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기다리고 있었어.”
태천이 한창 수련을 할 무렵. 희선은 자신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태천이 천수천안보살로 본 희선에게 악영향을 끼칠 이들과 좋은 영향을 끼칠 이들 모두가 모인 곳. 그곳은 바로 대한민국의 천신문 지부였다.
본단이 대한민국에 있지만 그곳과 별개로 이곳에 대한민국의 지부가 있는데 천신문의 모든 지부들 중에서도 가장 들어오기 어렵고 정예들이 모인 곳이다.
그리고 희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선이 가는 남성으로 유약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그 실체를 보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
“오랜만이네. 이렇게 현실에서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 하는 건 1년 만이던가?”
“그렇지. 그보다 태천이는?”
“데려오지 않았어.”
“에이... 아쉽네. 있으면 진짜 편하게 일 처리할 수 있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나도 좀 오랜만에 보자고.”
“네가 직접 와서 봐. 그보다 역시 전면전이야?”
그녀가 들어 온 대한민국의 천신문 지부의 공기는 무거웠다. 동시에 뜨거웠다. 조금의 불씨만 있어도 금방 터져나갈 화약고와 같은 상황이었다.
“그렇지. 내가 이곳의 지부장이기는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곳은 본단의 입김이 가장 강하게 영향을 받으니까. 망할 개념 없는 놈들은 지들이 천신문의 문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 주제를 알아야지.”
사내의 말에 희선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너는 전혀 관심 없고?”
“어허. 이거 왜 이래? 나는 내 주제를 파악하고 있다고. 지금 이 위치가 딱 내 한계야. 그래서 나는 더 바라는 것도 없이 그냥 이 위치만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잖아? 더 이상 올라가봐야 피곤할 뿐이야. 그 자리를 지킬 자신도 없고. 그리고 이곳이 진짜 노른자잖아. 여기면 충분해.”
“좋은 판단이야. 과한 욕심은 언제나 화를 부르는 법이니까. 단지 그것을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른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지. 다 너와 같이 자기 분수를 알고 현실에 만족하면서 살면 전쟁도 없을 텐데.”
“에이. 나도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데. 지금이야 아내에게 구박 받지 않지만 그 전에는 엄청 욕먹었지. 그러니 너도 결혼 하게 되면 너무 남편 쪼지 마라. 다 자기 자식하고 아내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일하는 거니까.”
“나를 먹여 살릴 정도의 능력 좋은 남자가 있다는 소리를 전혀 들어 본적 없는 걸?”
희선의 말에 사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누가 너를 먹여 살릴 정도로 능력이 뛰어나다고 했어? 이제 곧 천신문의 문주가 된다면 너 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없다고.”
“그건 봐야 알겠지.”
딱 한 명. 희선 본인이 아무리 강해진다고 해도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가 떠올랐다. 자신의 남동생인 태천이었다. 자신의 남동생만큼은 이길 자신이 없었다.
장삼봉에게 무공을 배우면서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 깨달았고 그보다 훨씬 월등하게 강하다는 신들은 얼마나 강할지 상상도 못 하고 있다.
그런 이들을 소환하고 부리는 태천. 그를 이기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불가능 했다. SS급 몬스터가 존재한다고 해도 절대로 태천을 상대로는 이길 수 없다고 희선은 생각하고 있었다.
“들어가자.”
“미리 말하지만 불리하다 싶으면 나는 빠질 거야. 이래보여도 처하고 자식이 있는 몸이라서 죽으면 곤란하거든.”
“S급 헌터주제에 약한 소리 그만하고 어서 움직이기나 해.”
“예이. 예이.”
그리고 사내와 희선은 점점 더 건물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건물이라고 해도 천신문의 모든 지부는 한옥으로 지어진 건물이기에 여러 전각들이 있지만 이 둘이 향하는 곳은 이 여러 전각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아주 제대로 한판 붙자고 용을 쓰는 군.”
천의각이라고 쓰인 전각 앞에 선 희선의 말에 사내가 어깨를 으쓱 거렸다.
“말했잖아. 자기 자신을 모르는 병신들이 많다고. 이것들을 모조리 정리하는 건 네가 해야 할 일이야. 알고 있겠지?”
“알고 있어.”
천의각의 문을 열자 8명의 남성이 자리에 앉아 있었으며 가장 높은 상석에는 자리가 비어 있었다. 이곳은 회의장이다.
“다들 오래 기다렸나 보네.”
그렇게 말하며 희선의 옆에 있던 사내가 상석으로 향해 그곳에 앉자 다른 그 것에 불편함을 표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말을 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몸에서 기운이 뿜으며 사내를 압박하는 것이었다.
그런 이들의 반응에 사내로서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그냥 한숨만 나왔다. 이들이 왜 이러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너무나도 자기 주재 파악을 못 하고 있었다.
“오늘 다 부른 이유는 그 동안 말이 많았던 문주선발에 참여 하느냐 마느냐에 대해서 결정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연히 참가해야죠! 천신문은 우리나라의 문파입니다! 그것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넘길 생각이십니까!”
한 사내가 자리를 박차며 일어나 외친다. 그 사내의 말에 희선은 피식 웃었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지금 나라를 따지는 건가? 구발상적 사상이었다.
저런 사람이 천신문의 문주가 되면 천신문은 현 상황을 유지하기도 힘들 것이다. 발전은 당연하게 무리고 말이다. 그녀의 할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전대 천신문의 문주가 천신문을 잘 다독였지만 더 발전시키지 못 한 이유가 그것이다.
그는 너무나도 혈족을 따지고 나라를 따졌다. 그렇기에 더욱 발전하지 못 했다. 그나마 전투민족이라는 대한민국의 사람이기에 다행이지 다른 나라였으면 지금의 천신문도 유지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보다 저 여자는 왜 여기 있는 거지?”
희선을 바라보며 말하는 여인을 보며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은 질문이야. 안 그래도 언제 물어보나 기다리고 있었지. 인사하라고. 전대 문주님의 손녀딸이며 S급 헌터인 김희선양이다.”
사내의 소개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놀라며 희선을 바라보았다.
“무슨 개수작인가! 지부장!!!”
하지만 그 사실을 받아드린 사람은 없었다.
“여기서 부터는 내가 할게. 수고했어.”
“약속한 그대로만 해주라고. 그거면 전부니까.”
“약속은 지켜. 그러면 먼저 이야기 할 분위기부터 만들어야 겠지?”
그리고 희선의 몸에서 화경의 무인이나 내뿜을 수 있는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자 회의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놀라며 그 기운에 힘겹게 대응했다.
화경이라는 경지는 쉽게 올라갈 수 없는 경지다. 괜히 초절정의 고수만 되어도 일가를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인간을 초월한 이들. 그들이 바로 화경의 경지에 이른 무인들이다.
“내가 누구인지 이해해달라고 하지 않아. 너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저 선택하라는 선택권을 주는 거지. 나를 따를 건가 아니면 지금 너희가 생각하는 데로 스스로 움직일 건가. 이 두 가지 중 하나만 선택하면 된다.”
“건방진!!! 화경에 좀 올랐다고 기고만장 하는 구나! 우리 천신문이 그렇게 만만해 보였느냐!!!”
당당하게 외치는 사내를 바라보는 희선. 말은 저렇게 하지만 초절정에 오른 무인이다. 초절정과 화경. 단 하나의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실제로 지금 희선의 기운에 저항하는 8명 모두가 초절정의 무인이지만 이 8명 모두가 덤벼도 화경의 무인을 이길 수 없다. 특별한 합격술을 익히지 않는 한 절대로 이길 수 없다.
“배짱은 인정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세상을 살기는 힘들지. 특히 지금과 같이 예민한 경우에는. 그럼 너는 스스로 하는 걸로 판단하고 나중에 처리하는 걸로 해주지. 만족하나?”
“건방진!”
그리고 사내가 먼저 손을 썼다. 소매에 있던 7개의 장침을 빠르게 희선을 향해서 쏘아 보내자 그것을 바라보던 희선은 담담하게 움직였다. 단지 평범하게 움직인 것은 아니다.
장침이 허공에서 멈추었고 움직이던 시계가 멈추었다. 시간을 멈추고 움직이는 것이다. 평범하게 걸어가고 있지만 지금 이 공간의 시간은 멈추어져 있다.
즉 지금 아무리 그녀가 느리게 움직여도 다시 시간이 흐를 때 저들이 느끼는 것은 자신들이 느끼지도 못 하는 사이에 움직였다고 느낀다. 이것이 바로 헌터들의 최정점에 있는 S급 헌터들 사이에서도 그녀가 절대자로 군림할 수 있는 이유다.
“그리고 시간은 다시 움직이지.”
침을 던졌던 사내의 뒤에 도착해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창을 다 조립까지 끝낸 희선이 사내의 목에 창날을 대고 다시 시간을 움직이자 7개의 장침이 다시 움직이고 벽에 걸린 시계가 다시 움직인다.
퍼퍼퍽!
애꿎은 벽에만 박힌 7개의 장침. 이에 다른 사람들은 희선이 어디 있는지 찾았는데 장침을 던진 사내는 자신의 목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에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자신의 목에 있는 창날을 볼 수 있었다.
“악감정은 없어. 단지 요즘 들어서 내가 열심히 고민하면서 세우던 계획이 많이 무너져 내렸거든. 비록 내가 사랑하는 남동생이 한 것들이기는 하지만 짜증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 솔직히 나는 이런 것을 기대했어.”
그리고 팔에 힘을 주고 창을 휘두르자 사내의 목이 허공에 떠오르더니 피분수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다.
“조금은 스트레스 풀 곳이 필요했거든.”
힘없이 쓰러지는 사내의 몸을 내려보는 다른 7명의 사람들이 모두 침을 삼키며 희선을 바라보았다.
“너희의 지지따위 필요 없지만 그래도 명목상 물어보는 거였어요. 그리고 너희는 거절했지.”
“아.. 아니야! 나는 아직!”
자신을 지목했던 여인이 입을 열자 희선은 또 다시 시간을 멈추었다. 이번에는 7명의 사람들의 심장을 천천히 창을 찔러 넣어서 심장을 관통하는 치명상을 준다. 그리고 다시 시간을 움직인다.
“커헉!”
“어.. 어느새...”
자신의 가슴에 뚫린 구멍을 바라보며 놀라는 7명의 사람들을 보며 희선을 대려 온 사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럴 거면 다 모이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지 말던가. 어차피 다 죽일거면서.”
“애초에 이들은 나를 인정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거니까 그런 거야. 그러면 이제 밖에 있는 이들을 처리해야 할 것 같은데 도와줄 거야?”
“도와야지. 우리 귀여운 애기들이 죽으면 곤란하니까.”
“그 얼굴에 그렇게 말하면 엄청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어?”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냥 나는 슈퍼 동안일 뿐이야. 내일 모레 50이라고. 난. 그러니 조금은 존대 좀 해주라.”
“거절하지.”
그리고 천의각의 문을 열자 희선의 강렬한 기운을 느낀 무인들이 이미 천의각 앞에 상당히 많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억울하면 나보다 더 강해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