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55)

      짝.

      어찌어찌해서 여왕의 안식처 바로 앞까지 다다른 칸은 여신상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양손을 마주치며 눈을 감았다. 

      오기는 대낮부터 왔지만, 빽빽한 경비에 의해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다 하루중 

      유일하게 경비가 비는, 여왕에게 기도하는 시간인 지금이 되자 그늘에서 스글머니 

      빠져 나온것이다. 

      이러고 있을만큼 시간이 넉넉한 것은 아니지만, 과거완 다른 자신의 사정이기에 함

      부로 들어서기가 꺼려진다. 

      "여왕. 부탁이야. 옛정을 봐서 이번만은 봐줘. 

      다음에 아주 좋은 선물을 들고 오테니 말야..."

      만약에 내가 저 중심으로 들어가는 문을 지났을 때 경고음을 낸다면 그대는 아주 

      배신자인거야. 

      한동안 여신상의 앞에서 빌어 보기도 하고 협박을 해보기도 한 칸은 멀리서 기도를 

      마치는 종소리가 들리자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지체 할수가 없다.

      잠시 신호흡을 한 그는 눈앞에 세워진 거대한 동상옆에 나있는 오솔길에 시선을 주

      었다. 화려한 다른 건물들을 보다 이 소박함을 보게 된다면 헛웃음을 지을지도 모

      르지만 이 길이야말로 서쪽을 대표하는 장소로 인도하는 길. 

      입술을 깨문 칸은 천천히 한발씩 앞으로 전진했다. 

      "여왕.. 부탁한다."

      저벅.

      한발만 들어서면 여왕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일보가 된다. 

      그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던 칸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도망갈 루트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천천히 한발을 들어 올렸다. 

      여왕.. 제발. 부탁한다고...! ! 

      눈을 질끈 감은 칸은 냅다 앞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냥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지않아 있었지만 여관에서 땀을 흘리며 눈을 감은 가

      흔의 얼굴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것이 차마 몸을 돌릴수가 없다. 

      결국 무모하게 오솔길을 냅다 뛰던 칸은 들리지 않은 경고음에 눈을 천천히 뜨고 

      달리던 걸음을 멈추었다. 

      울리지 않는다.

      ".....역시. 여왕! 믿고 있었다니깐--! !"

      주먹을 쥐며 쾌재를 부른 칸은 그러나 멀리서 보이는 경비들의 모습에 안색을 달리

      하며 다시 길을 따라 달라기 시작했다. 

      저 황금빛 기둥이 있는 근처는 유독 신성력이 강해서 희귀한 약초들이 많이 자란

      다. 하나쯤 가져가도 무관할 만큼의 다양하고 수많은 약초들이 자라지만, 그것을 

      관리하는 신관들도 많고 무엇을 가져가야 효과가 있는지도 모르기에 칸은 내심 아

      무나 허술한 신관이 눈에 띄길 기대했다. 

      그래야 빨리 약초를 찾아 가흔에게로 갈수가 있으니... 

      모두가 잠든 새벽인데도 황금빛 기둥에 의해 밝은 주변을 돌아보며 그는 미소를 지

      었다. 곧 약초를 찾아 가흔에게로 가 아픈 그를 치료해 줄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칸

      은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전에 시녀에게서 배운 음조를 흥얼거리며 발걸음도 가볍게 뜀박질을 하던 칸은 갑

      자기 등뒤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요란하게 앞으로 굴러갔다. 

      "....무슨! !"

      적인가 해서 몇번 땅바닥을 구른 그는 당황하며 고개를 돌리다 눈앞에 보이는 모습

      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약 15세가량 되어 보이는 소년이 땅바닥에 엎드린채 두눈에 눈물을 매단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병사나 다른 우락부락한 신관들이 함부로 들어온 자신을 제지하는 것이 아닐까하

      고 순간 당황해버린 칸은 그런 소년의 모습에 헛웃음을 지으며, 구른 탓에 묻은 흙

      을 털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애송이 녀석은 뭔가. 

      입고있는 옷을 보자니 견습 신관인것 같은데.. 

      "도대체가 뭡니까?! ! 이 귀한 약초들이 있는 길을 마구 밟으며 다니고..! !"

      ".......엥?"

      "보십시오. 당신의 부주의함에 죽어간 가여운 저 약초들을! ! !"

      눈물을 흩뿌리며 팔을 휘두르는 소년의 모습에 칸은 저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내

      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애송이 신관이 가르키는 자신이 뛰어온 길목을 확인 한 

      그의 얼굴을 그야말로 흙빛이 되었다. 

      자신이 온 길은 일자로. 다른 곳과 확연히 티가 날 만큼의 밟혀진 화초들이 눈에 들

      어온 것이다. 

      "........헤-에."

      머리를 긁적이며 뻘쭘하게 서있던 칸은 자신을 노려보는 어린 신관을 바라보며 어

      설픈 미소를 지었다.

      "...........미안..."

      "이게 사죄한다고 끝날 일입니까?! ! 이것들은 모두 자애로우신 여왕님의 보살핌아

      래 건강하게 자라고 있던 것이였는데, 당신에 의해 처절하게 죽어갔단 말입니다. 

      아아- 어쩜 그렇게 끔찍한 일이..! !"

      현기증으로 곧이라도 쓰러질것 같은 포즈로 이마를 한손으로 집고 흔들거리던 어

      린 신관은 이내 두눈을 부릎뜨고 아직도 뻘쭘히 서있는 칸의 옷자락을 쥐었다. 

      잡힌 약력에 의해 무릎을 꿇릴 뻔한 칸은 당겨지는 옷자락을 두손으로 잡고 신관의 

      단호한 결의가 담긴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저 화초들의 명복을 빌어 주십시오."

      "...............엥?"

      "지금 당장 어서 무릎을 꿇으라래도요! !"

      "아...뭐...그.."

      야무지게 말하는 신관의 기세에 저도 모르게 그의 옆에 무릎을 꿇은 칸은 이내 자

      신의 꼴을 깨닭곤 안색을 굳혔다. 

      천하의 칸이 이런 애송이의 페이스에 말려 저런 화초따위의 명복을 빌어주려 무릎

      을 꿇다니..! ! 

      노웬들이 지금 자신의 모습을 봤다면 엄청 비웃었을 거다. 

      자신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고개를 젖혀대며 웃는 자들을 상상하던 칸은 저도 모르

      게 기분이 나빠져 한손으로 입을 틀어 막았다. 

      "두손을 마주하고 기도하는 겁니다. 한순간에 꺼져버린 저 가엾은 생명들에게..."

      ".............."

      "너희들이 공교롭게도 순간의 삶을 잃었지만.. 걱정하지 마렴. 다른 친구들이 너희 

      몫대신 튼튼하게 자라 줄거야."

      자신을 이런 꼴로 만든. 눈을 감고 진지하게 기도를 하는 어린 신관놈의 머리통을 

      그대로 내리치고 싶었지만, 또다시 눈앞에 어른거리는 가흔이 얼굴에 참기로 한다. 

      이런 녀석이라지만, 일단 이곳에 있는 이상 약초에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라는 뜻이

      다. 

      이놈을 잘 구슬러 가흔의 상태에 맞는 약초를 구한 다음에 바로 자리를 뜰 결심을 

      하며 칸은 모아진 양손을 보며 눈을 감았다. 

      ..........자신의 발아래 죽어간 약초가 약간이지만 불쌍한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웃기는 꼴이군.. 칸크빌레."

      멀리 숲속에서 기척을 완전히 지운채로 칸의 모습을 확인하던 요크발은 그 꼴사나

      움에 입가에 싸늘한 비웃음을 달았다. 

      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낸 그는 자신의 뒤레 서있는 기사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하나같이 최고의 실력을 지닌 황제의 직속 사병들이다. 

      게다가 기척을 숨기는 마력을 몸에 걸어 두었으니 저 칸은 자신들의 모습을 들어나

      기 전까진 그들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를 것이다. 

      회심의 미소를 지은 요크발은 손을 뒤로 넘겼다. 

      그 움직임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기사들의 모습에 만족의 미소를 띈 그는 팔장

      을 낀채로 멀리 보이는 칸의 얼굴을 노려 보았다. 

      황제는 사로 잡으라고 했지만, 다치지 말게하라곤 하지 않았다. 

      반 병신을 만들어 주마고 결심하는 그의 붉은 눈동자가 유쾌함에 가늘게 접혀진다. 

      사사삭----

      스산하게 느껴지는 한기에 칸은 저도 모르게 눈을 떠 사방에 펼쳐진 숲에 시선을 

      주었다. 

      원래 가운데 기둥을 제외하면 그 주위는 전부 숲인지라 음습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지만 왠지 기분이 묘하게 걸리는게 상당히 안좋은 느낌이 든다. 

      양손을 모은채로 눈을 굴리는 칸의 모습에 옆에 있던 신관이 눈을 동그렇게 뜨고 

      노려본다.

      "제대로 기도하지 못하겠어요?"

      "........칫."

      "성의있게 하란 말입니다!"

      입술을 비죽히 내밀려던 칸은 노려보는 사선에 튀어나온 입술을 집어 넣었다.

      어린 신관은 소년이 자신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하는 모습을 보곤 일부러 약초를 

      밟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행동이 어떻든 정성스럽게 기른 약초밭을 망가뜨

      려 놓았으니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턱에 손을 올린채 이 소년의 처벌에 대해 생각하는 신관과 다르게 칸은 어서 가흔

      에게 맞는 약초를 얻어 이 기분나쁜 곳에서 벗어나자는 결심을 했다. 

      들어가기 전에 여왕에게 그토록 비굴하게 빌던 모습과 영 딴판이다. 

      서로 다른 생각에 빠진 두사람이지만, 지니고 있는 시간이 적은 사람은 칸쪽이게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꽤나 약초들을 아끼는 사람같은데 그것을 망친 자신의 청을 순순히 들어줄진 의문

      이다. 만약에 들어주지 않는다면 칼로써 위협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는 칸은 

      그야말로 약당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저기...." 

      칸의 처우에 대해 생각하던 신관을 어렵게 입을 떼는 그 모습에 시선을 돌렸다. 

      선하게 보이는 인상에 맞게 성격도 좋을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칸은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만들어 보였다. 

      "실은 친구가 병에 걸려서.. 약초를 구하러 이곳에 온거거든요. 그래서..." 

      "...친구분이 아프신가요?" 

      "네, 그게 정말로 착한 아인데.. 온몸에 고열이 나고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해

      서..." 

      시컴한 속과는 반대로 어리고 예쁘장한 자신의 외모를 이용한 칸은 최대한 가련하

      고 불쌍해 보이는 포즈와 각도를 잡으며 신관을 애처롭게 바라 보았다. 

      어디 칸의 보통 외모던가. 

      눈을 깜박이며 최대한 애교스럽게 구는 모습에 얼굴을 살짝 붉힌 신관은 헛기침을 

      하더니 뭔가 곰곰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인다. 

      원래 신관이라는 것들은 정과 아름다운 것에 약한 법이다. 

      대부분 신관 지원동기가 선행을 베푸는 모습과 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서 지원

      한 자들이 태반이니... 그런 녀석들이 모인 신전은 변태들의 소굴이라고 주장하는 

      칸이지만, 누가 뭐래도 아쉬운 것은 본인이기에 차마 내색하지 않는다. 

      "이런.. 정말 안됐군요. 고열과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고요? 그것에 필요한 약초라

      면.. 잠시만요." 

      등을 돌리고 서둘러 다른 장소로 가려는 신관의 모습에 칸의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칸에게 시선을 돌린 신관은 다시 그에게로 다가와 무척이나 안타깝다는 표정

      을 지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였다. 

      "왠지 달려오는 걸음이 다급하다 했어요. 친구분이 많이 아프시다니 안 됐네요. 잠

      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가서 약초를 가져올테니깐요, 잠시만 기다리시면 돼요."

      다다다-하고 자신이 할말만을 하고 다시 등을 돌려 숲으로 들어가는 신관의 뒤로 

      손을 흔들던 가흔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저렇듯 단순하다니깐 신관이란 녀석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폭죽을 터트리며 기뻐하는 칸은 신관이 없는 동안에 

      어떻게 시간을 때울까하고 머리를 굴렸다. 

      모처럼 왔으니 이런 약초들이 가득하고 분위기 칙칙한 곳에서 벗어나 여왕의 중심

      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곳은 절대 피를 흘려선 안되는 불혈지. 자신은 피를 흘리

      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일단 검을 메고 있었기에 이곳으로 들어오도록 묵과해준 그

      녀에게 예의를 차리기서라도 그냥 가만히 있는 편이 나았다. 

      이런 곳이라도 저런 얼빵한 신관말고 좀 깐깐한 녀석이라도 만나게 되면 검을 지닌

      것에 대해 해명하기게 꽤나 골치 아파지는 것이다. 

      들어온 이상 신분이 밝혀진 자라는 의미이지만, 어린 나이에 금지된 검까지 차고 

      있는 자신은 어딜보나 수상하니, 분명 이것저것 케물을 것이 분명하다. 

      "흐음. 비싸보이는 약초나 케간 다음 밖에서 팔아 먹을까."

      그에게 호의를 베푼 신관이 들었다면 피를 토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칸이

      었다. 

      그 신관은 꽤나 멀리간 모양이다. 

      애송이 신관이 떠난 곳을 가만히 바라보던 칸은 그 자리에 천천히 주저 앉아 근처

      의 약초들을 케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서 자라는 약초들은 보기가 엉성하고 종류가 

      흔한 것일지라도 그 질이 뛰어나 고가로 팔아 넘길수 있다. 

      실제로 약초를 판 비용으로 여왕의 땅을 깔끔하게 관리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것들을 판돈으로 가흔이 깨어나면 맛있는 것을 사주자고 생각하자 칸은 절로 미

      소가 입가에 번지는 것 같았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금방 아프지 않게, 깨어나게 해줄테니... 

      툭.

      붉은 열매가 달린 약초를 케던 가흔은 자신의 그림자와 겹치는 커다란 그림자에 안

      색을 달리히며 들고있던 약초를 바닥에 내던졌다.

      채---앵! !

      "...읏! !"

      어깨를 노리고 내려쳐진 검을 간발의 차로 막은 칸은 또 다른 사내가 옆으로 검을 

      들이밀자 마주하고 있던 검을 밀치며 뒤로 물러났다. 사내의 검을 받은 손목이 욱

      씬거리는 게 보통 이상의 실력을 지닌 자들이 분명했다. 

      게다가 자신이 눈치채지 못할 때까지 이정도로 접근을 하다니.. 실력도 실력이지

      만, 뭔가 구린 것을 몸에 건 모양이다. 

      사사삭--

      숲속에서 하나 둘씩 나타나는 사내들의 바라보던 칸은 이를 악물었다. 

      적어도 눈앞에 보이는 것이 십여명은 되어 보인는데 실질적으로 그 배의 인원들이 

      모여있을 것이다. 

      "정말 짜증나게 구는군-"

      자신을 상대로 이정도까지 사람을 푸는 요란한 놈은 집이는 바가 있다. 

      분명 이 녀석들을 상대로 기운을 빼논다음 여유자작하게 마지막에 모습을 들어낼 

      심산일 거다. 정말 악취미의 녀석. 

      다시금 검을 들어 달려드는 사내들의 동장을 피해낸 칸은 신관녀석이 간 쪽으로 달

      려가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가고 있으면 약초를 든 신관놈과 만날지도 모른다. 

      도망가는 것도 녀석에게서 약초를 얻은 다음의 일. 

      작은 체구답지 않게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는 칸의 모습에 안색을 달리한 

      사내들은 허리에서 검을 빼들고 그의 뒤를 쫒았다. 

      저런 어린 꼬맹이를 상대하기위해 황제의 직속기사인 자신들이 10여명이나 파견

      된 것이 부끄럽게 여겨졌으나, 아까 검을 막은 실력이나 저 보통이상의 움직임을 

      눈앞에서 보니 생각을 달리할 필요를 느낀다. 

      아무래도 이번엔 상당히 손이 많이 가는 사냥감인 모양이다. 

      타다닥--! !

      "어지간히 좀 하라고-- 빌어먹을..! !"

      탕! !

      "켁! !"

      날라오는 화살을 간발의 차이로 피한 칸은 갑자기 몸을 숙여 앞으로 넘어질 뻔한 

      몸을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아 다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놈의 신관이라는 녀석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한참을 달렸는데 코빼기도 보

      이질 않는다. 

      아니, 그 전에 이렇게까지 자신을 쫒아오는 저들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쫒기면서 숨이 차는 것은 간만의 일인지라 칸은 얼굴을 찌뿌리며 눈앞을 가로막는 

      나무를 베어내 뒤를 따르는 놈들에게 집어 던졌다. 

      그것을 반으로 베어내며 계속 쫒아오는 복면 사내들의 모습에 절로 험한 말이 튀어 

      나오려 한다.

      "그만 좀 쫒아와라--! !"

      이대로라면 여왕의 기둥이 있는 붉은 문양이 그려진 마력진까지 가게 된단 말이다. 

      이렇게 요란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그것을 제지하는 신관들이 하나도 없다. 

      그것에 의아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 칸의 머릿속에는 아까 그 애송이 신관에게

      서 약초를 얻어 이곳을 빨리 떠나자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다시금 들려오는 활시위 소리에 반사적으로 피해내며 나무 등치를 뛰어넘은 칸은 

      멀리서 이쪽으로 뛰어오는 아까 그 애송이 신관놈을 발견하곤 쾌재를 불렀다. 

      신관에겐 안된 말이지만 그가 들고있는 약초를 빼앗아 바로 튀어버릴 심산인 칸은 

      두 다리에 힘을 주며 그의 앞으로 육박했다.

      "어라?? 무슨 일이시죠??"

      어린 신관은 아까 있던 장소에서 기다리지 않고 자신을 찾아 다닌 듯 온몸이 땀투

      성이에 거친 숨을 내쉬는 소년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신관의 모습에 이를 갈며 호흡을 고른 칸은 거칠게 내뱉었다.

      "약초부터 내놔! ! !"

      "에--?!;;;;"

      너무나 당당하게 손을 뻗으며 약초를 달라는 칸과 그의 뒤를 쫒는 복면 사내들의 

      모습에 낭패한 기색을 보이던 신관은 저도 모르게 들고있던 약초를 칸에게 던져 주

      었다. 

      허공에 날리는 약초더미를 솜씨좋게 한손으로 받은 칸은 어벙한 표정을 자신을 바

      라보는 신관에게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는 말을 하기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신관의 얼굴색이 무척이나 안좋아 그는 인사를 하지 말아

      야 하는건가하고 잠시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칸의 생각과는 달리 신관은 다급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위험해요! 거기는 여왕의 기둥으로 바로 가는 지름길의 마력이 발동하는...! !"

      약초를 받기위해 걸음을 멈출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자신을 그대로 지나쳐 버리는 

      칸의 모습에 신관은 당황한 낯을 내비치며 그의 뒤를 따라 달렸다. 

      기둥을 감싸는 숲은 무척이나 크고 복잡하다. 

      그런 곳에 길을 잃은 자들을 탐색하거나 멀리 떨어진 신관들이 빠른 시간내에 집합

      하는 것을 위해 중간중간마다 진을 설치하고 있었는데 지금 칸이 가는 방향은 바로 

      그 진이 위치한 곳이었던 것이다. 

      숲안이라 묵과했지만 검을 허리에 맨채인 칸이 그곳으로 가는 것은 여왕에 대한 대

      단한 결례인 것이다. 

      평소 둔하다는 평가와 다르게 이때만은 초인적은 능력으로 칸의 옷자락을 간신히 

      잡은 신관은 화색을 띄었지만, 이내 몸을 떠오르는 감각에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하필이면 그를 잡자마자 마력이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피--융--- 

      "...에..?! 뭐..뭐야 이건?! !"

      온몸을 감싸는 뭉클한 감각에 당황한 칸을 감싸안은 신관은 이를 악물었다. 

      착지할때 자세를 못잡아 넘어지는 꼴사나운 모습은 절대 사양이다. 

      이왕 넘어가게 된 바엔 멋진 모습으로 가고 싶었다. 

      "쫒아라--! !"

      갑자기 나타난 신관과 함께 사라지는 사냥감의 모습에 당황한 사내들은 그들이 사

      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마지막 사내까지 마력진을 통해 사라지자 한동안 요란하던 숲속에 다시금 정적이 

      찾아 왔다.      

      여왕의 안식처는 대낮에 구경하는 인파도 적지 않았지만 새까만 새벽. 모두가 잠긴

      고요한 시각, 어두운 밤하늘 아래 빛나는 황금의 기둥을 볼수있는 지금이 가장 인

      기있는 시간대였다.  

      실제로 검은 밤하늘 아래 부숴지는 황금빛을 발하는 기둥의 모습은 대단히 훌륭한 

      것이었다.

      "호-오. 과연 이곳에 여왕님께서 잠드신 건가. 훌륭하군."

      "그렇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광경은 처음 보는 군요."

      10미터 앞에 장정 10명이 감싸야 할정도로 너비가 큰 황금빛 기둥이 하늘까지 쏫

      아져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한동안 그것에 시선을 빼앗긴 사람들은 슬슬 근처의 마력진에 시선을 돌렸다. 

      멀리 서쪽으로 가기위한 마을을 지나치기 전 절벽위에서 볼때는 무척이나 아름다

      운 도형을 그리고 있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그 규모가 거대해 무슨 문양이 그려진 

      건지 도통 알수가 없다. 

      그런 사람들의 궁금함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입구쪽에 축소판 마력진이 그려져 있

      긴 하지만 그 거대한 실체를 느껴보고 싶어, 붉은 마력진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자

      들도 몇몇 눈에 띈다. 

      "저 빛무리는 만질수 없는 건가?"

      "안식처에 발을 디디게 해준게 어딘데 직접 만지기까지 바라십니까. 

      욕심이 과하군요." 

      "그런가?"

      자신에게 농을 건내는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남자는 웃어 보였다. 

      여기저기 눈에 띄는 귀족들과 왕족들이 보였지만, 서로에 대해 아는 척을 안하고 

      그냥 이 분위기를 즐길수 있는 안오함이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만약 이곳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서로를 만나게 되었다면 필시 적대하거나 아첨을 

      하든 둘중의 하나의 모습을 보였을텐데 말이다. 

      과연 성지라는 말이 무색치 않은 곳이다. 

      가슴을 뿌듯하게 채우는 충족감에 옆의 사내와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며 걸음을 옮

      기던 그는 눈앞의 풍경이 갑자기 이그러지자 안색을 달리했다. 

      이건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여왕의 성지에서 공간이 이그러진다는 예를 들은바가 없다. 검은 이곳에 들어서기 

      전에 맡겨두고 현재 자신의 몸에 무기라곤 맨주먹이 다다.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그는 그러나 눈앞에 엉켜진 채로 떨어

      지는 두 소년의 모습에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쿠--웅! ! !

      "으-ㄱ..! 아파..."

      "죄송하지만.. 좀 비켜 보세요.."

      칸의 아래에 깔린 신관은 무척이나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위에 올라탄 몸을 

      밀어냈다. 순순히 위에서 비켜선 칸은 떨어질때 부딫힌 무릎을 양손으로 비비며 주

      위를 둘러 보았다. 

      도대체 자신이 어디로 이동하는 건가 했더니 역시나 여왕의 기둥 앞이다. 

      가장 가기 꺼려했던 곳이 딱하니 눈앞에 버티고 있으니 정말 할말없음이다. 

      바닥에 엎드려 통증을 호소하는 어린 신관과 검청의 머리카락에 황금빛 눈동자를 

      지닌 미색이 뛰어난 꼬마에 시선을 주던 사내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서로를 바라 

      보았다. 

      언제부터 성지에서 이런 이벤트를 하기 시작한건지 도통 알수가 없다. 

      "..도대체 이 무슨..."

      갑자기 나타난 자신들에게 시선이 몰리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난 칸은 아직

      도 밑에서 낑낑대는 신관의 목덜미를 잡아 일으켜 세워 주었다. 

      도대체가 말야. 이 신관놈이 좀만 빨리 나타났으면, 아니 이곳으로 넘어가는 마력

      진이 아닌 방향으로 나타나기만 했으면 이런 곳에 올 일이 없잖은가 말이다. 

      미간을 찡그리며 엄청 싫은 표정을 지은 칸은 주먹을 올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한대만 이 신관녀석을 치면 부글거리는 속이 진정될 것 같

      았다.  

      "으윽.. 허리야.. 안 그래도 안 좋은 곳을..."

      칸이 깔아뭉갠 허리를 두들이며 자리에서 일어서던 신관은 등뒤에서 느껴지는 암

      울한 기운에 안색을 달리하고 뒤를 돌아 보았다. 

      뭔가 부정한 것이 이곳에 나타난 건가하고 안색을 달리한 그였지만 막상 보이는 것

      이 주먹을 올린채 당장이라도 내리칠 기세인 칸이자 묘한 표정을 만들었다. 

      "설마하니... 절 때리실 생각인 건...."

      "설마가 맞다. 이놈아! ! 덕택에 이게 무슨 꼴이냐고~! !"

      부웅.

      "으악~~;;;;"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머리를 감싸쥐고 무릎을 꿇은 신관은 앞으로 느껴질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정말이지 해도해도 너무한다. 

      약초를 엉망으로 만들어도 기도 한번으로 용서해준 데다, 친구를 구하기 위한 약초

      를 얻으러 왔다는 소리에 손수 찾아서 주고, 장소를 해맬까 걱정되서 마력진에 몸

      을 던지기도 했는데 이런 반응이라니. 

      맞자마자 큰소리로 비명을 질러 저 소년을 곤란하게 해줄 마음을 먹고 있던 신관은 

      그러나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자 의아한 얼굴로 빼곰히 눈을 

      들었다.

      툭.

      "..............."  

      툭.

      투둑.

      그는 자신의 얼굴로 떨어지는 액체가 무엇인가 하고 생각했다. 

      설마하니 저 검은하늘에서 비가 오는건가하고 얼굴에 떨어지는 액체를 손으로 문

      지른 그는 소매에 붉은 물이 들자 정말로 알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이런 붉은 물이 드는 걸까. 

      어째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요란한 비명을 지르며 자신들의 주위에서 물러나는 

      걸까. 

      어째서 손을 든채로 눈앞의 소년은 움직임을 경직시킨 건가.

      "...........제길.."

      투두둑.

      칸은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핏덩이를 간신히 삼켰지만 배를 뚫고나온 검에서 떨어

      지는 자신의 핏줄기는 이미 바닥을 젖시고 있었다. 

      피 웅덩이를 그리는 붉은 액체에 시선을 주던 그는 뱃속에서 반회전 하는 검의 움

      직임에 입안에 고여있는 핏물을 뱉어냈다. 

      "...쿨럭.! !"

      투둑.

      아연한 표정으로 자신의 핏물을 덮어쓴채 올려다 보는 신관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

      려던 그는 서서히 꺽이는 무릎에 인상을 지었다. 

      "이 자리에서 죽어라.. 칸크빌레..."

      "...............요크발.."

      거북스럽게 흘러 나오는 목소리에 칸은 미간을 찌뿌렸다.

      요크발 너는 여전히 저능한 놈이다. 

      ..........이런 곳에서 이런 짓을 벌이다니. 

      툭.

      발밑을 중심으로 점점 퍼져가던 핏줄기가 바닥에 그려진 붉은 문양에 흡수되어 간

      다. 고개를 젖혀 요크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칸은 하늘까지 올라간 황금빛 기둥

      이 서서히 이지러지는 것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지마 여왕. 내가 잘못했다. 

      다시는 이런 짓은 하지않아. 

      다시는 당시보고 이상한 여자라고. 오만하고 더럽게 깐깐한 여자라고 안 그럴께. 

      피슉.

      "꺄아아아악---"

      "으아악---! ! 여왕.. 여왕의 기둥이...! ! !"

      쿠르르릉.

      황금빛 기둥에 서서히 균열기 나타나더니 그 사이로 새파란 물줄기가 쏫아져 나온

      다. 

      한줄기였던 그것이 두개, 세개로 늘어난다. 

      "그러지마.. 여왕.... 안돼..."

      이곳엔 가흔이 있는데.... 다른 녀석들이 있는데. 모두가 죽게 할수는 없잖아.

      쏴아아아아아----ㄱ....

      칸의 간절한 바램을 무시하듯이 오만하게 하늘위에서 내려다 보던 여왕의 기둥은 

      이내 완전히 폭사되어 수억톤의 물줄기를 사람들 위로 내뱉었다. 

      순식간에 쏫아진 그 물들은 칸과 도망하는 수많은 귀족들. 

      그리고 주위를 감싸던 숲들을 일시에 삼켜 버린다. 

      쏴아아아아아----

      끊임없이 쏫아지는 물줄기는 순식간에 그 일대를 삼켜 버렸다.

      여왕의 기둥이 솟아난 후 3번째로 일어난 비극이었다.

      "자- 알면 끝난거지? 자리에서 일어나라. 네가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 주마." 

      ".........." 

      분명히 눈앞의 사람에게 뚫린 배가 아무렇지도 않다. 

      그렇다고 아무일도 없었습니다.라고 생각할수도 없는게 배를 적시고 있는 이 끈적

      한 액체와 입가에 느껴지는 비릿한 피냄음 때문이이라.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있는 가흔을 재미없다는 듯이 내려다본 이자크는 혀를 차

      며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가 하는대로 순순히 일어난 가흔은 그가 

      자신의 바지와 등을 몇번 두들여주는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 보고 있었다. 

      "괜찮은 건가?" 

      그런 가흔의 눈앞에 몇번 손을 휘저어 보인 황제는 뒤로 몇걸음 물러나 가흔의 상

      태를 아래 위로 흩어 보았다. 

      흙에 묻은 옷가지와 피에 절은 모습이 마치 전쟁터에서 막 나온 사람같이 엉망이

      다. 

      "처음 네가 비잔힐의 저택에서 마력구속을 사라지게 하는 걸 보고, 뭔가 재미있는 

      녀석을 만났구나 싶었지. 체질인 건지. 아니면 원래 다른 세계에서 와서 그런건지 

      하고 말야." 

      ".........." 

      "그래서 따로 조사를 해봤는데 과거에 너와 무척이나 비슷한 사람이 있었던 것을 

      알아냈지. 그녀는 너완 달리 무척이나 화려하게 이 세계를 휘저은 모양으로 나중엔 

      질리니깐 그대로 돌아갈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던 모양이다. 

      그것을 두고 볼수 없었던 자들은 그녀를 한곳에 봉인해 두었고, 육신이 없던 그녀

      는 그대로 이 세계에 정신만이 붙잡힌 상태로 영원을 살아가게 되었지." 

      여전히 알수없는 말을 해대는 황제의 얼굴을 가흔은 표정없는 얼굴로 가만히 바라 

      보았다. 

      그런 가흔의 시선을 받으며 이자크는 천천히 허리를 펴 보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이어서 가만히 있다가 너가 이곳에 접근한 이후로 상태가 

      급속도로 안좋아 진것을 보고 확신을 했지. 원래 같은 극끼리 만나면 서로 밀어내

      는 법이니깐 말야. 

      사실 널 그녀와 같이 만들어 볼까하고도 생각해 봤지만.. 

      난 그런 악취미는 니지고 있지 않아서 말야. 놓아주마."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낮게 으르렁 거리는 가흔의 얼굴을 바라보며 안됐다는 듯이 혀를 차보인 이자크는 

      입가의 미소를 지웠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란 말이다. 이방인이여." 

      "..........." 

      "육신도 없는 정신체인 주제에 이것저것 쑤시고 다녀 괜한 혼란을 가중시키는 걸 

      원하지 않아. 얌전히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 

      자신을 향해 천천히 손을 올리는 이자크의 모습에 가흔은 눈을 가늘게 떴다. 

      배에서 느껴지던 통증과 어지럼증은 사라졌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한 불쾌감을 느

      끼고 있다. 저도 모르게 손을 올려보인 가흔은 자신의 손을 통해 바닥이 보이자 안

      색을 달리했다. 

      투명해지는 가흔의 얼굴을 바라보던 이자크는 빼든 검을 옆구리에 달린 검집에 집

      어 넣고는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가위에서 눌려 벗어나고자 인식을 하다보면 꿈에서 깨어나듯이 너도 자신의 상태

      가 어떤지 인식하자 원래 세계에 있던 육신이 자신의 정신체를 깨우는 거야." 

      "..............어째서 이런일을 하는 거야." 

      어째서 황제라는 자가 자신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가. 

      일부러 만남을 가질 정도로. 이런 번거로운 일을 직접 할 정도로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거나 그에게 위협이 되리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표정을 굳힌 가흔은 저도 모르게 떠오르는 얼굴에 입술을 열었다. 

      "...........칸때문에 그러는 거야." 

      자신의 말에 급속하게 굳는 얼굴에 가흔또한 표정을 굳혔다. 

      그가 칸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있는지 그 자신이 아닌 이상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런 일을 꾸미는 게 칸과 같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알았다. 

      노려보는 가흔의 눈빛에 피식하고 웃어보인 황제는 입술을 달싹였다. 

      어차피 이 세계에서 사라질 존재에게 못해줄 말이 어디에 있겠는가. 

      아무리 자신이라도 육신이 없는 존재를 벨수없다는 점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래, 칸 옆에 붙어있는 너라는 존재가 무척이나 눈에 거슬러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하는 거다." 

      ".............." 

      "그는 좀더 고통스러워 해야해. 그로인해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 몫 전부를- 말야. 

      그런데 너와 함께 있는 그는 무척이나 즐거워 보이더군. .

      .....................그런거... 용서할수 없어." 

      말도 안되는 투정부리지 말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완전히 투명해져 눈앞의 손조차도 보이지 않는 가흔은 목소리조차 낼수가 

      없었다. 

      뭐야, 진짜로 이런식으로 난 이 세계에서 사라지게 되는 건가. 

      또 다시 그 지겨운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야. 

      서서히 이그러지는 가흔의 얼굴에 진한 미소를 짓던 이자크는 순간 배에서 느껴지

      는 화끈한 통증에 안색을 굳히며 저도 모르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뭐지...?" 

      저릿저릿한 통증이 서서히 온몸으로 퍼지는 감각에 이자크는 미간을 찌뿌렸다.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가흔은 귓가에 들려오는 미명에 얼굴을 들어 허공을 올

      려다 보았다. 

      "............기둥이...." 

      여왕의 기둥이라고 불리우던 황금빛 기둥이 서서히 이그러지기 시작한다. 

      갈라진 사이로 푸른 물줄기가 뻗어 나오는 것을 발견한 가흔은 입을 벌리며 눈동자

      를 크게 떴다. 

      -그곳은 불혈지지요. 

      -피가 땅에 닿으면 물에 잠겨.. 물론 마을에선 전설로 치부되지만 중심에선 전설뿐      

        이 아닌지라 꽤나 경비가 삼엄하지. 

      -바닥에 피를 묻히면 사방 1헤리가 물에 잠긴다. 수만의 사람들이 익사하는 거야. 

      "............칸." 

      어째서 그의 이름을 떠오르는 걸까. 

      가흔은 완전히 투명해지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기둥이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그런 자신을 잡기위해 이자크가 손을 뻗는 것이 보였지만, 가흔은 무조건 달렸다. 

      이대로 그를 만나지 못하면 영원히 만날수 없을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저도 모르게 눈가에 차오르는 눈물을 닦아낸 가흔은 앞으로 움직이려던 발이 강한

      힘에 잡혀 앞으로 나동그라졌다. 

      그 황제라는 자가 자신을 잡는 건가하고 얼굴을 돌리던 그는 바닥에 몸을 반쯤 묻

      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평범한 인상의 여자아이를 발견하곤 표정을 굳혔다. 

      나신을 가리는 머리카락은 분명 검은 빛이었다. 

      머리카락과 비슷한 정도의 어두운 빛을 발하는 검은 눈동자가 똑바로 가흔의 얼굴

      을 직시한다. 

      -돌아가 

      -돌아가는 게 좋아. 

      서글픈 목소리를 들었다고 느꼈다. 

      평범한 인상이지만 눈속에 파묻혀 있는 가슴 저릿한 슬픔에 저도 모르게 손을 뻗은 

      가흔은 기둥이 산산히 터지며 들리는 굉음과 온몸을 짙뭉게는 엄청난 수압에 숨을 

      삼켰다. 

      숨을 쉴수가 없어 눈을 감고 괴로워 하는 가흔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소녀는 

      손을 뻗어 그를 품안에 안았다. 

      -돌아가게 해줄께. 괜찮을 거야. 

      아니야, 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난 칸을 만나야해. 

      그가 걱정돼, 지금 그가 어떤 상태인지를 두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 

      -걱정 하지마.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내줄께. 

      소녀의 품안에서 벗어나려던 가흔은 귓가에 들려오는 심장소리에 더불어 온몸이 

      점점 나른해지는 것을 느꼈다. 감기려는 눈을 애써 뜨려고 했던 그는 알수없는 힘

      에 눌려 눈을 감을수 밖에 없었다. 

      눈을 감자 요크발의 품에 안겨 피를 흘리는 칸의 모습과 다른 장소에서 배를 감싸

      쥐고 괴성을 지르는 이자크의 모습. 멀리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다 물에 잠기는 여

      왕의 안식처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노웬들의 모습들이 보인다. 

      그리고 라프헨들과 묘한 표정을 지은채 눈빛을 빛내는 용의 얼굴이 차례차례 떠오

      른다. 

      난 여기있어. 

      손을 뻗어 파리하게 질린 칸의 작은 몸을 안으려던 가흔은 서서히 부숴지는 주변에 

      숨을 삼켰다.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가는 거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소녀의 작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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