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49/55)

      "밖의 장막이 거두어 졌습니다."

      "............뭐?"

      자리에 앉아 표정을 굳힌채인 노웬은 사내의 보고에 안색을 달리하며 자리에서 일

      어났다. 마찬가지로 딱딱하게 굳은채의 비센은 창가로 달려가 말대로 점점 흐려지

      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붉은 장막에 입을 벌렸다. 

      저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칸님이 당하신 걸까요?"

      "젤, 말이 화근이 되는 법입니다. 칸님께 당하실리가 없잖습니까-"

      마도사와 같은 말을 하려던 비센은 서슬퍼런 노웬의 대답에 입을 다물었다. 

      그 누구보다 칸의 안부를 걱정하던 그의 얼굴은 불과 몇분만에 눈에 띄게 초췌해 

      졌다. 불안하게 밖의 상황을 살펴보던 노웬은 움직이기 시작하는 기사들의 모습에 

      눈살을 찌뿌린다. 

      지금까지 기다려 주는가 싶더니 공격을 하려는 건가.

      "좀더 기다려 주면 좋을 텐데...."

      "그들에게 저희들은 구석에 몰린 생쥐같은 거겠죠. 

      더 이상 자비를 베풀기 싫어졌다는 걸까요."

      빈정거리는 젤의 말에 비센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주위에 있던 얌전하고 말을 가리는 동의 여성들과 달리 이 여 마도사는 

      너무도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또 과격하다. 

      그런 비센의 눈초리를 알고 있는 건지 모르고 있는 건지, 노웬에게 시선을 준 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젤에게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인 노웬은 다시금 밖의 상황에 시선을 주었다. 

      중앙 특유의 침입방법에 쓰는 3열 대형에 그는 뒤에 있는 사내들에게 손짓을 했다. 

      저들의 훈련이나 방법에 대해선 얼만큼 알고 있다. 

      중간에 그만두긴 했지만, 자신도 과거인 기사 부단장에 오르기도 했던 몸인 것이

      다. 저 중앙의 진법에 대새 알고 그것을 이용해 반격을 가하는 방법이 얼마나 먹힐

      지는 알수 없지만 안하는 것보단 낫다. 

      "저도 그럼 자리에 가 보겠습니다."

      "그대의 역활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디 힘을 써주십시오-"

      노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젤은 몸을 돌려 사내들과 함께 방에서 나갔다. 

      노웬과 함께 남게된 비센은 불안한 표정으로 점점 접근해 오는 기사들에게 시선을 

      준다. 중앙의 기사들은 최강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 그들을 상대로 설마 진심이 되어 싸우려는 건가. 

      긴장된 채 노웬과 더불어 가만히 서있던 비센은 그러나 수분이 지나도 움직이지 않

      는 중앙국 기사들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영문을 알수없어 고개를 갸웃하지만, 노웬은 탐색이라도 하는 듯이 눈을 가

      늘게 뜨고있다.

      "저들은.. .아직 공격할 의사가 없는게 아닐까요?"

      "그게 저들의 수입니다."

      " ? " 

      "곧 침입할 것 같다가 한동안 뜸을 들여 상대방의 긴장이 최고조로 다다랐을때나 

      긴장감이 풀어질때 쯤 공격을 해오는 것이죠."

      그러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저 서늘한 은빛 눈동자를 받

      게 될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한동안 밑의 기사들의 대형을 바라보던 노웬이 묘한 표정을 짓는다. 

      그들이 서있는 뒤로 펼쳐진 숲에서 요란한 소음이 들려오는 것이다. 

      저들의 중원군인가하고 생각해 보아았지만, 술렁거리는 저들의 모습을 보니 지원

      군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는 것은....? 

      미심쩍인 표저을 짓던 노웬은 풀숲을 걷고 나타나는 자의 모습에 숨을 들이켰다.

      "저리 비켜-! !"

      노웬들이 있는 건물을 가로막고 서있는 기사들의 모습에 칸은 성을 냈다. 

      안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이것들은 왜 이곳에 와있는 거냐-라며 이를 간 칸은 눈을 

      부릎뜬채 자신을 바라보는 기사를 밀쳐내며 걸음을 옮겼다. 

      그런 칸의 뒤를 따르던 유헌은 족히 백은 될것같은 기사들의 모습에 걸음을 멈추다 

      등을 미는 라헨의 행동에 칸의 뒤를 따랐다. 

      "저런... 어이없는.."

      칸의 뒤를 따라 줄줄이 나오는 유헌, 라헨, 라프헨, 그리고 카일과 그 품에 안겨있

      는 에스. 뒤를 따르는 샤한의 모습에 노웬은 절로 한숨이 나온다.  

      도대체 적진의 가운데로 들어오려는 생각을 하다니, 제 정신이란 말인가. 

      게다가 칸은 얼굴도 가리지 않은 체이다. 

      역시 샤한이 아닌 다른자에게 그를 데려오라고 해야 했었던 건가- 

      하나 가만히 보고만 있을수는 없는 법, 창위로 몸을 내밀어 마찬가지로 입을 벌리

      고 있는 사내들에게 공격의 태세를 갖추게 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밑의 술렁거림이 한층 더 커진다. 

      이번엔 무슨 일일까해서 고개를 돌린 노웬은 칸과 대치중인 기사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이...이곳은 들어갈수..가..없..없으십니다-!"

      "하아? 무슨 소리르 하는거냐. 말이나 더듬는 놈이-"

      얼굴을 찡그리며 빈정거리는 말에 울컥하던 기사는 그러나 칸의 얼굴에 침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자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 눈앞의 존재에 완전히 굳어 움직일 생각을 하지도 

      못하고 있는데, 이렇듯 자신이 나섰으니 조금 자랑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기사의 몸은 잔뜩 움츠려 들었고, 말을 더듬는다.

      "이곳은.. 황제의 명령으로 봉쇄-"

      "시끄럽다! 내가 들어가겠다는데 네놈들의 말을 들으라는 건가! !" 

      "...........큭...."

      칸의 노성에 기사가 뒷걸음 질을 친다. 

      그런 자들을 황금빛 눈동자로 바라보던 칸은 품에 안긴 이자크의 상태가 염려되어 

      다시금 발을 앞으로 내딫었다. 

      그리고 그 순간 좀더 나이가 있는 듯한 기사가 그들의 앞을 막는다. 

      이번에는 뭔가하고 엄청나게 불쾌한 표정인 칸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는 조심스럽

      게 입을 연다.

      "얼마 전부터 기사들 내에..........그분이 살아계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를 밀쳐내고 지나가려던 칸은 그 말에 움직임을 멈추고 기사를 바라 보았다. 

      중앙국 황족들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금빛 눈동자와 검청의 머리카락, 현 황제와 

      꼭닮은 단정하고 아름다운 외모에 기사는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낀다. 

      설마하는 마음에 왠지 모를 확신이 생긴다.

      "그분이.. 그분이 살아계시다면.. 그것은 당신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정말로.. 그분 입니까?"

      "이름을 말해줘야 알지, 자꾸 그분-그분하면 내가 알 것 같나?" 

      "...하..하지만..! !"

      "아군이 아닌 자를 데리고 이렇듯 한가하게 잡담을 하다니- 

      중앙의 기사들의 물도 많이 나빠졌군."

      중얼거린 칸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수백쌍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

      다.

      "맞아."

      "....조...좀더 자세하게..."

      "내가 칸크빌레다."

      "노웬-!! 융텐이나, 유크렌은 어디에 있는 거냐?!"

      "칸님, 그보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나보단 유헌의 상태를 살펴줘.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부상을 입었으니 그쪽에 신

      경을 쓰라고-"

      매달리는 젤을 피한 칸은 품안에 있는 이자크를 감싼 망토가 벗겨지지 않게 주위하

      며 계단을 올랐다. 그런 자신의 팔을 잡고 따르는 유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는 것을 보곤 더 불안한 느낌이 든다. 

      서둘러 걸음을 옮기던 칸은 계단위에 서있는 노웬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며 

      그를 지나친다. 노웬의 뒤에 비센이 있기는 했지만, 그는 신경외의 인물이다. 

      자신을 지나쳐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칸과 다급한 표정의 유헌, 무엇보다 칸의 품

      에 안긴 존재에 신경이 쓰인 노웬은 빠르게 걸어가는 두사람의 뒤를 따른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무엇보다 저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려주신 것은..!!"

      "급했기 때문에 어쩔수가 없었어. 

      됐으니깐, 유크렌이 있는 곳이나 알려 달란 말이다!"  

      "칸."

      말을 거칠게 하는 칸의 팔을 잡은 유헌은 미간을 찌뿌렸다. 

      그런 유헌의 모습에 칸은 입술을 깨물며 다른 곳에 시선을 준다. 

      어느새 걸음을 멈춘체인 세사람은 한동안 조용히 서로의 눈치를 보며 서있었다. 

      그런 서먹한 분위기에 한숨을 쉰 유헌이 노웬에게 얼굴을 가까이 해 입을 연다.

      "이자크입니다."

      ".............네?"

      "칸이 안고있는 자가 이자키엘 황제란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상태가 심상치 않으니 유크렌을 만나려 하는 겁니다."

      ".............."

      "그 자는 어디에 있죠?"

      ".....위층 맨끝방으로 옮겨 가셨습니다."

      유헌의 말에 아연한 표정을 지은 노웬은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들려 줄수밖에 없었

      다. 정말로 그 중앙국의 현황제인 이자크가 칸의 품에 안겨있다는 것인가. 

      딱딱하게 굳은 채인 노웬은 서둘러 계단을 올라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 보았

      다. 그위 뒤를 따라온 라헨은 그볍게 그 어깨를 두들인다.

      "라헨.."

      "묻고 싶은게 많겠지만, 이쪽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지. 좀 참아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노웬은 얼굴을 찌뿌렸다. 

      "재미있는 일이군."

      융텐은 창가에 기댄채 밑에 있는 기사들을 내려다 보았다. 

      칸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마자 검을 떨어뜨리는 자들도, 그 자리에 주저앉은 자들

      도 몇몇 있었다. 그들이 전부 건물안으로 들어가자 멍한 표정을 짓던 기사들이 하

      나둘씩 저택에서 물러나 멍하니 이곳을 올려다 보고 있는 것이다. 

      저 칸크빌레라는 녀석, 생각보다 더 터무니없는 놈일지도 모른다. 

      기억의 망각이 쉽게 이뤄지는 인간들을 저토록이나 얽메이게 하다니- 입가를 비죽

      히 올려보인 그는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두 녀석을 향해 손을 들어 보았다. 

      생각보다 더 빨리왔다.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다.

      "유헌, 시키는 대로 잘한 모양이군."

      "융텐, 유크렌은 어디에 있나요?"

      "슬슬 아이를 위해서 거처로 돌아갔다.

      더이상 이곳에 있는것은 그의 몸에도 안전에도 위험하니 말야."

      "......그런!"

      녹룡의 특기는 치료다. 

      그렇기에 이렇게 급하게 달려온건데 그가 없다니. 입술을 깨문채인 칸을 올려다 보

      던 유헌은 여전히 창가에 앉아있는 융텐에게 다가갔다. 

      "할말이 있습니다."

      "무얼?"

      "그전에 칸에게 안겨있는 이자크의 상태를 봐주세요."

      "......어렵지 않지."

      유헌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던 융텐은 가볍게 대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융텐의 움직임에 이자크를 침대에 눕힌 칸은 덮여진 망토를 벗겨냈다. 

      자신과 닮았지만, 죽은자처럼 파랗게 질려있는 그 얼굴에 가슴에 작은 통증이 내달

      린다. 칸을 물리고 침대에 자리를 잡은 융텐은 손을 올려 이자크의 이마에 대본다. 

      한동안 그러고 있던 역시나하는 표정으로 유헌을 올려다 보았다. 

      흑룡의 그런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리가 없다. 

      단지, 맹약을 맺었던 당시 머리속을 스치고, 직접 보았던 그 영상에 비추어 이자크

      의 이런 상태가 루드빌과 연관된게 아닌가해서 그에게 데리고 온 것이다. 

      실제적으로 유크렌의 만나 무턱대고 치료를 부탁하고 싶었지만, 그가 없으니 융텐

      이라도 좋다.

      "알기론... 이자크가 루드빌에게 피를 달라고 했습니다."

      ".....뭐? 무슨 말을 하는거야. 유헌."

      어깨를 잡는 칸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친 유헌은 융텐의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 몰라요. 

      하지만, 이자크의 이런 상태는 그 적룡의 피와 관련된 것이 아닙니까?"

      "정확히 말하면, 그것보단 네가 루드빌과 기사의 맹약을 맺었기 때문에 그런거다." 

      "........네?"

      루드빌의 피때문에, 그녀가 이상해 졌기 때문에 이자크가 이런 상태가 된것이 아닐

      까하고 생각하던 유헌은 융텐의 말에 눈을 동그렇게 떴다. 

      그것은 칸도 마찬가지여서 묘한 표정으로 이자크과 유헌은 돌아본다. 

      그런 인간들의 반응에 입가에 미소를 지은 융텐은 말을 이었다.

      "확실히 루드빌의 피를 받아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지만- 네가 그 자존심 강한 

      용에게 일방적인 맹약을 맺었고, 그 덕분에 그녀가 몸에 이상이 생긴거다. 

      덕분에 이 녀석이 정신을 못차리는 거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이해하려면 용의 피에 대한 말을 들어야 할거다. 그것은-" 

      탕! ! !

      "칸님! ! !"

      " ? ! "

      한창 융텐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던 칸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내를 살벌하게 노려 

      보았다. 

      한창 중요한 대화중인데 어느 무례한 자가 이렇듯 문을 함부로 여는 것인가. 

      방안에 감도는 긴장감과 칸의 시선에 몸을 굳힌 사내는 그러나 밑에 일어난 소동을 

      상기하고 입을 열었다. 

      "칸님, 지금 노웬님께서 부르십니다."

      "이쪽도 급한 일이다. 나중에 내려갈 테니 문을 닫고 먼저 가있어."

      "하..하지만 오브님께서 요크발이라는 자를 데리고 왔단 말입니다. 

      칸님의 어릴적의 모습을 닮은 어느 소년과 함께-"

      ".......뭐?"

      누가 누구를 데려와?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진 칸의 얼굴에 더 당황한 사내는 문을 열며 어서 나오라는 

      듯이 재촉한다. 그런 그에게 뭔가를 물어봐도 제대로 된 답을 들려주지 않을 것 같

      아 직접 가봐야 할것같지만, 이자크가 너무나 마음에 걸린다. 

      그런 칸의 등을 손으로 민 유헌은 조용히 입을 연다.

      "이곳은 융텐님과 저에게 맡기고 내려가 있으세요."

      "..........그런.."

      "어서요."

      유헌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던 칸은 누워있는 이자크에게 시선을 주었다. 

      한동안 갈등하던 그는 어쩔수 없다는 듯이 이를 갈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도대체 뭣때문에 그 오브라는 자가 요크발을 데리고 왔는지는 모르지만, 쓸데없는 

      짓을 벌인거라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잘도 나타나는 구나 싶어 절로 걸음이 거칠어진 칸이 방에서 

      나가고 문이 닫히자 유헌은 다시 융텐을 바라 보았다. 

      묘한 표정을 지으며 이자크를 내려다 보던 융텐은 유헌의 시선에 그리로 얼굴을 돌

      리고 그린듯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고 보니 융텐 성인의 모습으로 돌아왔군요."

      "어린아이의 모습으론 유크렌을 안을수가 없잖아."

      "그렇군요. 그럼 이자크는 왜 이런건지 알려 주십시오."

      ".....아-아."

      은근히 말을 돌리는게 수준급이다. 

      가만히 유헌을 바라보던 융텐은 그의 속에 이어져 있는 루드빌의 끈을 발견하곤 묘

      한 표정을 지었다. 

      적룡의 기가 엄청나게 흩틀어지고 그녀의 분노의 노성이 들려왔을때도 막연하게 

      유헌이 해냈구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정말로 이렇게 눈앞에 보게되니 복잡한 기분

      이 든다. 

      용의 기사에 맹약은 말 그래도 용이 선택한 인간에 한해 직접 이루어지는 것인데, 

      눈앞의 인간은 스스로가 그것을 외우고 거절하는 용과 맹약을 끝냈다. 

      게다가 주문에 서약되어 있는 '용과 기사의 우열은 없다-'에서 알려주듯이 이렇게 

      되면 이 인간이 용의 주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니, 그럴것이라 생각된다. 

      용의 입장에서 인간에게 기사의 맹약을 맺을 일이 없기에 그냥 외웠을 주문일텐데 

      이런 엄청난 예외가 생기다니- 일단 자신의 생각대로 되는 것 같아 다행이지만, 그 

      적룡이 이 일이 다른 동족에게 알리면 유헌은 죽는다. 

      죽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에게 위협을 느낀 용들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수가 없는 

      것이다. 

      그전에 자신이 먼저 그 적룡을 만나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머리를 긁적이던 융텐은 어서 말하라고 재촉하는 유헌의 눈동자에 생각을 접고 자

      세를 바로했다.

      "용의 피가 인간에게 무슨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나?"

      "알리가 없습니다."

      "아, 그래."

      너무나 확연하게 말하는 모습에 멎쩍음을 느낀다.

      "용의 피는 그냥 인간에게 독이다. 

      하지만, 그의 종속자- 예를들어 맹약을 맺은 기사같은 자들에게 불로장생 약이지."

      "......오히려 득이 된다는 겁니까?"

      "그래. 용의 영향을 몸으로 받거나 그 힘을 일정 품고있는 인간에게 용의 피는 그것

      을 활성화 시켜주는 열쇠같은 거다. 농부의 몸으로 용의 기사가 된자가 그의 피를 

      얻어 엄청난 검사나 마도사가 되었다는 일은 몇개나 있지. 이자크라는 이 인간은 

      아마도 루드빌의 피를 받아 그에 합당한 능력을 받은 거겠지." 

      "...과연."

      어찌된 일인지 저쪽에서 이곳으로 넘어오는 동안 눈에 띄게 능력이 높아졌다. 

      그런 자신을 가볍게 다루던 이자크 또한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던 건가. 

      그렇다면 탑에서 루드빌에게 피를 요구한 것은 강해지고 싶어서, 그곳을 빠져나와 

      칸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강한 애증은 증오와 맞물려 있어, 보답받지 못

      한 그 마음이 어디로 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언제나 방치되어 있던 그가 탑속에서 혼자 지내는 동안 서서히 미쳐가 그런 마음을 

      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자크에게 느껴지는 연민에 유헌은 미간을 찌뿌렸다. 

      "그렇게 되다보니 피를 준 적룡이 그 난리를 치니 알게 모르게 이어진 이 녀석이 몸

      이 이상해 진것은 당연한 거겠지. 

      그리고 조금 이상한 점이 있는데..."

      "네? 또 뭔가 있는 건가요?"

      "아아- 인간들의 눈에 보이진 않지만, 우리들에게 보이거든. 

      예를 들면 운명의 빨간실이라는 걸까?"

      "....하-아?"

      이런 상황에서 또 무슨 장난을 치는건가하고 유헌의 얼굴이 이그러 진다. 

      그런 유헌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서 손을 들어 이자크의 몸을 흩어본 융텐은 고개를 

      옆으로 숙였다.

      "이 녀석 루드빌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당연히 그녀와 이어져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군."

      "뭐가 말입니까?"

      "칸과 이어져 있다. 게다가 이건 용과 숙주의 관계와도 같은 것이군."

      '최악이라고, 이런건... 무지 기분 나쁠수도 있는 것인데.'라며 중얼거리는 융텐의 

      말에 유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용과 이어진 녀석이 그의 통증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녀석 칸의 감각을 느

      끼고 있어."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가는 유헌의 모습에 융텐은 다리를 꼬며 턱에 손을 집었

      다. 

      이 이자크라는 녀석은 그 루드빌이 죽지않은 한 무사하겠지만, 만약에 죽으면 같이 

      죽게된다. 융텐은 그 루드빌을 살려둘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조금 고민을 하다 손

      바닥에 주먹을 내리친다.

      "아, 그거 알까나. 그렇게 되면 이 녀석은 너희들이 자는 것도 느낀다는 것을-"

      입을 연 융텐은 그러나 아무도 들어주는 이가 없자 입술을 내밀며 투덜거리며 다시 

      턱에 손을 올렸다.

      금새 변한 그가 진지한 표정을 짓는 것을 옆에서 유크렌이 보고 있었다면 혼자 잘 

      논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상태가 외부적인 것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것에 대한 대처

      법을 알고 있을리가 없다. 

      뭔가 부탁드립니다-라는 듯이 바라보는 론과 피곤한 듯이 눈을 감고 있는 돔. 

      아주 정신을 못차리는 요크발을 바라보고 있던 오브는 등뒤에 느껴지는 서늘함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헝그러 뜨린 적발의 미녀

      가 서늘한 시선으로 방안에 서있는 것을 발견하곤 기겁을 했다. 

      문이 열리지도 사람의 기척을 느끼지도 못했는데, 저 여자가 안에 들어왔다는 것은 

      생긴게 아깝게도 그녀는 귀신이라는 거다.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며 숨을 들이키는 오브의 행동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론은 

      방에 서있는 루드빌의 모습에 안색을 굳혔다. 

      멀리서 몇번 본적이 있다. 저 중앙이 수호용은- 

      게다가 아무리 둔감한 자신이라도 저렇듯 경멸의 시선을 던지는데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는 것이다. 

      "..무슨 일이지.."

      "돔님."

      뭔가 술렁거리는 분위기에 눈을 가늘게 뜨고 얼굴을 든 돔은 딱딱하게 굳은 론과 

      오브의 모습에 한쪽 눈썹을 올렸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서서 이쪽을 바라보는 루

      드빌의 모습에 기대던 몸을 일으키고 눈을 부릎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머리는 엉망에다 차림도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흩틀어져 있다. 

      반쯤 풀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가슴을 치닿고 

      올라오는 통증에 돔은 숨을 죽이며 몸을 반으로 굽힌다. 

      "돔님! !"

      반사적으로 론이 달려 나가려는 순간 돔의 앞에 다시 나타난 루드빌이 그의 얼굴을 

      들어 올린다. 

      찡그러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 

      붉은 입술을 비틀어 올린 루드빌은 망설임없이 그를 기절 시킨후 몸을 들어 어깨에 

      올렸다.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돔님을 놔주세요!!"

      "...........이 미천한 것이..."

      매달리는 론의 모습에 이를 간 루드빌의 모습에 오브는 침대를 넘어가 론의 팔을 

      잡아 자신쪽으로 끌어 당겼다.

      콰-앙! !

      "...큭?!"

      귓가를 울리는 굉음과 몸을 덮는 화끈한 열기에 품안의 론을 더 강하게 안은 오브

      는 실눈을 떠 루드빌이 있던 자리를 확인해 보았지만, 어디로 사라진건지 그 모습

      이 보이질 않는다. 

      침대를 중심으로 오른편은 완전히 초토화가 된 그 모습에 치를 떨던 오브는 문을 

      두들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푹발과 함께 가구가 날라가 문을 막은 덕분에 밖

      의 기사들이 안의 소동에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잠시 머리를 굴려보인 오브는 품안의 론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대답없이 귀를 양손으로 막은 론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 몸을 밀어낸 오브는 

      침대에 누워있는 요크발을 들어 엎고 론의 손을 잡아 끌었다. 

      벽이 구멍이 뚫려 이곳으로 나갈수 있겠지만, 눈치챈 기사들이 언제 이곳으로 올지 

      모르니 서둘러야 한다.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

      "이곳보다 훨씬 좋은 곳으로 간다. 이곳에 있었봤자 너나 나난 죽는다고!"

      "그...그런!!"

      "방은 이런 상태에 그마나 우리를 지켜주던 돔이 사라졌는데, 살수 있을 것 냐?!!"

      오브의 윽박에 론의 입이 다물어 진다.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그 얼굴에 위로의 말을 건내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론의 팔을 잡은 오브는 일행들이 있는 저택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해서- 이곳에 온거다."

      "오브, 그렇다는 것은 돔을 그 적룡이 데리고 갔다는 거냐?"

      "그래. 용인지 뭔지-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분위기 살벌하더군만. 

      미친 여자 같았어."     

      오싹하다는 듯이 몸을 떠는 오브의 모습에 테이블 주위로 앉아있던 사람들의 얼굴

      이 딱딱하게 굳는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그 루드빌이 칸들과 결전을 벌였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하지만, 어떻게 그 용에게서 이들이 벗어났는지- 그것은 의문이다. 

      입을 열어주지 않으니 알수가 없어 답답한 노웬은 미간을 찌부렸다.

      "실은 말이지- 먼저 노웬에게 말하려 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모두 들어

      줘. 칸, 괜찮겠지?"

      ".............."

      유헌의 일에 대해 말해도 좋겠냐는 라헨의 말에 칸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헌이 잘못한것도 없는데 굳이 비밀로 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그에게 안좋은 소

      리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절대 용서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상석에 앉아 팔장을 낀채인 칸은 주변에 앉아있는 에스, 카일, 노웬, 샤한, 라헨, 오

      브와 그가 데리고 온 소년, 그리고 비센을 바라 보았다. 

      자- 듣고 헛소릴 지껄이기만 해봐라. 그게 누구든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유헌이 루드빌과 기사의 맹약을 맺었어."

      "아아- 그렇습니까.......

      .................................................에?"

      "그러니깐, 유헌쪽에서 용과 기사의 맹약을 맺었다는 거다. 용의 입장에 아닌 인간

      이 일방적으로,  그녀에게. 덕분에 죽이려도 덤벼들던 그녀가 사라졌지만 말야."

      "......말도 안되는-"

      얼굴을 찡그리는 노웬의 모습에 에스는 입을 열었다.

      "처음 유크렌을 받아 들일때, 노웬님께서 유헌을 용의 기사로 만들자는- 

      그 비슷한 말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말도 안되는 일은 아닐 텐데요."

      "그런, 설마 정말 믿었던 건가. 그때는 젤과 장난으로 한말이었습니다."

      "...........장난이라는 말입니까?"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런, 용의 기사라니- 그 존재는 수백년 전에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유크렌이라는 용이 무리에 나타났을 때 장난삼아 그냥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강한 상태에서 한것이었다. 

      실제로 용의 구속구과 그들이 반응하는 심장을 오브에게 얻었기에, 용들 중 조금 

      어리숙한 게 하나 걸릴지도 모른 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유크렌에 나타나긴 했

      지만- 정말로 유헌이 용의 기사가 된다는 생각은 조금도 한적이 없다. 

      무엇보다 용의 기사란 존재는 수백년전에 사라진 전설의 존재인데다, 지금의 용들

      이 기사를 만들리가 없다. 

      그들은 그 기사들로 인해 커다란 상처를 입고 자신들의 둥지로 들어가 인간계에 나

      오는 일들이 극히 줄어으니- 

      복잡한 표정을 짓는 노웬의 얼굴과 그런 그의 반응에 당황한 에스, 그리고 술렁거

      리던 주변을 둘러보던 칸은 나직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유헌은 그것을 해냈다. 덕분에 우리가 산거야."

      서늘한 음성에 단숨에 소음을 진정 시킨다.

      "그것 뿐이니- 지금부터 그에 대한 말은 삼가도록-"

      ".........칸님."

      칸의 태도에 입을 열려던 노웬은 문밖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그리로 시선을 

      돌렸다. 

      탕!!

      "칸..! !"

      문을 열고 들어온 유헌은 순간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에 당황해 뒷걸음 질을 쳤다. 

      이곳에 오는 동안 계단을 구르다 시피하고 조금 요란하게 군데다 문을 함부로 열었

      기에 저렇게 바라보는 건가. 그런것 치곤 상당히 묘한 시선이라고 느끼며 칸에게 

      걸어가던 유헌은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뭔가가 묻었기에 저렇게 바라보는 건가 싶었던 것이다. 

      멋쓱한 느낌에 서둘러 칸에게 다가간 유헌은 그가 비켜주는 자리에 앉았다. 

      원래 일인용이지만, 좁게하면 두사람은 앉을수 있는 곳이다. 

      "무슨 일이야? 그에게 뭔가 일이 생긴건가?"

      좁은 자리에 앉아 몸을 비틀던 유헌은 칸의 말에 얼굴을 들고 고개를 저었다. 

      원래는 그만을 불러서 나갈 생각있었는데, 주변의 시선이 묘해서 그대로 앉아 버렸

      다. 이자크에 관한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할 내용이 아니기에 고개를 저은 유헌은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칸은 자신의 부르는 소리에 움직음을 멈춘다.

      "밖의 기사들은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그다지 생각해 보지 않았어."

      "그들은 칸크빌레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뭐, 믿지 않고 나중에라도 쳐들어올 

      가능성은 있지만 밖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자니 금방은 움직이지 않을 것 같군요. 

      게다가 의외의 상황에서 명령을 내릴 중앙의 요직인물 3명이나 이쪽에 있는 이상, 

      혼란상태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 말을 삼가라- 노웬."

      이자크에 대해 저렇게 숨기려는 의도를 알수가 없다. 

      어찌 되었던 중앙의 황제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이쪽에 상당히 유리한 점이다. 

      인질로 사용하던 교환을 하던 어느쪽이든지 굉장히 유리한 조건을 이쪽에 제시해

      줄수 있는 최상의 패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 지금 이 모습의 칸은 불같이 화내겠지. 

      그옆에 있는 유헌도 이자크의 존재를 알고 그를 감싸는 칸의 행동이 탐탁치 않으려

      만 묘하게 얌전하다. 그의 그런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입을 열지 않으니 자

      신이 함부로 끼어 들수가 없다.

      "요크발은 루드빌의 영향으로 저렇게 된것같군요. 

      그에게 치료를 해줄만한 자는 없으니, 일단 넘어가고- 이 분은 누구죠? 오브"

      "아- 이쪽은 나와 유헌을 도와 주었던 소년이야. 유헌, 론이야. 알고있지?"

      "......아아-"

      칸에게만 시선을 줘서 미쳐 방안의 사람들에 대해 확인하지 못했던 유헌은 오브의 

      곁에 앉아있는 소년을 발견하곤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발챠에서 여러모로 신세를 졌던 사람이다. 

      게다가 칸과 닮은 그 얼굴은 묘한 호감을 불러 일으킨다. 

      자신들을 빠져 나가게 해서 주인인 요크발에게 심한 짓을 당하지는 않았나하고 걱

      정하고 있었는데 무사한 모습을 보니 안심이다. 고개를 숙이는 론에게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인 유헌의 모습에 노웬은 한숨을 쉬었다. 

      일단 저들이 아는 사이인 것 같아 경계를 늦출수도 있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저 녀석이 나랑 닮았다는 놈인가- ....전혀 안 닮았잖아."

      "하지만 유헌은 처음 만났을때 칸-!이러면서 론에게 안겼다고."

      "....뭐?"

      턱을 받치고 있던 칸은 손을 미끌어 뜨리며 옆에 앉은 유헌을 바라 보았다. 

      그런 칸에게 손을 저으며 너무 힘들어서 잠시 착시현상이 일어난 거라고 변명한다. 

      하지만, 눈을 크게 뜨던 칸은 가늘게 흘기며 입을 열었다.

      "설마하니.. 내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랬던 건 아닐까?"

      "....그럴지도..모르지만, 칸. 그런 말은 이런 장소에서 할게 못되요."

      게다가 이런 심각한 상황에- 유헌의 붉어진 얼굴에 자신들만이 있는 곳이 아니라

      는 것을 깨닭은 칸은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돌린다. 

      그런 두사람을 바라보던 론은 시선을 돌려 칸을 바라 보았다. 

      저 유헌이라는 소년의 이름은 가흔이 아니였던가-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주

      위 모든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부르니 자신이 뭐라 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금부터 그를 생각할때는 유헌이라는 이름으로 지칭해야 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론은 오브의 옷자락을 잡아 당겼다.

      "저 분이 칸이라는 사람인가요.

      .....저랑 그다지 닮으시지 않은 것 같은데요. 오히려-"

      돔님이나 황제폐하를 더 닮았다. 

      아니, 저건 닮았다는 정도가 아닌, 똑같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거다. 

      놀람에 손을 입가에 대는 론의 모습에 오브는 손을 저었다. 

      "지금은 저렇지만, 한때는 정말 너랑 닮았던 적도 있었어."

      "........에? 아예."

      칸이 어릴적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론은 그냥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던 론은 머리속을 스쳐 지나가는 요크발과 돔의 생각에 안색

      을 굳힌다. 전까지는 두사람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과 함께 있

      으니 왠지 산만해 졌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적으로 말할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입을 다문 론은 눈을 굴렸

      다. 어서 요크발님의 상태랑 돔님의 찾아주세요-라고 말하는 듯이 론의 눈을 바라

      보며 오브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따지고 보면 요크발은 저들이 상대하고 있는 자들 중 최악의 남자다. 

      데리고 온 즉시 밖으로 내던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할까. 

      굳이 말을 꺼내지 않으니 이대로 두자라고 생각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지만, 유헌

      이 먼저 입을 열어 그의 내용을 꺼낸다. 

      "요크발은 다른 곳에 둔건가요?"

      "..에에, 뭐 그렇지."

      ".......돔은?"

      무의식 중에 물은 거다. 

      돔과 대화를 하는 중에 요크발이 보호자라는 것을 알게 된데다, 중간에 나타난 이

      자크가 그에게 돌아가라 했으니, 당연히 요크발을 떠올린 거다. 

      그래서 보이지 않은 그에 대해 물은건데 묘하게 주변이 싸하다. 

      유헌이 돔의 이름을 꺼내 그때의 상황을 떠올린 론은 울먹이며 '납치 되셨어요.'라

      고 말한다. 

      "납치? 누구에게?"

      "그 적룡이라는 분에게- 루드빌이라는 분이요."

      ".............뭐?"

      론의 말에 유헌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는다. 

      그것을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울먹이는 론에게 차마 뭐라고 하지는 못하고 있

      지만, 책하는 눈빛을 보낸다. 그런 말을 꺼내다니-라는 의미의 시선을 받는 론은 

      몸을 움츠렸지만, 가만히 있을수는 없는 노릇인거다. 

      자리에서 반쯤 일어난 유헌은 론에게 좀더 자세한 것을 물으려 했지만, 그 순간 방

      문이 열리며 젤이 나타난다. 묘하게 대화 도중 방해받는 일이 많구나-라고 막연히 

      생각하던 칸은 젤의 다급한 얼굴에 입을 다문다.

      "무슨 일이지."

      "..칸님.. 모두들... 큰일 났습니다."

      "뭐야? 아직도 큰일날 일이 남은거야? 참아줘- 지금은 듣고싶지 않다고-"

      귀를 막으며 장난스럽게 말하는 칸의 모습에 라헨은 쓴웃음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

      다. 

      그또한 칸과 같은 마음이다. 이제 큰일은 제발-이라는 심정이다. 

      옆에 앉은 샤한도 같은 마음인지 기지개를 피며 의자에 몸을 눕힌다. 

      순식간에 산만해져 다소 편안한 분위기가 된 방을 바라보던 젤은 자신을 바라보는 

      노웬에게 시선을 주었다. 매번 이런 말을 전하는 자기 자신이 싫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일들도 아닌 거다. 

      숨을 들이킨 젤은 발을 들어 강하게 바닥을 내리쳤다.

      쿵! !

      "............"

      엄청난 소리에 놀란 모두가 젤을 바라본다. 

      지금까지 저렇게 굳은 젤의 모습을 물론이거니와 행동을 취하는 그녀를 본적이 없

      다. 겨우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 젤은 사무적으로 입을 열어 자신이 알아낸 것을 알

      려준다.

      "중앙국의 수호자인 적룡 루드빌라겔이 새로운 황제를 천거했다고 합니다."

      "..........엥?"

      "무슨 말입니까. 그건-"

      너무나 어이없은 젤의 말에 사람들은 농담으로 치부하며 얼굴을 저었다.     

      하지만 칸과 유헌만이 표정을 굳힌채 젤에게 시선을 준다.

      "천거한 자는- 돔 두르 판 라켈화넬 유헬시스 38세. 

      연호는 이미 정해졌고, 즉위식은 용의 권한으로 넘어 간다는 군요."

      "....................말도 안되는..."

      "지금 마력구로 대륙 각지로 전달된 중앙의 통신입니다."

      "돔...돔이라.. 이거 누구?"

      "분명 칸크빌레의 아들이지. 율시아라는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남자아이- 

      벌써 어른이 된건가."

      "그런 말을 하기전에 말야- 중앙의 황제인 이자크는 어떻게 되는 거지?"

      금발 키사스와 은발 유제스 사이에 나체로 누운 히자스는 시트를 위로 끌어 웅얼거

      린다. 

      "........모르는 걸."   

      "또 뭔일이 생기는거 아냐. 중앙은-"

      키사스의 말에 히자스의 머리를 쓰다듬던 유제스가 얼굴을 들어 보인다.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인 그는 하품을 하며 옆으로 늘어지게 누웠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칸과 유헌이 좀 피곤해 지겠는 걸~"

      "덤으로 그곳에 가있는 융텐도 말야."

      "아아- 싫다, 10년걸려 일을 치는 그런 나라도 참 드물단 말야."

      "대단한 자들이 있는 곳이니 바람 잘날이 없는 거야."

      심드렁하게 웅얼거린 키사스는 들고있던 마력구를 집어 던지고 시트안으로 들어

      가 알몸의 히자스를 끌어 안았다. 평소라면 질색을 하며 밀어냈을 텐데, 요즘 일이 

      많아 지쳤는지 그냥 싫은 소리를 조금 낼뿐이다. 

      그런 그의 모습에 미소를 지은 유제스는 하품을 하며 히자스와 키사스의 몸위로 손

      을 둘렀다. 이렇게 쉽게 넘어갈 만한 일은 아니지만 질펀하게 몸을 움직였더니 복

      잡한 생각따위 하기도 싫다. 

      입맛을 다신 유제스는 몇번 몸을 뒤척이며 눈을 감았다. 

      분명 일어나면 대신들이 이번일로 인달을 치겠지. 

      뭐, 그 문제는 나중에 일어나고 나서 생각해 볼 것인가-   

      느긋하게 누웠있는 두사람 사이에 깔린 히자스는 상댕히 불편한지 이마를 구기며 

      끙끙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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