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 !"
갑자기 등장한 괴수의 등장에 얼이 빠져있던 유헌은 날카롭게 울리는 비명에 정신
을 차렸다. 의식을 잃었다가 겨우 정신이 든 파요는 자신의 위로 드리워진 거대한
얼굴에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런 인간의 작은 움직임에 유헌을 주시하던 루드빌이 고개를 내려 파란머리를 지
닌 어린 소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이..이게 무슨..!!"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붉은빛의 눈동자가 커다란 달덩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 눈동자에 자신의 모습이 드리워지자 무의식적으로 손을 든 파요는 자신
의 볼을 내리쳤다.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고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은 붉은 용의 존
재에 멍한 표정을 짓던 그의 얼굴에 서서히 공포가 어린다.
루드빌은 다소 느긋한 심정으로 아래에 있는 인간들을 살펴 보았다.
턱을 경직시키고 이를 부딫히며 벌벌떠는 파요와 그 옆에 쓰러져 아직 정신을 차리
지 못한 샤한, 그리고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유헌이라는 소년과 그옆에 있는....
[돔이군]
".........하?"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탁하고 숨을 뱉어낸 돔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누르며 눈앞의 드래곤 루드빌을 올려다 보았다. 그런 돔의 모습을 잠시 위
아래로 바라보던 용의 눈이 가늘게 접히더니 낮게 주문을 외운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주변에 쳐지는 동그란 원에 당황한 돔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어느새 붉은 빛의 방울안으로 들어간 꼴이 된 그가 루드빌의 얼굴옆으로 이동한다.
[이곳은 위험하니 내옆에 있는게 제일 안전하단다. 아이야-]
"............"
[어떻게 이 아이가 네 옆에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돌려받으마]
자신들을 대하는 태도 답지않게 부드러운 그녀의 모습에 유헌은 묘한 표정을 지었
다.
그것은 돔도 마찬가지로 커다른 붉은 빛의 눈동자가 자신을 부드럽게 바라보고 있
다는것은 상당히 희귀한 경험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모습을 들어내고 부턴 온몸을
들끓던 알수없던 감각이 많이 줄어들었다.
아직도 심장의 고동소라에 맞춰서 미미하게 떨리는 감각에 미간을 찌뿌리는 돔의
모습을 확인한 루드빌은 작게 웃어 보였다.
웃는다 해도 그것은 드래곤의 미소이기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바로 밑에 있던 파요는 두말 할 필요도 없어서 반사적으로 검을 빼든 그는 다짜고
짜 루드빌의 턱에 검을 들이민 것이다.
챙-캉.
".........이런.."
드래곤의 턱에 부딫히자마자 맥없이 부러지는 검날에 파요는 넋빠진 표정을 지었
다. 그는 이런 두려움이나 공포는 처음이기에 제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흔들리는 시야 속에 보이는 거대한 괴물을 죽이려는 일념하게 휘둘렀는데 이토록
이나 허망하게 끝나다니.. 게다가 용의 피부는 상처하나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화
만 돋군 듯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내려다 본다.
[이 버러지같은 인간이.....]
으르렁거린 루드빌은 먼저 이 쓸모없는 인간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칸크빌레만 두고 나머지는 전부 죽일거다.
일단의 유희거리로 유헌이라는 소년을 불러들여 조금 지리한 시간을 떼울 마음으
로 이런 수고로운 일을 벌였는데, 곁다리로 껴든 이 작은 존재가 자신의 성미를 건
드렸다. 산산히 조각조각내서 고통에 몸부림치게 죽어가게 만들어 주마.
입을 벌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파요에게 들이밀려던 루드빌은 순간 자신에게 날라
오는 날카로운 빛에 몸을 굳히며 반사적으로 얼굴을 돌렸지만, 때늦은 반응으로 엄
청난 고통이 눈에서 퍼졌다.
[크아아아아아------------ㄱ]
"샤한! !"
"제길, 이리와 꼬맹아!!"
루드빌의 눈으로 검을 날린 샤한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벌벌떨고 있는 파
요를 허리를 잡아 유헌에게로 뛰어갔다.
검이 눈에 박힌채 고통스러워 하는 루드빌의 몸부림을 치자 다시금 흔들리는 지반
에 안색을 달리한 유헌은 손을 내밀며 이쪽으로 뛰어오는 샤한의 모습에 이를 악물
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길, 죽을 힘을 다해서 뛰어--! ! ! !"
그런 유헌을 지나친 샤한은 엄청난 속도로 유적지를 벗어났다.
어떻게든 일단 저 용의 시야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렇다 해도 드래곤이 인간을 놓칠리도 없고, 눈에 상처를 입힌 자신을 살려둘 거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우선은 살고 보자는 심정에 후들거리는 다리를 재촉하
며 있는 힘껏 뛰었다.
[네 이놈, 샤한!!!!!!!]
엄청난 울림이 뒤에서 들리고 그 아름답던 유적이 서서히 무너져 가기 시작한다.
달리면서 뒤를 돌아본 유헌은 한쪽눈을 감은채 몸을 반쯤 드러낸 용이 포효를 하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극장 화면속의 용가리나 에어리언을 접할때와 비교도 안되는 현실감과 공포로 치
가 떨린다는 것을 처음 느껴본다.
"도대체 저건 뭐야?! !"
"제길, 뭐긴 뭐야. 드래곤이지!!!"
공포로 굳어진 듯 쇳소리를 내는 유헌의 질문에 발악하 듯 외친 샤한은 다시금 들
리는 엄청난 괴성에 안색을 달리했다.
"날 죽이려고 안달이 난 빌어먹을 도마뱀이다!!!"
"그런........헉?! !"
제정신이 아닌 듯 악을 쓰는 샤한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달려가던 유헌은 머
리위로 들이워진 그늘에 안색을 달리하며 반사적으로 얼굴을 들어 보였다.
"제기랄, 위! ! !"
커다란 날개를 활짝 핀 드래곤이 복수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을 받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쓰러질뻔 했지만, 간신히 자
세를 잡은 유헌은 이어지는 용의 행동에 입을 벌렸다.
서서히 벌어진 용의 입안에 커다랗고 거대한 마력이 응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판타지나 비현실에 관해 관심도 흥미도 없던 유헌은, 현실로 돌아간 다음 이
곳으로 되돌아 오기 위해 여러 장르의 책을 습득했다.
그 중에 너무도 당연하게 판타지도 들어가 있어서, 용의 모습만으로도 그가 무엇을
할지 알수 있었다.
".............브레스다."
유크렌이 카일에게 날렸다는 그 브레스가 지금 자신을 향하고 있는 거다.
고오오오오오------
그에 맞춰서 주변의 공기가 급격하게 흔들리자 앞서 달려가던 샤한이 움직임을 멈
추고 뻣뻣해진 고개를 들어 허공의 용을 올려다 보았다.
점점 거대하게 증가하던 마력이 이내 원의 모양으로 변해 주변의 마도력을 급속하
게 빨아 들이는 모습을 멍하니 감상하던 샤한은 달리던 유헌이 자신의 몸에 부딫히
자 반사적으로 중심을 잡았지만, 부딫힌 유헌은 호되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파-'하고 느긋한 감상을 날리던 유헌은 이내 숨을 들이키고 위를 올려봤다.
"이봐..뭔가 해보라고..."
"그러는 샤한이야 말로.. 뭔가 해보시죠."
"그래서 검 날렸잖아. 덕분에 화난 그녀가 저 난리인 거고...."
샤한의 웅얼거리는 말에 '아아-'하고 고개를 끄덕여 보이던 유헌은 그렇다면 그가
가만히 있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다는 건가하고 멍하니 생각해 보았다.
드래곤의 입에 흡입구가 된것처럼 주변의 모든 것들을 빨아 들이고 있었다.
머리카락과 옷을 마구 나부꼈지만 몸은 바닥에 달라붙은 듯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누군가 뺨을 쳐서 이게 꿈이라고 말해 준다면..라고 멍하니 생각하던 유헌은 갑자
기 공기가 정지한 것을 느꼈다.
말 그래도 모든 것이 정지했다.
공기도, 마력도, 눈앞의 샤한도. 그리고 자신도.
숨조차 쉴수 없었던 그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적룡의 입 앞에서 그 크기를 더하던
붉은 공이 자신들을 향해 쏫아져 내린다.
....죽는다.
일순 유헌의 머리속에 떠오른 것이다.
"남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하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지.
그렇게 할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 생기게 되는 걸까."
자리에서 일어나 양반다리를 한채인 융텐은 자신의 어깨를 두들이기 시작했다.
루드빌에게 이런 제지를 당하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 행동했던 때와 지금은 다르기
에 저도 모르게 긴장한 모양인지 온몸이 저릿저릿하다. 하지만 인간들 앞에서 내색
하지 않으려 폼나지도 않은 모습으로 무게를 잡으려니 아주 죽겠다.
저 칸이라는 녀석이 제 정신이어서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마구 비웃어 댔다면
아마도 자신은.....한동안 지하로 내려다 끙끙대고 있을지도.
약간 오싹한 상상을 하며 '아 싫다-'라는 표정을 짓어 보이던 융텐은 자신을 빤히
내려다 보는 젤을 올려다 보았다.
좀더 듣고싶고, 알고 싶다. 될수만 있다면 유헌의 그런 능력을 배우고도 싶다-라는
열망에 찬 그 눈빛을 바라보던 융텐은 속으로 조소했다.
이렇다니깐- 인간이란, 자신이 것이 아니고 될수도 없는 것에 이렇게나 목을 메니
이런 귀찮은 일들이 생기는게 아닌가.
"그렇다면 유헌군은..마력을 사용할수 없지만, 남의 마력이 발동중이면 그것을 끌
여들여 되사용할수 있다는 겁니까? 자신의 것으로 운용시켜서?"
"그렇지. 녀석은 묘하단 말야. 남들이 죽기 살기로 공격을 해와도 유헌에게는 그게
방어가 되는 격이지. 공격을 공격으로 되돌릴수 있으니- 뭐, 이건 마력의 경우고
신체의 능력은 어떻게 되있는지는 모르지만, 녀석 검을 꽤나 잘쓰는 것 같더라고."
".........그렇죠."
직접 유헌이 검을 쓰는 것을 본적은 없었지만, 최근 주의에서 그의 실력이 꽤나 좋
다는 소리를 들었다.
마른 것 같은 체형과 어울리지않게 근육이 잘 다져졌고, 완력이 좋다고-
마력에 대한 그 희귀능력이라던가, 검에 대한 평가를 종합해보면 유헌이 아주 강하
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 결과에 쓴웃음을 짓던 노웬은 아직 뭔가를 더 말하고 싶
은 듯한 융텐의 모습에 고개를 그리로 숙였다.
팔장을 끼고 바닥을 바라보던 융텐은 길게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추측이지만.....
다른세계의 인간들이 이곳으로 오면 뭔가 특별한 능력을 얻는것 같다."
"....그 말은?"
"유헌이나 미할라말고 이곳에 넘어온 이계인들의 수는 꽤 되지.
개중엔 적응을 못하고 최악의 수를 선택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정말로 뛰어난 능력
을 보이던 인간들도 있어서 말야."
다른 세계의 인간들이 이 곳에 온 수가 꽤 된다는 융텐의 말에 젤과 노웬은 놀란 표
정을 지었다.
미할라라면 저 서의 여왕의 기둥의 주인공이다.
이 여왕도 유헌과 같은 이계인이었단 말인가. 묘한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을 바라보
던 융텐은 복잡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끙끙댔다.
몸이 작아져서 머리도 작아진건지 생각하는거랑 굴리는 게 꽤나 힘이든다.
이 녀석들에게 말을 하면 할수록 뭔가 손에 잡힐듯한 무엇가가 떠오르지만, 그게
잘 기억나지 않아 무척이나 괴롭다.
양반다리를 한채로 머리에 손을 올리고 있는 도마뱀의 모습은 무척이나 이질적은
거라 젤과 함께 침중한 분위기를 보이던 노웬은 이내 한숨을 쉬며 몸을 뒤로 눕혔
다.
덜컹.
융텐과의 대화에 정신이 팔려서 어느새 마차가 출발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전에 나누어진 길목에서 샤르비나는 이미 떠났는지 그녀의 눈에 띄던 화려한 마차
가 보이지 않음에 속으로 혀를 찬 노웬은 라헨이 어느쪽으로 갈길을 정했는지를 알
기위해 창을 열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옆에 앉은 젤또한 자신이 이해할수 없는 크기의 내용을 들은지라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팔장을 낀채로 몸을 뒤로 눕혔다.
"첫번째 아이는 기초를 잡았고, 두번째 아이는 나라를 세웠고, 세번째 아이는 대륙
를 강대하게 했다. 그리고 네번째 아이는 역사를 꽃피웠고, 다섯번째 아이는 흐름
을 바로 잡았다라.....
...........그렇다면 여섯번째 아이가 할일은 무엇일까?"
" ? "
"여섯번째 아이가... 이 대륙에서 희생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융텐님?"
또다시 알수없는 소리를 하는 용의 모습에 얼굴을 돌리려던 노웬은 자신의 부름에
다가온 라헨이 얼굴을 내밀자, 다시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일단 어떤 경로로 이동하는지 알고 싶어서 부른겁니다."
"일단 이 길이 나있는대로 죽 가다가 중간에 빠진다고 하더군, 그게 제일 낳다고.
하지만 그 지름길이 이번에 비가 온탓으로 길이 약간 험할수도 있다고 하던데."
".........에스에게 의논한 겁니까?"
"어쩔수 없잖아. 난 그런거 잘 모른다고-"
험악한 얼굴에 부리부리한 눈동자로 바라보니 할말이 없다.
에즈의 일때문에 기운이 없는 그에게 일 문제로 굳이 신경을 쓰이게 하고싶지 않아
라헨에게 맡긴 거였는데, 이 단순한 남자가 그걸 에스에게 부탁했다는 거다.
다소 어이없는 기분이 들어 헛웃음을 흘린 노웬이지만, 전혀 잘못이 없다는 라헨의
얼굴에 알았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하긴, 이 남자보단 에스의 선택이 더 신용이 가긴하다.
오히려 더 잘된일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노웬은 갑자기 뒤에서 따라오
던 마차가 소란스럽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맨뒤는 유크렌과 오브가 타고 있는데..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보고 오지."
딱딱하게 굳은 노웬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그의 어깨를 두들여 보인 라헨은 말
머리를 돌려 뒤로 다가갔다.
하지만 다가갈수도 점점 소란스러움이 커지는 것 같다.
아니, 이것은 소란이 아니라 누군가서 소리를 지르는 듯한... 맨뒤의 마찬안에서의
소동은 아닌듯 창으로 얼굴을 내민 오브는 라헨을 발견하자마자 무슨 일이냐고 물
어온다.
그렇게 물어봐도 그가 알리가 없다.
"....글쎄.."
모른다고 입을 열려던 그는 그러나 오브의 마차뒤로 엄청난 먼지구름을 내며 달려
오는 무리들에 숨을 삼키고 눈을 부릎떴다. 라헨이 본것을 눈치챈 오브도 눈을 동
그랗게 뜬채로 '저게 뭐야..?'라고 중얼거린다.
엄청난 기세로 이쪽으로 말을 몰고오는 사내들은 익히 알고 있는 자들이다.
바로 샤르비나의 호위인 자들로 방금전까지만 해도 얼굴을 마주하고 가벼운 농을
주고받닸가 몇분전에 헤어졌는데... 미간을 좁히며 자신들에게 달려오는 자들의 얼
굴을 확인하던 라헨은 그들의 급박하고 뭔가 당황한 듯한 얼굴과 그 가운데에 위치
한 자의 품에 안긴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을 발견하고 안색을 달리했다.
뭔가 큰일이 생긴거라고 확신한 그의 귀로 달려오는 사내 중 하나가 큰소리로 외친
다.
"적이다-! !"
"너희들에겐 적은 아니라고...."
요란한 소리를 질러대며 칸크빌레 일행들에게 달려가는 기사들을 바라보던 중앙
국 소속의 기사는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자신의 옆에 있는 두 사람의 모
습에 허언을 한것을 깨닭곤 안색을 굳히며 입을 다물었다.
그런 기사의 태도가 어찌되었던 무척이나 담담한 얼굴의 카일과 요크발은 아래의
상황을 주시했다.
과연 드래곤의 능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오십에 헤아리는 기사들과 용병들이 단숨에
칸크빌레가 있는 지점으로 이동할수가 있었다. 수는 적지만 여간내기가 아닌 칸들
에게 바로 습격을 하기전에 그들에게서 떨어진 무리를 먼저 친 요크발은 그들이 이
곳 동에서 꽤나 세력이 큰 나라의 기사들은 것과, 그 기사들이 저렇게나 지키려고
하는 존재가 바로 샤르비나라는 것을 알아내곤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이곳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이미 알고있는데다, 그녀와는 오래전부터 친
분이 있었던 사이인거다.
동생인 샤한과 달리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던 샤르비나는 종종 요크발 가문과 혈연
관계가 있는것이 아닌가 하고 오해를 받기도 했었던 것이다. 그다지 닮은 얼굴은
아니나 냉소적인 요크발과 새침한 샤르비나는 어떳보면 꽤나 닮은 외모인거다.
그래서 저 적룡이 샤한남매를 꽤나 싫어했었지.
그런 비천한 것들이 감히 요크발의 질을 떨어뜨린다 하여.
.....그러고 보니 한때는 루드빌과 자신의 사이는 꽤나 좋지 않았는가.
"일단 상황을 보다가 중간에 칠까... 어때? 카일?"
자신답지 않은 계획에 분명 '그대답지 않게 왜 그러나, 지금 당장 합류하자고-'라
는 말을 들을 것을 기대한 요크발은 아무 반응이 없는 카일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
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푸른 눈동자가 아무 감정을 담지않고 칸크빌레의
마차를 주시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나직히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보니 저 일행엔 에스가 있다.
저 카일이라는 사내가 최초이자 최후로 이렇게나 집착을 하는 인간인 에스라한이
라는 사내가 말이지.
"....가볼까."
말을 걸어도 제대로 대답을 할 기세가 아니기에 카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인 요크
발은 마지막으로 상대의 얼굴의 반을 가린 철가면에 시선을 던지며 말의 고삐를 잡
았다.
자신들은 루드빌의 도움으로 여러가지 면에서 저들보다 유리한 입장이다.
이런 엄청난 기회에 또다시 물러나게 된다면 그만한 수치는 없는거다라며 나직히
이를 간 요크발은 서서히 몸의 근력을 높혔다.
이번에야 말로, 끝을 낼것이다.
"라프헨, 들어가 있어라-!!"
갑작스런 소란에 걱정스러운 듯 뒤를 돌아보고 있던 라프헨은 자신을 허리에 팔을
두르며 마찬안으로 밀어넣는 라헨의 행동에 당황한 듯 입을 벌렸다.
그러나 다급하게 자신을 안에 일단 집어넣고 입술을 겹치는 행동에 몸에 힘을 빼고
순순히 마차로 들어가 앉았다.
문을 열린 상태로 그옆에 붙어 말을 모는 행동은 상당히 위험한 것이지만, 아랑곳
하지 않은 라헨은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라프헨의 볼을 가볍게 두들이며 마
차의 문을 닫았다.
"절대로 이이상 못 오게 막을테니, 칸님을 부탁한다."
요란하다 했더니 적들이 나타난 거다.
단숨에 사색이 된 라프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안에 안아있던 칸에게 시선을 돌
렸다. 유헌이 그 일로 사라진 뒤로 칸은 계속 저 상태다.
칸의 옆으로 다가가 그의 팔을 잡는 라프헨의 모습을 확인한 라헨은 나머지 일행들
에게 무기를 던지며 어느새 마차에서 내려 말에 올라탄 노웬에게 다가갔다.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르겠군. 이 부근은 숨을데도 없는데 말야."
"필시 적룡 루드빌의 도움을 받은 거겠지."
"....뭐야.. 이건?"
노웬의 어깨에서 불쑥 나타난 말하는 도마뱀의 모습에 라헨의 얼굴이 묘하게 이그
러 진다. 그런 그의 표정에 뭐라 설명할 길이 없는 노웬은 조금 어색한 미소를 흘리
며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샤르비나의 호위기사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무척이나 급하게 온듯 날린 흙먼지가 덕지덕지 얼굴에 묻은 그 모습은 난민을 연상
케 한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흡. 그게, 갑자기 복면을 한 녀석들이 나타나선.."
"숫자는?"
"대략 20~30정도.."
그 정도면 승산이 있다.
물론 자신들만 있었다면, 전력에 많은 구멍이 난 상태인지라 그들을 상대하기에 다
소 어려움을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눈앞의 이 기사들의 손을 빌린다면 그닥 어려
운 싸움되지 않을 듯 싶었다.
이들이 워낙에 급하게 달려온지라 그 뒤를 쫒는 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곧
모습을 들어낼 것이다.
어서 샤르비나의 도움을 받아 자리를 배치해 두는 게 상대하기에 훨씬 수월해진다.
"도움을 주실수 있으십니까?"
"........뭐."
기사는 눈앞의 은발을 지닌 미형의 사내의 얼굴을 홀린듯이 바라 보았다.
처음엔 샤르비나님이 위험해 빠졌을때 도와준 잡다한 구성원이 모인 자들중에 가
장 유약한 자로 봤다. 실제로 그는 자신을 음유시인이라고 소개했고 언제나 약사라
는 여성과 함께 마차에 올라 밖에 나오는 횟수도 적었다.
그래서 그를 외모만 번지르르한 사내로 정의했었는데 지금의 모습은 뭔가.
치렁치렁하게 늘어 뜨려놓았던 천은 벗은채고 한손에 들고있던 악기는 어디로 사
라진건지 검과 활을 차고 있다.
게다가 전과는 다르게 예리한 기운을 내뿜는 눈하며...
갑작스런 노웬의 변신에 당황한 표정을 짓던 기사는 정신없이 바라보던 당사자가
작게 헛기침을 하자 얼굴을 붉히며 정신을 차렸다. 이런 상황에서 딴 생각을 빠지
다니 있을 법한 일인가.
떨떠름한 표저을 지으며 아까 노웬이 한말을 기억해낸 그는 대답을 꺼려했다.
일단 자신은 샤르비나를 호위하는 입장이니 그를 두고 갈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자
신들의 뒤를 쫒는 자들은 이들이서 물리칠 만한 수와 실력자들이 아니다.
망설이는 그의 뒤로 작은 손이 나타나 어깨를 두들인다.
"물론, 저희들은 당신들에게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샤르비나님!!"
다른 기사의 말에 올라타 있던 샤르비나는 다소 창백한 안색인채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노리는게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된 이상 힘을 합치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요."
"하지만.. 샤르비나님."
"절 왕의 곁으로 데려다 주실거라고 믿겠습니다."
그녀를 생각한다면 여기서 지체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도망을 가야한다.
그러나 함께 싸우라는 그녀의 말에 당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왕의 총비이고, 아이를 지닌 몸이니 그 안전의 돌보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
다. 그런 자신의 말을 알고 있다는 듯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직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기사를 입을 다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저들을 상대할 것이나, 위험한 상황이 된다면 저희는 망설이지 않고 샤르비
나님을 데리고 도망을 칠것입니다."
"물론입니다."
"...........저희들은 무엇을 하면 될까요?"
긴장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기사의 얼굴을 확인한 노웬은 그의 뒤에서 작게 윙
크를 하는 샤르비나에게 작게 고개를 까닥인 다음 입을 열었다.
그들은 상황이 위험해질 때 그녀를 데리고 이곳을 도망갈 생각이겠지만, 그게 생각
대로 쉽게 될지 의문이다.
보이는 적이 20여명이라면 실제로 잠복하고 있는 수는 그것의 2~3배 일것이다.
지금까지 그런 방법을 사용했고, 또한 그럴 놈들이니. 샤르비나를 습격한 이들이
중앙국의 기사들일거라고 확신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기사들에게 자리를 배치한
노웬은 기사 중 하나에게 샤르비나를 칸들이 있는 마차로 옮기고, 그 주변을 호위
하라고 지시한다.
노웬의 빈틈없는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확인하며 기사들을 긴
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나 능숙하게 사람을 다루줄 아는 자라면 분명 검술도
훌륭한 실력자일 것이다.
그런 자가 어째서 변장을 하고 돌아 다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워낙에 다양
한 인종들이 모여있는 '동'이고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이내 신경을 돌린 그들은 손
에 검을 쥐었다.
"훈련이 잘되어 있군요."
"일단 동에서 가장 강대한 국력을 지닌 나라의 기사들이니 말야."
".....우리들을 쫒는 건 역시 중앙인가요?"
나직히 말하는 에스의 말에 노웬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는 좀 심한 일을 벌여도 그냥 묵묵히 바라보거나 요크발을 시켜 가볍게 두들여
보던 황제가 근래에 들어 진심이 되었는지, 이런식으로 일행들을 몰아 붙이는 일이
빈번하다. 게다가 이번엔 그 루드빌까지 나섰으니 황제는 자신들을 몰살할 생각일
지도모른다는 최악의 결과를 추려낼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 나타난 자들도 만만찮다는 말인데....
에즈를 닮은 인형을 보내 유헌과 샤한을 사라지게 했고, 그덕분에 칸은 상당히 혼
란스러워 하는 상태. 결과적으로 싸울수 있는 사람들은 자신과 에스, 라헨, 젤, 오
브와 저 기사들밖에 없다는 거다.
이곳에 들어올때부터 묘하게 불안하다 했더니 이런 식으로 황제의 계략에 걸려들
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번 싸움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흐르자
작게 전율을 느낀 노웬은 이를 악물고 정면을 응시했다.
"..옵니다!!"
멀리서 좀더 큰 먼지구름을 만들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복면인들의 모습에 라헨은
헛웃음을 지었다.
"어지간히 무개성한 놈들이군.
매번 저런 복장으로 쳐들어오니 상대가 누군지 모를리가 있나-"
전과 같이 검은 복장에 복면을 한 중앙국 기사들의 모습에 일순 일행내에 실소가
흘렀지만, 점점 다가오는 그 모습들에 자신들의 무기를 잡으며 표정을 굳힌다.
창!!
처음으로 검을 부딫히는 소리가 싸움의 시작이라는 듯이 덮치는 복면인들을 막으
며 우왕좌왕하는 칸쪽의 기사들의 모습에 요크발은 실소를 흘렸다.
어디서 저런 조무래기들을 모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겨우 그 실력으로 중앙국의 기
사들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다.
십여년전에 칸을 자리에서 끌어 내릴때, 그에게 충성을 맹새한 다수의 실력있는 가
시들이 모두 참수를 당해 확실히 전과 같지 않은 중앙의 기사단이다.
하지만 이빨이 빠져도 호랑이는 맹수의 왕인 법이다.
옆에 서있는 시종에게 애검을 받아든 요크발은 그것에 옆구리에 차며 근처에 있는
기사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복면을 쓰는 자들을 확인하며 자신의 옆의 카일을 바라본 그는 푸른
눈동자가 냉정을 찾은 것을 보고 입가의 미소를 지었다.
"자-아. ..........가볼까나?"
요크발의 말을 기점으로 기사들에 망설임없이 절벽을 타고 내려가 한창 전투중인
칸크빌레 일행들의 뒤를 덮친다.
수가 수이다 보니 자연히 엄청난 굉음이 울렸고, 그 소리에 당황한 에스는 얼굴을
돌려 절벽을 타고 내려오는 일단의 무리에 안색을 굳혔다.
어느새 저런 숫자의 인간들이 나타났단 말인가. 게다가 그들이 나타난 곳은 자신들
이 싸우고 있는 곳의 반대편, 칸과 샤르비나등이 타고있는 마차 쪽이다.
"노웬님!!"
당황한 에스의 외침과 더불어 엄청난 마력탄이 복면인들이 내려오던 절벽의 중간
을 끊여 놓는다.
이미 바닥에 발을 디딘 자들은 무사했지만, 중간에 있던 자들이나 그 뒤에 있던 자
들은 마력탄에 맞거나 절벽이 무너져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갔다.
그 모습에 혀를 찬 요크발은 바닥에 발을 디딘채 흥분한 상태의 말을 다독이며 자
신들에게 마력탄을 날린 여자의 모습을 확인했다.
분명, 칸크빌레쪽의 유일한 마도사 젤이라는 여자다.
엄청난 방해를 하는구나 싶게 제 이발, 삼발을 남발하는 모습에 다소 당황한 요크
발은 근처있던 카일을 돌아 보았다.
"너에게도 마도사가 있었잖나!! 그 녀석은 어디로 간거야?!"
"..........모르지, 그건."
다급한 상황에 맞지않게 느긋하게 대답하는 카일의 모습에 이를 간 요크발은 일단
제대로 내려온 기사들을 정리하며 난잡한 주위를 둘러 보았다.
여기저기 둘러 보았는데도 칸크빌레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자신들의 습격을 눈치채고 이미 달아난 것인가, 아니면 어딘가에 숨이 있는 것이
가. 주변을 살펴보던 그는 가흔이라는 소년의 모습도 보이질 않자 미간을 찌뿌리며
시선을 돌리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검을 뽑아드는 적군 기사
의 모습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일행들이 싸우고 있는 이 마당에 이런곳에서 무엇을 하는 건가.
말의 고삐를 잡으며 자신의 옆의 마차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않는 그모습에 눈빛
을 빛낸 요크발은 주변의 기사들을 선동하며 말의 옆구리를 박찼다.
"그런 곳에 쥐새끼처럼 숨어있는 거냐- 칸크빌레-!!"
콰앙! !
무시무시한 기세로 마차의 앞부분에 검을 내리친 요크발은 그와 동시에 밖으로 튀
어나오는 인물들을 확인하곤 입꼬리를 올렸다.
초록색 머리카락을 지닌 소년이 붉은 머리카락을 지닌 여성을 안고 바닥을 구르는
모습을 확인한 요크발은 순간 답답한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외면하고 칸의 모습을
찾았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기사가 뒤에 있던 중앙국 소속의 사내의 검에 잘려나가는 것
을 무심하게 시선을 주던 그는 그러나 보이질 않는 칸의 모습에 미간을 찌뿌렸다.
"요크발... 이런 짓을 하다니..!!"
".........오랜만이군 샤르비나."
라프헨의 품에 안긴 샤르비나는 자신의 배를 감싸 안으며 앙칼지게 외쳤다.
그녀완 그닥 대면하고 싶지 않았던 요크발은 그러나 자신을 부르는 그녀의 음성에
얼굴을 굳히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지금은 다른 나라에 가 총애를 받는 천으로 호강하고 있는 그녀도 한때는 자신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녀이기에 자신의 신경을 건드려 죽임을 당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말은 조심하는게 좋다. 샤르비나, 전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들은 적이야."
".................차가운 남자."
이를 갈며 표독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동자는 전과 변함이 없어 약간의 향수
를 느끼게 해준다.
멀리 마차에 접근한 자신에게 또다시 손을 내미는 여마도사의 모습이 보였지만, 그
리로 달려나간 몇몇의 기사들 덕분에 제대로 힘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그것을 확인한 후 좀더 느긋한 모습을 취한 요크발은 말의 중심을 잡으며 다시 검
을 위로 올려 있는 힘껏 마차를 내려쳤다.
그런 자신의 행동에 라프헨이라는 소년이 입을 막고 비명을 지르자, 요크발은 회심
의 미소를 지었다.
칸은 분명 이안에 있는 거다.
그런데도 나오지 않다니..!! 이런 비겁한 녀석.
"그만두세요, 무슨짓을 하는 겁니까!!"
다급하게 손을 뻗던 라프헨은 옆에 있던 말의 뒷발에 얼굴이 걷어채여 바닥으로 쓰
러졌다. 그 모습에 안색을 굳힌 샤르비나는 그의 몸을 끌어 안으며 자신을 둘러싸
고 있는 사내들을 노려 보았다.
명령만 내리면 당장에 자신들을 죽일 것 같은 그 모습들에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
지만, 내색하지 않은 그녀는 더 날카로운 시선을 그들에게 보냈다.
쾅!!
"마차가 부숴지기 전에 나오는게 좋을거다, 카..!!"
"여전히 다혈질이야, 요크 넌-"
"............."
요크.
요크라니.
헛웃음이 나는 것을 느끼며 검을 든 손을 떨어뜨린 요크발은 마차에서 멀어졌다.
그런 자신을 마차위에서 서서 빤히 내려다 보던 사내는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복
면인들을 흩어 보았다. 그런 그의 눈빛을 받은 자들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키며
말을 탄채로 요크발과 마찬가지로 마차의 주변에서 물러난다.
접해서는 안될것은 접한 자들처럼 서서히 물러가는 자들을 바라보던 칸은 입가를
올려보이며 싸늘한 냉소를 지었다.
"떼거지로 몰려 왔구만-"
황금빛의 눈동자.
검청빛의 머리카락.
다부진 체구와 꼿꼿히 세워진 등.
그리고 한번보면 잊을수 없는 아름다운 얼굴.
"..........칸크빌레 황제다."
"살해왕이......어떻게."
"..믿을수가 없어.. 살아 계시다니...."
기사들 내부로 급속도로 확산되는 수근거림에 요크발은 당황하며 주변을 돌아 보
았다. 이자키엘 황제가 성인이 되었으니 칸또한 당연히 성인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하고 직접 보는 것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라, 생전의 칸크빌레의 모습
그대로 나타난 칸에게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얼굴을 아는 모든 자들이 동요하
고 있는 거다. 검을 휘두르며 조용하라고 소리질렀지만, 기사들은 멍한 표정으로
연신 그의 이름과 연호를 중얼거릴 뿐이다.
이러면 정말로 일이 그르칠거라는 생각에 이를 악문 요크발에 배에 힘을 주고 소리
를 지르려는 찰나, 무리의 가운데에 있던 사내가 있는 힘껏 외쳤다.
"황제다! ! ! !"
벼락에 맞은 듯한 그 울림에 웅성거리던 사내들의 움직임이 멈춘다.
그것은 앞에서 노웬일행들과 싸우던 자들도 마찬가지로, 샤르비나의 호위로 왔던
자들도 햇빛아래 들어난 칸의 전면목을 망연자실하게 바라 보았다.
망토를 뒤집어 쓰고 있어서 몰라봤다.
설마하니 그가 칸크빌레 일줄은 몰랐다.
즉위기간 동안 대륙을 들었다 놨다한 일대의 폐왕의 얼굴은 그들이 부모의 얼굴보
다 더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언제 자신들의 왕국에 쳐들어 올지 모
르니 그가 즉위한 기간동안 언제나, 언제나 긴장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런 그가, 죽었다고 알려진 그가 이곳에 있었다니..
마차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칸은 기지개를 피듯이 두손을 위로 올리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주변을 둘러싼 자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모두 반역죄다."
그 의기양양한 음성에 요크발은 정신이 아득해 짐을 느꼈다
반역죄라니.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 가당키나 한것인지.
울컥하는 분노하는 내면에, 알게 모르게 꿈틀거리는 미묘한 부분이 있어 미간을 찌
뿌린 요크발은 그 감정을 지우려는 듯이 검을 빼들었다.
".........칸크발레."
멍하니 중얼거리던 기사는 예전에 있었던 일화를 기억해 냈다.
매년 한번씩 새로운 시가들의 임명식에 있어 중앙국의 황제들의 연호를 열거하는
부분이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현황제의 부친의 이름까지 오고 그 다음에 이자키
엘 황제의 연호가 불려질 때 가운데에 있던 소년기사가 손을 들었다.
어디까지나 의식일뿐인 이 행사에 이런식으로 손을 든다던가 하는 경우가 없었기
에 신관들과 관계자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소년은 손을 내리지 않았다.
단지 시선을 중앙에 앉아있는 황제에게 던지며 사심없이 물었던 것이다.
- 칸크빌레 황제폐하의 연호는 왜 빠진 겁니까.
정적.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었으나 건드리지 않았던 부분은 지적하는 그 소년기사의 질
문에 주변에 있던 자들이 경악하며 그 주변에서 멀어졌다.
100여명의 임명식에 혼자서 가운데에 서있던 소년은 도리어 주변에서 왜 그러는지
알수없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일단 식을 마친 황
제는 불쾌한 듯 찌뿌린 이마를 필 생각을 안하고 그 자리에서 나가 다음에 있는 연
회에도 참가치 않고 그냥 처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황제의 면전에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한 소년기사와 그의 가문은 다음날 멸
문 당했다는 소문이 떠돌았을 뿐이다.
암묵적이고 실제적인 그 경고에 두번다시 칸크빌레 황제에 대해 입을 올리는 자들
은 없었지만, 어느 귀족가에 가도 그의 그림이나 초상화는 꼭 하나씩 감춰있다.
그 이유는 알수없었지만 굳이 이유를 묻자면 이미 죽은 분이니 추모하는 뜻에서 하
나 정도는-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한번도 만나지 못한 칸크빌레 황제의 초상화를 소지하고 있다.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그것은 그의 비밀상자에 깊숙이 깊은 곳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죽은 이에 대해 기억을 하나라도 남겨두는 것이라 스스로를 자위해 왔
건만, 이렇게 눈앞에 나타난 그를 보자니 말문이 막힌다.
그리고 스스로 되뇌이는 것이다.
자신들은 그를 기억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수많은 자들의 목을 베긴 했지만, 단 10년만에 중앙국을 수백년전, 그 당시의 강대
국으로 다시금 키워낸 폐황제를.
"칸크빌레!!!"
소리를 지르며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요크발의 모습에 가만히 서있던 칸이 옆구리
에 달린 검을 빼들었다.
햇빛아래 반짝이는 무기를 내려다 보던 그는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유헌은 지금 이 자리에 없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반드시 무사히 살아있을 거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버틸수가 없다.
유헌을 사랑하는 자로서의 칸은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이끄
는 칸또한 중요한 것이다. 입술을 깨문 칸은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요크발의 검을
막으며 그대로 마차위에서 뛰어 내려왔다.
자신의 기세에 옆으로 몸이 기우는 붉은 머리 사내의 모습에 이를 들어낸 칸은 나
지막히 으르렁거렸다.
"네놈은 죽어도 날 이기지 못한다."
".....헛소리-!!!"
카-앙! !
칸의 음성에 울컥한 요크발은 말에서 내려와 다시금 그에게 검을 휘둘렀다.
지잉하고 올라오는 팔의 통증에 입술을 깨물었지만, 검을 놓치는 그런 어리석은 일
은 이번엔 하지 않았다. 검을 다잡으며 미친듯이 칸에게 검을 휘두르던 요크발은
속으로 연신 '이번만은- 이번만은-'을 되내었다.
이번만은 반드시 눈앞의 존재를 이겨 보일테다.
그래서, 그래서... 자신이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할
것이다.
"칸님!!"
요크발과 결투를 하는 칸의 모습에 당황한 에스가 검을 마주한 자를 뒤로 하고 그
쪽으로 말을 움직였다.
싸우던 자가 등을 보이는데도 상대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멍하니 칸크빌레의 모습을 주시하는 복면인들의 모습에 샤르비나의 기사들은 당
황한 듯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검을 다잡고 있었다.
멍한 상태의 상대를 베는 비겁한 짓을 할수가 없는 거겠지.
그런 그들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은 노웬은 멀리 요크발과 검을 휘두르는 칸의 모습
에 안도감을 느꼈다.
아주, 자신을 잃어버린게 아닌거다- 저 분은.
다행이라는 감정과 주변의 중앙국소속 기사들의 모습에서 묘한 울렁거림은 느낌
노웬은 눈가를 누르며 자신과 대치했던 기사를 바라 보았다.
".........."
모두가 사실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의 통치를 잊지못한 자신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저들 또한
그들만의 방식으로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칸..!!"
"..........에스라한."
칸에게로 달려가던 에스는 자신의 앞을 막는 사내의 모습에 말을 멈췄다.
너무 급하게 세우느라 앞으로 튕겨져 나갈뻔도 했지만, 바로 자세를 잡아 그런 꼴
사나운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되었다.
여전히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반을 철가면으로 가린 카일의 얼굴에 에스는 묘한 표
정을 지었다.
저 얼굴은 가린 것은 유크렌에게 브레스를 맞아 흉터가 생겼기 때문인가
에스의 찌뿌린 미간에서 걱정의 빛을 읽은 카일은 눈을 가늘게 휘며 기분좋게 웃었
다.
"설마하나 날 걱정해 주는 건가?"
"..........말 그대로. 설마 그런걸 할리가 없잖아."
"상처 받았어. 정말로 가슴이 아프군."
얼굴을 찌뿌린 에스의 모습에 카일은 정말로 상처 받았다는 듯이 가슴에 손을 올리
고 신음소리를 냈다.
자신들을 잡기위해 저 많은 기사들을 끌고 온 주제에 그런 모습을 보이다니, 정말
로 대책없는 사내다라는 생각을 하며 에스는 허리춤에서 검을 빼들었다.
카일은 자신이 칸에게로 가는 것을 순순히 지켜볼 사람이 아니다.
반드시 방해를 할테니, 이번에야 말로 녀석을 쓰러뜨려 두번다시 자신에게 찝적거
리지 못하게 해줄테다-라는 결의를 다진 에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에스의 기
세에 가슴에 올린 손을 내린 카일은 말에서 자세를 바로하며 한숨을 쉬었다.
순순히 자신에게 오리라곤 생각치 않았지만, 상상하던대로 일이 진행되자 조금 씁
쓸한 기분이 든다.
어차피 질건데 왜 저리 앙탈을 부리는지-
"요번에 널 빼앗길때 생각한데 뭔지 아나?"
카일의 말에 에스는 저도 모르게 왜냐고 물을 뻔 했지만, 입술을 깨물고 그를 노려
보았다. 그런 에스의 날카로운 푸른빛의 눈동자에 기분좋은 고양감을 느끼며 카일
은 입술을 혀로 핣았다.
"이번에 잡으면 절대로- 절대로 밖에 내놓지 않아."
"......뭐?"
"꽁꽁 묶어서 저택 깊숙한 곳에 넣어 둬야지. 나만 바라보고, 나만이 볼수 있도록-"
"미친."
그야말로 미친소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진지한 눈동자에 그가
허언을 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수가 있다.
그래서 더 기분이 안 좋아진 에스는 말의 허리를 박치며 그에게 검을 휘둘렀다.
목을 노리고 날라오는 검은 가볍게 피한 카일은 에스의 손목을 노리며 연신 검을
휘둘렀다. 얕고 깊게, 빠르게 자신의 손목만은 노리던 그의 모습에 자신에게 상처
를 입히지 않고 검을 떨어뜨리게 할 생각이라는 것을 눈치챈 에스는 이를 갈았다.
이 녀석은, 이런 장난으로 날 쓰러뜨릴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알수없는 분함에 팔을 뒤로 빼들어 있는 힘껏 앞으로 찌르는 에스의 모습에 카일은
눈동 크게 뜨며 뒤로 물러났다.
찌-익.
가슴부분의 옷자락을 자르고 다시 회수되는 에스의 검에 카일은 나직히 휘파람을
불었다. 전보다 실력이 더 좋아졌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과, 자신의 몸에 손을 댈만큼 실력이
좋아진 그 상태에 점점더 기분이 좋아진 카일은 이를 들어내고 웃었다.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진심으로 상대해 주지.
검을 물리고 다시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그의 모습에 표정을 굳힌 카일은 등에 달려
있던 망토를 집어 던지며 말의 옆구를 발로 찼다.
창! ! !
"여전히 둔하구나, 요크-"
"그따위로 부르지 마라! !"
조롱조로 어릴적의 애칭을 부르는 칸의 모습에 요크발은 얼굴을 붉히며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여-차.'하는 장난스런 소리를 내며 칸이 뒤로 물러나자 그 주변을
둘러싸던 기사들이 저도 모르게 말을 뒤로 물린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울화통이 터지면서도 눈앞의 칸을 치워버린다는 일념으로 요
크발은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여-차!!"
그런 그의 검을 유유히 피해내는 칸이지만, 속으로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유헌이 걱정되어 끼니를 걸었더니 왠지 눈앞이 팽글팽글 도는 것이 몸에서 영양을
섭취해줘~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
매번 이긴 전적이 있던 요크발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언제 기운이 빠져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지 알수없는
노릇이다.
"받아라-! !"
"...쳇!!"
기운이 팔팔넘치는 요크발의 검을 정면으로 받은 칸은 순간 아차 싶었다.
팔으로 강한 충격이 느껴지더니 저도 모르게 손가락 몇개가 잡고있던 면에서 떨어
져 나간 것이다.
그대로 손에서 빠져나가 근처의 바닥으로 떨어지는 검의 궤적을 눈으로 좇던 칸은
잠시 그러고 있다가 자신을 바라보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는 요크발에게 어색하
게 이를 들어내며 웃는 얼굴을 만둘어 보였다.
"........잠깐 쉬었다가 할까나?"
"죽어라."
서늘하게 툭 내뱉은 그가 자신에게 검을 들고 내리치려는 순간 다시금 복면인들 사
이에서 엄청난 술렁거림에 생겨난다.
그와 동시에 다급하게 말에서 내린 몇몇이 칸에게 검을 휘두르는 요크발의 팔에 매
달려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네놈들, 무슨 짓을 하는 거냐-! !"
요크발의 호통에 핫하고 정신이 든 기사들은 살살 눈치를 보더니 자신도 왜 이러는
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잡는 손을 놓으려는 기색을 보이질 않는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신에게 죽자살자 매달리는 기사들의 모습에 요
크발은 이를 갈았다. 이것들이 집단으로 약을 해서 미친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감히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할리가 없잖은가-! !
"황제의 명을 거스르는 자는 가문이 망한다는 것을 모르는 거냐?! !"
"하지만!!!"
".........너는?"
칸의 뒤에서 나타난 저 기사는 분명 이 중에서 제일 나이가 어린 자였다.
그리고 자신과 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던 소년이기도 했다.
갑자기 몰린 시선에 얼굴을 붉히던 기사는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바로 눈앞
에 존재하는 황금빛 눈동자에 숨을 들이키더니, 저도 모르게 입술을 달싹였다.
"칸크빌레님이잖습니까."
"..........뭐?"
"카..칸크빌레 황제폐하잖습니다. 그... 우리들의 황제셨던..."
"네놈이 미친거로군, 그는 폐황제다. 우리들이 모시는 황제는 이자키엘 황제폐하뿐
이라는 것을 정말 모르는건 아니겠지. 그것을 잊었다면 당장 이 자리에서 죽어! !"
악에 박친 요크발의 음성에 기사를 숨을 들이키며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칸은 나직히 한숨을 쉬며 옆으로 살살살 걸음을 욺겼
다. 저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돌릴때 잽싸게 떨어진 검을 쥐어들 생각인 거다.
그런 그의 모습을 아까부터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던 요크발은 으르렁거렸다.
칸이 다시 검을 잡기전에 자신의 검으로 몸의 몸을 갈라야 한다.
그렇기 위해선 자신을 잡고있는 이 괘씸한 녀석들이 손을 놓게해야 한다.
이를 악문 요크발은 그 나름대로 부드러운 음성을 내뱉었다.
"칸크빌레는 십여년전에 죽었다. 모르는 것이 아닐텐데, 저 자는 가짜다."
".............그런."
"십여년전 중앙성 정문에 내걸렸던 얼굴을 기억한다면, 여기서 저자가 칸크빌레
니, 뭐라니 하는 헛소리를 하는 인간들은 없겠지."
"..............."
그래, 십여년전에 죽은 칸크빌레의 목은 중앙성 정문에서 한달동안 걸려져 있었다.
살점이 떨어지고 하얀 뼈가 들어나 뜨거운 햇빛 아래 바싹 마를때까지 걸어져 있었
던 것을 중앙에 사는 모든 이들이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것이다.
그래서, 대륙 모든 인간들이 칸크빌레가 죽었다고 생각할수 있는 거다.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기에 자신들은 비밀리에 살아남은 칸크빌레 잔당들을 지금
껏 몰아갈수 있었던 거란 말이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요크발의 모습에
숨을 삼킨 기사는 다소 떨리는 음성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요크발님께서 이 마차로 달려드시면서..
칸크빌레님의 이름을 부르시지 않았습니까."
"..........이런, 답답한 노....! ! !"
전같지 않게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는 기사의 모습에 정말로 분노한 요크발에 주먹
을 쥐며 소리를 지르려던 찰나 갑자기 엄청난 구토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요크발님?"
엄청난 분노를 표출하며 표효하던 요크발이 갑자기 안색을 굳히며 몸을 앞으로 숙
이자 그의 팔을 잡고있던 기사들이 당황하며 손을 놓기 시작했다. 덕분에 완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게된 그는 배를 감싸안으며 한손으로 입을 틀어 막았다.
굉장한 압력으로 누군가 배를 누른듯한 느낌과 뭔가가 입밖으로 튀어 나올것 같은
기분나쁜 감각에 제정신을 유지할수가 없었다.
땅바닥에 이마를 대며 완전히 바닥에 엎드린 자세가 된 그의 모습에 근처에 있던
기사들이 달려와 그의 몸을 부축한다.
"요크발님! !"
갑자기 몰려든 기사들이 요크발의 몸을 잡고 흔들었지만, 감겨진 그의 눈을 띄어질
기미없이 꽉 감겨있다.
점점 새파랗게 질리는 그 얼굴을 확인한 칸은 미간을 찌뿌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요크발은 알고있던 기사는 자신의 어깨를 잡아 뒤로 잡아 당기는 손길에 미간을 찌
뿌리다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고 입을 벌린채 순순히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기사들을 치우고 요크발의 얼굴에 손을 올린 칸은 한동안 그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확신했다. 루드빌의 신상에 뭔가 일이 생긴것이 틀림없다.
딱딱하게 굳은채로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칸은 얼굴을 들어 정신없이 자신
의 안색을 살피는 한 기사의 얼굴을 올려다 보며 입을 열었다.
"당장에 돌아가."
"...............네?"
이런 심각한 상황이지만, 칸크빌레와 대화를 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황금빛 눈동자에 홀린 듯 멍한 표정을 짓던 그는 자
신의 볼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에 '핫'하고 정신을 차렸다.
"멍하니 있지말고, 이 바보녀석을 데리고 돌아가란 말이다."
"......저.."
"더이상 지체하면 늦어! 어서 돌아가서 그 망할 드래곤에게 찾아가란 말이다!!"
낮은 음성으로 말하는 그의 박력에 눈을 깜박한 기사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
이고 요크발의 몸을 부축했다.
뭔가 이상했다.
자신들은 분명 황제의 명으로 요크발을 따라 한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이들을 몰살
하라는 명을 받았는데, 이런 식으로 돌아가게 되다니.
자신과 마찬가지인 듯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말에 오르는 동료들에 시선을 주다 역
시 뭔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얼굴을 돌리던 그는 아직까지 자신을 바라보고 있
는 황금빛 눈동자에 입을 다물었다.
저런 눈동자와 마주하곤 도저히 거절할수가 없다.
"이런,이런. 엄청 어이없는 퇴장."
자신의 어깨에 매달려 빨간 혀를 내미는 도마뱀에게 시선을 주던 노웬은 고개를 돌
려 분주히 떠날 준비를 하는 중앙국 기사들의 모습을 바라 보았다.
저들의 저런 모습은 다른 이들이 볼때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을 알것 같은 노웬은 아주 약간의 또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기분을 느끼며 주먹을 쥐었다.
끝이 보였던 여정에 다시금 새로운 길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루드빌의 몸에 뭔가 이상이 생긴 모양이야."
"...아무래도."
"저 녀석.. 뭔가 있는 녀석이군."
기사들에게 들려 힘없이 말에 앉혀진 요크발의 모습을 바라보던 노웬은 미간을 찌
뿌렸다. 저런 반응을 보면 분명히 루드빌에게 뭔가 일이 생겼다는 거다.
그것도 본체로 변했을 때에-
혹시 그녀는 유헌과 함께 있는 건가. 그래서 뭔가 일이 생겼을 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노웬은 갑자기 어깨쪽에 느껴지는 무게에 몸을 비틀거리다
가까스로 자세를 잡았다.
그대로 낙마할뻔 했다.
놀라 무게가 느껴진 곳에 얼굴을 돌린 그는 자신의 어깨에 매달린 10여세 정도의
긴 검은 머리카락으로 몸을 감싼 아름답게 생긴 소년의 모습에 입을 벌렸다.
나신의 몸으로 노웬의 한쪽 어깨에 매달린 소년은 붉은 입술을 올리며 한손으로 자
신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루드빌라겔의 몸에 이상이 생긴 덕분에, 이몸이 조금이나마 힘을 찾은 것 같군."
한발은 노웬의 다리에 한발은 말을 디딘 융텐은 기세좋게 외치며 주먹을 쥐었다.
그 모습에 노웬은 요상한 표정을 지으며 그답지 않은 얼굴을 지어 보였다.
그것은 이런 괴물같은-이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