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헌은 분노한 듯이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벌리는 루드빌에게 시선을 주었다.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던 그는 이내 고개를 돌려 아래에서 올라오는 기운에 눈을 가
늘게 떴다.
주문을 외는 몸과 정신이 따로 분리된 기분이다.
주변에 느껴지는 부드럽고 온화한 감각에 눈을 가늘게 뜬 유헌은 기분좋은 미소를
지었다. 용과 맹약을 맺는다는 것은 서로의 기억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루드빌은 원하지 않은 맹약에 분노하는 터라 유헌의 기억을 그대로 흘러버리고 있
었지만, 실행자인 유헌은 그녀의 기억을 하나씩 흡수하고 있는거다.
물론 그것을 알리가 없는 유헌은 여전히 미소를 지은채 주변에 떠다는 붉은 기운을
손가락으로 흔들어 보았다.
무척이나 따뜻하고 인상적인 느낌이다. 마치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가 있다-라고도
할수있는 아늑함에 유헌은 되도록이면, 이곳에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서서히 이그러지는 공간에 당황한 그는 다른 장소로 가기위해 한발 앞으로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엄청난 양의 기억이 유헌의 머리속에 들어찬다.
- 쌍둥이군요.
- 왠지 모르게 불길합니다. ...게다가 황비님께서 돌아가셨고-
- 역시 루드빌님의 말을 거역했기 때문에....
수근 거리던 자들은 유헌이 나타나자 입을 다물며 허리를 숙인다.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최대의 경의를 표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당황한 유헌은 뒷걸
음 질을 칠려고 했지만 자신의 몸은 앞으로 걸어나간다.
당황한 그가 손을 내밀어 보아도 걸음을 멈춰 보려해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더 몸은
어느 방문앞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하얗게 뼈마디가 가는 손이 아닌 가늘지만 단단한 마디가 보이는 커다란 손에 안색
을 달리한 유헌은 숨을 죽였다.
그대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존재는 침대위에 누워있는 여인에게로 다가간다.
- .......오르빌레.
안타까운, 너무나 깊은 슬픔이 느껴지는 음성에 당황한 마음이 절로 진정되는 기분
이다.
아까의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가만히 손을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던 유
헌은, 누워있는 여성에게 다가가던 하얀손이 그대로 멈춰지고 주먹을 쥐여지는 것
에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느껴지는 진한 애잔함에 유헌은 입술을 깨물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보이는 배경을 그대로 머리속을 스치며 움직인다. 한동안 침실에 누워있는
여성을 바라보던 자신은 몸을 돌려 근처에 있던 늙은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런 자신을 기다렸다는 듯이 뒤에있던 시녀에게 모포를 받아든 그녀가 자신에게
조심스럽게 넘긴다. 팔을 뻗어 받아든 그는 천을 들어올려 그 안에 눈을 감고 쌓여
있는 아기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슬픔 내면에 깔리는 기쁨과 사랑스러움에 묘한 감정을 느끼던 유헌은 다시 걸음을
옮긴 자신이 거울앞을 지나치게 되자 눈을 크게 떴다.
아기를 안고 있는 자는 칸크빌레였다.
너무 놀라 입을 벌리고 있던 유헌은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그가 칸과 닮았지만, 묘
하게 틀리다는 것을 알아낸다. 칸보다 훨씬 더 서늘한 인상이다.
이내, 발챠의 노예상인인 툴가의 저택에서 보았던 초상화를 떠올린 유헌은 그가 칸
의 부친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칸보다 훨씬 더 서늘하고 냉정한 인상을 지닌 사내다.
어째서 자신이 이런 남자의 모습을 띄우고 있는건지 영문을 알수없는 유헌은 단지,
마음대로 움직이는 대로 이동하고 보이는 것을 받아 들인다.
- 왕지님들의 이름은 어쩌시겠습니까?
안고있는 아기와 침대에 올려진 아픈 듯이 끙끙대는 아기에게 시선을 주던 그는 입
을 연다.
역시나 칸과 닮았지만, 그보다 훨씬 냉막한 음성이다.
- 둘째왕자는 내 이름을 뒤를 따 이자키엘로, 그리고 이 아기는-
품안의 아기를 바라보며 서서히 가슴을 차오르는 애정에 유헌은 가만히 칸을 내려
다 보았다.
- 황비의 이름을 따 칸크빌레라고 짓겠다.
그의 말이 마치자 마자 유헌은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숨을 죽이고 손을 들어 눈을 가리던 유헌은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에 의
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저러는 걸까.
그들의 움직임에 궁금함을 느낀 유헌은 한사람을 따라 좇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자신의 맘대로 몸이 움직인다.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던 유헌은 저 멀리 요란한 음성이 들려오자 그리로 달려갔다.
- 네놈은 정신이 있는거냐, 없는 거냐! !
시꺼먼 속을 지니고 있는 자들에게 둘러쌓여 뭐가 좋다고 그리 웃고만 있는거야! !!
- 이런 칸크빌레 황자님, 말씀이 좀 지나...
- 입닥쳐라!!! 네놈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거늘, 죽고 싶은 거냐!!
벼락같이 쏟아진 노성에 달리던 유헌은 숨을 죽이며 걸음을 멈춘다.
유헌이 그 정도인데 직접 들은 사람은 어쩌겠는가.
시퍼렇게 변한 사내는 칸의 시선을 받자마자 저도 모르게 뒷 걸음질을 친다.
그런 그에게 모멸을 시선을 던진 칸은 허리에 손을 집으며 고개를 숙인채 어깨를
떠는 이자크를 바라본다.
칸의 눈에 서려있는 경멸을 읽은 유헌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킨다.
전에 만난 둘은 서먹하긴 하지만, 저런 악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칸은 저렇게 오만한 표정을 지은적이 없었고, 이자크는 저런 약한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이곳은 과거인건가.
그제서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건지에 대해 알아차린 유헌의 얼굴이 묘하게 변한다.
상황이 어떻든 간에 자신이 모르는 칸에 대해 알게된 것이다.
- 저런 간신배에게 둘러쌓여 헛소릴 늘여 놓는다면, 다시는 네 얼굴을 보지 않을 거
다.
- ..............
- 명심해 두는 것이 좋다.
등을 돌리고 사라지는 칸의 모습에 당황한 유헌은 그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 지금까지 단한번도 내 얼굴을 봐준적이 없으면서-
갑자기 귓가에 들려오는 미성에 당황한 유헌은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 보았
다. 그러나 칸의 서슬 퍼럼에 놀란 사람들은 입을 다물며 사라지는 칸에게 허리를
숙여 보일 뿐이다.
- 한번도.. 한번도.... 내 얼굴따윈 봐주지 않았으면서.
다시금 들려오는 음성에 묘한 표정을 지은 유헌은 여전히 얼굴을 숙인채인 황제에
게 시선을 주었다.
설마하니 그가 하는 말인건가. 그렇다면 주변에게 못들을리가 없지 않은가.
멀어지는 칸에게 시선을 주던 유헌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채인 이자크에게 걸어가
허리를 숙였다. 아직 소년인 그는 자신보다 작았다.
얼굴을 숙여 이자크의 얼굴을 확인한 유헌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 한번도.................봐주지 않잖아.
음울한 금빛의 눈동자.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것 같은 그 눈동자는 기억에 있는 것이다.
과거 가헌의 사랑을 바라던 자신의 눈동자를 이자크에게서 발견한 유헌은 망연히
그의 얼굴에 시선을 줄뿐이었다.
- 모두 포박하라!! !
- 칸크빌레님, 이런 법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저희들이 당신을 위해 한일이 얼마나 되는데!!
주위를 둘러싸고 몸을 결박하는 기사들의 모습에 당황한 재상은 목에 핏대를 울리
며 칸크빌레에게 외쳤다. 붉은 계단위 가운데 자리한 왕좌에 비스듬히 앉은 칸크빌
레는 아우성대는 수많은 귀족들을 바라보며 더없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재상은 몸을 움찌하며 뒷걸음 질을 쳤다가 내밀어진 창에 등을 찔리고
낮은 비명을 올린다.
- 그대들은 이런 경사스러운 날에 황제를 시해하려 했다.
- 이건 음모입니다! !
이런 날에, 그것도 제가 준비한 잔에 독을 넣을리가 없잖습니까!!
- 넣어서- 내가 그것을 마시고, 죽었다면 모든것이 끝나지 않은가.
- ........무...무슨...
- 그만한 권력을 지닌 그대가 내가 죽은후 이 자리를 차지한 후 이 일을 묻어버리면
그만이지 않은가.
독이 든 잔을 마시고 황제가 죽었디면 재상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반발하는 자들은 무력으로 제압하기만 하면 끝날이다.
그렇게 해서 이 나라를 손에 넣을 생각이 아니였는가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칸의
눈동자에 유헌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기사들에게 끌려 밖으로 패대기 쳐지는
사람들일 멍하니 바라보던 유헌은 걸음을 옮겨 칸에게 걸어간다.
정신없이 걸음을 옮기던 유헌은 숨을 고르며 그의 앞에서 움직임을 멈춘다.
하나 둘씩 사라져 정리되어 가는 연회장의 모습에 입가를 올리는 칸의 모습에 고개
를 숙인 유헌은 그의 황금빛 눈동자를 바라 보았다. 언제나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담고 있던 그 눈동자엔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이 이질적인 모습에 입을 벌린 유헌은 '그가 아니야...'라고 중얼거렸지만, 눈앞에
이자는 과거의 그가 분명하다.
가슴에 느껴지는 답답함에 침을 삼키는 유헌의 주변의 서서히 변해간다.
- 비켜라.
- 비키지 못합니다. 매일 밤 이렇게 나가시다니- 폐하께선 자식을 보시지 않을실
생각이십니까?
- 그렇다면.
칸의 말에 율시아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는다.
파랗게 굳은 율시아의 몸을 밀쳐낸 칸은 미련없이 방문을 열었다.
- 너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만들 생각은 없다.
'그 누구와도-'라고 중얼거린 음성은 닫힌 문에 이내 가로 막힌다.
칸이 사라지자 멍하니 서있던 율시아는 입술을 깨물며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그 자
리에 주저 앉는다.
- 어째서 그는 나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거지.
율시아의 울분에 가득찬 음성에 의자에 앉아있던 유헌은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어
깨를 떠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유헌은 한숨을 쉬며 이마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어째서 이런 영상을 보는건지 알수가 없다.
여기까지 올때까지 수개의 영상을 봤다.
그리고 그곳에 나타난 칸은 언제나 차가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을 계산하면 그는 즉위한지 겨우 4년. 그동안 칸은 나라를 제정비하고 주변에
압력을 가하던 나라에 보복을 가하기 시작했다. 빌미나 음모을 꾸며 왕실보다 강한
세력가는 무너져 갔고, 가주들은 처형당하거나 유배당했다.
수많은 자들이 피를 흘리는 한편, 힘은 없지만 능력이 있는 자들은 중앙으로 진출
할수 있었다.
왕실을 구성하는 귀족들의 힘은 너무나 막강해 왕실의 존속이 위험할 지경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지만,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정책을 펴가도 되는 것인가.
4년동안 수많은 아군을 만들었지만 그만큼 적들의 수도 무시 못할 정도다.
- .........칸크빌레..
그리고 저 율시아도 칸의 적으로 돌아설 것 같다.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던 유헌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을 걷고 멀리 솟아난 탑을 바라
보았다. 저 위에 이자키엘이 있다.
사람이 살수있는 최소한의 것만 제공받을 뿐 그는 사람과의 접촉도 제한 당한채 살
아가고 있다.
.......칸크빌레를 바라보던 그 눈동자를 잊을수가 없다.
계속해서 인정을 받고 싶어 하염없이 바라 보지만, 그는 알아주지 않지.
끝끝내 알아주지 않은 그에게 남은 것은 미움뿐으로, 나중에 포기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으려만 이자크는 끝끝내 그의 등을 바라 보았다. 저 탑에 올라갈 때에도 칸
에게 시선을 떼지 않던 그의 모습에 이를 악문 유헌은 손을 들어 눈을 가린다.
마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드는거다.
지금과 전혀 다른 냉정한 칸의 모습에 화를 내려고도 했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과
거의 그에게 뭐라 할수도 없을 뿐더러- 내 사람인 칸이 다른 이에게 마음을 주는 것
이 꺼려진다. 이중적인 마음에 쓴웃음 짓던 유헌은 손을 내리고 눈을 뜨자 또다시
변한 주변에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무엇을 보여줄 생각인 건가.
아무 생각없이 몸을 돌리던 유헌은 그러나 껴안고 있는 이자크와 율시아의 모습에
몸을 굳혔다.
어느새 변한 곳은 이자크가 갇혀있는 탑으로 이동한 것이다.
딱딱한 표정으로 두사람을 바라보던 유헌은 뒷걸음 질을 쳐 창에 등을 기댔다.
- .........당신이 위로해줘.
칸크빌레와 닮은 당신이..... 마음을 위로해줘.
가느다랗게 떨리는 음색으로 입을 연 율시아는 몸을 밀쳐내는 이자크의 손을 잡으
며 바닥에 쓰러 뜨렸다. 제정신이 아닌 그녀는 엄청난 힘을 발휘해서 밑에 깔린 이
자크는 안색을 굳히며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아직은 어리고, 힘이 없는- 다 자리지 못한 그에게 반질거리는 눈동자로 내려다 보
는 율시아는 공포였다. 입술을 깨문채 올려다 보는 금빛의 눈동자를 멍하니 바라보
던 율시아는 자조의 미소를 짓는다.
- 여전히 그런 딱딱한 얼굴로 나를 보네. ........................너무하잖아.
눈물을 흘리는 율시아의 모습에 이자크의 눈이 흔들린다.
몸을 숙여 이자크의 목에 얼굴을 묻은 율시아는 흐느끼는 자신의 몸을 양팔로 안으
며 강하게 끌어 안았다.
- 어째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내가 이런 집안에 그 루드빌의 피를 타고나서 그
런건가- 하지만, 하지만 난 여자이기에 그녀의 힘을 물려받지 못했어.
- ..........율시아.
- 그런데 왜 그런 눈으로 보는거야. 어째서 알아주지 않는 거야.
- .............
- 그런거 너무 비참해. 너무 슬퍼...............참을수가 없어.
'건딜수가 없어-'라며 쉼없이 눈물을 흘리는 율시아의 모습에 미간을 찌뿌린 이자
크는 손을 뻗었다.
너무나 자신과 닮아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라봐 주지않은 그 냉정한 사내의 애정을 바라는 그 마음이, 결
국 보상받지 못해 엉망으로 망가진 그 마음의 상처가 너무도 똑같아 이자크는 단지
눈물을 흘릴수 밖에 없었다.
그는 왜 그러는 걸까.
어째서 알아주지 않는 걸까.
어째서 자신들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걸까.
- ...........아이를 만들자.
율시아의 머리를 안은 이자키엘은 눈을 감았다.
옆으로 흐르는 차가운 눈물과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가 마음까지 얼려 버렸으면
좋겠다.
- 두사람이서.............칸크빌레의 아이를 만들자.
- ........어째..서....
- 아이를.
입가를 올린 이자크는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 둘이서 만들자.
율시아의 얼굴을 들고 그 입술에 입을 맞추는 이자크의 모습을 유헌은 가만히 바라
보았다. 도저히 방법이 없는 두사람의 막바지에 몰린 감정이 느껴지는 듯 하다.
아무것도 느낄수 없는 그런 공허함에 멍한 표정을 짓던 유헌은 가만히 눈을 깜박였
다.
수번의 깜박임 후- 다시금 변한 곳은 이번엔 루드빌을 나타나게 한다.
- 이자키엘.
자신의 목에서 나오는 적룡의 음성에도 유헌은 가만히 있었다.
자신이 그 적룡 루드빌의 모습을 빌렸다는 것은 이자크의 눈동자에 비친 모습으로
알수있다. 멍하니 반질거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올려다 보는 이자크는 칸과 같이 검
청의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어서, 그 애틋한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전처럼 빛나고 있던 슬픔마저 사라진 그 눈동자는 인형처럼 아무런 감정을 담고 있
지 않았다.
그 얼굴을 감싸안은 루드빌을 이자크 안에 있던 자신의 끈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용의 능력을 이어받은 그녀의 아이들은 작던, 크던 자신과 연결된 끝이 있어 감정
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 작은 아이가 너문 괴로워 하는 모습에 더이상 참을수가 없
어진 루드빌은 스스로가 그와의 연결을 끊어버리려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끊은 칸과는 틀리지만, 이렇게 형제가 나란히 자신의 손을 떠나는 거
다. 씁쓸함에 미소를 지으며 손을 떼려던 루드빌은 자신의 손을 잡는 하얀 손에 움
직임을 멈췄다.
- 루드빌.
- 정신이 차린거냐. ...........못난 녀석.
애써 부드러운 음성을 내며 이자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 루드빌................나에게 당신의 피를 줘요.
- ...........뭐?
자신이 뭔가 잘못들은 건가하고 루드빌의 안색이 급속도로 굳는다.
그런 루드빌의 몸에 손을 뻗은 이자크는 그녀의 몸에 매달린다. 어깨를 집어 자리
에서 일어난 이자크는 멍한 눈빛을 빛내며 적룡의 붉은 눈동자에 시선을 준다.
그 광기어린 시선에 뒤로 물러나려던 루드빌은 강하게 잡는 손길에 걸음을 멈출수
밖에 없었다.
- 용의 피를 나에게 줘요.
-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나 있는 거냐.
터무니 없는 말을 들어 분노로 이그러진 루드빌의 얼굴에 아랑곳 않고 그녀의 몸에
매달린 이자크는 다시한번 입을 연다.
- 나에게 당신의 피를 줘서 나를 당신의.............
들리지 않는다.
이자크가 뭔가 말하려는지 듣기위해 한걸음 앞으로 내딫었지만, 그 순간 주변이 서
서히 무너지며 사라지려 한다.
그런 형상에 유헌은 안된다며 손을 뻗어 루드빌과 이자크를 잡으려 한다.
뭔지 모르겠지만, 저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든다.
이를 악물로 움직이지 않은 다리를 끌어 둘에게 접근하던 유헌은 주변과 함께 사라
지는 그들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이런식으로 놓칠수 없다! !
= 서로에 대해 공유하는 두 존재는 우위를 정할수 없다.
다만, 함께할 뿐이다.
귓가에 들려오는 익숙한 음성에 유헌은 걸음을 멈추고 허공을 올려다 보았다.
그 순간 이자크와 루드빌의 모습이 한순간 사라졌지만, 유헌은 생생하게 느껴지는
감촉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물속에 있어 유영하던 느낌이 사라지고 생생
한 현실감각이 온몸에 느껴진다.
주먹을 오무렸다 핀 유헌은 분리되었던 정신과 육체가 하나로 되돌아가는 것을 느
끼며 동시에 입에서 나오는 이계의 언어에 감았던 눈을 떴다.
막 자신을 향해 당장이라도 갈갈이 찟을 듯한 루드빌의 날카로운 송곳니에 유헌은
잠시나마 서늘한 감각을 느낀다.
= 이로써 그대와 영원을 맹세하는 용의 기사의 서약을 마친다.
그대의 이름은....
이계의 언어를 내뱉은 유헌은 그대로 굳어버린 적룡을 바라 보았다.
두눈을 부릎뜬채 자신을 내려다 보는 그녀의 존재는 공포였다.
한동안 적룡을 바라보던 유헌은 맹약을 종결하는 마지막 단어를 내뱉는다.
".......루드빌라겔-"
샤한은 미친듯이 달렸다.
기사들이 감싼 저택을 무사히 빠져나간 것은 다행이었지만, 칸이 있을거라고 여겨
지는 장소는 이 붉은 막으로 인해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과연 용의 힘이라 그런지 젤에게 빌려온 마력은 도움도 안된다.
장막에 대자마자 소멸해버린 젤의 마력을 떠올리곤 쓴웃음 지은 샤한은 들어갈수
없는 장막의 주변을 끊임없이 달리고 있었다. 이러고 있으면 어딘가 들어가는 입구
라도 나오지 않을까하는 얄팍한 생각때문이다.
말도 안되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나을거라는 생각에 이러고 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당장이라도 쓸러질 것 같다.
하지만, 칸도 못찾고 이대로 쓸러질수는 없는 노릇이라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물던 샤한은 그러나 갑자기 고막을 두들이는 엄청난 굉음에 놀라 발이 걸려 요란
하게 넘어진다.
".............뭐...뭐야?"
넘어지면서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아서 다행이다.
귀를 막았음에도 계속해서 들려오는 굉음에 샤한은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일어난
다. 그리고 그 순간 또한번의 요란한 폭발음이 들리며 옆에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
던 붉은 장막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덕분에 바닥을 굴러 흑먼지 투성이 된 샤한은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내
이를 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막도 걷혀졌다, 바닥도 원없이 굴렀겠다.
이렇게 되면 반드시 칸을 위시한 모든 사람들을 찾아내고 말테다!!
파삭-!
앞을 가로막는 나무를 검으로 베어내며 앞으로 나아가던 샤한은 그러나 베어진 나
무가 사라지자마자 텅하니 빈 공터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엉망으로 된 그
공터에는 자신이 찾으려는 사람의 대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멍하니 그들에게 시선을 주던 샤한은 이름을 부르며 다가가다 걸음을 멈춘다.
왠지 모르지만, 저들이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
왜 그럴까하고 고개를 돌린 샤한은 칸과 대치한 백발의 청년에 숨을 들이켰다.
저자는 분명, 이자키엘이다.
그리고 그가 있기에 이런 복잡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갈며 검을 든 손을 올린 샤한은 칸과 이자크 역시 멍하니 한곳에 시선을 주고
있자 얼굴을 갸웃했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가.
이쯤되니 검을 들고 서리는 것도 민망하다.
슬그머니 검을 집어넣고 고개를 돌린 샤한의 심드렁한 얼굴이 대번에 굳는다.
".......루드빌?"
머리를 감싸쥐고 거대한 문양안에 엎드려 있는 것은 분명, 그 오만한 용이다.
멀리서 적룡이 등장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칸을 찾기위해 그리로 신경을 쏠린
대다 장막 주변을 뛰어다닌 샤한은 그 용이 이렇게나 가까이 있을줄 몰랐다.
그렇게나 거대한 존재는 멀리선 잘 보이는 법이지만, 애석하게도 가까운 거리에선
오히려 잘 안보이는 법이다.
"....왜 저렇게 괴로워 하는 거지?"
"유헌과 기사의 계약을 맺었다."
" ?!! ..라헨, 갑자기 나타나지 마! !"
소스라치게 놀라는 샤한을 무시하고 가만히 서있는 유헌과 강제로 인간의 모습으
로 돌아온 루드빌에게 시선을 주던 라헨은 혀를 찼다.
일방적이긴 하나 받아 들이면 저렇게나 괴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만한 성격의 드래곤답게 이미 맺어진 맹약을 파기하려 저런 거대한 진을
만들어 괜한 힘의 소모를 하고 있다. 루드빌이 성격을 봐서 당연한 일이지만, 일단
맺어진 계약은 쌍방 중 하나가 죽기전엔 파기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저 용이 유헌을 죽이고 맹약을 파기 할수도 없는게 주문을 외운자는 유헌
인고로, 유헌에게 해가가면 그에 대한 처벌은 상대인 루드빌에게 돌아간다.
"원래 저런 주문은 인간쪽에서 먼저할수 없는 것인데-"
"..........너 방금 기사의 계약을 맺었다고 한거냐? 저 유헌이. 루드빌과??"
라헨에게 성을 내던 샤한은 그가 한말을 떠올리고서야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되
묻는다.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해대는 군. 저 소년은-"
"윽? 카일!"
라헨에게 다시금 따지려던 샤한은 뒤에서 나타는 청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사내의
모습에 기겁을 한다. 에스를 안은 채인 카일은 미간을 좁히며 마력진 안에서 몸부
림치는 루드빌을 바라 보았다.
아무리 그녀가 노력을 하고 발버둥을 쳐도 저 유헌이라는 소년이 계약의 종료의 의
미인 이름을 내뱉은 이상 쓸모없는 저항일뿐이다.
가만히 루드빌을 내려다 보는 유헌의 모습을 아래위로 내려다 보던 카일은 묘한 표
정을 짓는다.
"과연- 저 소년은 이계인인가."
".........몰랐던 거야?"
"난 너를 제한 인간들에 대해선 관심없어."
"......잘도 그런 말을 하는 군."
에스에게 미소를 지어보인 카일은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게서 느껴지던 묘한 이질감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온 자이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저 루드빌을 상대로 인간쪽에서 기사의 서약을 외운 것이 이해가 되는 것
이다.
몇백년전에 사라진 용의 기사의 탄생에 카일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자신이 보는 저 유헌이라는 소년이 용의 기사라는 건가.
그런건 책에서만 읽고 아직 순수했을 적에 잠시 동경을 했던 존재이다.
"너..어디에 있다 지금 나타난 거냐?"
"저기 숲에서 숨어있다 상황이 정리된 것같아 나타났지."
".................이런, 치사한 놈이.."
"나섰다가 에스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않은가."
일행들이 피터지게 싸우고 있을때 몸을 숨긴 주제에, 그게 뭐가 나쁘냐는 듯이 시
선을 던지는 카일의 모습에 할말이 없다.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들어 보이려던 라헨은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에
안색을 달리하며 몸을 틀었다.
".................용이 사라졌다."
유헌의 앞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력진을 설치했던 루드빌의 모습이 온데간
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 된 거지?"
유헌은 당황했다.
그녀의 흔적을 찾아 몸을 돌리던 유헌은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던 이자크의 몸이
비틀거리자 안색을 달리하며 그리로 달려갔다.
어찌되었던 간에 본체였던 루드빌이 사라져 유헌이 무사한 모습을 보고 반가운 표
정을 지은채로 손을 뻗던 칸은 그러나 자신이 아닌 이자크에게 달려가는 유헌의 모
습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유헌의 손이 닿자마자 쓰러지는 이자크의 모습에 칸은 숨을 죽이며 저도 모
르게 그리로 달려간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자크!!"
"건드리지 말아요, 뭔가 몸에 이상이 생긴걸지도 모릅니다!!"
".................유헌."
이자크의 몸을 안아든 유헌이 강경하게 말하자 묘한 표정을 지은 칸은 저도 모르게
손을 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칸에게 본의 아니게 소리를 지르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이자크의
상태가 우선이다.
아까 정신과 몸이 분리 되었을때 루드빌에게 안긴 이자크가 하는 말을 듣지 못했
다. 루드빌에 사라진 지금 그가 쓰러진 것은 자신이 듣지못한 그 말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든다.
입술을 깨문 유헌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칸에게 시선을 주다 이자크의 몸을 안
아 들었다. 모르고 있었을 때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자의가 아니라지만, 그에 대해 알게 된 이상 가만 둘수가 없다.
"당장 젤이나 유크렌에게 상태를 보여야 겠어요."
"........아아- 그래."
칸은 이자크를 안은 유헌의 모습에 묘한 느낌을 받았다.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던 칸은 몸을 돌리고 먼저 걸어가는 그의 뒤를 급하게 따르며
이자크를 넘기라고 한다.
"괜찮아요."
"하지만, 무거워- 무거울꺼야. 내가 들께."
"............자요."
조심스럽게 이자크를 안아 받은 칸은 얼굴을 무척이나 긴장되어 보인다.
저 얼굴이 과거엔 그런 표정을 짓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건가.
묘한 느낌에 유헌은 쓴웃음을 지었다.
"요크발님! !"
피를 토하고 쓰러진 그의 모습에 사색을 한 론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날카로운 비
명을 지른다. 그보다 먼저 요크발의 몸을 안아 든 돔은 연신 그의 이름을 부르며 밖
의 기사들을 부른다.
소동이 일어난지 얼마안되서 방문을 열고 들어온 기사들은 피범벅이 된채 돔의 품
에 안겨있는 요크발의 모습에 안색을 굳히며 그에게 다가온다.
다가오는 기사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돔은 한명의 멱살을 잡으며 윽박지른다.
"지금, 루드빌은 어디에 있는 거냐-! !"
"에..? 누...누군지.."
"그 빌어먹을 적룡말이다-ㅅ! ! ! !"
방을 울리는 쩌렁한 돔의 노성에 기사들의 움직임이 굳는다.
지금까지 중앙의 수호용인 루드빌라겔을 이토록이나 불경하게 지칭한 자는 없었
다. 망연히 자신을 바라보는 기사의 멱살을 놓은 다른 자에게 걸어가다 이를 악물
며 다시 요크발에게 다가갔다.
그의 몸을 부축한 기사의 몸을 거칠게 밀어재친 돔은 직접 그의 몸을 업고 방에서
나선다.
"돔님, 나가지 마세요!! 안에서 의사를 기다리는 편이 낳습니다!!"
"의사가 아니야-! !"
그래 의사같은 자가 이 사람의 몸을 치유할수는 없다.
건강하고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진 것은 그 용에게 뭔가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리라. 그 망할 여자는 그렇게나 강하다는 용인 주제에 번번히 몸을
다쳐 왜 애꿋은 사람을 괴롭히는 거란 말인가.
눈가에 맺히는 뜨거운 열기에 숨을 고른 돔은 자신에게 매달리는 론을 밀쳐내며 방
에서 나와 복도의 양끝을 바라 보았다.
어디에 가야 그 용을 만날수 있을까.
전해들은 말에 따르면, 황제가 저번 다친 요크발의 상처를 치유해 주었다고 한다.
용의 기척을 느끼려 어지러운 정신을 바로 잡으려던 돔은 그러나 턱하고 막히는 숨
에 무릎을 꿇고 그 자리에 쓰러진다.
"돔님!!"
사색이 된 론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흘러내리는 요크발의 몸을 지탱한다.
돔의 서슬 퍼럼에 차마 접근하지 못하고 있던 기사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그에게
접근한다.
"요크발님을 이리로 주십시오.
무턱대고 엎기보단 누워 계시는 것이 훨씬 낳습니다."
"..치워라.. 그보다, 황제를..불러..... 큭!"
접근하는 기사들을 밀치고 다시 일어 나려던 돔은 다시금 덮치는 충격에 앞으로 고
꾸라 졌다. 요크발의 몸을 들어올린 기사들은 서둘러 그를 방안의 침실로 옮긴다.
남아있던 기사들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난 돔은 숨을 몰아쉬며 미간을 찌뿌
렸다. 뭔지는 모르지만,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다.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두통에 안색이 파래진 돔의 얼굴에 론이 얼굴을 이그러
뜨린다.
도대체 이게 무슨 변고인지 그는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돔님, 괴로우세요?"
".......그..망할 여자가........."
"돔님. 전 그런분은 몰라요. 다른 아는 분을 알려주시면 모시고 올께요."
".............론."
숨을 헐떡이던 돔은 눈을 가늘게 뜨며 눈물에 젖은 론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어쩌면 이 사람은 이토록이나 자신에게 헌신적일까.
단지 모시는 자에 대한 시종들의 강한 충성심이라고도 할수 있겠지만, 돔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걱정하기에- 그렇기에 이런 표정을 짓는 거라
고 그렇게 믿고 싶다.
가슴을 움켜잡은 돔은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언습하는 통증에 정신을 차릴수
가 없다. 기사들에게 매달려 제발로 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그 모습에 론을 입술을
깨물며 그에게 다가간다.
"밖에서 의사를 찾아오도록 해라."
".........사이키님."
"어서, 한시가 급하다."
어깨를 잡고 말하는 사이키의 말에 방안에 시선을 던지 론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복도를 달린다. 일개 시종이 어떻게 의사를 찾아오겠느냔 만은 지금 상황에서 그가
있어서는 안되기에 어쩔수 없어 밖으로 보낸 것이다.
하지만, 걱정이 된 그는 기사에게 론의 뒤를 따르게 한다.
탁.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은 사이키는 침대로 다가가 누워있는 요크발이 상태를 살피
곤 미간을 찌뿌렸다. 창백하게 굳어진 얼굴이라던가 턱과 옷에 묻어있는 피의 양이
보기에도 안좋을 뿐더러 얼마나 심한 내상을 입었는지 알게 해준다.
게다가 저 돔은 루드빌이 헌신하는 것에 영향을 받는지 무척이나 괴로워 한다.
하지만, 전에는 아무런 것도 느끼지 못했을 터인데, 왜 요즘들이 저렇게나 적룡의
존재를 강하게 느끼는 것인가.
"돔님, 어디가 안 좋으십니까?"
".........그보단.. 어서 루드빌이나 황제를 데리고 와야해.."
"그분들은 일이 있어 이곳에 오시지 못합니다."
사이키의 말에 돔의 눈이 크게 떠진다.
그런 그를 달래듯이 손을 들어 등을 쓰다듬은 사이키는 뒷말을 이은다.
"하지만 제게 따로 방법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돔님 왜 이러시는 겁니까."
"헛소리 할 생각이면 저리 물러나라-"
가슴이 답답해 숨조차 제대로 쉴수 없을 지경인데 이 사이키라는 사내가 말을 거니
아주 귀찮았다. 하지만 요크발과 잘 알고있는 듯한 사내이기에 직접적으로 싫은 내
색을 표현할수가 없다.
방안을 왔다갔다하며 요크발의 시중을 드는 기사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돔은 최대
한 편한 자세를 취해 보인다.
"지금 루드빌님께서 헌신하셨습니다. 그전에 인간의 몸일때 공격을 받으신 모양인
데, 요크발님은 그때문에 저렇게 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돔님이 이러시는 이유는 잘 모르겠군요."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 그것 밖에 없다.
전에는 그 루드빌의 존재를 알고있지 않고, 그럴 이유도 없어서 전혀 의식하고 있
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와 만나고부터 점점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가 접근하거나 힘을 쓰거나 할때- 그 생태에서 조금이라도 그녀를 생각하면
그 느낌이 몸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무심함 쪽이 더 치중되어 감지하는 것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는
데, 지금은 그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루드빌이라는 적룡과 애초에 얽히고 싶지않다라는 그 마음이 이런 고통을 불러 일
으키는 것이겠지.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오는 것을 막았으니반발이 생기는 것이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내 부친에 대해 알았기에 그녀를 부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몸이 무사하겠나."
무심하게 중얼거리는 돔의 말에 사이키의 안색이 굳는다.
역시나 알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입맛이 쓰다고 느끼던 돔은 문을 열고 들어오
는 론의 모습에 몸을 일으켰다.
안보이나 했더니 어디 다른 곳에 가 있었던 건가-
"사이키님, 신관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신관님, 이리로-"
".........에?"
이곳에 신관이 있을리가 없다.
만찬에 참석한 귀족들은 이곳과 떨어진 건물로 옮겨 두었고, 기사들을 제외한 자들
은 전부 밖으로 내쫒았다.
개미 한마리라도 수상한 자에 대해선 감시를 그렇게나 꼼꼼이 했는데, 신관같은 것
이 있을리가-
"신관 오브라고 합니다."
"...............당신은."
평범한 인상의 사내였다.
손을 앞에 모으고 몸을 숙이는 남자의 모습에 입을 여는 돔에게 고개를 돌린 사이
키는 미간을 찌뿌렸다. 저자는 분명 비잔힐의 쫒겨난 전 가주인데다 지금은 칸크빌
레 일행중 하나였던 자이다.
그런자가 왜 이곳에 있고, 돔이 이 자를 알고 있는 것인가.
전에 발챠에서 칸크빌레들이 율시아의 저택에 머물렀다고 하던데, 그때 접점이 생
긴건가- 지금 돔의 상태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의미심장한 말때문에 사이키는 자신
의 판단대로 행동할 수가 없었다.
눈에 띄게 반색을 하는 돔의 앞에서 그를 쫓아낸다면 그의 반감을 살뿐으로 전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당신.. 신관이었나?"
"이런- 율시아님의 장자이신 돔님이시군요.
제가 좀 허술하게 다녀서 그렇지 이래뵈도 신관이랍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신관 지망생이었지만-
수상한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사이키의 시선을 피한 오브는 소파에 누워 안색이 파
리한 돔에게 다가갔다. 허리를 숙여보인 오브는 한동안 돔의 얼굴을 살피다가 이내
몸을 들고 고개를 젖는다.
그 모습에 사이키는 한발 앞으로 내딫딘다.
"이들의 병색을 그대가 알수 있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그냥 돌아가시지요."
"그렇긴 하지만- 아는 사이인 론의 부탁이 있기도 했으니 일단 이곳에 머물르기만
이라도 하지요."
당장이라도 밖으로 끌고 나가고 싶어하는 보라색 머리카락을 지닌 사내의 모습에
밖은 커녕 이곳에 있는 것이 살길이라고 파악한 오브는 억지 웃음을 지었다.
뮤트롱에 들어온 후 마땅히 할일이 없어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다가, 전에 발챠에
노예상인인 툴가의 저택에서 도움을 받은 론을 만나게 되었다.
사색이 되어 의사나 치료사를 찾는다는 그의 말에 꼬치꼬치 캐문 오브는 요크발과
돔이 쓰러졌다는 것을 듣고 무작정 이곳으로 왔다.
하지만, 이 영문모를 적의를 들어내는 사이키라 남자가 있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
면 절대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들어내며 최대한 선량하게 웃어보인 오브는 론을 내세워 돔의 곁으로 다가간
다.
"저보단 오히려 기사분들이 이곳에 있는게 그닥 도움이 되지 않을것 같군요.
저도 있고, 론도 있으니 그냥 돌아가시는 게 어떨까요?"
"말도 안되......! !"
"그대는 나가 있어라."
이곳에 남아 무슨짓을 할지도 모르기에 오브의 말에 반박하려던 사이키는 서늘한
돔의 음성에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소파에 몸을 기댄채 미간을 찌뿌린채인 그의
얼굴에 시선을 주던 사이키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요크발의 침대에 달라 붙어 물수건을 올려놓거나 몸을 닦거나 옷을 갈아입히던 기
사들과 방을 나가는 사이키의 모습에 오브는 한숨을 쉬었다.
나가기 전에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는 보라빛의 눈동자에 되려 찔려 시선을 피하긴
했지만 말이다.
탁.
문을 기대고 방앞에서 사이키는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는 기사에게 고개를 끄덕였
다. 방의 감시를 소홀히 하지말고 그 수상한 남자가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하면 죽여
도 좋다-라는 눈빛을 보낸 사이키는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진짜 부친을 알았다는 말은 칸크빌레가 친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닭았다는
건가. 요즘 요크발의 상태가 이상해서 그에게만 신경을 쏠렸더니 돔이 무슨 생각을
하고, 누구와 접촉해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미쳐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돔의 확신에 찬 눈동자라든가, 다 알고있는 자의 그 구석에 몰린 분위기를 봐서 지
금에서 그것이 아니라고,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얼버부리긴 힘들다.
혀를 찬 사이키는 문에서 발을 뗐다.
"루드빌님은-?"
"이미 다 헌신을 마치셨다고 합니다.
지금, 이상한 무리들과 대결 중이시고 그 중간에 황제폐하도 계시다던데-"
"...뭐지."
"폐하가 계시는 곳에 적룡이 있으시다 하지만, 걱정됩니다.
몇몇의 기사들을 보내면 안되겠습니까?"
"말도 안된다. 그분의 일에 감히 너희들이 끼어 들겠다는 거냐."
말을 꺼낸 기사는 사이키의 서슬 퍼럼에 안색을 죽이고 허리를 숙였다.
그런 기사를 힐끔 바라본 복도로 걸음을 옮긴다. 분분히 허리를 숙이는 기사들을
보며 그는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낀다.
물론 자신도 황제를 도와주러 가고 싶다.
하지만 요크발이 쓰러진 이상 이자들을 관리할 사람은 자신뿐인거다.
그렇다고 기사들과 함께 황제를 도우러 간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또다시 칸크빌
레의 존재를 보게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전에 칸의 모습을 보았던 50여명의 기
사들을 죽이고 새로 데려온 의미가 없다.
어떻게 되어서든 칸크빌레의 모습을 눈에 띄지않게 하기 위해서 이런 짓을 하고 있
지만, 왠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쓸모없는 여자-"
용이라면 좀더 강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는게 아닌가.
그런 녀석들이게 당해 상처를 입고 그 영향을 요크발에게 미치게 하다니.
본체로 헌신을 했기에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수는 없지만, 최근들의 그 용의
존재가 못미덥다.
탁.
"......사라졌군."
"오브님."
"하지만, 밖의 기사들은 남아있는 것 같아서 말야."
문에서 귀를 뗀 오브는 론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요크발의 시종이고 번 발챠의 노예상가에서 탈출을 했을때 도움을 주었던 소년이
다. 이런데서 만난것도 인연이라 순순히 따라오긴 했지만- 이렇게 꼬이는 상황이
되니 온 것이 조금 후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내색을 할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나저나 이런 곳에 요크발이나 네가 있을줄은 몰랐다."
"아- 어쩌다 보니 따라오긴 했지만... 그나저나 저 두분들의 상태는 어떻지요?"
"으-음... 그건 말이지-"
매달리는 론의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던 오브는 자신을 서늘하게 바라보는 돔
의 시선에 숨을 죽였다.
정말이지 머리카락과 눈동자만 빼면 영락없이 칸의 판박이다.
정말로 그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건가-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 역시나 저 요크발과
혈연관계였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율시아라는 미망인은 너무도 요크발과 빼 닮았으니깐.
"지금 그대를 남으라고 한것이 후회가 되고 있는 중이다.
설마하니 아무 능력도 없는 자가 괜히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라고 말했다간 이 자리에서 베일 것 같은 기세다.
완전한 신관은 아니지만, 한때는 그것을 꿈꾸며 무지 열심히 노력한 자신이다.
능력의 한계의 부딫혀 엄청난 좌절감을 느끼고 중간에 그만둔 쓰라린 기억이 있지
만....
"약간 못 미덥지만, 한때는 신관의 꿈의 키워서 말야."
".......역시 네놈은 가짜였구나."
"하지만 요크발의 상태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
"............."
미심쩍은 표정을 짓던 돔은 오브의 말에 중간쯤 떠있 던 몸을 다시 앉혔다.
그 덕분에 가슴의 통증이 다시금 느껴졌지만, 전 같지는 않다.
미간이 찌뿌려지자 걱정스러운 듯 다가온 론이 그의 몸을 부축해 준다.
"괜찮으세요?"
"난 괜찮지만... 그의 상태가 걱정이야."
"요크발님은 강한 분이니 그닥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거예요."
"....그런가..."
불안하게 눈을 떠는 돔의 얼굴을 바라보던 론은 자리에서 일어나 요크발에게 다가
갔다. 중간에 기사들이 하다가 관둔 옷을 제대로 입힌 그는 시트를 끌어 목까지 덮
어준다.
미미하게 심장이 뛰고는 있지만,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보면 그가 죽은자는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마저 든다.
입술을 깨무는 론과 침대에 누워있는 요크발, 그리고 피곤한 듯이 소파에 뒷목을
기댄 돔의 모습을 바라보던 오브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능력은 없지만, 그의 병환을 알아도 도움이 될지 않될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일단
은 진찰을 해주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이렇게 어두운 분위기는 딱 질색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