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27/55)

      유제스는 북이 싫었다. 

      혹한의 계절에 지하왕국과 융텐의 거처만을 돌아다닐수 있는 한정적인 공간은 한

      창 피끓는 그에겐 감옥과도 같은 것이었다. 

      장자가 꼭 왕이 되는 것이 아닌 북이기에 부왕에게 밖으로 여행을 보내 달라고 졸

      라 댔지만 그는 쉽게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 서서히 지쳐가고 나날이 안색이 나빠

      지는 그를 보다못한 주위 대신들이 부왕을 달래 친선대가의 명목이긴 하지만, 겨우 

      밖을 돌아 다닐수 있게 되었을 때의 그 기쁨을 유제스는 지금도 잊지 못했다. 

      언제나 두겹, 세겹으로 옷을 껴입어야 했던 자신들과 달리 그곳에서 바지만을 입고 

      그물을 끄는 뱃사나이들이 있었다. 움직임이 멈춘 호수만을 보았던 그에게 넘실대

      는 바다와 푸른 하늘은 엄청난 감동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그림이나 책에서나 보던 숲이라는 것에 처음 들어가 꽃밭에 누웠을때 유제스는 엄

      청난 현기증에 차라리 기절을 하고만 싶을 정도였다. 

      북에서만 자랐던 그에게 그곳을 나와 접하는 모든것들이 신기하기 그지 없었다. 

      - 그런데서 뭐하는 거냐?

      다소 경직된, 그러나 장난기가 섞인 어조에 눈을 뜬 유제스는 햋빛을 등지고 자신

      의 몸위로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는 존재를 바라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부드럽게 휘어진 금빛의 눈동자와 위로 올라간 입꼬리를 지닌 소년같은 청

      년이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음을 확인한 그는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졌다. 

      그것은 그에게 죽을때까지 잊지 못하는 추억이었다.

      "엄청난 감동이었지. 마음이 확하니 사로잡히는 그 기분."

      "............."

      "칸크빌레 그대는 환생한 건가? 나를 만나기 위해서."

      "........지랄..."

      억지로 소파에 안히고 귓가에서 중얼중얼 거리는 유제스를 칸은 질린 얼굴로 바라 

      보았다. 여전히 그 무식한 힘으로 어깨를 사로잡아 꼼지락 거리는 것이 전부인 칸

      을 가만히 바라보던 유제스는 얼굴을 그에게 가까이 댔다. 

      직접 그 피부를 온기를 확인해야만 그 칸크빌레가 정말로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될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진짜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것이라도 이 한순간 만은 그라고 믿고 싶었다.

      그런 유제스의 행동에 안색을 굳힌 칸이 팔을 들어 그의 얼굴을 밀어 냈으나, 어디 

      앙탈이라도 부리냐는 듯이 너무도 쉽게 손목을 잡아 비틀고 손가락에 입을 맞춘다. 

      그 엄청나게 경악스런 행동에 칸의 얼굴에 사선이 그어진다. 

      '이런 변태같은 놈.'이라며 속으로 수십번을 중얼거리고 입밖으로 내놓을수 없는 

      것은, 자신의 정체를 이 놈이 눈치채면 상당히 곤란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우선적

      인 것은 자신과 같이 있는 유헌의 안부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중앙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북이다. 

      이 놈이 자신에 대해 엄청나게 호의적인 것은 사실이나, 북의 대륙인들은 자신들을 

      이런 곳에 가둬둔 중앙국에 엄청난 악의를 품고 있다. 말을 잘못해서 자신들의 정 

      체가 폭로나 유헌에게 무슨일이라도 생기면 칸 그는 스스로를 용서할수 없다.

      "저리가-! 이 변태야! ! 으그그~~" 

      "뭐 그렇게 떠는 건가. 몸의 힘을 풀고 나에게 모든것을 맡기라고."

      귓가에 대고 은근히 말하는 그 음성에 소름이 돋는다. 

      이를 악문 칸은 필사의 힘으로 유제스를 밀쳐내고서야 소파에서 벗어날수가 있었

      다. 남자가 찝적댄 온몸에 돋은 닭살을 밀어 버릴듯 비비며 그를 노려봤지만, 겉보

      기에 유리처럼 차가운 그의 얼굴은 눈썹하나 찡그리지 않는다. 

      그에게 잡힌 어깨가 욱씬거리는 통증을 호소하자 미간을 찌뿌린 칸은 그가 여전히 

      힘하난 쎈놈이라는 것이 인정해야 했다. 

      과거 여러번 찝적임을 당했지만, 그냥 장난이거니 해서 가볍게 넘겨 주었는데, 저

      놈이 떠나기 전날 진심으로 덤벼들어서 그대로 덮침을 당할뻔 했다. 

      어느 누가 사신으로 파견된 자가 상대 왕을 겁간하겠다 생각할수 있겠는가. 

      주위에서 방방뛰는 그를 말리지 않았다면 북또한 중앙국에 침략당하는 역사를 남

      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리로 오라니깐. 그렇게 거칠게 하지는 않을테니."

      "...씨끄러.."

      우득하고 이를 간 칸은 게걸음을 치며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서 빨리 도망가지 않으면 저 놈이 덮칠지도 모른다는 경보음이 몸안에서 요란하

      게 울린다. 

      놈은 반쯤 장난으로 자신을 칸크빌레의 환생이니 뭐니 떠들어 대지만, 그가 죽었다

      고 알고 있으니. 실제적으로 자신을 누군가의 시동으로 보고 있을것이 분명하다. 

      저놈은 북의 왕자이니 누군가의 시동을 건드렸다해서 감히 누구 뭐라고 하겠는가, 

      차마 정체를 밝힐수 없는 칸은 놈이 진심으로 덤벼들면 쪽도 못쓰고 당할 판이다. 

      저런 놈에게 당한다니.. 그건 칸 일생일대의 수치다. 

      달-칵.

      문앞으로 달려나가 손잡이에 손을 댄 칸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그와 동시에 허

      공을 나는 육체에 '어라?'하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이 허공을 나는 능력이 없는 이상, 이건 외부적인 힘에 의한 것인 분명할터.

      "얌전히만 있으면 평생을 호강하도록 해주마."

      "흐-익! !"

      완전히 사색이 된 칸은 죄는 음성으로 낮은 신음을 흘리며 몸부림을 쳤지만, 있는 

      것은 '힘! !'이라고 주장하듯이 칸의 필사의 저항을 가볍게 누르며 단숨에 침대위로 

      내던진다. 

      충격에 다시 튀어 오르는 몸을 위에서 내리 누른 유제스는 이가 들어날 정도로 환

      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른 여성들이 본다면 한번에 반하게 할만한 그 아름다운 

      미소도 지금의 칸에겐 짐승의 포효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자...자..잠깐--! !"

      "처음인가 보군. 괜찮아. 난 능숙하니깐.. 곧 알게 될거다."

      알고 싶지 않아. 

      절대절대절대 알고 싶지 않아! ! 

      지금 당장 자신의 정체를 말하고픈 자신과 그러지 말라는 자신이 속에서 엄청난 대

      립을 하고 있다. 

      만약에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놈에게 반항을 한다면 실컷 얻어 맞다가 끝내 당하

      고 나서 말도 안되지만 일단 놈의 말대로 호강하는 길과, 너무 반항해서 흥이 깨진 

      이놈이 병사들에게 자신을 내치는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밝힌다면 오히려 불이 붙은 놈이 더 달라 붙을지도 모르고, 자신의 정체와 

      입장을 알아차린 이 북쪽의 놈들이 자신의 내세워 중앙국 토벌을 외칠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중앙에 복수를 하려는 늙은이들이 태반이 이곳에서 예전이긴 하나 동맹

      을 이끌었던 칸크빌레를 다시 복위한다는 것에 대한 구실은 아주 훌륭한 침략명분

      이 되는 것이다. 

      쉴새없이 현 상황을 타계하기 위한 머리를 굴려대던 칸은 나오는 결론들이 하나같

      이 암울하자 이를 갈았다. 

      자신의 몸위를 나다니는 손이 마치 지렁이 같다는 생각을 하던 칸은 아래로 내려오

      는 미모의 얼굴에 얼굴을 경직 시켰다. 

      "그렇게 겁먹지 마라."

      혐오로 굳어지는 것을 겁먹었다고 착각한다.

      이를 간 칸은 녀석이 내려오는 동시에 급소를 차줄테다 하는 필사의 각오로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 점점 다가옴에 칸이 주먹쥔 손을 서서히 올리는 동

      시에 나지막하고 서늘한 음성이 귓전을 때린다.

      "그에게서 떨어져."

      ".........."

      "떨어져라, 이대로 목이 잘리고 싶지 않다면-"

      유제스는 자신의 목을 누르고 있는 단검에 눈썹을 한쪽으로 올렸다. 

      자신이 못 알아차릴 때까지 이리 가까이 근접할수 있다니.. 잠시 얼굴을 굳힌 그는 

      단검이 목을 누름과 동시에 베어 나오는 혈선에 속으로 혀를 차며 몸을 일으켰다. 

      방금까지 품에 안겨져 있던 작은 몸의 온기가 사라지자 아쉬운 표정을 짓던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에 안색을 굳혔다. 

      검은 색의 눈동자와 머리카락에 융텐이 새로 폴르모프한 모습인줄 알았던 그는 감

      정이 풍부하고 솔직하게 들어나는 눈동자와 드래곤 특유의 억누르는 기가 느껴지

      지 않자 이 소년이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인간중에서도 꽤나 특이한 아이 같다만.... 

      "괜찮나요? 칸."

      "아...으응.. 난 괜찮은 것 같은데.."

      칸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날카로운 살기를 내뿜어 내는 가흔의 표정에 안색을 굳혔

      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저리 흥분하는지 이유는 알수 없지만, 순순히 그의 말에 따

      르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자신의 손을 잡고 일어나는 칸의 옷자락을 바로 잡아준 유헌은 침대가에 서서 여유

      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를 노려 보았다. 

      저자가 칸의 위에 있는 것을 발견했을때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것과 동시에 주체할수 

      없는 살기를 느꼈다. 자신들의 입장과 어느곳에 와 있는지 깨닭곤 살기를 금새 죽

      일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칸에게 못보일 꼴을 보일뻔 했다.

      "...재미있군."

      살기를 담은 시선을 여과없이 보내는 검은 머리의 소년과 칸크빌레를 닮은 어린 소

      년을 바라보던 유제스는 한손을 허리에 댄채 삐딱하게 섰다. 

      그런 자신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따르며 검의 각도를 제는 검은 머리의 소년이 꽤나 

      실력이 좋다고 휘파람을 불던 그는 바닥에 밟히는 유리조각에 눈빛을 빛냈다. 

      아까 저 칸이라는 이름의 소년을 벽에서 빼낼때 여기까지 튕겨져 나온 모양이다. 

      타이밍을 재던 그는 검은 머리의 소년이 문의 손잡이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눈을 

      돌리는 찰나의 순간을 캐치하고 바닥에 떨어진 조각들을 발로 쳐올려 그에게로 날

      려 보냈다.

      " ? !! "

      이쪽으로 날라오는 날카로운 유리조각에 안색을 굳힌 유헌은 곁에 칸을 옆으로 밀

      고 자신또한 몸을 틀었지만, 몇개의 조각들이 몸에 상처를 입히고 뒤벽에 부딫혀 

      산산히 부숴진다. 

      저런 것을 저정도의 힘으로 던질수 있다니.. 질린 표정을 짓던 그는 검을 들고있던 

      손목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악력에 이를 알물고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노려보는 검은 눈동자를 바라본 유제스는 여유로운 미소를 짓으며 잡고있

      는 손목에 강한 힘을 주었다.

      "검은 함부로 휘두르는게 아니다. 애송이 도령."

      잡힌 손을 빼려던 유헌은 그러나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팔에 안색을 굳혔다. 

      멀리 바닥에서 일어난 칸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안색을 굳힌채 자신에게 달려 

      오려는 모습에 조급함을 느낀 유헌은 이를 갈며 위로잡고 있던 검을 돌려 아래로 

      해 자신을 잡고있는 상대의 팔목을 찍어 내렸다. 

      안색을 달리한 유제스는 잡은 손을 빼내고 뒤로 물러났지만, 손목엔 이미 가는 혈

      선이 그어진 후였다. 

      믿을수 없을 만큼의 속도와 힘이었다. 

      손목을 잡고 뒤로 물러난 유제스는 검은 눈빛을 빛내며 자신을 노려보는 소년의 모

      습을 위아래로 흩어 보았다. 순간적으로 검날의 위치를 바꾸는 판단과 속도, 그리

      고 잡힌 근육을 움직이려면 자신보다 강한 힘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지금껏 자신보다 힘이 쎈 자를 만난적이 몇번이나 되었던가. 

      안색을 굳힌 그는 이 소년이 무시못할 실력을 지녔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겁한 수이긴 어쩔수가 없지."

      "무슨 짓을...! !"

      몸을 뒤로 빼고 책상으로 달려가는 유제스의 모습에 당황한 칸이 그리로 달려 나갔

      지만, 사내는 이미 책상위에 달린 종을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문밖

      에 소란스러워 지더니 큰소리로 문이 열리고 무장한 채의 병사들이 쳐들어 온다. 

      안색을 굳힌 유헌은 자신의 팔을 잡아끄는 칸의 행동에 말없이 그의 뒤로 몸을 숨

      겼다. 

      "함부로 내방에 쳐들어온 자다. 하지만 상처하나 없이 잡아라."

      "저런.. 비겁한...."

      유제스의 명에 날을 들이밀던 병사들이 창의 위치를 바꿔서 뭉툭한 부분으로 칸과 

      유헌의 주위를 감싼다. 

      불리해 지니 병사들을 불러 잡으라는 유제스의 행동에 이를 간 칸은, 놈이 여전히 

      비겁하게 약싹 빠르다는 사실에 절대로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말아야 겠다고 결심

      했다. 저런 변태같은 놈에게 걸렸다간 무척이나 뒤끝이 많을 것 같다. 

      노려보는 시선을 콧등으로 넘긴 유제스는 팔목에서 배어나는 피를 손수건으로 누

      르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칸과 유헌을 바라 보았다. 

      둘다 매력있는 미형들이다. 곁에 두고 애동으로 삶아도 상관은 없겠지. 

      잠시 앙탈부리는 히자스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라 망설이기도 했지만, 쉽게 구할

      수 없는 두사람의 자태에 유제스는 만족의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병

      사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위해 입을 막 열었다. 

      그러나 그들의 뒤로 나타난 인영에 안색을 굳히며 입을 다물수 밖에 없었다. 

      "이런이런, 이 무슨 일인지."

      ".........융텐."

      갑자기 나타는 흑룡의 존재에 칸과 유헌을 둘러싸던 병사들이 창을 내려놓고 바닥

      에 엎드린다. 드래곤은 공포의 상징이자 북을 지키는 수호신이기에 엎드린 그들의 

      이마위로 땀이 맺힌다. 

      그런 인간들에게 시선을 주던 융텐은 물에 빠지다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을 만났다

      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칸과 유헌에게 미소를 지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짝이는 게 무척이나 귀여웠다. 

      그런 융텐을 바라보던 유제스는 나직히 욕설을 내뱉었다. 

      저 변테용은 이상하게 자신과 취향이 비슷해서 사사껀껀 부딫혔던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원한다 해도 상대는 드래곤, 눈물을 머금고 언제나 양보를 해야 했

      던 그는 칸과 검은 머리 소년을 바라보는 그 음흉한 눈동자에 그 용또한 저 두사람

      을 찍었다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눈앞에서 먹이를 빼앗기게 된 유제스가 초조한 표정을 짓는 것과 달리 융텐의 얼굴

      은 편안하기 그지 없었다. 붙어있는 두사람에게 다가간 그는 왜 이런곳에 있느냐고 

      물었지만, 칸은 어색한 웃음을 지을뿐 이유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았다. 

      단지 입술을 비죽히 내밀고 있는 칸의 모습과 딱딱하게 굳은 유헌의 얼굴. 

      그리고 떫은 감씹은 듯한 유제스의 얼굴에서 대충의 내용을 파악한 융텐은 느물거

      리는 미소를 지으며 두사람에게 다가가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내 친구들이 실례를 했나보군. 대신 사과하지, 유제스"

      "별 말씀을... 융텐님의 사과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미소를 짓는 유제스의 얼굴에 여전히 재빠른 녀석이라고 생각

      하며 어깨를 으쓱인 융텐은 품안의 인간들을 내려다 보며 조용히 따라오라는 말을 

      전했다. 그런 융텐의 얼굴을 바라보던 칸은 그제서야 안도을 숨을 쉴수 있었다. 

      자칫했다간 자신의 정체를 폭로할뻔 했다. 

      나름대로 가만히 있는 자신은 냅두더래도 왕족에게 검을 겨눈 가흔은 이대로 끌려

      갔다면 상당히 위험한 위기에 쳐할뻔 한 것이다. 

      한숨을 쉬며 안색을 피는 칸의 모습을 바라보던 융텐은 방을 나서기전 걸음을 멈춰 

      지나가는 투로 유제스에게 말을 건냈다.

      "너무 이쪽저쪽에 붙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아, 너의 귀여운 히자스가 질투

      할지도 모르거든."

      "....충고 기억하겠습니다."

      딱딱하게 굳은 유제스의 얼굴에 융텐은 입가를 올렸다. 

      저렇게 자존심이 강한 사내를 말로써 건드리는 것은 상당히 즐거운 일이다. 

      실실거리는 융텐을 올려다본 칸은 혀를 내밀며 '저질'이라고 내뱉었지만 융텐이 내

      려다 보자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이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한참을 걸어서 원래 있던 방으로 돌아온 칸은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몸을 마구 비

      비기 시작했다.

      이제와서 저 유제스가 건드린 곳에서 소름이 돋는 것이다. 

      이를 갈며 당장이라도 욕실로 달려들 기세인 칸의 모습에 헛웃음을 지은 융텐과 달

      리 유헌의 안색은 딱딱하기 그지 없었다. 그 유제스라는 사내 밑에 깔린 칸의 발견

      한 순간에 속에서 올라온 살기가 갑자기 두렵게 느껴진 것이다. 

      전에 있던 세계에서 발산했던 것과 비슷한 정도의 광기에 유헌은 자신이 이곳에 와

      서 안정되었다고 믿고 있었던 생각을 수정해야 했다.  

      아직 자신은 불안한 상태인 거다.

      "이봐 꼬맹아. 히자스가 얌전히 지내라고 했는데 3일만에 일을 친거냐?"

      "...어쩔수가 없다고, 방안에만 있기는 너무 답답한걸.."

      투덜대는 칸의 모습에 어쩔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인 융텐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화병의 꽃을 쓰다듬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조금은 인내심을 가지도록 하는게 어때?"

      "모른다고 그런거-"

      "그래도 과거엔 왕이었지 않나, 칸크빌레."

      칸은 융텐의 난대없는 말에 숨을 죽였다.

      "왕으로서 인내는 중요한 덕목이지. 안 그런가?"

      가늘게 휘어지는 눈을 바라보던 칸은 주춤하고 물러서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가

      흔에게 시선을 던졌다. 

      무표정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만 분명, 모르고 있을 터였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자신의 일이 다 해결되고, 자신의 몸도 워래대로 돌아와 평화

      로운 상태가 되면 그에게 과거의 모든것들을 직접 말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저 

      썩어빠질 용이 자신의 계획을 엉망으로 만든 것이다. 

      입술을 깨물고 가만히 서있는 모습을 즐거운 듯이 바라보던 융텐은 역시나 저 칸이

      라는 녀석이 이 가흔이라는 자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파랗게 질린 전 중앙국 황제의 얼굴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가흔의 반응을 살피려

      고 고개를 돌린 그는 자신을 죽일듯이 노려보는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에 숨을 죽였

      다. 

      그 눈동자는 쓸데없는 말은 하지마-라는 경고가 서려 있었다.

      ".............."

      순간이기는 하지만 용인 자신이 인간에게 밀리다니..... 융텐은 역시나 저 가흔이라

      는 인간은 특별한 데가 있다며, 묘한 시선을 그에게 던졌다. 

      "동으로 돌아 갑니다."

      "역시나-"

      노웬의 결정에 유크렌을 제외한 일행들이 수긍하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한 경계에 이례없이 여러개의 왕국이 존재하는 곳이니 만큼 각종 단체들이 집단으

      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곳은 노웬 일행들의 본거지가 집결된 곳으로, 칸이없

      고 대부분의 일행이 죽은 그들이 다시금 인력을 보충하고 계획을 수정하기 위해서

      라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는 것도 일이겠구나 싶다. 

      저 유크렌이 당황해서 몇발 날린 브레스가 적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준모양이여서 

      다소 느긋하게 이동을 하고는 있지만, 그것도 3일이 유예기간이다. 그 후로 다시 

      군을 재정비한 그들이 도망간 자신들을 잡기위해 뒤를 좇을 것이다. 

      겨우 밀선으로 여왕의 대지에서 벗어나 항구에 몸을 숨기고 있는 자신들이다. 

      몸을 숨기기도 벅찬데 이 인원으로 서와는 정반대인 동으로 돌아가기란 여간 어려

      운 일이 아닌 것이다. 

      "일단은 에즈와 연락을 해보도록 합시다."

      "...그쪽도 저희들에게 신경을 쓸만한 상태는 아닐 텐데요?"

      "그래도 떨어져 있는 것보단 낳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호한 얼굴로 말을 한 에스를 바라보던 노웬은 미소를 지었다. 

      자리가 비고 나서야 있던 자의 귀중함을 알게 된다는 말처럼 에스 그가 돌아오고 

      나니 비로써 중심이 제대로 잡히는 느낌이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그에게 의지하던 면이 없지않아 있었는데, 에스의 부재중 혼자

      서만 짐을 떠맡게 되었을땐 상당한 중압감을 느낄수 밖에 없었다. 

      "저 여 마도사가 공간이동을 다시한번 쓸수는 없는건가?"

      유크렌의 물음에 한숨을 쉰 노웬은 아직 잠들어 있는 젤에게 시선을 주었다. 

      혼란중 여러번의 마력탄을 날린대다 칸과 가흔을 동시에 공간이동 시킨 여파로 그

      녀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적들에게 붙잡힐 당시 걸어두었던 마력봉인 목걸이의 영향으로 몸에 상당

      히 무리가 간 모양으로 미약하게나마 미열까지 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걱정스럽게 그를 바라보던 노웬은 유크렌의 얼굴을 힐끔 바라 보았다. 

      유크렌에게 다시 한번 용으로 변해 자신들을 도와 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억

      지로 그를 데리고 다니다 싶이 하는 그들이 과연 그 부탁을 그에게 할 자격이 되는

      지.... 씁쓸한 미소를 어금은 노웬의 얼굴을 바라보던 샤한은 옆에 앉아있는 용에게 

      시선을 던졌다. 

      "너 다시한번 그걸로 변해서 우리를 데려다 주면 안되냐?"

      "............잘자라."

      "억?! ! 치사하게--! !"

      자신의 얼굴을 외면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유크렌의 모습에 샤한은 도끼눈을 떴

      다. 용이란건 원래 마력의 산물이니 자신들을 눈깜짝 할사이에 동으로 보내주는 것

      은 문제도 아닐터이다.

      그런데 치사하게 그런 일을 해주기 싫어 저렇게 내빼다니. 

      몸을 돌린채 멀어지는 유크렌의 모습에 사람들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눈치챈 유크렌은 그냥 돌어갔다가 남아있는 녀석들이 무슨 말을 할지도 모

      르기에 몸을 돌려 그들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난 너희들의 동료도 아니고, 뭣도 아니라고! ! 앞전에 도와준 

      것도 엄청 의외인 일이란 말이다, 게다가 난 누군가에게 좇기는 몸이라 쉽게 기를 

      들어내선 안돼. 너희들이 나에게 무척이나 잘 대해줬다는 건 알지만 그 의도가 불

      순하니, 만약에 날 찾으러 다른 일족들이 오면 그 해명을 어찌할 거야?"

      "..............."

      "그들이 나같은 줄 알아? 용들 성미가 얼마나 개같은 줄 아냐고? 

      나나되니 니들이랑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란 말이다 !"

      자신의 말에 순간적으로 침통해지는 일행들의 모습에 멎쩍은 표정을 지은 유크렌

      을 헛기침을 했다.

      "이..일단 그런거라고 알고, 난 이만 가서 쉴테니 너희들도 일단은 쉬어. 머리 아프

      게 되지도 않을 일 생각하는 것보단 푹쉬고 다시 생각해 보는게 더 현명한 일이다."

      그냥 가기 미안했던지 한마디 말을 던지고 멀어지는 유크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노웬은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말대로 안되는 일 붙잡고 있을바엔 차라리 그냥 쉬는 편이 났다. 

      몸이 커졌더니 생각도 넓어 졌다는 생각을 하며 피식하고 웃은 노웬은 일행들을 바

      라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쉬고 나머지 일은 내일 생각하도록 하죠."

      올라가기 전에 뒤에 남겨진 자들의 반응을 살펴보던 유크렌은 그들이 들어가 쉬는 

      분위기가 되자 서있던 계단에서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맘같아서 도와주고 싶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랬다간 분명 그 융텐에게 기가 걸려 

      놈의 수중에 떨어 질것이 뻔하다. 솔직히 전에 숙면에서 중간에 깨어났을 때 바로 

      자신을 찾으러 오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인 거다.   

      그건 절대 그 변태용같지 않은 모습이지만, 굳이 나타나서 귀찮게 될 필요는 없다

      고 생각하기에, 이대로 아주 안 나타나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놈에게 당한 것들을 생각하면 아주 이가 갈린다. 도대체가 아직 2000세도 되지 

      않은 자신이 도대체 뭣때문에 숙면에 들어가야 했는지... 생각만 해도 머리에 혈압

      이 오르는 일이라 다소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위로 올라간 유크렌은 오브가 들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자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그는 자고 있는 모양이다. 

      녀석, 이중에서 가장 체력이 약한것 같단 말야. 

      평소엔 이것저것 신경쓰고 참견하니깐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투덜거린 유크

      렌은 오브를 구석으로 밀어내고 그 옆에 누웠다. 

      도망가는 실정이라 여관같지도 않은 곳에 묵고 있는 덕분에 낡은 침대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런 곳에서 이몸이 자게 될줄이야.."

      자고 있는데 허공에서 거미라도 내려오는 것은 아닐까하고 굉장히 싫은 상상을 해

      보지만, 그런생각만 하다간 절대로 이런곳에서 잘수없다는 것을 알기에 눈을 감은 

      유크렌은 잠을 자기로 했다. 

      근데 몸이 영 불편하다. 

      전에는 몸이 작아서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도 쪼그리고 누워서 잘만 잤는데.. 

      끙끙거리던 유크렌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서 눈을 감고있는 오브를 옆으로 

      돌린 후 구석으로 완전히 밀어 넣었다. 

      그제서야 좀 넓은 공간이 생긴것 같다. 

      "좋아."

      만족의 미소를 지은 유크렌은 다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기로 한다. 

      이내 얼마되지 않아 잠이든 유크렌이지만, 그와 맞춰서 잠자리에 불편을 느낀 오브

      는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비비고 뭔지 모르지만 온몸을 압박하는 느낌에 끙끙거리

      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옆에 딱하니 누워있는 덩치에 입을 벌렸다. 

      이놈이 또 무슨 어이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일인용의 침대를 둘이서 누우려고 하니 좁은게 당연하다. 게다가 원래 자고있던 자

      신을 이렇게 구석에 밀어넣고 자기는 편하게 자다니.. 

      이를 간 오브는 발을 들어 유크렌의 엉덩이를 있는 힘껏 밀었다. 

      주욱하고 허리가 휘어 옆으로 뉘인 U자가 되어보인 유크렌의 모습에 회심을 미소

      를 지은 오브는 머리와 다리를 몇번 차고 얼만큰의 장소가 만들어 지자 그제서야 

      이불을 덮고 다시 누웠다.

      "............." 

      약간 양심에 찔린게 눈을 감았지 자고 있지는 못하던 오브는 '잇'소리를 내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유크렌을 안쪽으로 끌어 당겼다. 

      비록 자신이 누울 장소는 협소하지만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해진다. 

      미소를 지은채 다시 자리에 누워 눈을 감던 오브는 턱하고 온몸에 느껴지는 무게에 

      히껍해 눈을 떴다.

      ".....이....이.."

      자신의 몸에 팔과 다리를 걸친 유크렌의 얼굴을 한동안 노려보던 오브는 한숨을 쉬

      며 다시 눈을 감았다. 이런 겉모양만 변했지 속이 그대로인 녀석에게 외양이 변했

      다고 사소한 일에 울컥하는 일은 정말 바보같다. 

      무겁지만 참기로 한 오브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저..저기.. 그..그러니깐."

      융텐의 난대없는 말에 엄청 당황해 버린 칸은 순식간에 등이 젖는 것을 느꼈다. 

      이마에 땀을 맺힌채 자신을 향해 뭐라고 말하려 하지만 그게 잘 되지않아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칸을 빤히 바라보던 유헌은 나직히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대충의 일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칸은 모르고 있다. 

      그래서 저렇게 쩔쩔매고 곤란해 하는 얼굴을 보자니 이쪽에서 미안해 진다. 

      게다가 자신이야 말로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려는 마음에 강해서 그에게 알려주지 

      않은게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로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것을 오해한 칸의 

      얼굴이 더 어두워 진다. 

      "나.. 좀 바람 좀."

      "강한 바람을 원한다면 밖으로 보내 줄수도 있어-"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칸을 놀리것이 재미있는지 아까부터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융텐의 모습이 보기 싫다. 미간을 찌뿌린 유헌은 굉장한 기세로 그를 노려본 다음 

      어쩔줄 몰라하고 있는 칸에게로 걸어갔다. 

      그런 자신의 움직임에 칸의 움직임이 굳는 것을 느껴지만 게의치 않은 유헌은 그에

      게 다가가 손을 들어 머리위에 올려 놓았다. 

      자신보다 나이도 경험도 많을 남자이지만,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은 13세정

      도의 자신보다 작은 남자아이일 뿐이다. 

      그 황금빛 눈동자에서 불안과 초조, 그리고 두려움등의 감정을 읽어낸 유헌은 그 

      혼자만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존재가 안쓰러워 입가에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눈을 조금 크게 뜬 칸은 이내 입가를 우그러 뜨리며 유헌의 가

      슴에 얼굴을 묻었다. 

      ".........흠."

      유헌의 품에 안겨있는 칸의 기가 점차 안정되는 것을 느낀 융텐은 재미없다는 표정

      을 지었다. 꽤나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저 가흔이라는 소년이 그의 그런 

      불안한 마음을 일시에 진정시켜 준것이다. 

      둘의 모습을 한동안 보고 있던 융텐은 어쩔수 없다는 표정으로 방에서 나왔다. 

      문을 닫고 나오자 그런 자신을 굉장한 기세로 올려다 보는 히자스가 있다. 

      문은 두껍지만 그곳에 마력을 걸어둔 히자스는 그 영향으로 안의 내용을 다 들은 

      모양이다. 저 칸이라는 소년이 실은 중앙국의 전황제라는 것과 그것을 알려주지 않

      은 자신에 대해서 화가 난건가하고 난감한 미소를 머금은 융텐은 작은 북의 왕을 

      달래기 위해 손을 들었다.

      "저-질, 최악이야. 정말이지 정떨어지네."

      "..........엥?"

      "꼭 그런식으로 밝혀야해? 몰라몰라몰라, 이제 다시는 융텐이랑 안 놀거야! !"

      '내가 언제 너랑 논적이 있었냐?'라고 생각하던 융텐은 벌써 저만큼 걸어가 버리는 

      히자스의 모습을 망연히 바라 보았다. 

      저건 칸의 정체를 숨긴 것보다 그것을 밝힌 것에 대해 더 화내고 있는 모습이다. 

      왜 그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알수없는 융텐은 얼굴을 찌뿌리며 한동안 그곳에 

      서있었다. 

      달칵.

      "일단 마시면 안정 될꺼예요."

      장식으로 되어있는 천장에서 전에 라프헨이 알려준 차잎을 발견한 유헌은 그것을 

      우려서 칸의 앞에 내려 놓았다. 많이 진정된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굳은 얼굴인 

      그의 얼굴에 속으로 한숨을 쉰 유헌은 앞에 놓여진 차를 몇모금 들이 마셨다. 

      도대체 어디부터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가흔을 바라보던 칸은 입술을 깨물며 힘들게 입을 열었다.

      "저기.. 난 일부러 말하지 않은게 아니라..." 

      "............"

      "단지.. 단지..말야.. 나..난. 가흔."

      말하려고 하지만 그것이 잘 표현되지 않는지 힘들어 하는 그 얼굴을 유헌은 무척이

      나 부드러운 얼굴로 바라 보았다. 

      그 얼굴에서 용기를 얻은 칸은 호흡을 고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마도 지금 모든것을 말하지 않으면 자신과 가흔은 비뚫어 진채 다시 맞물리는 일

      없이 걸어가게 되겠지. 그런건 절대 싫다. 차라리 그에게 모든 것을 말하고 그것 때

      문에 경멸 당한다 해도 같이 있는 것이 더 좋았다. 

      그쪽을 훨씬 더 많이 원한다. 

      "난 중앙국 전황제 칸크빌레야.. 그 뒤로 더 긴 이름이 있지만...원래부터 나의 것이 

      아니니.. 말하지 않을께."

      자신의 말을 들을 생각인지 말없이 앉아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은 칸은 눈을 감았

      다.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우선 내가 왕이 된것부터 말해

      볼까? 가흔은 어디까지 알고 있어?"

      "....일단은 이자크에게 들은 것들은 대부분."

      "............이자크와 만났어?"

      침착해 보이는 모습과 전에 율시아의 저택에 있었을 때의 보여 주었던 행동으로 뭔

      가를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내심 눈치챈 칸은 대략적인 내용을 추스리기 위해 물

      었다가 의외의 인물이 그의 입에서 나오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만났어요. 하지만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그리고 내가 듣고 싶은 것은 칸의 입

      에서 나온 것이니깐, 그의 말을 신용하진 않아요."

      ".......그래.. 구렇구나.. 이자크와 만났구나."

      중앙국의 현 황제 이자키엘을 만났다는 말에 엄청 충격받은 얼굴을 하는 칸에게 당

      황한 유헌은 재빨리 말을 바꾸러 했지만, 칸은 계속해서 '너하고 이자크가..'라고 

      중얼거린다. 

      아마도 자신에 대해 뭔가 나쁜 말을 들었을 거라는 확신이 묻어난 그 음성에 앞으

      로 자신이 하는 말을 완전히 믿어 줄것인가에 대한 걱정도 묻어있다. 

      초조한 마음이 된 유헌이 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어깨를 집는 순간 몸을 굳힌 그

      가 입을 떼었다.

      "난 그렇게 좋은 녀석이 아니였어. 

      좋은 사람이라는 것에 의미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첫번째 왕자로 태어난 

      이상 그에 부과되는 짐은 상당한 것이었고, 그것을 다 해결해야지만 주위에선 인정

      해 주지. 좋은거라든가 나쁜거라든가..로 말야. 그런 것으로 봤을땐 난... 뭐랄까. 

      확실히......왕의 재목은 아니였지. 게다가 쌍둥이인 이자크는 굉장한 천재였거든. 

      그녀석이 뭔가를 하면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천재검사, 천재적인 문학의 재

      능, 신이 내린 음악의 천재, 하다못해 땅에 떨어진 뭔가를 주워도 '아아-천재다.'라

      는 말이 나올 정도... 그것을 봐야했던 내 마음을 알겠어?"

      느릿하지만 한꺼번에 많은 말들이 내뱉은 칸은 피곤한듯 미간을 주물렀다.

      "그런 동생에게 거는 주변의 기대는 엄청났다. 중앙국즤 역사상 둘째나 셋째가 황

      제가 왕이 된 선례도 있었으니, 동생을 둘러싸던 추종자의 무리들은 점점 의기양양

      해 졌지. 내 측근들은 동생과 그 무리들을 경계하라 했지만.. 난 그렇게 걱정하지 

      않았어. 난 부왕의 사랑을.. 꽤나 받았으니깐.."

      마지막 말에서 뭔가를 더 말하려던 칸은 남은 부분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아무리 가흔이라지만, 아니 그라서 더더욱 말하고 싶지 않은 과거라는 것도 있다. 

      조용히 다음말을 들을 자세를 취하는 눈앞의 소년을 바라보던 칸은 한숨을 쉬며 다

      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부왕이 날 배신하고 이자크를 후계자로 선택할거라는 소문을 들었을때, 머

      리속에서 뭔가가 끊어졌어.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황제와 이자크의 측근들은 

      목이 베이거나 다들 죽임을 당한 상태. 그리고 살아남은 이자크도 대부분의 능력을 

      잃고 나서 탑에 감금되어 있었지. 

      ........어떤 모습의 이자크를 봤는진 모르지만, 그는 원래 나와같은 머리카락을 지

      니고 있었어. 그때부터 백발로 머리색이 빠져 버렸지만... 뭐 그렇지. 

      그후로 난 왕에 오르게 되었어. 사실 그다지 원한 자리는 아니였지만, 주위에서 닥

      달을 하니 더 손에 넣고 싶었는지도 몰라. 그래.. 그런거라고 생각해."

      ".....칸."

      허탈한 듯한 음성에 미간을 찌뿌린 유헌이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그 말을 막듯

      이 칸은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그래도 기대하고 있었다. 부왕의 시대는 내가 통치한 시대못지 않게 엉

      망이었으니. 하루라도 피를 보지않을 날이 없었던 그런 불안에서 내가 구해줄거라

      고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었지.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기대와 다르게 내가 한 명령

      이 뭔지 알아? 바로 한 마을을 몰살이었지."

      ".............."

      "아이도 있었고, 여자와 임신부도 있었을 거야. 하지만 난 자신의 복위를 인정하지 

      않은 자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니 본보기로 멸살을 명했지. .........미쳤던 걸까. 

      지금은 하라고 해도 못한다고 그런거-"

      왠지 알것 같기도 하다. 그때의 칸의 모습을. 

      아마도 인정을 받으려 하던 최후로 믿었던 존재에게 버림 받았다는 것에 스스로를 

      지탱할 이지마저 잃어버린 상태였겠지. 

      내가 가헌에 대한 마음을 보상받지 못해 그라는 착각속에서 살던 것처럼-

      "그리고 나선 온통 암흑이야. 피의 시대였지. 오로지 베고 베었어, 뜻을 거스르려는 

      자들. 방해되는 자들,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않은 자라면 그게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닦치는 대로 베었다. 그수는 나자신도 헤아리지 못할 정도야. 

      가흔 넌 알수 있어? 만약에 네가 이곳에 있던자라면 칸크빌레였던 나와 이렇듯 얼

      굴을 마주하진 않았을 거야. 너같이 상냥한 사람들은 날 절대 용서해.......주지 않

      을 거야."

      다르다.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칸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나 깨끗하고 상냥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그에

      게 말해주고 싶었었다. 

      그러나 씁쓸히 말하는 그의 얼굴에 대고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그또한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했는데 자신은 오죽하겠는가. 

      말하지 못한다. 

      그런 칸이 들으면 분명 자신에 대해 표정을 달리할 그런 말따위 할까보냐. 

      "제위한 10여년 동안 뭐가 뭔지 모르겠어. 괴롭지만 분명 즐거운 때도 있었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즐거워서 웃었던 기억도 있는 것같아. 그럴 자격도 

      없는 주제에 말이지.... 그땐 왜 그랬을까?"

      웅얼거리며 점점 과거에 회상에 빠지려는 그의 모습에 유헌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는 그후 이자크와 그 군대에 의해 죽은 사람이 된것이다. 

      자신의 원래 몸을 잃은채 목적이 있는 다른 일행들과 달린 지금이 좋아서, 괴로웠

      던 과거에 닿고 싶지않아서 그냥 현재에 안주하며 살고 싶은 거겠지. 

      그리고 일행들은 그런 그에 답답해 하면서 하나의 희망인 그를 버리지 못하고 뒤를 

      따르고 있다. 

      단단한 알의 껍질에서 구멍을 발견한 기분에 유헌은 한숨을 쉬었다. 

      기실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칸의 말을 들으니 느낌이 색다르다. 

      칸은 자신이 미쳐서 수만의 사람들을 죽였다고, 그런 자신을 원래 알고 있었다면 

      자신이 그에게 웃어주지 않을 거라곤 생각하지만. 유헌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가 자신에게 어떤 평가를 하던 그때의 칸크빌레도 나름의 칸의 모습을 지니고 있

      을거라고 생각한다. 작게 중얼거리던 칸이 이내 입을 다물자 그것을 바라보던 유헌

      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마음속에선 이미 하나의 결론이 나왔지만 그는 아니다. 

      ......자신은 그것을 기다려 주어야 한다. 

      탁.

      문을 닫고 나온 유헌은 맞은 편 벽에 서있는 융텐의 모습에 눈썹을 올렸다. 

      한번쯤 칸과 저런 대화를 지녀야 했었지만, 지금이 그때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저 망할 용이라는 작자가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인 것이다. 

      무시무시한 눈초리를 자신을 바라보는 유헌을 향해 침착하라는 듯이 양손을 올려

      보인 그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뭐야? 부군과의 부부싸움은 이걸로 끝?"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겁니까?"

      눈을 치켜뜨는 유헌의 모습에 융텐을 허리를 굽히며 웃음을 지었다. 

      모션은 컸지만, 입을 가리고 웃는 폼이 상당히 꼴불견이었지만 본인은 그닥 신경쓰

      지 않는다. 어쩌면 한심해 보이기도 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헌은 한숨을 쉬며 

      그를 지나쳐 벽으로 기댔다. 

      전에 히자스가 벽을 문지르자 밖의 광경이 보였었다. 

      지금은 뭐라도 좋으니 확트이는 광경을 보고 싶은 기분이다. 

      벽으로 다가가선 쓰다듬은 유헌의 행동을 미소지은채로 바라보던 융텐은 소년의 

      손길이 지나자 밖의 광경이 비치는 모습에 안색을 굳혔다. 

      밖을 내다보는 유헌은 그의 표정을 보지 못했지만, 만약에 봤다면 무슨 얼빠진 표

      정을 짓고 있느냐고 말했을 거다. 

      이내 표정을 원상태로 복귀한 그는 헛기침의 하며 유헌의 곁에 가서 섰다.

      "왕이란 그 나름대로의 역활이 있는거야."

      " ? "

      "폭군이든, 선군이든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거야. 그렇다는건 그런 왕이라도 존

      재해야 한다는 거지. 인간들은 그걸 모르고 그 작은 머리를 싸메고 엄청 고민하더

      군."

      머리를 두들이며 말하는 융텐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피하고 밖을 내다 보았다. 

      그래, 누구든 그 존재이유가 있는 거지. 

      과거의 사랑스러웠던 한 소년을 떠올리며 미소지은 채인 그는 무척이나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서 곁에 있던 유헌을 놀라게 했다.

      "칸크빌레가 제위했던 시기는 안으로나 밖으로나 꽤나 난리였지. 뭐, 여러가지 이

      유가 있겠지만, 그중엔 분명 칸이 원하지 않았던 일들도 있었겠지만, 왕의 의무를 

      진이상 자신이 떠 맡아야 하는 거라는 게 있는 거야."

      ".........." 

      "그런면으로 볼때 난 칸크빌레가 무척이나 현명한 왕이었다고 생각한다. 먼저 치지 

      않았다면 피를 흘리고 쓰러진 것은 분명 그였을 테이니."

      휘이이이잉-ㅇ

      벽에 가로막혀 있기에 눈발이 직접 몸에 닿지는 않지만 유헌은 그 한기를 직접 몸

      으로 받고 있는 기분이었다. 

      "인간의 관점과 용인 나의 식가은 확연한 차이가 있지. 하지만 말이다. 그런 인간들

      도 주위의 환경에 따라 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이지. 

      폭군이라든 칸크빌레도 그의 제위기간이 길었다면 그런 소리- 안 들었을 테지."

      ".............."

      "너희 인간들은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그 무엇이든 판단해선 안된다는 거다. 판단

      을 내리고 나면, 아무것도 할수없는 존재이니깐."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융텐의 말에 뭔가를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안색을 굳힌 유헌은 몸을 돌려 다시 칸

      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문이 닫히자 손을 들어 흔들어 보았다. 

      "그래, 다음번에 북의 초대왕에 대해 말해주지. 무척이나 사랑스런 소년이었거든." 

      그리고 저 칸크빌레와 같은 녀석이기도 했고 말야.

      융텐은 눈을 감고 1000여년전의 과거를 회상해 보았다. 갑자기 이주해온 곳이라고

      는 하나 인간의 연약한 몸으로 이런곳에서 살기란 무척이나 힘든 상황이었을 거다. 

      눈발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소년이 이루어낸 북의 왕국. 

      거기에 수번의 동면과 다시 깨어나기를 반복하며 실패와 성공을 거듭한 이룬 역사. 

      이곳의 역사에 비하면 중앙국의 역사란 평탄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눈을 가늘게 뜬 그는 눈보라가 휘몰아 치는 밖을 바라 보았다.

      "그런 곳에서 실패하고 징징짜는 놈이야 뻔하지."

      나직한 음성이 복도를 조용히 울린다. 

      달칵.

      문을 열고 들어온 유헌은 깜깜해진 방안의 모습에 잠시 몸을 굳혔지만 방안으로 완

      전히 들어와 안에서 문을 닫았다. 밖에서 열지 못하도록 전의 기억을 떠올라 문 전

      체에 투명한 막을 흐르게한 그는 칸이 느껴지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로 눈앞도 안보이는데 칸의 존재를 확연히 느낄수 있음에 유헌은 다소 신기한 기

      분을 느꼈다. 

      끼-익.

      침대에 엎드려 있는 작은 등에 손을 올려놓은 유헌은 몸을 숙여 그의 목덜미에 입

      을 맞추었다. 부드럽고 성장기 소년 특유의 햇살내음이 묻어나는 것에 눈매를 부드

      럽게 휜 유헌은 그의 위에 엎드려 검청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자신보다 반뼘 정도 작은 몸은 품안에 충분히 안기지만, 오히려 감싸안긴 기분을 

      느끼며 눈을 감은 유헌은 칸의 느릿하게 뛰는 심장소리를 귀를 기울였다. 

      칸의 심장소리와 자신의 심장소리가 느끼며 더할나위 없이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

      던 그는 자신의 옆구리를 간지르는 손길에 엎드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보았다. 

      익숙해진 어둠속에서 엎드린채 얼굴을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칸의 황금빛 눈동자

      가 보인다. 

      "............"

      사락. 

      칸의 얼굴로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댄 유헌은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몸을 반쯤 비튼채로 유헌의 키스를 받던 칸은 자세를 돌려 위에 있는 유헌의 몸을 

      강하게 끌어 안았다. 

      갑자기 숨이 막히는 느낌에 입술을 뗀 유헌은 혀와 연결되 나오는 투명한 타액에 

      얼굴을 붉혔지만, 한번도 떨어지지 않고 자신을 주시하는 황금빛 눈동자에 다시 입

      술을 마주했다. 

      자신의 옷을 벗기는 칸의 움직임을 도우며 칸의 머리를 껴안은 유헌은 포근한 내음

      이 나는 칸의 머리카락에 코를 묻으며 그의 향기를 깊숙히 들어 마셨다. 

      어느새 완전히 나신의 된 자신의 온몸에 키스를 퍼붓는 칸의 행동에 얼굴을 돌린채 

      신음소리를 죽이던 유헌은 다리 사이를 벌리고 위로 올라오는 그의 행동에 입에서 

      손을 땠다. 

      침대위에서 배회하는 유헌을 손을 찾아 그 손등에 입을 맞춘 칸은 땀이 배어 나오

      는 머리를 뒤로 넘기며 고개를 숙여 유헌의 입술을 찾았다. 

      눈을 감고 칸의 입맞춤을 받아들인 유헌은 다른 손을 들어 자신의 위에있는 남자의 

      등을 강하게 끌어 안았다. 

      타액에 섞이는 소리와 온몸을 스치는 소리, 시트가 구겨지는 소리를 들으며 유헌은 

      나른하게 시선을 들었다. 

      아두운 방안에 단하나 켜져있는 촛불이 자신의 행동을 빠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흔들리는 불꽃에 시선을 주던 유헌은 다리 사이를 가르고 들어오는 감각에 이를 악

      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들어난 유헌의 목덜미에 이를 박은 칸은 좀더 그와 다가

      가고 싶어 성급하게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거친 숨을 내뱉은 유헌은 고개를 저으며 얼굴 옆에 손을 집은 칸의 손목을 잡고 그

      것에 이마를 부볐다.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것이.

      ................ 지금 당장 미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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