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로이데 이안
세크레틴의 손이 엘리엇의 복면에 닿는 순간 엘리엇은 끝장이라는 생각에
저항하던 몸부림도 멈추고 두눈을 꽉 감았다.
펄럭..!!
......제길...!! 이젠 다 망했어!!! 이렇게 허무하게 이녀석에게 들켜버릴 줄이야!!
엘리엇은 지금 이 상황이 제발 거짓이길 바랬다.
어제 오늘 연달아 말썽을 피웠지만........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세크레틴은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 작게 침음성을 삼켰다...
"......세이리어......듀 유이?.."
그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확인되는 순간 엘리엇의 두눈이 떠졌다.
세크레틴은 현재 자신을 매우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어쩌지!?
"세이리어 듀 유이...나는 네가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와 무척 닮았다고 생각했다.....
외모가 닮았다라기 보다도 너는 그사람의 성격과 무척 닮았어.........
그래서 어쩌면 너에게 그런 감정이 생겼었던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역시 그 사람과는 미묘하게 달라......
......언젠가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그가 나를 찾아오게 될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를 잡아두기 위한 마지막 수단..........하지만 네가 올줄이야...!!
....너는 어째서 이것을 가져가려고 하는거지!?"
늘 웃던 그 표정이 아니었다.
그때 보았던 그 싸늘한 표정이었다.
.....그때 나에게 키스를 하고 나서 지은 그 지독히도 냉소적인 웃음도.....방금 말한
그 사람 때문이었을까?
"...........이....이것 놔주십시오!!! 그...그저 그 브로치가 예쁘길래....."
"훗..! 거짓말이 서툴구나. 네 얼굴엔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쓰여있어.
내 방에는 굳이 이 브로치가 아니더라도 네가 탐낼만한 물건은 얼마든지 더 있어.
게다가 너는 이것이 어디있는지 조차 몰랐을텐데?
하지만 네가 그중에서 이것을 정확히 짚어 가져가려고 했다는건....."
으윽!! 젠장 하필! 이 녀석에게 들켜가지고!! 잠들었던게 아니었었다니!!
"........이안..."
......흠칫!!
"...크로이데 이안....내 마도술의 스승이자 나의 곁을 제멋대로 떠나려 했던 자....."
엘리엇의 안색이 눈에 띄게 굳자 세크레틴은 피식하니 웃음을 지었다.
"역시 너는 그와 관련이 된거로군...! 쿡....쿡쿡!!! 좋아.......어찌되었든 좋아.....
그가 다시 내곁으로 돌아왔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어. 그는 어딨지!?
너는 알고있지!? 이안이 어디있는 줄 말야!!"
......방금과는 달리 타오를 듯한 눈동자로 자신을 맹렬히 바라보는 세크레틴에게 엘리엇은
차마 다시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모...릅니다. 그런사람....몰라요...!! 난 그저....저 브로치가 예뻐서.."
콰악!!!
손목을 잡은 힘이 더욱 강해졌다.
"거짓말 하지 마라!!!!! 그런 뻔한 거짓말을 내가 믿을 것 같은가!?
빨리 사실대로 말해!! 그렇지 않다면 나는 너를 이자리에서 범해주겠다!!!"
......그....그런!! 협박을!!!!!!!!
그러나 엘리엇은 곧 세크레틴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닫았다.
....으...으아아;; 이안! 도대체 이 자식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이놈이 이러는 거야!?
이러다가 내 순결을 이런 미친 녀석에게 빼앗기는건 아니겠지!?
"......하는 수 없군..."
...뭐!?
엘리엇이 사고를 끝내기도 전에 세크레틴의 손이 엘리엇의 상의를 찢기 시작했다.
찌이익!!
"뭐....뭐하는 짓이야!? 너!!!!!!"
"말하지 않았던가? 그가 있는 곳을 대지 않으면 이자리에서 너를 범해주겠다고.."
......으...으아아아아아 이 빌어먹을 자식!!
그만 두란 말이다!!!!!!
-.....그만둬. 세크레틴. 유이를 놔줘.-
엘리엇의 현재 심경을 대변하듯 누군가가 말을했다.
아니...보통사람들이 듣기엔 그냥 동물의 목소리였다.
하지만...그와 정신교감을 할 수 있는 자들은 충분히 그 의미를 알아챌 수 있었다.
"....이....안!?"
놀랍게도 열려진 방문을 통해 들어온 자는 이안...이었다.
엘리엇조차 깜짝 놀라 이안을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세크레틴이 엘리엇을 포박하고 있던
두손을 놔주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크로이데......이안........"
세크레틴이 신음하듯 천천히 그 이름을 내뱉자 이안의 몸이 움찔했다.
-크로이데라는 말은 너에게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성이군...난 그저 이안일 뿐이다.-
차갑게 내뱉는 이안의 음성이 들렸지만 세크레틴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안을 응시할 뿐이었다.
-젠장!! 이래서 직접 오고 싶진 않았는데...!!.. 뭐...어차피 유이 네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거라곤
생각도 안했지만........그래도 너무 쉽게 걸려버렸잖아!-
"...돌아온건가? 정말로.........돌아왔나?"
세크레틴의 어딘지 떨리는 음성이 울려퍼지면서 엘리엇은 천천히 숨을 죽였다.
이안은 지금 아무렇지도 않은 척 저렇게 서있지만.....그가 조금씩 떨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둘 사이에 뭔가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이안은 분명 자신에게
세크레틴은 단순히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 중 한명이었다고만....
-그래...돌아왔어. 네 녀석의 이 빌어먹을 저주를 풀기 위해...배은망덕한 녀석!!!
내가 너에게 얼마나 열심히 가르쳐 주었는데 너는 겨우 이따위 저주나 걸었던 거냐!?-
이안의 날카롭게 쏘늣 듯한 외침에 세크레틴의 표정이 천천히 풀리더니 그가 미소를 지었다.
"쿡....쿡쿡....쿡!!!! 정말....이안이군. 그 톡쏘는 듯한 말투도 여전히 바뀌지 않았어...!!"
침대위에 쓰러져 있던 엘리엇이나 이안이나 얼떨떨하게 세크레틴을 바라보았다.
-브로치나 내놔! 빌어먹을 녀석! 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려면 그게 필요하단 말이다!-
에스더제국의 황태자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무척이나 무례한 말들을 마구 퍼부어 대는
이안을 보며 엘리엇은 헤에하니 입을 벌렸다.
나도 적어도 속으론 녀석들을 향해 무슨말이든 못하겠냐만은....이안은 정말 대단하구나.
크으....이게 나와 이안의 차이라는 걸까!?
"물론...되돌려줄 생각이야. 이안....쿡쿡....쿡...!!"
세크레틴은 전과는 달리 무척이나 즐거운 듯한 표정으로 붉은 보석이 박힌 브로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의외로 순순히 브로치를 건네는 모습에 이안과 엘리엇은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망연히 쳐다봤다.
-....이...이자식!! 이럴꺼였으면 처음부터 저주따윈 걸지 않았으면 좋았잖아!!!-
이안의 절규어린 외침이 들려오면서 엘리엇도 망연히 허탈하게 그 브로치를 바라봤다.
처음부터 그냥 내놓으라고 하면 되었을 것을......나나 이안이나 무슨 헛짓을 한거냐?
-.....방안에 깔린 안티매지션을 해제해 주시지..?-
"...흠! 그건 좀 곤란해. 하지만 내 의지에 따라 약간의 제한된 부분은 잠시간 효력이 없어질 수도 있지."
-....벌써 그런 경지에 이른거냐....세크레틴..!-
세크레틴이 아무런 대답없이 빙긋 웃으며 손으로 딱하니 소리를 내자 이안의 주변에 흰색의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정해진 류의 술법을 사용하는 것 외에는 효력이 없을테니 빠져나갈 생각이라면 관두는게 좋아. 이안.."
-빌어먹을..!!-
이안의 발이 브로치의 가운데 박힌 보석에 닿으면서 그가 작게 술어를 외우자 보석이 빛을
발하면서 이안의 몸을 붉은 빛으로 감쌌다.
파아앗!!!!
보석의 빛이 한청 강렬해져 엘리엇이 버텨내지 못하고 두눈을 감는 순간 방안에 누군가가 털썩하고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보석의 빛이 점차 사그러져 들 무렵 눈을 뜬 엘리엇은 깜짝 놀라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히...이익..!! 이.....안?"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사람은 현재 알몸으로써 녹빛의 긴 머리칼들을 이리저리 흩트러 뜨리고 있었다.
"윽....머리야...드디어 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건가?"
....저 음성은 분명 자신의 머릿속으로 들렸던 그 음성과 일치했다.
....하지만 이안이 이렇게 생겼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는데.
뭐....야..........생각보다 훨씬............젊잖아?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엘리엇은 후다닥 일어나서 침대위에 있던 이불보를 재빨리 이안에게로 다가가서
그의 몸위로 덮어주었다.
"....으음? 유이?"
"험....험.........이안 너 지금 알몸이라고. 여기 세크레틴황자께서도 계시는데...."
엘리엇이 세크레틴의 눈치를 힐끔힐끔 보자 세크레틴은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
"나는 방금전이 훨씬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뭐..이런 녀석이...!!
엘리엇의 얼굴이 후루룩 붉어지면서 이안을 바라보았다.
이안은 꽤나 지적으로 생긴 20대 초반의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그런것 치고는 세크레틴 황자보다 작은 키였지만.......
아묻튼 엘리엇은 이안을 놀란 눈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네가 이렇게 생겼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
엘리엇이 멍하니 중얼거리자 이안은 그런 엘리엇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왜? 이몸이 생각보다 잘생겨서 놀랬나보지? ...윽..! 머리야....!!"
순간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뻔한 엘리엇은 잠시간 몸을 굳혔다.
...그래........이안은 원래 이런 녀석이었지...모습이 달라지긴 했어도 역시 이안은 이안이었던 거야..
"자...그럼 이제 방해꾼은 사라져 줘야겠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이안을 멍하니 바라보던 엘리엇은 어느새 잊고 있던 세크레틴 황자의
말소리가 들려오면서 몸이 붕 뜨는 것을 느꼈다.
"....으...으앗? 이건 무슨..!?"
세크레틴이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자 갑자기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엘리엇이 사라졌다.
"공간....전이 술법이냐? 정말로......많이 성장했구나. 세크레틴..."
이안의 부루퉁한 말에 세크레틴이 깊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당신을 내 품에 가둬두기 위해 노력 좀 했지. 크로이데 이안........
이번엔 빠져나갈 생각따윈 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난 더 이상 그때의 어린 소년이 아니거든.
적어도 당신 하나 정도는 안아줄 수 있을 만큼 성장했어....쿡..!!!"
".....설마..너!!!..."
...피식..!
"아마도 그 설마가 맞는 것 같은데?"
이안은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얼른 이 방안을 빠져나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빌어먹을 꼬마자식이 벌써 이렇게 성장해서 자신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안이 문을 열기도 전에 세크레틴이 먼저 그런 이안의 몸을 낚아챘다.
"...도망가지마.......너를 다시 찾기위해 지루할 만큼...오랫동안 기다렸단 말이야..."
이안은 자신을 감싸 안는 세크레틴을 밀어내려다가 곧 그의 따스한 품을 느끼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빌어먹을 놈..!! 내 생애 최대의 실수는 널 만났다는 거야.."
....피식...!!
"그럼 이거 어쩌지? 내 생애 최대의 행복은 당신을 만났다는 건데...."
"....입만 살아서는....젠장..내가 어쩌다 이런 녀석에게!"
..................
.............
.....
.....아..그러고 보니 방금 유이를 공간이동 시킨 좌표가.....?
이런...!!
너무 급해서 생각나는 대로 대충 좌표를 잡아 보냈는데..............!!
"갑자기 왜그러지? 세크레틴?"
"아....아무것도...쿡...쿡쿡.....! 오늘 밤은 아무래도 당신만 고생할 것 같진 않군..."
....뭐? 무슨 뜻이지? 세크레틴...?...자...잠깐! 고생!? 무슨 고생!!
"자.....그럼..."
"으...으아아악!!!!! 이것 놔!!!!!! 이 빌어먹을 자식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