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새로운 후계자 (52/67)

# 새로운 후계자 

".....세이리어가의 후계자가 다시 나타났다고?" 

하넨지방의 영주인 죠셉백작의 비리사건에 관한 서류에 싸인을 하고 있던 황제는 놀란 표정으로 

자신에게 달려온 보좌관에게 되물었다. 

"예.....일단은 자신이 세이리어가의 새로운 후계자라고 말하고 있긴 합니다만...." 

".....호오......?....." 

황제는 서류에서 펜을 떼고 천천히 두손을 깍지꼈다. 

.....세이리어가의......새로운 후계자라....... 

그의 조금은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눈매가 가늘게 접히면서 입가에는 호기심 어린 미소가  

띄어올랐다.  

보좌관은 그 곁에서 부동자세로 다음에 그가 내릴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때는 찬란하게 번영했던 세이리어가였었건만......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되었는지......쯧.. 

후계자가 사망하고 난지 벌써 일년도 다되가는 이제서야...나타나다니! 

...세이리어 듀 카세인.........천하의 난봉꾼..이자......지독스레 고집스러웠던 사내... 

그에 비해 매우 소심하고 자기주장이 없었던 그의 후계자 세이리어 듀 유이..... 

그리고 이번엔 새로운 후계자라........ 

.....확실히 흥미로운 가문의 내력이로구만....... 

"그럼.......한번 만나보도록 하지... 정식 후계자로 이곳에 찾아올 정도라면 뭔가가 있는거겠지... 

슈벤....그를 데리고 오도록 하게..." 

황제의 수락명이 떨어지자 보좌관인 슈벤은 고개를 숙여 가볍게 목례를 하고 방문을 나섰다. 

"........자......이번엔 어떤식으로 세간의 시선을 그러모을지 자못 기대가 되는구만.....허허허....!!!  

........흠 나도 못써먹겠구만.......이젠 나이가 먹으면 그저 이런 흥밋거리에나 관심이 

가기 마련이니.......이 귀찮은 자리를 빨리 아들에게나 물려나 주고 우리 미레아와 어디  

오붓한 시간이라도 가져야지 쯧쯧....!..." 

......그러고 보니......키레이 그녀석........세이리어가의 후계를 꽤나 신경쓰고 있었던 것 같은 눈치인데...... 

조금 입안이 깔깔해오면서 입맛을 다시는 황제였다. 

"....두번 다시는 볼 수 없는 아이인가......." 

어딘지 아주 약간 씁쓸하게 눈빛이 가라앉는 황제였다. 

.............. 

"폐하께서 승낙하셨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주십시오.." 

의자에 앉아 무료한 시간을 보내며 기다리고 있던 나는 허락이 떨어지자 조금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감사합니다." 

칼같이 옷을 차려입은 사내는 황제를 알현하러 온 나에게 자신이 황제의 보좌관이라고 설명했다. 

꽤나 높은 위치에 있는 만큼 기품이 넘쳐 흐르는 듯한 정중한 사내의 뒤를 따라나서며 심히 착잡해졌다. 

에에......어찌어찌해서 어렵게 이곳까지 오게 되긴 했는데......으윽!....... 

황제를 다시 본다는 것은 괜시리 엄청 가슴떨리고 긴장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이런일에 한해서는.....더욱 더....!! 

전에 검술대회때 한번 빼고는 가까이에서 단 한번도 마주쳐 본적이 없었는데... 

그래도 평민출신인 나로써는 엄청나게 대단한 영광이라고 해야겠지? 

평생을 살아도 얼굴한번 제대로 못볼 줄 알았던 사람이었는데 말이야.... 

나는 보좌관의 뒤를 따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걸어갔다. 

오늘은 무슨일이 있어도 잘 보여야 한다면서 로이떼가 골라준 옷을 입고 들어오긴 했는데... 

그래도 용케 옷은 어디서 구해왔군;;;;; 로이떼;;;;;;;....쩝;;...!! 

..스윽..... 

매우 고풍스러워 보이는 검은 문이 열리면서 황제가 머무는 집무실의 모습이 드러났다. 

보좌관은 짧게 목례를 하고 난뒤 황제의 곁으로 가서 섰다. 

나는 무릎을 끓고 그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올린 뒤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말을 읇조렸다. 

"....카이다제국의 위대하신 현황제폐하께 무한한 존경을 담아 낮은자가 인사를 올리옵나이다..." 

고개를 숙인 옆으로 나의 긴머리칼들이 흘러내려서 간질거렸지만 꾹 참았다. 

.....젠장......;;; 이놈의 머리카락;;;;; 쓸데없이 금방 자라기만 해가지고;;;; 

"일어서게." 

황제의 수락이 떨어지자 엘리엇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자리에서 일어서 고개를 든 엘리엇을 보던 황제는 잠시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전 후계자는 살해당한걸로 알고 있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건가? 아니면... 

황제가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깨닫았는지 엘리엇은 잠시간 아무말 없는 

황제를 힐끔힐끔 올려다 보며 조금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떻게 된건가?........분명 자네는...........살해당했다고 하지 않았었나? 

세이리어 듀 유이군..." 

황제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엘리엇의 두눈이 슬쩍 빛났다. 

황제는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전 후계자인 세이리어 듀 유이님은.......살해당하셨습니다...." 

엘리엇의 말이 떨어지자 황제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러고 보면......황제폐하도 그녀석과 많이....닮았네... 

...부전자전인가?... 

황제의 얼굴을 바라보던 엘리엇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다음에 이어질 황제의 말을 기다렸다. 

"그렇다는 것은 자네는 세이리어 듀 유이군이 아니란 말인가?" 

"예...그렇습니다. 전 유이님이 아닙니다..." 

엘리엇의 말에 황제는 한동안 유심히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닮았는데 말야...... 

아....머리색인가!? 

엘리엇을 뜯어 보던 황제의 기억속에 파로키안 때 보았던 전 후계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얼마 본적이 없어서 그것을 깨닫는 것이 조금 늦어졌지만... 

그때 분명 그 아이는 붉은 머리를 하고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러고보면.....세이리어가는 대대로 붉은 머리칼을 지닌 자들이 태어났었지... 

"......그렇다면 자네의 이름은 무엇이지?" 

황제가 자신의 이름을 묻자 엘리엇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제 이름은..엘리엇입니다." 

....성이....없나? 그렇다면 아무래도 평민이겠군..... 

하지만 이상하게 눈앞의 이 소년이 낯설지가 않은데..?.....흐음....... 

그때는 나도 한창 바쁠시기어서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게 지금에 와서 무척 유감이 될줄이야... 

"그렇다면 묻겠네. 자네가 세이리어가의 새로운 후계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가 있나? 

이것은 가볍게 지나칠 문제가 아니야. 자네가 만일 나를 속이려는 것이면.....각오해야 할걸세." 

황제는 마지막에 경고의 말과 함께 60대의 노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박력있고  

매우 날카로운 시선으로 엘리엇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엘리엇은 그 시선에 약간 위축이 되었지만 곧 대답할 수 있었다. 

"저는 세이리어가의 후계자증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엘리엇은 말을 마친 뒤 자신의 목에서 목걸이를 풀러내어 황제의 앞에 내밀었다.  

황제는 꽤나 놀란 눈초리였다.  

......거진 1년간 사라졌던 세이리어가의 후계자의 증표가......다시 나타나다니....호오..!?.. 

게다가 상대는 전 후계자를 무척이나 흡사하게 닮은 평민소년이라... 

........혹시 전 카세인후작과 관련이 있는건가?  

아무래도 예전의 세이리어가의 가주인 카세인후작은 천하의 난봉꾼으로 소문이 나서 이곳저곳에 

염문설을 뿌리고 다녔던 사내였기 때문에 딱히 의심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본처를 맞이하고 부터는 갑작스레 태도가 바뀐 그의 모습에 수도전체의 모든 귀족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가능성이 있을수도 있겠군... 

자신 나름대로 예상해보던 황제는 엘리엇이 건넨 목걸이를 옆의 보좌관이 받아들어  

자신에게로 가져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여기..폐하..." 

보좌관이 그에게 천천히 목걸이를 내밀자 황제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이 목걸이가 세이리어가 후계자의 증표라는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머리위에서 울려퍼지는 조금은 냉정한 목소리에 엘리엇은 황제를 슬쩍 올려다 보며 답했다. 

"이미 마탑에 찾아가서 그 목걸이에 걸린 마법을 확인했습니다. 폐하께서도 술법을 사용하시는 분이니 

직접 확인해 보셔도 될것입니다... 물건을 봐준 마도사의 감정서도 받아왔습니다..." 

엘리엇은 뒷춤에 차인 무한주머니에서 전에 마탑으로 찾아가 만난 어느 한 괴팍한 늙은이가 

써준 추천서를 꺼내들었다.  

......후우..........! 이안의 스승이라더니......그렇게 성질머리가 그렇게 괴상할 줄이야...쩝!! 

처음에 린바스 집사가 소개해준 내용은 자신이 지닌 목걸이가 후계자의 증표인것은 확실하지만 

혹시라도 아닐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먼저 마도사들에게 찾아가서 확증을 받는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최종적으로는 황제를 찾아가 인정을 받아야 하는 거지만 아직 모든것이 확실치 못한 것이었기 때문에 

엘리엇은 린바스집사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하여 수도에서 동남쪽에 위치한 마탑을 찾아갔다.  

물론 마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멀미때문에 몹시나 고생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 엘리엇을 본 그들의 태도는 무척이나 냉담한 것이었다.  

아마도 또 어느 어설픈 귀족녀석이 되지도 않는 술법을 배우러 온것이라 지레 짐작하고  

그러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마탑은 이 제국내뿐만이 아니라 전 대륙에서 얼마 있지 않은 술법을 다룰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 

모이는 곳이었으므로 일반인들은 그들을 경외와 존경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것은 굳이 카이다제국 뿐만이 아니라 전대륙을 통틀어서 그런 것이었다.  

그만큼 마도사들은 희귀한 존재들이었고, 또 그런만큼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는 존재들이었다. 

또한 그들의 지위도 공식적으론 귀족들보다 낮았지만 사실은 그 이상인 경우가 수두룩했다.  

하다못해 이제 갓 술법의 기초를 뗀 초보마도사 조차 왠만한 자작들 보다도 좋은 대우를 받고 있으니 이만하면 말다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마도사들 사이에서는 알게 모르게 짙은 자부심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높은곳에서 군림하며 뽐내기를 좋아하는 것은 귀족들도 역시나 마찬가지였으므로  

그들은 틈만 나면 마탑으로 찾아가 자신들에게 술법을 가르쳐 줄것을 권유했지만 번번히 퇴짜를 맞는 실정이었다. 

말했다 시피 술법을 사용할 수 있으려면 범인들과는 달리 좀 더 특별한 체질을 가지고 있어야했다.  

하다못해 직접적으로 힘을 느끼진 못해도 영감이라도 좋아야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찾아오는 귀족들 중에 그러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으며 모두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과시욕에 절어 어떻게든 술법이란 것을 배워보고자 기를 쓰는 자들 뿐이었다. 

이쪽 방면에 소질이 있어도 그것을 계발하는 것은 꽤나 힘든일인데 소질은 커녕 능력도 쥐뿔 없는  

자들이 찾아와서 되지도 않는 말로 자신들을 구슬리려고 하자 마탑쪽에서는 기가막힐 따름이었다.  

이쯤되니 마탑에서도 자신들을 찾아오는 귀족들을 고운 눈길로 보지 않게 된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엘리엇도 처음에는 영문도 모르고 차가운 분위기에 당황해야 했다. 

"저.......물건의 진위여부를 확인하러 찾아 왔습니다만...." 

엘리엇이 조심스레 카운터에 앉아있는 사내에게 말했지만 그 사내는 석연찮은 표정으로 곧 대답했다. 

"예. 잘 알겠습니다. 그럼 물건은 이곳에 두고 가십시오. 약 한달 뒤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에.....에엑!!! 목걸이 하나의 진위여부를 파악하는 마법을 하는데 한달씩이나 걸린다는 거야!? 

엘리엇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조금 귀찮다는 표정을 내비치며 대답했다. 

"현재 마탑에는 물건을 봐줄 만큼 한가한 마도사들이 없으신 실정이라서 시간이 좀 걸립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마자 엘리엇은 천천히 자신이 들어온 마탑 내부의 거대한 홀안을 둘러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주위에는 대략 자신 말고도 다른 용건으로 찾아온 듯한 사람들이 널려있었다.  

"...급한 일은 아니지만....빨리 할수는 없을까요?" 

엘리엇이 뒷통수를 긁적이며 다시 한번 말하자 카운터에 앉은 사내는 고개를 내저었다. 

"안됩니다. 당신 말고도 이미 많은 사람들의 주문이 밀린 상태입니다.  

딱히 이곳에 안면 있는 마도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시간이 오래 걸리시더라도 기다리십시오." 

뭐야 이거;;;; 결국 용건을 빨리 끝내려면 이들 중 누군가와 연줄이 닿아야 한다는거 아냐? 

하지만......내가 이 마탑에 아는 인간이 누가 있겠냐고!! 

맙소사....! 난 오늘 처음 이곳으로 찾아온 거란 말이다;;;; 도무지 아는 녀석이 있을리가....잠깐!!.... 

......이....안!?....그렇지!! 이안이 있었어!!! 이안도 마도사니까 분명히...!! 

"저......혹시 이안이라고 알고 계시나요?" 

내가 곧 포기하고 갈것이라 생각했던지 별 신경쓰는 눈초리가 없던 사내가 갑작스레 놀란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이안이라면......설마 크로이데 이안을 말하시는 겁니까!?" 

좀전과는 영 딴판으로 꽤나 흥분한 듯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순식간에 홀안에 있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였다. 

"......아....마.....그랬던 것 같은데요...." 

그때 세크레틴 황자가 분명 이안을 보고 크로이데 이안이라고 말했으니......맞는거겠지? 

사내는 나의 말에 거의 두눈이 튀어나올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이내 앞에 놓여있던  

벨들 중 하나의 추를 꾹꾹 눌렀다. 신기하게도 벨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울리지 않았다. 

...뭘 하는거지? 

"그와는 무슨 사이입니까?" 

사내의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답했다. 

"....음.....그 녀석의 수제자.....정도라고 해야하나요? 아.....하하....하......." 

이거.......내 입으로 말하고 나니 엄청 쑥쓰럽잖아;;;; 하지만 뭐....틀린말도 아니니까.. 

"수제자 말입니까!!?" 

이제는 입까지 떡하니 벌린 사내는 얼굴이 불그죽죽해졌다. 

그러더니 이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저 표정은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 다는 듯한 표정인데...;;;; 아닌가? 

"당신이 정말 크로이데 이안의 수제자라면 그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에...? 증거? 

이번에는 내가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그는 이내 얼굴에 비웃음을 떠올렸다. 

"그러면 그렇지...! 다른 누구도 아니고 크로이데 이안의 수제자라니 그런 뻔한 거짓말을..!.." 

그가 날카롭게 나를 질책하려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이안이 건네준 팔찌가 생각났다. 

"잠깐만요! 증거라면 여기 있습니다!!" 

내가 말과 동시에 카운터 위로 그에게 내밀은 것은 나의 왼쪽 손목이었다.  

왼쪽 손목에는 이안의 머리카락으로 땋아 푸른구슬로 마무리가 된 팔찌가 내 손목에 딱 맞게 매달려 있었다. 

사내는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구슬쪽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더니 그의 손에 닿은 팔찌의 구슬이 푸른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한참을 매만지더니 이내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이럴수가.....! 정말이잖아!? 

크로이데 이안이 두명의 황자들을 빼고도 다른 수제자를 거느렸을 줄이야...!!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되면 무척이나 놀라겠군.....!" 

혼잣말로 뭐라고 중얼거리던 사내는 이내 표정을 풀고 나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카운터에서 일어서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당신이 정말 크로이데 이안의 수제자였다니.....!...몰라 봐서 소홀히 대한 것은 사과드리죠.  

방금전에 이안의 스승이셨던 안데노님께 연락을 드렸으니 곧 만나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이 목걸이에 걸린 마법감정도 그분께 부탁드리면 될겁니다...이쪽으로 따라오십시오." 

그는 카운터 안쪽의 검은 문앞으로 나를 안내하더니 문의 손잡이를 잡고 이내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그 문안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해줬다. 

"....아...!!?......" 

나는 사내를 따라 문안으로 들어서자 순간적으로 목구멍에서 크게 탄성이 튀어나왔다. 

문안쪽에는 놀랍게도 계단이나 방안이 아닌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에는 흰 구름들이 둥실둥실 떠다녔고 눈앞에 펼쳐진 초원은 바람에 흔들려 쏴아아 소리와 함께 

시원하게 함께 흩날리고 있었다.  

어째 공기마저 상쾌한듯 한것이 전혀 딴세상에 온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분명 밖에서 보았을 때는 이렇게 넓은 초원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마탑안에 이런 초원이 있다는 것 또한 불가능해 보이고..." 

거의 혼잣말 가까운 나의 질문을 앞서가던 사내가 들었는지 이내 곧 대답해 주었다. 

"지금 당신이 보시는 것은 실제가 아닙니다. 환영마법에 의해서 이렇게 보이는 것 뿐입니다." 

......뭐!!? 이게 정말 환영마법이라고? 

맙소사!! 하지만 분명 바람도 느껴지고 풀밟는 감각도 이렇게나 생생한데!? 

설마 지금 날 놀리는건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눈앞에 펼쳐진 풀밭에 몸을 날려보았다. 

쿵!!!!!!! 

"아우욱...!!!" 

"......그렇다고 그렇게 너무 몸을 막굴리시진 말아주십시오. 환영마법이긴 해도 엄연히  

감각은 존재하니까요.........그나저나 꽤나 아파보입니다.." 

"....으..으으.....아..니요.....하나도 안아픕니다...." 

일부러 억지로 안면근육을 끌어올려 미소까지 지었건만 내 표정이 영 탐탁치 않았는지 

사내는 석연찮은 표정으로 다시한번 나를 훓어보더니 곧 뒤를 돌아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그딴건 진작에 말해줬어야지!! 이런 망할!! 

이미 풀밭으로 몸을 내던졌다가 하필이면 앞쪽에 박혀있는 짱돌에 머리를 박은 나는 

속으로 무척이나 궁시렁 거렸지만 짱돌 하나하나 조차 세세하게 신경써진 이 초원에 내심 

감탄을 내뱉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대단한 술법을 사용할 수 있는거지? 

그러고 보니 파로키안 때도 무척 화려한 환영술을 봤었던 것 같은데..... 

...나도 조금은......익숙해 졌을까?  

내친김에 슬쩍 오른손 위로 환영마법을 시전해봤다.  

.....붉은......꽃.... 

샤아아악.......!! 

".....!!? 뭐하십니까? 빨리 따라오십시오..." 

사내가 뒤에서 머뭇거리던 나를 향해 말하자 나는 멋쩍게 웃으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아마도 그는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내 손 위에는 분명 붉은 장미 한송이가 피었다가 사라졌다... 

음......이정도면 나름대로 성공.....적인거겠지? 

약간 머리가 어지러운 듯도 했지만 그럭저럭 버틸만 한것 같았다. 

헤헷.....!! 갈수록 익숙해지는 것 같은데!? 

사박...! 

"여기입니다." 

앞서가던 사내는 이내 어느 한 집한채에서 멈춰서더니 뒤돌아서서는 말했다. 

......진짜 그림같네...;;;;; 

이 집은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거지? 

통나무로 지어진 듯한 나무집은 풀밭위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아까전만 해도 안보였던 것 같은데.....헤에.......신기하군? 

사내는 나에게 손짓하더니 이내 나무집의 문을 두드리고 곧 그 안으로 들어섰다. 

덩달아서 사내를 따라 들어간 내눈에 집안 내부가 보였다. 

통나무집 내부는 딱히 특별날 것은 없었다. 다만.......좀 많이 지저분했다. 

책상과 책들.....바닥에 널린 괴상한 물건들과....그리고 벽면에 배치된 침대위에서 누워 빵을 먹는 노인!!? 

에.......에에에!!!??  

노인은 우리가 왔음에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다는 듯이 누워서 빵을 뜯어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던 사내는 못참겠는지 곧 말했다. 

"안데노님. 손님을 데려왔습니다.  

이 소년이 가지고 있는 물건의 진위여부를 판별받기 위해 이곳으로 데려왔습니다." 

사내의 말에 그제야 먹던 빵을 슬그머니 아래로 내려놓고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 노인은  

한쪽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의아스런 눈초리로 바라봤다. 

".....크로이데 이안의 수제자이기도 합니다." 

벌떡!!!!! 

순간 침대위에 뭉그적거리며 누워있던 노인이 답지않은 반사신경을 발휘하여 침대위에서 발딱 일어났다. 

"뭐야!!!?? 정말 네가 이안놈의 수제자란 말이냐!!!!!!!!??????" 

"허억..!!" 

......노.....노인.....맞아? 

엄청나게 커다랗고 우렁찬 목소리가 통나무집에 울려퍼지면서 나는 한동안  

안데노라고 불린 노인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어느새 정신을 차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마...맞는데요?" 

"그럴수가!!! 아참....!! 그런데 커스!! 넌 여기에 왜 있는게냐?  

얼른 나가있어! 빨리 가서 접수나 보고 있으란 말이다!! 그렇잖아도 쌓인일이 한두가지가 아닐텐데!!" 

우렁찬 목소리의 노인내는 나를 안내했던 사내...이름이 커스라고 했지? 

커스를 바라보며 빨리 나가라는 듯한 살벌한 눈빛을 마구 발산해대고 있었다. 

커스는 그런 노인내를 보더니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이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전 이만 나가볼테니 두분이서는 얘기 나누십시오." 

커스는 문을 닫고 나가기 전에 내쪽을 다시 한번 유심히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는 나갔다. 

왜.....저러지? 

"이봐! 애송이녀석! 거기에 그렇게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서있지 말고 어디 자리 좀 잡고 앉아봐." 

내가 잠시간 정신을 판 사이 노인은 나에게 대강대강 손짓을 하며 앉으라는 제스쳐를 취해보였다. 

그에 따라 엉거주춤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인상을 슬쩍 찌뿌렸다. 

"앉을데가 없는데요...?" 

주변은 아무리 둘러봐도 의자는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바닥에 앉자니 늘어진 물건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전이야 아무렇지 않게 풀썩풀썩 앉았을 테지만... 나도 어느샌가 상류생활에 동화되 버린 것인지 

이런 광경들을 보고 나서 선뜻 앉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아니......그보다도 바닥에는 꽤나 위험해 보이는 물건들이 이리저리 흩트러져 있었다. 

.........한번 잘못 앉았다간 허벅지에 구멍이 뚫릴지도;;;;;; 

그때였다.  

노인이 들고있던 빵조각이 내쪽으로 날아오면서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려 빵을 피한것은..! 

.....퍽!!... 

"....히익...!!!....." 

얼결에 뒤돌아본 곳에 있는 자리에는 빵이 제멋대로 벽에 찌그러져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놀랍고도 두려운 것은....벽에 금이갔다!? 

맙소사!!!!!!!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저런 노인내가 던진 빵으로 어떻게 벽에 금이 가게 만들 수 있는거야!!! 믿을 수 없어!!!!!! 

내가 경악에 찬 눈초리로 노인을 바라보자 노인은 부리부리한 두 눈동자로 씨익 웃으며 말했다. 

"반사신경은 좋구만.....끌끌끌...!! 하지만 이번에도 피할 수 있으려나?" 

......뭘.......말입니까?...... 

순간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의 입에서는 또 다시 경악성이 튀어나왔다. 

노인의 손 위로 엄청난 화염구들이 생성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자...잠깐!!! 갑자기 다짜고짜 왜 공격하려는 건데요!? 말이나 좀 하고나서;;;; 히익...!!!" 

내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노인이 그 불공들을 던질 자세를 취하자 꽤나 간큰 녀석이라고 불리던 나도 

필사적으로 화염구들을 피하기 위해 자세를 낮췄다. (......뭐...사실대로 말하자면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은 거지만...;;;) 

......풀썩..!! 

살려줘!!! 내가 마도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지 누가 이런 노망난 미친 늙은이를 만나게 해달라고 그랬어!!! 

쉬이익....!!!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달리 노인의 주변위로 떠올라 있던 화염구들은 곧 자취를 감추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자 노인은 마음에 안든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쯧!! 그러게 진작에 시키는 대로 하면 나도 이럴 필요까진 없었잖냐! 

하여간 요새 젊은 것들은 늙은이 말이라면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는....원...!! 쯧쯧쯧...!! 

싹수가 노랗구만!! 싹수가 노래!!" 

무슨.............소리지? 

한참을 멍청하게 노인의 얼굴을 올려다 보던 나는 이내 곧 무슨 뜻인지 깨닫고 약이 올랐다. 

....젠장 이놈의 노망난 양반이....!! 

싹수가 노랗긴 누가 노랗다는 거야!!! 도대체가 처음 보는 녀석에게 왠 화염구을 난사하려고 하지를 않나!! 

도대체가 누가 더 잘못된건데!! 이 빌어먹을 노인내야!!!!!!! 

...라고 생각했지만 차마 입밖으로 꺼낼 순 없었다. 

방금 노인의 실력이 얼마만큼인지 확인한 나는(말그대로 난생 처음 느껴보는 마도사의 위력..)  

생각했던 바를 그대로 말할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증표가 제대로 된건지 확인하러 왔다가 공연히 나만 죽어나는 거 아닐까;;;? 

예를 들자면 완전 인간 통구이라던지....;;;;;; 

못마땅하긴 했지만 별 수 있나;;;; 원래 힘없는 녀석은 잠자코 입다물고 있는 것이 상책인 법...! 

비굴하다구? 웃기지마!!  

이 상황에서 목숨이 보다 더 중요한게 어딨겠어!?  

참고로 아직 난 이루지 못한 꿈들이 무지 많단 말이다!! 이런 곳에서 어이없게 노망난 마도사한테  

불덩이나 맞아 죽어버릴 순 없는 노릇 아니겠어!? 

"흐음...!! 그래도 아주 돌대가리는 아니구만. 바락바락 대들지는 않는걸 보니..." 

.....쩝...!! 노인장도 세상의 쓴맛 단맛 다 맛봐보슈...! 

그러면 이런 경지도 거의 해탈하기 나름이라니까? (....해탈이라기 보다는 이쪽은 비굴함 일테지만....;;;;...) 

노인은 한동안 내 몸을 이쪽저쪽 훓어보더니 곧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이안은 잘 있냐?" 

......에...? 

뭐라고 한 소리 더 쏟아부을 줄 알았던 노인의 의외로 표정을 풀고 조금은 누그러진 목소리로 묻자 

나는 당황스러워졌다. 

.......아마 잘 있지 않을까....? 

"...뭐 그런데로 잘 지내고 있을겁니다." 

떨떠름하게 나간 내 대답에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커스놈이 이안녀석의 수제자를 데리고 왔다해서 좀 많이 놀랐다.  

그놈은 두 황자놈을 제외하고는 따로 수제자를 두지 않았다고 들었으니까. 

게다가.......얼마전에는 녀석의 소식도 뜸했고 말이다.  

하지만 커스놈은 헛소릴 지껄일 녀석이 아니지. 물론 불퉁거리는게 많은 놈이긴 하지만... 

아묻튼 네놈팔에 차인 팔찌를 보니 더욱 확실하구만." 

...에...? 

이안이 그랬던가? 

뭐....확실히 대단한 마도술사라는 것은 인정하는 바이지만...... 

그러고 보면;;; 그때 이안이 했던 말이 모두 다 사실......이었구나....;;; 

나 정말로 대단한 녀석에게 배운건가....?....;;;;;;; 

"그래도 그렇지!!! 그 빌어먹을 놈은 밥먹여주고 재워주고 지를 가르쳐 준 스승한테는  

어째 안부인사 한번 하러 찾아오지를 않는단 말이냐!? 에잉!!!!? 고얀놈 같으니라고!!! 

기껏 찾아온 녀석은 본인도 아니고 제놈의 수제자만 댕그러니 들여보내!?" 

노인이 분통이 터진다는 시선으로 투덜거리다가 나를 쳐다보자 나는 괜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움찔했다. 

에엑;;;; 이봐요;;; 영감;;;;;; 난 아무 잘못도 없다구요;;;; 

그저 이안의 수제자라는 것 밖에는;;;  

그러니 엉뚱한데다가 화풀이 하지 마슈;;;; 

괜히 움츠러 들어서는 눈치만 힐끔힐끔 살피고 있는데 노인이 손짓을 하자 내몸이 떠올랐다. 

"......에에에!!!?????"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는 공중에 떠서 놀란 낯빛으로 노인을 바라보고 있는데 노인이  

흐음하고는 나를 바라보더니 곧 머리쪽으로 손을 뻗쳤다. 

노인의 세월에 삭은 듯 꽤나 거칠은 듯한 손을 내 머리위로 얹더니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뭐....하는거야? 

"......아...?...." 

머리가 무척이나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와 동시에 내안으로 무언가가 세차게 소용돌이 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다시 잠잠해지다가 다시 휘몰아치는 느낌이 오는게 여러번 반복되던 차에 

가슴쪽에 조금은 차가운 듯한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스윽....털썩..!!! 

몸이 천천히 땅위로 내려서더니 이내 나의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아버렸다. 

.....켁...!!! 잘못 앉으면 큰일날 뻔했군;;;; 

내가 주저앉은 곳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빗겨선 송곳비스무리한 이상한 물건이 깔려있는게 눈에 띄었다. 

".......아주 재능이 없는놈도 아니구만.....그렇다고 매우 뛰어난 녀석도 아니지만...흠..!!" 

....이 양반이 갑자기 무슨 소리지?  

궁금한 듯 눈을 뒤룩뒤룩 굴리는 나에게 노인의 못마땅한 듯한 설명이 뒤따랐다. 

 "아무래도 네놈은 이쪽 방면으로 대성하기는 글렀어. 뭐 범인들보다는 확실히 나은 수준이다만.. 

대신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그래도 먹고사는데 지장은 없을게다. 너같은 경우엔 아무래도  

몸안에 축적된 마나가 보통을 약간 넘는 정도일지도 모르겠다만 영감이 꽤나 발달한 듯 하다.  

아마 텔레파시류라던지 아니면 비교적 영감이 뛰어난 편이니 환영계열쪽으로 발전시켜도 괜찮겠군... 

게다가 그런 만큼 마나를 다루는 능력도 본능적으로 발달한 것 같고...오히려 다른 녀석들보다 더욱 좋을수도 있겠어.. 

환영술사들은 아무래도 어딜가나 꽤나 대우받는 녀석들이니까... 

대강 골빈 귀족놈들 파티같은 곳에 초대되어 조금만 쇼를 해도 얼마든지 넉넉하게 먹고 살수는 있을게다." 

.......헤에......? 

이 노인........알아챈건가? 내가 환상술법 쪽으로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아니......그보다도 끝에서 뭔가가 약간 찝찝한데?;;; 

뭐...나도 마도술사쪽으로 나아갈 생각은 없으니까......... 

이만하면 그럭저럭 좋다는 거겠지?;;;;;; 

내가 조금은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노인을 바라보자 노인은 혀를 끌끌차더니 말했다. 

"그나저나 보여줄 물건이란게 뭔지 빨리 내놔봐라!" 

"아..! 잠시만..!!" 

눈앞의 노인의 말에 그제야 이곳을 찾아온 궁극적인 목적이 떠올랐다. 

당황한 나는 얼른 주머니속에 들어있던 목걸이를 꺼내어 노인에게 펼쳐보였다. 

"이것이 진짜 후계자의 증표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나의 떨떠름한 물음에 노인은 목걸이를 받아들더니 이내 손을 가져다 대고는 뭐라고 중얼거렸다. 

순간 아름답게 세공된 목걸이 가운데의 자수정이 빛나더니 그 위로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떠올랐다. 

.....아니...직감적으로 단 한단어는 알 수 있었다. 

세이리어... 

"호오........네 녀석 꼴을 보아하니 귀족나부랭였던 모양이지? 

그것도 꽤나 오래된 가문의 증표를 가지고 왔군........세이리어가라니....! 

네가 가져온 이 물건은 진짜다. 이 목걸이에는 옛 고대 술어들이 안쪽에 새겨져 있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절대로 보이지 않겠지만....그나저나 굉장하구만....!! 이렇게 안쪽으로  

술어들을 새겨놓을 수 있는 자가 대략 300년 전에 존재했었다니....!!" 

노인은 노인나름대로 감탄사를 터뜨리며 목걸이를 둘러보았고 나는 대략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것으로써 진짜라는 것이 확인되자 더더욱 심란해졌다. 

......진짜로.....유이녀석 나에게 이걸 건네줬었던 거야!?...... 

"에잉!? 헌데 네 표정이 왜 그따위냐!?  

어렵게 물건감정을 봐줬으면 뭔가 기뻐하는 낯빚이라도 비춰야지!! 

그 무슨 맥빠진 얼굴을 하고 난리야!?" 

......아....깜빡했다. 

후우..........이봐요. 노인양반...!! 

이쪽은 이쪽 나름대로 생각할게 많단 말입니다. 

게다가......한번 손길 스친걸로 끝낸 양반이!! 무슨 어렵게야!! 어렵게는!? 

물론 보통사람들은 죽었다 깨도 절대 할 수 없는 신기이긴 했지만....... 

"...쯧쯧......!! 얼굴꼬라지 하고는....!!....세상 다 산 인간마냥..... 

........뭔진 모르겠지만 네놈 일은 죽든살든 네놈이 알아서 처리해버려!" 

노인은 말을 마치고 난 뒤 책상에 앉더니 팬을 쥐고는 준비된 종이 위에 무언가를 적어내리기 시작했다. 

...죽든살든..........내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라니..... 

그런건 굳이 노인양반이 말해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구! ........!!...... 

단지......조금....당황했을 뿐............ 

탁..!! 

책상위에서 무언가를 쓰던 노인이 다 썼는지 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제 그만 가봐. 난 좀 쉬고 싶으니까.  

네 녀석 때문에 오늘 내점심은 물건너 갔어...!! 커스놈에게 전언을 보냈으니 곧 놈이 올게다. 

그리고 이거 가져가라.  

어찌됬든 일단은 나에게 물건감정까지 받았으니 대략 감정서 정도로 해둬. 

이 감정서를 들고 가서도 못 믿겠다고 하는 놈이 있으면 끌고와..!! 

아직까진 그럴정도로 배짱이 두둑한 놈들은 만나보지 못했던 것 같지만...!" 

노인이 급하게 무언갈 적는가 싶었더니 감정서였나? 

"아.....고마워요." 

엉거주춤 노인이 내미는 감정서를 받아들며 무한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마법 아이템이로군. 그것도 꽤나 희귀한 종류의...." 

순간 노인이 눈을 슬쩍 빛내며 말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신 겁니다." 

......쩝....! 그러니까 괜히 눈독들이지 마슈...!!  

노인양반한테 줄 생각은 죽었다 깨도 없으니까. 

노인은 나의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잠시 무언갈 생각하는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흠.........그러고 보니 내 젊었을 적에 내 친구놈들중 한명이 네녀석이 가지고 있는 것과  

대략 기능이 비슷한 마법아이템을 어느 발빠른 놈에게 소매치기 당했었지.  

물론 그놈은 워낙 정신머리가 없는 놈이라서 지놈의 물건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있었지만... 

.......쯧...!! 옛날 생각이 또 떠오르는구만...흐음....!!.....그땐 나도 한창 잘 나갔는데!!" 

노인이 투덜거리는 말에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설마....할아버지가 방금 말한 저 노인의 친구분 아이템을 소매치기 한건 아니겠지? 

하하.......아닐꺼야......하하....하.......물론 아니지....!! 

"..........;;;;;;;.........." 

..........젠장!!;;;; 아니긴 뭐가 아니야!!! 

시장바닥에 허리춤에 차인 주머니란 주머니들은 거의 모두 쓸어버린 사람이  

바로 나의 할아버지였는데;;;;;;;; 

맙소사!!! 대도의 비기를 물려준다더니!! 대도의 비기는 무슨!!! 

그냥 모으다 보니까 얼떨결에 모아진 거겠지!!!   

앞으로 좀 더 유용하게 쓰일데가 많을거라고 극찬을 해대던 할아버지의 비기가 어떻게 모아졌나를  

뜻밖의 일로 대충 파악하게된 나는 허무함과 동시에 신변의 위험을 느껴야 했다;;;;;  

이거 괜히 잘못걸리면 큰일나겠군;;;  

꼬리가 잡히기 전에 최대한 이곳을 빨리 빠져나가는 수밖에;;; 

나는 노인이 불렀다는 커스라는 사내가 빨리 이곳으로 오기를 바라며 슬금슬금 노인의 눈치를 보았다. 

"넌 또 왜그래? 꼭 뭐 매려운 개새끼마냥!" 

".....하.......하;;;;;.......아무것도....아닌뎁쇼?" 

손사래를 쳐가면서 까지 아무일 없다는 듯 부정하자 노인은 뭔가가 더욱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 녀석 지금 나에게 뭔가....." 

벌컥...!! 

와우!!! 나이스 타이밍!!!! 

노인이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운좋게도 그때를 딱 맞춰 통나무집 문이 열렸다. 

문가에는 피곤함+짜증섞인 눈초리로 노인을 노려보는 커스가 서있었다. 

"바빠죽겠는데 툭하면 오라가라 시키시는 겁니까?" 

불평이 가득한 커스의 목소리에 노인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시끄러!! 이놈아! 빨리 이녀석이나 밖으로 데리고 나가!  

잘못하다간 길잃는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애송이 너!! 언젠가 이안녀석을 만나면 꼭 안부좀 전해라!! 

아니! 만나는 즉시 내 얼굴 좀 보러 오라고 그래!!  

그 야박한 놈이 지 스승한테 콧빼기 하나 안보인단 말이다!!" 

노인의 말에 커스는 내쪽을 한번 흘끗 쳐다보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노인의 박력에 조금은 기가 질려 대답했다. 

"만나면 꼭 전하죠...뭐........." 

"그래!! 잊지말고 꼭 전하라고!!!!!!" 

....... 

그뒤에는 커스를 따라 나선 뒤 암만 둘러봐도 현실과 별다를 바 없는 환상으로 이루어진 초원을 빠져나와 

마탑에서의 볼일을 모두 마치고 밖에 대기하고 있던 마차안으로 되돌아갔다. 

이안에게 자신의 안부도 전해달라는 커스의 부탁과 함께... 

언뜻 스친 그의 눈에도 약간의 그리움이 담겨있는 듯 싶었다. 

아묻튼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현재는 이렇게 황제를 찾아와서 그에게 그 목걸이의 진위여부를 직접 따져보라고 

권하게 된 것이었다.  

황제는 내가 건넨 감정서를 한동안 쭉 훓어보더니 방금과는 달리 약간의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안데노가 직접 쓴 감정서라..........믿을만 하겠군. 게다가... 이걸로 인해 '자격'도 어느정도 갖춰진 것 같고..." 

......자격?.... 

나는 갑작스런 황제의 말에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감히 실례라는 것 조차 잊고 그를 바라보았다. 

황제는 내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는지 설명해 주었다. 

"직계의 후손이 아닌 자가 대를 이으려면 그에 합당한 '능력'이라는 것이 요구되지.  

간단히 말하자면 혈족이 아닌 다른 자가 자신들을 이끌어 가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도록  

미연에 그런 것을 방지하고자 거는 '조건'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될걸세. 

하지만 자네같은 경우엔....운이 좋게도 딱히 반박할 자들도 없겠거니와 무엇보다  

여기에 쓰인 글로 보아선 한때 궁정마도사였던 자의 수제자라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하겠어." 

".......!!!!!......" 

그제야 황제의 말을 이해한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도사들이 대단한 존재들 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이렇게까지나 영향을 끼치는 거였다니! 

....헤에.......이건 정말........너무 뜻밖이잖아...?... 

그러나 기쁨도 잠시 원래는 유이가 차지했어야 할 자리를 내가 가로챈것만 같은 기분에  

조금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미안 유이.........정말.............미안해... 

하지만 한번만 봐주지 않을래...?  

너의 몫까지......내가 최선을 다할테니까...  

"좋아. 자네가 세이리어가의 이번대 후계자가 되는 것을 인정하는 바이네.  

이젠 자네에게도 정식으로 '후작'이라는 명칭이 따라붙겠군..." 

....이미....다 쓰러져 가는 가문이긴 하지만...  

앞으로 이 소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지도 모르겠군...... 

"슈벤... 인증문서를 준비해주게." 

황제의 명에 보좌관인 슈벤이 잠시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빠져나갔다.  

"엘리엇이라고 했나? 

나의 정식인증문서는 한달 후 세이리어가로 발송될걸세... 

........그에 따라 전 후계자였던 세이리어 듀 유이의 모든 권한을 자네에게 양도하는 바일세... 

그럼 어디한번 잘 해보도록 하게나...엘리엇군....." 

명칭뿐인 후작이 되지 않도록.....말일세.. 

뒷말은 묘한 미소와 함께 속으로 삼켜 넘기는 황제였다.  

.......... 

...... 

한달 후 수도안은 또 다시 한바탕 떠들썩 해진다.  

사라진 세이리어가의 후계자증표를 들고 나타난 '새로운 후계자'의 등장....... 

세이리어 듀 엘리엇...   

훗날 또 다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장본인의 공식적인 첫등장이었다.  

사박....사박.....탁..! 

흰색의 백화를 들고는 푸른 언덕위를 걷던 엘리엇은 어느 한 묘비앞에서 멈춰섰다.  

그리고는 묘비앞에 손에 든 백화를 그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뒤에서는 이앞으로 안내한 로이떼가 그런 엘리엇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세이리어 듀 유이......여기에 잠들다.-  

묘비에 적힌 간단하고도 짧은 글귀였다.  

엘리엇은 천천히 그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은채 아무말도 안했다.  

"........엘리엇님...." 

한참후에 뒤에서 로이떼가 불렀지만 엘리엇은 잠시간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슬핏 웃어보일뿐  

여전히 다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흐른뒤에야 엘리엇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제 그만 가자. 로이떼..." 

".....아..!.."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와는 달리 엘리엇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바람이 슬며시 불어옴과 동시에 엘리엇의 등뒤로 은발이 나부꼈다.  

"뭐해? 이대로 있으면 늦겠다구!  

설마 내가 너무 멋있어서 그렇게 넋을 잃은 표정으로 바라보는건 아니겠지? 로이떼?" 

엘리엇은 로이떼에게 한쪽눈을 찡긋하며 장난스럽게 윙크를 날렸다.... 

그모습에 로이떼조차도 풋하니 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푸훗!... 잘 알겠으니 이제 그만 가요. 엘리엇님..! 

하지만 엘리엇님 말씀처럼 그런것 때문에 제가 이러고 있었다는게 아니라는 것쯤은 엘리엇님도 잘 아시죠?.." 

"......에......?....." 

끄응...!!;; 로이떼 못본새 은근히 더 능글맞아졌잖아? 

그나저나 내가 잘났다는거야 뭐야?  

.....그....그래도 이정도면 괜찮은 편이라구!.....쩝;;;; 

엘리엇은 짧게 투덜거리며 로이떼의 뒤를 따라나섰다.  

............. 

.... 

묘비와 점차 멀어져 이제는 거의 희미하게 보일 때쯤에 엘리엇은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봤다. 

안녕......유이....!! 

그리고 미안..... 

이젠 너대신 세이리어가를 이어 나가겠지....... 

어쩌면 나는 너의 자리를 가로채 버린 고약한 도둑녀석일지도 모르겠지만........그래도 도와주지 않을래 유이?  

언제고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빨리 오세요! 엘리엇님...!! 이제 곧 저녁시간이에요!!" 

"응! 알겠으니 먼저가라구. 로이떼! 천천히 뒤따라 갈테니까..!!" 

........... 

....다시.......시작해도 되겠지? 

...무엇보다 나를 위해서라도 말야!!!!!! 

그로부터 3년 후...... 

카이다제국에는 언제부터 활동한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느 이름모를 한 괴도로 인해 떠들썩 하게 된다.   

언제 가져갔는지도 모르게 감쪽같은 이 도둑은 어느 특정한  

물건들을 지정하여 그것들을 가지고 사라졌다. 

사람들이 그 괴도가 자신의 집에 들려 물건을 훔쳐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단서는 

물건이 사라지고 난 그 자리에 남아있는 텅빈 상자나 풀린 자물쇠등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가끔식 그와 직접 만났다는 피해자들도 속출했지만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달리 그 괴도를 잡을 방법이 없었다.   

보통 피해자들은 사람들도 인정하는 대부호들이나 귀족들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드물게... 아주 드물게도 괴도는 어느 허름한 집들을 털어가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영문을 알 수 없을만치 즐거운 미소를 짓고있기도 했다... 

.....달이 환히 비추는 어느 달밤에........ 

달빛사이의 어둠을 틈타 찾아오는 한명의 밤손님을 조심하라........... 

푸른단검은 그가 찾아온다는 증표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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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추석을 지내고 돌아왔사와용^^  

역시 오늘은 도서관 문이 열려있네용~! 

저 보고싶진 않으셨나용=ㅂ=;;; 

쿨럭....!!! 얼른 글남기고 사라질께요오옹~ =ㅂ=;;;; 헤헤헤.... 

참.... 엘리엇의 3년이 생뚱~ 생략이 되었지만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말아주세요옹~! 

좀 더 자세하게 묘사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게 되면 주인공도 너무너무 오래 떨어져 있게 되어서리;;; 우헤헤헤.... 

사정상의 과감한 생략이었사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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