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죄인
세이리어 듀 유이가 살해당했다...
이 사건은 학원전체로 퍼져 나가 학원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범인은 똑같은 얼굴을 지닌 평민소년으로써 유이의 직위가 탐이 나자 그를 죽이고
자신이 그대신 그 자리에 앉으려고 계획을 꾸몄다가 실패하고 그 자리에서 붙잡혔다...
라는 것이 현재 학원내로 퍼진 소문이었다.
진실은.....가려진...채로....그렇게..........
소문의 주인공인 엘리엇은 현재 학원의 감옥에 수감된 상태였다.
여기저기 성한 곳 없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엘리엇은 마치 줄이 끊긴 꼭두각시 인형마냥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늘상 장난스럽게 반짝거리던 두 눈도 생기를 잃은 채 그렇게 방치되어 있었다.
밥한끼 물한모금 마시지 못한채 얼마나 그렇게 갇혀있던 걸까?
끝도없이 어두울 것만 같았던 학원내 지하감옥에 한줄기의 밝은 빛이 들어오며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죽이려나 보지?
엘리엇의 얼굴위로 떠오른 표정은 그 무엇도 아닌 포기였다.
유이를 죽인 죄를 뒤집어 쓰고 현재 자신은 영락없는 살인자로 오해를 받고 있었다.
....뚜벅....뚜벅...
계단을 타고 걸어내려오는 단정한 발걸음 소리가 점차 귓가에 가까워질 쯔음
철창 앞에서 발소리가 딱 끊겼다.
......아무것도 아니었어.....그래.........운수대통이었을리 없지...하하.....뭘 바랬던거냐? 엘리엇..!
어차피.........어차피 이렇게 죽게 될 거였더라면.........
차라리 만나지도 않았으면 좋았을 껄.......
.....나 때문에 죽지 않아도 좋았을 껄.....
"......세이리어 듀 유이를 죽인게 정말로 너인가?..."
이번엔 이 감옥까지 어떤 할일없는 귀족나부랭이가 행차하셨을까?
이로써 한 100명은 더 넘은 것 같은데?
아하....그래!!
...너희들은 이런게 재밌겠지?
........사람이 죽은 것 보다도......그저 어찌 된 일인지가 더 궁금하고 재밌겠지....?
장례식에 애도하러 가기 보다도....이까짓 내 얼굴 한번 보려고 이런 더러운 지하감옥까지
행차하시는 당신네들은.........얼마나 깨끗한 존재들인가!?
아하하....하하...하........!!!
얼마나......깨끗하고....
또한......얼마나.........추악한가!!?
.............역겨워................더럽고....추악해!!!!!!!!!!!..........!!!!
"......대답하지 않겠다는 건가?...."
음? 내 머리로 누가 뭐라뭐라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이게 무슨 소리지? 날파리의 잡음인가?
후후......후후후......알게 뭐람?
......다만 지금은 아무것도........생각하고 싶지 않아.......아무것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
주르륵....!!
여기저기 피딱지가 묻어 상당히 지저분해진 엘리엇의 얼굴 위로 투명한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다지 부귀영화를 꿈꾼 것도.....무슨 대단찮은 야망을 품은 것도 아니었어...
단지 그저........돌아가게 되면....자유롭게 마음껏 어디든 여행을 하고 싶었어....
...가끔씩은 정말 멋진 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하고.....
...어느 왕국의 진귀한 보물들을 털어내는 멋진 대도가 되어서...........그래서........
".....문 열어라."
감옥 안을 지키고 있던 간수가 누군가의 말에 깜짝 놀라 황급히 고개를 조아리며 철창문을 열었다.
"내가 나올 때까진 이안에 아무도 들이지마라."
"아...알겠습니다. 키레이저하..!!"
간수는 허겁지겁 열쇠를 챙겨들고 사라졌다.
"......세이리어 듀 유이..."
......틀려.....내 이름은 그게 아니야....
...그 이름의 주인은 이제 더 이상 어디에도 없어....
파악!!!
순간적으로 엘리엇의 상체가 일으켜 지더니 머리채가 잡혀 고개가 뒤로 꺾여졌다.
"....흐윽..!!"
"여전히...건방지구나........내말에 감히 대답조차 않다니..."
아아~ 이게 누구셔?
그 빌어먹을 꿈속의 변태황자님 아니셔?
그런데 이거 어쩌지? 난 별로 당신과 할 얘기가 없는데?
하하하...설마 이것도 꿈이려나?
".....완전히 눈이 풀렸군.."
키레이는 자신의 눈을 바로 쳐다보고 있지만 초점이 흐린 엘리엇의 두 눈동자를 보며
미간을 찌뿌렸다.
...세이리어 듀 유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랬던가?
순간적으로 자신의 심장이 멎어버리는 줄 알았다.
......그깟 몰락귀족의 죽음 따위가 자신과 무슨 상관이냐고 대충 자신의 감정을
사그러뜨리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는걸 깨닫았다...
두번 다시는 그 도전적인 눈동자와 마주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도 싶었다.
.....이로써 모든게 확실해졌어..........
...내가 널...........보면 마음이 흔들렸던 그 이유를..........
전혀 다른 사람인양 달라진 너에게서 느꼈던 알 수 없는 그 혼란스러움까지 모두........
세이리어 듀 유이가 아니었다...!
자신이 찾고 있던 소년은...
".....넌 누구지?.."
이로써 두번째의 물음.............
키레이황자가 엘리엇에게 건네는 첫번째의 물음이기도 했다.
.........나?..........내가 누구냐고?
엘리엇의 흐려졌던 초점이 그제야 하나로 모아지면서 자신의 앞에서
질문을 던진 상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었다.
"..아.....나는........엘...리엇..........나의 이름은...엘리...엇.."
...엘리엇이라......
"그게 너의 본명인가? 엘리엇?"
스륵....!
말을 마친 엘리엇의 고개가 힘없이 키레이황자의 팔아래로 떨궈졌다.
엘리엇을 품에 안아든 키레이는 천천히 엘리엇의 머리칼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사라락...
여기저기 피딱지가 묻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엇의 긴 머리칼들은 키레이황자의
길고 단정한 손을 타고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엘리엇을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 놓은 키레이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무심한 표정으로
철창을 빠져나와 계단을 올라갔다.
.......네가......어디서...무엇을 했건 나와는 상관없어....
....단지 나는.............
"나...나오셨습니까!? 키레이저하!"
"...중요한 죄수니 잘 관리해라. 나중에 다시 오지..."
"잘알겠습니다!! 저하!!"
....단지 나는..............너의 그 모습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