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55)

      "요크발이라는 사내는 중앙의 대귀족의 후계자인 남자야. 아니, 그의 아버지가 투

      병 생활을 하셔서 가문의 대내외적인 일은 모두 그 남자가 역임하고 있으니 실질적

      으로 말하자면 가문의 가주격이 되는 건가? 여하튼 평민들은 차마 우러르지도 못

      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온 탓인지 천성이 오만하고 잔인하지. 거기에 덧붙여 원하

      는 것을 이루기 위해 그 어떤 비겁한 수를 꺼리지도 않는데다 색을 엄청 밝히는 변

      태이기도 하고.... 그런 그를 칸님과 노웬님은 굉장히 싫어하셔. 

      그런대도 살려 보낸 이유는....."

      갑자기 주절대다 말고 입을 다무는 에즈의 모습에 가흔은 눈동자를 들었다. 

      누워있는 라프헨의 팔꿈치와 무르에 풀잎들을 덧대고 있었기에 그녀의 얼굴을 보

      려면 얼굴을 들어야 했던 것이다. 

      알아 듣지도 못하는 말들을 일일이 들어서 어디 도움이 되겠느냔 만은 그냥 들어주

      는 것도 좋겠다 싶어 얀전히 있었다. 그런 가흔의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 보던 그녀

      는 들고 있던 수건에서 물을 짜내 라프헨의 이마에 올려 놓았다.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했지만 여기까지가 자신이 말할수 있는 전부였다.

      "왕가의 인가를 얻는 보물을 지니고 있는 가문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높은 만큼 

      역사도. 왕가와의 연계성도. 넓고 깊은 법이니 말이지요."

      "노웬님."

      노웬은 외부 사람들에게 입이 가벼운 자들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였다.

      어쩌다 같이 다니기는 했지만 에즈가 아무리 좋아한다 한들 가흔은 외부인이기에 

      그런 그에게 이것저것을 말해댄 그녀의 행동은 어찌보면 위반이라고도 할수 있는 

      것이다. 

      몸을 굳히며 마차 뒤로 물러 노웬이 들어갈 자리를 마련하는 에즈를 보며 마찬가지

      로 뒤로 물러나려던 가흔은 옆으로 다가와 움직이지 못하게 팔을 움켜잡는 노웬의 

      행동에 자세를 멈출수 밖에 없었다.

      노웬이라는 남자가 자신에게 호의를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이미 분위기로 파악한 

      가흔은 그가 자신의 팔을 잡는 행동이 무척이나 껄끄러웠다. 

      팔을 비틀의 자신의 손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에 웃어보이는 노웬이지만 무시할수 

      없는 소년의 악력에 이내 미소를 지우고 낮의 소란으로 거의 헤지다 싶이 한 손의 

      붕대를 단숨에 걷어 내버렸다.

      "...이건..!!"

      들어 난 가흔의 손안을 보고 소리를 낸것은 에즈로, 그녀는 딱보기에 귀하게만 자

      랐을 것 같은 가흔의 손이 이런 검사의 것일지는 몰랐기에 입술을 깨물며 좀더 자

      세히 보기위해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근육이 뭉쳐진 장소와 여기저기 나있는 생체기들. 

      꽤나 휘두르지 않았다면 결코 생길수 없는 것들이었다.

      "...첩자였던 것인가..?"

      비탄이 잠긴 그녀의 음성에 노웬은 몇번 고개를 저었다.

      "손을 붕대로 감은 것은 라프헨과 라헨의 행동이다. 이 꼬맹이가 의도한 일은 아니

      라는 것지."

      "하지만.. 언어도 다르고 기억도 없는데 손만은 검사의 것이라니... 너무도 수상합

      니다."

      가흔을 비호할 때는 언제고, 금새 하얀 바람의 단원으로 돌아와 가흔의 정체를 캐

      내려는 에즈의 모습에도 노웬은 가흔의 손안을 가만히 바라 보고만 있었다. 

      갑자기 손안의 붕대를 푸는 기행동을 했지만서도 결코 대항할 수 있는 남자임을 알

      기에 얌전히 있던 가흔은 라프헨이 미약한 신음성을 내자 손을 뿌리치고 몸을 돌렸

      다.

      신음소리에 팔을 뿌리치고 라프헨에게 달라붙는 행동을 한동안 바라보기만 하던 

      노웬은 뭔가를 정한 듯이 눈을 감았다 뜨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일은 어차피 밝혀질 일이니, 에즈 너가 책임지고 이 아이가 검을 쓸수 있도록 준

      비시켜 둬라."

      "노웬. 그 말씀은..?!"

      "어차피 같이 다닐 아이, 하루라도 빨리 제 몫을 할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겠지."

      통보하듯이 말한 노웬은 망설임없이 그대로 마차에서 나가 자신의 천막으로 걸음

      을 옮겼다.

      그에 맞추어 뒤로 달라오는 에스는 확인하곤 그는 바로 정리하고 떠날 채비를 하라

      고 지시했다. 

      요크발이 이곳에 있으니 사이키라는 쥐새끼도 근처에 숨어서 이쪽의 동향을 살피

      고 있음이 분명하다. 몇번을 겨루어도 끝나질 않을 지리한 싸움이 슬슬 물리기도 

      하려만 그들은 매번 덤벼오는 것이다. 

      그런 쪽에 투자할 돈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차라리 땅바닥에 뿌려댈 것이지. 

      작게 혀를 차며 거칠게 천막안으로 들어선 노웬은 안에 앉아있는 인물을 확인하곤 

      움직임을 멈췄다.

      "어-이."

      자신의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꼰채로 손을 흔드는 칸의 행동에 그는 실소를 흘렸다. 

      단장의 지위가 다른 나라의 왕과 버금가는 하얀 바람단 안에서 자신에게 이토록 무

      례한 행동을 하는 자는 전무하기에 칸의 이런 돌발 행동은 그를 당혹스럽게 하곤했다. 

      만약 이런 황당한 일을 칸이 아닌 다른이가 했다면 바로 목을 쳤을 거라고 생각하

      면서 그는 선반위에 올려져 있는 대야의 물을 떠 손과 얼굴을 씻곤 수건으로 얼굴

      을 닦으며 외관상 소년으로 보이는 자에게 다가섰다. 

      "요크발에게 상처를 입었다 들었습니다."

      "그다지- 긁힌 것 뿐이지만, 라프헨이 쓰러지기 전에 봐주어서 괜찮아."

      "그렇군요."

      요크발이 결국엔 숲으로 사라지자 쓰러질듯이 달려온 라프헨이 칸의 팔에 매달려 

      정성을 다해 치료를 하던 모습이 떠올라 노웬은 수긍하듯이 고개를 주억 거렸다.   

      "라프헨은 아직이야?"

      "상처는 없지만 꽤나 시달려서 말입니다. 조만간 라헨이 찾아 갈터이니 그리 걱정 

      할 필요는 없겠죠."

      "베아트리체는?"

      베아트리체?

      알수없는 이름에 순간 이 작은 인간이 또다시 사람을 주워 온것인가하고 생각했지

      만 볼이 나있는 미미한 홍조과 시선을 피하는 폼에 그 상대가 누구인지 간파한 노

      웬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 위에 서류을 집어 들었다.

      "그에 관해선 다음부턴 당신의 지도를 바랄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이야?"

      말을 체 들어보지도 않고, 귀찮은 일을 맡기려는 것인가 지레짐작 해 이를 들어내

      는 칸의 바라보며 서류의 귓퉁이를 손가락으로 몇번 두들인 노웬은 입을 열었다.

      "앞으로 같이 다닐 아이에 대한 검술지도를 부탁드리고자 하는 겁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닫혀진 문 사이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지만 한치의 얼굴변화 없이 문을 두들인 사

      이키는 그대로 손잡이를 잡고 안으로 들어섰다. 

      후끈한 열기와 비릿한 내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별 다른 내색없이 안으로 

      들어선 그는 창가로 다가가 양쪽으로 문을 열었다. 그렇게 세번째의 창문을 열고 

      나서야 소년을 허리 위에 올리고 반복운동을 하던 요크발이 움직임을 멈춘다. 

      접합을 푸는 과정에서 질척한 소리가 울리는 대다 무척이나 선정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도 요크발과 사이키, 두사람의 얼굴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난감해 하는 것은 그들의 사이에 낀 소년 뿐이었다.

      사이키는 그 존재가 병사들 중 가장 어리고 앳띈 외모를 지닌 자라는 것을 깨닭고 

      나서야 무표정을 풀었다.

      "병사는 건들이지 말라고 누누히 말씀 드렸습니다만-?"

      "이런 식으로라도 욕구를 풀지않는 다면 미쳐 버릴꺼다."

      물수건으로 몸을 대충 닦은 요크발은 근처에 놓여져 있던 욕의를 들어 몸을 가렸

      다.

      "뭐하면 그대가 풀어줘도 상관은 없는데 말이지."

      불쾌한 발언에 고운 이마가 찌뿌려 졌지만 이내 푼 사이키는 창가에 서서 입을 열

      었다.

      "상부의 지시없이 칸크빌레 일행과 접촉한 것에 모잘라 유능한 병사 다섯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부과로 상대들에게 우리들의 유무까지 알려 주셨으니 친창을 해드

      려야 할까요?"

      "그대가 원한다면."

      "잘하셨습니다."

      능글맞은 대답에 돌아온 것은 칼날같은 냉소였다. 

      분을 못참은 요크발은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촛대를 들어 사이키

      에서 내던졌지만, 그대로 창밖을 날아가 버렸다. 

      잡히는 대로 집어 던지고 부숴대는 그였지만 사이키를 향하 두번은 던지지 않았다. 

      그런 사내의 난동이 멈추기만을 기다리면 사이키는 1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안정되

      어가는 요크발의 기를 확인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대로 가다간 칸크빌레 일행은 남쪽 도성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대로 두워서 

      그들이 자금력을 얻을수 있도록 둘수는 없는 일이지요. 

      다음에 총공격이 있을 겁니다."

      "..............."

      "그때까지만 이라도 부디 자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할말을 마친 사이키는 그대로 몸을 돌려 요크발의 침실에서 나갔다. 

      사라지는 보라색의 잔영을 눈으로 확인하던 요크발은 벽에 매달려 있는 자신의 검

      을 빼내어 화려하기 그지없는 침대를 두동강 내버렸다. 

      보석을 가공하여 만든 침대는 요란한 소리를 내어 무너져 있렸지만, 그 소리를 듣

      고도 나타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적발의 사내가 심기가 불편할 때 건드리는 것은 곧 사신의 앞에 대령하는 꼴이

      란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양손으로 검을 들어올린 요크발은 어제 오후에 상대했던 칸크빌레의 얼굴을 떠올

      렸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꼴사나온 어린애의 얼굴이었거만 자신은 그를 이긴적

      이 한번도 없었다. 저번 마을에서 그에게 베인 상처는 다 낳아건만 이직도 쓰라림

      이 남아 있는 듯 하다.

      "다음 번엔... 반드시 베어 버리겠다."

      이를 악무는 그의 입가에 가는 혈선이 흘러 내렸다. 

      덜컹.

      덜컹.

      마차위에 가만히 앉아있는 가흔은 흔들리는 몸을 그대로 두며 멀어지는 풍경을 말

      없이 바라 보았다. 

      자신이 아는 기억이 정말이라면 이렇게 이동하는 운송수단은 그야말로 원시적인 

      것이지만, 그것을 내색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의 기억이 과연 정말일까하는 의문 때

      문이다. 

      지하철이나 버스 자동차, 하다못해 자전거라는 것도 기억나고 어떻게 움직이는 지

      도 생생히 머리속에서 그려지건만, 현재 그가 있는 세상과 이곳은 너무도 동떨어지

      는 것들 태반이기에 과연 그것들이 실제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실제이고, 머리속에서 움직이는 영상들은 전부 자신이 만든 

      허구가 아닐까?

      그런 것 치곤 너무 생생하고 실제감이 있어 무작정 상상이라고 치부 할수도 없으니 

      답답하다. 

      "심심하면 말에 타볼래?"

      다가온 에스가 타보라는 듯이 자신이 앉아있는 안장을 두들였지만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말이라는 것도 타본 기억이 있지만 지금은 가만히 있는 것이 더 나을 듯 싶었다. 

      무기력하게 앉아있는 가흔의 모습에 에스는 잠시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말머리를 돌려 무리의 앞쪽으로 이동했다. 

      적이 한번 나타났으니 다시 언제 어디서 어떤 놈들이 나타날지 모르기에 가흔 하나

      에게만 신경을 쓸수 없었던 것이다. 

      "........."

      멀어지는 에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가흔은 돌려진 옆얼굴에 느껴지는 시

      선에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바라본 것이 분명한 사내는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시

      선을 돌리며 딴청을 부린다.

      아까부터 이런 식이다. 

      마차 밖에 앉아있는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면 어김없이 눈을 

      피하고 안 본것처럼 하는 거다. 

      괴롭히는 거라고 생각하기엔 상대방들의 행동이 너무 조심스럽다. 

      탁.

      그냥 앉아있기도 불편했기에 마차에서 내린 가흔은 뒤에서 따라오는 라프헨이 있

      는 마차로 뛰어갔다. 

      흔들리는 앞머리를 뒤로 넘기며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자 그런 자신을 보며 말을 

      멈춘 이들도 몇몇 보였지만, 신경쓰지 않게 달리는 속도를 더 높혔다. 

      이렇게 밖에 앉아있어 남들의 구경거리가 될 바엔 마차안에서 라프헨과 있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래, 같이 있으면서 글도 배운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거다.

      말이 통하면 자신이 진짜 어디에서 왔고, 잃어버린 기억도 찾을 수 있을 거다.

      만역한 기대감을 안고 단번에 라프헨이 누워있는 마차에 다다른 가흔을 숨을 몰아

      쉬며 마차 뒤에 올라 탔다. 순간 돌이 걸렸는지 마차가 크게 튀어 떨어질뻔 했지만, 

      균형을 잘 잡아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이상하군]"

      겨우 중심을 잡고 마차뒤에 매달린 가흔은 앞쪽엔 한 마차에 여러명의 남자들이 둘

      러싸 있던 것에 반해 주위가 무척이나 한산한 라프헨의 마차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러다 아까 그 이상한 녀석들이 오면 라프헨이 먼저 당하는 건 아닐까?

      이런 자신이라도 옆에 있어주면 더 나을거라는 생각에 역시 오기 잘했다고 가흔은 

      고개를 끄덕였다.

      덜컹.

      덜컹.

      흔들리는 마차위에서 기둥을 잡고 몸을 지탱한 가흔은 한손으로 마차의 천막을 조

      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만약에라도 잠들어 있을 라프헨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다.

      천천히 들어나는 천막안에 라프헨이 잘 누워있나 고개를 앞으로 내민 가흔은 그러

      나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숨을 들이켰다.

      "..............."

      저도 모르게 뒤로 몸을 물린 가흔은 소리없이 바닥에 한발을 내리고 흔들림에 맞추

      어 완전히 마차위에서 내려섰다. 

      가만히 서있는 가흔을 뒤로하고 마차는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가흔-!"

      한참을 그러고 서있던 가흔은 멀리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에스의 모습에 굳은 얼

      굴을 애써 풀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다음 마차와 그것을 호위하는 사람들 몇몇히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끼익.

      "..........." 

      뒤에서 기척을 느낀 라헨은 얼굴을 돌려 보았다. 

      그것에 맞추어 흔들리는 장막사이로 검은 머리카락 몇올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내 사라져 버린 잔영에 그는 잠시동안 뒤를 돌아보는 자세를 유지하다 다시 아래

      로 시선을 주었다. 

      잡티하나 없는 고은 피부와 결좋은 초록색의 머리카라이 바닥에 어지러히 흩어져 

      있었다. 그 머리카락을 들어 한올한올에 입을 대던 라헨은 몸을 아래로 내렸다. 

      그것에 맞춰 의식이 없는 육체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는 움직임을 멈추

      지 않았다.

      할짝.

      이마에 흐르는 땀이 라프헨의 콧잔등에 떨어져 혀로 그것을 핣은 그는 시선을 내려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려져 있는 가느다란 허벅지에 시선을 주었다. 

      손안에 잡혀있는 무릎엔 이미 상처가 느껴지지 않았다.

      "...라프헨."

      조금 만 더 하면 육체적인 상처는 물론이거니와 무리하게 힘을 써서 소모한 정신적

      인 피로도 치유 될 것이다. 커다란 덩치 아래에 깔려 흔들리는 작은 육체가 가엾어 

      라헨은 손을 들어 부드러운 볼을 쓰다듬었다.

      얼굴을 내려 라프헨의 볼에 비비자 아기같은 보드라운 피부가 더없이 사랑스러운 

      기분을 불러 일으킨다.  

      라프헨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당분간은 이러고 있자고 그는 생각했다. 

      라프헨의 마차를 보내고 멍하니 있던 가흔의 모습에서 무엇을 알아 낸것인지 안색

      을 굳힌 에스는 움직이려 하지 않는 가흔을 억지로 들어올려 자신의 앞에 앉히고 

      함께 이동해 주었다. 

      그 나름대로 신경 써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런 그의 마음에 고마움을 표

      시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생각뿐으로 직접적으로 들어내 고

      마움을 표시할 수는 없었다. 

      그런 가흔에게 아무것도 묻지도 물어보지도 않은 에스는 중간에 여장을 풀때까지

      도 곁에 있어주다 노웬의 부름을 받고서야 무척이나 미안한 표정으로 가흔의 곁에

      서 떨어졌다. 

      "에즈 곁에 있으면 안전할거야. 그녀 곁에 꼭 붙어있도록 해."

      "............."

      "금방 다녀올 테니. 기다려."

      마지막까지 에즈에게 맡기는 세세함을 보여주는 에스에게 꼭 고맙다는 뜻을 전하

      기로 하고 멍하니 마차에 기대 앉아있는데 머리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 진다. 

      "기분이 별로인 모양이야."

      어제 만났던 기분나쁜 남자와 비슷한 머리색깔 이었지만 그보단 떨어지는 싸구려

      같은 느낌을 풍기는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가 앉아있는 가흔을 내려다 보았다. 

      명백히 깔보려는 의도가 담긴 눈동자에 가흔은 눈살을 찌뿌렸다.

      어차피 알아 듣지도 못하니 뭐라고 말해도 상관은 없지만, 남자가 온몸에서 풍기는 

      기운이 무척이나 맘에 들지 않는다. 

      "흐-음."

      묵묵히 앉아있는 가흔을 위 아래로 살펴보던 사내는 피식 웃으며 들고 있던 빵을 

      던져 주었다. 날라와서 받기는 했지만 가흔은 손안의 빵을 가만히 내려볼 뿐 이것

      을 먹어야 하는 것인가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 것은 쉽게 입에 대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단장님과 에즈가 신경좀 쓴다고 우쭐해하지 않는게 좋을 거다. 그래봤자 사람하나 

      죽인 적 없는 애송이 일테니 말야."

      "............."

      일부러 도발하려는 데도 별 반응없이 올려다보는 검은 눈동자에 기분이 나빠진 남

      자는 신경질 적으로 발을 차며 그대로 몸을 돌려 가흔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곳에서 그동안 가흔이 느낀 것은 에스나 에즈같은 사람들의 무조건 적인 호의아

      니면, 멀리서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이 하는 흥미어린 시선, 그리고 이번이 처음이

      긴 하지만 아까 남자의 알수없는 적의. 이 세가지였다. 

      뭐, 노웬이라는 남자의 관심도 굳이 알아보자면 적의에 비슷하지만 저렇게 노골적

      이지는 않으니 그냥 넘어가도 상관은 없겠지.

      합.

      들고있던 빵을 몇번 손가락으로 찌르다 그대로 한입 베어 물었다.

      설마하니 처음 본 사람이 빵에 독을 넣어 자신을 헤할 이유도 없을 터이니 일단 출

      출한 배부터 채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혼자서 있으려니 멀리 떨어져 보이지 않는 라프헨이 있던 마차안의 일이 떠오른다. 

      어두워서 잘 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자신이 본 그것은. 성행위라고 불리우는 것이겠

      지. 

      "............"

      어느 한쪽이 여자였다면 당황하며 물러나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겠지만 둘다 남자. 

      게다가 라프헨과 라헨이었다. 

      어감도 비슷하고 언제나 붙어 있기에 형제나 친구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사이였단 말인가. 여러 인종들이 다양한 사랑을 나누고 모랄이 점점 엷어지는 세상

      에서 살던 자신이니 동성애에 대해 새삼 날카롭게 반응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 

      다만, 이런 일은 처음인지라 나중에 라프헨을 마주 했을 때, 얼굴 표정을 잘 유지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강하다. 

      "벌써 뭔가를 먹고 있군요. 일부러 가져왔는데."

      노웬과 앞으로의 진로와 식량문제에 대해 간단하게 몇마디 나누고 돌아온 에스는 

      빵을 먹고 있는 가흔의 모습에 들고있던 음식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 놓았다. 

      마침 목이 마르던 터라 바구니 안에 들어있던 물병을 거내 몇모금 마신 가흔을 자

      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얼굴을 들었다. 

      의문이 담긴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던 에스는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소년이 겉보기엔 강해보이고, 에즈의 말에 따라 살펴본 손은 상당히 검을 휘두

      른 자의 그것이었지만, 저 눈을 보면 실제로 검을 잡고 싸운 경험은 물론이거니와 

      상대방에게 해를 한번도 끼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앞으로의 일은 독이 될까 아니면 더 성장할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인가.

      "말이 통하지 않은게 이렇게 답답한 일일 줄은 몰랐어요. 가흔."

      ".......[먹을 거야?]"

      빤히 바라보기에 들고있던 빵이 먹고 싶어 그런건가 하고 손을 내밀자 진한 웃음을 

      지으며 들고 있던 빵을 한입 베어문다. 

      입을 우물거리며 입술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손가락으로 턴 에스는 바구니에서 햄

      덩어리를 꺼내 얇게 베어낸 다음 가흔이 들고 있는 빵위에 올려 놓았다. 

      이런 긴 여행에서 햄은 상당히 귀한 음식으로 에즈 덕분에 겨우 한덩어리를 얻을 

      수 있었다. 

      "당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모르지만, 우리들은 검하나에 자신을 걸고 

      살아가고 있죠."

      알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열어진 입을 다물수 없었다.

      "살기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득을 위해 동료가 아닌 자들을 배

      신하는 것은 그리 드믄일도 아닙니다. 말이 좋아 최강의 용병단이라는 하얀 바람의 

      칭호를 얻었지만, 그건 수많은 시신을 쌓아놓고 올려진 명성에 불가하죠."

      "............"

      "살아남기 위해 그만큼 수없이 남을 죽이고 상처 입히고, 배신해 왔다는 뜻이기도 

      해요."

      ".....에스..."

      어두운 마음을 알아차린 것인지 검은 눈동자위에 떠오른 염려의 기색에 에스는 미

      소를 지었다.

      "그런 이곳에 당신같이 깨끗한 사람을 있게 한 것이 과연 잘한 일인지. 

      ...................전부 욕심인거죠."

      "............"

      "자. 먹을 까요?"

      가흔에게 말을 해주는 동안 그럴듯한 햄 샌드위치를 만들어낸 에스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가흔에게 한 덩이를 건냈다. 

      이만한 만찬은 그리 드믄 것이 아니기에 가흔에게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안색이 좋지 않은 채로 알수없는 말을 하던 에스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 샌드위치

      를 먹는 모습을 보고 있는 가흔은 잠시 그런 그를 바라 보았지만, 왜 안 먹고 있냐

      는 듯한 시선이 되돌아 오자 한숨을 내쉬며 건내진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맛있다."

      "오오~ 에즈에게 배운 거군요. 그래요 이런 음식을 먹을 땐 맛있다고 하는 겁니다."

      우물거리며 공통어를 사용하는 가흔의 모습에 에스는 화색이 도는 얼굴로 기뻐했

      다. 

      정체가 어찌되던간에 일단 단장이 받아 들이기로 한 이상 그는 자신의 동료가 되는 

      셈이니 하루라도 빨리 이 곳에 적응했으면 했다. 

      우습기만 한 단어의 사용이었지만, 그렇게 작은 것부터 배워가는 것이라고 생각하

      며 에스는 대견 스럽다는 듯이 가흔의 머리를 쓰다 듬었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군."

      나무 위에 앉아 멀리 에스와 가흔의 모습을 바라보던 칸은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시선을 내렸다.

      어느새 온건지 발치에 서 있는 라헨의 모습에 칸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라프헨은 괜찮아 진건가?"

      "그래. 먹고 기운 차리라고 음식을 주고 오는 길이다."

      "다행이군."

      "다행이지."

      양팔을 꼰채로 시선을 앞으로 두고 있는 라헨을 내려다 보던 칸은 머리를 긁적이먀 

      나무 위에서 내려왔다. 

      한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내려오는 것을 도운 라헨은 뭔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칸의 

      얼굴을 내려다 보며, 어서 말하라는 듯이 편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제.. 너무 무리하게 라프헨의 힘을 사용하게 해서 말이지. 정말... 미안."

      "굳이 너가 그러지 않아도 라프헨은 스스로 사용했을 거다. 그런 아이니."

      "................"

      "라프헨이 널 보고 싶어 하더군. 어디 상처가 없는지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다."

      어째서 이 형제들은 자신에게 이토록 헌신적일수 있는 걸까?

      이렇게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이유가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젠 숲에 아무리 적이 많은 상태였다고는 하나 칸이 마음만 먹었다면 굳이 라프헨

      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해치울수 있었다. 

      자신이 지켜야 하는 존재가 하나 더 늘었다 해서 잠시 초조해져 닥달을 한 것을 얼

      마나 후회하고 있는데, 이 남자는 그것마저 감싸주려 한다. 

      자신의 반신인 라프헨이 힘을 사용한다는 행위자체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두번 다신 라프헨의 힘을 사용하게 하지 않아. 절대로-"

      그렇게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의가 담긴 칸의 옆모습을 본 라

      헨은 입을 다물고 그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에 시선을 주었다. 

      노웬의 군사인 에스와 자신이 냇가에서 주은 소년 가흔이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만히 바라보던 라헨은 다시 고개를 돌려 칸의 

      머리카락을 내려다 보았다.

      저 소년이 저런 머리색이 아니였다면 굶어 죽던 노예상인에게 발견되 팔리든 절대 

      구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그의 머리카락이 비슷하기에 주워온 것 뿐이다. 

      그날, 칸을 만난. 별조차 보이지 않던 어두운 밤 물을 먹어 더 어두운 머리카락을 

      빛내던 칸과 비슷한 머리카락이 아니였다면ㅡ 말이다. 

      "슬슬 검을 다루는 법일 알려줘야 할것 같은데 말이지."

      "내 생각엔 검을 가르치는 선생으론 너와 나보단 샤한이 더 적합할 듯 해."

      "샤한?"

      싸구려 같이 보이던 적발에 볼을 가로지는 흉터를 떠올린 칸을 눈살을 찌뿌렸다.

      "당장에 쓸모있는 인간으로 만들려면, 오로지 죽이기 위한 검을 쓰는 샤한만큼 훌

      륭한 선생은 없지."

      라헨의 말에 칸은 순간 얼굴을 굳혔다.

      "그런 표정 짓지마. 네가 저 아이를 끝까지 책임 질수 없는 이상 자신을 지킬수 있

      을 만큼의 실력을 하루라도 빠르게 주는 게 좋아."

      ".......알고 있다고." 

      하지만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엔 상당한 차이가 있단 말이다.

      노웬에게서 가흔의 교육을 맞았기에 그의 검술 선생은 물론 이거니와 잠잘 곳에서 

      이동할 장소까지 전부 칸 자신이 관리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칸이 원한다면 검을 쓰는 일 없이 에즈처럼 안에서 음식만을 만들며 보호

      를 받게 할수도 있엇고, 직접 검을 들고 적들을 상대하게 할수도 있다.

      마음 같아선 라프헨과 함께 있게해 안전하게 있게 하고 싶지만, 노웬이 가만히 보

      호받기만 하는 녀석으로 만들라고 자신에게 신변을 양도한 것도 아닐테니 정말 골

      치가 아프다.

      "어-이."

      "엑?!!"

      가흔을 앞으로 어찌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던 칸은 갑자기 눈앞에 당사자가 나

      타나자 놀라 몸을 뒤로 물렸다. 

      나무에 요상한 자세로 부어있는 칸을 보며 가흔은 웃어야 할지 어때야 할지 상당히 

      고민했지만, 눈앞의 소년을 잘못건들리면 상당히 시끄러워 진다는 것을 알기에 한

      걸음 뒤로 물렀났다. 

      그런 가흔의 행동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칸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뒤

      에서 웃고만 있는 에스를 올려다 보았다.

      "아까 오웬님께서 같이 오라고 했는데, 두분을 보고나서야 생각이 나더라고요. 

      마땅히 할일이 없으시면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그런 말이 보고 나서야 생각나는 거냐?

      넉살좋은 에스의 태도에 순간 어이없는 기분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라헨은 앞

      장서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좀 늦었지만 오셨군요."

      천막안으로 하나씩 들어오는 일행의 보며 웃음을 짓던 노웬은 에스의 뒤로 나타난 

      가흔을 발견하고 눈썹을 위로 올렸지만 제지하지는 않았다. 

      상당히 수상하기는 했지만 칸과 에스가 눈에 뛸정도로 감싸기에 나가라고 할수는 

      없었다. 만약에 나가게 한다면 칸은 그자리에서 대들것이고, 비록 반대는 하지 않

      겠지만 에스 그도 그 나름의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뛰어난 외모이기는 하지만 두사람을 저토록 끌어들이는 매력이 어디에 있

      는 걸까?

      "또 무슨 일로 부른거야?"  

      "칸님께 용무는 없지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일을 추진했다간 싫은 소리 들을 

      것이 분명하기에 먼저 이쪽이 선두를 치는 것뿐입니다."

      "..말을 해도..꼭..."

      "앞으로의 일을 혼자서 결정할수는 없는 노릇이니 노웬님께선 칸님을 부르신겁니

      다."

      같은 의미건만 사람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웬에 말을 급히 정정하는 에스의 모습에 뭐라고 한바탕 쏫아 붓고 싶었지만 가흔

      도 있겠다 쓸데없는 싸움으로 시간을 잡아먹을 여유따윈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그런 칸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노웬은 상석에 펼쳐진 지도를 네사람이 볼수 

      있도록 돌려주며 근처에 놓여있던 길다란 막대를 들어 올렸다. 

      그런 그의 옆에서 언제나 서있는 여자는 차를 따라 사람들의 앞에 놓아 주었다. 

      여자가 건내준 차를 받아든 가흔은 정면쪽으로 보이는 지도를 내려다 보았다. 

      알고 있는 세계전도완 확연히 다른 커다란 하나의 땅덩이로 그려진 지도위엔 흘러

      내리 듯이 글씨들이 작거나 크게 쓰여져 있었다. 

      그림과 글씨만 다르지 알고있던 지도와 비슷한 생김새였다.

      "현재 위치는 여기고, 도착지는 여기. 지금까지의 속도로 가면 일주일안에 도착할 

      겁니다. 중간에 칸님과 마을에서 합류하기 위한 헤프닝과 가흔을 주워온 일. 그리

      고 어제의 유크발의 난입만 아니였다면 삼일로 줄어 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

      이죠."

      "정말 미안하게 됐군."

      "뭐, 칸님께 책임을 물으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그게 없는 거냐?

      으르렁 거리는 칸을 보며 고개를 살레살레 저은 라헨은 지도를 자세히 보기위해 몸

      을 앞으로 굽혔다. 

      그런 그를 위해 에스는 지도를 좀더 그쪽으로 끌어 주었다. 

      거리상으론 일주일이지만 좀더 속력을 내면 4일째 밤에 도착할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가려면 식사도 휴식도 전부 움직이는 와중에 해야만 한다. 

      하지만 유크발들이 또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기에 쉴때는 확실히 쉬어 체력을 

      비축해 두는 편이 더 안전하다. 

      "물론 갑자기 기습당할 위험성도 있지만, 저와 에스는 이곳에서 적들이 나타날 것

      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후빌 하샤발 계곡인가... 과연 그럴만도 하군."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곡 지내야 하는 계곡이다. 

      말이 계곡이지 절벽처럼 이어진 가파른 그곳을 빠져나가기 위해선 꼬박 하루가 걸

      리는 데다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간 반대편의 수심깊은 계곡아래로 추락할 위험성이 

      있어 한시도 쉬지않고 건너야만 하는 곳이다.

      적들의 위협도 있지만 계곡을 건너기 위해 노웬은 일주일이라는 기간을 잡은 것일

      거다.

      만약에 마차없이 말만으로 이동한다면 좀더 유리하겠지만, 저 마차안엔 도착지에

      서 가서 자금과 바꿀 귀한 것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마차를 버리고 몸만 갈수는 없다.  

      "지형에 맞는 전투방법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궁수들을 마차의 앞과 끝에 배치하

      도록 했습니다. 술사들은 중간에 위치해서 허공이나 밑에서 가해지는 공격을 막고, 

      검을 쓰는 자들은 한 마차에 2인 3조로 나누어 배치할 겁니다. 

      이 외에 뭔가 다른 의견이 있으시다면 이 자리에서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좀더 효율적인 싸움을 위해선 궁수들을 중간에 배치하면?"

      "그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좁은 길에 한편은 절벽입니다. 그들도 자신

      들의 목숨이 아까울테니 안전하게 위와 아래에서 압박해 올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렇군. 그럼 나도 중간에 있어야 하는 건가?"

      "아뇨. 칸님은 저와 함께 맨앞줄에 계시면 됩니다."

      물음이 담긴 칸의 눈동자를 마주한 노웬은 길게 미소 짓었다.

      "당신을 보여줌으로써 상대방에게 우리들의 존재의 정당성을 알리는 것도 상당히 

      훌륭한 심리전이랍니다."

      약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 일지는 몰랐다.

      능글맞은 미소를 짓는 노웬을 바라보며 칸은 어쩔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를 높이려는 행동을 자주해서 주위사람들을 초조하게 만드는 것을 즐기는 

      칸이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선 이쪽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자신을 숨긴다. 

      어디까지가 되는 것이고 어디까지가 안되는 것인지를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이라는 것은 노웬으로서도 상당히 위험한 부탁

      이었지만 싫다면 딱 잘라 거절 할 그가 가만히 있으니 일단 허락을 받은 것 같다.

      반역자라고 부르며 일방적으로 자신들을 공격하는 그들이지만, 칸의 얼굴을 보인

      다면 아무래도 공격의 날은 무뎌질 것이다. 

      "그럼, 난 이만 가서 움직일 준비나 해야겠군."

      "잠시만요. 가흔군에게 줄게 있습니다."

      " ? 줄거라니?"

      자신의 무리한 부탁을 들어 주었으니 그에 합당한 사례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지. 

      칸과 가흔의 얼굴을 바라보던 노웬은 옆의 여자가 건내주는 상자를 받아 책상위에 

      조심스럽게 올려 놓았다. 

      딱 보기에도 무척이나 고급스런 세공의 상자는 네사람의 시선을 잡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상자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아는 에스는 무척이나 놀란 표정을 지었

      다.

      달칵.

      상자를 열어 1센치 정도의 두터운 은색의 링을 꺼낸 노웬은 자신의 손바닥위에 올

      려 놓았다. 

      얼핏보면 단순한 은색링으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살펴보면 면에 얼마나 화려한 무

      뉘가 그려져 있는지 알수 있을 것이다. 

      "이건... 인어의 링이잖아."

      "네. 바로 그겁니다."

      "이걸 저 녀석에게 준다는 말이야? 노웬. 가흔은 인어가 아니라고."

      "알고는 있지만 안하는 만 못하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인어의 링이란 말 그대로 인어에게 사용하는 목걸이를 일컷는 말이었다.

      외관이 무척이나 화려한 인어를 잡아 키우는 취미를 즐기는 귀족들은 그들을 관상

      용에 그치지 않고 노래나 대화를 나눌 상대로써 요구하고 되었고 이내 인어의 링이

      라는 것을 만들어 낸다.

      이것을 인어의 목에 채우면 대화가 가능하는 아주 유용한 것이지만, 이것 하나를 

      만들기 위해선 100여 마리의 인어들의 시신이 필요하니 그 수는 무척이나 소량으

      로. 대륙 전체를 아울러 단 7개 밖에 없다고 알려져 있다. 

      하여간 희귀한 만큼 그 액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것을 준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무엇보다 인어에게나 

      사용하는 것을 인간에게 사용한다고 들어 먹힐 것인가? 

      하지만 시도도 안해보고 돌아서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칸은 노웬의 손에서 링을 받

      아 들었다.

      ".........."

      매끄럽고 서늘한 표면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인어들의 한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좋지않은 방법으로 만들어진 만큼 목걸이에 서린 한은 결코 작지 않다. 

      이런 위험한 것을 가흔에게 채우는 것이 과연 잘하는 짓일까? 

      물론 목에 걸어서 효용이 없다면 바로 풀어 버리면 그만이지만...

      "가흔. 이걸 채울 테니깐 얌전히 있어."

      가흔은 칸의 손위에 올려져 있는 것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설마 이런 개목걸이 같은 것을 자신에게 채우려는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칸은 그런 가흔의 바램을 무시하고 들고 있는 인어의 링을 그의 목에 조심

      스럽게 채웠다. 

      찰칵.

      "무슨 짓을...!!!"

      가흔은 채워지는 순간 느껴지는 한기에 반사적으로 목을 감싸 앉았다.

      그래서 자신이 뱉어낸 말에 대한 주위의 반응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알아들을 수 있어."

      "우와~ 우와~ 가흔!!! 다시 한번 아무거나 말해봐요!!!!"

      "무슨 말을 하라는 거야? 어?? .............알아 들을수 있다."

      "우와와와~ㅅ!!! 굉장해!!!!"

      뭔지는 모르지만 이 알수없는 목걸이를 채우고 난후 모두의 말을 알아 들으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자신도 이 나라의 말을 할 수 있는 듯했지만, 주위 사람들의 열렬한 반응을 

      보자니 쉽게 입을 열수가 없다. 뭔가 뭔지 자신도 잘 알수가 없어 진 거다. 

      가만히 서있는 가흔에게 거울을 건내준 여자는 보라는 듯이 각도를 마추어 올려준

      다.

      자신의 목에서 빛나는 목걸이의 표면을 쓰다듬던 가흔은 불안 스럽다는 듯이 미간

      을 찌뿌렸다.

      "..개 목걸이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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