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언제쯤 되면 정신을 차리는 걸까요?"
"조만간 눈을 뜰거예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도대체 뭘 부족하게 해줬다고 그런 일들을....!"
감정이 격해져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보이는 중년의 여성을 모습을 내려다 보던 의
사는 그녀의 등뒤 반쯤 열린 문사이로 누워있는 소년의 얼굴에 시선을 주었다.
그런 그에게 머물던 시선은 그의 옆에 앉아있는 꼭 닮은 얼굴로 옮겨진다.
단정한 외모와 일자로 다물어진 입술은 그의 성격을 알려주는 것같았으나 아쉽게
도 그의 한쪽눈은 안대에 가려져 있었다.
어떤 경위로 소년의 한쪽눈이 그렇게 되었는가와 누워있는 소년이 왜 그렇게 되었
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고있는 의사는 지끈거리는 미간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언제가 이런일이 벌어질 줄 내심 알고 있었던 것이다.
두통으로 상담을 하러오던 소년의 불안정한 얼굴을 떠오르던 그는 이내 고개를 저
으며 손수건을 적시는 부인의 어깨를 두들였다.
"그렇게 약한 아이가 아니니 믿고 좀더 기다려 보지요."
".......네.. 부탁드립니다."
의사의 말이 위로가 되었는지 눈가의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은 부인은 단정하게 허
리를 굽혔다. 나이가 먹어도 여전한 그 미모에 감탄의 빛을 떠올리던 그는 이내 헛
기침을 하며 자리를 피했다.
멀어지는 의사의 등을 바라보던 부인은 호흡을 고르며 아들들이 있는 방안으로 들
어갔다. 싸늘하게 식은 방이 불길한 느낌이 들게해 그녀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첫째에게 다가갔다.
"들어가서 쉬렴. 너도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잖니."
"아뇨. 괜찮습니다. 어머니야 말로 피곤하신 것으니 들어가서 쉬세요."
".....그럴까?"
"깨어나면 연락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색이 안 좋으시네요."
자리에서 일어난 소년은 자신의 어머니를 부축했다.
듬직한 아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부인은 다시금 울적해 지는 기분에 호흡
을 고르며 몸을 때내었다.
부탁한다는 말을 아들에게 남긴 그녀는 더 이상 그곳에 있다간 하루종일 우울한 기
분으로 최악을 지낼것 같아 미련없이 몸을 돌려 병실에서 나왔다.
탁-
나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확인한 소년은 한숨을 쉬며 아직도 자고있는 동생을 내
려다 보았다. 저도 모르게 안대를 맨 상처를 쓰다듬던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의자
에 앉아 읽고있던 책을 펴들었다.
원래부터 심성이 약한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에 죄책감을 느끼고 한강에 빠
질줄은 몰랐다. 근처의 사람에 의해 목격되 바로 구출되지 않았다면 비가와서 수위
가 높아진 물살에 휩쓸려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땐 등에 한기가 드는 것
을 느꼈었다.
쌍둥이라지만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던 아이였는데 어째서 그런 기분이 든건지
아직도 의아스럽다.
그래서 일지도 모른다.
자신답지 않게 그의 병수발을 들고 있는 것은....
사락.
"............."
다 읽은 페이지의 다음을 넘기려 고개를 돌리던 그는 누워있는 동생의 손가락이 미
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
숨을 죽인 그는 들고있던 책을 내려놓으며 동생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댔
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보이는 손가락의 움직임과 감은 눈꺼풀위로 보이는 동공
의 움직임을 확인한 그는 간호사를 부르기 위해 침실위에 걸려있던 벨을 눌렀다.
간호사를 기다리는 동안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누워있는 동생의 얼굴을 쓰다듬은
그는 손바닥에 느껴지는 축축함에 미간을 찌뿌렸다.
............눈물..?
손바닥에 묻은 액체를 의아하게 바라보던 그는 동생의 입술이 달싹거리자 무슨 말
을 하는지 듣기위해 몸을 앞으로 숙였다.
한동안 다물어진 입술은 이내 다시 벌어져 한글자의 단어를 내뱉었다.
"........칸..."
"..........."
".....! .칸...어디에...."
무척이나 괴로운 듯이 미간을 찌뿌린 그가 또다시 눈물을 흘리자 서있던 소년은 입
술을 깨물며 누워있는 동생의 볼을 가볍게 두들였다.
의식이 없는 사람을 억지로 깨우는게 위험하고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
지만, 지금 동생의 상태가 무척이나 불안해 어서 눈을 뜨게 하고 싶었다.
숫기없고 자신에 대해 열등감을 품고있는 동생이기는 했지만, 결코 눈물을 보이는
아이는 아니다.
그런 동생이 이런 무방비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다니...
"정신 차려."
"....칸..."
"이봐. 그만 일어나봐!"
"......카..칸..."
계속해서 한 단어만을 내뱉는 모습에 미간을 찌뿌린 소년은 호흡을 들이쉬고 단번
에 내뱉었다.
"정신차려! ! !"
병실이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친 그는 스스로의 행동에 당황하며 입을 다물었지만
덕분에 누워있던 동생이 조금이나마 눈을 뜨자 반색을 띄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정신이 드는 거야?"
"............"
"나다. 내가 누군지 알아 보겠어?"
가흔은 자신과 닮은 얼굴이 어째서 이런곳에 있는 건가하고 생각했다.
멍하니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에 불안을 느낀건지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이 좀더 앞
으로 다가와 자신의 볼을 두들인다.
그에 따라 수면밑에 가라앉았던 기억들이 하나 둘씩. 점점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애써 잊고 싶었던 기억들이 점차 뚜렷해 진다.
".........형.."
자신의 지칭하는 동생의 말에 소년은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이내 웃어보이는 그는 누워있는 동생의 볼을 쓰다듬으며 최대한 다정한 음성을 내
뱉었다. 스스로가 듣기에도 거북한 이런 부드러운 음성은 그로써도 처음 들어보는
자신의 목소리 였다.
"아무 걱정하지 마라. 부모님도 나도 화내지 않아.
내눈이 이렇게 된건 다 사고였을 뿐이야."
".....형.."
"울지마. 울거없어. 다 괜찮은 거다. 알겠지?"
가흔은 눈을 감았다.
눈앞의 소년이 누구인지 자신이 누구인지 단숨에 기억이 난다.
계속해서 흘러넘치는 눈물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눈앞의 형이라는 소년으로 그는
전혀 그답지 않게 떠듬대며 자신의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 주곤 연신 괜찮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이 앵무새같다고 생각하며 피식하고 웃어보인 가흔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동생의 모습에 당황하며 다시 눕히려는 형의 어깨를 밀친 가흔은 자리에 앉아
자세를 단정히했다. 전에는 그토록 어렵게만 생각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왜 이
렇게나 아무 느낌도 안드는 걸까.
한번도 그의 손길을 밀쳐낸 적이 없었다.
그것을 상대도 느낀 것인지 묘하게 불안한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을
직시하며 가흔은 입술을 열었다.
"난 괜찮으니깐. 걱정할 필요없어."
".....너."
"정말이야. 정말 괜찮아."
가흔은 눈가에 묻은 눈물을 닦으며 형에게 조금 웃어 보였다.
"정말로 괜찮아. 가헌형."
유헌은 가헌에게 웃어 보였다.
그 미소에 묘한 표정을 지은 가헌은 뭐라 입을 열려고 했으나 문을 열고 들어 닥치
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에 밀려 뒤로 물러날수 밖에 없었다.
얌전히 의사의 진찰을 받는 유헌의 모습에 가헌은 알수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기분이 어떠니?"
"좋아요. 상쾌하고. 점심은 맛있더군요."
"그래? 난 밖에서 사먹었는데 꽤나 최악이었단다."
"가시던 데나 갈것이지 새로운 걸 먹는답시고 이상한 곳에 간거예요?"
"나도 나름대로 생각하고 간건데.... 그런 식으로 나오니. 에휴-"
장난스럽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젖는 의사의 모습에 유헌은 미소를 지었다.
전부터 고민이나 잦은 두통이 재발할때마다 카운셀링을 받던 믿을만한 사람이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유헌의 눈가를 확인하며 마주 웃어보인 의사는 가슴에 꼽고있
던 펜을 빼들고 책상앞에 놓아진 챠트를 바로했다.
"근 일주일동안 잠만 줄창자서. 당분간 잠자지 않아도 버티겠는 걸?"
".........잠은 자야돼요. 꿈을 꿔야 하니깐."
씁쓸하게 말하는 음성에 의사를 고개를 들어 눈앞의 소년을 바라 보았다.
자신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조용히 미소짓고 있는 소년은 확실히 전과는 다른 분위
기를 풍기고 있었다.
전에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려하고 친한 자신과도 둘만이 되면 몸을 웅크리곤 했
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편안한 상태로 자신의 눈을 직시하고 대화를 이끌어가고 있
었다.
가볍게 던진 말에 농을 건내는 유헌이라니..
10일전에 자신에게 그런 말을 했다면 그는 웃기지 말라는 대답을 들려줬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하고 서슴없이 대화하는 유헌의 모습을 단순히 잘못 본것으로 치부하
고 병원내를 돌아 다녔던 그는 소년의 변화를 인정해야만 했다.
그것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지금부터 알아 볼일이고....
"잠자는 동안. 무슨 꿈을 꾸셨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
"그다지 아무것도 꾸지 않았어요."
칸이라는 소년을 만나 여기저기 알수없는 세계 각지를 돌아 다녔어요.
"그런 것 치곤 표정이 너무 부드러워 졌어. 이-해봐라.
치아는 고른지 확인해 봐야겠다."
"오늘도 점심을 맛있게 먹었으니 제 치아는 무사한 상태겠죠."
오브가 건내준 귀걸이를 하고 그곳 사람들과 대화를 할수도 있었어요.
노웬이라는 사람도 젤이라는 공간이동을 할줄아는 굉장한 여자를 만났어요. 에스
는 중간에 나쁜 사람에게 잡혀갔지만, 그의 누님이 있으니 조만간 구해낼 거예요.
"주변에서 네가 꽤나 변했다고 들었는데, 지금의 모습을 보니 인정할수 밖에 없겠
구나. 어때? 변한 자신에 대한 소감은?"
"그럭저럭. 나쁘진 않네요."
요크발이라는 사람을 만났어요. 붉은 머리에 굉장한 미형이죠.
게다가 황제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 아무래도 칸의 동생인것 같아요.
칸은 제가 아무것도 모르기를 바라는 것 같지만 주위에선 저에게 진실을 하나씩 알
려줘요. 이러다간 칸이 말하기도 전에 모든 것을 알수 있을 것 같요.
나중에 다시 그를 만나면 이렇게 말해 줄거예요.
지금 당장 당신의 모든 것을 말해줘-라고.
"그래도 주변에선 어색해 하지 않니?"
"본인인 제가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니 주변에서도 그려려니 하더군요."
드래곤이라는 존재를 만나기도 했어요.
용은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유크렌이란 이름을 지닌 아이는 굉장히 사랑스러워
요. 근래 용과 같이 다니는 오브라는 사람은 화장술이 뛰어나서 노파로도 젊은 여
자로도 변할수가 없어요. 하지만 그 본판은 무척이나 평범하게 생겼죠.
".....확실히 건강해 보이는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좋구나."
"고맙습니다."
그곳에선 전 가흔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었어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채 왜 그런 이름 지니게 된 걸까요. 아마도 형에 대한 마음
이 너무도 커서 그런 거라곤 생각하곤 있지만.....
이젠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유헌은 자기이 격은 모든일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을 들었을 그으 반응이 뻔하기에 가만히 웃고있을 수밖에 없다. 자신이
라도 다른 이가 그런 말들을 한다면 서슴없이 이랬겠지.
-헛소리 하지마.라고.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 일단 뇌파검사와 엑스레이를 한번 찍어 보자."
".....피곤하니 일찍 끝내 주세요."
"걱정하지 마라."
챠트를 들고 일어서는 젊은 의사의 얼굴을 바라보던 유헌의 입술이 작게 달싹여 졌
다. 그러나 등을 돌리고 간호사와 대화를 나누며 솜씨좋게 챠트위의 항목들을 체크
하던 의사는 미쳐 그의 그런 표정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간호사 기계좀 움직여놔."
"네, 선생님."
좀더 변한 유헌과의 유쾌한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다른 방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많다는 것은 실력을 인정받아 기쁜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좋은 시간을 지닐수 없게 되었다는 아쉬움을 주기도 한다.
여전히 웃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헌에게 조금있다 간호사가 부르며 나가라
는 말을 남기며 펜을 윗주머니 꼽고 방에서 나왔다.
"그럼 있다 보자."
..............전 사람을 죽였어요.
탁.
닫혀진 문에 시선을 주던 유헌은 갑자기 밀어 닥치는 피로함에 눈을 감았다.
자신이 있는 이곳, 칸과 머물던 그곳. 어느쪽이 진실인지 알수가 없다.
엄습해 오는 두통에 미간을 찡그리며 손을 들어 이마를 집은 유헌은 책상에 올려져
있던 거울속에 비치는 얼굴을 가만히 바라 보았다.
유헌.
유헌의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 앉았다.
그후로 검사를 마친 유헌은 무거운 걸음걸이로 병실로 향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가 칸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아보고 싶지
만, 시합에서 형의 눈을 다치게 하고 그뒤로 한강에 빠진 일에 대해서 자신의 아버
지가 노발대발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한간엔 자신을 정신병동에 집어 넣으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그것을 간신히 말려 자
신이 아직 일반병동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도 들었다.
눈앞이 흐려지는 느낌에 유헌은 고개를 털며 벽에 등을 기댔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바라보던 그대로 그곳에 주저 앉았다.
"........아무것도 모르겠어."
그후로 몇번의 테스트를 더 거친 유헌은 마지막날 다시금 전에 왔던 방에 앉아있었
다. 어지간히도 불안한건지 아버지와 병원 관계자들은 자신을 쉬이 내보려 주지 않
으려 한다.
그동안 자신이 했던 일들을 생각해 보면 당연할수도 있겠지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유헌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의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의자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유헌에게 날씨 좋구나라는 말을 건낸 의사는 대답이
없음에도 민망해 하지 않고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일단 결과적으로 네 상태는 무척이나 양호하다고 나왔다. 육체는 물론이거니와 정
신적으로도 무척이나 건강한 상태지."
"....그럼 이만 가도 되나요?"
"물론 네가 원하기만 하면 당장에라도 갈수가 있어."
의사에 얼굴을 돌리고 있던 유헌은 자세를 바로하고 책상위에 깍지낀 두손을 올리
고 눈앞의 남자를 바라 보았다.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정신과 상담도 받았고, 결과는 양호하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버지에게도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 주세요."
".......물론이다."
"안녕히 계시요."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가는 유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의사는
그가 나가자 긴장한 근육을 풀며 눈가를 주물렀다. 목을 주무르며 책상위에 올려진
파일들을 열어본 그는 일정한 곡선을 그리는 유헌의 상태에 시선을 주었다.
확실히 정상적인 상태이나 과연 아까 그 소년이 정말로 유헌이라고 할수가 있을
까? 자신이 아는 유헌은 예의 바르고, 숫기가 없기는 하나 할말은 하고 당찬 구석도
있는 아이였다.
..........저런 가라앉는 눈을 가진 소년이 아니다.
물론 어두운 집안과 어버지의 가중한 기대, 월등히 뛰어난 형에 대한 내재적인 컴
플렉스로 인한 두통으로 가끔 카운셀러를 받기도 했지만....
미간을 주무르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그런 그의 뒤로 간호사가 따른다.
"선생님 다음 환자분이 기다리시는 데요."
"차 한잔만 하고 돌아오지."
대략 15일정도 전에 가흔과 유헌의 검도 결승전이있었다.
그때 유헌의 의도가 아니였음에도 가헌은 그에의해 한쪽눈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
었고, 실명이 될지도 모른다는 소리가 있었지만, 유능한 외국의사가 다행히 국내에
체류하고 있어 심각한 상황은 모면할수 있었다.
그때 유헌은 극도의 불안증세를 보였는데, 부친의 억압에 의해 검사한 테스트에서
도 상당히 심각한 히스테릭한 결과를 나타냈다.
우울증과 약간의 인격불리 상태를 보여주긴 했지만, 아직 어린 나이에 충격을 받았
기에 그런거니 하고 넘어갔던 그는 그날 저녁 유헌이 한강에 몸을 던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대로 자신의 머리를 벽에 박고 싶었다.
어릴적부터의 상담을 통해 게중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그의 상태를 제대
로 파악하지 못해 그런 일이 벌어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유헌이 일어나기만 하면 당장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려한 그는 당사자가 저런 반
응을 보이니 마땅히 할말이 없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것같아.."
파일을 덮은 그는 입술을 깨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창가에 기대 병원에서 멀어지는 유헌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뜬 그는 수면위로 떠오
르는 과거의 일들에 흩어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전에 유헌은 자신에게 '가헌이가 되고 싶었요...'라고 했었지. 그때 가헌은
어떤 애송이 아가씨와 약혼한 상태였는데, 그때 자신은 유헌이 형의 약혼녀에게 반
해서 그런 일을 벌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실제로 국내 굴지의 기업 강회장의 딸인 약혼녀는 유헌이 한강으로 가기전에 자신
에게 고백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시합전에 가헌을 위해 져달라는 말을 해서
그가 그런 행동을 한게 아닐까하고 굉장히 피로한 안색으로 입을 열었었다.
확실히 그게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
왠지 모르지만 무척이나 불안한 기분이 든다.
"다녀왔습니다."
초조하게 거실을 돌아 다니며 유현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그의 어머니는 들려
오는 목소리에 안색을 굳히며 현관쪽으로 걸어갔다.
양손에 상당량의 책을 들고 들어오는 둘째아들의 모습에 미간을 살며시 접은 그녀
는 양손을 배위에 올려둔채 입술을 열었다.
"뭐라니?"
"아무 이상없데요. 정상적인 수치가 나왔나 봐요. 아, 어머니 저 저녁먹고 왔으니깐
위로 올라오지 마세요."
"그...그래."
병원에서의 결과가 염려했던 것도 사실이기에 안도의 숨을 내쉰 그녀는 자신을 밀
치고 위로 올라가는 유헌의 뒷모습은 미간을 접었다. 낑낑대는 그를 도와주려던 가
정부는 그러나 유헌의 만류에 손을 떼고 물러 날수밖에 없었다.
손에 묻은 물기를 앞치마에 닦으며 부인에게 다가온 그녀는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
를 갸웃 거렸다.
"둘째 도련님께서.. 상당히 변하신 것 같네요."
"아줌마도 그렇게 느껴요? 실은 저도 저 애가 전같이 느껴지지 않아서..."
걱정할 필요없이 똑 부러지던 첫째에 비해 불안하기만 둘째였다.
그런 아이가 일주일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더니 완전히는 아니지만 전과는 확연
히 틀린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었다.
말을 할땐 시선을 피하고 우물거려서 사람을 답답하게 하던 아이였는데, 방금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모습은..... 근래에 여러가지 일들이 생겨
그의 성격에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이 있기는 했지만, 어머니인 그녀
로선 아들의 갑작스러운 변모가 반갑지만은 않았다.
확실히 전처럼 손이 가지않는 점은 확실히 좋지만 서도...
"둘째 도련님 저녁은 어쩔까요?"
"...먹고 왔대잖아요. 늦은 저녁에 간식이나 올려 주세요."
한손을 볼에 댄채로 고개를 갸웃하던 그녀는 아무도 들어올 사람이 없는 저녁에 모
처럼 친구들을 만나자고 생각했다.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안주인의 모습에 오늘도 저녁을 차릴 필요가 없음을 깨닭은
가정부는 준비해 둔 요리재료들을 냉장고에 넣어두기 위해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
다.
탁.
헌책방과 도서관에서 빌려온 각종 서적들을 방바닥에 널려둔 유헌은 가운데에 자
리를 잡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책을 빼들었다.
판타지 서적에서 부터 외국 번역소설. 거기에 알수없는 주문이나 저주가 적힌 책과
기억에 남아있는 언어와 비슷한 글자를 지닌 책들을 전부 널려두니 상당한 양이 되
었다.
밤을 새도 다 읽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읽던 책에 손을 때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자 가헌과의 대화 그리고 몰아닥친 간호사들과 의사들에 의
해 자신이 일주일간 의식불명의 상태라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의 회복훈련과 여러가지 테스트를 통하는 와중에도 머리속에서 사라지지 않
은 수많은 인물들에 유헌은 혼란스러워 했다.
칸이라는 존재가 정말로 있는 것인가, 노웬과 라프헨은, 에스는 오브는. 그리고 용
이라는 유크렌은?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알려준 그 황제라는 자는. 마지막에 안아
주었던 그 검은 머리의 소녀는??
전부 의식이 없던 동안 꾸었던 꿈일까?
뭐가 뭔지 알수없는 가운데 유헌은 미친듯이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왕가에 대해. 미지의 대륙에 대해. 인간의 무의식에 관한 영영에서 다른 세계를 체
험했다던 사람들의 수기까지. 그것이 원문이라면 일일이 번역하는 수고도 피하지
않았다.
그러나 입원과 퇴원하는 동안 쏫아 부었던 근 이주간의 노력은 헛되게도 유헌에게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았다.
좌절하는 가운데 정말로 정신이 이상해진 건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신은 형의 검도시합 전부터 자신이 가헌이고 형이 유헌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지 않았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합을 하고, 형의 눈을 다
치게 하고, 그대로 한강에 투신하고.... .........그리고 그들을 만났다.
유헌이 아닌 가헌이라는 이름으로.
털썩.
미친듯이 책읽기에 몰두하던 유헌은 어느새 방안이 어두워 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드는 공복감에 침대위에 멍하니 누워있던 유헌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문을 열기전 시계를 보니 자신은 집에 들어와서 거진 5시간 동안 가만히 앉
아 책을 읽었던 모양이다.
이 정성으로 공부를 했다면 천재소리를 들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피식하고 웃
어보인 유헌은 주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올라오는 가헌을 발견하곤 걸음을 멈
췄다.
".......들어와 있었구나."
"아아- 형은 지금 학교에서 오는 중?"
"야간자율이 남아 있어서.. 병원에서는 뭐라고 해?"
또다시 그것을 묻는 건가.
전이라면 아무리 불쾌한 질문이라도 말을 걸어주면 기쁜듯이 답하던 유헌이 미간
을 찌뿌리는 모습에 가헌은 자신의 안색이 굳는 것을 느꼈다. 가헌이 어떤 표정을
짓든 알지 못하는 유헌은 그를 지나치며 괜찮다는 뜻으로 엄지를 세워 보았다.
이런 곳에서 잡담을 하는 것보단 내려가서 뭐든지 먹고 다시 올라가 봐야 한다.
그런 유헌의 모습을 바라보던 가헌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잡았
다.
"왜?"
묻는 말에 가헌은 왜 자신이 유헌을 잡았는지에 대해 이유를 말하려 했으니 마땅히
할말이 없었다.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 반사적으로 손이 나갔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곤란하게 찡그려지는 가헌의 얼굴을 바라보던 유헌은 머리를 긁적이며 어깨에 올
려진 그의 손을 치워냈다.
"라면 끓일 테니깐. 배고프면 내려와서 먹어. 3개 끓인다?"
"......그래."
"빨리 씻고 내려와. 불면 맛없어."
한쪽 눈썹을 올리며 말하고 계단을 내려가는 유헌의 뒷모습에 가헌도 등을 돌려 계
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쪽눈에 여전히 안대를 하고 있는 탓인지 걸음을 옮기기가 불편하다.
탁.
방문을 닫고 가방을 의자 위에 올려둔 가헌은 교복 넥타이를 푸르다 책상위에 올려
진 사진에 시선을 주었다. 고교 입합 당시의 사진으로 무표정으로 이쪽으로 바라보
는 자신의 옆에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유헌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이 기억하는 유헌은 언제나 이런 모습이었다.
귀찮다는 듯이 말을 걸어줘도 굉장히 기쁜듯이 웃고, 아무 생각없이 건낸 물건에
집착하던 약간은 이상한 동생. 인스턴트를 먹지 않은 자신을 위해 하지도 못하는
요리를 하기위해 노력하던.... 그런 그가.
-라면 끓일 테니깐, 배고프면 내려와서 먹어.
스륵.
사진을 다시 책상위에 올려둔 가헌은 풀어진 넥타이를 걸고 셔츠 단추를 풀었다.
왠지 모르지만 가슴속으로 스산한 바람이 부는 것 같다.
"다음 주부터 나오라고?"
"병원에서도 완치됐다고 하고, 슬슬 나오는게 다음 시험준비를 위해서도 좋을 거
야."
"......흐음."
고개를 저으며 다시 라면을 먹기 시작하는 유헌의 모습을 바라보던 가헌은 젖가락
에 걸려있는 면발에 시선을 주다 한입 먹었다.
입안에 퍼지는 맛에 미간을 찡그린 그는 입안에 있던 것을 물과 함께 넘기고 한그
릇을 다 비워가는 유헌에게 시선을 주었다.
........보면 볼수로- 전과 달라 보인다.
미간을 접은채로 자신을 바라보는 형의 모습에 똑같이 미간을 찡그린 유헌은 자신
의 얼굴을 쓰다듬어 보았다. 뭔가 묻었냐는 듯한 물음이 담신 눈동자에 고개를 돌
린 가헌은 다시 라면을 먹는 소리가 들리자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역시나 달랐다.
자신이 아는 유헌이라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고나서 저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행
동하는 것이 가능한 아이가 아니다. 초등학교 때 대신해서 넘어진 상처때문에 일주
일 내내 죄인처럼 굴던 답답한 아이였다. 아직도 낳지 않아 안대를 하고 있는 자신
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앞에서 음식을 먹을만한 아이가 아니다.
"...........상당히 변했구나."
탁.
나지막한 가헌의 말에 들고있던 젓가락을 놓은 유헌은 그릇을 들어 국물을 마셨다.
몇모금 넘기고 그릇을 내려놓은 그는 잔의 물을 비우고 나서야 눈앞의 사람에게 시
선을 돌렸다. 역시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전같으면 눈앞의 존재를 위해 모든 신경을 곤두서던 자신이 이렇게 마주해도 아무
렇지도 않은 모습을 보인다는 것에 스스로도 의외일 정도로 놀라고 있다.
자기 자신도 이러한데 주변 사람들은 얼마나 적응이 안 되겠는가.
"일주일간 혼수상태 였으니깐. 뇌세포가 좀 죽은 모양이야."
실없는 말에 미간을 찌뿌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저 서늘한 눈빛에 얼마나 상처를 받
았던가. 다가가고 싶어서, 좀더 가까이하고 공유하고 싶어서 접근할때마다 그는 저
런 눈빛으로 자신을 밀어내곤 했던 것이다.
너와 난 함게 어울릴수 없는 존재라고, 입으로 말하지 않지만 온몸으로 발산하는
그 의미조차 알아먹지 못할 정도로 자신은 바보가 아니였다.
그래서 미쳐갔던 거야.
아무리 두들여도 대답이 없으니 속에서부터 곪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더이
상 그런 바보같은 짓은 안할거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처받는
일들은 이젠 안한다.
"더이상 어린애가 아니라는 거지."
"..........."
"눈의 정말 미안했어. 앞으로 갚아나갈 테니깐.
나 바빠서 이만 일어날테니, 먹고 올라가."
알수없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가헌에게 웃어보인 유헌은 그릇을 치워 싱크
대 위에 올려놓은 다음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다른 일로 시간을 허비할 새가 없었다.
지금 자신의 머리속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존재, 일을 마무리하기 전까진 아마도
자신은 저곳에서처럼 이 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붕뜨는 존재로 살아갈터이다.
타다닥.
담임에게 유헌의 일을 부탁받은 부회장은 회장이자 유헌의 형인 가헌은 찾기위해
교내 건물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똑같은 얼굴이긴 하지만 암울하고 저능아같이 구는 유헌과 함께있는 것이 꽤난 껄
끌러워 그의 형인 가헌에게 의논을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괜찮다면 그의 형에게
자신의 일을 넘기고도 싶었다.
물론 유헌에 의해 한쪽눈이 다친 그가 그 일을 선뜻 맡아줄지가 의문이지만.....
더운 날씨는 조금만 뛰어도 땀이 차게 만든다.
숨을 고르며 계속해서 주위를 둘려보던 그녀는 계단을 오르는 단정한 외모를 발견
하곤 손을 흔들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가헌아--!!"
" ? "
"정말 잘 만났다. 안 그래도 찾고 있는 중이었거든."
다짜고짜 자신을 잡고 말을 하는 여학생의 모습에 유헌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눈앞에 예쁘장하게 생긴 이 사람은 같은 반의 부회장으로 꽤
나 성격이 안좋아 자신을 미워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렇게 팔을 잡고 난대없이 형의 이름을 부르다니.
그런 유헌의 표정을 눈치채지 못한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이 자신의 가슴을 두들이
며 입을 열었다.
"담임한테 말좀해봐. 나한테 유헌을 맡으라는 거 있지? 그 지진아에 말도 잘 못하
는 멍청이랑 잠시만 같이있어도 미치겠는데. 짜증나 죽겠단 말야."
".............."
"그러니깐 말인데.. 가헌이 네가.."
평소같이 하는 말에 짧은 문장으로 답해주던 가흔이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는 것이
이상하긴 했지만, 별다른 어색함을 느끼지 않고 웃으며 고개를 들던 소녀는 자신을
내려다 보는 검은 두개의 눈동자에 그제서야 이질감을 눈치챈 모양인지 안색을 굳
히며 입을 다문다.
가헌은 한쪽눈은 안대가 차여져 있다.
팔을 잡은채로 멍하니 입을 벌리는 소녀를 내려다 보며 유헌은 무감한 목소리로 입
을 열었다.
"싫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돼. 담인한테는 내가 직접말해 둘테니."
"..........너..."
"있다 보자."
잡힌 팔을 치워내며 부회장에게 고개를 숙여보인 유헌은 자신을 망연자실하게 바
라보는 시선을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몇걸음 옮기다 창가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는 손을 들어 볼을 쓰다듬
었다. 저렇게 눈이 예리한 사람은 착가할 정도로 자신은 형과 닮은건가?
물론 일란성이니 만큼 외모가 닮은것은 당연하지만, 남들에게 선망을 받던 가헌과
다르게 자신은 거의 은따수준이었다.
외모가 잘나도 성격이 다른이들과 이상하다 싶으면 망설이지 않고 매도하는 아이
들이 넘치는 곳인거다. 가슴속을 간지르는 묘한 느낌에 헛웃음을 지은 유헌은 내려
간 가방을 올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여름 초입의 문턱에 다다른 날씨는 꽤나 더웠다.
"야. 이것좀 풀어봐."
눈앞에 문제집을 내밀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녀석을 얼굴을 바라보던 유헌은 들고
있던 서적을 든채로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보다 키는 작지만 앉아있던 녀석이 갑자기 일어나는 일은 꽤나 위압감을 주는
것이라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친 동급생을 바라보던 유헌은 입가를 조금 올려
보였다.
"잘 모르겠는데, 담당 과목 선생님께 물어보는게 좋을것 같다."
"..........."
"실례."
자신을 지나쳐 교실 뒷문으로 나가는 유헌의 모습을 바라보던 소년은 미간을 접으
며 근처에 서있던 다른 녀석들에 바라 보았다.
저거 왜 저래라는 듯한 눈빛에 마땅히 할말을 찾을 길이 엇던 소년들은 서로의 얼
굴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할 따름이었다.
풀라고 던져주면 잔말않고 순순히 풀어주던 녀석이었다.
그의 형이 있어 자제하고는 있지만, 종종 과제물을 바꾸려해도 아무말 않던 녀석이
었는데 오늘 아침은 깊이를 알수없는 눈빛으로 '스스로 해보는게 어때?'라는 말을
한 것이다.
그것에 앙심을 풀기위해 체육시간에 녀석에게 있는 힘껏 던져진 공은 어이없을 정
도로 쉽게 놈의 손안에 들어가고. 다시금 던져진 공에 얼굴을 맞아 코피를 흘리게
된것은 이쪽이었다.
일주일간의 혼수상태라고 들었긴 하지만...
의식을 잃은 사람이 정신을 차리면 종종 인간이 달라진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저렇게나 180도까지 변하는 건 사기다.
저건 저 모습은 마치...
"가헌이 같잖아."
저도 모르게 내뱉어 낸 말에 합하고 입을 다문 소년은 이분단 4번째 줄에 앉아 책
을 읽던 가헌이 고개를 들지 않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가슴을 쓸어넘긴 소년은 아까의 일로 시선이 집중되자 안색을 붉히며 친구들이 있
던 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인간이 너무 변한거 아냐?"
"난 눈으로 봐도 못 믿겠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돌아오면 가헌이 눈을 저렇게 만든것에 대해 실컷 괴롭혀줄 생각이었는데..."
"조용히해."
뒤에서 자리를 잡고 속닥대는 여학생들을 바라보며 날카롭게 말한 부회장은 여전
히 자리에 앉아있는 가헌에게 시선을 주었다.
하던 대화도중에 끼어들어 조용히 하라는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에 다시 고개를 돌
려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니 모여있던 여자애들의 무리가 우무쭈물하며 장소를 옮
긴다.
쪽도 못쓸 것들이 노려보긴.
한심하다는 듯이 한쪽 눈썹을 올린 그녀는 유헌이 앉아있었던 자리를 바라보다 들
고있던 책을 반납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벌써 다 읽었니?"
"네, 다른 건 없나요?"
"으음. 저쪽 세번째 칸에 가볼래? 외국서적들을 모여둔건데 나도 잘 모르는게 있
어. 개중에 네가 찾는게 있을지도 모르지."
고개를 숙여보이고 자신이 가르킨 방향으로 걸어가는 유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여학생은 웃는 얼굴을 지우며 붉어진 낯을 식히기 위해 손부채질을 했다.
처음 유헌이 왔을때 그 유명한 가헌이 온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동생 쪽이었다.
교내에 우수한 형과 얼빠진 동생으로 유명한 그들이기에 3학년인 그녀도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소문과는 다른 단정한 행동과 말투를 구사하는 유헌에 그녀는 후배
라는 것도 잊고 짝사랑에 빠진 것이다.
유헌이 건낸 책을 들어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품에 안아본 그녀는 무척이나 행복
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으로 이런 후진 도서관의 사서를 하기로 한것을 잘됐다고 여겨진 것이다.
저벅.
저벅.
평소에도 드물 정도의 사람들이 없는 도서관은 한창 시험기간인 지금이 되자 먼지
밖에 날라 다니지 않았다.
사람이 북적한 대형 도서관보다 이런 아늑한 곳을 더 좋아하는 유헌은 서적의 양은
적지만 아직 읽어 볼것이 있는 이곳을 애용하고 있었다.
근래에 읽은 책을 세어보면 유헌이 살아오면서 읽은 책보다 월등히 수가 많다.
식음을 전폐하고 책에 매달릴 정도는 아니지만, 종종 이곳에 있다가 수업에 안들어
가는 일도 종종 있었으니 유헌 그가 지금의 일에 얼마나 몰두하고 있는지 쉬이 알
수가 있었다.
"............"
멀리서 외국 서적을 뒤적이는 유헌의 모습을 바라보던 같은반의 부회장 김예리는
자신의 교복을 바로하며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예리가 헛기침을 하기전까지 누가 접근했는지도 몰랐던 가헌은 옆에서 들리는 소
리에 그세서야 고개를 들어 보았다.
생머리를 길게 내려뜨린 그녀는 확실히 미인이었다.
하지만 그 성미나쁨을 아는 유헌은 내심 긴장했다.
..........이 여자 또 헤코지를 하려고 온건가.
"안녕?"
"....그래."
2학년 초에는 형에게 달라붙은 해충이라던지. 너같은 지진아 때문에 가헌의 평가
가 깍여 진다는, 거기다 반 애들을 선동해 자신을 난처하게 한 적도 있었지.
이제와서 속좁게 과거의 일을 들춰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둘뿐이 있는 것도
사양이다.
대충 눈으로 찍어둔 책들을 서너권 뽑아든 가헌은 그녀를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용건을 꺼내기 전에 지리를 피하려던 그의 의도는 자신의 옷자락을 잡는 행동에 제
지 되었다.
"무슨 책이야? 그런 어려운 것도 읽을줄 알았어?"
"그럭저럭. 시간은 꽤 걸리지만..."
"흐음- 좋구나. 읽고나서 나한테 내용좀 알려줄래?"
여자란 이런 건가?
전의 자신에게 여학생들은 언제나 비웃음을 날리고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곤 상
대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분위기가 좀 변했다고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 주다니..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홀대할수 없는게 이런 타입은 앙심을 품게하면 뒷끝이 나쁘기 때문이다.
내용을 알려준다는 말대신 번역된 책을 추천해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잡힌 옷자락
을 빼낸 유헌은 인사를 하고 책장 사이에서 나왔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지만 뒤돌아 보거나 하지는 않았다.
언제나 저런 시선을 느낀다.
교실이나, 운동장 벤치에서 책을 읽을라치만 갑자기 변한 인물에 대한 호기심과 분
위기 변화에 대해 얼굴을 붉히며 던져지는 호의의 시선들을.
그런 종류의 시선은 학기 초 막 입학할 당시 자신에 대해 사람들이 몰랐을 때 보내
던 적 이후로 처음이기에 초기엔 책을 읽는 와중에도 눈치를 보던 유헌은 왠만큼
적응이 되니 그들이 자신을 바라보던 손가락질을 하든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오로지 책을 읽고 필요한 정보들을 머리속으로 담을 뿐.
"여-어. 호동왕자아냐."
"..........."
"갑자기 용 됐다면서? 바보를 인간으로 만든 낙랑공주는 어딨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자신에게 다가오는 불량한 차림의 소년들에게 시선을 주던 유
헌은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 했더니 전에 자신의 지갑을 털던 교내 일진 녀석들이다.
피해갈까하고 생각해 봤지만, 앞으로 모아야 할 책들과 필요한 것들이 많다.
저런 쓰레기같은 것들에게 소비할 돈따위- 지니고 있지 않다.
"무슨 책 읽냐? 뭐야. 이건.. 꼬부랑거리는 거잖아. 너 이런 것도 읽냐?"
"읽는 척만 하는거 아냐? 지 형 따라하는 거지 뭐."
"정말? 아서라. 뱁새야, 가랑이 찟어진다."
저들의 농담이 꽤나 맘에 드는지 배를 잡고 웃는 녀석들을 보는 유헌은 얼굴은 한
심하다는 뜻이 뚜렷하게 떠올라 있었다. 미미하게 변한 유헌의 표정을 눈치챈 것인
지 가운데 추한 외모를 지닌 소년의 얼굴이 이그러 진다.
원래부터 외모 컴플랙스가 있던 그는 가헌이나 유헌처럼 반반한 면상의 녀석들이
맘에 들지 않아서, 둘중 훨씬 만만한 유헌을 표적으로 잡고 괴롭히는 것으로 종종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이다.
평소대로 겁을 집어먹고 눈치를 봐도 가만 안둘 판인데 저런 한심하는 눈빛을 보내
다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는 유헌의 손에서 책을 빼앗아 들었다.
찌-익.
"너같은 것들은 이런것보다 선생 엉덩이나 핣아야 하는거 아냐? 꽁생원 나으리."
"푸하하하- 걸작이다. 야~"
"이 자식. 노려보는 것 좀봐. 눈 좀 감아라, 그러다 눈물나오면 개쪽이다."
다소 힘이 들기는 했지만 책을 반으로 완전히 갈라 유헌의 눈앞에 흔든 소년은 의
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어떠냐. 그 잘난 눈빛에 조금 금이라도 가겠지?
그러길래 왜 안 어울리게 그따위 싸가지없는 표정을 지어서 사람을 열받게 하느냔
말야. 전처럼 비굴하게 굴면 나도 조금은 부드럽게.....
빠-악! !
".........! ! !"
책을 들고 히히덕 거리던 덩치가 허공을 날자 주위에 서있던 두명의 소년들의 안색
이 달라진다. 입을 벌린채 쓰러진 소년에게 시선을 주던 두명은 고개를 돌려 주먹
을 앞으로 뻗은 채인 유헌에게 시선을 주었다.
".....히익..!"
유헌과 시선이 마주친 한 소년은 암울하게 번지는 검은 눈동자에 숨을 들이키며 뒤
로 물러났다.
자신을 견제하며 주먹을 쥐는 다른 소년을 확인하며 내민 주먹을 내린 유헌은 그
동시에 자신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주먹을 내뻗는 소년의 팔을 잡아 등뒤로 사정없
이 비틀었다.
우두둑-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동시에 요란한 비명이 운동장을 울린다.
"으아아아아아아아---ㄱ! ! !"
"...시끄럽군."
귓청이 떨어질 것 같은 비명에 운동장을 채우고 있던 사람들이 시선이 단번에 한곳
으로 몰린다.
요란한 일은 사양이지만 먼저 남을 건드린 이 녀석들이 잘못인거다.
혀를 차며 잡고있던 팔을 놓은 유헌은 바닥을 구르며 팔을 부여잡는 소년을 바라보
다 먼저 날린 주먹에 의해 쓰러진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쓰러진 소년의 옆에 서있던 같은 편인것 같았던 소년에게 고개를 옆으로 숙이며
'덤빌래?'라는 듯한 시선을 보내자 숨을 삼키며 등을 돌리고 달아난다.
그 한심한 모습에 유헌은 헛웃음을 삼키며 바닥에 떨어진 책을 집어 들었다.
찟어도 이상하게 찟어서 일일이 붙이지 않는 이상 제대로 읽을수 조차 없을 것 같
았다. 아직도 의식을 찾지 못하고 대자로 누워있는 녀석을 다시금 한대 때리고 싶
은 기분이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지만 주위에 늘어나는 시선에 더 이상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교실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유헌은 건물 이층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가헌을 발견했다.
"............"
미간을 찌뿌린채 자신을 내려다 보는 그 모습에 유헌은 또다시 가슴 속이 근질거리
는 것을 느꼈다. 저도 모르게 베어 나오는 웃음을 입가에 짓자 안색을 달리한 가헌
이 몸을 돌려 건물 안으로 사라진다.
그 모습에 고개를 살레살레 저은 유헌은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바라건대.
바라건대 칸과 함께 올려다 보았던 그 푸른하늘을 한번 더 볼수 있기를....
참을수 없이 느껴지는 쓸쓸함에 유헌은 걸음을 빨리해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요란하게 해댔다며?"
"뭐.. 그다지."
표정변화 없이 고개를 숙이며 하는 모습이 정말로 별일 없다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미 다른 사람들로 부터 학교의 일을 들어서, 일단 유헌의 말에 망장구를
쳤지만 의사는 머리 속의 회전을 빨리했다.
주먹으로 얼굴을 맞은 소년은 턱이 으스러지고 이빨이 몇개나 부러지고, 팔이 잡힌
녀석은 뼈가 부러졌다. 그런 괴력이 유헌에게 있었던가.
아니, 애초에 그럴 행동을 할수있을 만한 소년이던가.
눈앞의 소년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점점 뚜렷해 지는 것을 느꼈지만, 상담시 감정
을 이입시키는 것만큼 최악인 경우는 없다.
유헌 부친의 닥달에 다시금 테스트를 해보인 그는 전처럼 나오는 이상 없음이란 결
과를 소년에게 말해주고 가볍게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을 권할수 밖에 없었다.
"모처럼 건진 대박이지. 전처럼 지갑에서 돈이 나가는 것을 슬프게 여겨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난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
"그렇네요."
"여기서 기다려라. 옷좀 갈아입고 올테니."
의사가 나가고 난 방안에 가만히 앉아있던 유헌은 무릎에 올려두었던 손가락을 꼼
질거리다 책이라도 읽자라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번 학교에서 벌어진 일은 결국 아버지의 귀에 들어가 그날 엄청난 꾸중을 들었
다. 안 그래도 자신을 좋지않게 생각하고 있던터라 꽤나 험한말들을 하셔서 옆에
있던 어머니와 가헌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었지.
당사자인 자신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어 아버지가 질려서 방에 들어가 보라고,
다시 한번 이런 일을 벌이면 외국으로 보내버리겠다는 말을 했었다.
"외국이라....."
차라리 칸이 있던 세계로 다시 보내졌으면..
엄습하는 피로에 눈을 감았다 뜬 유헌은 병원에 있는 것이 싫게 느껴졌다.
짐을 챙겨 가방을 등에 메고 방에서 나온 그는 비상구 게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것보단 차라리 계단으로 가는 쪽이 훨씬 빠르다.
지히 주창장까지 내려와 빙도는 식으로 병원의 앞까지 걸어나온 유헌은 근처에 피
어있는 꽃들을 구경할 겸 선생님을 기다릴 겸, 건물앞에 붙어있는 벤치에 앉았다.
무리를 지어 이야기를 나누던 여학생들이 시선이 몰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내색하
진 않았다.
반장쯤 글을 읽고나서야 점점 몰입해 들어가는 느끼며 숨을 죽이던 유헌은 갑자기
머리 위로 쏫아지는 꽃잎들에 당황해 눈을 크게 떴다.
"...뭐..?"
의자 뒤를 잡고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 위를 올려다 본 그는 4층쯤의 창가에 튀어나
온 길고 하얀 두팔을 발견했다.
전에 비잔힐에 있었을때, 처음으로 그 황제라는 자와 만났을 때와 같은 기시감을
느낀 유헌의 얼굴은 자연히 딱딱하게 굳어졌다.
입을 일자로 다물고 손의 주인공이 얼굴을 들어내기를 기다리던 유헌은 자신의 어
깨를 치는 손길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 보았다.
"뭐야? 뭘 그렇게 놀라??"
".......아..아뇨."
단지 어깨를 쳤을 뿐인데,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급격하게 몸을 돌리는 유헌의 행동
에 되려 놀란 의사는 가장되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를 바라 보았다.
그런 의사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유헌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들고있던 책을
가방속에 집어 넣었다. 허리를 세운 유헌은 마지막으로 5층 창가에 시선을 주었지
만, 이미 하얀팔은 사라진 뒤였다.
입술을 깨무는 소년의 모습을 바라보던 의사는 그의 머리에 묻은 꽃잎을 들어 올렸
다.
"왠 꽃잎이야? 그러고 보니 이곳저곳에 묻었네? 꽃바람이라도 맞은 거냐?"
"아..아뇨. 위에서 갑자기 쏫아져서 말이죠."
"위에서?"
가흔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얼굴을 들어보인 의사는 그러나 차가운 느낌의 회색벽
과 단단히 닫힌 창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근처에 있는 나무들도 모두 꽃을 피우는 종류가 아니다.
의사의 얼굴에 떠오르는 의문을 눈치챈 유헌은 화제를 바꿀 필요성을 느꼈다.
안그래도 여러가지 일들을 많이 벌인 자신이 더이상 이상 행동을 하게 된다면 그것
은 모두 아버지의 귀에 들어갈 것이 분명하고, 자신은 싫어도 외국이나 정신병동으
로 옮겨 질지도 모른다.
"날씨가 좋군요. 여기는 처음 와보는데..."
"응. 조용한 곳이긴 하지만, 기분이 나쁘다해서 사람들이 별로 안오는 것이야."
꽃잎을 털어내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사내의 행동에 유헌은 안도의 숨을 내쉬
었다.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며 걸음을 옮기던 유헌은 아까 5층 창가에 내밀어졌던
하얀 팔을 기억해 내고 그것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5층엔 어떤 사람이 있는 건가요?"
"5층? 어디?"
가르키는 방향을 올려다 보던 그는 어째서 유헌이 저곳에 대해 물어보이는 알수 없
었지만, 일단 대답해 주었다.
"20여년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이야."
"............식물인간이요?"
"모르겠지. 나도 한 두세번 정도 가본적이 있었는데.. 방안이 온통 기계 투성이에
여기저기에 이어져 있는 호수들에 아주 질려 버렸어. 꽤나 부자가 후견인인 모양인
지 아직도 살아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론 그냥 그녀를 잠들게 해주는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더군."
자신의 말에 안색이 어두워진 유헌에게 웃어보인 그는 병원앞에 대두었던 차문을
열고 손으로 안을 가르켰다.
"자자- 어두운 이야기는 여기까지하고, 우리들은 맛있는 밥을 먹으러 가자고."
남자의 장난스런 모습에 유헌은 굳어진 안색을 풀며 안으로 들어갔다.
20년동안 식물인간 상태인 건가.
마지막으로 병원을 바라본 유헌은 고개를 저으며 가방을 등에서 내려 뒷자석에 옮
겼다.
To 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