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최고의 축복 (65/67)

# 최고의 축복 

"그럼 각 후보들은 간략하게 자신들의 소개를 하도록 해주십시오. 

먼저.....알트가의 벨라인자작" 

황제의 보좌관인 슈벤공작이 누군가를 호명하자 나란히 서있던 후보들 중 한명이 앞으로 나와서  

고개를 숙이고 예를 취했다.  

"벨라인이라고 하옵니다. 이 자리에 서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앞으로도 무한한 영광을 누리시옵소서.."  

벨라인은 마지막으로 한번 더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 자신이 서있던 제자리로 돌아갔다.  

"다음은 유토가의 세이린양..."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기가 무섭게 입가에 녹을듯이 달콤한 미소를 띄고 앞으로 걸어나가 

황제와 키레이황자를 보며 예를 취했다.  

"세이린이라 하옵니다.  

다른 훌륭하신 분들도 많사온데 제가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사옵니다. 

이렇게 부족한 저라도 이 자리에 불러주신 그 은혜에 다시 한번 감읍하였사옵니다.  

그저 무한한 영광을 누리시옵소서.."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또한 품위가 흘러넘쳐 다시한번 홀안에 모인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었다.  

무척이나 겸손하고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끝낸 세이린은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에 

만족하며 그녀 또한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 자신의 자리로 물러섰다.  

오호호!!....두고보라지!!! 틀림없이 이번 키레이황자의 반려는 내가되고 말테니까!!!....... 

그렇게 한동안 다른 후보들의 소개가 이어졌다. 

7명 남짓의 후보들 가운데 자신의 명칭이 불리울 때마다 그들은 황제와 키레이황자를 향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 자신들의 소개를 마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이리어가의....음..!?...." 

차례로 반려후보들의 명단을 읇던 슈벤공작의 목소리가 도중에 멈칫했다. 

다른 후보들 또한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이었다.  

목록에는 분명 8명의 반려후보자들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는데 연회홀에 나선  

후보자들은 모두 7명밖에 안되었던 것이었다.  

한동안 반려후보자들의 화려함에 눈길을 사로잡혀 전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던 

홀안의 사람들도 저마다 작게 경악성을 내지르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반려선임식에 참석하지 않은 반려후보라니!!! 

이보다 더 무례하고 명백한 거절의 의미가 어디있단 말인가!?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오직 세이린만이 모른척 계속 미소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단상에서 황제와 조금 떨어진 곳에 아무말 없이 서있는 키레이황자에게로 쏠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그는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앞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적어도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엘리엇...너는!!!!....... 

"뭐죠? 태자저하께서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일까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말 무례하군요. 세이리어가의 반려후보자는!!" 

"모르죠. 나중에라도 태자저하께서 분노하시면 풍비박살이 날지도..." 

그들은 진심으로 이번 반려선임식에 불참한 세이리어가의 후보를 비웃었다. 

그도 그럴것이 황자의 반려후보들 중 하나로 발탁이 되는 것은 무척 영광스러운 일임에 틀림없었던 것이었다.  

혹여 황자의 반려로 선택되진 못한다 치더라도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받는 

일이었기 때문에 다른 귀족들은 기를 쓰고서라도 반려후보자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어디 그것뿐이던가?  

굳이 황자의 반려뿐만이 아니라 다른 반려를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도 그들은 매우 유리한 위치에 서는 것이었다. 

하물며 예전까지만 해도 몰락귀족가라고 사교계에 정평이 나있던 세이리어가는 이번  

반려선임식이 다시 사교계로 재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제발로 굴러들어온 

호박을 차버린 것이었다.  

아니....이건 하찮은 호박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값진 일이니 두말하면 입만 아프지 않던가? 

평생을 가도 단 한번 올까말까한 기회였으므로 그들은 불참한 그의 어리석음을 마음껏 비웃었다.  

".....이럴수가..!! 엘리엇은 어째서 아직까지도!!" 

"................." 

이안조차 나타나지 않는 엘리엇을 기다리며 입술을 질끈 물었다.  

세크레틴은 별말없이 조금은 가라앉은 눈동자로 키레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설마 정말로 거절....인건가?.....  

.......엘리엇... 

잠시간 머뭇거리던 슈벤공작은 이내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세이리어가의 엘리엇후작은 참석하지 않았으므로 후보에서 제명되겠..." 

.....탁탁...!!!.......... 

"잠깐 기다려 주시오 슈벤공작!!!!" 

그때 홀안으로 누군가가 급히 들어서며 짧게 외쳤다.   

.....미레아 황녀!!!!!!!!!!!???....... 

홀안으로 들어서는 어린 소녀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은발의 청년이 약간 가쁜 숨을 고르며 안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엘리엇!!!?....." 

"맙소사!! 엘리엇이잖아!!" 

"....호오...?" 

각각 장소는 달랐지만 연회홀에 모여있던 세사람의 입에서 놀란 음성이 튀어나왔다.  

첫번째 음성은 거의 신음성과도 같았지만... 

다름아닌 특기사의 자격으로 반려선임식에 참가한 리스의 목소리였다.  

사실 나타나지 않는 세이리어가의 후보자가 거론될 때 리스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이봐...리스?......" 

곁에 있던 델린이 의아한 음성으로 리스를 바라보며 물었지만  

리스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숙연하게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어라? 별일이네. 리스 이녀석이 이런 표정을 다 지을때도 있고....... 

델린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현재 자신들 앞에 벌어지는 상황을 주시했다.  

"도중에 소란을 일으켜 죄송하옵니다. 폐하." 

미레아는 단상에 앉아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부친을 향해 살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꽤나 놀란 눈초리로 미레아황녀와 그 뒤를 쫒아 들어온 은발의 청년을 번갈아 보았다. 

"세이리어가의......반려후보!?" 

"어머!! 그럼 일부로 불참한게 아니었단 말인가요!?" 

"...그런데 의외로........꽤나.....아니, 무척이나...아름다운 사람이로군요." 

누군가가 낮게 읇조린 말에 사람들도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저마다 속으로 공감을 하며 

은발의 청년을 향해 은근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가장 놀랜 사람은 아무래도 황제였다. 

절대 반려선임식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워 자신조차 손을 놓아버린 미레아가 제발로 이곳에 오다니!! 

게다가 그 뒤를 이어 나타난 엘리엇의 모습에 다시 한번 놀란 신음성을 삼키는 황제였다.  

그중 가장 먼저 그의 눈에 띄인것은 엘리엇의 머리 위에 매달린 장신구였다. 

저 장신구는 자신의 딸이 특별히 애지중지 하던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도 오래전 미레아의 생일날 오라버니인 키레이가 직접 골라 그녀에게 선물해 줬던 것이었으므로 

시녀들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했던것을....!!!!..... 

"엘리엇후작님을 반려후보에서 제명하는 걸 고려해 주시옵소서.  

바삐 가시는 후작님께 잠시 제가 도움을 청할일이 있어 잠시 이분의 발걸음을 잡아두었습니다.  

늦은건 사정이 있어 이리 된것이오니 괜찮으시다면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폐하.." 

아직 어림에도 불구하고 미레아황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홀안에 울려퍼졌다.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람들은 동시에 엘리엇을 향해 놀라움과 감탄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갑작스레 사람이 달라진 듯한 아름다운 외모도 한몫작용했지만 무엇보다  

저 귀엽고 예쁘기 그지없지만 쉬이 마음을 주지 않는 어린 황녀를 어떻게 구슬렸기에  

그녀가 저리도 직접적으로 그를 감싸고 나서는가였다.  

사실 엘리엇이 이미 오래전부터 황녀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던 사람들은 그저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은 구슬릴 필요도 없이 그녀 스스로 엘리엇의 손을 잡고 이곳으로 온거였지만... 

반려선임식을 진행하던 슈벤공작은 황제에게 '어떻게 할까요?'라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황제는 그의 눈빛에 더는 볼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계속 진행하게. 물론 이번에 늦은 세이리어가의 후보까지 모두 포함해서..!!.." 

황제가 슬쩍 시선을 준곳엔 미레아황녀가 가늘게 눈을 흘기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쯧! 팔불출 같으니..!!..... 

속으로 작게 혀를 찬 슈벤공작은 엘리엇을 향해 물었다. 

"세이리어가의.... 엘리엇 후작이 맞습니까?" 

잠시 주춤했던 반려선임식의 진행이 계속 이어지면서 엘리엇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엘리엇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자 그의 길고 가늘은 은발들이 목 아래로 샤르륵 흘러내렸다. 

........!!!!!!!!!!!!!!!!...........  

사람들은 저마다 숨을 죽였다.  

아름다웠다... 

마치 실버실크를 펼쳐놓은 듯 부드러운 머릿결과 슬쩍 감겨진 듯한 자주빛 눈동자와 길다란 속눈썹....  

그리고 그 아래로 약간의 물기를 머금은 붉은 입술..!!.... 

그에 맞춰 미레아가 직접 달아준 푸른 사파이어의 쥬얼리띠가 영롱한 빛을 발하며 함께 반짝이는 그 모습에  

심지어 세이린과 그를 맘껏 비웃었던 다른 귀족들마저 넋을 잃고 엘리엇을 바라볼 지경이었다. 

......어.....어떻게 저런 고급스런 장신구를 손에 넣었지!?  

내가 차고 나온 것들과는 비교도 안되잖아!!!!!.....저 가난한 몰락귀족이 어떻게!!!? 

"엘리엇 저 녀석..원래 저렇게 생겼었나?" 

이안의 입에서 얼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아..." 

사실 이안 네가 아니었으면 나조차도 넘어갈 뻔했으니.... 

그나저나 닮은건 성격뿐만이 아니었나 보군... 

한편 엘리엇은 갑작스레 조용해진 주변 분위기에 속으로 당황하며 머리를 굴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냐;;;;;;!!!!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뭔가 실수를 저지른건 없었던 것 같은데!!?? 

설마....;;;; 이렇게 인사를 하는게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던가!? 

하지만 분명 내가 예법을 배웠을 때는...!!..... 

"흠흠....저 이자리를 빌어 폐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해도 되겠는지요?" 

엘리엇이 멋쩍은 듯 목소리를 작게 가다듬으며 단상위에 있던 황제와 키레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거지!!?..... 

곁에서 불안하게 입술을 잘근거리던 세이린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이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황제 역시 의아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건가? 나는 괜찮으니 들어보고 싶군..." 

자신을 향해 황제의 승낙이 떨어지자 엘리엇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후우......후.......진정해.......진정.......!!...... 

......난.......말할 수 있어.....!!.......... 

"저에게는...." 

두근...!!! 두근...!!! 

...꿀꺽...!!..... 

"저에게는 태자저하의 반려후보가 되어 이자리에 설 자격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웅성........웅성.......!!!!!........... 

.....엘리엇!?.... 

미레아황녀조차 놀라서 엘리엇을 바라보았다.  

주위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 졌다.  

........세이리어가의 후계자가...........반려후보로써의 자격이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황제가 진중한 목소리로 묻자 엘리엇은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대답했다. 

 "말 그대로 입니다.  

제게는 자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 

한템포 끊겼던 엘리엇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전 더이상 세이리어가의 후계자의 증표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증표는 처음부터 제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원주인을 찾아 제자리로 돌아갔을 뿐...." 

마지막엔 자조적인 표정으로 씁쓸하게 웃어보인 엘리엇이었다. 

.....아아.....미안...미레아.... 

네가 일부러 아름다운 머리장신구도 달아주었지만 아무래도 효과가 없어져 버렸네.. 

자신을 바라보며 망연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던 엘리엇은 히죽 웃어보였다. 

"따라서......저는 태자저하의 반려후보가 될 수 없습니다." 

연회홀안의 웅성거림이 끊이지 않고 터져나오고 있었다.  

황제조차 뭐라 하지 못한채 엘리엇을 바라봐야 했다.  

"그게 무슨!? 그렇다면 당신이 후작으로써 가진 모든 권리도 포기하겠다는거요!?" 

슈벤공작의 외침에 엘리엇은 가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하겠지요.  

저는 이제 더이상 후작이라는 지위도 뭣도 아닌 평범한 평민일 뿐이니 말입니다." 

.....슥... 

.....뚜벅....뚜벅.... 

그때 단상에 서서 차분한 표정으로 엘리엇이 하는 말을 듣고 있던 키레이황자가  

서서히 단상아래로 내려섰다.  

순간 주변의 소음이 일시에 뚝그치면서 사람들이 잠잠해졌다.  

심지어 엘리엇의 곁에 있던 다른 반려후보자들도 일시에 조용해져 황자의 행동을 주시했다.  

......뚜벅....뚜벅...탁..!!.. 

홀안에 깔린 대리석을 밟던 황자의 발걸음이 정확히 엘리엇의 앞에서 멈추자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길로 그들을 지켜봤다. 

...왜 갑자기!!?...... 

....과연 어떻게 하려는 건가!?  

..이제껏 가만히 있던 키레이황자가 어째서 저자에게 다가선 것일까!!? 

그러나 그러한 궁금증들은 이내 키레이의 나직한 저음이 홀안에 울리면서 모두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연회홀안에 있던 몇몇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일시에 굳어져 버렸다. 

"그래도.....상관없다고 한다면 그대는 어찌할거지?" 

......!!!!!!!!!!!!......... 

"태...태자저하!!" 

"키레이 황자!?" 

충격!!!!! 그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제껏 저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민 반려후보자들을 보면서도 표정하나 바뀌지 않던,  

그 무심한 키레이 황자가 다른 후보들보다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뛰어난 재력을 가지지도 못한,  

게다가 이젠 자신의 지위조차 잃게된 엘리엇을 향해 직접 물은 것이었다.   

"저는..." 

"말도 안돼요!!!" 

그때였다.  

엘리엇이 뭔가를 말하려 입을 열기도 전에 옆쪽에서 앙칼진 여성의 고음이 터져나온 것은.. 

"세이린 양?" 

세이린은 그제야 자신이 너무 흥분해서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았다.  

"아...그러니까 제말은...물론 반려는 제국의 법에 따라 당사자가 선택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지만 

태자저하의 반려는 보통사람이 인정하는 반려와는 크게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태자저하의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또한 그에 걸맞는 지위와 능력이 있어야 합당하지 않겠나요? 

더군다나 저자는 자신의 지위를 부정한 이상 무능력한 평민일 뿐이구요. 그러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심이.." 

.....울컥...!!!!!.......... 

뭐야!? 저 여자!! 대놓고 무능력한 평민이라니;;;  

이래뵈도 내가 할줄아는게 네가 할줄아는 것보다 훨신 더 많을껄!? 

하지만 틀린말도 아니지....지위라는건 애초부터 내게 존재하지 않았던 거니까....... 

엘리엇은 그녀의 말에 또 다시 숙연해진 분위기를 느끼며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제국의 법을 따를 거였으면 반려후보자는 전 제국민이 될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그랬던 것이라면 처음부터 반려후보자라는 것도 존재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해도 딱히 할말은 없었다.  

그 숙연한 분위기에 파문을 던진 것은 다름아닌 황제와 키레이황자였다. 

"....내가 처음 이 식을 거행할 때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분명 그 누구라도 황자가 택한 반려를 진심으로 축복해 주겠다고 말일세." 

"하지만..!!!" 

세이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고 반박하려하자 냉담한 키레이의 목소리가 그녀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렇다해도 내가 그대를 선택할 이유따윈 없다. 세이린.....이었나?" 

.......화끈....!!!!!!!!!!!!........... 

사람들은 노골적인 황자의 발언에 놀라면서도 밀랍처럼 흰 살결을 지닌 세이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잘 유지하고 있었던 그녀의 부드러운 미소가 

한순간 표독스럽게 변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에 반려선임식에 참석하고 있던 세이린의 부친 유토공작 조차 놀라 쓰러질 것만 같은 핼쓱한 표정으로 

자신의 딸과 키레이황자를 번갈아 보았다.  

"무....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요....." 

붉어진 안색의 세이린이 힘겹게 말을 이어가고 있는걸 보던 키레이의 입가에 명백한 비웃음이 떠올랐다. 

"그대를 나의 반려로 맞아들일 일따윈 절대 없을거란 소리다." 

"..!!!!!!!!!!...." 

......꽈아악.....!!!!!!! 

분노.....수치심....절망!!! 

그 모든 것들이 일시에 혼합되어 차례로 그녀의 얼굴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그런...!!..." 

당황하기는 홀안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키레이황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것이란 말인가!? 

그들이 생각하기에 세이린은 가장 유력한 반려후보였다. 

뒤늦게 등장한 엘리엇 역시 감탄을 자아내는 미인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는 이번 선언으로 스스로의 지위를 마다했다. 

그에 비해 세이린은 사교계에서도 매우 정평이 나있을 만큼 인기좋은 유토공작가의 단 하나뿐인 영애였다.  

현재만 봐도 유토공작이 숨이 넘어갈 듯 키레이황자를 바라보며 핼쓱히 질리지 않았던가!? 

황자가 아무리 스스로 반려를 택할 의사가 있다해도 이러한 선택은 뭔가 사리에 맞지 않는 처사였다. 

"폐하! 이런 법이 어디있사옵니까? 아무리 저자가 태자저하의 마음에 들었기로소니  

저리 아무런 지위도 능력도 없는 자에게..!!..." 

보다 못한 유토공작이 자신의 딸인 세이린을 변호하며 나섰다. 

"맞습니다. 아무리 태자저하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 뒤를 이어 유토공작을 따르는 무리들 중 한명인 라이튼백작이 따라 나섰다. 

그에 주위에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말이 어느정도 합당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귀빈석에 앉아있던 누군가가 나서지만 않았더라도.. 

"무엇이 문제가 되는건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 존경하는 카이다의 현귀족들시여."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엘리엇의 고개가 돌아갔다. 

".....!!!!!!!!!!......" 

세크레틴 황자...!? ......이안!!!!!!!..... 

순간 엘리엇의 얼굴위로 반가움과 동시에 놀라움이 번져나갔다. 

어떻게 저들이 이곳에...!!?? 

"그게 무슨 뜻이오? 세크레틴황자." 

의아한 듯한 황제의 말을 들으며 세크레틴은 그 특유의 가벼운 미소와 함께 세이린쪽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잠시간 움찔하는 듯 싶더니 이내 모르는 척 시선을 돌렸다. 

사실 세크레틴의 존재는 세일린에게 있어서 그닥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키레이황자 대신으로 그에게 온갖 공을 쏟아 부었건만 끝에 가서는 자신의 믿음을 배신하고  

그대로 자신의 나라인 에스더제국으로 돌아갔던 자가 아니었던가!? 

그러니 당연 이런 자리에서 마주치는 것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다들 간단한 문제를 두고 같은 소리만을 반복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웅성......!!!!!.............웅성...!!!!.......... 

"간단한 문제라니요!! 세크레틴황자.  

남의 나라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게 아니오이까!?" 

유토공작이 발끈해서 외치자 세크레틴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면서  

그의 입가에 걸쳐진 미소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이런.....이런....자기 여식의 일이라고 주제파악도 못하고 너무 설쳐대는 쪽이야 말로 그대가 아닌가? 

.....유토공작..... 

세크레틴의 미소와는 달리 그 싸늘한 눈빛을 받은 유토공작은 그 상태로 굳어졌다. 

잊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서있는 사내는 다름 아닌 동맹제국의 황태자였다. 

에스더의 황제가 무척 노쇠하여 몇달후에 황관을 넘겨 받게 될것이라는 소문이  

카이다제국내까지 자자하게 퍼진 마당에 그에게 밉보여서 자신에게 득이 될것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었다. 

"요는 키레이황자의 반려에 합당한 능력이나 지위를 가진자가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것 맞습니까?" 

세크레틴이 유토공작을 바라보며 묻자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그렇습니다. 하다못해 저자가 능력이라도 있는 자였더라면 이렇게 까진 않했을 겁니다." 

".....그렇습니까...?.....능력이라도 있었더라면...이라....." 

뭔가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린 세크레틴은 그의 말이 끝나자 곧 자신의 곁에 있던 사람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폐하. 현재 제 곁에 있는 이사람이 누군지는 폐하께서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허리아래로 늘어진 녹빛 머리칼들을 검은끈으로 단정하게 동여맨 청년은 다름아닌 이안이었다. 

그는 조금 못마땅한 시선으로 세크레틴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물론이네. 다름 아닌 크로이데 이안이 아니던가?  

키레이황자의 마도스승이기도 하고..."   

"기억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폐하" 

이안이 짧게 대답했다. 

사실 굳이 키레이황자의 마도스승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가 누군지 쯤은 홀안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마탑의 수장인 안데노를 스승으로 두고 있고, 그 자신도 뛰어난 마도술능력을 겸비하고 있어 

현존하는 마도사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인물이자,  

20대초반에 이미 대마도사라는 별칭이 따라붙을 만큼 그는 대륙에서 인정하는 천재마도사였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려 여러가지로 소문이 무성하긴 했지만...그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현재는 그들앞에 서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카이다제국에서도 탐을 내던 인재였던 만큼 그가 에스더제국으로 건너갔을 땐 내심 섭섭하게 생각하던 황제였다.  

그것은 다른 귀족들도 마찬가지라서 단번에 그 이름만을 듣고도 경외의 시선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한명의 백작과 한명의 초보마도사, 둘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할 만큼 

마도사의 존재는 희귀하고도 인정받는 존재였다. 

하물며 크로이데 이안정도의 인물임에야!! 

....그런데 세크레틴 황자가 왜 갑자기 그를.....!?............... 

"....아.....설마!?.....그렇군!!!!......" 

"폐하!!?" 

그때였다. 황제가 갑작스레 감탄을 내지르며 엘리엇쪽을 바라본 것은!! 

그에 따라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크로이데 이안....그리고 엘리엇... 

마지막으로 3년전 저 청년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 내밀었던 감정서......!!!!!!..... 

거기에는 분명 저 청년이....!!!.......... 

"황자의 반려에 선택될 수 있는 능력과 지위라면 엘리엇군은 충분히 그 자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유토공작이 의아한 목소리로 세크레틴을 향해 반박하려는 찰나 그가 조용히 손을 들어 제지했다.  

"왜냐하면 엘리엇군은.... 현재 눈앞에 서계신 크로이데 이안이 인정한 황자들을 제외한  

단 하나뿐인 수제자이기 때문이오." 

".....!!!!!!!!!!!!!!!!!!!!!!!!!!........" 

"...!!!!!!!!!!!!!!!!!!!!!..." 

현존하는 천재마도사 이안이 인정한 황자들을 제외한 단 하나뿐인 수제자!!!!!!! 

그말의 뜻을.... 

그 의미를 알아챈 사람들은 놀라움으로 인해 이제껏 홀안에서 내질렀던 경악성들 중  

최대 최고의 소리와 함께 감탄사를 내질렀다. 

"그...게....정말입니까?" 

유토공작과 세이린...그 외 다른 후보자들 조차 못 믿겠다는 듯 이안을 바라보며 묻자  

이안은 아무런 대답없이 엘리엇에게로 다가섰다.  

".....이....안..." 

엘리엇조차 얼떨떨해서 그를 바라보자 이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으이구...!! 이런 얼빵한 녀석이 내 수제자라니....!!!.... 

하지만 뭐....... 착한녀석은 틀림없으니까.. 

"내가 준 팔찌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겠지?" 

이안의 물음에 엘리엇은 고개를 끄덕였다. 

"늘 왼쪽손목에 차고 다녔어.." 

"그럼 됐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안이 엘리엇의 왼쪽 팔을 들어 그의 소매를 걷어내었다. 

엘리엇의 흰 손목위에는 녹색의 윤기나는 띠위로 푸른 구슬이 그빛을 발하며 매달려 있었다. 

사람들 모두 그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것이 그 증거입니다.  

엘리엇은......제가 인정하는 단 하나뿐인 수제자가 맞습니다." 

......아......아아...!!!!....... 

저럴수가!!? 

어머!! 세상에나!!!!!!! 

사람들의 크고작은 탄성들이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터져나오고 있었다. 

"설마 이것만으로는 자격이 불충분하다고 말할 것이오? 유토공작..." 

세크레틴의 물음에 유토공작의 얼굴이 힘없이 일그러지면서 거진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그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털썩....!!!!!................ 

그에 하얗게 질린 세이린이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떻게....저자가!!!!!!! 어떻게!!!!!!???? 

그녀는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는다는 표정으로 엘리엇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크레틴은 입가에 미소를 띄며 그런 그들을 조용히 비웃었다. 

......자.....이제 더 이상 외부의 방해는 없을테고.....남은 문제는...... 

"..엘리엇..?" 

곁에서 이안이 멍하게 서있는 엘리엇을 바라보며 낮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선택이겠지...... 

"...아..!?......." 

  

엘리엇의 눈앞에는 키레이황자가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대의 대답을.....아직 못들었다...." 

.....두근.....두근...!!..... 

"....................." 

한동안 놀람과 경악으로 술렁였던 주위가 잠잠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심지어 주변에 있던 세이린을 제외한 다른 반려후보자들 조차 조용히 침을 삼키며 그들을 주시했다. 

".....저는...." 

........두근.....!!!.........두근....!!!........!!...... 

"..............." 

그 짧은 순간에.......잠시간 머뭇거리는 엘리엇을 보며 키레이의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으려는 찰나 

그의 말이 이어졌다.   

"기꺼이 받아드리겠습니다." 

"....!!!!!!!!!!!!......" 

엘리엇은 무척이나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키레이를 보며 히죽 웃어보였다.  

당연하지!! 이건 내 인생 최대 최고의 행운인데 어찌 그리 차버릴쏘냐!? 

넙죽 절하고 받아들여도 모자를 마당에!! 

아아.....이녀석 정말 놀랬나보네? 어이...이봐...;;;;;;;;; 그런표정 짓지 말라니까?  

그럼 설마하니 내가 그대로 거절할줄 알았냐?  

미안하지만 나는 내게 다가온 기회는 한번 잡으면 절대로 놓지 않는다구!! 

게다가........나는 이미 너를........ 

"...사랑....합니다.....당신을.." 

엘리엇은 얼굴이 붉어져서 무척이나 쑥쓰럽게 그에게만 들릴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물론 그말을 들은 키레이의 눈이 다시 한번 커지면서 이내 따스한 눈길로 엘리엇을 바라봤다.  

"그렇게 말해주길.....기다렸다." 

키레이는 엘리엇을 향해 낮고 부드럽게 속삭이며 그의 입술에 천천히 자신의 입술을 맞추었다.  

....짝.......!! 

.......짝짝....!!...... 

짝짝짝짝짝짝!!!!!!!!!!!!!! 와아아아!!!!!!!!!!!!!!!!!!!! 

처음엔 작게 울려 퍼지던 박수소리와 함성이 이내 크게 울려퍼지면서 끝내는  

연회홀이 떠나가도록 가득히 울려퍼지고 있었다.  

................ 

"에.....엘리엇...!!..." 

"야! 리스 이자식 너 왜 울어? 어이!! 리스?" 

두눈이 붉어져 훌쩍거리면서도 리스는 정신없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저렇게 행복한 표정이라니......!!!..........축복해줄 수밖에 없잖아...!!........... 

"그것 참...." 

델린은 의아해 하면서도 그들을 보며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나도.....이참에 반려나 맞아들여볼까?" 

............... 

쳇...!!! 이번만 특별히 봐주는거야. 엘리엇!! 

원래는 절대 그러지 않으려고 했지만......너니까 양보하지 뭐...... 

게다가....오라버니의 반려가 되면 앞으로 황궁에 있게 될꺼니까 나와도 자주 만날 수 있겠지!? 

이참에 다른 책들도 잔뜩 읽어달라고 할테니까!! 

혼자읽어도 상관은 없지만........저 녀석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훨씬 더 재미으니까... 

새초롬히 엘리엇을 바라보면서도 내심 입가에 웃음을 달고 있는 미레아황녀였다.. 

................ 

"흐음....이럴줄 알았으면 진작에 엮어줄걸 그랬나보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 아들놈이 저렇게 웃을 수나 있는지 정말로 몰랐다네...." 

"동감입니다. 폐하..." 

황제의 보좌관인 슈벤공작도 넋이 나가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나저나 2세는 보기 어려울 것 같고..... 

뭐...꽃같은 반려를 안고 사는 아들녀석의 색다른 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그래.." 

처음 봤을때부터 뭔가 남다르다고 느끼긴 했지만....설마 이리 될줄은........ 

세이리어가의 인물들은 정말 마지막까지 나를 놀래키는 구만....허허!!..... 

................ 

"저 녀석들 처음부터 저랬으면 될것 가지고 도대체 왜 그렇게 돌아온거야!?"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겠지...그나저나 오늘 정말 멋지던데? 이안.." 

세크레틴의 웃음섞인 말에 이안은 모른척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뭐.....어쨌든 엘리엇 녀석은 워낙에 얼빵한 녀석이니까...조금 도와준 것 뿐이야." 

그런 것 치고는 무척이나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안이었지만... 

그사실을 알면서도 세크레틴은 작게 웃음을 삼키며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아....이걸로써 해피엔딩인가?..." 

단 두사람만 빼고.... 

다름아닌 핼쓱하게 질려 거진 실신 일보직전인 유토공작과 세이린이었다. 

아악!!!!! 어째서 이렇게 된거지!!? 

말도 안돼!!! 이건 꿈이야!!!! 내 인생최대 최악의 악몽이라고!!!!!!!!!!!!!!!!! 

그들의 소리없는 절규가 홀안을 가득 메우며 울려퍼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