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개의 달 [중]-1화 (21/55)

       [네르시온] 두개의 달 中

        [장편] 두개의 달 [중] 

      가벼운 식사만 할줄알았는데, 나중엔 같이 서점에 가기도 하고 오락실에 들리는 등 

      아이쇼핑까지 하게되서 꽤나 늦은 시각에 귀가하게 된 유헌은 소리가 들리지 않게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식구들은 원래 남들에 대해 무감한 사람들이니 소리를 난다해도 크게 상관은 없었

      지만..... 

      "늦었군."

      ".........아직 안 잤어?"

      가방을 든채로 계단 끝까지 올라온 유헌은 자신의 방문앞에 서있는 가헌의 모습에 

      눈을 깜밖였다. 아직 12시인 지금, 새벽 2시까지 깨어있는 그가 잘시각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있지만 화장실 갈때를 제외하고 이렇게 밖에 서있는 모습은 처음이다. 

      멎쩍음에 머리를 긁적인 유헌은 병원에 갔다가 식사를 하고 돌아다니느라 늦었다

      는 궁상한 변명을 했다. 

      그런 유헌을 가만히 바라보던 가헌은 기대고 있던 방문에서 등을 떼냈다.

      "이틀전에 학교에서 도대체 무슨일을 한거냐."

      "아-"

      일진녀석들과 있었던 일을 가지고 그러는가 보다.   

      하지만 녀석들하고 일이 있었을때 분명 그 창가에서 보고 있었고,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이미 파악하고 있을텐데 이런 반응은 뭐란 말인가. 

      일방적으로 추궁당하는 기분이 좋을리가 없다. 하지만 형이기도 하고 전에 꽤나 동

      경하던 사람이니 직접적으로 말을 꺼내 불만을 나타낼 수도 없다. 

      전같으면 이런상황이 있을시 나는 엄청 좋아했을지도, 아니 머리에 피가 몰려 기절

      했을 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자신은 아니다. 

      가헌의 쓸데없는 참견이 귀찮기 그지없다. 

      늦게 들어왔으니 우선적으로 씻고 싶다.

      "미안하지만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피곤하거든."

      싸늘한 말에 안색이 변하는 가헌의 얼굴을 힐끔 바라본 유헌은 가방을 들어올리며 

      손잡이를 잡았다. 아직도 문앞에 서있는 가헌이 방해되엇지만,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에게 또 다시 아까와 비슷한 말을 던지면 나중에 괴로울지도... 

      한번도 이런 취급을 당해본 적이 없으니 자칫하단 앙심을 품을 수도 있다. 

      게다가 형은 부모님이나 주위 사람들에에 엄청난 신임을 받고 있는 바, 자신에 대

      해 조금이라도 나쁜 말을 한다면 그날로 끝장이다.

      조금쯤은 부드러운 음성이 나왔으면 좋으려만...

      "여기저기 돌아 다녀서 피곤하거든. ....이만 비켜줄래?"    

      "......그래.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에 하자."

      부드러운 음성이 도움이 된건지 경직된 표정을 푼 가헌이 문앞에서 비켜선다. 

      그런 형에게 잘자라는 인사를 던지며 방안으로 들어온 유헌은 침대위로 가방을 집

      어 던졌다. 이것저것 책들이 들어있어서 꽤나 무게가 나가는 것을 들고 돌아 다녔

      더니 어깨가 뻐근하다. 

      밥만 먹고 돌아갈 줄 알고 가방을 들고 나온것이 실수였다. 

      투덜거리며 컴퓨터 앞에 앉은 유헌은 채팅쪽을 둘러 보았다.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

      이 종종있곤 하지만, 개중엔 얻을만한 정보를 주는 사람들도 있다. 

      미스테리가 벌어진 지역에 대한 자료라던가 이공간에 대한 것을 좀더 과학적으로 

      설명해 주곤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던 것이다. 

      틱.

      티딕.

      여기저기 들어가 보았지만, 이번엔 괜찮은 자리가 없다. 

      한숨을 쉰 유헌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발에 걸리는 가방을 밀어 바닥에 떨어뜨린 유헌은 그의 모친이 지져분해진 방을 치

      우지 않으면 안의 책을 다 버린다고 했던 엄포가 잠시 떠올랐지만 이내 귀찮아 하

      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말만 그렇지 실제로 남의 물건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들인 자

      신이 제일 잘 안다. 보나마나 가정부 아줌마를 시켜 치우라고 하겠지. 

      책의 내용들에 기겁한 아줌마가 아버지에게 말한다면 조금 귀찮은 일이 생길거라

      는 생각에 치울까도 해봤지만 역시나 수면욕이 좀더 강하다. 

      달칵.

      문을 열어본 가헌은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든 유헌의 모습에 한숨을 내뱉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숨을 내뱉은 횟수는 손을 꼽을 정도인데 요즘들어 그 횟수

      가 무척이나 늘었다. 

      그것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사람은 저토록이나 태평하니 가헌은 조금 억울한 기

      분이라는 것을 느꼈다. 한번도 무엇에 대해 억울하다거나, 신경 쓰인다거나, 초조

      하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전의 유헌의 방이었다면 언제나 깔끔하니 정리되어 있었는데, 지금의 바닥엔 온통 

      책들와 과자 봉지들이 널려져 있다. 

      ..........사람이 이렇게나 변할수도 있단 말인가. 

      "............"

      슬슬 자두지 않으면 내일 일에 방해가 올지도 모른다. 

      답답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유헌의 방문을 닫은 가헌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

      갔다. 

      "..저기 저놈이야."

      "왼쪽? 오른쪽? 뭐가 저렇게 똑같아?"

      옆에 서있던 녀석이 굽신거리며 가르키는 방향을 바라보던 금발의 소년은 멀리서 

      걸어오는 두명의 모습에 미간을 찌뿌렸다. 

      둘다 굉장한 미형으로 꽤나 여자애들이 좋아할 만한 타입니다. 

      딱보기에도 만만찮게 보이는 모습에 저런 놈들에게 당하고 나서 자신에게 달려온 

      두 놈들의 머리통을 내리치고 싶었다. 

      나도 꽤나 대단한 녀석이라지만, 저놈들은 더 대단해 보인다. 

      "이름이 뭐냐?"

      ".......모르는 겁니까? 같은 학굔데..."

      초기엔 미형의 쌍둥이인데다 대단한 집안의 아들이라는 것으로, 차차 들어나는 형

      쪽인 가헌이라는 녀석의 놀랄만한 재능에 의해 더 유명해지고, 쌍둥이 동생쪽의 이

      상함에 더더욱 유명해 졌다. 

      교내에 한번쯤 들린 사람들이라면 전부 저들의 이름만을 머릿속에 넣고 떠날만큼, 

      그 인기와 인지도는 밖의 여느 스타들에 비할바가 아닌 것이다. 

      별종을 본다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녀석을 가만히 내려다 보던 금발은 주변에 있던 

      다른 똘마니 들도 비슷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렀다. 

      그래, 내가 좀 무심하긴 하지. 

      거기다 학교도 잘 안 나오고 무엇보다 사람 얼굴 외우는 걸 정말로 못한다는 것쯤

      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하지만 말이다.

      "니들 감히 누구한테 뻣뻣이 얼굴을 들고 있는 거야?" 

      이를 간 그는 천천히 팔을 걷으며 올라가 있던 창턱에서 내려왔다. 

      야차같은 그 모습에 주변에 있던 소년들이 안색을 달리하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

      다. 하도 오랜만에 봐서 그만 그의 개같은 성미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지가 불리해 지면 꼭 남탓하는 그 지랄같은 성미를 말이다. 

      정체를 알수없는 녀석에게 흠씬 두들여 맞는 일진의 사정을 알바아닌 가헌과 유헌

      은 침묵을 유지하며 등교길을 함께 하고 있었다. 

      유헌의 기억으론 이렇게 함께 등교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같은 시간대에 나와도 가헌이 먼저 가거나 자신이 멀찍히 떨어져 가거나, 가헌의 

      친구들이 와서 그를 데려 간다거나 했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함께 등교하는 만큼 그에따라 몰리는 시선이 배가 되는 느낌이다. 

      얼굴이 뚫린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주변의 학생들과 사람들은 자신들을 노골적으

      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도 병원에 가는 거냐?"

      "아, 진단을 받을게 하나더 있다던데...."

      "....꽤나 많이 하는 군."

      유헌이 정신쪽에 문제가 있어 어릴적부터 병원에 자주 들락달락 했다는 것을 잘 알

      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짜증이 나는 것은 처음이다. 

      답지않은 가헌의 반응에 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유헌은 점점 학교가 가까워

      지자 슬슬 떨어져 들어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상태로 교문을 통과했다면 자신들을 보기위해 창문에 매달리는 인간들도 발

      생하는 최대의 이벤트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요란한 것은 사양이기에 주머니에서 

      손을 빼낸 유헌은 가헌에게 먼저 가보겠다는 말을 건냈다. 

      그런 유헌을 바라보던 가헌은 알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문한다. 

      "같이 가면 불편하지 않을까해서..."

      "뭐가 어때서. 그냥 같이 가."

      ".....그럴까?"

      떼쓰는 것 같은 가헌의 말투에 유헌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17년을 같이 자라왔지만, 이런 말투를 쓰는 가헌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가던 유헌은 한동안 패닉상태여서 가헌이 방과후 같이 

      병원에 가자는 말에 그러자는 대답을 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나서 상당히 후회했지만.... 이미 입밖으로 내민 말 철회했다

      간 저 대단하신 형님께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 보겠지. 

      그건 생각보다 치명적이기에 뒤를 따라오는 그를 만류할수 없었다. 

      "...어라. 가헌군?"

      의사는 저도 모르게 눈을 비비려고 위로 올라가는 손을 다른손으로 누르며 유헌 옆

      에 서있는 소년에게 어렵사리 웃는 얼굴을 만들어 보았다. 

      전에는 유헌과 가헌의 이미지가 딴판이라 슬쩍만 봐도 구별이 가능했지만, 요새 유

      헌의 분위기가 상당히 변해서 멀리서 다가 왔을 때 그가 거울옆에 서있는 건가 했

      다. 

      그런데 가헌과 같이 온 모양이다. 

      유헌이 정신을 차린 뒤로 정말이지 이상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구나 싶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가헌이 유헌을 따라 병원에 온 적이 없었다. 

      단지 곁에 있는 것만으로 그가 유헌을 따라왔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지만, 유헌의 

      옆에 붙어있는 모습이라던가 빨리 끝내라고 암묵적으로 보내는 눈빛이 자신의 생

      각이 틀린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오늘은 가벼운 테스트만 할거야. 시간을 얼마 안 걸릴거다."

      저기에 있는 간호사를 따라가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 유헌은 자신의 가방을 내려 

      가헌에게 부탁했다. 

      순순히 유헌의 가방을 들어주는 가헌의 모습에 의사는 숨을 들이켰다. 자신의 시력

      이 잘못된 것은 절대 아니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 현실인 것이다. 

      세상에- 저 오만한 도련님이 남의 짐을 들어주는 데다 그것에 대해 단 한마디의 불

      평, 불만을 표현하지 않다니... 아연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의사를 노려본 가

      헌은 앞으로 걸어가는 유헌의 뒤를 따랐다. 

      이런 곳에 멍하니 앉아있는 것보단 유헌이 들어가는 방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아 기

      다리는 편이 낫다.

      "여기요. 어떻게 하는 지는 알죠?"

      철이 들었을 무렵부터 병원을 다니던 자신이다. 

      왠만한 병원 관계자들은 대게 유헌을 알아보고 먼저 아는 척을 하는 판인데, 이런 

      기초적인 문서 작성을 모를리가 없다. 간호사의 말에 웃는 얼굴로 긍정을 해보인 

      유헌은 시선을 내려 하얀종이를 바라보았다. 

      문제는 눈으로 들어오나 그 의미를 애써 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럼에도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손을 바라보던 유헌은 10분도 안되서 체크를 끝낸 

      종이 뭉텅이를 뒤로 물리며 의자뒤로 몸을 눕혔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피하는 좁은 이런 병실이 친근하게 느껴지다니... 

      피식하고 웃어보인 유헌은 펜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툭.

      "........?"

      발목에 부딫히는 느낌에 고개를 내린 유헌은 밑에서 굴러다니는 황금빛 공에 눈썹

      을 가느다랗게 모았다. 

      이런 곳에 공이 있다니.. ........이상한 일이다. 

      몸을 숙여 공을 집어든 그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있던 창문을 열어 보았다. 닫힌 창문을 뚫고 공이 날라올 가망성은 0%였으

      나 무의식적으로 하는 의미없는 행동에 그닥 구애받지 않기로 했다. 

      무감한 표정으로 4층 아래서 뛰어 다니는 아이들에 시선을 주던 유헌은 그 평화로

      운 모습에 절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한창 좋을 때다. 

      "그러는 댁도 한창 좋을때가 아냐?"

      " ! ! ! "

      갑자기 머리위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소스라치게 놀란 유헌은 반사적으로 몸을 창

      가에서 때내었다. 그런 그의 행동에 재미있었는지 킥킥대며 웃는 소리에 울컥한 유

      헌은 천천히 창가에 손을 집고 위를 올려다 보았다. 

      도대체 어떤 여자인지 얼굴이나 확인했으면 하는 단순한 마음이었던 유헌은 4층위 

      5층 창가에서 양팔을 밖으로 내민채 자신을 내려다 보는 새하얀 얼굴에 눈을 동그

      랗게 떴다. 

      "애늙은이 같은 말투를 사용하는 사람이네."  

      "..............."

      "무슨 표정이 그래? 애늙은이에 웃기는 사람으로 격하."

      혀를 내밀고 눈앞을 자르듯이 손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 긋는 동작을 취해보인 소녀

      는 그런 자신의 행동을 세세하게 기억이라도 할것같이 두눈을 크게 뜨고 올려다 보

      는 유헌에게 예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게 평가하면 예쁜 외모를 지녔다고 할수있는 여자였지만, 주변을 감도는 알수없

      는 분위기가 그녀의 이미지를 훨씬 더 화려하게 느껴지게 한다. 

      입술을 달싹이며 자신에게 손가락을 질을 하며 뭔가를 말하려는 듯한 유헌의 행동

      을 바라보며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그녀는 창틀에 기댄챈 몸을 앞

      으로 숙였다. 

      답답하니 어서 말해보라는 듯한 그 움직임에 유헌은 목구멍 안에서 맴돌던 단어를 

      겨우 밖으로 내뱉을수 있었다.

      "...........여왕."

      "어라. 그립군. 그렇게 불려진지가 얼마만인지..... 그나저나 내가 누구인지 알고있

      네? 예민하기만 했지, 답답하게 행동해서 둔탱인줄 알았는데."

      한참을 고심하다 내뱉은 단어를 너무도 쉬게 긍정하는 그 모습에 차라리 어이없기 

      까지 한다.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 보는 유헌의 모습이 귀엽다고 느

      끼며 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두들였다. 

      그녀로써도 이런 장소에서 '동류'를 만나게 될지 꿈에서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

      다.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자신이 실제론 저 소년보다 더 흥분하고 있

      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소녀는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입안에서 맴도는 이 이름을 남에게 들려주는 것도 정말 오랜만의 일인지라 뱉어내

      는 입술이 떨리는 느낌조차 든다.

      "미할라 율겐 바라바 튬 휼 13세. 그쪽 세계에서의 내 이름이야. 너는?"

      ".............가흔."

      "그렇군. 가흔이라는 이름이구나... 좋은 걸?"

      턱을 받치며 입안에서 가흔이라고 되내이는 그 표정이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녹여

      먹는 것만 같아 유헌은 절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외관은 분명 자신과 동갑으로 보이는데, 저 알수없는 농염한 분위기는 대체 무엇인

      지. 마치 칸과 비슷한 느낌이라는 것을 떠올리던 유헌은 들고있던 공을 바닥에 떨

      여 뜨렸다. 

      갑자기 느껴지는 답답함에 천천히 고개를 숙인 유헌은 창틀에 양손을 올려놓고 그

      위에 얼굴을 묻었다. 이내 손등이 축축하게 젖어지는 것을 느끼며 위에 있는 소녀

      의 괜찮냐는 질문에 유헌은 천천히 얼굴을 끄덕일수 밖에 없었다. 

      그런 유헌을 내려다 보던 미할라는 나무가지를 상상하자 바로 손바닥 위에서 나타

      나는 길다란 막대기를 들어 아랫층 창가에 엎드려 있는 그의 뒷통수를 긁었다. 

      하지말라는 울음섞인 말투와 달리 그의 어깨는 잘게 떨고 있었다. 

      분명 기뻐하고 있는 것일거다. 

      자신이 있었던, 자신과 친구들이 함께 있었던 그 세계가 만들어낸 공상의 세계가 

      아닌 정말로 있었던 경험의 산물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자 견딜수 없을 만큼 기쁜

      거다. 

      아무도 없다. 

      자신이 말하는 세계의 사람같은건 이쪽엔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그것을 타인에게 말하면 분명 이상한 취급을 받을터이니 뭔가 증거를 준

      비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주려 하지만, 이쪽에서 그 쪽의 증거란게 존재할리가 없

      다. 분명 있다고 확신하던 것도, 찾아내려던 것도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포기

      할수 밖에 없다. 

      하지만 쉽게 포기할만한 것들이 아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한창 괴로운 기분일때 자신을 만나 확인을 받게 

      되니 순간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할수 없는 거다.

      ".....가여운 녀석."

      ".........."

      "그만 울어라. 다 큰 녀석이 질질짜니 보기 안좋다."

      "처음 봤을때는 엄청 상냥하게 굴어 놓고선.. 지금은 상당히 틀리군요."

      칸이 있던 세계에서 자신을 이쪽으로 보낼때의 그녀는 한없이 다정한 음색으로 괜

      찮다-고 말해 주었다. 때문에 원하지 않게 이쪽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꼭 그녀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이자크에 의해서도 보내졌을 것이 분명하니 그녀를 원망할 건

      덕지가 없다. 

      투덜대는 유헌을 보며 '여자는 다중인격이란다, 꼬마.'라고 말해 그의 얼굴을 또다

      시 아연하게 만든 미할라는 작게 웃으며 하얀 손을 내밀었다.

      "슬슬 돌아가 봐야겠다. 그 공이나 주렴."

      "에? 아."

      손에서 놓친 황금빛 공을 다시 주워든 유헌은 창가에 붙어 손을 위로 뻗었다. 

      공을 건낼때 손가락에 닿은 그녀의 온기에 더없이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 유헌의 얼

      굴에 한쪽 눈썹을 올린 미할라는 장난스럽게 윙크를 하며 입술을 벌렸다.

      쾅! !

      "유헌아, 안돼! ! !"

      "........에?"

      갑자기 문을 발로차고 들어온 가헌이 창가에 붙어있던 자신을 허리를 잡아 벽쪽으

      로 밀어 붙이자 유헌은 부딫힌 등쪽에 미미한 통증을 느끼며 미간을 찡그렸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라며 닥달하는 가헌의 모습에 알수없다는 표정을 

      짓던 유헌은 문밖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딱딱한 안색으로 들어온 의사가 자신쪽으로 걸어오더니 손을 들어 찰싹소

      리가 날 정도로 가볍게 뺨을 때린다. 반사적으로 볼을 한손으로 잡은 유헌은 갑작

      스럽게 벌어진 이 일들을 하나도 이해 할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유헌의 모습에 한숨을 쉰 사

      내는 골치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집으며 입을 열었다.

      "고민이 있으면 말로 하란 말이다. 자살같은 바보같은 짓은 하는게 아냐."

      ".........네?"

      "도대체가 말야. 창쪽에 그렇게나 몸을 내밀면 어쩌자는 거냐. 마침 아래에 지나가

      던 사람이 알려줘서 오길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어쩔뻔 했냐."

      "자..잠깐만요! !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창문에 붙어 있었던 것을 사실이지만, 자살이라니. 

      어감 나쁜 단어에 미간을 찡그린 유헌은 어깨를 아프게 누르는 가헌의 팔을 쳐내고 

      다시 창가로 걸어갔다. 

      자신의 움직임에 안색을 굳힌 가헌이 다시 팔을 내뻗었지만, 탁 소리가 날 정도로 

      쳐낸 유헌은 창가 위로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전 위에 있던 여자애에게 공을 돌려 주었던 것 뿐입니다."   

      "뭐?"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당당하게 말한 유헌은 자신의 말에 바로 경직되는 

      의사의 얼굴에 뭔가 실수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손을 올리지도 못하고 내리지도 못하는 상당히 난감한 상황에 눈을 굴리던 유헌은 

      여전히 경직된 표정으로 입을 여는 의사의 말에 안색을 달리했다.

      "미안하네만, 유헌군. 윗층은 20여년동안 식물인간인 여성밖에 없어. 게다가 지금

      은 면회금지인 상태인지라 의사조차도 주치의가 아닌 이상 들어갈수 없다. 

      그리고 그 주치의는 물론 남자지."

      ".............."

      "우선은 들어가 쉬도록 해. 나중에 다시 이쪽에서 연락을 줄테니-"

      의사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지은 유헌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며 위층을 올려다 보았

      다. 허리를 반쯤 내밀고 젖힌 상태인 유헌의 허리에 매달린 가헌은 다시금 그를 방

      안으로 잡아 끌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들어 유헌의 눈가에 눈물을 닦아 내었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정신을 차린후 이상하게 변했다고 생각만 했었는데, 오늘 일을 

      목격하니 그가 정말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헌을 몸을 잡아끄는 의사의 행동에 순순히 그를 넘긴 가헌은 창에서 얼굴을 내밀

      어 위층을 올려다 보았다. 

      단단히 닫혀진 창문과 창틀에 나있는 쇠창살이 도무지 사람이 나올수 없는 구조다. 

      "............"

      미간을 찌푸리며 안으로 들어온 가헌은 그와 유헌의 가방을 챙기며 멀리 의사에게 

      몸을 의지하고 걸어가는 유헌의 등을 바라 보았다. 

      자신이 보살펴주면 된다.

      유헌이가 그동안 이상한 행동을 했던 것은 아직 아픈 것에서 낫지 않았기에, 그런 

      이상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고 자신을 전과 다른 모습으로 대하는 것

      일거다. 분명 그런 거다라고 생각한 가헌은 주먹을 쥐었다. 

      쌍둥이 형인 자신이 유헌을 도와 그가 빨리 나을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제 괜찮아요." 

      "정말이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닫혀진 문을 대고 어떤 여자애와 대화를 나눴다고 하는데다 얼굴은 눈물로 젖어있

      다. 자신이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왠 미친녀석이 헛소리 했다고 치부했겠지. 

      얼굴 가득 걱정을 빛을 띄는 그에에 미소를 지어보인 유헌은 가헌이 건낸 손수건으

      로 코를 풀고 숨을 들이켰다. 

      위층에 있던 장소는 20년동안 식물인간 상태인 여자가 입원되어있는 곳이라고 한

      다. 집이는 바가 있는 유헌은 더이상 다른 사람들 눈에 이상 행동을 비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은 진실이고 정말로 있는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신상태가 이상한 소년의 망상에 불가한 것이다. 

      게다가 자신을 이미 한번 정신병으로 입원조치에 쳐해졌던 적이 있었다. 

      앞으로 그녀를 또 만날수도 있다. 

      그때까지 되도록이면 얌전히, 주위 사람들이 자신에게 신경을 꺼두도록 하는 것이 

      좋다. 

      "정말로 괜찮아요. 무엇보다 형이 있잖아요." 

      ".........그렇다면..." 

      웅얼거린 의사는 자신에게 인사를 건내고 가헌에게로 걸어가는 유헌의 등을 바라

      보았다. 형제중 하나에게 이상이 있을 때 다른 하나가 걱정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

      이지만, 가헌과 유헌이기에 납득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과거 가헌은 유헌의 존재자체를 무시했었고, 유헌은 가헌의 존재를 너무

      도 선망해서 그에게 제대로된 대화조차도 건낼수가 없었던 거다. 

      턱에 손을 올린 의사는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혼자서 가도 괜찮겠니? 가헌이가 나중에 돌아올때 함께 가자고 했잖아." 

      "형은 공부하느라 바쁘잖아요. 도와 줄수는 없을 망정 방해는 말아야죠."  

      웃는 얼굴로 말하며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현관에서 나가는 둘째의 모습에 모

      친은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과 다르든 어쨌든, 지금의 유헌의 모습은 그녀가 바

      라던 이상적은 아들 모형중 하나였던 것이다. 

      자신이 원했던 것은 싹싹하고, 할일 잘하고 영리한, 다른 이들의 앞에 내놓아도 손

      색이 없는 아들이지, 음침하고 다른 이들에게 답답하는 주는 아이가 아닌 것이다. 

      요즘들어 유헌이의 이상행동에 대해 남편과 가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

      을 알고 있지만, 어차피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는가. 

      손이 많이 가던 아이가 자라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에 순수하게 기뻐하며 그녀는 친

      구들과 쇼핑을 즐기기 위한 연락을 돌리기로 했다. 

      탁. 

      신호등을 건넌 유헌은 걸음을 빨리해 지하 보도로 들어갔다.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나오는 시간이 늦어졌다. 

      전에 병원에서 있었던 일로 가헌은 묘하게 하는 일마다 간섭을 해대 여간 귀찮은게 

      아니다. 자신은 더이상 과거 그의 말에 목을메던 아이가 아닌데, 가헌은 그것을 인

      정하기 싫어 자신에게 집착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유헌은 근래에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가헌도 그것을 눈치채고 있는지 오늘따라 더 집요하게 외출할 때 자신과 같이 가자

      며 방과후 기다리라 했다. 

      누가 외출하는데 혹을 붙이고 따라 갈까보냐. 혀를 차며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 

      유헌이지만, 더운 날씨에 뛰려니깐 아주 죽겠다. 

      턱에 맺힌 땀을 훔쳐내며 계단을 오른 유헌은 마침 앞에 서있던 택시에 올라타 XX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그동안 다른이들에게 튀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으려 계속 얌전히 지내다 기말고사

      가 끝난 지금, 모두의 신경이 널널해질때 쯤에 다시 병원으로 찾아가 그 미할라라

      는 여자를 만나보려 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묻고 싶은것도 알고싶은 것도 잔뜩있다. 

      그녀의 정체가 서쪽 여왕의 안식처에 잠든 그 여왕이라면 분명.... 

      "다시 돌아가는 방법도 알고 있을거야." 

      낮게 중얼거린 유헌은 입술을 깨물고 지나가는 밖에 시선을 주었다. 

      유헌이 탄 택시는 사거리에서 잠시 정차하다 유회하는 길목으로 들어갔다. 

      그 택시를 멀리 맥도널드에 앉아 주시하고 있던 금발의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테이블 위에 만원짜리 한장을 내려 놓았다. 

      "나 먼저 들어간다." 

      "뭐?" 

      한창 재미있게 대화 중이었는데, 갑자기 돌아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년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소녀는 이내 얼굴을 찌뿌렸다. 

      이 녀석은 왜 맨날 자신을 홀대하는 것인가. 

      이래뵈도 귀엽다고 꽤나 인기가 높은 자신을...! ! 

      도끼눈이 된 소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소년은 테이블 위에 만원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왜? 돈이 부족한거 같아?" 

      소년의 말에 소녀는 들고있던 컵을 우그러 뜨렸다. 

      ..........둔한 녀석! ! 

      "수고하세요." 

      잔돈을 받아 택시에서 내린 유헌은 병원 근처를 살피다 지하 주차장쪽으로 뛰어갔

      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갔다가 아는 얼굴을 만나기라도 하면 큰일이기에 계단으로 

      올라갈 생각인 것이다. 

      전에 일로 창에서 투신하려고 한 소년으로 이름이 알려진 것 같으니 행동하기가 상

      당히 조심스럽다. 어쩔수 없다고는 하나 점점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음에 입맛이 쓰다. 

      어두워 지는 기분을 털어내려는 듯이 고개를 내젖던 유헌은 계단으로 올라가는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동안 조사를 해본 결과 5층에 잠들어 있는 그녀의 집안은 꽤나 대단한 부자로, 왠

      만한 일에도 잘 놀라지 않게된 자신조차 잠시 숨을 들이켰으니 말이다. 

      집안의 규모만큼 병원에 투자하는 돈도 엄청나서, 그녀가 있는 층은 거의 전세를 

      내다싶이 해서 시간마다 보디가드가 문앞을 지키고 있다 한다. 처음엔 그런 짓을 

      하는 그들에 대해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던 병원 관계자들도 그게 근 20년동안 이어

      지자, 쓸데없는 데에 돈을 쓴다던가, 돈지랄을 한다던가 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쯤되면 뇌사시켜도 좋을 텐데라는 생각들을 하는 거다. 

      몇번 대화를 나눠보지 않았지만, 단 몇마디의 말로 그녀의 성격을 익히 알수 있었

      던 유헌은 미할라가 자신에 대해 그런 말이 돌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꽤나 난리를 

      쳐댈것이라고 짐작했지만... 

      과연 짐작뿐일까.    

      끼-익. 

      5층으로 통하는 문을 빼곰히 열어본 유헌은 곳곳마다 배치된 건장한 사내들으 모

      습에 혀를 찼다. 

      저렇게 경비가 상엄한데 어떻게 들어가란 말인지. 

      면회도 극히 제한되어 가족들 중에서도 소수의 인간들만이 병실에 들어갈수 있다

      하니 유헌 그가 저곳에 들어가려면 저 남자들을 전부 따돌리고 가야 한다는 말인

      데, 그것이 가능할리가 없다. 

      .....미친 사람인것 처럼 굴면 전처럼 그녀가 알아서 나타나지 않을까? 

      그것도 안 된다면...

      "........."

        

      계단 옆에 달려있는 소화전을 깨볼까하는 생각을 하던 유헌은 등을 두들이는 느낌

      에 놀라 얼굴을 돌렸다. 놀란 표정의 유헌이 꽤나 재미있는지 다른 손으로 입가를 

      가린 미할라가 어깨를 집은 손을 들어 반갑다는 듯이 흔든다.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유헌은 무척이나 안도한 표정으로 입을 열려고 했으나 자신

      의 입을 막으며 조용히 하라는 그녀의 태도에 말을 말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자신의 손을 잡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에 유헌은 그곳엔 자물쇠가 걸려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손안에서 순순히 열리는 커다란 열쇠의 모

      습에 입을 다물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요란을 떨어댔을 것이나 유헌은 당연한 일이라는 느낌조차 들

      어 그것에 대해 조금 놀랐다. 

      끼-익. 

      "와-아 시원하다." 

      "병실에서 나올수도 있는 거네요. 그것도 모르고 엄한일을 벌일려고 했잖아요." 

      "벌이기도 전에 밖으로 내쳐졌을 걸? 내 호위들은 꽤나 실력이 좋다고." 

      엄지를 들어 자신을 가르키며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에 고개를 저은 유헌은 옷상 끝

      으로 걸어가 철책에 등을 기댔다. 

      시원한 바람이 좋기는 했지만, 머리위에서 내리 쬐어지는 태양은 거부감이 든다. 

      미간을 찌뿌리는 유헌의 모습을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던 미할라는 기지개를 펴며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미소를 짓던 유헌은 이내 입

      을 열어 궁금한 점에 대해 물었다. 

      "병실이 아닌 곳에도 나타날수 있다면 저희 집에 올수도 있는 거잖아요." 

      "무리야. 그런거-" 

      "어째서요?" 

      유령이잖아요.라고 말하려던 유헌은 노려보는 그녀의 눈길에 입을 다물었다. 

      잊고 있었던 거지만, 그녀는 아무래도 자신의 마음속을 읽을수도 있는 것 같았다. 

      이 생각도 이미 알아차린 건지 팔장을 끼며 알면 알아서 기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

      는 그녀에게 유헌은 어색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다닐수 있는 곳은 병원내로 한정되어 있다고, 제일 안전한 곳은 육체가 있는 

      곳. 만약에 몸에 일이 생기면 바로 들어가야 하니 어쩔수가 없단 말야." 

      '난 오래살고 싶어.'라고 말하며 가슴을 두들이는 그 모습에 유헌은 웃어 보였다. 

      동료들에게나 짓는 듯한 그 호의적인 미소에 마찬가지로 웃어보인 마할라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자리에 주저 앉았다. 

      옆에 앉으라는 듯이 바닥을 두들이는 그녀의 행동에 유헌은 바닥을 털고 자리에 앉

      았다. 

      "어머, 깔끔한 척은- 내가 앉기 전에 손수건같은 걸 대줬으면 얼마나 좋아?" 

      "어련하시겠어요. 여왕님이." 

      "맞아, 맞아. 여왕님이-" 

      유헌의 말에 경쾌하게 웃어보인 마할라는 이내 입을 다물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갑자기 조용해진 분위기에 유헌도 입을 다물고 그녀의 옆얼굴을 응시했다. 

      한동안 하늘을 올려다 보던 두사람은 이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멎쩍은 미소를 

      지었다. 한동안 그렇게 실없이 시간을 때우던 둘은 힘들게 입을 여는 유헌으로 인

      해 조금 분위기가 변했다. 

      "나.. 내가 이상해 진거라고 생각했어요." 

      "............나야말로 더했지." 

      "정신을 차려보니, 모든거 원래대로 인데 나만이 이상해 져선..그들과 있었던 기억

      은 이렇게나 생생한데 그것을 증명할수 있는 것들은 머리속의 추억들 뿐...." 

      "자신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 하는데 자신을 대하는 주위 사람들은 반응은 바뀌어

      져 가고, 그것에 대해 일방적으로 매도 당하면 정말 당황스럽지." 

      한탄하는 듯한 마할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인 유헌은 이곳에 돌아오고 나서 처

      음으로 밝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 보았다. 

      "당신을 만나서 다행이예요. 칸들이 환상이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런 유헌을 가만히 바라보던 미할라는 미소짓는 입가를 조용히 열어 보았다. 

      "지금 네 눈앞에 있는 나도 네가 만들어낸 환상이라곤 생각치 않는 거야?" "............" 

      미할라의 말에 유헌의 안색이 급속도로 변한다. 

      아연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의 얼굴에 파문을 그리는 듯한 가슴의 통증을 느끼

      며 그녀는 손을 뻗어 유헌을 끌어 앉았다. 

      "미안- 농담했어." 

      화를 낼만도 하지만 눈가가 뜨거워 지는 것을 느끼며 유헌은 미할라의 등에 손을 

      둘렀다. 

      자신에게 매달리는 어린 녀석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녀는 얼굴을 돌려 유헌의 어깨

      에 기댔다. 이런 식으로 같은 문제에 직면한 사람과 만나 서로의 상처를 위로받을

      수 있을 거라는 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자신은 언제나 혼자, 남들에게 기대거나 약점보이는 것을 지독히도 굴욕으로 여겼

      으니, 지금의 상태가 될때까지 자신을 몰아 붙여 간것은 자기 지신일 거다. 그래서 

      이 소년도 자신같은 절차를 밟게하지 않기위해 일부러 이 곳으로 데려온 것인데... 

      유헌의 집안 사정과 그에 대한 주위의 평가에 대해 알게된 그녀는 후회했다. 

      그런 곳이라지만 유헌이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머물게 해주는 것을... 

      "돌아가게 해줄수도 있어." 

      "........." 

      "하지만 돌아가서 네가 뭘 할수 있다는 거야. 네가 정말로 그들에게 도움을 줄수 있

      을거라고 생각해? 자신이 있어?" 

      "..........! 나.. 난." 

      "그들에게 짐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 

      눈가가 붉어진채 입술을 떠는 유헌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미할라는 나직히 중얼 거

      렸다.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서 알려줘. 너 하나쯤은 내가 책임지고 넘

      겨줄수 있으니." 

      안고있던 팔을 풀어 집어던지는 듯한 모션을 취해보인 그녀는 장난스럽게 한쪽 눈

      을 찡긋해 보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미소를 지은 유헌은 붉어진 눈가를 보이는 

      것이 부끄럽다는 듯이 손으로 눈두덩이를 꾹꾹 눌렀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미할라는 앞으로 걸어가 한바퀴 돌아보이며 양손을 뒤로 깍지

      끼고 유헌에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이번엔 몸도 함께야. 남아있는 자들이 부제한 네 자리에 얼마나 상처를 입

      을지도 생각해야해." 

      "....나 하나쯤 사라진다고 슬퍼할 사람들이 아니예요." 

      언제나 자신을 쓸모 없다는 듯이 바라보던 아버지와, 잘해 주려고 했으나 일이 생

      길때마다 귀찮다며 마다하던 어머니. 

      쌍둥이지만 그를 바라는 자신에 마음에 단 조각의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던 가헌. 

      자신을 좋아한다거나 좋아했던 사람들이 없는 이곳에서 떠난다 해도 자신은 전혀 

      슬퍼하거나 외로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유헌을 가만히 바라보던 미할라는 등뒤 옥상으로 통하는 문쪽을 바라보며 어

      쩔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갈께.'라는 말을 남기곤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난대없이 돌아 간다는 말을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그녀의 모습에 당황한 

      유헌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서있는 곳으로 뛰어 갔으나, 몸이 없는 사람이니 

      만큼 서있던 자리에 흔적도 없다. 

      바람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보이며 머리를 긁적이던 유헌은 발걸음 소리에 고

      개를 돌려 보였다. 

      "여-어."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한손을 들고 미소를 짓어 보이는 금발 소년의 모습에 

      유헌은 미간을 찌뿌렸다. 그런 그의 표정을 확인하며 들고있던 손을 내려 주머니에 

      꼽은 금발은 휘파람을 불며 옥상안으로 들어와 주변을 살펴 보았다. 

      탈선된 환경속에서 지낸 그는 주변의 잡다한 물건들과 정리되지 않은 바닥에 이곳

      이 출입금지 장소였다는 것을 금방 알아 차렸다. 

      경계하는 눈빛을 보내는 유헌을 향해 이가 들어나도록 웃어보인 그는 그쪽으로 다

      가가 소년에게 아는 척을 했다. 

      "유헌이지? 난 정현이라고 해. 반갑다. 같은 학교던데 너 꽤나 유명하더라." "............" 

      "나도 꽤나 유명한데, 너 나 알아? 난 밑에 자식들이 지랄발광을 떨어대서 널 알고

      있는데 넌 날 모르면 것도 꽤나 서글픈 일 아니냐?" 

      갑작스럽게 나타나 이것저것 말해대는 소년의 모습에 유헌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

      다. 그렇다고 대답을 해줄만큼 영양가 있는 말들도 아니다. 

      딱딱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유현의 모습에 정현은 당황했는지 머리를 

      뒤로 넘기며 '에-또, 그리고-'라며 눈앞의 소년의 대화에 끌어들기에 위해 꽤나 고

      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같은 학교에, 우명인, 거기다 밑에 있던 자식들이란 말에 정현이라는 눈앞의 소년

      이 어느 쪽에 속한 사람인지 감으로 알아차린 유헌은 표정을 굳히며 그를 지나쳐 

      옥상에서 내려왔다. 

      저번 일진 녀석들에 한 행동을 보복하려 온 거라면 굳이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  

      "어-라? 잠깐 나 아직 할말 있는데.." 

      탁탁탁. 

      "이.이봐! !" 

      모처럼 찾아와서 인사를 건내는 데 그냥 가버리다니.. 

      자신의 황당한 등장엔 생각치 않고 유헌의 반응에 대해서만 당황해 하던 정현은 벌

      써 저만치 내려가버린 유헌의 뒤를 따랐다. 

      다른 녀석들이 저런 행동을 했다면 바로 다리뼈를 부려뜨렸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유헌의 등에 붙은 정현은 손을 뻗었다. 

      "..! !" 

      자신의 어깨를 붙잡는 정현이라는 소년에게 짜증스러운 시선을 던지던 유헌은 팔

      을 들어 어깨에 올려진 손을 잡아 그대로 비틀었다. 

      "..뭐..!!" 

      손을 비트는 엄청난 악력에 눈을 크게 뜬 정현은 다른 손으로 유헌의 어깨를 잡아 

      있는 힘껏 뒤로 밀며 간신히 자신의 팔을 빼내었다. 

      욱신거리는 팔을 주무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자신을 바라보는 금발의 모습에 유

      헌은 점점 마이너로 치닫는 기분을 느꼈다. 

      왜 다들 자신을 저런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지그시 입술을 깨문 유헌은 몸을 돌려 미끄러지듯이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갑자기 팔을 잡아 비틀려다 실패하자 그대로 계단 밑으로 뛰어 내려가는 유헌을 바

      라보던 정현은 잡고 있던 팔에 손을 떼고 퍼렇게 죽어 손자국 모양이 된 팔을 들어 

      보였다. 

      잡혀서 빨갛게 된 자국은 봤어도 이런 멍자욱같은 손자국이 생긴 것은 처음이다. 

      저런 여리여리 한 모습과는 다르게 힘이 쎈건가 아니면 요새 정학을 먹는 동안 밖

      에 돌아 다니지 않아 자신이 허약해진 건가하고 고심하던 정현은 바지 주머니에서 

      울리는 요란한 폰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 

      "하-아."

      지하 주차장으로 뛰어 들어가 밖으로 나온 유헌은 숨을 고르며 턱에 흘러내린 땀을 

      훔쳐냈다. 

      금발의 손길이 닿았던 어깨를 털어내며 몇걸음 옮기던 그는 5층 창가에서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미할라의 모습을 발견하곤 반가운 얼굴로 마주 손을 흔들다, 맞

      은 편에서 오는 모녀가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자 헛기침을 하며 그곳에서 벗어났

      다.

      미할라가 자신의 저쪽 세계로 보내 줄지도 모른다. 

      묘한 두근거림에 상기된 표정을 짓던 그는 이내 떠오르는 가족들의 얼굴에 안색을 

      어둡게 가라 앉혔다. 

      그렇게 정이 넘치는 가족들 아니다. 

      그러나 싫어하는 것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가족들. 

      이번에 정신뿐만이 아니라 육체도 가게 된다면, 자신은 이쪽 세계에서 실종 비스무

      리한 것으로 처리가 되는 것이다. 

      ..................남아있는 가족들의 상처인가. 

      마침 앞에서 멈춘 택시에 오른 유헌은 좀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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