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얼리스트-95화 (95/132)

95화

“흐음...”

태천은 턱을 쓰다듬으며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활화산을 바라보았다. 공간진 안은 그야 말로 미지의 세계 뭐든지 있을 수 있고 뭐든지 없을 수 있는 모순 그 자체인 공간이다.

지옥이라고 해서 다를 것 없다. 주위에는 초원이 가득한데 떡 하니 화산이 버티고 있다. 그것도 활동중인 화산이 말이다.

“한 번 해볼까?”

그리고 태천은 천지만신검을 통해 공간의 속성이 담긴 검을 만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지금 태천의 앞에는 공간 그 자체가 검이 되어버렸다.

“예전에는 조그마한 언덕을 베었지. 지금이면... 저 정도는 벨 수 있겠지.”

태천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공간의 검을 휘두른다. 그것도 전력으로. 하지만 변화는 없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쿠쿠쿠쿠 콰아아아앙!!!!

활화산의 중간 부분이 사선으로 마치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인 것처럼 서서히 무너지자 그 틈을 통해 마그마가 미친 듯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후우. 이제 저 정도 산은 벨 수 있게 되었네.”

- 전혀 하등 쓸모없는 힘자랑이구나.

등 뒤에 나타난 천수천안보살의 말에 태천은 어깨를 으쓱 거리며 말했다.

“아직 팔팔한 20대 청년이 뭐 어디 산에서 도라도 닦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런 힘자랑은 당연히 하고 싶은 거라고. 힘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면 당연한 행동이지.”

- 깨달음을 얻어 어느 정도 속세의 미련을 버렸다고 생각했거늘...

“나는 너 와 같은 부처가 아니라서. 확실히 처음에는 그런 면이 있었지. 갑작스럽게 너무 강해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머리가 너무 좋아져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래도 예전의 나로 돌아 온 기분이야. 완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처음 보다는 지금의 모습이 더 좋아. 누나랑 정수도 그렇게 말하고 있고.”

- 본인이 만족한다면 내가 할 말은 없지. 하지만 알아두어라. 그렇게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는 것은 좋지 않아. 정작 필요할 때 힘을 사용할 수 없게 되니까. 저기를 보거라.

천수천안보살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자 넘쳐흐르고 있는 마그마. 그 사이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는 법이지. 원인으로 말하자면 누가 한 힘자랑이겠고 결과로 말하자면 저 괴물이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이다.

끼에에엑!!!1

“괴물... 이라고 하기 보다는 신수라고 봐야 하지 않아?”

전설에나 나오는 주작의 모습이 저러할까? 붉은색의 깃털과 긴 꼬리털. 그리고 몸을 감싸고 있는 마그마와 불꽃들. 불꽃을 지배하는 성수 주작의 모습이었다.

- 괴물이다. 그보다 2년간 뭘 하고 있나 싶었는데 과연. 저런씩으로 힘을 키우고 있었던 건가?

천수천안보살의 말에 무슨 뜻이냐고 말하기 전 먼저 말을 한 것은 놀랍게도 주작이었다.

- 이거 신기하군. 너는 우리가 알던 20명의 신이 아니야. 새롭게 추가된 신인가?

- 그렇다면?

- 그럼 저 인간이 너희들이 선택한 마지막 희망인가? 실망스럽군. 고작 저런 인간에게 기대다니. 하긴 어차피 신이라고 불리기도 민망한 녀석들이니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군.

주작의 말에 태천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새대가리 주제에 건방지게 말하네.”

- 쿡쿡. 지금 당장 죽이는 것은 간단하지만... 그래도 기회는 주도록 하지. 우리는 곧 다시 만날 거다. 그리고 그때 천천히 죽여주지. 운 좋은 줄 알아라. 인간. 그리고 새로운 신이여.

그 말과 함께 서쪽으로 날아가는 주작을 보던 태천이 말했다.

“뭐야 저건?”

- 괴물이다.

“말하는 몬스터는 처음 보는데.”

- 설명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진다.

“그래도 들어야 할 것 같은데? 어차피 이제 할 것 도 없으니 오늘은 그만 야영 할테니까 느긋하게 이야기를 하자고. 안 그래도 너희들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매우 많았거든.”

- ... 그러도록 하겠다.

그리고 근처의 적당한 곳을 찾아 그림자 지배자에게 텐트와 같은 기본 도구들을 받은 태천은 능숙하게 텐트를 설치하고 불을 피운 후 말했다.

“그럼 이야기 해보자고.”

-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지?

“네가 알아서 시작해봐. 나는 어디서부터 물어봐야 할지 어떻게 물어봐야 할 지 전혀 모르겠어.”

- 그럼 일단 우리들이 왜 나타났는지에 대해서 말해야 겠군. 듀얼 몬스터즈. 네가 하고 있는 이 게임에 대해서부터 설명해야 할 거다. 그 전에 이 게임을 만든 김기훈 박사라는 인간에 대해서부터 설명해야겠지.

“역시 인간이 아니야?”

- 아니 인간이다. 단지 인간의 지식으로 우주를 위협한 인간이지. 다행히 좋은 쪽으로 그 지식을 사용했지만 나쁜 쪽으로 악용했을 경우 그 결과는 상상도 하기 싫어진다.

“인간이 지식으로 우주를 위협한다고?”

- 그 인간의 선택에 따라서 우주의 존망이 걸렸다고 해도 틀리지 않아. 다행이 그 인간은 올바른 선택을 하였다. 덕분에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이지. 듀얼 몬스터즈는 그런 우리를 위해서 만들어진 게임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중간에 좀 많이 빠진 것 같은데?”

- 먼 옛날. 신과 인간 요괴 신수들이 모두 평화롭게 살던 시대가 있었다.

“무슨 동화나 게임 배경을 이야기 해달라는게 아니야.”

태천의 말에 눈을 감고 경건한 표정을 짓고 있던 천수천안보살의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황금빛 하나가 태천의 머리를 강타했다.

“아프잖아!!!!”

- 시끄럽고 들어라. 그 시대를 하얀 물이라고 한다면 어느 순간 검은색의 물감 하나가 이 물에 들어와 버린 거다. 욕심이라는 욕망이 말이다.

그리고 천수천안보살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 인간들은 신을 동경했다. 전지전능에 가까운 그들의 힘을 동경하며 그들을 섬기지. 거기에 비해서 요괴들은 천대 받았다. 모습이 흉측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며 신수들 또한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의 모습이기에 신만큼 대우 받지 못 했지. 결정적인 것은 어느 인간이 계급을 만들어 버린 거다. 신이 가장 위대하고 다음이 신수이며 그 다음은 인간 마지막이 요괴라는 계급을 말이다.

“그래서?”

- 이에 불만을 가진 요괴들은 신에게 가서 따졌지. 그리고 신은 그 요괴들에게 건방지다고 외치며 요괴들을 신계에서 내쳤다. 그런 신들의 모습에 가장 먼저 불안함을 느낀 것은 신수들이었다. 요괴들 다음이 자신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

“그 다음은 대략적으로 예상가네. 요괴랑 신수랑 동맹하고 신을 공격했다는 건가?”

- 그렇다. 하지만 일반적이라면 결코 그들은 신을 이길 수 없었다. 일반적이라면.

“무슨 뜻이야?”

- 요괴와 신수는 길게 보기로 했다. 신의 강력함을 알기에 천천히 자신들의 힘을 키워야 했지. 동시에 신의 힘을 약화시켜야 했다. 그래서 그들이 노린 것은 바로 인간이다. 인간에게 힘을 주고 인간을 조정하여 신들의 힘을 차츰 약화시켰다. 신이 강하다고 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인간을 죽일 수는 없었다. 악의가 있다고 볼 수도 없었다. 그냥 그들은 평범하게 생활했으니까. 단지 그 모든 것들을 요괴와 신수들이 조정했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지.

“그리고?”

- 신의 힘이 충분히 약해지자 요괴와 신수들이 선계를 공격했다. 선인과 신들은 최선을 다해서 싸웠지만 숫자도 힘으로도 요괴와 신수들에게 밀렸지. 결국 신들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전 우주를 떠돌아다니면서 도망쳤다. 그 와중에 만난 것이 김기훈이라는 인간이지.

“그래서 만든 것이 듀얼 몬스터즈라고?”

- 듀얼 몬스터즈라는 게임은 신의 힘과 인간의 지식이 합쳐진 것이다. 이제는 요괴도 신도 아니게 되어 버린 악이라는 존재에 대항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악이야?”

- 악이지. 신에게 대항하였기에 악이 된 것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가 악이 되어 버렸다. 욕망에 따른 것이 아니라 욕망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그들의 욕망은 끝이 없지. 더 강함을 더 아름다움을 더 부유함을. 그들은 끝없이 원하고 많은 것들을 파괴했다. 신들도 멍청하지는 않다. 자신들의 과오를 니우치고 그들에게 그냥 순순이 항복할 것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때가 늦었지. 그들은 더 이상 요괴나 신수라고 불릴만한 것들이 아니었으니까.

“이도저도 아닌 존재라 이건가?”

- 아니다. 오히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지. 그들은 욕망이 되었으며 결과로 악이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우리는 김기훈 그 인간의 힘을 빌려서 듀얼 몬스터즈라는 게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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