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잉.
철컹.
".........어이없군요."
"....미안."
허탈한 듯한 말에 고개를 숙이며 죄스러워 하는 칸의 모습에 입가를 우그려 뜨린
유헌은 손을 들어 그의 뒷통수를 두들여 주었다.
하룻밤 새에 자라버린 그 모습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것이지만, 이런 행동들을
할때마다 역시나 그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갑자기 자라버린 아이를 보는 부모의 심정을 알아버린 것 같다.
"여기서 얼마나 있어야 할까요..?"
한겹은 쇠창살, 또 한겹은 철문으로 되어있는 특범죄자들을 수감할 것같은 분위기
완 다르게 방안의 모습은 꽤나 화려했다.
과거 왕의 사생아나 상대국의 왕족들을 수감하는 감옥이 이랬을까하는 생각을 하
며 화려한 방안을 바라보며 칸을 지지하고 서있던 유헌은 자신의 몸을 들어 올리는
칸의 행동에 얼굴을 붉혔다.
그러면서도 그의 행동을 제지할수 없는 것은 여기로 내려오기 전에 융텐의 치료를
받았다곤 하나 아직 몸의 상태가 전같지 않기 때문이다.
내색을 안하려고 하나 점점 붉어지는 얼굴에 고개를 돌린 유헌은 칸이 침대에 올려
주자 다시 그를 바라 보았다.
무척이나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 태도가 자신을 신부를 보는 것같은 느낌
이 드는지라 똑같이 웃어보인 유헌의 얼굴이 점점 닳아 오른다.
지금 자신들의 상태가 이런 여유로운 모습을 취할정도로 안전하지는 않지만, 칸과
함께있다고 생각하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진정된다.
"아마도.. 히자스 나름대로 우릴 도와 줄거라곤 생각하지만...
문제는 시녀가 한말이지."
"얼음속이라..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턱에 손가락을 댄 유헌은 시녀의 말의 알아내기 위해 생각을 해봤지만, 그 말에 격
렬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아선 북에 사는 사람들만이 이해할수 있고, 또
한 금기시 되어있는 말일거라고 짐작해 본다.
그 한마디에 자신을 옹호하던 히자스조차 이곳으로 자신들을 감금해 둔다는 융텐
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가 왜 그런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히자스의 얼음같이 굳어진 옆
얼굴에 변변한 저항도 못하고 순순히 제발로 들어온 두사람이다.
....확실히 이런 곳에서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무척이나 많은 고통과 어려운 일들이 잔뜩 있었겠지.
그리고 그 고통은 아직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인가..
"중앙국의 왕족들은 하나같이 자기 중심적이야."
" ? "
"그들은 꼭 일을 친다만...
왜 내가 조상들이 한 일을 가지고 이런 피해를 봐야 하는지."
투덜대던 칸이지만, 이내 '뭐, 그런 말을 할 자격도 내겐 없지만...'라며 씁쓸한 미
소를 짓는다.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유헌은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대었다.
순간 경직된 몸이 부드럽게 완화대면서 자신의 몸을 안아오는 손길에 속으로 웃음
을 삼킨 유헌은 입안으로 들어오는 혀를 저항없이 받아 들였다.
하나의 선을 넘기고 나니 그와 접촉하는 것에 거리낌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팔자 좋구나. 니들은-"
"...윽?! 융텐?! !"
갑자기 들려온 음성에 급하게 혀를 빼느라 자신의 이에 물린 칸은 눈가에 눈물을
매단채 어이없다는 듯이 자신들을 내려다 보는 융텐을 발견하고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다.
덕분에 혀를 물린 것은 둘째치고라도 모처럼의 가흔과의 키스를 방해 하다니-
그 엄청난 시선에 어깨를 으쓱하며 그냥 돌아가 녀석들이 고생이나 실컷하게 할
까-하고 생각하던 그는 이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놈들이 아닌 히자스를 봐서라도 자신은 이놈들과 같이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
"일어나라. 이 곳에서 나갈테니깐."
"..............앙?"
"엄청 바보같은 표정이구만, 너 네 몸이 커졌다는 걸 좀 인식하고 무게감 있게 행동
하는게 어떻겠냐?"
그러는 융텐이야말로 모습과 어울리지 않은 모습들을 취하니 할말은 아니지만, 칸
에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거리낌이 없다.
유헌은 나간다는 그의 말에 눈을 동그렇게 뜨고 '나가다니?'라고 묻는다.
"그러면 히자스에게 폐가 되는 거잖아요."
"너희들이 오래 있는게 더 폐라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두사람의 모습에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두들이던 융텐을 입
을 열었다.
"어차피 너희들을 두둔하던 히자스의 입장이 상당히 곤란하단 말이지. 그러니깐 내
가 너희들과 같이 나갔다가 나중에 히자스가 부르면 나만 돌아갈 거야."
"....엥?"
"난 분명 너희들이 내 손님이라고 했지. 그런데 너희들을 이런 곳에 두었으니 분노
한 용이 너희들을 데리고 나갔다가 히자스의 부탁으로 다시 돌아오는 거야.
그렇게 되면 너희를 두둔하던 그의 행동은 내 손님께 무례를 저지르지 않은 행동이
되고, 그에 의해 내가 돌아옴으로써 백성들은 히자스를 더욱 존경하게 되겠지."
".....하-아."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듯한 융텐의 말에 유헌은 미간을 찌뿌렸다.
잘은 모르지만, 이곳에서 흑룡은 그의 위치는 왕과 더 높은 것 같다.
그런 그의 손님인 나와 칸에게 예우를 하기위해 히자스는 노신관의 말에 반발한 것
이고, 그들의 강력한 의사에 밀린 왕은 어쩔수없이 자신들을 가두게 되는 것이다.
그에 노한 용은 손님과 사라지고, 그곳에 불안하고 자신들의 행동을 탓하는 자들앞
에 히자스가 짠-하고 용을 다시 불러온다면, 그들은 앞뒤 일은 다 잊고 오로지 용
을 돌아 왔다는 것과 왕이 그를 모셔왔다는 것만에 기뻐하게-된다는 스토리인가?
물론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하지만 우리들을 이곳에 넣으라고 한건 너잖아."
".............."
손가락을 세우고 말하는 칸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융텐의 미소짓은 얼굴에 금이 갔
지만, 이내 원상태로 돌아와 애꿋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다.
"난 드래곤이니깐, 그런 소소한 일엔 신경쓰지 않는다."
"....소소한 일입니까?"
좀 예리한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면 알짤없이 구멍이 들어날 계획을...
불신에 찬 두사람의 시선에 식은땀을 흘리던 융텐은 양 허리에 손을 올려놓고 되려
큰소리를 친다.
"뭐야? 그런 여기서 안 나가겠다는 거냐?! !"
"네,네. 나가야지. 우리들이 무슨 힘이 있다고."
"...유크렌보다 더하네..."
중얼거린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무척이나 불신의 시선을 융텐에게 던졌다.
용이란건 다들 저러나 하고 생각이 들 정도로 근래 그들이 만난 드래곤들은 하나같
이 이상하기만 하다.
바스락.
일단 지하통로를 이용해서 서쪽으로 향하기 전인, 항구에서 숲까지 이동한 노웬일
행은 아직 남아있을 적들의 시선에 띄지않고 이동하는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생각
을 해봤지만, 가장 단순한 방법인 정찰을 하고 나서 안전한 길로 돌아서 간다밖에
마땅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선발로 정찰을 나온 샤한은 멀리 보이는 연기에 미심쩍음을 느끼고 그리
로 이동하다 일단의 상인일행들을 발견하곤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10여개는 넘을 듯한 화려한 마차들에 비해 널널한 경비들, 게다가 상단의
문양은 분명 '비잔힐'이었다.
오브가 잠시나마 가주였던 곳이고 자신들을 배신하고 중앙국 황제의 직속 상단이
되어버린 빌어먹을 놈들.
나무에 달라붙어 이를 간던 샤한은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나무에서 내려왔다.
".....비잔힐?"
"....에..뭐..그..그렇지."
딱딱하게 굳은 오브의 얼굴에 샤한은 아차 싶었다.
아무리 무감한 자신이라도 한번 쫓겨난 집안에 대해서 듣는 것은 상당히 껄끄러운
일일텐데 말이다. 눈둘 곳을 몰라 여기저기 눈알을 굴리던 샤한은 왜 그런 말을 꺼
낸거야-라며 눈치를 주는 동료들의 모습에 식은땀을 흘렸다.
굳이 의도한 바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최악의 남자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유크렌은 그런 샤한을 죽일듯이 노려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무릎 위에 쥐어진 두 손
이 바들바들 떨리는 오브의 모습에 미간을 찌뿌렸다. 확실히는 모르지만, 그 비잔
힐이라는 곳과 오브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알겠다.
우는 건가하고 고개를 숙여 보이던 유크렌은 그러나 오브의 입술사이에서 음침한
웃음소리가 들이자 안색을 달리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혹여나 너무 분노가 커서 일시적으로 퓨즈가 끊어진건가하고 경악의 눈빛으로 자
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며 고개를 든 오브는 이를 들어내며 말했다.
"탈취하자-"
"..에-ㅅ?! ! 무슨, 그런.. 말도 안되요! !"
혹여나 집안의 악감정에 순간적으로 하는 말인건가하고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사
람들의 하나씩 바라보던 오브는 미소를 진하게 띄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숨어서 간다면 몇달이 걸릴지 모르지만, 저 상단을 탈취해 타고가면 검문
도 받지않고 중앙국을 무사통과할수 있어, 뭐라하도 황제의 직속상단이니 말야.
게다가 그 녀석은 위험에 대한 대비나 그런것에 쓰는 돈을 지극히 아까워 하는 놈
이니, 경비따위들 우리에겐 상대도 알될거야."
"......그..그렇지만."
"단숨에 제압하고 타고 가자고, 모두들 힘들잖아?"
'어때?'라며 시선을 던지는 오브의 말에 노웬은 곰곰히 생각하다 작게 고개를 끄덕
였다. 그의 말대로 라면 쉽게 마차를 탈취할수 있었거이고, 비잔힐의 문양이 있으
니 쉽게 검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비잔힐이 다루는 물건들은 일단 황제를 위한 것으로 되어있으니 목슴이 여러개이
지 않은 이상 누가 감히 중앙국 황제의 물건을 검문하려 하겠는가.
"그나저나 비잔힐의 마차가 왜 이런곳에 있는 걸까요?"
의아해 하는 라프헨의 모습에 오브는 무척이나 악의섞인 음성으로 내뱉었다.
"보나마나 황제가 서에 있다는 정보를 얻은 거지. 놈은 권력자의 딸랑이니깐."
엄청나게 험악한 말투에 그가 현 비잔힐의 가주인 정실부인의 첫째 아들과의 사이
가 얼마나 안좋은지 짐작할수 있게 한다.
사람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이는 동안 기분나쁜 미소를 짓고 있는 오브의 모습에 유
크렌은 눈을 크게 떴다. 이상한 취향이 있는 놈이긴 했지만, 남에게 이런 정도의 악
감정을 비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눈을 깜박이던 유크렌은 그가 싫어하는 인물을 한번 만나보고 싶어졌다.
"..정말 괜챃을 까요?"
"어쩌겠어. 그가 원한다는데.. 그리고 좋은 방법이기도 하니깐 말야."
라헨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라프헨은 양손에 들고있는 돌맹이를 강하게 쥐었
다. 육탄전에 직접 나서지는 못하지만, 돌팔매질은 꽤나 자신이 있으니 혹여라도
라헨에게 접근하는 자가 있으면 이것을 던져줄 생각인 것이다.
결의를 다지는 그 모습에 미소를 지은 라헨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소리없이 언
덕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 자신의 움직임을 뒤따르는 일행들의 행동을 느끼며 아래
를 내려다본 그를 미소를 지었다.
딱 보기에도 널널해 보이는 인간들의 모습에 금방 끝날것은 예감한 것이다.
탁.
"애써 온길을 되돌아 가다니 말야.. 한심하군."
"어쩌겠어. 가주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전에 있던 오브님이 좋았는데 말야."
"쉿, 안에 있는 큰도련님께서 아시면 큰일 난다고-"
사내의 말에 당황하며 입을 막지만, 현 가주에 대해서 도련님으로 부르는 것을 보
아 그또한 앞의 사내가 하는 말에 그닥 거부하고픈 마음을 아닌 것 같았다.
그것을 알아차린 건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던 두 사람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
다. 한때는 전 대륙을 호령하며 잘 나가던 비잔힐이, 황제의 직속이 되고 저 큰도련
님이 가주가 되면서 점점 쇠퇴해지고 있다.
그건 무슨 거래를 하든지 일단 황제의 일부터 우선으로 하는 자세가 문제이기도 해
서 이번 여정도 두탕의 커다란 건수를 놓치고 억지를 부려 이동을 한 것이다.
어디서 들은건지 몰라도 황제가 서쪽에 있다는 말을 주워 들어선 다짜고짜 보물들
을 싸 그에게 아부하려 가는 꼴이라니.... 확실히 황제의 직속이 되면 여러가지 혜
택이 있지만, 자유로이 거래를 할때와 비할바가 아니다.
천하의 비잔힐이 이렇게 되다니...
"그만 일어나자고. 주인님이 화내시겠어.."
"임금이나 제대로 주고 부려 먹은면....."
투덜대며 자리에서 일어나던 사내는 자신의 목에 대어지는 날카로운 검에 안색을
달리했다. 순간에 굳어진 두 사내를 둘러싼 에스와 샤한은 되도록이며 악당같은 미
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꿇어."
탁.
"어디로 가는 거야?"
"........."
"다른 일행들은 저기에 있잖아. 여기는 아무도 없는데 왜 이런곳으로.. 흡."
아까부터 조절조잘 말도 되게 많은 유크렌의 입을 막으며 오브는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저쪽은 다른 일행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주위사람들을 모두 물린 다음 지금쯤 좋은
시간을 가지고 있을 큰형을 찾기위해 애써 조심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이 새머리
같은 용이 초를 친다.
왜 입을 막느냐며, 불만을 눈위로 들어내며 읍읍거리는 유크렌의 얼굴에 자신의 입
을 가까이 한 오브는 이를 갈며 조용히해라고 말했지만, 그에따라 유크렌의 눈에
좀더 강한 불만이 어린다.
이런 녀석따위 한방에 때려 눕히고 조용히 혼자 가자-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지
만, 이런 덜떨어진 거라도 일단은 용.
호흡을 고른 오브는 손을 떼고 아직도 투덜대는 유크렌을 바라 보았다.
"지금 이 집단의 핵심인물에게 가는거니 조용히 하란 말이다.
...너때문에 다 들키겠다."
"헤-에. 그런 거였어? 진작이 말하지!"
"....말했으니깐, 목소리좀 줄이고 입도 다물지."
이를 갈며 말한 오브는 그러나 왜 그래야 하느냐는 뜻으로 바라보는 유크렌의 얼굴
에 한숨을 쉬고 몸을 돌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일단은 알어먹은 모양인지 아까와 다르게 조용히 뒤를 따르는 유크렌의 모
습에 한숨을 쉰 오브는 머리가 지끈거리자 미간을 찌뿌렸다.
정말이지- 다른 녀석들은 뭐하고 있길래 이런 애물단지는 매번 내뒤를 따르는 건
지. 투덜대며 계속해서 걸음을 옮긴 오브는 드디어 그가 있을 것 같은 마차를 발견
하곤 안색을 굳혔다.
이번에야 말로 그동안 당한 모든 것들을 보복해 줄테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마차에 귀를 댄 오브는 여지없이 들리는 신음소리에 안면
을 찌뿌렸다.
여전한 놈이다.
이 짐승같은 놈, 이런데 와서 잘도 그럴 기분이 드는 구나.
"..뭐야?"
"쉿-"
귀가에 대고 조용히 말하는 유크렌에게 손가락을 들어보여 조용히 하라고 시킨 오
브는 천천히 마차의 문을 열어 안에 들어있는 사람을 확인하곤 정말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악취미인 듯 위쪽에서 내려온 줄에 두팔이 묶여진 어린 소년의 몸을 정신없
이 탐하고 있는 형이라는 짐승이 보인다.
살집이 두둑한 중년의 어른이 저런 어린아이를 게다가 남자아이와 성관계를 할 마
음이 들다니... 느글거리는 속을 부여잡으며 옆구리에 달린 검을 빼아 들려던 오브
는 그러나 벼락같이 마차안으로 들어가 중년인의 등을 사정없이 내리치는 유크렌
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짐승같은 놈-! ! 이런 어린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냐--ㅅ! ! !"
"크--엑?! ! 욱?!! 컥! ! 케--ㄱ! ! !"
퍽퍽퍽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고 사정없이 발길질과 주먹질에 시달린 중년인이
떡이 된 모습으로 마차에서 기어 나오려는 모습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오브는 다
시 주먹을 들어올리는 유크렌의 모습에 안색을 달리하며 매달렸다.
"이봐-! ! 죽일 셈이냐?! !"
"이런 변태같은 놈들은 살 필요가 없어--! ! !"
"이..이봐! !"
매달린 자신을 질질 끌면서 인사불성의 형에게로 걸어가는 유크렌의 모습에 오브
는 몸을 떨었다.
이놈이 뭣때문에 이렇게 미친용처럼 구는지는 몰라도 빨리 진정시키지 않으면 이
소란을 듣고 다른 녀석들이 몰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익~~ 놓으라니깐-! ! 더 때려 줘야해, 이런 것들은 흠씬 두들겨 맞아야 한다
고--! ! !"
유크렌은 마차안에서 어린 소년을 희롱하는 사내의 모습을 보자마자 이성이 툭하
니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두눈에 눈물이 고인 연약한 소년의 모습이라든가, 그 하얀 살위를 쉴새없이 왔다갔
다하는 느물거리는 두터운 손이 마치...마치..! ! ....천년전에 아무것도 모르고 융텐
에게 처음 정조를 빼앗긴 당시를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비록 그때는 어려서 당하긴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
사내를 융텐으로 동일시한 유크렌은 이 변태같은 인간에게 그 당시의 억울함을 대
신해 정의의 철퇴를 내리자고 생각했다.
다시금 들어 올리는 주먹이 막 중년인의 등짝에 와 닿을 때쯤 새하얀 그러나 단단
한 느낌이 손이 유크렌의 손목을 잡는다.
"그러다 진짜 죽습니다."
유크렌은 자신의 팔을 잡는 노웬의 손을 뿌리치기 위해 몸을 뒤로 틀었지만, 꼼짝
도 안한다.
나름대로 카리스마가 있는 인간이라고, 상당히 강할거라곤 생각했지만, 여리여리
한 외관에 얍잡아보는 마음이 없지않아 있었거늘, 이런 엄청난 힘이라니.
어린아이에서 어른모습으로 폴리모프했을 때 그에 걸맞는 근력과 검사로써의 재능
도 옵션으로 구성해 뒀는데.
두눈을 땡그랗게 자신을 올려다 보는 유크렌에게 웃어보인 노웬은 바닥에 널부러
져 발작적으로 살려달라고 손을 내미는 중년인의 모습에 미간을 찌뿌렸다.
어느새 곁에 서있던 젤이 마차안에 들어가 묶여있던 소년의 포박을 풀어주는 것에
노웬은 싸늘히 입을 열었다.
"이런 짐승같은 인간은, 동료의 밥으로 넘겨주도록 하죠-"
"무...무슨?! !"
갑자기 덮친 고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을때, 눈앞의 사내가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라
고 착각하고 그의 옷자락에 손을 뻗으려던 중년인은 얼음이 떨어질 것같은 음성과
내용에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중간에 들어 올려져서 정지한 중년인의 손을 내려다 보던 노웬은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오브를 바라보며 눈썹을 올린다.
"어라? 오브군, 이런 곳에서 당신의 형님을 만나게 되는 군요."
"뭐..뭐야?! !"
노웬만의 바라보던 중년인은 그의 말에 안색을 달리하며 뒤를 돌아보다 자신을 내
려다 보고 있는 오브를 발견하고 불에 데인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얼굴을 험악하게 이글어 뜨린 그는 엉망인 모습으로 목청
을 높였다.
"네 이놈! ! 알고보니, 나에게 앙심을 품은 네놈이 수를 쓴거구나! ! 이런 패악무도
한 놈이-! ! 목숨을 살려줬으면 고맙게 여기고 굽신거리지..! !"
퍽! ! !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인간. 앙?"
"..히..히엑..;;;"
오브의 앞에서 조금 안정을 찾고 큰소리를 치던 그는 그러나 얼굴옆에 박히는 주먹
에 사색을 하며 짐승의 소리를 내뱉었다.
그러고선 금방 태도가 바뀌어 잘못했다든가 살려만 주면 모든것을 하겠다고 주절
거리는 그를 가만히 내려다 보던 오브는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모처럼 관용을 베풀고 싶지만, 아까의 그말을 들으니 베알이 꼴려서 도저히 이대로
는 보낼수가 없다. 악당의 미소를 지으며 이를 들어낸 오브는 자신의 형이자 현 비
잔힐의 가주를 내려다 보며 냉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알몸으로 숲에 벌려주지- 그정도야 뭐 나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잖아?
당신 나 쫓아 내면서 엄청난 자객들을 풀었잖아."
".........그.. 그건..;;"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려는 그의 행동에 손을 내밀고 말을 말라는 모션을
취해보는 오브는 입가의 미소를 지웠다.
"혹여나 짐승들에게 물여 뜯겨서 죽게 되거든, 이미 저세상에 가있는 자객들이랑
다시 의논해서 날 죽이러 오라고- 변태 늙은이-"
일말의 동정이 없는 그말에 중년인의 얼굴이 곧 죽을 것 처럼 이그러 졌다.
덜커덩.
".......흐음, 이대로 중앙국 돌파-인가요?"
"그렇겠죠. 오브 덕분에 편하게 갈수 있게됐네요."
마차를 몰며 라프헨의 말을 받은 에스는 뒤에 마차에 타고 있는 오브쪽에 시선을
주었다. 그가 아니였다면 아직 숲에 머무르면서 적들의 눈치를 보고 있어야 했을
텐데 말이다.
설마하니 그들도 자신들이 중앙국의 황제에게 진상할 보물들이 있는 마차에 타고
올거라곤 생각치 못할 것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자신 덕분에 이렇게
다녀야 하는 상황이 미안하기만 한 그였다.
황제의 기사들은 이미 중앙으로 돌아갔는데, 카일이 푼 자들이 일행의 뒤를 쫒는
것이다. 여러모로 폐를 끼치는 녀석이다.
놈과 함께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위기를 격어야 했던가.
벗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탈출할 당시 유크렌의 브레스를 맞았다는 것
을 듣고 꽤나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해서 상당히 난감했다.
"몸은 이제 괜찮은 건가요?"
"젤님에 비하면 전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내내 잠들어 있었으니 뭐, 건강하다고 해야겠죠."
그 카일이라는 놈이 수면약같은 걸 먹여서 내내 잠들어 있어 불편한 곳은 없었지
만, 대신 체력이나 근력이 많이 약해진것 같았다.
몇일을 누워있기만 했으니 어쩔수 없는 건가.
"...이제 어떻게 되는 건지. 칸 녀석은 또 어디에 있는 거야."
라헨의 푸념같은 소리에 에스는 표정을 굳혔다.
중간에 에즈와 합류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렇다쳐도 그들 일행의 사람은 턱없
이 적은 대다 칸이 없는 실정이기도 하니. 여러모로 문제다.
근 시일내에 칸을 만나고 하루라도 빨리 동에 도착하길 바라며 에스는 마차를 모는
속력을 높였다.
탁탁.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야?"
"입다물고 따라와라. 꼬맹아."
융텐의 말에 울컥한 칸이지만, 곁에 있는 유헌이 눈치를 주자 입술을 내밀며 뾰루
퉁한 표정을 짓는다.
이미 어린 아이가 아닌 성인의 몸인 그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은 상당히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를 익히 알고 있는 유헌은 그런 그의 모습조차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
라보는 것이다.
그런 모습이 아까부터 융텐을 날카롭게 하는 원인이지만, 둘은 모르기에 앞서 걸어
가는 흑룡의 심기를 계속해서 건드리는 행동들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자꾸 융텐이 시비를 거니 지금은 좀 자제하고 있는 둘이었다.
"그나저나 재밌는 곳이네, 목소리가 울려."
끝없이 펼쳐진 어둠의 동굴에 안색을 굳혔지만, 알고보니 얼음으로 만들어 졌다는
것과 말을 할때마다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것이 신기해서 칸은 금새 표정을 풀고 어
린아이처럼 들떴다.
곁에 걸어가는 유헌의 몸을 부축하는 틈틈히 보석처럼 빛나는 벽을 쓸어보기도 하
고 장난으로 메아리를 만들어 보기도 한다.
처음엔 그런 모습들이 귀엽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짜증을 내는 한편 피식하고
웃기도 했던 융텐은 계단의 끝이 다가오자 점점 표정을 굳혔다. 굳이 이리로 올 필
요는 없지만, 두 녀석의 성장을 위해서는 한번쯤은 들러봐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것이 약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쓸 필요는 없겠
지.
"재밌냐? 칸크빌레."
"........약간은.. 이런 얼음 동굴은 나 처음인걸?"
"여기 사람들도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얼굴동굴이라는 것을 봐왔겠지."
"............."
갑자기 예민한 곳을 건드리는 융텐의 얼굴을 바라보는 칸이다.
그런 칸의 얼굴을 바라보며 융텐은 한손을 들어 보였다.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것이 좋다.
두 사람이 좋은 방향으로 받아들이길 기대해 보기로 하자.
"수만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살아남은 수는 지극히 적어, 그것도 천년의 시간동
안 서서히 불어나긴 했지만, 아직도 그 수는 적지. 그리고 '따뜻한 환경'은 왕의 능
력만으론 채워지지 않는 법이라서 말야, 일반 백성들도 그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나
라를 지켜가고 있지."
"........그만둬."
융텐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고 눈치챈 칸은 안색을 달리하며 옆에 서있는 유헌의 얼
굴을 자신의 가슴쪽으로 끌어 당겼다.
저 용이 무슨짓을 할지는 모르지만, 좋은 의도가 아닌것은 직감으로 알수가 있다.
칸에게 안겨진 유헌은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당황하며 떨어지려고 했으나 그럴수
록 강하게 안는 힘에 몸의 힘을 풀었다.
"북의 인간들은 자신들이 살고있는 곳을 요람이라 부른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그만 둬."
"태어나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라지."
"빌어먹을 그만두라니깐-! ! !"
칸의 외침과 동시에 눈이 놓을 것 같은 엄청난 양의 빛이 시야를 자극한다.
그 통증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눈을 깜박이던 칸은 주변에 아무 변화가 없
다는 것을 인식하고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바로 고개를 들면 이상한 것을 볼것같은 두려움이 얼굴을 비스듬히 들어 벽
에 시선을 주던 그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어린 꼬마의 모습에 숨을 들이켰다.
이런곳에 왜 저런 꼬마가 있을 건지는 모르지만, 일단 눈이 마주쳤기에 인사를 위
해 입을 열려던 칸은 그러나 안색을 돌처럼 굳힐수 밖에 없었다.
"엄청난 수이지 않나."
"............."
"너희 중앙국의 죄이다-라고 하면 너무 상투적이고 말야.. 그냥 나라를 지키기 위
한 처절한 인간들의 몸부림이라고 생각하면 나을 것 같군."
수백미터에 달하는, 성의 자리보다 더 넓은 것 같은 엄청난 얼음동굴이었다.
그리고 그 얼음벽 너머엔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살아생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들어
가 있었다.
혼자서 서있거나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모습, 아이와 같이있는 부모와 서로의 손을
꼭잡은 부부로 보이는 연인들, 늙은 노인과 아이를 밴 임산부까지 하다못해 갓난아
이의 모습에 칸은 뒤로 물러나며 손을 들어 입가를 눌렀다.
엄청난 충격에 새파랗게 죽은 그 얼굴을 바라보던 융텐은 바닥에 발을 두들였다.
그 밑에는 죽은 듯 잠든 사람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왕의 힘만으론 무리야. 그래서 백성들은 몸을 바치지-"
"..........."
"한기가 흘러 나오는 곳에 자신의 몸을 던져 막아내는 것야. 자신과 가족과 친구들
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매년 수백의 사람들이 이곳에 산채로 매장당하지.
그렇게 되면 일시적이지만 그들의 왕과 나라가 지켜지거든.
.............이 얼머나 숭고한 희생인지...."
비웃음이 섞인 어조였으나, 그속에서 절규와 같은 통증을 읽은 칸은 망연히 눈을
들었다.
어지간히 충격을 먹은건지 그는 그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채 학학대며 짧은 숨을 뱉
어내고 있었다.
"너의 죄는 아니지만, 네 몸속에 그들의 피가 흐른다는 것은 사실이지.
네가 제위한 10여년동안 이들만큼의 사람을 죽인 것도, 그중에 이들의 친구나 가족
이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야."
"............."
"칸크빌레, 도망가선 안되고 싸워서 이겨야해. 만약 네가 지금의 상황에 안주해서
멈춰있다면.................................
죽은 이들은 결코 널 용서하지 않을 거다."
평소보다 빠른 박동으로 움직이던 칸의 심장이 충격으로 순간이나마 멎은 것을 느
꼈을땐 유헌은 말로다 표현할수 없는 격렬한 감정을 느꼈다.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저 융텐의 입을 막아버리고픈, 그리고 칸의 귀를 막고
자신을 바라보라고 소리를 지르고픈, 그런 엄청난 충동을 느꼈지만, 이내 눈을 감
으며 마음을 안정시켜야 했다.
과거의 칸크빌레따위 자신은 모르지만, 이곳의 다른 자들은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칸크빌레의 해명이나 그 일에 대한 끝맺음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나 칸이 원하든 그렇지 않던 그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유헌은
충격을 받고 경직된 그의 등을 마주 않을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가 자신을 지키고 있지만, 언젠가 자신이 그를 지켜야 할때가 있을 것이
다.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그때는 저 융텐같은 이들이 칸을 괴롭히는 것을 결
코 보고만 있지 않을 거라고 결심한다.
"이제 다른 곳으로 가볼까.
....그동안 추운 곳에서 지내다 보니 감성도 매마른 것 같아."
"..............."
"어디가 좋을까나? 칸크빌레."
그런 폭탄을 던지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방실대는 융텐의 얼굴을 가만히 바
라보던 칸은 이내 헛웃음을 지었다.
저런 존재다, 용이라는 것들은.
무척이나 피곤한 안색으로 미간을 주무르던 칸은 '동으로...'라고 작게 웅얼거렸다.
"동?"
노웬이라며 분명 그리로 갈 것이다.
그런 확신을 막연하게나마 가진 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칸의 얼굴을 미소지은 채 바라보던 융텐을 뒷목을 두들였다.
"동이라.. 그래 한번쯤 가보는 것도 좋겠군..."
그의 말과 동시에 세사람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얼음 동굴의 구석구석을 밝
혀주던 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적막한 고요함이 흐르는 공간에서 남져진 자들은 차분히 잠이 드는 것이다.
북의 요람.
그들의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
시녀는 아까부터 초조하게 문앞을 왔다갔다하는 요크발의 모습을 훔쳐 보았다.
만약을 대비해 재빨리 달려가 연락을 줄수 있도록 배치되었지만, 황제를 대상으로
하는 일이만큼 그런것들은 전부 기사들이 하고 있어 그녀는 단지 자리를 채우기 위
해 존재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있는 몸은 피로롤 호소했지만, 저 공작을 위시한 나라의 중요
인물들을 두루 볼수있다는 점에서 그녀는 이일을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누가 저렇게 높은 사람들을 자신을 볼수 있겠다고 상상이나 했었을까.
볼에 흥조가 진채로 요크발의 얼굴을 바라보기 바빴던 그녀는 그에게로 다가오는
적발미녀의 모습에 안색을 달리하고 얼굴을 숙였다.
한번도 본적은 없었지만, 느낌으로 단번에 알수있었다.
그녀가 바로 중앙국을 수호하는 적룡 루드빌이라는 것을.
전에 그녀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빼앗긴 시녀가 고개를 숙일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있다 그 자리에서 목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것이다.
시녀는 그런식으로 죽고 싶진 않았다.
"폐하의 상태는?"
"괜찮아. 대비없이 주술이 깨져 타격을 좀 받은 것뿐."
붉은 입술을 올려 미소를 지어 보이는 루드빌을 바라보던 오크발은 한숨을 쉬며 자
신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루드빌은 손을 들어 그의 목덜미를 주물러 주었다.
눈앞의 젊은 공적이 자신의 주군의 상태가 염려되어 몇일 밤낮동안 자지않고 이곳
에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손길에 불에 대인 듯
찰싹소리가 나도록 후려친 요크발은 루드빌이 닿은 부분을 감싸 안았다.
금새 붉어지는 손등을 내려다 보던 루드빌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요크발을 바라 보
았다. 그리고 아까부터 알게 모르게 두 사람의 모습을 훔쳐보던 시녀는 믿을 수 없
는 광경에 숨을 죽였다.
순간적이나 저 적룡이 분노하며 요크발의 목을 치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꽤나 예민하잖아. 요크발, 사춘기인가?"
"갑자기 손을 대다니.. 놀랐잖은가."
놀란 차원의 문제가 아닌 듯 요크발의 미간을 굉장히 불쾌하다는 듯 찡그려져 있었
다. 그런 그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해 보인 루드빌은 황제가 들어가 있는 문을 열어
들어오라는 듯이 안으로 손을 내뻗었다.
그런 그녀의 움직임에 요크발은 여전히 미간을 찌뿌린 채로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부턴 각별히 더 잘보라고, 그래서 너와 너 누님의 아이가 잘 될테니-말이다."
"..............."
"자자- 그런 눈으로 보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 사랑스런 요크발."
누님과 그녀의 아들인 돔에 대해 운운하는 루드빌을 죽일 듯이 노려보던 요크발은
망토를 뒤로 넘기면 방안으로 들어갔다.
부모에게 반항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듯 눈을 가늘게 뜨던 루드빌은 방안으로 들
어가기 이전 복도에 멀찍히 떨어져 서있는 시녀를 바라 보았다. 루드빌의 시선을
느낀 시녀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식은땀이 맺혔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루드빌은 입술을 비죽히 내밀며 '모처럼이니.. 봐주
도록 할까..'라고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탁.
"............"
문이 닫히자 마자 시녀는 두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벽에 등을 기댔다.
시녀장이 봤다면 엄청 혼이 났을 테지만, 그녀는 온몸에 축축히 젖어있는 금방이라
도 쓰러질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가슴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그녀는 침을 삼켰다.
루드빌은 자신을 바라보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자신에게 경고를 한 것이다.
시녀는 옆에 기사에게 속이 좋지않아 교대를 하고 오겠다는 일방적인 말을 남긴후
뒤에서 부르던 말던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방문에 붙어서 시녀가 멀어지는 것을 듣던 루드빌은 입술을 삐죽였다.
평소라면 저런 쥐새끼 같은 것따위 단번에 사라지게 했을 테이지만, 그랬다간 저
요크발이 싫어할테니 봐주도록 했다.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대면서 자신이
할때만은 엄청 싫은 표정을 짓는 것이다.
그런것따위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맘에 든쪽이 져주는 것이니, 어쩔수 없
다고 생각한다.
루드빌은 문에서 떨어져 황제가 누워있는 침대가에 서있는 요크발에게 다가가 그
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바로 쳐낼만도 하다만 그는 누워있는 황제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 볼뿐이다.
"왜? 황제의 모습에 놀라운건가? 아니면 그 칸크빌레와 너무 닮아서 그런거야?"
"...........입닥쳐."
"왜 그래? 우리 사이에 거리낄게 어디에 있다고 그런 예민한 모습을 보여? 헤-에.
머리카락만 진하면 영락없이 제위기간의 칸크빌레네- 뭐, 쌍둥이니 당연한 건가."
"루드빌."
옆에서 종알종알대는 적룡의 모습에 이를 갈며 나직히 말한 요크발은 그러나 그녀
가 장난스런 미소를 짓을 뿐 전혀 위축대는 모습을 보이지 않자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최강의 존재인 드래곤이다.
그런 그녀에게 자신의 행동은 엄청나게 무례한 것이지만, 그녀와 여러가지 인연이
있는데다 그녀의 태도는 매번 그의 성미를 건드리는 것이다.
그녀가 얌전히 중앙국의 용으로서 적당히 무게가 있고, 오만했다면 요크발의 목은
진작에 떨어졌을 것이다. 빙글빙글 웃는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던 요크발은 누이
와 겹치는 그 얼굴에 입술을 깨물며 자리에 앉았다.
"언제쯤 깨어 나시는 거지?"
"글쎄, 내일이나, 빠르면 오늘 저녁쯤이 아닐까 싶은데."
"............."
13세정도로 보이던 소년이 갑자기 20세가량의 청년으로 변했다.
그러나 성장했던 것만으로는 그날 저녁 그의 얼굴에 나있던 그것이 설명되지 않는
다. 눈앞에 누워있는 이자는 그 탑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슨짓을 한건가.
자신의 눈에 본것만으로도 그가 무슨짓을 해서 그런 힘을 얻을수 있었고, 칸크빌레
를 내쫓을 수 있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지만 그것을 믿고 싶지않다.
안색이 굳은 요크발의 얼굴을 내려다 보다, 그의 어깨에 옆드려 얼굴에 흘러내린
적발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루드빌은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적색
의 눈동자에 입가를 비틀어 보였다.
영리한 아이이니 무엇을 깨닭았는지 알수있었지만, 그런식으로 자신만을 매도하는
것은 좋지않아.
"그런 눈으로 보지마. 전부 이자크가 원한 일이야."
"............."
"이런 사랑스런 아이의 청을 내가 거절할수 없잖아?"
손을 뻗어 이자클의 머리카락을 잡으려던 가는 손목을 잡아 뒤로 빼낸 요크발은 이
렁이는 눈동자로 루드빌을 내려다 보았다.
그 눈동자에 가슴에 작은 파문이 이는 것을 느끼며 적룡은 이를 들어내며 웃었다.
역시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신비로운 것이다.
"그가 원한 일이니, 그에 대한 댓가또한 그가 받게 되는 것뿐이야.
겨우 그런것을 가지고 나를 나쁘게 만들 생각인건가? 요크발."
".....너라는 것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말하는 붉은머리 사내의 얼굴을 정신없이 바라보던 루드
빌은 입가를 올리며 그의 턱을 잡아 올렸다.
손을 치워 내려던 요크발은 그러나 강력한 힘에 눈살을 찌뿌렸다.
점점 이그러지는 미모의 얼굴을 내려다 보던 그녀는 턱을 잡아 부술듯이 위로 치켜
올린 상태로 천천히 자신을 얼굴을 내렸다.
"자기 얼굴에 침뱉기라는 말을 아는가?"
"....큭.. 네놈..!"
"자신의 목적을 위해 누이를 속이는 네놈이 감히 나를 경멸하는 건가."
루드빌의 말에 요크발의 얼굴이 경직된다.
그런 그의 표정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던 루드빌은 혀를 내밀어 그의 입술을 핣
았다. 익히 알고있는 체향이 콧끝으로 밀려오자 루드빌은 만족의 웃음을 흘리며 그
의 볼을 깨물었다.
"어차피 이자크나 너나 나나. 모두 같은 배를 탄 동료. 사이좋게 지내자고."
"............"
"..역시 넌 이런 얼굴에 제일 아름다워."
경직된채 입을 일자로 다문 그의 얼굴에서 손을 덴 루드빌은 손가락으로 들어올려
진 그의 턱을 밀어내며 입꼬리를 올려 보았다.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 한참동안 그 자세로 앉아있던 요크발은 쥐어진 주먹에 피가
몰려 손톱에 박힌 곳에서 피가 세어 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단지 계속해서 그녀가 있던 방향을 바라 보았다.
모두 같은 배를 탄 동료라는 그의 말에 귓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밝은 빛을 방안으로 들어보내주던 해가 지고, 이내 요요한 달빛이 비추기 시작하자
가만히 감겨있던 이자크의 눈이 떠진다.
한동안 금빛눈으로 멍하나 침대위에 그려진 천사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자신
의 옆에 느껴지는 기척에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경직된, 그러나 거짓말을 들킨 것 같은 어린어이의 표정을 지은채로 요크발이 자신
을 바라보고 있었다. 몽롱한 정신을 부여잡으며 이자크는 왜 그가 이곳에 있는지,
자신이 이곳에 있는지 알수가 없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그의 시선에 요크발은 이자크가 완전히 깨어난 것이 아님을 알
고 의사를 부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기서 뭐하는 거야? 요크."
"..........."
"어둡네...... 모두는 어디에 있는 거지?"
몸은 커졌지만, 음성은 여전히 미성이었다.
그 목소리로 어린아이처럼 웅얼거리는 황제의 모습에 요크발은 침대를 지지하고
있던 손을 들어 자신의 입술을 눌렀다.
일시적으로 어린 시절로 돌아간 이자크는 불안하게 떨리는 눈으로 '여긴 너무 어두
워....무서워.'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매달리는 눈빛을 요크발에게 보냈다.
손을 뻗어 그를 안은 요크발은 눈가에 차오로는 뜨거운 열기를 깨닭고는 눈을 감았
다.
"요크.. 여긴 어디지?"
자신의 물음에 답할 생각을 안하는 요크의 모습에 이자크는 미간을 찌뿌리다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얼굴에 머뭇거리며 입술을 열었다.
".....형님은?"
".........이자크."
"칸크빌레...형님은?"
점점 물기가 차오르는 음성을 들으며 요크발은 눈을 질끈감고 그의 목뒤를 눌렀다.
아래에 누워있는 가슴이 크게 오르는 것과 동시에 이자크의 황금빛 눈동자가 감긴
다. 이내 일정한 간격으로 방안을 울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요크발은 이를 갈았다.
칸크빌레, 그래 너에게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있어.
죽어도 다 보상못할 죄를 지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하지만 말이다. 너의 그 무감함으로 인해 상처받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너
의 처우는 뭐였지? 너의 시선을 한번만이라도 더 받기우해 몸부림치던 이 작은 존
재들에게 너는 어떤짓을 해왔는가 말이다.
그것을 지금 당장 묻는다 해도 너는 단지 바라보기만 할 뿐이겠지.
그때 율시아를 바라보던 그 시선으로, 이자크를 바라보던 그 시선으로 단지 바라보
기만 할 뿐이야.
알지 못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아픔을 준 죄는 크다.
의도하지 않던 그렇던 네가 짓은 죄니, 결말도 네가 내야 한다.
"그래... 칸크빌레.. 네가 내야해."
너의 죽음으로.
요크발은 광기에 휩싸인 눈동자를 번득이며 황제를 안고있는 팔에 힘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