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55)

      온몸이 열이 나 쉽게 식지않는 느낌에 에스는 미간을 찌뿌렸다. 

      그러고 보니 어릴적에 이런일이 있었지. 어린아이들 이라면 한번식은 지나가는 고

      열을 시달렸을 때, 걱정스러운 듯이 자신에게 젖은 물수건을 갈아주는 대단한 형님

      의 얼굴을 봤다고도 생각한 그때,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자 달려가 '형님! 고마워

      요.'라고 대답하는 자신을 싸늘하게 바라 보던 그 눈동자는 무척이나 상처를 남겨

      서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이다. 

      나중에 에즈의 말로는 집안엔 자신과 형님뿐이어서 달리 간호를 해준 사람이 없었

      는 데도 무사히 열이 나아 다행이라고 했다. 그말을 듣고 고열속에서 헛것을 본게 

      아닌가하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내심 믿고있는 것이다. 

      언제나 빽빽한 스케줄로 숨쉴 틈도 없는 저 형님이 자신을 위해 밤새 간호해 줬다

      고..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에스라한."

      "......."

      "정신이 드는 건가? ....정말 놀랐다."

      눈을 뜨고 자신을 멍하니 올려다 보는 에스의 얼굴에 안도의 숨을 내쉰 카일은 그

      의 이마 위에 올려져 있던 물수건을 들어 대야의 물에 헹구고 짜내었다. 

      이마 위에 새롭게 올려지는 차가운 감촉에 침대 시트위에 올려진 에스의 손가락이 

      움찔했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파란색의 머리카락이 드믄드믄 보인다. 

      마력에 당한 육체는 쉽게 치료되지 않는 것이라서 에스를 괴롭히는 현재의 고열은 

      그의 이성도 마비시키고 있었다. 

      ".....에스?"

      이마 위에 올려진 물수건 위에 올려둔 카일의 손을 잡아 끌어 자신의 볼에 댄 에스

      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차갑고 서늘한 느낌이 기분좋다. 

      "......형..님..."

      "........"

      다짜고짜 형님이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고 색색거리는 에스의 얼굴을 한동안 바

      라보던 카일은 그의 얼굴에 닿아있는 자신의 손을 묘한 표정을 바라 보았다. 

      열이 올라 제정신이 아닌 상태라고는 하나 어릴적 이후로 자신에게 손을 댄적이 없

      던 그가 이렇게 잡아 끌어 볼에 대주기까지 했으니 아주 기분이 좋았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에스의 볼을 몇번 쓰다듬던 카일은 그의 콧잔등에 나있는 몇

      개의 주근깨를 손가락으로 쓸어 보였다. 이렇게 눈을 감고 잠든 모습을 가만히 보

      고 있자니 어린 그대로 자라지 않은 것 같다. 

      아직까지 형님을 찾는 것을 보면 확실히 어리다고 해야 할지도... 

      에스라한의 입에서 나온 형님이라는 사람에게 잠시 적의를 불태우던 그이지만, 이

      내 쓴웃음을 짓곤 고개를 저었다. 

      이미 죽은 이에게 신경을 쓸 필요가 뭔가. 

      "푹 쉬워라. 다음에 일어나면 완쾌된 모습을 나에게 보여줘."

      누워있는 금발의 청년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치는 카일의 모습을 문밖에서 바

      라보던 마도사는 쓰고있던 망토를 깊숙히 누르며 걸음을 돌렸다. 

      칸크빌레라는 무희단 소녀의 신변을 아무리 찾아도 찾아낼수 없다는 보고를 하러 

      왔지만, 저런 분위기일 때 찾아 갔다간 그 자리에서 목이 베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갑자기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에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의 손을 들어 보였다.

      ".........."

      손톱이 박혀진 모양으로 피물을 베어내는 손바닥을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

      다 그대로 자신의 망토에 닦아냈다. 

      검은 망토에 파자욱 쯤 묻어도 별로 티도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처소로 걸음을 옮기려던 그는 반대편 창가에서 실랑이를 하고 있는 금발의 

      사내와 카일님의 심복이라는 자의 모습에 미간을 접었다. 

      어젯 밤에 상대한 그 무희단의 소녀에게 단단히도 마음을 빼앗겼는지 그때부터 저 

      금발의 도련님은 그녀를 내놓으라 노성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자신의 마력을 직접적으로 한번 간접적으로 한번 각각 두번을 

      몸으로 받아 들였다. 아무리 체력이 좋고 자체적으로 마도에 대한 면역이 강한자라

      해도 그 공격을 받고 무사하긴 힘들 것이다. 

      시끄럽게 떠드는 그곳으로 가는 것은 무리라 판단하고 발걸음을 옮기려던 마도사

      는 다시 한번 에스와 카일이 있는 방에 시선을 주었다.

      차라리.. 

      차라리 저 금발의 사내에게 처음으로 공격을 했으면 좋았을 것을.

      "...........죽어버렸으면...."

      카일의 지극한 간호로 그의 몸은 웬만큼 쾌차된 상태였다. 

      하지만 간혹가다 잔재한 마력이 비틀어져 사망하는 경우도 희박하게 벌어지곤 했

      다. 그 우연이 저 에스라는 사내에게도 찾아 왔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  

      해가 질무렵 좀더 논다는 용을 놔두고 저택으로 들어선 가흔은 잔뜩 더러워진 자신

      의 양손과 옷에 쓴 웃음을 지었다. 날이 무척이나 좋아 밖에서 노는 동시에 점심도 

      그쪽에서 먹고나선 정신없이 놀아 주었더니 온몸이 흙투성이다. 

      이 나이에 이런 꼴을 남들에게 보인다는 것은 다소 부끄러운 일이었기에 시녀가 알

      려준 일자모양의 저택안의 샤워장으로 재빨리 들어선 가흔은 그러나 계단 위쪽에

      서 내려오는 젤과 율시아의 모습에 걸음을 멈추었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비명을 지르는 듯한 계단을 내려오는 두사람의 모습은 잔뜩 흩

      틀어져 있었다. 언제나 침착한 모습만을 보였던 젤이 저렇게 당황한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 보기에 당황해 버린 가흔은 자신을 지나쳐 지나가는 두 사람의 기세에 

      순순히 길을 비켜 주었다. 

      무슨일이냐고 물으려던 찰나 방금전까지 자신이 서있던 문앞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고 노웬과 샤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붉은 머리의 남자의 모습에 나타났

      다. 

      저 샤한이라는 자 칸과 에스등과 함께 자신을 찾으러 선발대로 보내졌다는 말을 들

      었는데 그러면 칸도 함께 돌아오는 건가. 

      얼굴에 화색이 돈 가흔은 샤한의 옆에 서있는 노웬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노."

      노웬의 이름을 부르며 칸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 보려던 가흔은 그러나 샤한이 안고

      있는 더러운 천사이로 보이는 하얗게 탈색된 얼굴에 숨을 멈췄다. 

      죽어있는 자와 같은 그 생명력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은 얼굴로 샤한의 품속에 

      안겨있는 자는 칸이었다. 

      "칸크빌레! !"

      "일단 위로. 침대에 눕히세요! !"

      "칸크빌레..! 칸크빌레! !"

      "율시아님. 칸님의 놓아 주세요. 심정은 알겠지만 치료가 먼저입니다 !"

      샤한의 품에 있는 칸을 빼앗아 들듯이 달려들어 오열하는 율시아를 힘들게 때어낸 

      젤은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는 샤한의 걸음과 맞추어 칸의 손목을 잡아 보았다. 

      뒤틀리고 미약하긴 하지만, 뛰고 있다. 

      하지만 그 맥박에 너무나 불안정하여 완전히 안심할수도 없는 상태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건가요? 샤한?!"

      "제길 나보러 무슨 말을 하라는 거야?! ! 나야말로 칸님께서 이런 모습이라는 걸 보

      고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단 말이다! !"

      "두사람 모두 진정하고 어서 침대로 칸님을 눕혀드려! !"

      신경질적인 샤한의 목소리와 울먹이는 젤의 음성. 

      그리고 그답지 않게 날카로운 음성으로 반말을 하는 노웬. 

      칸의 옷자락을 놓지않고 꾹 잡고있는 울시아의 모습.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는 것뿐인데 그것에 이질감을 느끼는 자신을 이해할수가 없

      다. 고개를 갸웃하며 뒤로 물러나 계단의 턱에 몸을 기댄 가흔은 위로 사라지는 옷

      자락을 멍하니 바라보고 서있을수 밖에 없었다.

      "밥.. 안 먹을래?"

      "...아뇨. 그다지 생각이 없네요."

      한참동안 방문밖에서 서성이다 용기를 내 안으로 들어와 식판을 내밀었건만 기운

      없이 돌아오는 가흔의 대답에 어깨를 축 늘여 뜨렸다. 

      그런 오브의 모습을 보던 유크렌의 그의 옆구리를 찌르며 다시 해보라는 표시를 보

      냈지만, 그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근처의 테이블 위에 식판을 올려놓을 뿐이었

      다. 

      기분이 안좋은 것을 굳이 들어내 두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수

      가 없다. 가슴에 돌 하나가 얻힌것 같이 답답하기만 하다. 

      창에 기대 밖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가흔은 저도 모르게 오른편에 보이는 2층 

      구석의 칸이 누워있는 방에 시선을 두었다. 

      오전에 와서 지금껏 계속해서 치료를 받고있는 모양인지 불은 여전히 밝은채로 부

      산한 사람들의 움직임이 들려온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가흔은 칸이 있는 있는 

      창 아래쪽에 서있는 인영에 눈을 가늘게 떴다. 

      어두워서 식별이 힘들었지만, 붉은 머리를 지닌 저정도 키의 사내라면 낮에 본 그 

      율시아의 아들이라는 자밖에 없다.

      "............."

      계속해서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차차 표정들도 눈에 들어온다. 

      칸이 있는 창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그 눈동자엔 알수없는 고뇌를 읽은 가흔은 창

      틀에 올려논 손을 쥐었다. 

      입술을 깨물고 있는 그 얼굴에서 뭔가를 받아 들이고자 하는 것과 그것을 거부하려

      는. 강렬한 감정의 뒤엉킴을 읽은 가흔은 더이상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어..어디 가게?"

      갑자기 앉아있던 창틀에서 일어난 가흔이 곧장 문앞으로 다가가 손잡에 손을 올리

      자 용이 긴장하며 물었다. 

      자신의 미숙한 표정연기로 오브는 속일수 없겠지만, 저 작은 용은 충분히 속일수 

      있다. 입꼬리를 올리며 평소의 웃는 얼굴을 만들어 보인 가흔은 자신의 얼굴을 바

      라보는 유크렌에게 잠시 산책을 다녀오마고 말했다. 

      자신의 말과 표정에 안도의 기색을 내비치는 유크렌의 얼굴을 보았지만, 애써 오브

      와 시선을 마주치는 것을 피한 가흔 방에서 나와 어두운 복도에 시선을 주었다. 

      빛이라곤 촛불의 불빛이 전부인 긴 복도가 마치 입을 벌리고 있는 괴수의 입안 같

      다고 느끼는 그였다.

      "아직 깨어나실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포션은?"

      "이미 사용해봤어요. 부러진 뼈와 상한 살들은 이미 완치되었지만, 마력에 명중한 

      상처는 외향적인 치료만으론 다 나았다고 할수없죠."

      딱딱한 안색으로 설명하는 젤의 얼굴을 바라보던 노웬은 창백한 낯으로 누워있는 

      칸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이런 모습을 또다시 보게 되리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

      았던 노웬은 가흔을 구하러 선뜻 그를 보낸 자신을 탓했다. 

      미간을 찌부리고 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젤은 여러번 고심한 결과 얻어낸 최

      상의 방법을 입에 담았다.

      "지금 당장 워프로 라프헨을 불러오겠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대나 라프헨 둘다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전 참을수 있어요, 그리고 라프헨에겐 라헨이 있으니... 잘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로썬 그길만이 최선이라 생각되는 군요."

      단호한 결심이 어린 젤의 얼굴을 내려다 보던 노웬은 고개를 저으며 결국 물러 날

      수밖에 없었다. 평소엔 말을 무척이나 잘듣던 아이가 한번 결심한 것은 죽어도 해

      내려는 의지를 잃은 이상 그녀의 뜻을 꺽을만한게 노웬에겐 없었다. 

      노웬의 표정을 보고 승낙을 받았다고 생각한 젤은 입가를 올리며 칸의 손을 잡은채 

      침대가에서 떨어지지 않는 율시아에게 시선을 주었다. 

      촛불이 비칠때마다 묘한 음영을 그리는 그 붉은 머리카락을 바라보던 젤은 새삼 그

      녀가 가엾다고 여겼다. 저토록이나 마음을 쓰지만, 결코 칸이 마음이 그녀에게로 

      갈수 없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율시아님과 칸님을 부탁드립니다. 한번 다녀오면 이번엔 일주일동안 잠들어 있을 

      테니깐요."

      "...걱정마십시오."

      딱딱하게 굳은 노웬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어보인 젤은 침대에 엎드린 율시아에

      게 자신의 가운을 벗어 덮어 주었다. 

      칸의 마음 한조각이라도 얻을수 있었다면 그녀도 그리고 그녀의 아들은 아마도 지

      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문밖에 서서 들어오지 않은 돔의 존재를 눈치

      채고 있었던 젤은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켜 방에서 나왔다. 

      역시나 문옆에 팔장을 낀채로 서있는 붉은 머리의 청년을 발견한 젤은 쓴웃음을 지

      었다. 

      "안에 들어가지 않으시는 겁니까? 돔님."

      "......내가 왜 안에 들어가야 하는 거지?"

      "이렇게 어두운 곳보단 안이 더 따뜻하답니다."

      부드러운 어조에도 변화가 없는 그 서늘한 얼굴에 그가 결코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

      리라는 것을 알게된 젤은 더이상 권유를 하지 않고 몸을 돌려 긴 복도를 빠져 나왔

      다. 

      일단 마력을 발동하려면 그만한 지지대가 있는 지하실로 가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 

      자신을 보호할 만한 사람을 데리고 간다면 그런 세세한 부분에까지 신경을 쓰지 않

      아도 좋겠지만, 안그래도 위험한 이곳에서 인력을 빼내려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

      다. 지하로 내려가는 마지막 계단에 발을 내딯은 젤은 건물의 정문을 열고 들어오

      는 인영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잠이 오지 않으시더가요? 가흔."

      "..........걱정이 되서..."

      거짓은 아닌 듯 가흔의 얼굴색은 상당히 초췌했다. 

      그답지 않은 모습에 걱정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였지만, 그녀에겐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에 의례적으로 칸이 누워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지하로 내려가는 문에 손을 

      뻗었다.

      "젤."

      " ? 왜 그런가요?"

      낮의 많이 다친듯한 칸의 모습에 이성을 잃던 모습이 아닌 예의 부드러운 얼굴이

      다. 

      그 얼굴에 뭔가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가흔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던 젤은 올라가서 칸의 얼굴을 보면 그분께서 무척이나 

      좋아하실 거라는 의례적인 말을 남기고 막아 두었던 것이 분명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쪽으로 사라졌다. 

      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비로소 숨이 트인 가흔은 공기를 들이 마시며 있는 

      힘껏 내뱉었다. 

      "............"

      올라 갈것인가 아니면 다시 밖으로 나가 방으로 갈 것인가에 대해 한참을 고민하던 

      가흔은 칸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에 천천히 계단을 밟았다. 

      가볍게 걸어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던 낡은 계단이었는데 신경을 써서 조심스

      럽게 오르니 작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밟은 계단에 시선을 주고 이층에 대다

      다른 가흔은 멀리 불빛이 흘러 나오는 문쪽으로 걸어가려다 그 문앞에 서있는 사내

      의 모습에 움직임을 멈췄다. 

      분명 아까는 아랫층에서 위를 올라려 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올라와 있다. 

      그런 사내에게 시선을 주던 가흔은 그와 얼굴을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고개

      를 돌려 계단을 내려 갔다.

      "...........?"

      멀리서 누군가의 대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가만히 서서 주위에 정신을 집중해 보인 가흔은 칸이 누워있는 방과는 반대편쪽에 

      나있는 곳에서 노웬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약간 톤이 높은 목소리는 분명 샤한이라는 자의 것이다. 

      옅듣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가흔은 어느새 그쪽으로 걸어가

      고 있었다. 

      "어...가.. 없..었다고."

      드믄드믄 들리는 소리를 자세히 듣기위해 벽쪽에 귀를 기울인 가흔은 정신을 집중

      했다. 

      "중간에 저 용인가 뭔가하는 애새끼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걸 나보러 어쩌라고? 

      그래서 칸님께서 찾으러 가라고 시켜서 잠시 떨어져 있었지 않습니까?"

      "전 분명 당신은 칸님보다 유크렌의 신상에 대해 더 주위를 기하라고 말것 같은 데

      요? 물론 유크렌시아가 중간에 사라지리라고 생각치 않았습니다만, 일단 그런 일

      이 벌어졌고, 문제는 당신이 저 유크렌시아의 곁이 아닌 칸남과 함께 나타났다는 

      거죠. 이게 무슨 의미를 뜻하는 겁니까?"

      "...난...! !"

      샤한의 한숨소리가 들려오고 답답하다는 듯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중간에 칸님이 저 용을 찾아오라고 말하시긴 하셨지. 그래서 그때는 녀석을 

      찾으러 가는 척을 했어요." 

      "그리고 중간에 되돌아 와서 칸님의 뒤를 따랐고요."

      "알면서 아까부터 왜 그런 말을 자꾸 묻는 겁니까?"

      도발하는 듯한 샤한의 음성에 가흔은 약간 놀랐다. 

      저 노웬의 집단에 있는 사람들 중에 저처럼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본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저 에스조차도 칸과 노웬의 사이에선 은근히 노웬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가. 

      화가난 듯 약간 톤이 높어진 음색으로 노웬이 샤한을 다그쳤다. 

      "칸님도 중요하긴 하지만, 저희들에게 있어서 저 유크렌시아라는 드래곤의 안위도 

      중요합니다. 가흔이 그를 천운으로 찾아서 함게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쩌란 말입니

      까?! !" 

      "..............."

      "무척이나 중요한 문..."

      콰 - 왕!!

      ".....! ! !"

      귀를 기대고 있던 곳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가흔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벽을 바라 

      보았다. 설마하니 자신을 눈치챈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던 모양인지 안에서 나오려는 움직임이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지키려는 건 칸님뿐이야! ! 저런 이상한 꼬맹이를 지켜는 것 따위를 왜 내가 

      해야 하는 거야?! ! 내가 칸님을 지켜 드리겠다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말이 많은 거

      야?! ! 내가 그를 찾지 않았다면 저 에스처럼 그놈들 손에 붙잡혔어! ! 그렇게 되면 

      손도 못쓰고 중앙으로 끌려간단 말이야! !"

      "샤한.. 목소리를 낮춰.."

      "치워! ! 난 네놈따위 말을 들으려고 이런곳에 있는게 아냐! ! 어째서 칸님은 계속 저

      런 모습인거야?! ! 정말로 의지를 잃은 건 아니겠지? 중앙의 놈들이 우리들을 정말

      로 해치우지 못해서 손을 놓고있는게 아니라 단지 건드리면서 반응을 즐기는 거라

      는 걸 왜 알지못해?!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거야?! ! 정말이지 분통터져, 화가 난다

      고! !"

      "..............샤한."

      샤한의 음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저택을 뒤 흔들어 놓을 것 같다. 

      양손을 마주잡고 가슴에 댄채인 가흔은 애써 대화를 이해해 보려 했지만, 하나도 

      알아먹을 수 없는 샤한의 말에 초조해 졌다. 

      "왜 이리고 있어야해? 우리들이 왜 이런곳에 있어야 하는 겁니까? 칸님은 왜 저러

      고만 있는 거야? 우리들은 이길수가 없어. 녀석들은 너무 강해. 세력이 크단말야. 

      그런데도 아직까지 우리들이 버티고 있는데, 칸크빌레님은 계속 저런 모습이잖아. 

      도대체 누구에게서 우리는 싸울 명목을 얻어야 하는 거냔 말야."

      흐느끼는 샤한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흔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내용을 알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이곳에선 단지 이방인에 불과한 자신이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할수도 안다고 해서 도움을 줄수도 없다. 

      단지 들은 이야기들으 머리속에 담을 뿐- 

      피로한 안색으로 몸을 돌리고 계단을 내려서려던 가흔은 그러나 자신의 앞에 서있

      는 사내의 모습에 걸음을 멈추었다. 

      설마하니 자신이 노웬과 샤한의 말을 옅들은 것을 다 본건가?

      사내는 가흔의 행동에 대해 별로 할말은 없는 듯 단지 노웬들이 있는 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낮과는 다른 독기빠진 그 태도가 묘하게 기운없어 보며 가흔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달싹거리려고 했으나, 돔이라는 사내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녀석은 비겁자야."

      듣자마자 남자가 말하는 비겁자가 누구인지 알수 있었다. 

      그러나 인정할수 없어 표정을 경직시킨 가흔의 얼굴을 내려다 본 돔은 입가를 비틀

      어 올렸다. 이런 녀석이 놈의 취향인 건가. 

      그 명백한 비웃음에 울컥하려던 가흔이지만 뒤에는 노웬과 샤한이 있는 상태여서 

      뭐라고 입을 열수는 없는 것이다. 단지 노려보기만 하는 가흔의 검은 눈동자를 바

      라보던 돔은 덮고있는 가운을 올리며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갔다. 

      삐걱. 삐걱.

      ".............."

      돔이 내려가고 한참이 지난후 다리에 통증을 느낀 가흔은 미간을 접으며 그제서야 

      그곳을 빠져 나왔다. 

      마지막으로 칸이 누워있는 방에 시선을 돌렸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가흔은 그가 건강할 때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눈부시게 빛나던 샹드리에. 

      수많은 사람들의 선망과 존경의 눈길들. 

      끝이 보이지 않던 붉게 빛나던 카펫.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 

      ..............그 모든것이 분명 나의 것이었거늘... 

      칸은 대리석 기둥에 등을 기댄 채 상석으로 걸어가는 소년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그가 화려하게 차려입은 신관들의 앞에 무릎을 꿇자 주위를 둘러싸던 수많은 사람

      들이 미소를 지으며 기대에 찬 눈동자를 빛낸다. 

      개중에 흥분을 참지 못하고 박수를 치는 성급한 자들도 있었다.

      아마도 몰랐을 것이다.

      폭군의 목을 벤 저 소년조차 전대의 길을 그대로 걸어가리라는 것을. 

      겉모양을 그럴 듯하게 꾸면 댄 모습만에 기대한 그들은 앞으로 소년이 이루려는 일

      들에 대해선 까마득히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호의에 찬 시선을 보내는 것이다. 

      입가를 비틀어 올려 보인 칸은 온몸에 퍼지는 통증에 미간을 찌뿌렸다. 

      통증이 점점 강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아 외부에서의 육신이 점점 깨어나는 모양. 

      계속 진행중인 광경들에 시선을 잠시 준 칸은 이내 눈을 감았다. 더 이상 과거의 일

      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 그냥 이대로.. 

      아무 생각안하고 어린채로 더 이상 자라지 않은채 아무도 자신에게 기대를 하지않

      은 채로 가만히 있고 싶다. 끌어내지는 의식을 거부하지 않은 칸은 점점 무너지는 

      주위의 환경을 서글프게 바라 보았다. 

      두번다시 꿈꾸지 않기를...

      "..........칸님."

      ".........."

      "정신 좀 차려 보세요."

      헐떡이며 자신을 내려다 보는 라프헨의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에 시

      선을 준 칸은 비죽히 웃어 보았다. 

      누워있는 자신보다 그가 더 아파 보였다. 

      자리를 바꾸어 줘야하는게 아닌가하고 장난스럽게 생각하던 그는 갑자기 자신의 

      위에 엎드린 라프헨이 통곡을 하기 시작하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꺽꺽거리는 라프헨의 내려다 보던 칸은 오른손을 들어 

      그의 등을 쓰다 듬었다. 땀에 젖은 등과 확연히 느껴지는 신열에 그가 얼마나 많은 

      힘을 들여 자신을 치유했는지 알수있게 한다. 

      "라헨은 같이 온건가?"

      이런 상태가 될 정도로 이 아이를 혹사시키다니..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괘씸하

      다는 듯이 노려보는 칸의 모습에 침대맡에 서있던 노웬은 이마에 손을 올리며 고개

      를 저었다. 

      죽었다 깨어 났다는 자각이 있기나 하는 건가. 이 사람은...  

      "물론이다. 다른 사람 걱정말고 자신의 몸이나 챙겨."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라헨이 다소 딱딱한 어조로 말하자 칸은 장난스럽게 한쪽 

      눈썹을 올렸다. 실따라 바늘 온다더니 그나마 라헨이 따라 왔으니 위에 엎드린 녀

      석에 대해선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것 같았다. 

      등을 쓰다듬던 손을 들어 이마를 만져보니 미미한 열이 느껴진다. 

      과연. 이런 열이 났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런 꿈이나 꿨지. 새삼스레 자신의 나약함을 본 기분은 그야말로 최악인지

      라 미간을 찌뿌리는 칸의 모습에 몸의 통증때문에 그런것인 줄 알고 라프헨의 안색

      이 달라진다. 

      그 얼굴을 확인한 칸은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 네 실력은 최고잖아."

      울것 같은 아니 이미 눈물에 젖어 엉망인 라프헨의 얼굴이 죄책감을 느끼며 손을 

      마구 저어대던 가흔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적발의 미망인의 모습을 발견하곤 안색

      을 굳혔다. 

      왠지 일어날때 부터 아니, 정신을 잃는 동안 그런 꿈을 꾼다 했더니 저런 여자가 곁

      에 있었기 때문인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칸의 얼굴에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

      런 라프헨은 문앞에 대야를 들고 서있는 율시아의 모습에 마찬가지로 안색을 굳혔

      다. 

      그런 두사람의 반응에 벽에 기대고 있던 라헨은 서있는 노웬에게 저 여자를 치우라

      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그다지 부딫히고 싶지 않은 여자이기에 직접 나서기 싫다.

      "부인.. 잠시 드릴 말씀이 있답니다."

      "아..아뇨. 하르스경. 혼자서 나갈수도 있답니다."

      경직된 방안의 분위기에 표정을 굳히던 그녀는 무안한 처지를 도와주려는 노웬의 

      배려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더이상 저들에게 미움을 받기 싫으니 얌전히 물러나 주는 것이 옳았다. 게다가 걱

      정하던 칸의 상태도 많이 좋아진것 같고 말이다. 

      마음은 그렇게 먹었지만 곧 울것같은 얼굴은 어쩔수 없는 법. 그런 율시아의 모습

      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노웬이지만, 그녀의 편으로 적극적으로 나설수 없는 것은 자

      신의 문제가 아닌 이방 모두가 그녀와 마주치는 것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리라. 

      대야를 옆에 지지대에 올려놓은 율시아는 칸을 부탁한다는 말과 방안의 젤의 간호

      는 자신이 한다는 말을 남기고 방에서 나갔다.

      탁.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그녀가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것을 묵묵히 듣던 칸은 눈를 떠서 자신을 바라보는 노웬의 얼굴을 노려 보았다. 

      도대체 무슨 심산으로 자신을 이런 곳에 둔것인지 그의 진의파악이 눈에 보일 듯 

      하지만, 그것에 대해선 이미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러는 것은 정말이지 

      짜증이 난다. 

      노려보는 칸의 시선을 외면은 노웬은 라헨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동안 여행하는 것에 꽤나 어려움이 있었던 모양인지 라프헨을 배려해 언제나 단

      정하게 깍여 있던 수염이 드문드문 나있다. 

      안 그래도 험악한 인상인데 수염까지 있으니 완전 산적이다. 

      "칸님이 깨어 나셨으니 나머지는 저에게 맡기고 라프헨을 데리고 가서 쉬도록 하세

      요."

      "아뇨, 제가 좀더 곁에 있어 드릴수 있어요."

      마력에 당한 상처는 완전히 치유했다는 결정을 내릴수 없을 정도로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쉬라는 말에 안색을 달리하는 라프헨의 얼굴을 갸륵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노웬이

      지만, 그의 생각을 정정할 의사는 없는 듯 하다. 

      "쉬시고 힘을 비축해 두시는게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다면 더 효울적이죠. 게다가 

      칸님뿐만 아니라 여기계신 라헨의 상태도 그닥 좋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아."

      "가서 쉬십시오. 라헨 라프헨의 부축을 부탁드립니다."

      "그러지."

      칸의 안부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라프헨의 상태도 걱정인 라헨은 노웬의 말에 토를 

      달지 않고 칸위에 엎드려 있는 라프헨의 몸을 일으켰다. 

      노웬의 말에 생각한 바가 있는지 거부하지 않고 안기는 작은몸에 라헨은 미간을 접

      었다. 

      미열이 느껴지는게 빨리가서 뉘어야 겠다.

      "어느 방에 있는지 알겠지. 칸의 상태가 안 좋아지만 망설이지 말고 불러라."

      "아아- 물론. 한창 중일때도 찾아갈 용의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노웬의 장난스러운 말에 라프헨의 얼굴이 붉어졌다. 

      다른 이들의 상처 치유는 그냥 힘을 발산하면 되는 것이나, 자신과 라헨의 상처의 

      치료에는 성행위가 필수 불가결이라는 것을 알고 꼭 저렇게 듣기 민망한 소리를 해

      댄다. 

      얄밉다는 눈빛을 보내던 라프헨은 자신의 허리를 감싸는 커다란 손에 힘을 빼고 순

      순히 안겼다. 

      다른 어느 곳보다 자신이 제일 안심을 얻을 수 있는 장소는 라헨의 품속뿐이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방에서 나가는 라헨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노웬은 문이 닫히자 숨

      을 내쉬고 의자를 끌어 칸의 옆에 앉았다.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알수 있게 한다. 

      하지만 쓸데없는 것으로 언쟁을 하는 것은 그의 타입이 아닌고로 재빨리 해명에 들

      어갔다.

      "가흔군은 실종인데 칸님의 기는 흐틀어 지고, 거기다 요크발까지 이곳에 있다는 

      정보를 얻은 이상 저희들이 어디에 몸을 맡길수 있겠습니까? 저희들은 놈들이 쳐

      들어 왔을때 변변찮게 대항할 동료들도 없고, 어디를 숨어도 중앙국의 속하에 있는 

      이곳에서 안전할수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지요. 

      이곳에 머무르게 된 것은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나도 이곳이 제일 안전하다는 것은 알아. 하지만...! !"

      "감정의 문제시라면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죠. 율시아님의 저택이 아니라 파오의 집

      에 머물고 있다고- 아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곳은 원래 그의 저택이었죠."

      친분이 있는 더벅머리 사내의 얼굴을 떠올린 칸은 입을 다물었다. 

      물론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문제 될것이 없지만, 그래도 그 여자가 있는 곳에 함께 

      있기 싫은 감정은 어쩔수 없는 거다. 

      미간을 접은 채인 칸의 몸을 몇번 두들어준 노웬은 미소를 지었다. 

      여러가지 일을 많이 쳐서 쇠사술로 묶어 다니고픈 골치덩이인 인간이나, 정신을 잃

      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이렇게 날뛰는 모습을 보는게 정신건강에 더 좋

      다.

      "칸님. 가흔군과 라프헨을 보호한다고 생각하시면 맘에 더 편해지실 겁니다."

      "..........."

      "게다가 요크발과 카일이라는 자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안 이상 오래 머무를 생각

      은 없답니다. 당신이 쾌차하는 즉시 이곳을떠나 서쪽으로 갈 생각이니, 이곳이 싫

      으시다면 빨리 건강을 회복하시면 되는 거지요."

      "....능글맞은 녀석."

      "칭찬 감사드립니다."

      노웬에게 이를 들어내 보이는 칸이지만, 이곳에 가흔이 있다는 소리에 한시름 놓았

      다. 전부터 가슴을 답답하게 내리누르던 돌을 사라진 느낌에 그는 한숨을 쉬며 눈

      을 감았다. 

      이것저것 생각할 일들도 해야 할일도 많다. 

      우선적으로 건강을 회복해야 하고 가흔을 만나 얼굴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시건

      방지고 새파랗게 어린 카일이라는 놈에게 붙잡혔을 것이 분명한 에스도 구해내야 

      한다. 

      산넘어 산이라며 한탄하던 그는 손을 뻗치는 수마에 대항하지 않고 편안한 숙면상

      태로 들어갔다. 

      "............"

      칸이 잠든것을 확인한 노웬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역시나 벽에 기대 서있는 율시아의 모습에 미간을 접은 그는 결국 쓴소리를 하는 

      악역은 자신이 맡을수 밖에 없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칸님께서 잠드시긴 했지만, 누구덕에 원체 감이 예민하신 분이니 잠든 틈을 타 곁

      에 있으실 생각이시라면 관두시길 권해 해드립니다."

      ".....전..."

      "모처럼 편한 얼굴로 잠드셨습니다. 저로썬 그 잠을 방해하고 싶은 생각은 없군요."

      "난....아..!"

      가슴에 손을 올린채 절박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말하려던 율시아는 노웬의 뒤에서 

      걸어오는 가흔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돌리고 한손으로 볼을 감싼채인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돌린 노웬은 자신에

      게 웃어보이며 다가오는 가흔의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가장 마주하기가 껄끄러운 두 사림인데 설상가상으로 제일 안좋은 타이밍으로 마

      주하게 됐다. 

      "칸이 일어났다는 소리를 들어서 왔는데... 들어가면 안되나요?"

      저택 밑에서 안절부절해 하고 있던 가흔은 지나가던 라헨으로부터 칸이 일어났다

      는 소식을 듣고 단숨에 올라오던 참이었다. 그러나 문앞에서 들어가지 않고 서있는 

      노웬과 율시아의 모습에 들어가면 안되는 건가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처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는 노웬의 얼굴을 확인하고 역시나 들어가선 안되

      는 건가하고 낙담하던 가흔이지만, 무슨 생각인지 문앞에서 비킨 노웬이 안으로 들

      어가 보라고 한다.

      "칸님은 방금 잠이 드셨습니다. 마침 곁에서 간호할 사람이 없었는데 잘 오셨습니

      다."

      "아, 그런가요? ....율시아님께선 같이 안 들어가는 겁니까?"

      "전..."

      노웬의 말에 화색을 짓던 가흔은 그와 동시에 안색을 굳히는 율시아의 모습에 눈치

      를 보며 물었다. 같이 들어가기를 권하는 말에 홍조를 띄우던 율시아는 그러나 옆

      에 있던 노웬이 단호한 표정을 짓자 입술을 깨물며 뒤로 물러났다.

      "율시아님은 저와 용무가 있으니 들어가 보세요."

      "......네."

      묘한 두사람의 분위기에 뒷목을 주무르던 가흔은 인사를 하며 문안으로 들어갔다.

      짹..짹짹.

      근처가 커다란 산맥에 둘러쌓인 발챠답게 아침마다 시끄럽게 울리는 새소리도 여

      전하다.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돌리려던 칸은 이불이 댕겨지는 느낌에 감히 어떤놈

      이 자신의 모포를 같이 덮는 건가해서 무시무시한 안색으로 얼굴을 돌렸다. 

      "............."

      그러나 이불을 잡고 있는 사람이 다름아닌 가흔이라는 것을 본 그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안에 자신과 그 둘만이 있는 것을 보니 그 괘씸한 것들이 힘든일은 가흔에게 떠

      넘기고 다 쉬러간 모양이다. 

      반드시 싫은 소리를 실컷 해줄테다라고 생각하며 주먹을 부르르 떨던 그는 의자에 

      앉은 채로 침대에 엎드린 상태로 잠들어 있는 그 불편한 모습에 미간을 접으며 가

      흔이 깨어나지 않게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대에서 빠져나온 그는 가흔의 어깨에 손을 돌려 부축을 해서 침대에 뉘이려고 했

      다.

      "...........물어 볼게 많아요."

      "................."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이 생겼거든요."

      자신에게 한팔을 두른 채인 가흔이 감던 눈을 뜨고 조용히 속삭였다. 

      불과 몇센티 앞에서 눈을 가늘게 휘고 말하는 모습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칸은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뭐든지 물어봐."

      그 대답에 가흔은 치야가 들어나도록 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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