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세상은 본디 혼돈인 법이지.”
“헛소리 그만하고 앉아라.”
“쯧. 풍류를 모르는 군.”
“풍류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다시 한 번 헛소리 하면 역소환한다.”
“허험. 뭐 말이 그렇다는 걸세.”
“하아. 도대체 왜 하나 같이 애들이 이러냐...”
한숨만 나오는 태천은 다시 자신의 눈앞에서 느긋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청년을 바라본다. 저렇게 보여도 12레벨의 몬스터 카드다.
그 강함은 확실하다. 문제는 카드에 쓰인 이름 그대로라는 점이다. 물론 그게 정상이지만 너무 이름 그대로이면 좋지 않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풍류왕 한비천. 이것이 이 청년의 아니 카드의 이름이다. 지옥 밖에 있는 12레벨 몬스터를 포함해서 이제 총 10마리의 12레벨 몬스터를 다룰 수 있게 된 태천이지만 한비천은 도대체 어디에다가 두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풍류를 중얼거리지만 실상은 여자 좋아하는 한량이다. 물론 본인은 아니라고 우기겠지만 태천이 보기에는 그냥 그저 그런 제비이자 바람둥이며 한량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단지 문제는 좀 많이 강하다는 점? 12레벨 몬스터 카드가 많으면 모르지만 이 카드 한 장의 포인트도 상당히 비싸며 애초에 그렇게 많지도 않다. 신의 카드에 비하면 확실히 많지만 그래도 120장이 전부인 것을 감안하면 많다고 하기도 조금 힘들다.
“하아... 역시 너는 아니다.”
“어? 자.. 잠깐!”
한비천 발 밑에 마법진과 함께 한비천이 사라지자 태천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한비천을 다른 나라에 두는 것은 아니었다.
“나라 망신에 내 스스로 망신을 두는 행위겠지.”
- 올바른 판단이었다.
등뒤에 나타난 천수천안보살을 보며 태천이 말했다.
“역시 다른 녀석 소환해야 겠지?”
- 개인의 명예라고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왕은 개인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들을 대표하게 되었지. 나중에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왕은 사람들과 천족과 마족들을 이끌고 그들과 맞서야 한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부터 신경을 써야 겠지.
“딱히 그럴 생각은 없는데...”
- 왕이 하기 싫어도 이미 천기는 왕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둠에. 악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한 법. 지금 가장 강한 빛을 가지고 있는 왕을 중심으로 빛이 모여야지. 이건 왕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자연스럽게 흘러나가는 천기. 태초의 우주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하나의 진리다.
“또 어려운 말이 나오네. 이제 좀 사양하고 싶으니까 그만하자. 신왕무 익히는 걸로 충분히 머리아프다고.”
- 이제 겨우 2성에 돌입했으면서 벌써 우는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하자는 건가?
“겨우 2성이 아니라 무려 2성이나 도달한 거야.”
신왕무. 신들조차 익히기 힘든 절세를 넘어 우주를 뒤져도 다시 나오기 힘들 최강의 무공. 그 무공을 태천은 2성이라는 성취를 거두었다. 대단한 것이었다.
1성에만 들어가도 생사경의 경지. 그것도 완숙한 경지를 밞을 수 있는 최고의 무공이니 당연했다. 지금의 태천은 2성까지는 완벽하게 익히고 있는 상태다.
즉 생사경을 넘어 이제는 신화경이라고 불리는 우화등선을 준비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 경지 다음부터는 알려진 것은 없다.
천신문의 온갖 무공서적을 뒤져도 이 신화경이라는 경지가 끝이고 그 다음에는 그저 스스로의 깨달음에 맡긴다는 말 밖에 없다.
“후우. 애초에 나는 이런 복잡한 것을 익힐 수 있는 놈이 아닌데...”
- 인간은 무한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 모든 일은 시작이 있는 법이지. 지금 왕은 이 무공이라는 것에 발을 들여놓은 단계다. 계속 전진해 가다보면 익숙해지는 날이 올 것이다.
“별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애늙은이가 될 것 같은 기분이거든.”
그리고 태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어 있는 흙을 탁탁 털며 말했다.
“그러면 이제 그만 가볼까.”
- 포인트회수부터 하도록.
“아. 그러네.”
그렇게 말하며 태천은 주위를 둘러본다. 온통 몬스터의 시체다. 방금 전까지 태천은 한비천과 함께 235마리의 A급 몬스터, 87마리의 S급 몬스터. 그리고 12마리의 SS급 몬스터를 사살했다.
힘들었냐고 물어 본다면 태천의 대답은 NO다. 천지만신검은 신들조차 베어버릴 수 있는 검이 되었다. 그런 검을 가지고 휘두르니 공간이니 시간이니 하는 것들 마저 두부처럼 베어버릴 수 있다.
그런 검 수백 개를 만들어서 사방으로 쏘아보내기만 해도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다.
“그나저나 나도 이제 더 이상 여기서 수련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네.”
- 아직 그들을 찾아 나설 실력은 아니다.
“알고 있다니까. 그 불새님이 얼마나 강한지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럼. 포인트 전환.”
수백 마리의 시체들이 모두 빛의 가루로 변해 태천의 몸에 스며든다. 상당한 장관을 연출했지만 태천의 눈에 더욱 확연히 들어오는 것은 급속도로 늘어난 포인트다.
“후후후. 이 정도면 이제.”
지금까지 계속 모아 온 포인트를 드디어 사용할 때가 온 것이다.
“강화 카드~ 강화 카드~ S급 강화 카드~”
콧노래를 부르며 태천은 NC의 화면을 조정하며 S급 강화카드 7매를 구입했다. 2천8백만 포인트를 소모하였지만 그래도 그럴 가치는 있다고 믿었다. 무려 초월급 카드를 만드는 일이니 당연했다.
“그럼 강화를 시작해 볼까요~”
강화를 하면서 태천은 생각했다.
- 강화에 실패했습니다.
“설마...”
- 강화에 실패했습니다.
“에이. 확률이 몇 퍼센트인데.”
- 강화에 실패했습니다.
“70%의 성공 확률이라고.”
- 강화에 실패했습니다.
“농담이라면 재미없는다?”
- 강화에 실패했습니다.
“...”
- 강화에 실패했습니다.
“우아와아아아!!!!!!!!!!!!!”
7번 중 6번의 실패. 그저 그런 확률이라면 태천이라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무려 70%의 성공률을 자랑하는 S급 강화 카드다. 그런 강화카드가 연속으로 6번 실패?
수학적으로 계산해도 어이없는 확률이 나온다. 6번 모두 연속으로 실패할 확률은 무려 0.117649%. 즉 1%도 안되는 확률이라는 거다.
“젠장! 나는 행복할 수 없어!!!!”
그리고 마지막. 정말로 마지막. 무려 2천8백만 포인트를 허공으로 날리느냐 마느냐가 걸린 마지막 강화!
-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그렇지!!!!”
역시나 신은 아직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생각과 함께 태천의 목에 있던 듀얼리스트의 심장이 환한 빛과 함께 멋대로 허공에 떠오르더니 점점 작아지더니 하나의 반지가 되어서 나타났다.
- 듀얼리스트의 혼. (초월)
= 카드를 사용시 소모되는 정신력을 99.9%감소 시킨다.
= 사용하는 모든 카드의 위력을 100%증가 시킨다. (몬스터 카드의 경우 모든 능력을 100%증가 시킨다.)
“... 사기인데?”
- 확실히 이건 좀 도가 지나쳤군.
반지를 오른손 검지에 끼고 태천은 가볍게 천지만신검을 사용해 보았는데 평소보다 더욱 강렬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바람의 검이 태천의 앞에 만들어 졌다.
“어때?”
- 확실히 강해졌다. 나의 몸에도 힘이 넘치고 있고 아마 다른 아이들도 모두 같은 현상을 겪고 있을 거다. 갑작스럽게 늘어난 힘이니 조절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 할 것 같군.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거야 이래서는.”
그리고 바람의 검을 가볍게 잡고 휘두르자 초강풍이 전방으로 쏘아지며 땅을 갈라 버렸다.
“장난도 못 하겠거든.”
그래도 강화의 성공한 것을 기뻐하며 태천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제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모두 다 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