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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해와 고백 (61/67)

# 오해와 고백 

탁탁!!!!! 탁!!!!!!!!!!!!!.... 

시종의 도움으로 뒤늦게 연무장으로 달려온 엘리엇은 종반으로 치닫고 있는  

그들의 대련을 보게 되었다.  

키레이!!!!!....리스!!!!!!!!!........... 

챙!!!!!!  

키기긱!!!!!!!! 

콰가가각!!!!!!!!!!!!!  

"커헉!!!!!" 

휘이이이익!!!!!!!!!!!!!!!!!!! 

스걱...!!!!!!!!!!!!!!!!! 

"......!!!!!!!!!!!!!!........." 

....팍...!!.... 

.......잘려..........나가........?................ 

리스가 쥐고 있던 검신이 키레이가 횡으로 그어버린 검에 잘려.....나갔다.. 

......털썩....!!!!!!........... 

".....이럴....수가..!?.........검기...!!!!????" 

맥없이 울리는 리스의 목소리가 귓가에 천천히 울렸다...... 

거대하고 광활한 카이다제국내에서도 열명 남짓  정도로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검술의 최고 경지에 오른 자! 

......검기를 다루는 자...!!!!....... 

그것은 황자가 검술에 있어서 일반인들과는 비교할 수 조차 없을 초월적인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금은....당신에게 근접했다고 생각했는데!!!....... 

리스의 얼굴위로 비참한 패배감과 낭패감이 뒤섞여 멍하니 키레이를 올려다 보았다.  

"좋은 대련이었다." 

키레이는 리스의 잘려나간 검신을 흘끗하더니 이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 눈빛 만큼은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좋은.....대련이라구...!? 

.....대련따위가 될 수 있었을리가 없잖아!!!!!................. 

리스 역시 최연소 특기사가 될만큼 매우 실력있는 검사였다고 할 수 있었겠지만 검기를 구사하는 키레이에게는 댈바가 아니었다. 

처음부터......의미 자체가 성립할 수 없던 대련.... 

그런데 키레이 저 자식은......좋은 대련이었다고!!!!!!!! 

엘리엇은 당장이라도 객석에서 뛰어내려 키레이의 멱살을 움켜쥐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했다.  

점차 리스의 얼굴이 굳어져 가고 있었다.  

짙은 패배감과 절망감......그리고 수치스러움.......!! 

리스는 고통스럽게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감......사합니다.......저 역시 좋은........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음성은 무척이나 어둡고 침울하기까지 해서 듣는 엘리엇의 마음이 다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그에 비해 키레이의 표정은 시종일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저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들을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엘리엇을 잠시간 바라봤을 뿐이었다. 

엘리엇이 이곳에 와서 자신들의 마지막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쯤은 처음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키레이에 의해 잘려나간 검을 쥔채 리스는 그것을 떨리는 손으로 검집에 꽂아넣었다.  

그리고는 키레이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여 예를 취하고는 이내 이를 악물고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이로써 부러진 검조각 처럼 리스의 마음에도 길고 씁쓸한 패배의 흔적이 남겨진 것이었다... 

엘리엇은 그런 리스를 뒤쫒아 가려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혼자 있고 싶겠지.. 

나라면......그럴꺼야........ 

리스가 사라진 연무장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탁!!! 

엘리엇은 그대로 객석에서 연무장 안으로 뛰어내렸다.  

터벅... 터벅... 

...슥...!!... 

엘리엇은 그대로 흙바닥에 박힌 잘려나간 리스의 검조각을 주워들었다. 

키레이는 여전히 아무말 없이 그런 엘리엇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멋.진. 대련이었습니다. 태자저하..!!" 

비꼬듯이 내뱉는 엘리엇의 말에 키레이는 한쪽 눈썹을 꿈틀했다.  

"이왕이면 저에게도 태자저하와 검을 맞댈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피식...!!...... 

키레이의 입가로 조소 비슷한 웃음이 떠올랐다. 

"....갑자기 내게 이러는 이유가 뭐지?" 

......이유......!?........ 

"가벼운 대련에도 명분이 필요합니까?" 

어때!? 네녀석이 나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마! 이 빌어먹을 자식아!!! 

녀석의 표정이 굳어지든 말든 그건 내가 알바가 아니었다.  

키레이 자식이 검기까지 사용한다는 걸 두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후에 저 자식에게 검술대련을 신청하는게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딴건 이미 알바가 아니지!! 

"진심...인거냐?" 

.....헹!! 웃기지 마셔!!! 

내가 언제는 네녀석에게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냐!? 

난 항상 네녀석에 대해서 만큼은 이런 내가 두려울 만치 진심이었어!!! 

이 망할 자식아!!!!! 

"물론입니다. 검을 들어 주십시오." 

".....고집이 세군..." 

키레이의 기가 막히다는 어투와 표정속에 담겨있는 비웃음을 내가 모를리 없었다. 

그래... 어차피 결과가 뻔히 보이는 억지스런 대련...!!..... 

하지만 그렇다고 못할것도 없잖아?  

"..쉽게 쓰러지진 않을테니까 기대하셔도 좋을겁니다." 

스르렁...!!..... 

검집에서 나의 애기인 쌍검이 뽑아져 나옴과 동시에 검투는 시작되었다....... 

..........너에게 있어서 나란 존재는... 어떤 것이지..?... 

타타타타탁!!!!!!!!!!!!! 

언제나 그랬듯이 선공과 속공을 기본 모토로 삼고 있는 엘리엇의 날렵한 몸이  

지면을 박차오르면서 키레이를 향해 돌진했다.  

"하앗!!!" 

짧은 기합성을 내지르며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엘리엇을 키레이는 피하지도 않은채 자세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단검도 장검도 아닌 엘리엇의 이도류는 십자로 교차되면서 키레이 황자의 검을 내려치고 있었다. 

카앙!!!!!! 

두개의 검날이 날카롭게 마찰되면서 차갑게 달아오른 푸른 불꽃을 사방으로 퉁겼다.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도류의 검법... 

이미 오래 전에 대륙에서 멸시를 당해오던 종류의 검법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쓸모가 있어 보이지만, 의외로 틈이 많았고, 더구나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느려진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늘상 하류로 밖에는 취급될 수 없었던 이도류는 어느 뒷골목의 좀도둑이었던 엘리엇의 손에서 

되살아났다.  

힘에선 밀릴지 몰라도 기술적인 면과 스피드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던 엘리엇에게 이도류는  

그 무엇보다 손에 익고 자신에게 훨씬 알맞은 형태의 검법이었다.  

챙!!! 카앙!!! 

......이미 전에 단 한번 키레이 황자와 검을 맞댄 기억이 있는 엘리엇이었다.  

지금은 그가 훨씬 강해졌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그동안 놀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지!!!!! 

이런 식으로 네녀석과 다시 맞붙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야!!!! 

비록 엘리엇이 양손으로 들고 있는 두개의 중검은 두 손으로 들고 있을 때보다 힘이나 속도에서 늦긴 하지만 

그만큼 서로 다른 쪽에 들려있는 또 다른 형제검이 그 점을 보충해 주었다.  

더구나 검의 길이가 극명하게 차이가 나므로 상대방에게 거리감의 혼란을 주는데도 그만이었다.  

물론, 키레이에게 그런 잔재주가 통하리라고는 기대도 못했지만.. 

"어리석은 짓을!" 

엘리엇이 수년간을 고생해서 완성해 낸 이도류도 키레이의 눈에는 그닥 성에 차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핫!!!!!" 

캉!!!!!!!! 

하지만, 엘리엇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채 키레이에게 검을 휘 둘렀다.  

양손에 들린 두개의 중검이 단번에 교차로 찌르고 베면서 상대방을 압박하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키레이에게는 그닥 커다란 위협이 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그래도 포기하진 않을테다!!! 

엘리엇의 두 눈가로 단호한 결심이 들어섰다.  

"할 수 있는게 겨우 이런 거라면 우스우니 그만 둬라!" 

키레이가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만약 키레이가 휘두른 검과 정면으로 부딪힌다면 엘리엇의 두손목에 상당한 무리가 올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은 엘리엇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엘리엇은 재빨리 쌍검중 오른쪽 손에 든 검을 뒤로 빼내면서 그 뒤로 이어지는 키레이의 일격을 왼손으로 비스듬히 비껴서 막아내었다.  

아니, 막아내는 척을 하면서 그중 키레이의 검을 막아내던 검 하나를 미련없이 놔버렸다.  

챙강!!! 

당연히 자신의 검을 튕겨낼줄 알았던 키레이는 중검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엘리엇의 손아귀에서 떨어지자  

자신이 뿜어낸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몸을 작게 뒤틀었다.  

아주 잠깐 동안 틈이 생기긴 했지만, 엘리엇이 섣부르게 덤벼들 정도로 키레이는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제법.." 

이군.... 이라고 말을 하려는 키레이였지만,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하압!!!" 

한쪽 검을 놓고 남은 다른 한쪽의 중검을 재빨리 두 손으로 잡은 엘리엇이 검을 크게 휘두른 것이었다.  

키레이는 서둘러 엘리엇의 검을 막았다.  

순간, 엘리엇의 검이 마치 고무로 된 구슬이 땅에 떨어졌다가 튕기듯이 키레이의 검과 부딪히고는  

밖으로 튕기면서 완만한 반원을 그리며 그의 가슴을 노렸다. 

뒷골목에서 여러명을 만났을 때 그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단한명을 지목해서 공격할 때 쓰였던 특기인 연속기였다.  

하지만, 키레이는 다른 사람처럼 엘리엇이 그런 연속기를 마음 편히 펼치게 놔두지는 않았다.  

키레이의 경계심을 자극하게 만든 건 처음 해냈던 일격 뿐.  

그 뒤로 날아오는 엘리엇의 검을 모조리 튕겨낸 키레이는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우세한 입장을 차지했다. 

젠장...!!!! 그래도 나름대로 녀석에게서 빈틈을 만들어낸 일격이라고 생각했는데..!!!!! 

"크윽!!"  

엘리엇의 몸이 점차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것이 처음부터 완력에 있어서는 키레이에게 도무지 당해낼 재간이 없던 엘리엇이었다. 

"잘 봐라! 엘리엇!!!!" 

그 순간 키레이의 기합 성이 엘리엇에 들이 꼿히면서 가차없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흐아앗!" 

그야말로 광풍.  

머리가 휘날릴 정도로 엄청난 바람과 함께 키레이의 검이 공간을 찢을 듯한 기세로 엘리엇에게로 날아갔다.  

몸을 틀어 피하기엔 이미 늦었다.  

키레이의 검이 단번에 엘리엇의 몸을 두 쪽으로 갈라버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되는 순간.  

엘리엇의 모습이 키레이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키레이의 입에서 작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카다인!?" 

......어떻게....엘리엇이!?...... 

카이다식 검술. 다시 말해서 황궁에서만 대대로 전해오는 검술이었다.  

실전에서도 제법 유용한 검술로 좌, 우로 엄청난 빠르기로 이동. 그 동작에서 뿜어지는  

힘으로 상대방의 좌측과 우측을 정신없이 난타하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필수적으로 엄청난 체력을 소모하는데다가 중간에 체력이 소모되어  

동작이 느려지면 오히려 치명적이어서 엘리엇이 그 상태에서 펼치기엔 무리가 있는 기술이었다. 

그 점을 오래 전부터 고심해 온 엘리엇은 이 검술을 상대방의 좌측과 우측을 난타하는 대신에  

단 한방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일격 필살의 검으로 바꾸려는 생각을 품었다.  

그래서 만들어진게 바로 이것이었다.  

소모하는 체력이나 근육의 무리를 더해서라도 속도를 높여서 상대방의 시아에서 일탈. 

생각치 못한 방향에서 공격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틀렸어 키레이!!!!!!  

난 카다인 따위가 뭔지 몰라!!! 하지만!!!!!!!!!!! 

나의 비기 중에는 이런 것 또한 있었지!!! 

...그리고 그것은 엘리엇이 키레이에게 내걸 수 있는 최대이자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비기였다. 

왼쪽? 오른쪽? 

엘리엇이 사라진 직후, 단번에 사태를 눈치 챈 키레이는 검을 거두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하지만 생각 외로 엘리엇의 몸 동작은 빨랐다.  

사태의 경각성을 깨닫은 키레이가 여지건 없던 살기를 폭주시키면서 검을 뒤로 재끼더니 

단번에 뒤를 제외한 모든 지역을 검으로 쓸어 넘겼다.  

콰콰콱!!!!!!!!!!!!!  

무시무시한 검풍과 함께 키레이의 검이 반경 2미터를 휩쓸었고, 불행하게도 엘리엇은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윽!" 

거기에 휩쓸린 엘리엇은 간신히 자신의 검을 들어 키레이의 검을 막아내긴 했지만  

엄청난 충격을 받으며 뒤로 나가떨어지는 것을 면하지 못했다.  

....풀썩....!!!!!!!!!!!!........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엘리엇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키레이의 검이 자신의 목으로 다가왔을 때였다... 

"컥....!!! 쿨럭...!!! 쿨럭...!!! 하아........하아...!!....." 

바닥에 주저앉은채로 기침을 내뱉으며 키레이를 올려다보는 엘리엇의 눈빛위로 체념의 빛이 어렸다. 

"...제법이었다......하지만 전에도 말했을텐데?" 

"한번 검을 날릴땐 실패하면 죽을 각오도 해야 한다는것 말입니까?" 

자신의 말을 자르며 낮게 이어지는 엘리엇의 대답에 키레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잊지 않았군..." 

내가 멍청이냐!? 돌대가리냐!!?? 

젠장....!! 나를 너무 과소평가 하는거 아냐? 

.....네 녀석의 말대로 죽을 각오를 하고 마지막 기회를 노린 거였는데...!!....... 

대련을 신청해놓고 이렇게 져버렸으니...... 

하아...!! 이젠 어떻게 할거냐? 엘리엇!!  

".....그렇게도......소중한 존재였나?" 

나는 난데없이 이어지는 키레이의 말에 놀란 듯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대로 주저앉은 상태에서 그를 올려다 보았다. 

"이렇게 될 것을 알면서도 나에게 대련을 신청할 만큼 그 소년이 소중한 존재였냐고 묻고 있다.." 

.....리...스를 말하는 건가...!!?.......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방금전 대련의 여파가 꽤나 컸는지 잠시간 다리가 휘청할 뻔했지만 이내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소.....중 합니다." 

"......!!!!!!!!!!!........." 

나는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냈다.  

그리고는 여전히 검을 들고 서있는 키레이를 바로 응시하며 대답했다. 

"당신의 말대로 리스는 제게 있어서 매우 소중한 존재입니다." 

.....나의.....소중한 꼬마도련님....이니까!! 

텅!!!!! 

......꽈아아악!!!!!........ 

"큭!!!!"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집어던진 키레이가 나의 어깨를 거칠게 움켜잡았다.  

"입 다물어. 엘리엇...!! 그 이상 말하면 그 소년을 죽여버릴테니까..!!.." 

"............" 

하........하하? 진심인거냐 키레이!? 

그러나 나는 섣불리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눈앞에 서있는 이 자식은 현재 진심이라는 것을 여실히 들어내는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으므로... 

녀석은 진심으로 리스를 죽여버리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미친자식..!!!........... 

".......이러시는...........이유가 뭡니까?" 

오늘 이유라는 말을 지겹게도 운운하는군....!!  

하지만.......정말로 그 이유를 모르겠으니까..!!...... 

너와 나 사이에........존재하는 '이유'라는 것...!!!......... 

".....흐윽...!!"  

빌어먹을....!! 아프잖아!!! 

"이유!? 이유라고 했나!!? 

하!? 네가 그 애송이 기사와 함께 있었을 때부터 그자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다는걸 알았다면  

네가 이렇게 여유만만하게 내게 그런 시건방진 소릴 할 수 있었을지 궁금하군!!!" 

거세게 어깨를 짓누르며 성난 목소리로 나에게 낮게 으르렁거리는 키레이를 보며 등뒤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 자식이 지금..........뭐라고...!?...... 

"네게 있어서 그렇게 소중하다는 그자를 말이다..!!......" 

너......너....리스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거야!!! 

...탁...!!!!!......... 

엘리엇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저 차갑게 황자의 손을 뿌리치며 뒤로 물러섰을 뿐이었다. 

그에 키레이의 눈동자가 더욱 싸늘히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엘리엇은 알지 못했다. 

엘리엇에게는 그저 이 모든 것이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한동안 아무말도 없이 날카로운 눈빛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응시하던 와중에  

엘리엇이 하얗게 굳어버린 표정으로 키레이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나.....때문이라면...굳이 그럴필요까진 없잖습니까...?" 

덜덜 떨면서도 띄엄띄엄 말을 하는 엘리엇을 보며 키레이의 미간이 의아스럽게 찌뿌려졌다. 

"......제가............제가...그렇게....못마땅한 것이라면..." 

뭐라고 중얼거리는지도 모르는채 엘리엇의 목소리는 사정없이 떨려오고 있었다. 

"나만 괴롭히면 되는거잖아!!!!!!" 

"......!!!!!!!!!........." 

갑작스레 터져나오는 엘리엇의 원망어린 외침에 키레이는 일순간 놀란 듯 크게 눈을 떴다. 

"그렇게도 싫었나요!? 못마땅해!!!??? 

내 얼굴을 보는 것 조차 너의 신경에 그렇게 거슬리는거야!? 그런거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영원히 네앞에서 사라져 줄껄 이렇게 나타나서 너의 심기를 어지르는 내가  

백번 죽어도 못마땅한 놈이란걸 나도 잘 알아!!!!! 

그래!!! 너는 빌어먹게도 고귀하고 높으신 황태자저하니까!!!!!" 

악을 쓰듯 외치는 엘리엇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자못 쓰러질 듯 안쓰러웠다.  

"나란 존재가....그렇게......못마땅한 거였다면............!!!!........" 

너에게 있어서 내가 그렇게나 증오스럽고 못마땅한 존재였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사라져 드릴까요?  

그때 당신이 내게 했던 말처럼 다시는 눈에 띄지 않을테니까......그러니까....."  

마지막에는 거의 웅얼거리듯 낮아지는 엘리엇의 허무한 목소리만이 텅빈 연무장에 울려퍼졌다. 

도대체......왜 내가 이런 말을...해야 하는거야...... 

....좋아해..... 

너를......좋아한다구....키레이!!!.............. 

나도 정말 멍청한 녀석이군...!!....... 

이런 때조차 비참하게........녀석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내 자신이.......우스워... 

...뚜벅..!!..... 뚜벅..!!..... 

"어떻게 해야...널 가질 수 있는거지?" 

......뭐...!!?...... 

내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돌아가던 모든 것들이 한 순간 탁하니 멈춰 버린듯한 기분.....!!!! 

"어떻게.........해야........너를 내가 가질 수 있느냔 말이다!!!!!" 

낮게 소리치는 키레이의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숨을 들이켰다. 

....무슨......소리야!!!!!..... 

먼저 외면한건 너잖아!!!! 

...돌아서 버린 것은 너잖아!! 그 때 이후론 얼굴도 비추지 말라고 한건 다름아닌 너잖아!!!!!!! 

그런데 어째서 이제와서.....!!!!!!........ 

...스윽.......!!..... 

움찔..!!! 

키레이의 손가락이 엘리엇의 뺨을 천천히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서서히 내려서는 키레이의 상체가 어느새 엘리엇의 몸을 휘감고, 키레이의 입술이 엘리엇의 귓볼에 닿아 있었다. 

".....원해. 널...." 

키레이의 조용히 속삭이는 세마디가 낮고 깊게..... 엘리엇의 귓가에서 울려퍼지고 있었다.  

"....으....으으..."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목구멍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한마디조차 할 수 없었다.  

두려움....공포......불신...!! 

그 모든 것들이 내안에 뒤섞여 제멋대로 가슴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나를 원한다고......말해주지 않았잖아.............!!!!........ 

이 나쁜 자식아!!!!!! 말해주지 않았잖아!!!!!!!! 

아무것도......말해주지 않는데..... 

볼때마다 나를 피하고 그렇게 차가운 눈초리로 바라보는데......내가 어떻게......알 수 있었겠어!!! 

....거짓말...!!!........ 

네 녀석도 지금 나와 같은 감정이라고 말하고 싶은거야?.......아니면...... 

........장난......인거야....? 

한순간 지나치는 황자님의 유희거리에 불과한.......것일 뿐이라고........ 

두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만약.....이게 장난이라면.......그런거라면 더 없이 잔인한 일이란거 넌 아냐? 

"네가 원하는건 모두 다 들어주겠다.... 

내가 원하는 단 하나만 주면 네가 원하는 그 무엇이라도 ...다 줄 수 있다......" 

......네가 원하는 단......하나!?.... 

"도망쳐도...상관없고, 끝까지 외면해도 상관없다.  

네가 나 아닌 다른 자를 사랑한다해도 이젠 놓아줄 생각따윈 없으니까..." 

무슨......소리야.... 

스윽... 

키레이의 길고 정갈한 흰손이 나의 눈가를 훔쳐내고 있었다.  

"억지라도 좋다. 불공평한 일이라고 나를 욕해도 뭐라 할말은 없으니까...!!"  

파악!!!!!!!!!!! 

나는 그대로 키레이를 밀어버렸다.  

".....웃....기지마.... 

......웃기지 말라구!!!!!!......" 

나는 그대로 키레이 녀석의 넘어진 몸 위로 올라서선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빌어먹을 폼새로 소리쳤다. 

"그러니까......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건데...!?..." 

내 목소리가 두서없이 떨리고 있었으므로 정말 모처럼 키레이 녀석에게서 우위를 선점한 것 치고는  

개갈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건 그냥 넘어가고...!!..... 

키레이는 그대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넌 언제나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군..." 

그 모습은 예전에 파로키학원에서 이 녀석의 방을 빠져 나오기 전 보여줬던 모습과 매우 흡사하게  

닮아있어서 하마터면 작게 신음성을 내지를 것만 같았다.  

무척이나... 안타깝고........서글픈...그리고 몹시도 피곤해 보이는...... 

그리고 또한 무언가를 절실하게 갈망하는 눈빛... 

그 짧은 순간에서도 마음속의 영문을 알 수 없는 막연하고도 거대한 불안감으로 나의 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너를....아직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거다." 

아프고도.......애달픈............고백..... 

....사랑.......한다라고.......... 

".....!!!!!!!!!!!......." 

뭐랄까....갑작스레 하늘에서 뭔가 커다란 바윗덩이가 떨어져 내려 머리를 강타한 듯한 기분... 

"....그....그런........" 

....나는....!!!  

당황인지 뭔지 모를 흥분으로 점철된 내 목소리가 흘러나오면서 나는 서서히 황자의  

몸에서 물러나 뒷걸음질 쳤다.  

아니야!!!!  

다시 한번 더.........기회가 주어졌어.... 

너에게 다가갈 수 있는...............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어어? 엘리엇...!!?.......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지? 

뭐하는거야!? 말해!!!! 

어서 빨리 저 자식한테 말하라구!!!!!!! 

지금 저 자식 표정 굳어져 가는거 안보이냐?  

저 녀석 정말로 화나기 전에 빨리 너도 말해버려!!!!!  

......나 역시......좋아한다고......아니, 사랑한다고 말야!!!!!......... 

나는 뒷걸음질을 멈췄다.  

이렇게 피하기만 하는건 내 전문이 아니야!! 이러는 건 비겁한 짓이라구!!!!! 

페어플레이 모르냐!? 피하지마!!! 앞으로 나가라구!!!!  

....탁....!!... 

나는 뒤로 물러섰던 걸음을 한발짝씩 앞으로 내딛었다.  

두근.....!!!!!!! 두근....!!!!!!!!!!!!!!! 두근.....!!!!!!!!!!! 

맙소사!!! 젠장;;;; 

심장이 제멋대로 부풀어서 터져버릴 것만 같아...!!!!!!..... 

.....정말 이대로 주체하지 못하고 터져버린다면 어떡하지..?.. 

아아.....천하의 내가 이런 망상을..;;;...... 

"나는..........그러니까....나도 실은...." 

숙여졌던 고개가 나의 의지로 들리면서 키레이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되었다.  

그리곤 나의 진심을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하......아...!?............... 

...주륵..!!!.......... 

순간 눈앞이 흐릿해졌다.  

상당한 어지럼증과 함께......입가에서 검고 가늘은 피가 흘러내렸다.... 

뭐지? 

...속이.......메스꺼워... 

"......엘리엇!?" 

풀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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