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락
"...독에 당하신 것 같습니다."
침중한 의원의 말에 키레이의 눈동자가 분노로 차게 타오르고 있었다.
"독........말인가!?..."
침대위에 눕혀진 엘리엇은 핏기하나 없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예... 태자저하께서 조금만 늦었더라도 어쩌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였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환자에겐 이미 독에 관해서 꽤나 내성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저 운이 좋았다고 밖에는..."
만약 엘리엇이 평범한 보통사람이었다면 틀림없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함축된 의원의 말에
키레이는 그야말로 엄청난 살기를 폭주시키고 있었다.
그로인해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엄청난 위기감을 느끼며 조마조마한 가슴을 쓸어넘기고 있었다.
"이분이 당하신 독의 종류는 아데스라는 독초의 즙인 것 같습니다.
원래는 시간이 경과해야 효과를 나타내는 독이지만
꽤나 격렬한 활동이나 신체적 소모가 있다면 더욱 빨리 그 증상을 나타내게 됩니다.
하지만 차라리 그편이 환자에겐 덜 치명적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대로 독이 구석구석 몸을 잠식해 들어간다면 그 뒤부터는 더 이상 손쓸일이 없어진다.
"아데스라면 이미 제국내에서 반입을 금기시 하는 독초일텐데?"
싸늘하게 울려퍼지는 키레이의 말에 어느 누구도 감히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 아데스는 예전에 왕족들이나 귀족들 사이에서 꽤나 널리 이용되던 풀이었다.
물론 별로 좋지 않은 뜻을 품고...
무색무취에 본격적으로 독이 퍼져서 몸을 잠식해 들어가기 전이나 엘리엇의 경우처럼
활발한 신체활동으로 잠시간 독이 퍼지는 속도가 빨라졌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 증상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독살하고자 하는 상대들에게 자주 써먹히던 독초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위력은 또 어떠하냐면... 일단 독이 퍼져 온몸의 구석구석에 퍼져나가 그 증상이 나타날때 쯤이면
이미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한다해도 손을 대기 힘들어진다.
엘리엇의 경우엔 몸을 움직여 주었기 때문에 잠시간이라도 폭주되어 퍼져나간 독들이 그 증상을 나타낸 거였지만
그나마도 움직이기 싫어하는 게으른 귀족들이나 왕족들은 손끝 발끝까지 구석구석까지 독이 퍼져나가
결국엔 죽음밖에는 남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극소량을 사용할 경우엔 좀 더 여러가지 면에서 많은 의학적인 득을 제공할 수 있는 식물이었지만
워낙 좋지 못한 목적으로 널리 사용되던 풀이었으므로 카이다 제국에서는 아데스의 실효성을 제하고서라도 반입은 물론
사고파는 것조차 금지시켰다.
"...살릴 수는 있는거겠지?"
만약 이대로 이 아이가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광기와 지독스런 살기로 점철되어 자신들을 노려보는 황자의 눈빛에 의원들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태자저하!!
늦지않게 적절한 해독제를 먹였으니 아마 자체회복이 빠르다면 오늘 안에는 깨어나실 것입니다.
너무 심려치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사색이 되어 다급하게 대답하는 의원이 못내 안쓰러워 보였다.
"..모두...물러가....라.."
키레이의 승낙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허겁지겁 빠져나갔다.
아직도 놀란 그의 심장이 급격히 고동치고 있었다.
....죽는 다는 것...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
영원히 나의 곁을 떠나간다는 것.....!!!!!!!!!
"그렇게.......놔둘 것 같은가?"
절대로.....그렇게는 되지 않을거다!!!!!! 절대로!!!!!!!!!!!!!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누워만 있는 엘리엇에게 키레이는 부드럽게 속삭였다.
"....다시 만나면.............진심으로 사랑한다고......말해줄 생각이었다......."
다시는 내눈앞에 나타나지 말라는 것도.........
차갑게 네앞에서 등을 돌린 것도....... 사실은 지독한 허세였을 뿐...
사실은....... 너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라고.........
바보라도 되어버린건가?
이렇게 지독한 것이 사랑이란 것을 알았다면.......
....어느 누가 어리석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었을까.........?..........
"정작 어리석은자는 나...였군........"
하지만......이젠 깨닫은 거겠지.....
더 이상 어리석은 감정소모따윈 하지 않겠다...!!...........그러니.....
키레이는 차갑게 식어버린 엘리엇의 입술위로 조심스레 자신의 입술을 포겠다.
"....네가 깨어난다면....그때는.........나의 반려가 되어주길........진심으로 바라겠다..."
영원을 함께 공유할.......반려가 되어주길...
.....진심으로...!!..
.............
"오호호호!!!!! 독에 당해서 쓰러졌다니!!! 우습구나!! 우스워!!!!"
세이린은 방금 자신의 시녀가 황궁안에 퍼진 소문을 듣고 달려와서 자신에게 고하자
자지러질 듯한 웃음과 함께 입가에 한껏 미소를 띄웠다.
"꼴 좋군!! 감히 제 주제도 모르고 연회장에서 날뛰어 되었던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다 시원하구나!"
"하지만......세이린님.....과연 이래도 되는걸까요?"
세이린은 자신의 시녀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뭐가 말이지!? 우리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단 말이더냐!?
난 그저 보고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것 뿐이야. 보기만 한것도 죄가 되니?"
세이린의 싸늘한 말에 시녀는 크게 주눅이 들어 우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그렇지만....다른 반려후보자들도 많은데 어째서 세이린님께선 그분을 그리 싫어하시나요?"
흥!! 이것이 평소에도 말이 많더니 지금은 눈에 뵈는것이 없나보군!!
뭐....말해도 아쉬울 건 하나 없으니까..!
"처음 봤을때부터 싫었어!!! 감히 내가 찍은 남자를 가로채러 했단 말이다!!
흥!!!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이니!? 겨우 세이리어가 주제에...!!..
어차피 다른 후보들이야 별볼일 없으니까!
그나저나 내일은 반려선임식이 열릴텐데 무엇을 입어야 하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내심 부정하지 못하는 세이린 이었다.
그래.... 어째서인지...그 아이는 내 모든것을 불안하게 만들어...!!!!.....
그따위 볼품없는 귀족녀석 따위가 감히...나를!!!...
쨍그랑!!!!!!
"꺄아!! 세이린님!?"
세이린은 자신이 들고 있던 최고급 향료병을 바닥에 내던져버렸다.
".....기분 나빠...!!..."
시녀가 다급하게 바닥에 떨어져 깨져버린 향료병들의 파편들을 치우는 동안 세이린은 자신의
날카로운 손톱으로 탁자위를 긁어내렸다.
드드....득...!!!!
신경쓰지 말자...!!......그저 하찮은 귀족 나부랭이들 중 하나일 뿐이니까...!!
그래...!!! 누가 뭐래도 황자의 관심을 살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야!!
어차피 누구에게도 주지 않는 차가운 심장이라면...!!!......내가 차지하는 것이 훨씬 유리해!!!
아버지께서도 황제폐하께서 무척 흡족해 하시는 눈치였다고 귓뜸도 해주셨고 말야...!!!....
......그런데......왜 이렇게 불안한거지...!?........
드드...득.........
곱게 다듬어진 그녀의 손톱이 탁자위로 길게 상흔을 남기고 있었다.
"그래. 난 보고도 말하지 않았을 뿐....!!........어차피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야!!"
그대로 죽어버린다 해도 더욱 상관은 없고 말야!! ....후후후....!!!.......
......................
주위는 온통 어둠뿐이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깊고 깊은....어둠....
가끔씩 가슴에 칼로 후비는 듯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아.....윽...!!!......."
하아......하아.....!!!!.............
......나는 왜........이런곳에.........?................
아무도.....없어?
숨이 막히는 듯한 짙은 어둠....그리고 고통......!!!.............
그 와중에도 무척이나 그리운 누군가의 체취가......어딘가에서 실려왔다.
......................
-으악!! 엘리엇! 그건 다이다라구!! 그걸 지금 거기다 집어넣으면 곤란해!!!-
-뭐얏!? 그냥 되는대로 집어넣으면 안되는 거였어!?-
-맙소사!! 아무거나 함부로 맛보지마!! 그러다가 독초라도 먹으면 어떡해!?-
-맛만 좋구만! 그냥 먹으면 되는거지 뭘!!-
......... 해랑....!?....
-이런 바보같은 자식!!!!!!!-
-아씨!! 또 뭐가 문제에요!? 말하신 것 처럼 위쪽부분만 살짝 도려냈잖아요!!-
-그게 어딜봐서 위쪽부분만이냐!!! 아예 전체를 날로 떼어내지 그랬냐!?-
-거참!! 이깟 코로나무 열매가 얼마나 한다고 사람을 그렇게 쥐어잡아요!?-
-뭐라고!? 그래도 이놈이 정신을 못차리고...!!!-
....헤에......할아버지와 함께 살았을 때의......기억...?.......
-히힛!! 오늘도 멋지게 한건 했군!!-
-아서라!! 옘비!! 겨우 은화 2개를 훔쳐낸것 가지고 의기양양하기는!!-
-어라!? 그러는 너는 오늘 밥값도 못건졌잖아! 이 자식아!!-
-그래!! 잘 알았으니까 이번엔 네놈돈으로 어디 그 잘난 술이나 한잔 먹어보자!!! 크아~!!
엘리엇놈이 횡재한 덕에 우리가 덕 좀 보겠구나!!-
-으앗!!! 내 처음을 왜 너희들한테 써야 하는건데!!!-
저건..어렸을 적....... 뒷골목에서 처음으로 내가 도둑질에 성공했을 땐가?
확실히 그때는 재밌는 녀석들이 많았었는데.........
그리고.......
-네가 엘리엇인가?-
-네...그런데요?-
-.....확실히 닮았군...-
-너.....우리와 거래를 하지 않겠나?-
...또 다른 시작....
-전 도둑이에요. 당신의 목걸이를 가지고 튈지도 모른다구요.-
-괜찮아요. 그게 당신이라면 그것도 좋을 것 같군요.
내일이면 가는...거겠지요. 파로키학원으로........당신에게 큰 짐을 지우는 것 같아....
....정말 미안해요...엘리엇..........그곳에서 부디 저를 원망하지 말아주시길...-
...아아..유이?...
-이 자식!! 거기 안서!?-
-저 겁쟁이 자식!! 우리가 무서워서 그냥 도망치다니!!-
-흥!! 약골녀석!! 평생 그렇게 도망이나 다녀라!!-
기분 나빴던 기억도.....
-내이름은 시오릭 리 칼리안이야. 그런데 네이름은 뭐냐?-
-저는 엘리...아! 아니......세이리어 듀 유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꼬마야. 너는 누구니?-
-무엄하다! 나한테 감히 꼬마라고 하다니!!-
그리운 얼굴들도.........
-엘리엇! 나 어때? 이정도면 그곳에서도 당당히 다닐 수 있겠지?-
-걱정마세요. 리스님.. 아마 리스님이 제일 멋지실껄요?-
-저..정말!? 엘리엇도 그렇게 생각해!?-
-아아...예쁜 얼굴을 가지고 그렇게 인상을 쓰면 곤란하다고. 좀 웃어 보는건 어때?-
-........하!?..-
-그래...적어도 아까 전의 인상쓰던 표정보다는 낫잖아?-
......제멋대로 뒤엉켜 버린......
-.....그럼 엘리엇...약속 하나만 해줘...-
-내가 나중에 커서 훌륭한 검사가 되면......그때는 꼭 다시 만나게 될거라는 그런 약속!-
-......물론입니다....리스님께서 훌륭히 성장하시는 그날에 언젠가 저를 다시 볼 수 있으실 거에요.-
-....흐윽....쿨쩍..!! 약속한거다...!! 약속했으니까........-
-나는 이안이다. 너의 이름은?-
-내 이름은 현재는 세이리어 듀 유이.-
......예전의 기억들...
-뭡니까? 당신!!! 그렇다고 진짜로 밟으려고 하는게 어딨습니까!?-
-...흐음........생각 외로 민첩하군.-
그리고.....그 가운데......
-.....가......라....그리고 다시는........내눈앞에 나타나지 마라...
......다시는......내눈에 띄지마......엘리엇..!.........-
......지끈.....!!!!!!!!!!..
-너를....아직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거다.-
...키레이.........!?..........
"..헉..!!!......"
...꿈뻑...!! ......꿈뻑...!!.............
힘겹게 눈을 뜬 엘리엇은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하기 위해 꽤나 애를 먹어야 했다.
주변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방금 전과 같은 짙은 어둠이 아니었다.
눈이 슬쩍 부시긴 했지만 창가로 희미하게 푸르스름한 달빛이 흐르고 있었고 주위를 어느정도 살펴볼 수 있었다.
.....내가......왜 여기에 누워있는거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엘리엇의 머리위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앗!!!....깨어나셨군요!!! 엘리엇님!!"
고개를 들어보니 어둠속에서 로이떼가 반가운 기색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흠흠...나 참;;;
이거야 원;;; 요즘따라 몸이 많이 허해졌나?
하아....툭하면 쓰러지고 깨어나는 것의 반복이니....
쩝;;; 자꾸 이러면 로이떼를 볼 면목이 없잖아...;;;;;;;;
"어휴, 영원히 깨어나지 않으면 좋으셨을껄! 그랬어요!!!"
.....하하....고마워....로이....잠깐...? 방금 뭐라고..!?
"아이 참!! 엘리엇님은 정말로 운이 좋으시군요!"
역시 내가......잘.....못들은건가?.....
하하...역시 잘못 들은걸꺼야.
머리가 멍하니까 이젠 귓가에 환청도 들리는.....
"차라리 그대로 죽어버렸으면 굳이 이런 수고를 할필요까진 없었을 것을...
좀 더 편하게 죽을 수 있었을텐데 말이에요..."
"......!!!!!!!!!!!.........."
무.....슨....말이야?
"후후!! 여전히 상황파악이 안되신 모양인가봐요?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면요....
짜증날만큼 질긴 목숨이란 뜻이에요. 엘리엇님!"
달빛사이로.......로이떼가 눈이 시리도록 환하게 웃으며 엘리엇을 싸늘하게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