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연회가 지나고... (56/67)

# 연회가 지나고... 

"어버버...!!" 

말도 제대로 못하고 더듬는 엘리엇에게 리스는 이내 입을 불퉁히 내밀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계속 그런 반응을 보이는건 실례야." 

...대충 왜그러는지는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었지만... 

엘리엇은 리스의 말에 자신의 행동을 정정하려 했지만 워낙 괴리감이 크게 느껴지는 터라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저 멀대녀석이 리스라니!!! 

어떻게 내가 단박에 '아~ 리스였구나! 녀석...많이 컸네?'라면서 친근하게 말이라도 붙일 수 있겠어!! 

설마 내가 워낙 멀미를 심하게 해서 보이는 환상? 

.......제길.....아무래도 그건 아닌것 같고.......리스녀석........정말로 저렇게 커버린건가..? 

"그런데 이쪽분은 누구신지?" 

때마침 델린이 끼어들어 엘리엇을 보며 물었다.  

델린의 물음에 엘리엇은 그제야 자신의 행동을 추스리고 잠시간 리스를 흘끗거리며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렇게 엘리엇이 머뭇거리다가 이내 마음을 굳혔는지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이쪽은 엘리엇후작님이죠.  

아무래도 이번에 황궁에서 한달간 열리는 축연에 초대되어 오신것 같은데...제 생각이 맞습니까? 후작님." 

.....어.....어어?  

.....리스.....? 

"맞......습니다." 

엘리엇은 갑작스레 바뀐 리스의 존칭에 당황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 엘리엇...후작님이시라면......"   

뒷말을 줄이며 꽤나 놀란 표정을 짓는 델린이었다.  

리스야 특기사자격증을 수여한지 얼마되지도 않았고, 정식으로 황궁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기껏해야 3개월 남짓이었다.  

그에비해 4년간 황궁에서 왠만큼 경력을 쌓았다고 할 수 있는 델린은  

자연 사교계의 최고 접선지인 황궁에서 여러가지 소식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세이리어가에 관한 소문이었다.  

엘리엇은 간혹 드물게(...정말로 드물게..) 사교파티에 참가하는 편이었지만 누군가가 다가가서 말을  

걸어주기 전까지는 먼저 누군가에게 접근하는 일이 전무했고, 잘 나서지도 않았기 때문에  

가뭄에 콩나듯 엘리엇을 본 몇몇 귀족들을 제외하고는 일반귀족들에게는 아직까진 소문에 비해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었다. 

또한 이로인해, 자연 이번의 새로운 후계자는 말이없고 소심하다, 또는 무척이나 거만하여 다른사람에게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등등으로 꽤나 나쁘게 소문만 무성하게 나있던 차였다.  

그도 그럴것이 엘리엇에게 있어서는 그 모든것이 귀찮은 것으로만 느껴졌고,  

사실 소문과는 달리 엘리엇이 다가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귀족들이 일방적으로 외면하거나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꽤나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다가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알게 모르게 사교계에서  

따돌림을 받는 엘리엇이었던 것이었다.  

물론 본인은 그런 사실을 전혀 게의치 않았고, 오히려 함께 어울리는게 더 귀찮다는 생각도 한몫 단단히 작용했지만... 

아묻튼 평소 세이리어가에 대한 평판이 꽤나 안좋게 나있던 판에 델린은 눈앞에 보이는 어딘지  

어리숙해보이는 사람이 그 소문의 '후작'이라는 사실에 크게 놀란 것이었다.  

"저는 알트노어 델린이라고 합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후작님.." 

델린이 정식으로 예를 취해 인사를 올리자 엘리엇은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쪽이야말로..." 

사실 딱히 어떻게 답해줘야 할지는 알 수 없는 엘리엇이었다.  

꽤나 난감한 표정으로 그의 인사를 받아들인 엘리엇을 곁에서 보고 있던 리스는 작게 웃었다.  

"역시 소문이란게 다 믿을건 못되는가 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알수없는 델린의 말에 속으로 의문을 품으면서도 곧장 대답하는 엘리엇이었다.  

.....히야......진짜 보면 볼수록 귀엽잖아! 젠장...! 리스녀석만 아니었다면...!!  

아니, 잠깐...!! 말을 들어본즉슨 리스는 눈앞의 후작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건데....그냥 확! 꼬셔버릴까? 

델린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 엘리엇은 그저 멀뚱히 서있을 뿐이었다.  

"자...그런데 언제까지 이곳에 서있을 생각입니까?  

후작님도 깨어나셨으니 어서 연회홀로 가야하지 않을까요? 벌써 폐하의 말씀이 시작된거라면 곤란합니다." 

품속에 지니고 있던 시차막대를 보던 리스가 재빠르게 마무리짓고  

아직도 델린을 보며 멀뚱히 서있는 엘리엇의 손목을 잡아끌자 엘리엇은 그대로 함께 끌려갔다.  

"얌마, 리스!! 기다려 이 자식아!! 

네녀석! 후작님만 쏙 빼가면 나는 어쩌자는거야!?" 

뒤늦게 델린이 투덜거리며 그들을 뒤쫒기 시작했다.  

엘리엇도 꽤나 당혹스런 눈치긴 했지만 그대로 이내 아무말없이 리스의 손에 잡혀 걷기 시작했다.  

정말........이렇게 만나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어. 엘리엇....! 

너무 오랜만이라서 엘리엇에게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말도 많이 있지만  

아직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물어보겠어. 

무엇보다 내게 엘리엇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엘리엇이니까........! 

................... 

이미 홀에선 화려하게 연회가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엘리엇일행이 다급하게 발걸음을 옮겨 홀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막 단상에 앉아있던 황제가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주변은 순간적으로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황제의 왼쪽곁에는 푸른 드레스를 입은 황녀가 앉아있었고  

오른쪽곁에는 황금빛 수가 아름답게 놓인 붉은 제복을 입은 황태자가 보였다. 

그모습을 본 엘리엇은 갑작스레 몸을 움찔했다.  

......키레이황자도.........물론....이곳에 있을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뭔가 놀란 표정으로 갑작스레 고개를 돌린 엘리엇을 보며 리스는 의아해했다.  

...엘리엇!?    

단상에서 일어난 황제는 좌중을 둘러보고는 이내 입을열기 시작했다.  

"이렇게 카이다제국의 건립일을 송축하기 위해 힘들게 이자리에 모여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이날은 다시 없을 값지고 의미있는 날일것이다! 카이다제국의 이 축복받은 대지가 영원히  

우리의 뒤를 이어 번영할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바이다!  

하이테여신이 우리를 자비로 지켜주실 것이다! 그대들은 오늘로써 모든 피로를 가라앉히고  

앞으로 열릴 행사들에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해주길 바란다. 이만... 연회를 시작하도록 하지." 

황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넓고 거대한 홀안으로 경쾌한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고 사람들도 점차 

활기를 띄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회는 엄청났다.  

각지에서 초청장을 받고 올라온 귀족들은 물론이거니와 시종들의 수도 무척이나 많았기 때문에  

카이다황궁에서 열리는 연회는 눈이 휘둥그래질만큼 크고 화려했다.  

엘리엇은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기 위해 늘 그랬듯이 그들을 피해 구석진 곳으로 다가갔다.  

아니 어쩌면 누군가의 눈에 절대로 띄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기도 했다.  

.......젠장...!!...........하필 키레이......라니!!!........... 

하하하....!!! 

오호호호호!!!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홀안의 분위기가 고조되어 가기 시작했다. 

구석에 짱박혀서 벅쩍찌근하게 차려진 연회음식들중 하나에 뻗으려던 엘리엇의 손을 누군가가 낚아챘다.  

"...!!?......" 

뒤를 돌아보자 리스가 빙그레 웃으며 서있었다.  

델린은 이미 여자들에게 둘러쌓여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마도 오늘쯤엔 델린이 누군가를 꼬셔서 둘만의 시간을 나누러 갈지도 모를일이었다.  

차이기도 잘차이지만 그만큼 낚기도 잘낚아채는 델린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리스는 굳이 그쪽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춤을 추는데..후작님은 한번도 안추시렵니까?" 

그말에 엘리엇은 떨떠름히 리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리스님도 춤을 추시길 바라시는 겁니까?" 

......맞았어. 바로 그거야 엘리엇....!!.. 

리스는 엘리엇의 말이 정답이라는 것을 확증하기라도 하는 듯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꼭 한번 함께 춰보고 싶었는데 말야..." 

그때는 나의 키가 너무 작아서 한번도 말을 꺼내본적이 없지만. 

"그....그런...." 

엘리엇은 당황스러운 리스의 제안에 딱잘라 거절도 못하고 망설였다.  

리스 이녀석 왜 갑자기...;;;;;;  

그러다가 문득 너무 오랜만에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리스에게는 무척이나 고마워지려는 순간이었다.  

.....아직까지 잊지않고 기억해줬으니까...........전처럼 귀염둥이 리스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겠지만...말야. 

그러다가 다시금 망설이는 엘리엇이었다.  

...하지만...... 

.......아니, .....어쩌면 잊었을지도.......모르지. 

...그래......틀림없이 그럴거야...하하....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엘리엇! 

나란 녀석은....하아........!!...... 

이내 엘리엇은 리스를 보고는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리는 음흉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흠흠...!! 저는 춤을 잘 못춥니다. 자칫 잘못하다가 리스님의 발이라도 밟는날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은근슬쩍 협박아닌 협박을 해오는 엘리엇에게 리스는 풋하니 웃어보이며 말했다.  

"괜찮아...! 엘리엇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니까." 

리스는 낮게 엘리엇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냉큼 대답했다. 

......헤에.....!! 리스 이자식...언제 저런 말들을 배운거야?  

"그럼 함께 추는거다?" 

리스는 끝내 주춤거리는 엘리엇을 사람들이 춤추는 홀 한가운데로 이끌었다.  

마침 손과 발을 한번씩 맞추며 가볍게 추는 치차댄스에서  

상대의 손과 허리를 휘어잡고 추는 연인들의 춤으로 널리 알려진 라폰댄스로 곡이 바뀌자 리스는 엘리엇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처음부터 추기엔 후작님에게 너무 부담스런 춤이려나요?" 

.....뭐야!? 리스 이자식! 누굴 퇴물취급하는거야!! 

물론 그다지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안추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못추는 것도 아니란 말이다! 

리스가 엘리엇을 바라보며 장난스런 어조로 묻자 엘리엇은 울컥하고는 말했다.  

"그럴리가요! 리스님께는 아직 저의 춤솜씨를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군요.  

확.실.하.게. 보여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자신의 도발에 어느새 걸려 넘어오는 엘리엇을 보며 리스는 또다시 풋하니 웃고야 말았다.  

......정말로 하나도 안변했어. 엘리엇은..!! 

엘리엇이 이춤의 의미를 알고 있기는 한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받아들인걸까? 

물론 엘리엇은 당연히도 라폰댄스의 의미따위는 엿바꿔 먹은지 오래였다. 

사실 라폰댄스자체에는 그닥 큰의미가 깃들은 것도 아니었으니(보편적으로는 연인들의 춤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그냥 넘어갈법도 하지만  

엘리엇은 간만에 리스를 골려줄 생각으로 방금전까지의 태도와는 달리 흔쾌히 승낙한 것이었다.  

"그럼 잘 부탁드리죠. 후작님!" 

"전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엘리엇의 입가로 가느다란 미소가 떠올랐다.   

흐흐흐.....리스녀석.....후회하지나 말라구!  

오랜만에 어디 한번 실컷 골탕이나 먹여줘야겠군...!! 

간만에 추는 춤이긴 해도......뭐....라폰댄스정도야.....!  

전에 얼마든지 쿠사리를 먹어가며 배웠던 거니까...나도 아직까진 잊지않고 기억하고 있는 춤이기도 하고... 

댄스시간에 티티마선생에게 배웠던 수업들 중 하나에 분명 라폰댄스도 끼어있었다.  

그러다가 누군가와 꽤나 격렬하게 춤을 췄던 기억이 어느순간 엘리엇의 머릿속을 훓고 지나갔다.  

.....빌어먹을! 왜 하필 이때에 그런 생각이...!! 

"그럼 제가 먼저 시작하도록 하죠." 

......에? 

리스가 내민 손을 잡은 엘리엇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았다.  

....젠장!!! 얼렁뚱땅 리드를 빼앗겼다!!!!! 

그런 엘리엇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리스는 태연하게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탁탁...!! 

...탁탁....!! 

탁....!! 탁...!! 탁...!! 

처음에는 꽤나 일정하고 규칙적으로 시작하던 댄스의 리듬이 처음과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홀에서 춤을 추던 사람들도 꽤나 열정적으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라폰댄스의 묘미는 처음엔 그저그런듯 일정한 간격으로 리듬에 맞춰 천천히 추다가도 가면 갈수록  

빠르고 경쾌해지며 접촉이 많아지고 그에 따라 춤을 추는 사람들의 자세도 격하게 바뀐다는 점이었다.  

스윽....!!  

타닥...!! 탁...!! 

휘익...!! 

어느샌가로 가깝고도 스치듯 맞닿은 엘리엇의 허리가 유연하게 옆으로 젖혀지면서 한바퀴 빙그르 돌았다.  

그에 비해 리스 또한 그런 엘리엇의 손을 능숙하게 이끌어 잡고 그의 허리를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어쭈...!! 리스 이자식 봐라? 

탁.......타탁....!!  

엘리엇은 리스의 목에 슬쩍 팔을 감았다가 풀면서 재빨리 리듬에 맞춰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탁..!! 탁..!! 탁..!!  

스윽....!! 

아슬아슬하게 맞닿은 다리사이로 엘리엇이 도발적으로(자신은 도전적이라고 우길테지만..)  

리스에게 다가서서는 스탭을 밟기 시작했다.  

탁탁...!!!......탁...!! 

리스 또한 지지 않고 그런 엘리엇의 허리를 잡아 돌렸다.  

쉬익! 빙그르르...!!! 

..........!!!!!!!!!!!!!!........ 

.....싱긋....!! 

어어....? 이게 아닌데...;;;;;;;;;;;; 

태연스레 자신의 손을 휘감아 돌리는 리스를 보며 엘리엇은 점차 당황스러워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더불어 리스의 입가에는 슬그머니 웃음기가 떠오르고 있었다. 

............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추고 있었지만 어느샌가 주위의 시선은 리스와 엘리엇의 주변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들사이에선 매우 유명한 최연소 특기사와 정체가 불분명한 미인이 라폰댄스를 추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절로 감탄이 터져나올만큼 묘하고 황홀한 몸놀림과 함께...!.... 

그러다가 어느 누군가가 낮게 탄성을 내질렀다. 

"......세리이어 듀 유이!?....." 

그의 주변으로 점차 술렁거림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연회로 초대된 사람들 중에는 파로키학원을 졸업한 귀족들도 꽤나 많았다... 

"무슨 소리에요!? 저 사람은 분명 세이리어가의 새로운 후계자라고 알고 있었는데요?" 

"아니에요, 저도 생각이 나요! 저사람은 분명 세이리어 듀 유이.....일텐데? 어찌된 일이지!?" 

"엘리엇 후작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러나 그들은 그러는 와중에도 리스와 엘리엇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눈을 떼기엔 그들이 추는 춤은 무척이나 화려하게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으므로.... 

그리고 또 한사람 그들의 춤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꽈아악.....!!!!....... 

"....오라버니?" 

단상에 앉아서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어느샌가 가려져 버린 홀가운데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던 미레아가 잠시간 스치듯 키레이를 바라보았다. 

"..........!!......." 

미레아는 한순간  갑작스레 느껴지는 묵직한 위압감에 흠칫하고는 어깨를 떨었다.  

무.....무서워......뭘까? 갑자기 이런 기분.... 

아까전만해도 아무렇지 않았었는데....!!...... 

한편 평소에는 연회가 벌어져도 따로 관심두는 곳이 없던 키레이의 눈동자가 어느 한곳을 집요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알 수 없을 만치 그 어떠한 표정도 떠오르지 않는 무심함 그자체였지만  

그것 이상으로 그의 안쪽에서는 무언가가 싸늘하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황자의 곁에 있던 주변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무겁게 짓눌린 주변 공기에 꽤나 당황해 하거나 의아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황제또한 그 기묘하게 달라진 분위기에 자신에게 다가온 유토공작과 말하던 와중에  

의아스럽게 한쪽 미간을 휘어올렸다.  

이것은.....살기!? 

.....무슨 일이지?  

여기 모인 이들중에 이정도로 반응할만한 자가 있었던가? 

"폐하. 제 여식인 세이렌이라고 합니다. 세이렌...어서 황제폐하께 예를 취하거라."  

그러나 이내 그는 곁에있던 유토공작의 목소리에 이내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척이나 화사하고 아름답게 차린 세이렌이 수줍은 듯 미소를 띄우며 천천히 황제에게 인사를 드렸다.  

"위대하신 현황제폐하께 저 세이렌이 예를 표하는 바입니다." 

치맛자락을 들어올리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세이렌을 보며 황제의 얼굴이 슬쩍 펴졌다.  

...유토공작의 여식이라.....!! 

확실히 아름답군...! 게다가 성녀로 소문이 날만큼 마음씀씀이도 곱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세이렌은 황제가 꽤나 호감있는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자 조아린 고개 아래로 작게 확신에 찬 미소를 떠올렸다.  

.......후후....!!....아버지께 미리 들었지.  

이 축연의 마지막 날에 황태자의 반려를 가리게 될거라고 말야! 

그때까지 황제의 눈밖에 나지 않고 최대한 키레이 황자를 구슬리면....반려자리는 틀림없이 나에게로 돌아올꺼야! 

어차피 다른 반려후보자들은 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니까 말야! 

세이렌은 슬쩍 묵묵히 서있는 키레이황자를 곁눈질했다.  

사실 그녀가 노렸던 사람은 키레이황자가 아닌 에스더제국의 황위후계자인 세크레틴황자였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그는 파로키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자신이 들인 공과는 별개로  

홀연히 자신의 제국으로 돌아가버렸고 덕분에 세이렌은 그간 세크레틴황자가 자신에게 거의 다 넘어왔다고 

자신했다가 닭쫒던 개꼴신세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사실 학원에서의 만남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에스더제국으로 가서 세크레틴황자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세이렌은 배신감에 크게 이를 갈며 낙심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희망을 잃지 않았다.  

아직 자신에게는 카이다제국의 황태자인 키레이라는 패가 하나 더 남아있었던 까닭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반려후보자'에 오를만큼 쟁쟁한 배경과 그만한 외모를 지니고 있지 않았던가!? 

물론 이미 한번 포기했던 경험이 있으리만큼 반응없고 무뚝뚝한 목석황태자로 유명하긴 하다만  

그래도 계속 끈질기게 유혹하다보면 언젠가는 넘어오게 되는법!! 

그녀는 자신있었다.  

어차피 키레이황자는 자신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무심한 존재였다.  

차라리 그런 것이라면 어차피 뽑혀야 할 반려는 누가봐도 대단한 재력이 틀림없는 유토공작의 여식인데다 

평소 성녀로 소문이 날만큼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얻고 있는 자신이 뽑힐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은 자신을 넘어서 거의 확신이었다.  

그 증거로 자신의 앞에 있는 황제도 자신에게 거진 넘어오지 않았는가? 

아마 속으로 자신을 황자의 반려로 점찍고 있을것이 틀림없다! 

세이렌의 입가로 다시한번 미소가 덧그려졌다.   

그러던 그녀의 얼굴 위로 잠시간 기분나쁜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키레이황자....어디를 그렇게 쳐다보는 거죠? 

웅성.....웅성.......... 짝짝짝.....!!!!!!! 

그때 홀안에 환호성과 함께 박수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세이렌의 고개가 돌아가면서 이내 그녀의 두눈에 놀라움과 동시에 경멸의 눈빛이 떠올랐다.  

...어......어째서 저아이가!?  

........말도 안돼!! 그 때 분명히 죽었다고 들었는데!?....... 

그러던 세이렌은 이내 흠칫하니 몸을 떨었다. 

그녀가 의심서린 눈빛으로 키레이황자에게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발코니 쪽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래.......그렇겠지. 

분명 나의 착각이었을거야. 설마하니 키레이황자가........!!...  

그녀는 교묘하게 표정을 감추면서 슬그머니 입술을 꽉 물었다.  

.........제깟게 얼마나 대단하길래!!.........이곳에서까지......!!!!............. 

.....꽈아악...!!!......... 

사람들의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무척이나 신경에 거슬리는 세이렌이었다. 

"하아...하아...!!!" 

엘리엇이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제길....!! 리스 이자식 생각외로 잘추잖아? 

하긴 내가 언제 리스녀석과 춤을 추게 될 날이 있을거라고 상상이나 해봤겠느냐만은...!! 

"후우.......!! 멋진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후작님!" 

리스가 싱긋 웃으며 말하자 엘리엇은 킥하니 웃었다. 

정말로 골려줄려는 생각에 본의 아니게 열심히 추었는데  

오히려 리스는 자신의 엇박자를 모두 따라잡고 더불어 여유있게 자신을 리드했다. 

이 녀석 많이....성장한거겠지? 

확실히 그때의 꼬마도련님은 아닌게 분명하군...!!  

두사람이 추던 라폰댄스가 끝이나고 엘리엇과 리스는 한동안 가쁜숨을 가다듬어야 했다.  

주변에서는 여전히 여러가지 감탄사가 크고 작은 높낮이를 띈채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리스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엘리엇을 보며 슬쩍 웃었다. 

얼마안가 새로운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엘리엇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이상은 무립니다." 

춤은 이번 한번만 추는 것으로 충분히 족하다구...!.... 

리스는 아쉽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테라스에 가서 좀 쉬는게 어떨까요? 거긴 사람들도 별로 없으니까...바람도 쒤겸." 

그동안 못다한 얘기도 할겸....!..... 

엘리엇은 히죽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간만에 만난 리스녀석의 부탁을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까...!! 

웅성......웅성....!! 

두 사람이 테라스로 빠져나간 후에도 연회홀은 한동안 어수선하게 술렁거리고 있었다.  

............ 

으으.......생각외로 추운걸? 

리스가 엘리엇을 이끌고 나온 테라스엔 밤바람이 제법 쌀쌀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없었다.  

"뭐랄까..........3년만인거겠지?" 

테라스의 난간에 기대선 리스는 엘리엇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네요. 그동안 리스님은 잘 지내셨나요?" 

엘리엇의 물음에 리스는 싱긋 웃어보였다. 

"잘 못지냈다고 하면 엘리엇은 나에게 무엇을 해줄거야?"  

"............" 

글쎄 그런것 까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의레 잘 지냈다고 말해줄줄 알았던 리스의 입에서 의외의 소리가 튀어나오자 엘리엇은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그....글세요...;;;;;" 

그모습이 또 마음에 들어서 리스는 다시한번 엘리엇이 눈치채지 못할만큼만 작게 큭큭거리며 웃었다.  

"신경쓰지마. 농담이니까....... 

그보다도 한가지 꼭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 

.......엘리엇은 어째서 나에게 거짓말을 했던거야?  

난......네가 후작일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는데. .....그땐 분명히 여행을 하다가 도적들에게 습격당했다고 하지 않았어?" 

리스가 진지한 눈빛으로 엘리엇에게 묻고 있었다.  

......거짓말이라기 보다는 어쩌다가 지위가 올라갔다고 해야 하는걸까? 

"날...속인거야?" 

"..그건 아닙니다! 절대로!....." 

엘리엇이 리스의 말에 다급하게 외쳤다. 

애초부터 리스 네녀석을 속이고 뭐고 할것도 없었다구.......하아...!! 

"뭐....어쩌다보니 후작이 되어버렸지만요...." 

끝말은 거의 흐리다시피 하는 엘리엇이었다.  

이로인해 리스가 괜한 오해를 하면 어찌하나 속으로 꽤나 전전긍긍하는 엘리엇이었다.  

3년만에 만난 반가운 꼬마도련님인데...! 

"풋!...알았어.... 엘리엇만의 사정이 있었던 거라고 믿을게.  

무엇보다 나와의 약속도....지켜준거니까." 

......리스?... 

"기억해? 3년전 내가 말했잖아.  

나중에 커서 훌륭한 검사가 되면 그때 꼭 다시 나와 만나주기로 한것 말야." 

리스 이녀석...!? 

"......물론........기억하고 말고요." 

엘리엇의 목소리가 슬쩍 떨려나오고 있었다. 

"황궁특기사 정도면 어때? 나 그래도 너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꽤나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말야.  

덕분에 선배들에게는 검술연습밖에 모르는 별로 귀엽지 않은 녀석으로 통하고 있기도 하지만...!" 

입을 불퉁이 내밀며 말하는 리스의 모습에 엘리엇은 저도 모르게 킥하니 웃어버렸다. 

"....그래도 이정도면 꽤나 훌륭한 검사겠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리스 이녀석...!!  

아무리 내가 아는게 별로 없다곤 하지만 특기사의 위명이 어떤건지는 대충 들어서 알고 있단 말이다! 

그거........무척이나 굉장한 거겠지? 

"사실 엘리엇을 다시 만나면 꼭 하고 싶었던 일이 하나 있었는데.....!" 

"....!!?......" 

그게 뭐지? 꼭 하고 싶었던 일? 

내가 의아스럽게 리스를 바라보자 리스는 조금 붉어진 얼굴로 다른곳에 시선을 돌렸다.  

어라? 이녀석 갑자기 왜 그러나? 

"지금은 말고....나중에......." 

작게 얼버무리는 리스를 보며 나는 피식웃었다.  

뭐야... 싱거운 녀석같으니.....  

꼬마도련님! 그래도 정말로 기뻐.  

네가 무척이나 멋지게 성장한 것 같아서 말야....뭐랄까 이건 정말 뿌듯한거겠지? 

"점점 추워지는걸? 엘리엇은 춥지 않아? 

기온이 더 떨어지기 전에 이제 그만 돌아가서 쉬는게 어때?  

내일은 좀 더 피곤한 행사가 있을 예정이니까 말야." 

리스가 나를 보며 조금은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헤에...전에는 내가 이 꼬마도련님을 챙겨줬던 것 같은데 어느새 자라서 이젠 내가 녀석의 배려를 받고 있다니! 

아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훌륭하게 자라줬군! 

연회장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언제까지고 그렇게 떠들어댈 생각인 것 같았다.  

징한인간들 같으니...;;;;  

리스는 나를 이끌고 테라스 끝에 따로 연결된 문을 통해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그대로 방향을 꺾어 들어선 복도 위를 함께 걷노라니 마냥 흐뭇해지려는 순간이었다.  

......멋진 건물이군! 뭐...... 확실히 카이다제국의 황궁답다고 해야하나? 

창가로 스미는 달빛들을 꽤나 느긋하게 감상하며 리스녀석과 함께 걷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바람이 살랑하고 불어왔다.  

잠깐...!! 그런데 나 어디로 가야하는 거지? 

"저......리스님.. 그런데 제게 지정된 방이......어딘지 아십니까?" 

멈칫...!!!! 

   

앞서가던 리스의 어깨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리스님!?" 

혹여 내말에 뭔가 충격먹을 일이라도 있었나 싶어 다가가니 아닌게 아니라 웃음을 참기위해 애를 쓰는 

리스녀석이 단박에 눈에 들어왔다.  

"....에에......!?" 

"풋!! 엘리엇....이런.....! 설마 네 방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날 따라오고 있었단 말야?" 

리스의 말에 나는 슬쩍 얼굴이 붉어졌다.  

리스 이녀석!! 그래도 그렇지 내가 너를 얼마나 아껴줬는데!  

겨우 그거가지고 그렇게 비웃어!? 

사람이 말야, 쬐금 장소가 낯설면 이런저런 실수를 할수도 있는거라고! 

말은 못하고 불만스럽게 리스를 보고 있노라니 리스가 힘겹게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하아.......엘리엇은 여전하다니까." 

........뭐가 여전하다는거지? 

의문섞인 표정으로 리스를 바라보는 나를 향해 녀석은 싱긋하니 웃어보였다.  

너야말로 여전하다구. 꼬마도련님...!  

그렇게 웃어버리면 어쩔도리가 없잖아. 쩝...!! 

"걱정마. 황궁으로 초대된 손님들에게 따로 배정된 숙소는 미리 알아 봐뒀으니까........" 

어라? 어느새 그런걸 알아본거지? 

물론 자신이 멀미로 정신을 잃었을 때라는건 엘리엇이 자세히 알리가 없었다.  

그러던 엘리엇은 리스가 약간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자세를 바로잡고 예를 취하자 당황했다. 

......엑? 이 녀석 갑자기 왜이래!? 너 뭐 잘못먹었냐? 

엘리엇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의아한 표정을 떠올리고는 리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뒤로 돌렸다.  

스르륵....!! 

그와 동시에 바람이 불면서 엘리엇의 은빛 머리칼이 나부끼는 순간이었다.  

"황태자저하께 나이트리스가 인사드립니다." 

"...!!!!!!!!!.." 

".............." 

이럴수가.......!! 키......레이!?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분명 미드나잇블루의 머리칼과 함께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지닌 

꿈에도 잊지못할..........카이다의 황위후계자....... 

키레이황자였다...!! 

차마 고개를 숙일 생각조차 못한채 엘리엇의 두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째서......이런곳에? 

덜덜.....덜......!!!............ 

"..엘리엇?...." 

리스가 의아한 목소리로 작게 엘리엇을 불렀지만 엘리엇은 그저 굳어진 표정으로 눈앞의 키레이황자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엘리엇이 뒤늦게 그를 보고 예를 취한 것은 꽤나 시간이 흐르고 나서였다.  

덜덜.....덜......덜덜......!! 

"태...태자.......저하께....." 

스윽...!!  

뚜벅.....뚜벅.....!! 

그러나 엘리엇이 인사를 끝내기도 전에 키레이는 발걸음을 옮겼다.  

"...!!!!!!!!....." 

"................." 

황자가 보인 행위는 명백하게 엘리엇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엘리엇이 마저 인삿말을 전하기도 전에 발걸음을 옮겨 제갈길을 가버리는 키레이황자를  

리스는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엘리엇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엘리엇? 이런.......괜찮아...?" 

소.....손치워 줘...리스!!! 

탁...!! 

"죄.....죄송합니다......쉬고 싶습니다만...  

꽤나 피곤한데요? 많이 움직여서 그런지.......하하....하........." 

덜덜....덜....!!......... 

억지로 웃는게 표가 날만큼 엘리엇의 안색은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게다가 리스가 잠깐 엘리엇의 어깨위로 손을 얹었을때는 그의 몸에 이는 심한 떨림이  

분명히 손끝으로 전달되었다. 

차마 무슨일인지 묻지는 못하고 필사적으로 자신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엘리엇을 

꽤나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리스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치게 냉담한 키레이황자의 행동과 갑작스레 민감해진 듯한 엘리엇의 행동에  

리스는 잠시간 의문과 동시에 씁슬하게 인상을 굳혔다.  

평소 그분은........ 절대 이런 행동을 할리가......없으셨던 분인데... 

어째서 황자가 엘리엇에게....? 

".....이쪽으로...따라오도록해........" 

"............." 

-.....가......라....그리고 다시는........내눈앞에 나타나지 마라... 

......다시는......내눈에 띄지마......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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