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을...깨우다.
"우....우와아악!!!!!!"
너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엘리엇이 볼품없는 꼴로 추락한 곳은 다행히 침대위였다.
제길....!! 세크레틴황자! 잘도 나를 이꼴로...!!!
그러나 엘리엇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난 뒤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내 방이 이렇게 크고 화려했었나?
자신이 머무는 방은 아무리 좋게 봐줘야 지금 자신이 있는 방의 삼분의 일도 안되보였다.
게다가 방안 가득히 놓아진 물건들은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들이었다.
.....침대도.....훨씬 푹신푹신하고.....
아까 세크레틴황자의 방이 이런식이었던 것 같은데?
.....휘익!!!!!....
"..헉!!.."
엘리엇은 갑작스레 침대위로 널부러진채 순식간에 두손이 포박당해 누군가가
자신의 목에 단도를 가져다 대었다는 걸 깨닫았다.
".......넌 누구지?........한밤중에 갑자기 나타나다니....암살자인가?..."
낮고 깊게 울리는 저음....
엘리엇은 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잘 알고 있었다.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
제발 아니길 빌어도 재수없는 녀석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젠장!!! 세크레틴황자!!! 가만두지 않겠어!!!........
"...이거....놔주십시오.."
엘리엇이 속으로 침착하자고 몇번이나 외쳤지만 도무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이건 누가봐도 명백히 자신이 잘못한 일이었다.
설사 그것이 자의가 아닌 타의라고 했다쳐도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 자체가 자신의 실수로 인해
생긴 것이었으므로 뭐라고 할말이 없는 엘리엇이었다.
"........세이리어 듀 유이...?..."
요즘들어 이런 상황을 자주 겪는군! 제기랄!!
"....맞습니다."
자신의 손목을 쥐고 있던 힘이 약해지긴 했지만 아직 놓아준 것은 아니었다.
"이곳엔 무슨 일이지? 네가 들어올 곳이 아닐텐데?"
방을 잘못찾아 들어왔는뎁쇼~ 한번만 봐주시면 안될까요? 헤헤헤...!!
...라는 것은 택도 없는 소리였다.
자신이 아는 한 키레이황자는 결코 그걸 곧이 곧대로 믿어줄 만큼 어리숙한 사람도 아니거니와
또한 자신을 곱게 놓아주지도 않을 거란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세크레틴황자의 방에 잠입했다가 걸려서 이쪽으로 날아왔다는 말은
오히려 제무덤을 퍽퍽 파다못해 그 안에 드러눕는 격이었다.
"......대답을 않는군..."
자신을 잡은 손의 힘이 느슨해진다 싶더니 곧 한순간 엘리엇의 포박당한 몸이 돌아갔다.
이...이거 왜이래!! 오늘 하루 일진이 왜 이렇게 사나운 거냐고!!!
속으로 크게 절규를 하며 너절하게 소리치는 엘리엇이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상황에서 도무지 어떻게 해야할지 좀처럼 감이 안잡혔다.
...도...도망갈까?
도망가려면 일단 이 자식에게 잡힌 손목부터 어떻게 빼내야 할텐데......
...화.....났겠지?
....그때 그일도 그렇고 가뜩이나 나에게 나쁜 감정도 많았을 텐데;;;;
아주 오늘 제대로 걸렸구나;; 엘리엇!!
그러나 엘리엇이 쳐다본 곳에는 화난표정도 기분나쁜표정도 아닌
감정이 배제된 무표정의 키레이황자가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이 녀석은...!
스윽...!
그의 얼굴이 가까워 진다 싶더니 곧 자신의 입술에 차가운 무언가가 와닿았다.
무척이나....차가웠다.
그의 입술은....
".....흐읍..!!"
이......이게 무슨 짓이야! 키레이황자!! 갑자기 미치기라도 했단 말이야!?
놀란 엘리엇의 몸이 굳어지는 틈을 타서 세크레틴 황자에게 이미 한차례 뜯긴 옷이
키레이황자의 손에 의해 제구실을 못할정도로 막무가내로 뜯겨져 나갔다.
...무....무슨 짓이야!?..............지금 뭐하자는 거냐고!!!.....
엘리엇이 그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그를 밀쳐내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세크레틴 때와 마찬가지로 무기력하게 한손에 제압당해 버렸다.
"이....이게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경악으로 심하게 떨리는 엘리엇의 목소리가 튀어나갔지만 키레이황자는 눈하나 깜짝 않고
엘리엇의 마지막 옷을 벗겨내리는 중이었다.
"이...이거 놔!!!!!!!!!! 이거 놔!!! 놓으란 말이야!!!!!!!!!!!"
말도 안돼!! 어째서!?
"입닥쳐라. 사람들을 모두 불러세우고 싶지 않다면...!"
키레이황자가 차가운 냉소를 머금으며 엘리엇의 귓가에 작게 윽박을 지르자 그제야 엘리엇은
입술을 깨물며 입을 다물었다.
"세이리어 듀 유이...이런 목적으로 내 방에 찾아들어 온 것이 아니었나?
왜 갑자기 능청이지? 난 너희 같은 것들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이렇게 직접적으로 들이닥친 사람은 네가 처음이지만...
원하는대로 해주겠다. 그런데 뭐가 불만이지? 그딴 눈물흘리는 가증스러운 얼굴은 치워라. 역겨우니까..!!"
눈물......?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어?
할아버지와 고다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절대로 흘리지 않겠다고 맹세한.....그 눈물을...?
"....당신은 지금 오해를.......헉..!!!......"
그러나 엘리엇은 자신의 목덜미를 깨무는 키레이황자의 행동으로 인해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포박당한 당한 손을 빼내기 위해 손목을 비틀고 그의 입술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저어 보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의 입술은 천천히...그러나 끝까지 엘리엇의 목덜미를 놓아주지 않았다.
".....제발...!!! 나를 놔줘!!!!!!!!"
이거 놓으란 말이야!!! 이 바보 황자!!!!!!!!!
"아무리 네가 그렇게 애원해도 소용없다.......넌 이미 늦었어........."
키레이황자의 냉정한 목소리가.......귓가에 울려퍼진다.....
나......이제 어떻게 되는거지?
"흐......윽.........무...무슨!?"
본래 잠들기 전에 간단하게 가운만 입고 자는 귀족들 전형의 잠옷이 벗겨지면서
키레이황자의 굳건한 몸매가 드러났다.
처음봤을 때는 그저 호리호리한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생각외로
단 한치의 오차도 없는 군살없이 잘 빠진 근육질의 강인한 몸매를 그는 지니고 있었다...
세개의 달...로하임의 기간.......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환한 달빛은 침대위까지 와닿아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키레이황자의 맨몸을 보게 되어 황송하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점차 가까워지는 그의 몸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리가 없는 엘리엇이었다.
......이런 말도 안되는!!!!!!..........
맹렬한 수치심이 얼굴 위로 피어 오르면서 엘리엇은 결코 쓰고 싶지 않았던 외침을 내뱉었다.
"화염!!!!"
...화르르륵!!!!!
"....큭..!! 술법인가?........"
키레이황자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뒤로 물러섰다.
엘리엇의 외침에 공중위로 생겨난 불꽃들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흥! 가소롭군......."
잠시간 당황해서 떨어졌던 키레이황자는 그것들을 같잖은 것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한번 훓고는
이내 작게 외쳤다.
"안티매지션...!"
.......스르르륵....!!
...쉬이익...!!
그러자 엘리엇의 외침으로 인해 발생되었던 화염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방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이럴......수가..!?
자신의 마지막 보루였던 술법마저 효력을 발할 수 없게 되자 엘리엇은 절망적인 눈동자로
자신의 눈앞에 서있는 키레이황자를 바라보았다.
.......어질...!!!...............!!!!!!???
.......풀썩...!!!
...너무 갑작스레 많은 힘을 쏟아 부은 탓이었을까..?
힘겹게 일으켰던 상체가 기울어 지면서 엘리엇의 점차 흐릿해지는 시야 사이로 눈물이 번져나갔다.
...........이런....망할...!!
술법에 익숙치 못한 엘리엇이 힘의 후유증을 견뎌내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잠시 뒤로 물러섰던 키레이황자가 천천히 침대 가까이로 다가섰다.
...멈칫..!!
...은발.....?....
눈부시도록 새하얀 실버블론드가 자신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정작 본인은 깨닫지 못하는 듯 싶었지만....
로하임의 세개의 달빛이 엘리엇의 머리맡을 비추면서 길게 늘어진 은빛 실타래들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척이나...아름답고 또한 신비로운......광경이었다.
그것들을 한동안 홀린 듯이 바라보던 키레이황자는 작게 신음성을 내뱉었다.
.....하!!....
세이리어 듀 유이...너는........누구지...?
...네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나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이지?.....
.......어째서!!!?........
.........대답해 봐라...유이......!!!
그러나 침대위로 쓰러진 그는 자신에게 아무런 답도 제시해 줄 수 없었다.
키레이황자의 점차 어두워져 가는 표정과는 달리
......창밖의 달들이....무척이나 환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