 후 가볍게 휘둘렀다. 일단 타는지 안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화르르륵!!!!
빠르게 번져가는 불꽃. 하지만 그렇게 많이 번지지는 않았다. 1m정도 번지다가 사라진 불꽃. 이건 생각 이상으로 독한 독이었다. 그래도 천지만신검으로 만든 불꽃인데 이 정도 밖에 태우지 못 했다는 사실에 조금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이거 좀 독한 것이 아닌데?”
신들 조차 가볍게 태워버릴 수 있는 불꽃이 고작 이 정도로 꺼지다니 이건 생각 이상의 위력이었다. 그렇기에 태천은 좀 더 힘을 담아서 검을 휘두르자 이번에는 어느 정도 독들이 많이 탔다.
“너희들 먼저 가 있어. 이거 내가 하고 가라면 엄청나게 오래 걸리 것 같네.”
“그러도록 하지.”
“부디 조심하세요. 조금이라도 스치면. 정말로 죽을 테니까요.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해서 생명의 힘으로 만든 천지만신검 반드시 만들어주시고요.”
“알았어.”
그리고 독무의 속으로 들어가는 제우스와 가이아를 본 태천은 잠시 독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둘까?”
그렇게 해도 나쁠 것 없지만. 상대는 3마리. 숫자에서 밀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나.”
그렇게 말하며 태천은 수백개의 불의 검을 만들었다.
“일단 모조리 태워 버려야겠네.”
그 말과 함께 수백개의 불의 검을 독무 속으로 쏘아보내자 독무가 불에 타며 사라진다. 하지만 아직도 한참 남아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걸.. 해볼까?”
얼마 전에 익힌 2개의 속성을 함께 담은 천지만신검. 그것을 꺼내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찰나 독무가 다시 비어 있던 자리를 내꾸는 것을 보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태천은 결국 그 2개의 원소를 합친 새로운 검을 꺼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