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돌아다녀 보았지만, 도저히 나가는 길을 알수가 없다.
다 말라서 퍼석해진 바지단을 바라보던 돔은 느릿하게 자신의 주변을 돌아다니는
가흔이라는 소년을 바라 보았다.
작은 얼굴과 날씬한 체구에 키가 작을줄 알았는데, 의외로 키가 크다던가. 마른것
같은 몸도 사실은 근육에 덮여 있더던가 가만히 당할것 처럼 순한 녀석인줄 알았는
데, 사실은 한 성질머리 한 녀석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나선 돔은 뭔가 속았다는 기
분이 들었다.
그냥 주는대로 받을 것은 모습이라고 생각해서 그래서 저 제멋대로인 부친의 관심
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였다-인건가.
유헌은 유헌대로 자신을 탐색하듯이 아래위로 흩어보는 돔이라는 녀석의 시선에
당황하고 있는 중이었다. 간혹가다 알수없는 경계의 눈초리와 그러다가 짓는 뭔가
분하다는 표정에 유헌은 그의 얼굴을 흘낏흘낏 바라 보았다.
그것은 돔도 마찬가지여서 뭔가 묘한 기류가 두사람 사이로 흐른다.
"네녀석은 왜 이곳에 있는 건가. 그 칸이라는 녀석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게 아냐?"
"............그러는 너야말로 발챠에 있어야 하잖아."
"네가 알바 아니잖나."
"마찬가지다."
돔은 이렇게 까지 자신에게 건방지게 구는 인간은 처음이었기에 기가 막히다는 표
정으로 유헌을 바라 보았다.
칸크빌레가 황제일 당시엔 왕의 사랑을 받지 못해도 황태자라는 간판이 있어서 모
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고개를 들지 못했고, 황제가 폐위되고 발챠로 옮겨 살게 되
었어도 삼촌인 요크발의 존재나 현황제의 나름대로의 보호아래 다른 이들은 폐태
가가 된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모친이나 요크발, 황제나 손에 꼽을 정도의 사람에게 밖에 존대를 하지 않고 또한
반말을 들은 적이 없는 자신이건만 이 소년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무례하
게 구는 것일까.
분한듯이 입술을 깨무는 돔의 얼굴을 바라보던 유헌은 그의 시선을 피하며 주변의
건물들에 시선을 주었다.
사막 가운데에 있는 유적이란 무척이나 희귀한 것이니깐.
게다가 이렇게나 아름답고.
"샤한과 파요만 찾으면 당장이라도 이동할수 있는데.."
중얼거리며 유적의 기둥에 손을 댄 유헌은 그 벽에 그려진 섬세한 그림에 탄성을
질렀다.
성인 3명이 안아야 겨우 닿을 것 같은 기둥이 곳곳에 세워진 이 유적지의 규모는
그야말로 엄청난서 원래 있던 세계에 이런 거대하고 아름다운 유적이 있었다면 당
장에 광관명소가 되었을 거다. 연신 감탄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던 유헌은 그러나
머리위로 내려쬐는 햇빛에 지쳐 근처의 그늘로 들어가 편하게 앉았다.
저 돔이라는 녀석과 함께이지만, 왠지 모르게 나른한 기분이 들어 두 다리를 길게
펴던 그는 문득 자신의 왼쪽 다리에 시선을 주다 아차하는 심정에 손을 뻗었다.
"안..아프다?"
분명 금이 간 곳이기에 걱정이 되서 손을 뻗은 유헌은 그러나 조금의 통증도 느껴
지지 않은 다리에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옆으로 갸웃했다.
이상하다 이상하다를 연발하며 자신의 다리를 몸 앞으로 끌어당긴 유헌은 바지를
걷고 부러진 곳에 대어진 붕대를 풀고 막대기를 바닥에 내려 놓았다.
" ? "
유헌의 갑작스런 행동에 그리로 시선을 주던 돔은 날씬 종아리에 감겨있는 붕대에
눈살을 찌뿌렸다.
다친건가..? 그러나 붕대를 풀고 막대기운 가흔이 기세좋게 다리를 흔들자 이내 미
간을 찌뿌렸다. 다친척을 한 거였군.
그런 돔의 생각을 알리가 없는 유헌은 금이갔던 다리가, 아니 감옥안에서 그렇게
난리를 펴댔으니 어쩌면 부러졌을 지도 모르는 일인데 멀쩡해진 것에 대해 마냥 놀
라워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감옥을 부술때 운용했던 마력이 저도 모르게 몸의 상처도 치유한 것인가?
의외로 자신의 능력이 대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 바라보는 시선
을 느낀 유헌은 멀리 그늘에 앉아있는 돔이 인상을 쓰며 미간을 찌뿌리고 있자 뭔
가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런 얼굴로 보고 있는 거야?"
"....다친척을 해서 그에게 붙은 거겠지."
"뭐?"
반문을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습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양 청순한 느낌
이 들게 했다.
하지만 그것에 속을 돔이 아니기에 점점 미간을 찌뿌린채 유헌을 노려 보았다.
"너같은 녀석들을 많이 봐왔어. 약한척, 가여운 척 하며 그에게 달라붙는 기생충들
을 말야. 하지만 그 남자는 다들 매정하게 버렸는데, 넌 운이 좋군.
아직도 곁에 있으니 말야."
"..........?"
"하지만 지금 이 꼴을 보니 아무래도 버림을 받은 것 같군. .........안그래?"
입꼬리를 올리는 돔의 모습에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챈 유헌의 안색이 급속도
로 굳는다.
이 녀석은 지금 무슨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건가-
기가 막혀 흔들던 다리로 제대로 하고 양번다리를 해 바로앉은 유헌은 자신을 노려
보는 녀석을 바라 보았다.
그 눈동자 안에서 아버지가 첩을 들일때 보이는 아들들의 흔한 반항과 경계, 경멸
의 눈빛을 읽은 유헌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 집을 느꼈다.
어떻게 보면 돔의 모습은 당연한 걸수도 있다.
칸은 그의 부친이고 율시아의 남편이니 갑자기 나타난 자신이 달갑지 않겠지.
하지만 율시아와 칸은 딱 보기에도 헤어진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저 돔이라는
녀석은 발챠의 저택에서 칸을 그리워 하는 한편 원망의 마음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 갑자기 자신을 비난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냐."
"말 그래도- 남자의 몸으로 남자를 꾀이려는 게 역겹다고나 할까?"
"...........가지가지 하는 군."
자신의 달갑지 않아하던 사람들도 칸과 있는 자신에게 역겹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남자와 이렇게 된것에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주변에서 내색하지 않고 두
사람 모두 거릴낄 것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지내고 있었는데, 눈앞의 녀석이 그런
말을 지껄이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입을 벌리고 당황했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유헌의 얼굴을 바라보던 돔은 서서
히 가슴에서 올라오는 울분을 느꼈다.
자신의 모친은 단한번도 부친의 애정을 받은 적이 없다.
어린 자신이 볼때에도 그들 부부사이는 무척이나 차가웠고, 이름만의 황비의 자리
에 있었던 율시아는 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보석들에 둘러 쌓여 있어도 언제나 외로
워 보였다. 그리고 언제나 울고 있었다.
그런게 이런 녀석 따위가- 여자도 아닌 남자에게 관심을 표현하고 모친의 앞에서
거림낌없이 붙어있던 칸의 모습을 떠올리던 돔은 이를 갈았다.
"더러워. 두 인간들 모두- 꼴 보기도 싫다--! ! !"
쿠-웅! ! !
"............."
"너 몇살이야?"
".........무..무슨?"
갑자기 날라와 자신이 있던 기둥의 옆에 주먹을 내지른 유헌의 모습에 돔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푹파여 돌조각을 흘리는 벽에 주먹을 댄 유헌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뜬채인 돔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지껄이든지 상관은 없지만, 험담은 뒤에서 하는거야.
정면에 대고 그런 소릴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쁜건 당연하잖아?"
".........너...네놈."
"헤어진 두사람에 대해 뭐라고 운운할 자격이 네가 아들이라는 거라면, 난 너에게
그입 닥치라고, 칸에게 나쁜 마음을 품고 있는거라면 차라리 잊고 신경쓰지 말라고
말해주지."
유헌의 말에 숨을 들이킨 돔은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그런 돔의 입을 벽에서 땐 손으로 막은 유헌은 나지막히 읇조렸다.
"내가 그렇게 말할수 있는 자격은, 지금 내가 그의 곁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야-"
"................"
"너희들은 아무것도 알지하지 않고 그를 비난하기만 해. 그를 헤치려고 하는 것들
이야. 그런 놈들의 말따위 듣지도 않고 믿지도 않아. 내가 알아서 해, 그렇게 할꺼
야. 칸에게 부인이 있든 아들이 있든지 간에 칸에 대해 그런 말을 하는 것으로 그에
대한 너의 자격은 없는 거야. 구석에 쳐박혀서 불평이나 늘여뜨려. 하지만-"
눈을 크게 뜬 그 얼굴이 칸과 닮아 조금 가슴이 아프다.
돔의 입에서 손을 뗀 유헌은 몇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의 앞에서 그런 말을 해서 상처를 주는 건 용서하지 않아. 절대로-"
그들은 자신이 모르는 그를 아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몇배나 되는 긴 시간들을 같이 공유한 사람들이다.
그런 자들에게 칸에 대해 뭐라하지 말라 운운하는 건 상당히 웃긴 이야기지만, 유
헌은 참을 수가 없다. 자신에 대해 뭐라고 하는 것은 당연히 화가 나는 일이고 칸에
대해 뭐라고 하는 것은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가 올라와 참을수가 없다.
자신이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남들에게 나쁘게 보이거나, 평가 받는 것이
싫다.
그것이 그 아들이라는 피를 이어받은 자가 하는 비난이라면 더욱 그렇다.
"넌 칸의 일면만은 보고 그런 태도를 취하는 거야. 나 또한 그런 거겠지. 그러니깐
앞으론 칸에 대해 모든 걸 알수있게 노력할 꺼야. 그에 대해 좀더 알고 이해하고
......................지켜 줄거야."
"...............넌..."
"칸을 상처주려면 그에게 접근하지마."
그의 과거를 아는 너라면 그의 상처를 알텐데 왜 굳이 그것을 헤집어 놓으려는 거
냐. 자신의 얼굴을 묵묵히 바라보는 유헌의 얼굴에 시선을 주던 돔은 그 단단하고
깨끗한 검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입술을 깨물며 얼굴을 돌렸다.
그런 최악인 남자에게 왜 그토록 집착하고 이해하려는 모습을 취하는 거야.
그런 어머니를 떠올리는 모습으로- 얼굴을 돌리고 입술을 지긋히 깨문 돔은 기억
의 표면으로 올라오는 사람의 얼굴에 눈을 감았다.
언제나 그런 차갑고 감정이 느껴지지 않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칸크빌레라는 자는- 슬퍼하는 모친을 위해서 그 자신을 위해서 언제나 노력하고
있는 힘껏 애정을 표현해도 돌아오는 것은 뒷모습뿐, 그런 무정한 남자인데 왜 그
토록이나 연연하는 건지 알수가 없다.
"난......"
쿠--왕! ! !
막 입을 열려던 돔은 몸을 덮치는 엄청난 충격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있던 지반이 파도가 치는 것처럼 출렁이며 기복이 심하게 진다.
알수없는 현상에 안색을 달리한 유헌은 멍하니 기둥에 손을 기대고 있는 돔의 손을
잡아 끌어 근처의 낮고 단단해 보이는 지지대로 뛰어 갔다.
그런 자신의 행동에 손목을 잡힌 돔이 움직이지 않으려 힘을 쥐는 것이 느껴졌지
만, 이런 지진이 벌어질때 기둥에 있으면 무너지는 잔재에 깔릴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힘을 줘 억지로 앞으로 내동댕이 쳤다.
"무슨 짓이냐?! !"
"살고 싶으며 잡고 있어!"
바닥에 쓰러진 돔은 자신을 바라보며 소리치는 유헌의 모습에 입을 다물고 묵묵히
손을 뻗어 근처이 낮은 지지대를 움켜 쥐었다.
순순히 자신의 말을 듣는 돔의 모습을 확인하며 그의 옆에 앉은 유헌은 마찬가지로
지지를 잡고 요란하게 움직이는 바닥을 바라 보았다.
갑자기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전에 뉴스에서 마구 출렁이던 공중도로를 본적이
있었는데 지금의 현상이 딱 그와같다.
입술을 깨물고 몸이 튕겨 나가지 않게 잡고 있는 지지대를 강하게 잡은 유헌은 유
적의 가운데 넓게 자리하던 공터가 푹하고 파지자 놀라 입을 벌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쿵-! !'하고 엄청난 충격에 몸을 내달린다.
"큭-!!"
이를 악물며 눈을 가늘게 뜬 유헌은 파여진 구멍에서 튕겨져 나오는 두사람의 모습
에 놀라 입을 벌렸다. 유적의 가운데는 빈강정처럼 깊은 구멍이 파여져 있었는데
그런 곳에서 갑자기 사람이 튀어 나온다면 모두 놀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이 아는 사람이라면 그 놀람은 더 클 것은 당연한 일.
"샤한! 파요! !"
구멍에서 튀어나와 돔과 있던 자리 근처로 떨어진 두사람이 괴로워 하는 모습에 유
헌은 안색을 달리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하고 앞으로 달려나가려던 유헌은 그러나 자신의 어깨를 잡아 당
기는 힘에 뒤로 넘어지며 돔을 바라 보았다.
"왜 그러는 거야?!"
"얌전히 있어! !"
자신의 말에 충격을 먹은 듯 얌전히 있던 돔이 갑자기 언성을 높이자 유헌은 놀라
입을 다물었다. 그런 유헌의 어깨를 잡아 자신쪽으로 끌어당긴 돔은 점점 강해지는
감각에 입술을 깨물었다.
뭘까, 이 감각은.
온몸의 피가 뭔가를 가르키고 있었다.
알수없는 무언가가 이곳에 있고, 자신들에게 다가오고 있다고.
알수없지만 명확하게 외치는 몸속의 소리에 이마에 손을 올리고 괴로운 듯이 신음
성을 흘리는 돔의 모습에 당황한 유헌은 반사적으로 그의 몸에 손을 댔다.
쾅 ! !
그와 동시에 귀를 두들이는 엄청난 소리에 유헌은 눈을 감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 !"
신경질적으로 외치고 아까와 반대로 돔의 몸을 끌어안은 유헌은 등뒤에서 느껴지
는 강력한 기운에 얼굴을 굳혔다.
크게 뜨여진 눈 주위로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난다.
갈증을 느끼며 침을 삼킨 유헌은 요란하게 요동치던 지반이 어느새 잠잠해진 것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저도 모르게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을 깨물고 앞
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에 다시금 목울대를 넘긴 그는 위로, 더 높은 곳으로 눈동
자를 들었다.
[그런 눈으로 보다니... 역시 귀엽지 않은 아이-]
".................."
유적의 무너진 가운데로 얼굴을 내민 존재를 확인한 유헌은 망연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림이나 합성사진으로만 봐왔다. 이런 존재는.
이토록이나 거대하고 강대한 생물체를 실제로 보는 일따위 정말로 생길줄은 상상
조차 하지 않았다.
유헌은 자신의 몸통보다 큰 붉은 빛의 눈을 깜박이는 존재를 가만히 바라 보았다.
드래곤이라는 존재를 말이다.
"........루드빌.."
유헌의 어깨를 더욱더 끌어당긴 돔은 저도 모르게 목구멍에서 넘어오는 이름을 중
얼거렸다.
그의 음성에 그녀의 눈동자가 빛을 발한 것 느낌탓이리라-
강한 물살이 머리위로 떨어지는 순간 샤한은 검을 잡는 손에 힘을 주었다.
여기서 죽는 일이 있어도 검만은 무슨일이 있더라고 사수해야 한다.
그런 결심으로 한참동안 잡고 있엇지만, 공기가 공급되지 않고 계속해서 물살에 떠
밀리는 상황이 되자 검이고 뭐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만 간절하다.
그런 자신의 욕망이 하늘에 닿았던지 어느 강력한 힘이 자신의 손목을 잡고 맹렬히
위로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쾌재를 부르며 도와서 계속해서 위로 위로 헤엄을 치
던 샤한은 이내 물속에서 빠져나와 신선한 공기가 콧속을 가득 메우자 감격의 눈물
을 흘리며 연신 콜록대기 시작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샤한을 끌고 물가로 옮긴 인물은 땅위에 손을 올리고 한참동안
숨을 고르다가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을 확인하고 얼굴을 구겼다.
"뭐야..... 유헌님이 아니잖아.."
"쿨럭쿨럭, 켁..!! ................ 뭐야?"
연신 기침을 하며 폐속으로 넘어온 물을 뱉어내던 샤한은 무척이나 유감이라는 듯
이 들리는 음성과 내용에 미간을 찌뿌리며 이를 갈았다.
이놈이 구해줘서 고맙다고 하려고 그랬는데, 방금 그 말로 몽땅 취소다.
기침하는 사람옆에서 사례 걸리게 그 따위 말을 하다니..! !
샤한이 분노하건 말건 자신이 구한 이가 유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 파요는 당황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금 물속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 파요의 멱살을 잡은 샤한은 막무가내로 그를 땅위로 끌어 당겼다.
"이 것 놔요! 유헌님이 아직 안에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란 말입니다! !"
"그 녀석은 괜찮으니깐, 어서 나와! ! 다시 들어가다니.. 죽고 싶냐! !"
엉성하게 묶어둔 상처가 이번 일로 벌어져 계속해서 피를 흘려대고 있었다.
이미 많은 피를 흘려 안색이 창백하게 되었으면서 다시 물로 들어간다면 그건 죽겠
다는 소리와 같다. 잘 갸누지도 못하는 몸으로 자신의 손을 치워내려는 파요의 모
습에 혀를 찬 샤한은 그의 멱살을 잡아 물위로 끌어 올린다음 근처의 바위로 던져
버린다.
"녀석은 내가 구하러 갈테니, 네놈은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고나 있어! !"
"..........헉...헉..."
"정말이지, 귀찮은 녀석들이란 말야."
가슴을 움켜잡으며 숨을 고르는 모습에 혀를 찬 샤한은 윗도리를 벗으며 다시 물속
을 들어갔다. 잘 뜨여지지 않은 눈을 가늘게 뜨며 파랗게 출렁이는 물속을 바라보
던 샤한은 미간을 찡그리고 안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한동안 유헌을 찾아 헤매다가 숨이 부족해서 물속으로 얼굴을 내밀고 숨을 들이킨
그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여기저기를 살펴 보았다.
정신없이 떠돌아 다닐때는 몰랐는데, 물속은 상당히 많은 구멍들과 동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곳은 물길이 잘 연결되어 있어 평소엔 이렇게 물로 채워져
있지만, 만약의 사태때는 비밀통로가 되는 곳이다.
귀족들이나 망명왕족들이 이런 비밀통로 같은 것으로 목숨을 부지한 여러 선례를
들은 적이 있고, 칸크빌레 때 몇번 경험한 적이 있었던 이런 구조를 지닌 건축물이
실은 무슨 왕성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봤다.
수많은 왕국들이 존재하는 곳답게 분쟁또한 많아서 버려진 성들도 몇개나 있는 곳
이다 동은- 자신의 생각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모자른 숨을 채
우기위해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파-하."
숨을 들이마시고 앞으로 넘어온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기
를 수번, 샤한은 더이상 손가락 하나 까닥이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거의 기다
싶이 해서 물속에서 나왔다.
혼자 나오는 자신의 모습에 울상인 파요의 얼굴을 보며 샤한 또한 울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말로는 놈에게 떽떽거리긴 했지만, 알게 모르게 든 정도 있었고, 칸이 그토록이나
좋아하는 사람인데 이런 식으로 못찾고 헤어지게 되었으니 속이 말이 아니다.
이렇게 자신들만 돌아간다 해도 어떻게 칸의 얼굴을 보라는 건가.
주먹을 쥔 샤한은 조금만 쉬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식
은 체온을 올려주기 위해 손으로 몸을 부비기 시작했다.
"역시.. 제가 들어가 봐야."
"웃기네, 네가 들어갔다간 시체로 떠오를 거다!"
쿨럭이며 창백한 안색의 파요가 물로 들어가기 위해 기어서 이동을 하자 대자로 뻗
어있던 샤한이 대번에 일어나 그의 허리춤을 감싸 안는다.
피가 많이 빠져 기운이 없던 파요는 샤한에게 질질끌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왜 자신이 못가게 막는거냐는 듯이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는 파요의 시선에
샤한은 한숨을 쉬었다. 이놈도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쒸인 듯 하다.
이러다 자신이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당장에 물속으로 뛰어 들어갈 것 같은 놈의
기세에 귀찮다는 표정을 지은 그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어쩌나 내가 이런 애나 달래는 신세가 되었는지.
"이것봐, 유헌은 신의 보살핌을 받는 신관이니깐, 괜찮을 거야!"
"......하지만 견습이잖아요."
대충 지금의 상황만 모면하자고 한 말인데 곧이 곧대로 답하는 파요의 모습에 샤한
은 눈을 번뜩였다.
역시나 행동하는 것처럼 속도 단순하고 바보같은 녀석이다.
대충 살살 달래면 일이 쉽게 풀어질수도 있다는 생각에 샤한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열변이라는 것을 해 보았다.
"하지만 말야, 녀석은 특별한 종류야. 타고나 녀석이라서 주위의 시기도 많이 받지
만 그래서 더 태연하게 행동하는, 그런 타입있잖아? 신만 있다면 난 외롭지 않아-
그런거!! 녀석은 그런 종이라 유독 신의 사랑을 많이 받고 계시를 잘 받고 있지.
녀석이 지금 우리와 떨어진 것도 신의 의도가 아닐까? 녀석에게 다른 사명을 맡기
려는 신이 배려- 야아~ 좋다. 그러니깐 신의 그만한 애정과 관심을 받는 녀석이니
따로 떨어져도 괜찮을 거야, 무관. 절대 안심, 그런고로 넌 네 상처에 관심을 기울
이고 치료하면 되는 거다-ㅅ! ! !"
"...........그럴까요?"
"그럼! ! !"
헥헥거리며 단언하는 샤한의 모습에 파요는 입술을 내밀었다.
왠지 지금까지 봐왔던 신관들과 다르다 여겨졌더니 신의 사랑을 유독 더 많이 받는
존재였던 거다. 유헌이라느 사람은.
그러니 자신의 마음을 이토록이나 흔든 거겠지만은... 생각만해도 볼이 발그레해지
는 것에 잠시 헛기침을 한 파요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샤한에게 웃어 보였다.
처음엔 무뚝뚝하고 건방진 사람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좋은 사람이다.
아까는 유헌을 찾으려고 그렇게나 노력하고 말이다.
"그럼 유헌님은 안심해도 되겠군요."
"그-럼, 안심해도 돼!"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눈을 가늘게 접으며 진심으로 안도하는 표정에 뜨끔한 기분이 든 샤한은 얼굴을 돌
려 파요의 시선을 피한뒤 연신 유헌의 안부는 걱정 말라는 소리를 내뱉었다.
정말이지 이런 어린 녀석에게 거짓말을 하는건 할짓이 못된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이리저리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던 샤한은 일정하게 들리는
숨소리에 눈동자를 굴려 파요의 잠든 모습을 확인했다.
하긴, 그렇게나 피를 흘리고 자신을 잡고 헤엄을 쳤으니.. 지금까지 버틴게 용할 지
경이다. 한숨을 쉬며 파요의 머리를 뒤로 넘긴 샤한은 벗은 윗옷을 끌어 일정한 크
기로 자른 다음 다 풀어진 붕대를 다시 감기 시작했다.
살이 벌어져 파랗게 죽은 피부가 이 어린 녀석의 미래를 암담하게 한다.
아마도 다시는 검을 둘수 없을지도 모른다.
"...칫."
꼼꼼하게 묶은 팔을 잡고 한동안 그것을 내려다 보던 샤한은 바닥에 침을 뱉고 자
리에서 일어났다.
유헌도 유헌이지만, 이 녀석의 상태도 그리 좋은 게 아니다.
어서 빨리 일행들과 합류해서 속히 상처를 치료해야 재활이라는 것도 가능할텐데
말이지.
"그나저나 여긴 도대체 어디란 말야."
자리에서 일어나 어슬렁거리며 주변의 모습을 확인한 샤한은 머리를 긁적였다.
헤엄을 치며 밑의 구조를 살필때는 어느 성의 지하인가 싶었는데, 그냥 낡은 유적
이었나 보다. 회색의 벽돌이 차근차근 싸여져 있고 간간히 세워진 기둥들을 발로
차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린 샤한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 출구에 미간을 찌뿌렸다.
그렇다고 무작정 걸음을 옮기자니 저기에 누워있는 녀석의 안부가 걱정된다.
혀를 차며 '어쩔수 없군.'라고 중얼거린 그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 누워서 뜨거
운 숨을 뱉어내고 있는 파요를 업었다.
혼자서 길을 헤메는 것보단 차라리 둘이서 헤매다 나가는 길을 찾는 것이 훨씬 낫
다. 이러다 유헌과 만나면 더할나위 없겠지.
기분나쁜 감옥에 갖혀 꽤나 진을 빼놓고, 아까의 수영으로 체력이 거의 바닥난 상
태지만, 이를 악문 샤한은 걸음을 옮겼다.
무슨 수를 써서든지 이곳을 벗어나 일행들과 합류하고 말테다-
라고 결의를 다지는 그의 두눈을 불타고 있었다.
"...............히..힘들어."
하지만 그것도 한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나니 그렇게나 강했던 의지가 점점 사그라
든다. 파요는 무겁고 눈은 침침하다.
게다가 걷고 있는 두 다리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힘들면 입안에서 피맛이 나는 걸까. 혀를 내밀며 연신 헥헥거리던
샤한은 한참을 돌아 다니다가 겨우찾은 계단을 올려다 보았다.
다른건 아무것도 없이 뻥뚫은 공간에 원모양으로 벽에 붙은 계단은, 한쪽이 벽에
한쪽은 뚫린 상태라 까닥 잘못했다간 여지없이 밑으로 떨어지는 구조다. 그 밑을
한동안 바라보던 샤한은 현기증이 느껴지자 얼굴을 털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러다가 일행을 만나지도 못하고 지켜 쓰러지는 게 아닐까?
처음의 단호한 결의는 점점 사라지고 나약한 생각만이 든다.
그런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끝없이 펼쳐진 계단에 좌절하고 마는 것이다.
"좋은..일만 생각해 볼까.."
중얼거리며 샤한은 자신의 기억중에서 제일 좋았던 것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래, 가장 좋은 거라고 친다면 칸크빌레님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누님이 예쁘게
자라고 자신또한 평민의 몸으로 기사단에 들어간게 있겠지.
거기서 엄했지만 나름대로 성격 좋았던 노웬과의 만남도 좋은 거고, 당시엔 철없던
에스의 모습도 신선해서 좋았다. 그러고 보니 그때는 에스의 형님도 있었구나.
냉막한 얼굴관 다르게 목걸이에 에즈나 에스의 그림을 달고 다닐 정도로 못말리는
팔푼이였지만, 내색을 안해 그들은 그닥 좋은 형제 사이가 아니였지.
만약에 그 사실이 자신이 아니 에스가 알았다면 그는 아직 살아있을까?
씁쓸한 생각에 고개를 저은 샤한은 그렇다해도 그는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 죽었을 거다. 칸크빌레와 동생 에스를 살리기 위해서 그 사내는 또다시 혼자
버티다 그렇게 죽어 갔겠지.
"에르겐...."
에스의 형인, 한때 이자크와 더불어 학문의 천재라 불리웠던 사내를 떠올리며 샤한
을 이를 악물었다. 그런 글만 아는 놈에게 생을 구원받은 자신이다.
결코 여기서 이렇게 무너질수는 없는 거다.
파요를 업은 등과 두다리에 힘을 주고 위로, 계단 위로 계속해서 올라가던 그는 멀
리 빛이 세어 들어오자 화색을 지으며 입가를 치켜 들었다.
그럼, 그렇지.
이 샤한이 누군데.. 중앙 제일의 질긴 사나이로 불렸던 자다! !
[과연... 질긴 것 하나는 인정할 만 하구나]
".............."
[하지만 그것도 죽으면 끝날 일이지......]
귀가 아닌 가슴에서 울리는 음성에 샤한은 안색을 굳혔다.
피부에 닭살이 돋을 만큼의 소름과 속을 박차고 올라오는 울렁거림을 익히 아는 감
각이다. 날림이긴 했지만, 한때나마 중앙국의 기사로 등록되어 있었던 자신이 저
존재를 모를리가 없다.
그래, 모를리가 없지. 저 괴물을.....
[오랜만이구나. 붉은 원숭이..]
중앙국의 드래곤 적륭 루드빌라겔.
세속에 연연하지 않은 용의 습성에 맞지않게 수백년 동안 중앙에 자리하고 혈통에
연연하던 그녀는 언제나 자신과 누님을 마땅치 않다는 눈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중앙에 자신같은 존재는 옥의 티라는 듯이.
마주할때마다 그런 감정을 유감없이 내보냈던....
"...루드빌.."
속삭이듯이 용의 이름을 부른 샤한은 천천히 얼굴을 돌려 반지반질 눈동자에 반사
되는 자신을 바라 보았다.
저 겁에 질린 얼굴이 정말 자신의 것인가 싶을 정도로 꼴 사나웠다.
그리고 루드빌의 거대하고 붉은 눈동자에 반질한 윤이 흐르는가 싶더니 날카로운
이빨이 자신을 향해 달려 들었다.
"일단 이 마차를 타면 원하는 곳까진 별다른 어려움없이 통과할수 있을 거야."
"언제나 신세지는군, 고마워."
"무슨 소릴 하는거야? 친구잖아."
유쾌하게 웃으며 어깨를 두들이는 샤르비나의 모습에 입가를 올려보인 에스는 이
내 안색을 어둡게 만들었다.
그런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샤르비나도 안색을 어둡게 만들었다.
분명 누이인 에즈의 안부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에스못지 않게 에즈또한
친분이 두터운 사람이기에 샤르비나또한 걱정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일로 자신은
동생인 샤한의 안부도 알수없는 처지이니 에스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정이다.
".....걱정이야.."
"응?"
"아니, 그냥....여러가지로.."
그녀의 그 표정에 에스는 샤한의 일에 생각이 미쳐 입을 다물었다.
자신은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에즈의 걱정에 미쳐 샤르비나의 상태를 알지
못했던 에스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어깨를 두둘이다 근처의 기사가 노려보
자 어색한 표정으로 손을 내려 놓았다.
그들에겐 자신은 일개 용병이지만, 그녀는 그들이 모시는 왕의 소중한 첩비인 것이
다.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들어올린 손을 팔짱 낀 에스는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샤한은 우리들이 알아서 찾아낼테니 너무 걱정하지마."
"에즈의 일은 나에게 맞겨. 반드시 그녀를 무사한 모습을 보게 될거야."
그녀의 호언장담에 미소를 지어보인 에스는 멀리서 그를 부리는 라헨의 손짓에 인
사를 하고 걸음을 옮겼다.
정말 오랫도안 알고 지내온 사이다 보니 헤어지는 것이 상당히 아쉽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녀의 일이 있고 자신들에겐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더이상
미적거릴 수는 없다. 가슴 한켠에 자리한 에즈의 대한 걱정 때문에 다소 사고가 어
지럽긴 하지만, 손을 들어 볼을 두들인 에스는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라헨에게 마
주 손을 흔들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죠?"
"어떤 길로 돌아가는게 좋을까해서 부른거다. 그녀와 더 할말이 남은거였나?"
"아뇨, ...........길이라. 이왕이면 안전한 곳이 좋겠군요."
"그리고 암습을 당해도 위험부담이 적은 곳도."
라헨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인 에스는 펼쳐진 지도를 바라 보았다.
안 그래도 적은 인원이었는데, 유헌과 샤한이 사라지는 바람에 더 외소해 보이는
집단이 되어 버렸다. 한숨을 쉬며 머리를 긁적인 그는 미간을 모으며 아무렇게나
휘갈겨진 지명을 읽으며 대략 지나갈 곳을 머리속으로 그려 보았다.
이쪽이 좋겠다 싶어 라헨에게 말하기 위해 고개를 들던 에스는 그가 걱정스러운 눈
빛을 보내는 곳을 따라 시선을 주었다.
"...........칸님."
"너도 그렇고, 녀석도 그렇고. ...걱정이다."
'이러다가 적들이 오면 변변찮은 반항도 못하고 끝나게 생겼어-'라고 웅얼거리는
라헨의 말을 들으며 에스는 들고있던 지도를 내려 놓았다.
확실히 이번에 중앙은 이번 공격으로 무척이나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들이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일행의 중심인 칸을 저토록이나 무기
력하게 만들었으니, 어쨌든 대단하다고 친창해 줘야 하는 걸까.
그리고 자신도 전과 같은 상태는 아니다.
아니, 그들을 둘러싼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다지 좋지 않다고 봐야 할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만은 적들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칠 자들이 아니
니 근시일내에 반드시 모습을 들어 내겠지.
"큰일이군요."
나지막히 중얼거린 에스는 마차위에 올라가 마냥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는 칸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런 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만이 아니여서 마차에 손을 올린
젤은 미간을 찌뿌리며 고개를 저었다.
설마하나 유헌의 부재가 그에게 저토록이나 큰 영향을 미치다니.
절로 몰려드는 피로에 미간을 찌뿌린 그녀는 마차의 한쪽 문을 열어놓고 들어오는
햇볕을 쐬는 도마뱀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런 징그러운 생물체가 사실은 드래곤입니다-라고 하면 누구나 비웃겠지.
하지만 사실이기에 지켜보는 쪽이 기운이 빠진다. 드래곤이 하나라도 있다면 전력
이 도움이 될줄 알았더니 오히려 짐이 되고 있다.
"아직고 그러고 계셨습니까?"
"아아- 이 몸은 불편해서 말야. 좀더 이러고 있어야 할지도..."
마차에 들어온 노웬은 융텐의 말에 한숨을 쉬며 옆의 젤에게 시선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도 수가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는 폼에 뭐라 할수가 없다.
곧 떠날 채비를 하는 샤르비나에게 인사를 건내고 라헨에게 이동로를 맡긴 그는 융
텐에게 유헌이 있을 만한 곳에 대해 묻기위해서 이곳에 왔지만 저렇게 늘어져 있는
파충류를 보자니 할말이 없어진다.
입을 열기도 전에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다.
"융텐님, 루드빌의 결계 때문에 아주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시는 건 아니겠죠?"
"물론 아니지. 그러니깐 이런 모습으로 너희들 앞에 나타난거 아냐."
"그렇다면 유헌군이 어디쯤에 있을 지 알수 있습니까?"
칸의 저 무기력한 꼴을 더이상 볼수가 없다.
결국 손을 들어버린 노웬은 자신이 나서 융텐에게 유헌의 안부를 묻는거다.
봉인되어 있다고는 하나 일단 그도 드래곤이니 마력을 찾는다거나 루드빌의 마력
을 읽는다거나 해서 유헌들의 위치를 알아 낼수는 있겠지.
자신을 바라보는 은빛의 눈동자를 슬쩍 쳐다본 융텐은 짧은 팔로 기지개를 피며 자
리에서 일어났다. 한동안 양반다리를 한채로 멍하니 앉아있던 도마뱀이 자신을 올
려다 보자 노웬의 잘생긴 얼굴이 가볍게 굳는다.
"나도 몰라."
"................에?"
"녀석의 마력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 조금의 단서도 잡을수가 없단 말이다."
"......무슨, 그는 저보다 강한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젤의 말에 고개를 든 융텐은 심드렁하게 내뱉었다.
"인간의 여자. 넌 유헌이 마력을 사용하는 것을 본적이 있나?"
"없지만.. 그는 저의 마력을 밀어낼 정도로 강한 잠재능력을 지니고 있어요.
게다 마력을 무효화시키는 희귀능력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젤의 말이 옳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던 융텐은 곧 안색을 굳혔다.
실은 그도 이번 일로 유헌에 능력이 엄청 특이한 종이라는 것을 알고 다소 당황했
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이해한 그것들을 눈앞의 인간들이 과연 제대로 이해할 것인가.
노웬과 젤이 보통인간들보다 우수하다는 것에 기대를 걸며 도마뱀의 몸을 빌린 융
텐이 입을 열었다.
"네 마력을 밀어낸 것은 유헌이 지니고 있는 그 희귀능력이 발휘되어서 일지도 모
르지."
"......네?"
"마력을 무효화시키는 체질의 녀석한테 마력을 운용시키려 몸안에 주입하니 반사
적으로 그것을 밀어내는 동시에 서서히 효과를 감소시킨 거다. 그 자신도 모르게
말야. 그리고 그 반응은 급속도로 진행되었을 테니, 너는 유헌이 너보다 강한 마력
을 지니고 있어 자신의 마력을 밀어내고 있다고 착각한 거다."
"...하지만 그는 저나 다른 사람들의 마력의 흐름을 읽는다고.....그러니깐."
갑작스러운 말에 놀란 듯 횡설수설을 하는 젤의 얼굴을 바라보던 융텐은 다소 찹착
함을 느꼈다.
"있는 것을 없애려면 그것에 대한 조직이 보여야 겠지.
애초에 그런 능력자이니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그냥 보이는 거야."
"해석하는....겁니까?"
"그래, 마력이 보이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자신의 힘을 가리기 위해서야.
그런데 녀석에게 그런것이 보이니 소수의 것을 제외하곤 마력자체가 애초에 먹히
질 않는거지. 그 소수의 경우로는 생명을 위협을 받을때 행해지는 마력같은 것.
예를들면 네가 사용한 공간이동술이 있겠지."
묘한 표정을 짓고 자신을 내려다 보는 젤의 어느새 호기심의 눈빛으로 변해 있었
다. 마도사가 지니는 기본적인 욕구를 들어내는 그 표정에 융텐은 이 여자가 어쩔
수없는 그네 족속이구나 싶었다.
마도사란건 보통의 집념과, 호기심, 재능으로 만들어지는게 아니니-
"나도 착각하고 있었지. 유헌이라는 녀석이 생각보다 강한, 어쩌면 드래곤인 나와
비슷한 계급의 종류가 아닐까..하고 말이야. 하지만 이번일로 녀석을 찾기위해 마
력을 읽으려 해도 도저히 알아 낼수가 없는거야.
그전에도 시도를 했으니 지금 느껴지지 않는 것은 녀석이 죽었기 때문은 아니라는
뜻인데, 그렇다면 녀석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그 모든 인간들이 갖고있는 마력이란
걸 애초에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결론이 나오지."
".........그런."
미할라의 경우와 비슷하다. 이 유헌이라는 녀석은-
굳이 다른 점을 찾아보라 한다면 미할라는 애초부터 마력을 지니지도, 마력을 무효
화한다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헌이 자신의 눈앞
에 딱하니 나타났을 때 녀석은 미할라와 다르구나-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상대의 마력을 사라지게하고 스스로도 쓸수있으니 대단한 인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였다.
"녀석에겐 또 다른 능력이 있어."
"네?"
"다른 이의 마력을 운용하는 능력- 말이지."
북에 있을때 들어가 있던 방의 문에 진을 필수 있었던 것은 그런 능력이 있었기 때
문이리라. 아직 남아있는 자신과 히자스의 마력을 끌여들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선 태연하게 사용한 것이다.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의 것을 사용할수 있다니-
마력을 무효화한다는 것보다 더 경악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가능할리가 없습니다! !"
자신이 지니고 있는 마도의 지식을 완전히 뒤집는 융텐의 말에 젤은 반박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융텐은 별 감흥없이 중얼거렸다.
"나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그러니 그녀에게 확인을 받고자 하는 거다.
지금쯤 유헌과 만났을 지도 모르는 그 기가 쎈 아줌마 루드빌에게 말이지.
"내말이 사실이라면, 꽤나 고전할지도 모르겠어."
왠지 모르게 유쾌한 기분이 든다.
실실 거리며 기분나쁜 웃음을 짓는 도마뱀의 모습에 안색을 굳힌 노웬과 젤이 서로
의 얼굴에 시선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