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타는 키키댄스
"꺄아아아아악!!!!!!! 유이니이이임!!!!!"
뒤늦게 비척이는 걸음으로 방안에 들어와 곧바로 쓰러져 잤던 엘리엇의 귀에
로이떼의 정다운(?) 비명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무슨 일이야? 로이떼?"
-끄응...!! 너의 저 시끄러운 시녀때문에 아침잠을 자기는 모두 글른 것 같군!-
이안의 투덜거리는 말에도 불구하고 엘리엇은 머릿속이 윙윙 울리면서 눈앞에
새하얗게 얼굴이 질린 로이떼를 바라보았다.
"옷이 이게 뭐에요!? 세상에!! 왜이렇게 더러워 진거죠? 여기저기에 흙이 묻은 것좀 봐요!!
유이님 어제 도대체 뭘 하신 거에요!? 어디가셔서 누구에게 얻어 터지시기라도 한거에요!?"
...윽...!! 로이떼.....머리 울려......
실은 어제 싸움보다 더 지독한 걸 당하고 왔다고...
아직도 온몸의 근육이 쑤시는게........젠장...암실수련관에 또 한번 들어가면 내가 병신이다!
-용케도 살아 돌아왔군 그래? 적어도 나를 부를줄 알았는데?-
이안이 작게 하품을 하며 말하자 엘리엇은 떨떠름하게 표정을 구겼다.
"차라리 정말 너의 도움을 받는게 나을 뻔했어."
어제 만난 그 빌어먹을 키레이황자를 다시 한번 떠올리자 엘리엇의 표정이 썩은 양배추만큼이나
우울하게 구겨졌다.
"빨리 이옷으로 갈아입으세요!! 에구! 지금 입으신 그 옷은 아무래도 새로 수선해야겠어요!!
내참!! 항상 조용하게 잘 지내시다가 갑자기 이게 무슨 꼴이에요!?"
막무가내로 엘리엇의 옷들을 벗겨내는 로이떼를 보며 엘리엇은 후다다닥 뒤로 물러서며
자신이 직접 입혀주겠다는 로이떼를 만류하고 얼른 욕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휴우...로이떼...;;;;; 하여간 여자가 맞나 싶다니까..?"
서둘러 옷을 꿰어입고 나온 엘리엇은 로이떼가 툴툴거리며 자신이 벗어 놓은 옷들을 가져가는 걸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목의 그 손자국은 뭐냐?-
"....봤어?.."
-내가 알기로는 암실수련관에 목을 조르는 몬스터를 가둬놨다는 소린 못 들어 봤는데?-
엘리엇은 말할까 말까 작게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별일 아냐. 어떤 재수없는 놈이랑 잠시 마주쳤을 뿐..."
-.....흐음? 말하기 싫으면 관둬. 그나저나 이제 곧 축제가 다가오는데 너는 어느 대회에 참가할꺼지?-
.....맞다 축제!!!!!
한동안 이것저것 일이 많아서 깜빡하긴 했지만....파로키안이 열린다고 했지?
"그런데 이안 너...의외로 학원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너의 시녀가 하도 달달 볶아서 네가 없을 때 잠시 밖을 둘러보고 온다.
공간이동쯤은 간단하게 시전할 수 있으니까. 물론 너에겐 한참은 무리다. 꿈도 꾸지마.-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엘리엇에게 이안은 냉큼 잘라 말하고는 자신의 털을 다듬기 시작했다.
....쳇! 좀 더 격려넘치는 말은 해줄 수 없는건가?
엘리엇은 작게 툴툴거리며 입을 비죽이 내밀었다.
"그럼 오늘 하루도 로이떼를 피해 잘 돌아다녀 보라구. 안타깝게도 난 지금 수업을 받으러 가야하니."
엘리엇은 일부러 약올리는 듯한 투로 이안에게 말한 뒤 교실을 향해 걸어갔다.
.....뚜벅...뚜벅...
그러나 교실로 들어가기전 마주친 귀신이라도 본듯한 노이드패거리들 때문에 걸음을 멈춰야 했다.
"어...어떻게 저녀석이!?"
"...말도안돼!! 그곳에서 무사히 빠져 나오다니!!"
"귀....귀신이 아닐까?"
저마다 안색이 파랗게 질려서는 뭐라고 웅얼거리는 패거리들을 엘리엇은 가볍게 무시하고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는 저녀석들이 시끄럽게 웅성거리는게 들려왔지만 엘리엇은 별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흥...!! 비겁한 겁쟁이 녀석들!! 네녀석들 따윈 상대할 가치도 없지!
칼리안은 책상위에 책을 꺼내놓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엘리엇은 그모습에 작게 미소를 지으며 아무래도 녀석이 문제의 서인가 뭔가를 받기 전까진
방해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키레이황자 그녀석........
내가 학교 규칙을 어기고 그곳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건가?
.....정말 그 녀석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지?
하필 내가 재수가 없어서 그때 그 자식과 마주치긴 했지만........젠장! 언제고 꼭 복수해주겠어!
두고봐!! 나중에 전설의 대도가 되면 가장 먼저 카이다 황궁의 황실보고부터 탈탈 털어줄테니까!
"유이..!! 유이!!"
내 어깨를 치며 나를 부른 사람은 칼리안이었다.
"...으..으응?....왜!?"
순간적으로 당황하면서 나는 녀석의 얼굴을 쳐다봤다.
"다음시간은 댄스수업을 받으러 가야 하잖아. 빨리 준비하라고. 너무 멍하게 있는 것 같아서."
도둑이 제발 저린다더니... 아니, 나 도둑이었지 참!
"고마워. 칼리안.. 잠시 딴 생각 좀 하다가..."
"무슨 생각을 하길래 옆에서 불러도 못알아 들어?
혹시 범죄를 저지르는 둥의 질 나쁜 생각을 한건 아니겠지?"
히...익!! 이 자식 독심술이라도 쓰나!?
내가 말도 못하고 어버버거리며 칼리안을 쳐다보자 칼리안이 슬쩍 웃던 표정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얼굴이 진지해지더니 말했다.
"뭐....야..? 정말 그런 생각을 한거야? 이런....유이...너 순진한 얼굴을 하고 정말..."
뭐...뭐라고? 이 자식이!!
"그...그런거 아니야!! 그냥 좀.. 딴 생각...이라구..."
칼리안은 나의 한동안 계속 쳐다보더니 피식 웃고는 말했다.
"왜 그렇게 과민반응하고 그래. 잘 알겠으니 나가자. 이번주부터는 키키댄스로 들어간다고 했어.
녀석....농담도 못하겠다니까.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러는 거야?"
나는 주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씨....정말로 도둑이 제발저리는 격이라구.....쳇;;;
칼리안 녀석은 날 너무 순진한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빨리와!! 유이!! 이제 곧 시작하겠어!!"
문가에서 손짓하는 칼리안을 보며 나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기의 타격이 너무나 큰건가..?
"자~ 그러면 오늘은 키키댄스를 배워보겠어요. 여러분은 자랑스러운 파로키 학원의 학생들로써
좀 더 멋진 사교기술을 익힐 필요가 있어요! 이번에 돌아오는 파로키안을 맞이하여
전학년의 학생들과 동시축제진행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중에서 가장 춤을 잘 추는 사람 몇명을 선발하여 학년대표로 내보내겠어요.
이번 댄스대회의 종목은 단 하나!! 키키댄스!!!! 여러분은 전혀 기죽을 것 없습니다!!
체력이 딸린다고 해서 절대로 실망하지 맙시다!! 최고의 강사인 저 티티마와 함께라면
우리도 할 수 있어요!!!"
댄스강사인 티티마선생이 키키댄스에 대한 열정을 한껏 불태우며
열변을 토하는 동안 학생들은 질린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저...그런데 선생님...!!"
그때 전에 봤던 슈핑이라는 녀석이 나서면서 티티마 선생을 불렀다.
"무슨 일이죠? 슈핑군?"
"저.....그런데 이번에.......상대역은 어떻게 정하나요?"
티티마선생의 입가가 비죽이 올라 가는건 결코 눈의 착시 현상이 아니었다.
"오...그렇군요. 우리 좀 더 재밌는 추억을 만들어 볼까요? 살다보면 이런 저런 추억이 있는 법이죠.
오호호호호~!! 그건 아무런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상대방은 일단 제가 준비해온
통속에 들어있는 구슬을 뽑는 형태로 진행하겠어요. 같은 형태의 문양이 그려진 구슬을
집은 사람은 적당히 상대방을 알아내서 짝을 지어 주세요."
티티마선생은 싱긋 웃어넘기며 우리들에게 앞으로 나와서 구슬을 뽑을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실제로 반아이들의 표정은 은근슬쩍 굳어졌다.
잘못해서 구슬한번 잘못 뽑았다가는 같은 동성과 함께 춤을 추게 될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제국내에서는 그다지 그런것에 대한 차별이 없었지만 기본적으로 동성보다 이성을 좋아하는 녀석들이 많았으므로
여자애들 보다도 특히나 남자애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살다보면 생기는 이런저런 추억거리란 바로 사내녀석과 사내녀석이 두 손을 맛잡고 춤을 추는것이 자명했다.
한번 잘못 뽑으면 나긋나긋한 여학생들은...!! 귀엽고~ 깜찍한 여자애들은 모두 물거품이 되버린다고!!!!
여기저기에서 검은 오로라와 함께 아마도 대략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녀석들의 소리없는 절규가 들린다.
"이봐 너는 무슨 문양의 구슬을 골랐어?"
멍하니 서있는데 어느새 다가온 칼리안 녀석이 물었다.
"라베꽃무늬..."
"그래? 나도 라베꽃무늬를 뽑았는데 네가 나의 파트너구나."
칼리안이 나의 파트너가 되었다는 말과 함께 여기저기서 여자애들의 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칼리안이랑 함께 추고 싶었는데....!"
"....어머....하필이면 유이 따위와 짝이 되어버릴건 또 뭐람..!! 칼리안만 불쌍해......."
곳곳에서 들리는 여자애들의 불만섞인 말에 내가 힘줄이 도드라져 가는 가운데 칼리안이 나를 이끌고 앞으로 나갔다.
교실안의 일을 제외하고는 그후로 한번도 말을 나누지 못했던 세크레틴 녀석을 힐끔 돌아보니
녀석은 전에 봤던 큐타로란 녀석과 나란히 서있었다.
으음......꽤나 재밌는 상황인걸?
역시나 주변에서 여자애들 또는 소수의 사내녀석들이 큐타로를 향해 질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세크레틴 저 자식이 잘생기긴 잘생겼지.....쩝..!!
"자자~! 그러면 우리 모두 자신의 파트너를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봐준 다음에~
(여기서 사내끼리 파트너를 이룬 녀석들은 구역질을 하는 시늉을 했다.)
같은 성의 파트너를 선택한 사람들은 여자역을 정해야겠지요? 빨리 합의를 보도록 하세요!"
젠장!!! 젠장!! 빌어먹을! 내 이럴줄 알았어! 하긴, 이 시커먼 사내녀석들로 이루어진 팀은
여자를 어디서 끌고 오기는 아예 글러먹었고 춤을 추자니 파트너는 필요할테고...!!
"유이! 네가 여자역을 하는거지!?"
순간적으로 나는 칼리안의 말에 고개를 발딱 쳐들고 어이가 없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칼리안은 싱글벙글 웃으며 마치 내가 여자역을 하는것을 확신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무슨 섭한 소리를! 칼리안 그냥 네가 여자역을 하는게 어때? 상대방을 리드하려면 꽤나 힘들다고."
그러자 이번에는 칼리안이 무척이나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유이....설마 네가 나를 리드할 수 있다는 건 아니겠지?"
왜 아니겠어...
"할 수 있어."
"어...엇? 유이!! 말도 안돼! 어떻게 네가 나를 리드한다는 거야?"
"왜 못해? 할 수 있다니까!!"
이 자식이 지금 나를 무시하는건가? 이래뵈도 힘세다고!!!
"거기 두 사람 아직도 다투고 있으면 어떡해요? 다른 팀들은 벌써 다 합의봤는데!"
칼리안은 무척이나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티티마선생을 바라봤고 나 역시 칼리안 못지않게
글썽거리는 눈동자로 그녀를 쳐다봤다.
티티마선생은 그런 우리 둘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더니 내쪽을 향해 빙긋 웃어주셨다.
우후후후!! 이젠 됐다! 여자역은 칼리안 바로 네 녀석이야!!
"유이군이 그냥 여자역을 맡도록 해요."
"에....에에에엑!!!? 제가요!!!????"
서...선생님 잘못 말씀하신거죠!? 그렇죠!?
원래는 칼리안 녀석을 지명하려는 걸 잠시 이름이 헷갈리셔서 그런거죠?
절대로 저를 여자역 시키실리가 없잖습니까아아~!!
"왜그래요 유이군? 유.이.군이 여자역을 맡도록 하세요. 자, 그럼 시간이 없으니 시작하도록 하죠.
키키댄스는 어느 댄스보다 훨씬 격렬하면서도 무척이나 유연한 댄스죠.
카이다국의 전통댄스이기도 하구요...
이것은 스탭이 무척이나 빠르고 다난복잡해서 자칫잘못해서 한번 흩트러지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무척이나
고난위도의 기술을 요하는 춤이에요. 하지만!!! 여러분은 할 수 있어요!!
이번 댄스대회에는 여러분 가운데 누군가가 꼭 선발되기를 바라겠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에 가르쳐 드릴 키키댄스는 무척 고난위의 댄스라서 많은 분들이 따라오지 못하더군요.
...아마 이번에 채택된 키키댄스로 댄스대회의 진정한 강자를 가릴 수 있을겁니까.
이중에서 단 한명이라도 선발되길 바라겠어요. 자...그럼 요령을 설명해 볼까요?"
뭐라고 반박할 새도 없이 바람처럼 지나가더니 급기야는 엄청난 열기을 불태우는 티티마 선생이었다.
그나저나....내가 여자역이라니!
나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옆에서 쿡쿡거리고 웃는 칼리안의 발을 지긋이 밟아 주었다.
"으윽...! 유이..."
티티마 선생은 박수를 세번 짝짝짝 치더니 시선을 자신에게로 주목시켰다.
"잘 봐두세요. 사실 복잡다난하다 해도 이것들은 모두 기본에서 변형된거니까 기본만 확실히 해둔다면
나머지 쯤은 쉽게 적응할 수 있을거에요. 아셨죠? 기본스탭은 간단해요. 이렇게 앞으로 발을 세번 내딛고..."
그녀는 말과 함께 발을 앞으로 세번 내딛은 후 그대로 왼발은 탁탁 땅을 두번 내리치고 옆으로 무릎을 슬쩍 들어올린채
2칸을 내딪었다. 그러더니 양손을 벌리고는 무릎을 번갈아가며 굽히더니 다시 앞으로 발을 내딪고 손을 상대에게 얹은 모양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탁탁.....타타탁!! 휘리리릭!!! 탁...! 탁...! 탁...!! 탁탁......타타탁!! 탁..탁
쉬익!!! 쉬익!!! 타타탁!!! 탁탁!!
현란한 그녀의 몸놀림이 학생들의 시선을 빼앗기 시작하고는 급기야 아예 고개를 돌려버리는 학생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으윽....죽어도 못할거야. 저렇게 어려운 걸 어떻게 해?"
"...그러니까 댄스특기생들도 아닌 우리가 어떻게 저런걸 하냔 말이다..."
"확실히...멋있긴 하다.."
주위의 반 아이들이 뭐라고 꿍시렁 거리든 말든 나는 그녀의 발동작에 주의를 기울였다.
무척이나 빠른 엇박자에 쉴새없이 움직이는 다리...만약 상대방이 있었다면 훨씬 봐줄만 할 것 같았다.
키키댄스라.........꽤나.....공격적인 댄스 중 하나이지...
카이다인 특유의 절제적이면서도 공격적인 기상이 담긴 전통댄스라고 대충 정의하면 좋겠다.
저거 한번 잘못 췄다간 싸움이 나기도 한다.
확실히 예전에는 검투대신 키키댄스로 승부를 봤다는 여러가지 일화도 있었던 것 같다.
"자~ 허억....헉!! 보셨겠죠? 헉...헉....아.. 좀 숨이 차는군요. 방금 보셨다시피 이렇게만 하시면 되요.
여러분들은 충분히 해낼 수 있어요! 지금부터 연습 시작하죠~!!"
그녀가 헉헉거리며 말했지만 대답하는 학생들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저 모두들 얼이 나간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딴 걸 어떻게 춰!!!!
라는 것이 거의 대부분 학생들의 표정이었다.
티티마선생도 한순간 조용해진 좌중을 둘러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유이...너 출 수 있겠어?"
그때였다. 칼리안이 조그마한 소리로 물어온 것은..
뭐...나야 키키댄스는 무척이나 익숙한 춤이었으므로 상관은 없었지만...
사실 말하자면 내가 이제껏 머리털이 처음 나고 나서 배운 유일한 춤이 키키댄스였다.
이곳으로 오기전에 세이리어가에서 배운 춤들도 있긴 했지만 그것은 키키댄스에 댈바가 아니었다.
말그대로 엄청난 스피드와 유연함 그리고 뛰어난 순발력을 고루 갖춘 키키댄스는 도둑수업중 하나로
어릴적부터 할아버지에게 배워오던 것이었으므로 그다지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평범한 사람들은 무척이나 어렵게 생각되기도 할 터였다.
그리고 나는 현재 그다지 튀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므로 이렇지도 저렇지도 못한 애매모호한 대답을 흘렸다.
"...으응.... 뭐 조금...은.."
그때였다.
옆쪽에서 갑자기 비명소리가 울려퍼진 것은..!!
"우...우아아악!!!!"
약간 오동통한 살집을 지닌 큐타로의 비명소리였다.
탁탁.....타타탁!! 휘리리릭!!! 탁...! 탁...! 탁...!! 탁탁......타타탁!! 탁..탁!!!
세크레틴은 큐타로를 상대로 키키댄스를 추고 있었다!!!
"맙소사......세크레틴 녀석...어떻게 키키댄스를!?"
칼리안 조차도 경악에 빠져서 당사자들을 쳐다보고 있을 때 쯤 파트너인 큐타로는 거의 숨넘어가기 직전으로 보였다.
세크레틴의 빠른 스탭에 맞춰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원래 덩치가 있어서 행동이 약간 굼뜬대다가
큐타로가 한발자국 내밀기도 전에 이미 세크레틴은 세박자를 지나가니 도저히 큐타로가 견뎌낼 재간은 없어보였다.
"사....살려주세요!!!!"
티티마 선생도 반쯤은 포기상태로 있다가 갑작스레 생긴 이 상황을 보고 그녀는 눈을 번쩍하니 빛냈다.
큐타로의 비명이 들리지도 않는지 티티마선생은 그들을 제지할 생각도 하지 않은채 황홀한 눈빛으로
세크레틴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으...으아악!!"
탁..!!!
큐타로를 한바퀴 빙그르르 돌린 세크레틴은 그제서야 추던 춤을 멈추고 뒤로 쓰러지려는 큐타로의 허리를 감싸
앞으로 끌어들였다. 큐타로는 그 자세에서 곧바로 바닥에 주저앉아 헉헉거리며 숨을 들이켰고
세크레틴은 놀랍게도 호흡하나 흐트러지지 않은채 빙긋 웃으며 큐타로를 내려다 보았다.
"세상에....이런 멋진 일이!! 세크레틴님이야 말로 댄스계의 진정한 풍운아일꺼야!! 어쩜...저렇게 정확하고
빠른 동작에 상대방을 멋지게 리드까지 하다니!!! 오오!! 과연 세크레틴님!!!!!!!"
티티마 선생의 눈이 뒤집혀서 세크레틴을 향해 사랑의 러브러브 빔을 마구마구 쏘아주고 있을 동안
나 역시 그녀의 의견에 동감했다.
세크레틴 녀석... 키키댄스를 처음보고 이정도 씩이나 춤을 춘 것이라면
정말 이세상에 단 한명 있을까 말까한 엄청난 댄스천재라는 칭호가 붙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멋진 춤솜씨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해도 저정도로 추려면 나처럼 어릴적부터 꽤나 많은 연습을 해야 했을 것이었다.
게다가 저 둔해 보이는 큐타로가 끝내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세크레틴의 상대역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녀석의 엄청난 리드실력이었다고 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안그러면 저 굼뜬 녀석이 끝까지 해낼 수 있었을리가 만무하지...
나 말고 다른 학생들도 그걸 인정하는 것인지 모두 헤...하니 입을 벌리고 세크레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주변의 여자애들은 얼굴이 붉어진 채로 자기들끼리 뭐라고 꺄악꺄악 거리며 세크레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몇몇의 사내들도 그를 향해 애정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저 정도라면 이번 축제때 열릴 댄스경연대회에서의 우승은 문제 없을 것 같군요!
그나저나 다른 한명을 더 선출해서 내보내야 할 것 같은데...이번 댄스대회의 종목이 너무 난해한지
참가하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적더군요...적어도 짝수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한명 더 내보내야 할텐데...?"
그녀가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말했지만 학생들은 다들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나 역시 고개를 수그리며 다른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시선을 회피했다.
"칼리안군. 키키댄스를 조금이라도 출 수 있겠나요?"
옆에 있던 칼리안이 티티마선생의 지명에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아니요! 절대 못합니다. 따로 연습하지 않는한..."
"그래요? 칼리안 군은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후우...."
티티마 선생이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짓자 그때 칼리안 녀석이 눈을 반짝 빛냈다.
....왠지 불길하다..!!
"선생님!! 제 옆에 있는 유이는 키키댄스를 조금 출줄 안다고 했습니다!"
칼리안의 말에 주변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도저히 못믿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나도 기겁을 하며 당연히 키키댄스를 못춘다고 말하려 했다.
내 옆의 빌어먹을 칼리안 녀석이 먼저 한마디만 이어서 더 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유이를 적극 추천합니다! 그래도 유이는 키키댄스를 어느 정도 출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으드드득...!! 칼...리....아아아아아안!!!!!!!!!!! 나의 분노의 오로라가 보이지 않느냐!!!
이자식!! 빨리 불어! 너 평소에 나한테 원한 있는거 이런식으로 푸는거지! 그렇지!!?
녀석은 아무것도 모르는 양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잘됐다는 듯 눈부신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나는
그 면상에 주먹을 꽂아주고 싶다!!!
"어머!! 잘됬네요!! 유이군!! 키키댄스를 조금 출 줄 안다구요? 오호호호호호호!!!
그게 어디에요~!! 사실 키키댄스를 아는 녀석들이 거의 전무하다 싶던 마당에 4반에 와서
이렇게 두명을 찾아내게 될줄은~!! 오호호호호!!! 자! 그럼 댄스대회에 나갈 사람으론
이 두사람으로 결정하겠어요!!"
.........티티마 선생님!!!!! 말도 안돼요!!!! 으아아악!! 그렇게 제멋대로 정해버리는게 어딨어요!!
"선생님!! 저는 그다지 키키댄스를 잘 추는 편이..!!"
"후우.....유이군...너무 부담가질 필요 없답니다. 조금 출줄 아는 것도 대단한 일입니다.
자부심을 가지세요!..."
".....그...그런...!!"
"파트너의 짝수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사람을 내보내야 하니 조금이라도 출줄 아는 유이군이 협조해주기를 바래요."
그녀의 눈이 무시무시하게 불타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 이상 반박을 할 수 없었다.
크아아아아악....!! 댄스대회라니!! 댄스대회라니이이이!!!!
"자...그러면 이번 수업은 여기까지 하고 끝낼까요?
아, 유이군과 세크레틴님은 자주자주 키키댄스를 연습하도록 하세요.
특히 유이군은 세크레틴님에 비해 많이 부족할지 모르니 좀 더 연습을 많이 해주세요.
이번 축제 때 기대하고 있겠어요. 두분 모두... 설마 저를 실망시키려는 것은 아니겠죠?
유이군! 열심히 해주세요!!"
그녀의 눈은 더 이상 인간의 눈이라고 할 수 없을만큼 번들번들 광기를 뿌리며 빛나고 있었고
그 눈빛에 마주치게 되면 도저히 제정신을 유지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여...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는 쥐꼬리만한 신음비슷한 대답을 내뱉으며 후다닥 고개를 내렸다.
"고마워요! 저는 유이군을 찰떡같이 믿.겠.어.요...!!!"
........차라리 말을 마시지....나말고 세크레틴 녀석도 대회에 나가는데 녀석에겐 아무말도 안하는 거냐아!?
아무래도 나..선생들한테도 꽤나 차별당하고 있는 것 같지?
"이봐 유이!! 같이 가!!"
뒤쪽에서 칼리안이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쁜놈!!! 썩을놈!! 네 녀석 때문에 나는....나는....!!!
"유이! 왜 그래? 무슨일 있어? 기분이 나빠보여..."
놔라!! 이 자식아!!
네가 그렇게 아무것도 몰라요~ 라는 표정으로 아무리 나를 쳐다본다고 해도!! 나는 이미 다 알고있어!
너 나한테 원한있는거 이런 식으로 푸는거지!! 그렇지이이이!!!!
"유....유이?"
나는 말도 못하고 무척이나 서러운 표정으로 칼리안 녀석을 노려봤다.
칼리안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흠칫했지만 이내 곧 자랑스럽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유이. 이번 파로키안 때 너도 뭔가 하나이상의 대회에 참여해야지.
이참에 너의 멋진 춤실력을 보여주라고."
"..으드드득..!! 내가 말했잖아. 난 그다지 키키댄스를 잘 추는 편이 아니라고..."
"...흐음...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우승자 2명을 제외 하고는 나머지는 다 탈락이니까.
마지막엔 우승자 2명이서 춤을 추는데 그것 또한 명장면이라고. 너는 적어도 대회에 나가는 녀석이니까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뭐처럼 관람이라도 제대로 해보라는 뜻에서 너를 추천...아욱!! 유이..!!"
나는 다시 칼리안 녀석의 발을 지긋이 밟아주었다.
"으윽...처음에는 얌전하고 고분고분하던 녀석이....!!"
이자식아!! 양심의 가책을 좀 느껴봐!! 이 썪을놈!!!
"....어쨌든 칼리안 너의 호의는 고맙게 받아들이지......까드득!!!..."
너무 고마워서 이가 갈릴 정도로!!
"쿡.....쿡...!!"
옆에서 갑자기 들려온 웃음소리에 미간을 찌뿌리며 고개를 돌린 자리에 선 사람은 세크레틴이었다.
...세크레틴....!! 네 녀석도 마찬가지야!!
네 녀석이 춤만 잘 못췄어도 쪽수를 맞추기 위해 내가 이렇게 대회에 참가해야 하는 일까지는 없었을꺼 아냐!?
"왜 그렇게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지? 무슨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는거야?"
세크레틴이 태연하게 지껄였지만 나는 왠지 이놈이 알면서도 일부로 묻는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차마 녀석에게 소리칠순 없었다.
녀석이 나를 감싸주던 그날 이후 처음으로 녀석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흐음.....파로키안까진 얼마나 남았지?"
흠칫!!!
"아..그거? 한 이주정도 남은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너희 둘은 파트너니까 꽤 열심히 연습해야겠다.
특히 유이 너는...에.........열심히 해보라구...아....하하하...하..."
내가 입다물라는 검은 오로라를 퍽퍽 풍기며 칼리안을 스윽하니 노려보자 칼리안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면서 쩝하니 입맛을 다시고 아쉽다는 듯한 표정으로 뒷통수를 긁적이는건 뭐지?
그나저나 세크레틴 녀석과 잘 아는 사이었던가? 칼리안이..?
방금 한 대화를 들어보면 꽤나 거리낌 없이 말한 것 같았는데...아니면 원래 칼리안의 천성일까?
"....에이...아깝다. 실은 나도 출 수 있긴 했는데........."
...빠직.....!!!
그럼 네가 나 대신 추란 말이다아아아!!!!!!!!!!!!
퍽!!
"으윽...!! 유...유이? 갑자기 왜?"
".......미안.....칼리안!!.."
젠장!! 젠장!! 젠자아아아앙!!!!!
그러나 그것은 앞으로 열릴 고난길의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는 걸 어찌 알았으리...
"그 상태에서 돌아한다! 그래.. 잘했어. 그 다음엔 다리를 내밀고 이부분에서는 최대한
서로의 몸을 밀착시켜야 해. 그다음엔 무릎을 살짝 구부린 뒤.."
어흑흑흑흑...!!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대강 설명하자면...
파로키안을 3일 남겨놓고 키키댄스 특강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건지 티티마선생이 우리둘을 불러 놓고 세크레틴 녀석에게 특.강.을 부탁한 것이었다.
이번 댄스대회는 황제폐하께서도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보신다는 말에 좀 더 대회출전자들의 실력을
높여서 내보내야 한다는 티티마선생의 지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솔직히 이깟 키키댄스 쯤이야 따로 특강을 받지 않아도 얼마든지 출 수 있는데.........
처음에 잘 못춘다고 말한 이 입을 원망해야지!! 우흑흑흑!!
세크레틴녀석은 힘들지도 않은지 무지막지할 정도로 멀쩡한 얼굴로 내 자세를 이것저것 지적해주면서
빙그르르 돌리고 꺽고 발을 내밀고....!!
힘들어 죽겠다...젠장!!
아니, 일부로 춤 잘 못추는 사람 흉내를 내려니 그게 더 짜증이 난다.
키키댄스는 원래 리듬을 타지 못하면 더욱 힘들어지는 춤이다.
게다가 못추면 남들보다 배로 더 연습해서 잘추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티티마 선생의 지론에 의해
몇시간은 이상태로 돌고 꺽고 발을 움직여야 하는 거다. 어헝헝헝...!!
차라리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잘한다고 할껄...!!!
"....호오...유이.. 생각 외로 잘 추는데?"
세크레틴의 감탄어린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인상을 찌뿌렸다.
최대한 못추는 척 하려고 했는데... 티가 났나?
"그래도 좀 더 노력해야 겠는걸? 이대로면 조금 어렵겠어...티티마선생님의 기대에 맞추기엔..."
몸을 밀착하는 춤동작에서 세크레틴이 슬쩍 웃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망할자식!!! 누군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네녀석이 그렇게 말해주지 않아도 그런것 쯤은 나도 잘 안다고!!
".....파로키안 때는 좀 더 열심히 잘 추라고..하하하...!!!.."
".........."
.........빌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