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26/55)

      융텐은 어릴적의 유크렌의 모습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물론 자신의 허리에 겨우 닿을만한 신체인 그를 억지로 안아 자신의 반려로 점지한 

      것은 지금도 약간 후회하고 있는 점이긴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다른 용들이 체

      갔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일이 있은 후 상당히 부끄러워하며 자신을 피하는 그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가만

      히 나두었짐지만, 이번에 잠에서 깨어나고서도 자신의 앞에 나타나지 않고 기를 감

      추는 그의 행적이 괘씸해 요번에 만나면 아무대도 못가게 구속해둘 생각이다. 

      온몸을 나른하게 감싸는 기분좋은 감각과 머리속에서 노니는 사랑스러운 유크렌의 

      영상에 나르한 미소를 띄고있던 거대한 흑륭은 가슴을 스치한 기에 눈꺼풀을 들었

      다. 

      도돌한 피부의 눈꺼풀이 들어나고 그 안에서 붉디붉은 눈동자가 들어난다. 

      만약에 이 광경을 히지스가 봤다면 엄청난 공포에 그 자리에 기절했을 지도 모른

      다. 성체의 모습으로 휴식시간을 지니고 있던 그는 점점 강하지는 유크렌의 기에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헌의 말로 끝없이 솟아있던 천장과 넓은 바닥도 그가 꿈틀거리며 일어서자 꽉찬 

      답답한 느낌이 든다.

      - 유크렌시아.

      온몸에 따끔거릴 정도로 느껴지는 그의 기에 희열의 빛을 띄던 그는 그러나 나타남

      과 동시에 갑자기 사라진 유크렌의 기운에 그대로 굳었다.

      - .............어라?

      뭔가 이상이 생긴건 아닐까하고 미간을 좁히며 유크렌의 기를 좇던 융텐은 그러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의 기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 .....어라라?

      크르렁거리는 육식동물의 울음소리가 넓은 홀을 메운다.  

      "이상하단 말이다. 나타남과 동시에 확하니 사라진거야."

      "...........그래서... 지금 여기에 온 이유가..."

      유헌의 지친듯한 음성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융텐의 모습은 '뭐가 문제인거냐?'라

      는 의미를 강하게 담고있다. 

      물론 그가 온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지금은 다들 자는 시각이라는 것과 지금 그가 깔고 앉아있는 곳이 칸의 얼굴 위라

      는 것만 빼면 말이다. 손가락을 경직시키며 갑자기 당한일에 굳은 칸에게 시선을 

      주던 유헌은 침대에서 일어나 근처의 등을 두들였다. 

      약간의 기를 불어 넣으면 자동적으로 방안이 밝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확하니 밝아진 내부에 눈을 찡그리고 빛에 적응하려던 유헌은 여전히 융텐이라는 

      용의 밑에 깔려있는 칸의 모습이 무척이나 괴로워 보여 미간을 찌뿌렷다.  

      "어? 아아 미안. 있는지 몰랐다."

      "네..네놈~~"

      꼼지락 거리는 느낌에 멍했던 정신을 수습한 융텐은 칸의 위에서 내려왔다. 

      그래봤자 옆에 앉아있는 그의 모습에 칸은 이를 갈았지만, 유크렌처럼 막 대할수가 

      없다. 

      눈앞의 존재는 놀려먹기 편했던 그 어리버리한 용이 아니니깐. 

      단지 이를 갈뿐인 칸과 그런 칸에게 뭘 보는거냐는 눈빛을 보내는 융텐의 모습에 

      머리를 긁적인 유헌은 한숨을 쉬었다. 

      칸은 그렇다쳐도 저 드래곤에 대한 환상은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다. 

      "그러니깐 나타나던 유크렌의 기가 갑자기 시라졌다는 거죠?"

      "그렇데도.. 참으로 이상하단 말이지."

      턱에 손가락을 대고 얼굴을 옆으로 숙이는 그의 모습에 유헌은 안색을 굳혔다. 

      저들이 오기 전에 오브와 용을 우선적으로 피신시켜 두어서 안전하게 두었다고 생

      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저자가 그동안 유크렌의 기를 찾지 못한 것은 분명 구속구의 덕분일터, 기가 순간

      적이지만 느낄수 있었다는 것은 그 구속구를 풀어야 할 일이 생겼다는 말과 같다. 

      미간을 좁힌채 생각에 빠져있는 유헌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융텐은 입을 열었다.

      "인간, 뭔가 알고있는 일이 있나?"

      " ? "

      "예를들어, 그동안 그의 기가 나타나지 않았다던가-하는거 말이지."

      자신을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에 일순 유헌은 숨을 삼켰다. 

      아무 감정이 들어있지 않은 번들거리는 눈에 자신이 비춰지고 있다는 것을 깨닭은 

      순간 사자앞에 서있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등이 축축하게 젖어가는 것을 느끼며  유헌은 눈앞의 존재가 자신과 다른, 드래곤

      이라는 이종족이라는 것을 염두해야 했다. 

      그런 그에게 유크렌에게 구속구를 달아 억지로 데리고 다녔다는 말을 한다면 자신

      은 물론이거니와 칸의 목숨조차도 보장할수 없는 것이다.

      "실은 유크렌은 어떤 녀석들에게 쫒기고 있었어."

      "음?"

      "그래서 그동안 우리들이 인간으로 헌신한 그에게 구속구를 달아 기를 숨긴채 신병

      을 보호하고 있었다."

      유헌은 칸의 말에 입을 벌렸다. 

      사실과는 전혀다른 말을 하는 그를 아연하게 바라보는 유헌의 시선을 눈치챈 칸은 

      그만이 알아볼수 있게 작게 눈썹을 올린다. 

      조용히 있으라는 뜻이다. 

      칸의 말에 미간을 찌뿌리채 뭔가를 생각하던 융텐은 잘 믿겨지지 않은듯 의아한 표

      정을 띄운다. 그것을 확인한 칸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거짓이든 사실이든 일단 믿게 만들어야 자신과 유헌은 이 자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

      다. 

      "사실이야. 이보다 훨씬 전에 그의 기를 느낀적이 있었겠지? 

      숙면중인 그가 그때에 깨어났던게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들은 위협을 받아 중간에 

      잠에서 깨어나 있던 그를 받아들여 함께 여행을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오기전 그놈들이 우리들을 공격해서 나와 유헌은 이리로 공간이동

      술로 넘어오게 된거고.... 유크렌시아는."

      "유크렌은 오브라는 자에게 맡겼으니 안전할 겁니다."

      칸은 자신의 말을 잇는 유헌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았다. 

      혼자서 말을 하는 것보다 다른 이가 말을 도와준다면 좀더 신빙성이 있는 말이 된

      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지. 드래곤인 유크렌이 너희들을 도움을 받았다는 건 좀 이

      상한데? 도움 청할 상대론 나도 있고 말야."

      검은 빛의 눈동자를 음울하게 가라앉힌 융텐을 보며 칸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유크렌이 그런 영리한 행동을 할것 같아?"

      "..............그건.."

      칸의 예리한 말에 허점을 찔린듯 미간을 찌뿌린 융텐은 '끄-응'이라는 소리를 내며 

      자신의 머리를 감싸 앉았다. 

      확실히 유크렌은 지혜롭다는 녹룡 중에 별종으로 그 일족중에선 무늬만 녹룡이지 

      머리 나쁜 적룡이 아닌가하는 말도 심심찮게 나왔던 존재인 것이다. 

      그런 그가 중간에 잠에 깨서 비몽사몽간에 이자들과 함께 다닌다는 것은 아주 없을 

      일도 아니다. 고뇌의 표정을 짓는 융텐의 얼굴을 내려다 보던 칸은 유헌에게 주먹

      을 올려 보였다.

      생각대로 이 드래곤이 믿어주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런 칸의 모습을 바라보던 유헌은 침대 위에 앉아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융텐님은 유크렌과 사이가 안 좋으신가요?"

      "뭐?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유크렌은 나와 반려. 사이가 나쁠리가..."

      "하지만 전에 저한테 융텐이 보낸 부하냐-라는 소리를 해서... 

      전 당신에게 유크렌이 가출같은 걸 한줄 알았는데요?"

      유헌의 물음에 울컥한 표정을 짓던 융텐은 그러나 그 다음을 잇는 말에 입을 다물

      었다. 붉으락 푸르락해지는 얼굴에 조금 걱정스러운 유헌이었지만, 그동안 무척이

      나 궁금했던 점이기에 묻지 않을수가 없었다. 

      처음 만났을때 자신을 융텐의 부하로 오인해 있는 힘껏 저항했고, 율시아의 아들인 

      돔에겐 융텐의 기가 느껴진다는 이유로 있는 달려 들었던 것이다. 

      그것에서 유헌은 이자와 유크렌의 사이가 그닥 좋지 않을 거라는 짐작을 했다.

      "뭐.. 그가 날 좀 피하긴 하지만..."

      "왜? 왜 피해? 그 단순한 놈이?"

      삐지다가도 먹을 걸 주면 금방 풀고 실실거리는 바보같은 용이다. 

      그런 용이 뭔가 앙심을 품거나 미워할수 있기까진 꽤나 많은 이유가 필요할거라고 

      생각한 칸은 융텐의 대답을 듣기위해 몸을 가까이 내밀었다. 

      그런 칸의 얼굴을 손등으로 밀어낸 융텐은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별거 아니야. 그냥 녀석을 안은 것 밖에는..."

      "언제?"

      인간 주제도 꼬박꼬박 묻는게 왜이리도 많단 말인가. 

      미간을 찌뿌리고 칸을 노려보던 그는 그러나 사심없이 황금빛 눈동자를 빛내는 모

      습에 입을 열수밖에 없었다. 

      이런 어린 녀석앞에서 별말을 다한다. 

      "그냥 이만했을 때..."

      "이만? 작잖아?"

      '어렸을 땐가?'라며 칸은 융텐이 손으로 가르키는 높이를 짐작했다. 

      잘은 모르지만 저만하면 유크렌이 지금 헌신하고 있는 모습에서 한뼘정도 밖에 크

      지 않을 것 같다. 골몰한 칸을 가만히 바라보던 융텐도 턱에 손을 집고 자신이 처음

      으로 유크렌을 안았을때 그의 인간나이를 생각해 보았다. 

      몇살정도 될까. 인간의 나이론...

      "그만하면 한 10정도 되겠는 데요?"

      "아!"

      침대에 서서 융텐이 가르킨 손높이를 내려다 보던 유헌이 툭 내뱉은 말에 융텐이 

      자신의 손바닥에 주먹을 내라치며 바로 그거야라는 표정을 짓는다.

      "맞아, 인간의 나이로 한 11세정도 되었을 때였어! ! 작고 부드럽고.. 정말 좋았지."

      "................"

      "몸에 딱 들어오는데.. 캬아~ 잊을수가 없구만. 응? 왜 그런 표정으로 보는 거야?"

      저 혼자 좋아서 중얼거리던 융텐은 자신을 피해 멀찍히 떨어져 앉아있는 칸과 유헌

      의 모습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융텐을 혐오한다고도 굉장히 위험한 것을 보는 듯한 것이랄수도 있는 시선을 

      던진 칸은 질린 음성으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변태."

      저놈은 요크발보다 더한 놈이다. 

      자신이 아는 제일 심한 욕을 하며 치를 떠는 칸이었다. 

      "푸에취~! !"

      "이봐, 이거라도 걸쳐라."

      "....이리줘."

      오브는 자신을 올려다 보며 천을 받아드는 녹색 머리카락을 지닌 청년을 묘한 시선

      으로 바라 보았다. 

      이 놈이 정말로 쬐끄많고 말 더럽게 안들던 그 유크렌이란 녀석이란 말인가? 

      오브는 혼란한 머리속을 털어버리기 위해 그에게서 떨어져 숲속에 쪼그리고 앉아 

      휴식을 취하는 일행들에게 걸어갔다. 

      그런 오브를 바라보던 라프헨은 라헨에게서 안긴 몸을 조금 떨어뜨려 천으로 알몸

      을 감싸는 청년, 아니 녹룡 유크렌에게 시선을 주었다.

      "..정말로 유크렌 인가요?"

      "아마도, 녀석밖에 없잖아. 녹룡인데 우리들을 구할 녀석은."

      "그나저나.. 변했네요. 전에는 아이의 몸이었는데."

      "아무래도 아이의 몸보단 성인의 몸이 행동하기에 더 유리하니깐 말야."

      라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라프헨은 자신들의 앞에 앉는 사내를 올려다 보았다. 

      적들의 안에 잡혀있다 드래곤으로 헌신한 유크렌의 도움으로 탈출한 자신들도 혼

      란스러운데 그의 정체를 몰랐던 오브는 더 심할 것이다. 

      안색이 딱딱한 채인 오브는 고개를 들어 둘을 바라 보았다.

      "알고 있었어? 저 녀석 정체."

      "......아마도.."

      "나를 제외하고 모두들 알고 있었다는 거군."

      "..............."

      허탈하다는 그 음성에 라프헨이 죄지은 사람마냥 고개를 숙이자 곁의 라헨이 손을 

      들어 그의 몸을 감싸 앉아준다. 

      애꿋은 사람더러 뭐라고 하지 말라는 뜻으로 부리부리한 눈빛을 보내는 라헨의 눈

      길을 피한 오브는 도망나오느라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했다. 

      어제 아침에 갑자기 적들이 나타났다며 자신에게 유크렌을 안기는 노웬의 기세에 

      그는 뭐라 하지도 못한채 그들을 뒤로하고 숲속으로 도망갈수 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검소리와 폭발음, 그리고 비명

      소리에 다급해진 그는 그러나 앞쪽에서 올라오는 복면인들의 모습에 안색을 달리

      하고 근처의 동굴로 몸을 숨겼다. 

      그렇게 발나절동안 숨어있던 그는 자신들을 찾아 나선 샤한을 만났고, 모두가 잡혔

      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의 그 아연함이란- 

      밤을 새서 그들을 탈출할 궁리를 짰지만, 수도 적은 그들이 그 많은 사람들을 물리

      치고 노웬등을 구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근처의 연계가 있는 자들과 연락을 해보려 했지만, 그런 인간들은 익속을 따질것이 

      분명해 순순히 자신들을 도와 줄리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길이 없을때 

      품속의 유크렌이 샤한에게로 걸어가 목에 걸려있던 구속구를 풀어 달라고 했다. 

      자신은 유크렌의 목에 채워있는 화려한 그러나 투박한 그것이 그의 장식품인줄 알

      았는데 설마하니 용의 헌신을 막는 구속구였다니... 

      비잔힐의 가주로 있어도 평생에 한번 볼까말까한 신기중 하나다, 그건. 

      "완전 사기라고."

      결연한 태도의 유크렌의 얼굴의 한참동안 바라보던 샤한은 무거운 한숨을 쉬며 주

      머니 속에서 하나의 반지를 꺼내 들어 목걸이에 댔다. 

      찰칵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목걸이에 시선을 주던 오브는 순간 숲을 감싸는 거대한 

      폭풍에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리고 손으로도 가리지 못할 엄청난 신체의 녹룡

      을 보는순간 그는 심장이 바닥에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적들의 근처에 있어 언제 붙잡혀 죽음을 당할지도 모르는 판에 저런 용까지 나타나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건가하고 개탄하던 그는 그러나 그 거대한 존재가 커다

      란 날개를 펴고 날라가는 모습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찰나와도 같은 순간에 다시금 나타난 녹룡은 노웬과 젤, 라프헨, 라헨. 전에 

      납치되었다던 에스라는 자도 함께 데려왔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어리버리 해있는데 저 녹룡 유크렌시아는 다시금 인간의 몸으

      로 폴리모프해 자신 스스로가 목에 구속구를 채운 것이다. 

      그 이상 행동에 딱딱한 표정의 노웬조차도 어이없어 했으니 자신은 오죽 했겠는가.

      "용이었던 말이지...."

      씁쓸한 어조로 중얼거린 오브는 등을 보인채 다시금 재체기를 하며 온몸을 긁는 사

      내를 바라 보았다. 

      외모는 닮았지만 갑자기 커져버린 등치는 낯설기만 하다. 

      조금 느껴지는 쓸쓸함에 자신의 몸의 팔을 두른 그는 유크렌에게 다가가는 노웬의 

      모습에 미간을 찌뿌렸다. 

      "유크렌시아님."

      "아. 몸은 괜찮은 거야? 하도 급하게 해서 너희들 생각은 안했거든."

      "다행히도 유크렌시아님께서 구해주신 일행들은 다들 무사하답니다."

      '그래?'라는 말을 하며 다시금 온몸을 긁는 그의 행동에 노웬은 의아한 표정을 지

      었다.

      "왜 그러시는 거죠?"

      "왠지 기분나쁜 느낌이 들어서 말야.. 누군가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입술을 비죽 내밀고 앉아있는 사내를 가만히 바라보던 노웬은 한숨을 쉬며 손안에 

      들어있는 반지를 꺼내들었다. 

      설마하니 정말로 이걸 사용하게 될지는 몰랐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샤한에게 맡겨 두었는데 저 용은 본체로 헌신해 자신들을 구

      해주었다. 게다가 스스로 자신의 목에 구속구를 채우는 행동을 해서 노웬의 허를 

      찔렀다. 분명,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앉아있는 유크렌을 바라보던 노웬은 입술을 깨물었다. 

      의도하던 그렇지 않던 용이 자신들에게 보여준 성의엔 보답을 해두는 것이 도리다.

      "유크렌시아님."

      "응?"

      "이거 받으십시오."

      유크렌은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진 반지를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구속구를 풀수있는 유일한 반지다. 

      이런것을 자신에게 주다니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의아한 시선으로 올려다 보자 은빛의 눈동자를 부드럽게 휜 노웬은 인사를 하고 그

      에게 등을 돌려 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앞으로 해야 할일이 많았고, 저들을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야 했던 탓이다. 

      그런 노웬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던 유크렌은 손안의 반지를 자신의 손에 끼었다. 

      한동안 손안에 끼어진 반지를 바라보던 그는 자신의 머리를 건드리는 손길에 얼굴

      을 들었다.

      "나갔으면 그냥 도망갔겠다. 뭐하러 다시 목걸리를 한거야?"

      "......이몸이 하는 일은 다 이유가 있는 거니깐, 알 필요없다." 

         

      자신의 말에 울컥한 표정을 짓는 샤한이지만, 다시 대들 맘은 없는지 이마에 힘줄

      을 세우곤 그대로 그 자리에 앉는다. 왜 하필 여기에 앉는건가하고 생각하며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린 유크렌은 목에 걸려있는 구속구를 손가락으로 건드려 보았다. 

      이것만 있으면 그 변태용의 시각에서 벗어날수가 있는 것이다. 

      처음엔 이것을 풀고 도망갈 생각이었지만, 이 녀석들 다른 인간들과는 달리 친절하

      고 자신에게 잘 대해준다. 

      모처럼 잠에서 일찍 깨어났으니 힘들일 필요없이 인간세계의 유희를 즐기는 거다. 

      거기다 그 변태 흑룡의 시야게 걸리지 않고 이렇게 자유롭게 나다니는 것도 처음이

      라고 할수 있는데다, 모처럼 반지도 있으니 위험할 때가 되면 도망가고 그전까진 

      이곳에 있자고 생각하는 유크렌이었다.

      그렇게 희희락락하던 그는 온몸을 쓸고 지나가는 한기에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도대체 어떤놈이 내 이야길 하고 있는 거야?"

      온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에 치를 떤 유크렌은 몸을 박박 긁어댔다.   

      그런 자신을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샤한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는다. 

      궁시렁 거리며 몸을 긁던 유크렌은 내내 잠들어 있다 이제서애 일어난 모양인지 멍

      한 눈으로 앉아있는 에스라는 녀석에게 시선을 주었다. 

      전에 납치되기 전까진 자신을 꽤나 챙겨주던 인간이다. 

      게다가 데리고 오는데 제일 애먹었던 놈이기도 하고.. 

      일단 기운이 느껴지는 녀석들이 있는 곳의 천막을 손톱으로 걷어 하나싹 손바닥 위

      에 올려놓은 다음 마지막으로 저 놈을 데리러 갔는데, 그곳에 있던 청발의 인간이 

      엄청나게 방해했던 것이다. 

      에스를 데려가는 자신을 무슨 철천지의 원수처럼 노려보고 검을 빼들려는 기세에 

      눌린 유크렌은 저도 모르게 브레스를 한방 뿌리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전에는 드래곤의 모습으로 나가기만 해도 인간놈들은 벌벌 떨었는데 말이다.

      "요즘 세상 무섭다니깐."

      '어디 맘대로 다니겠냐.'라며 궁시렁 거리는 유크렌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샤한은 겉모습만 변했지 속은 그대로라는 것을 확인하곤 만족의 웃음을 지었다. 

      여전히 바보같은게 여간 반가운게 아니다. 

      만약에 겉과 속이 전부 달라 졌다면 샤한은 앞으로 그에게 말을 걸지 않을 생각이

      었던 것이다. 의외로 그는 친해진 타입만을 고수하는 자인 것이다.   

      칸은 무척이나 초조했다. 

      이곳이 북쪽이고 재수없게도 유크렌의 정인이라는 변태드래곤의 손안 인데다, 북

      쪽의 왕인 히자스라는 꼬맹이와도 만나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히자스라는 녀석에겐 분명 두명의 형들이 있을 터였다. 

      아니, 예전엔 히자스가 여왕인줄 알았으니 그때는 오빠라는 존재로 알고 있었지. 

      하여간 그 엄청난 화근 덩어리가 이곳 어딘가에 있는 것이다. 

      과거 엄청나게 예쁜 외모를 지닌 주제에 하는 짓은 아저씨에, 맨날 자신을 깔려고 

      했던 이상한 녀석은 북쪽의 여왕의 오라버니인데다, 그쪽의 사신이었기에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당시의 칸은 속으로 참을 인자를 머릿속에 새길 뿐이었다.

      "...제길."

      만나게 되어도 괜찮을 지도 모른다. 

      지금 자신은 어린 몸인데다 그자가 만났던 칸크빌레 황제는 죽었다고 되어있으니 

      만나도 그냥 얼굴이 닮은 사람으로 치부할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염병할 녀석이 가흔이 있는 앞에서 아는 척이라도 하면 어찌 되겠는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한 칸의 얼굴이 푸르죽죽해진다. 

      아까부터 이상한 칸의 상태에 걱정스런 표정을 짓던 유헌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이마에 손을 집으려 했지만, 어색한 얼굴로 시선을 피하는 움직임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가흔의 얼굴에 가슴의 통증이 내달렸지만, 어쩔수가 없다. 

      자신은 결과가 어찌되었든 그를 속이고 있고, 그것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는 것

      이니 아파도 어쩔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이거 맛있네."

      "이것도 먹어요."

      빵을 수프에 찍어먹는 칸의 얼굴을 바라보던 유헌은 미소를 짓으며 앞의 고기 덩이

      를 잘라 그의 위에 올려 주었다. 

      고맙다고 어설프게 웃는 폼이 뭔가 숨기는게 있는 모양이다. 

      전에는 잘 지내다가 그 융텐이라는 드래곤이 심심풀이로 이곳의 계보를 알려 준데

      부터 안색이 변한 것이다. 그래봤자 왕들의 계보와 현 왕인 히자스의 형제들에 대

      해 알려 주었을 뿐인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러는 것일까. 

      그가 직접 말하기 전까진 아무것도 알수가 없고, 설령 알아도 모른척을 해야하는 

      유헌은 답답함에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내쉬는 한숨에 칸의 어깨가 경직되는 것이 느껴 졌지만, 하도 말을 안해주

      는 눈앞의 존재가 얄미워 딴청피는 척하는 유헌이었다. 

      그런 가흔의 모습에 차마 뭐라고 말을 걸지도 못하고 진땀을 빼는 칸이었다. 

      달그락.

      달칵.

      그릇들을 챙겨가는 시녀들을 바라보던 칸은 땅이 패일것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 같아서 저 시녀들을 붙잡아 이것저것 묻고 싶었지만 간간히 보이는 그녀들의 

      경계에 찬 눈동자들이 시도도 해보기 전에 포기하게 만든다. 

      북쪽은 타고난 환경탓에 그 일족을 제외하고 타지인에 대한 면역이 그다지 없다. 

      자신들은 위에서 시키는 일이라 되도록이면 편한 마음으로 하고 싶겠지만, 이방인

      이 그들을 바라 볼때마다 표정이 경직되는 것은 어쩔수 없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칸은 만약 자신들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떨어 졌

      다면 꽤나 고생을 했을거라고 짐작해 본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릇들을 다 옮기고 허리를 숙이는 시녀들에게 시선을 주던 칸은 손을 들어주곤 소

      파위로 몸을 눕혔다. 

      확실히 몸은 편하다. 

      매끼 식사는 풍족했고, 입고 있는 옷들도 화려하기 그지없으며, 욕실도 훌륭하기 

      짝이없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는가. 자유가 없는데.. 히자스가 처음으로 이곳으로 

      자신들을 데려다 놓은 후로 거진 3일이 지나가지만 다시 밖에 나가 본적이 없다. 

      그러기 전에 혼자서 외출이나 해 이곳저곳들을 봐두려 했던 칸은 문에 걸려있는 마

      력에 얼굴을 찡그리며 물러났다. 

      히자스라는 녀석이 이미 걸어둔 마력에 그 융텐이라는 놈은 잠금장치까지 해두었

      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들은 일주일이고 한달이고 놈들이 꺼내주기 전까진 이

      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런거 답답해서 어떻게 버티라는 건지..

      "칸 샤워라도 하는게 어때요?"

      "응?"

      "들어가 있으면 등이라도 밀어 줄께요."

      칸이 하도 답답해 하는 것 같아서 말을 건 유헌은 자신의 마지막 말에 확하니 얼굴

      을 붉히는 칸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왜 또 저러는 거지? 몸에 열이라도 나는 건가? 

      '칸 왜그래요?'라며 다가오는 유헌의 손을 피해 자리에서 일어나 칸은 자신의 머리

      를 긁적이며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선 소파에서 일어나 자신의 속옷을 챙긴 그는 냅다 욕실로 들어간다.

      "드..등 밀..밀어주지.. 않아도 되니깐.."

      "그래도 한번은 밀어주는게 좋지 않을 까요?"

      "그...괘..괜찮아! ! 나 한다음에 가흔이 하라고-!"

      탕.

      옷가지를 들고 다가오는 가흔의 모습에 아주 얼굴이 벌겋게 익은 칸은 급하게 욕실

      의 문을 닫았다. 

      등을 밀어 준다니... 왕실에서 자란 자신만이 있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등을 밀어 

      주겠다는 것은 성관계를 같자는 다른 준말이었다. 

      원래 그쪽에 문화가 화려해서 그들 나름의 언어 암호일수도 있겠지만, 그런 환경에

      서 자란 칸은 유헌의 말이 순수한 의도였을 지라도 얼굴을 붉히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제길이군.."

      욕실안의 전면 거울앞에 선 칸은 앳된 얼굴과 뼈대가 가는 몸에 미간을 찌뿌렸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던 몸이지만 근래에 들어 자꾸 신경에 쓰이고, 맘에 

      들지 않는다. 왜 가흔보다 자신의 몸이 작은거란 말이다. 

      뭐, 그보다 몸이 커져선 결코 음흉한 의도를 실행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

      시 자신이 가흔보다 몸이 커서 이것저것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칸이었다. 

      그 이것저것에 대해 생각하던 칸은 목까지 빨게져선 다급히 욕탕쪽으로 걸음을 옮

      겼다. 요새는 욕구불만인지 가흔와 흰 목덜미라던가 얇은 손목이라던가를 보면 자

      기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 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끔씩 생기는 묘한 욕구를 바로 풀수 있을것 같던 키스도 그때 이후론 

      그것도 변변히 못하고 있어 칸은 죽을 맛이었다. 

      맘을 다잡고 다가가도 '왜 그래요?'라는 듯이 순진하게 눈을 치켜뜨고 있는 상대에

      게 발정한다면 그건 요크발이나 융텐같은 변태일거다.

      "..칫."

      옷을 벗어던지 칸은 욕탕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추운 곳에서 온천이 나오는 것을 신기하게 여겨 처음엔 거의 여기서 놀다 싶

      이 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일이어야지. 

      투덜거린 칸은 증기가 오르는 표면을 손가락으로 튀겨 보았다. 

      퉁.

      그러고 보니 가흔에게 느끼는 것처럼의 감정을 지금껏 다른 누구에게서 느낀적이 

      있었던가. 옛날 아직 어릴적에는 집착을 애정으로 착각하긴 했었지... 

      뭐 그때는 상태가 이상했으니 그냥 두고 넘어가도록 하고.. 

      뭐랄까, 가흔을 보고 있으면 가슴 한편이 간질거리는 느낌이다. 

      자꾸 붙고 싶고, 옆에서 있고 싶은데, 주변에 녀석들이 있어서 내색을 안하느라 꽤

      나 초조했었지. 하지만 요즘은 꽤나 사이가 좋을 것같아 우리들..이라고 생각하던 

      칸의 헤실헤실 웃는 얼굴이 점점 붉어지더니 이내 삶은 홍씨처럼 변한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자신이 바보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만난지 얼마 안되네.."

      손가락을 꼽으며 가흔과 만난 시기를 정리해 보자 2달도 채 안되는 시간이 나온다. 

      그런게나 짧은 시간에도 이런 감정이 생기기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칸은 손을 들

      어 자신의 가슴에 대 보았다. 

      두근거리는 심장박동과 더불어 그는 처음 만났을 때의 가흔을 떠올려 보았다. 

      그와의 첫만남은 충격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검은색에 가까운 청색의 머리카락과 황금빛의 눈동자를 지닌 자신의 모습은 꽤나 

      특이해 그 어떠한 인간들을 봐도 그다지 놀라지 않던 자신이었다. 

      그러나... 그때 좁은 골목에서 잡다한 것들을 치우고 들어난 가흔의 새하얀 얼굴과 

      밤하늘 같은 머리카락은 그의 시선을 한순간에 사로 잡았다. 

      그때는 그게 뭔지 몰라서 꽤나 오도방정을 떨어댔지만..... 

      피식하고 웃은 칸은 얼굴을 뒤로 기댔다. 

      눈을 감고 한동안 온천의 따뜻함을 느끼던 그는 이내 시선을 들어 뜨거운 물이 쏫

      아져 나오는 사자의 머리를 가만히 바라 보았다. 

      저건.. 어디로 연결된 거지?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체에 수건을 감고 물위로 올라갔

      다. 나가는 문이 하나라고 생각할수는 없다. 

      귀족들이나 이런 화려한 저택엔 비밀문이 적어도 2이상은 있는 법. 

      게다가 욕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그는 많은 시간이 걸리

      지 않고서 어딘가로 연결될 듯한 통로를 발견했다.

      ".....흐-음. 어쩌나."

      아이같이 눈을 빛내던 칸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냥 나가서 구경만 하다오면 괜찮지만, 날이 장날이라고 혹여나 다른 사람들의 눈

      에 띄이면 상당히 곤란해 지는 것이다. 

      안전빵으로 그냥 들어가서 가흔과의 오붓한 시간을 지낼까하고 생각하는 그이지

      만, 타고난 호기심과 무모함을 억누르지 못하고 옷가지들을 챙긴 다음 통로로 기어 

      들어갔다. 

      뭐, 일이 생긴다 해도 자신이 그것을 잘 해결하면 된다면 어거지를 쓰고선 말이다. 

      쓱쓱쓱.

      옷들을 입에 물고 기어가는 내내 말이 없던 칸은 한동안 이동을 했는데도 보이지 

      않은 입구에 그냥 그 자리에 엎드린채 누워 버렸다. 

      헥헥거리는 자신의 가쁜 숨소리를 들으며 몸을 비틀어 허공을 바라본 그는 그냥 얌

      전히 목욕을 즐기고 가흔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건데하고 생각하다 이내 오기가 치

      밀어 다시 자세를 바꿨다.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잔뜩이다. 

      그러나 이 천하의 칸이 중도포기를 한다는 건 절대 말도 안된다. 

      이를 악문 그는 하도 기어서 따끔거리는 팔을 끌고 앞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히자스는 어디에 있는 거냐?"

      "왕께서는 지금 융텐님과 함께 계시다 들었습니다."

      시녀의 말에 굉장히 맘에 안든다는 표정을 지은 그는 자신의 은발을 뒤로 넘기며 

      '망할 도마뱀이...'라고 이를 갈았지만 자신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곧 표정을 바꾸

      며 앞에 있는 시녀를 물러나게 했다. 

      모처럼 키사스도 없는 혼자만의 시간이 남아서 동생이자 왕인 히자스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내려 했는데, 그 늙은 변태 용때문에 일이 틀어졌다. 투덜거리던 그는 몸을 

      틀어 책상에 바로 앉았다. 

      히자스도 없고, 키사스도 없다. 

      그렇다면 지금은 할필요가 없는 서류나 작성하면서 이 무료한 시간을 때우려고 흰 

      서류뭉치로 손을 뻗던 그는 책상위에 올려져 있는 그림에 시선을 돌렸다. 

      자신과 은발의 미남, 그리고 검청의 머리카락을 지닌 굉장히 반항적인 눈빛의 소년

      이 그려져 있는 그림이었다. 하나같이 외모가 받쳐주니 눈이 즐거워 그는 때때로 

      그것만을 바라보다 하루를 보낸적도 몇번 있었다. 

      그런 자신을 히자스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즐거워 하는 변태라고 하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니 그냥 한번 찐하게 안아주는 것으로 그의 섭섭한 마음을 달래 주었다. 

      그는 삐질때는 꽤나 성미가 뾰족해 지니깐. 

      히자스의 뾰로통한 얼굴을 상상하며 즐겁게 웃던 그는 손가락을 들어 그림의 소년

      의 얼굴을 쓰다 듬었다.

      "칸크빌레... 잘 지내고 있는 거냐?"

      첫사랑이었다. 

      머리에 잘 맞지도 않은 거대한 왕관을 쓰고 대륙을 호령하던, 남들에게 살해왕이라

      는 오명을 들어도 자신의 하는 일에 해명하지 않고 외로이 싸우던 그 소년황제는 

      유제스의 잊지 못할 첫사랑이었던 것이다. 

      10여년 전에 그가 비참하게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때 그는 자신의 북의 왕이 되어 

      중앙을 침략할 생각을 가질 정도로 그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수 없는 것이었다. 

      한숨을 쉬며 몸을 뒤로 뺀 그는 소년의 옆에 서있는 자신과 같은 은발의 청년을 부

      드러운 시선으로 바라 보았다. 

      자신과 감정은 다르나 비슷한 열망으로 칸크빌레를 모시던 북의 일족의 사나이였

      다. 분명 이름이 하르스라는 자였지. 

      칸크빌레 사후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

      과거를 회상하다 보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자신의 머리를 감싸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차나 한잔 마시려는 생각에 갖가지 차

      들과 잔들이 모여있는 선반으로 걸음을 옮겼다. 차를 마시는 것을 취미로 지닌 고

      아한 북의 왕자는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할 만큼의 개인 찻장을 지니고 있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여기저기의 차들을 들어 안의 향기를 맡아보던 그는 오랜만에 올

      리브 하튼차를 마시기로 하고 그쪽으로 손을 뻗다가 차잎이 들어있는 병이 자신쪽

      으로 다가오자 '어라?'하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나 차들도 사람을 따지는지 자신같은 미남이 손을 뻗자 스스로 다가오는 건가

      하고 얼빠진 생각을 하던 유제스는 일정한 면적의 병들이 전부 자신쪽으로 밀려오

      자 '어라라?'하는 표정을 지었다.

      쿵.

      쿵쿵.

      "..........이건..?"

      찻잔들이 있는 곳의 선박에 쿵쿵하며 울린다. 

      벽쪽에서 누군가 치고있는 건가해서 조심스럽게 얼굴을 앞으로 내민 그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자신쪽으로 쏫아지는 병들과 잔들에 히껍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

      났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움직임을 곧 후회해야 했다. 

      엄청 아끼고 구하기 어렵다는 차잎들이 보관하던 병이 깨지면서 전부 바닥에 흩어

      졌던 것이다. 망연하게 그것들을 바라보던 그는 벽과 천장사이에 얼굴을 반쯤 내밀

      고 이쪽으로 기어오는 인영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곳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닐테데...하고 생각해 버린다.

      "으퉷퉷~ 뭐야. 이 풀때기들은.. 쓰잖아~~"

      미간을 찌뿌리며 입안에 들어온 풀들을 뱉어낸 칸은 자신이 도대체 어디로 나온건

      가 하고 얼굴을 들려 했지만 반쯤 끼인 몸은 나올 생각을 안한다. 

      그것에 당황한 그는 벽에 양손을 대고 있는 힘껏 몸을 빼내려 했지만, 이미 막혀버

      린 벽을 뚫고 오는데 힘을 다써서 기운이 딸린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누군가가 지나기면 상당히 곤란해 지는데~하고 생각하던 

      칸은 자신의 얼굴을 잡아오는 따뜻한 온기에 눈을 둥그랗게 떴다.

      "안녕?"

      "..........."

      "안녕?"

      유제스는 미소를 짓고 인사를 하는 자신의 얼굴을 보자마자 굳어지는 소년의 모습

      에 입가의 미소를 좀더 진하게 띄었다. 

      불쌍하게도 자신같은 미모의 소유자는 처음보는지라 굳어버린 모양이다. 

      그런 유제스와 달리 칸은 속으로 엄청난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꿈에나 있을수 있을랴, 저 얼굴에 눈동자에 분위기에, 느물거리는 미소조차도 막상 

      눈앞에 다가오니 새록새록 과거의 일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좋든 싫든 그를 처음으로 덮치려한 인간이기에 절대로 잊을수가 없다. 

      그때의 황당함과 지금 다시 만나 버렸다는 당황에 입만 벌리고 어버버하고 있는 칸

      의 얼굴을 바라보던 유제스는 이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10여년 전에 고인이 된 사람이 아닌가. 

      그렇게나 그를 잊지 못하고 있었던가 하고 쓴웃음을 짓던 그는 벽에 껴서 바둥거리

      는 이 소년을 꺼내주자는 생각에 잡고있던 얼굴을 있는 힘껏 잡아 당겼다.

      "으갸갸~~아아악---! ! !"

      쿠당탕-

      "헥헉헥.."

      순간적이지만, 저 놈이 자신의 목을 잡아 빼버리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정도

      로 굉장히 아팠다.  

      유제스가 얼굴을 잡아 그대로 낀인 통로에서 빼버리는 통에 목에 엄청난 통증을 느

      껴야 했던 칸은, 자신의 목을 잡고 눈가에 눈물을 맺힌채로 유제스를 노려 보았다. 

      그 엄청난 원한이 찬 시선에 어깨를 으쓱해 보인 그는 무릎을 꿇어 바닥에 내팽겨

      진 칸과 눈높이를 같이 했다. 

      건방지게 올라간 눈꼬리라던가 꽉다문 입매라던가, 황금빛의 눈동자와 검청의 머

      리카락. 

      .........이 소년 확실히 칸크빌레와 닮았다.

      "비..빌어먹을.. 죽는 줄 알았잖아-! !"

      도와주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지만, 구해준 은혜도 모르게 바락바락 대드는 것도 그

      와 영판이다. 칸크빌레가 살아 돌아온 것 같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유제스는 

      자신의 턱에 손가락을 대고 묘한 시선을 보냈다. 

      설령, 칸크빌레가 살아 있다고 해도 이런 꼬맹이의 몸을 지니고 있을리가 없다. 

      그는 자신보다 어렸으니 적어도 저 키사스와 동갑은 될것이다. 

      "뭘 보는 거야?! 멍청한 놈이! !"

      금방이라도 험한 말을 내뱉을 것 같은 기세도 꽥꽥거리는 투도 영판이다. 

      살피는 기색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제스의 시선에 뜨끔한 칸은 빨리 여기서 벗어

      나야 겠다는 생각에 되려 큰소리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수도 오지게 없지. 하필이면 저런 놈과 만나게 될것은 뭐야라며 궁시렁대던 칸은 

      낮고 조용한 울림에 안색을 굳혔다.  

      "너............. 칸크빌레?"

      ".......;;;;;"

      "응? 맞지?"

      "..........그..."

      그럴리가 없다고 말하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대답을 빨리하지 않으면 이 놈에게 들킬지도 모르고, 또다시 기억하기도 싫은 그 

      일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신으로 온 주제에 겁도 없이 동맹국 황제를 겁탈 

      직전까지 몰고갔던 놈인 것이다. 

      "-일리가 없지. 하하하."

      입술을 바들바들 떨던 칸은 그러나 이어지는 유제스의 말에 반즘 서있던 자세 그대

      로 고꾸라 졌다. 등을 경직시킨채 부들부들 떠는 칸의 등을 콕콕찌르는 유제스의 

      얼굴을 죄책감 하나없이 말끔하기만 하다. 

      그 얼굴을 노려보던 칸은 이성이라는게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예나 지금이나 네놈은 정말 재수없구나! ! ! !"

      탁.

      칸의 외침에 유제스는 손바닥 위에 주먹을 내리치며 명료하게 내뱉었다. 

      "역시- 칸크빌레! !"

      "....(헉! !);;;"

      "랑 닮았군. 하하하~"

      "............."

      엄청난 침묵이 두사람 사이를 감돈다.

      유헌은 문에 손을 올리고 마력의 흐름이 느려지는 것을 상상했다. 

      맘대로 될지는 잘 모르지만, 이것을 풀어야 밖에 나갈수 있고, 사라진 칸을 찾으러 

      다닐수 있는 것이다. 

      욕실에서 오랜시간이 걸려도 나오지 않아 의아함을 느끼고 안을 들여다 보았을때, 

      사람은 보이지 않고 댕그라니 열려져 있던 환풍구만을 발견 했을때의 그 허탈함이

      란... 언제고 일을 칠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런식으로 뒷통수를 칠거라고 생각치 못

      했던 유헌은 그를 찾아나면 뭔가로 묶어둬야 겠다고 결심했다. 

      히자스라는 자가 중앙국의 이종족 차별정책으로 이곳에 모였다고 들었다. 

      그렇다는 것은 전대 중앙국의 황제였던 칸에게 이곳은 호랑이 굴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런 곳에 버젓이 돌아다니려는 생각을 하다니...! !

      "...됐다."

      흥분하느라 마력의 흐름이 다소 느려졌다는 것을 늦게 깨달은 유헌은 마력의 움직

      임이 완전히 멈추자 '역시나.....'라고 중얼거리며 문을 열었다. 

      육중한 문이 열리며 나는 소리에 잠시 안색을 경직시킨 그는 그러나 밖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완전히 밖으로 나왔다. 다시 문에 손을 대고 흐름을 원상태로 

      돌린 그는 아무도 없이 끝없이 펼쳐진 복도에 시선을 주었다. 

      도대체 어디서 부터 그를 찾아야 할지 감이 안 잡히지만, 늦어 질수록 곤란한 상황

      이 될거라는 것을 알기에 이를 악물고 걸음을 옮겼다. 

      탁탁탁.

      빠른 걸음으로 달려나가던 유헌은 이내 어둠속으로 파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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