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누명 (7/67)

# 누명

아직...파티는 끝나지 않았다.

세크레틴이 사라지고 나서도 나는 그대로 테라스의 난간에 멍하니 기대어 서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밤하늘의 별들이 눈부시게 밝다. 

"저........세이리어 듀 유이님 맞으신가요?"

한참을 하늘을 오려다 보고 있는데 옆에서 작고 여리게 들려오는 소녀의 음성에 내고개가 돌아갔다.

"...예....맞습니다만 누구십니까?"

현재 내 옆에는 무척 곱게 단장한 듯 보이는 예쁜 여자애 한명이 두 뺨을 붉게 물들이고 서있었다.

금빛의 찬란한 곱슬머리에 푸른 눈동자를 지닌 무척 아름다운 여자애였다.

헤에....이래뵈도 나 여자들에게 꽤나 인기가 좋은 것 같지?

나는 히죽 웃으며 그녀가 할 다음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생글생글 귀여운 미소를 짓고 있던 그녀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지더니 그 붉은 입술에서 

전혀 생각치도 못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네가 바로 그 세이리어 듀 유이란 말이지? 재수없어!! 나보다 못한 너따위가 감히 나를 제치고

그분께 먼저 접근해? 이젠 다 몰락해가는 몰락귀족인 주제에!! 너같은 머저리의 어디가 맘에

들어서 그분이 너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거야!?"

........에......에에? 이.....이 여자애 지금 나에게 뭐라고;;; 하는 거지!?

나는 내가 환청을 들은게 아닌가 싶어 다시 한번 그녀를 바라봤지만 그녀의 어느샌가 귀여운 표정에서

앙칼스럽게 변해버린 그녀의 얼굴을 보고 결코 환청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을 수 있었다.

"...뭘 봐!? 이 멍청아!! 너따위 정말 짜증나고 재수없으니까 앞으로 다시는 그분께 접근하지마!

흥! 네가 아무리 옆에서 얼쩡거려 봤자 그분이 너같은걸 반려로 삼아주기라도 할 것 같아!?"

......반려? 

나는 그 말 한마디에 뭔가가 떠오를 듯 했다.

"...설마 황태자저하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럼 이제까지 누굴 가리키는 줄도 몰랐단 말이야? 이제보니 진짜로 멍청이었군!!!

머리도 나쁘고 눈치도 없고 몸도 약하고 잘하는 건 하나도 없고 게다가 몰락귀족이기까지!! 

도대체 왜 너따위에게 그분이 그렇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거지!? 아우! 짜증나!!"

...그러는 그쪽도 참 대단한 것 같은데;;;

그렇게 노골적으로 당사자 앞에서 짜증난다느니 멍청이라느니;;; 여러 말을 쏟아붓다니;;

레이디에 대한 환상들이 깨져 나간다;;;;

"이....이봐요...그래도 그런말은 너무 심한거 아닙니까? 도대체 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시는 겁니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는 당신이 말하는 그분의 코빼기 하나 본적이 없다구요."

"뭐!? 이젠 거짓말까지 하는구나 너!! 이게 정말~!!!"

......으....으아...;;;; 

이여자 진짜 막무가내다;; 게다가 오늘 정말 날이라도 잡은걸까?

왜 이런 괴상한 일들이 연달아서 일어나는 거지;;;

휘익!!!!

턱!!!

"이.....이거 안놔!?"

그녀가 내 뺨을 내리치기 위해 치켜올린 손을 나는 재빨리 막아내며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진정하시고...도대체 뭐가 뭔지 설명을..."

"놔!! 놓으란 말이다!!!"

놓으면 그손으로 때릴거잖아! 이여자야!!!

"놔도 때리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해 주시면..."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 손 놔주세요!!!!!!!!!!!!!!!!!!!!!!!!!!!!!!!!!!!!!!!!!"

..........으으윽;;;;;;

이여자 목청 엄청나게 크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녀가 귀청이 찢어지도록 째지는 음성으로 크게 소리를 치므로써 사람들이 우리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앗!! 레이디!?"

이.....이거 어째 얘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은데..?

"우...우흑...저는 싫다고 거절 했는데도 이분께서 자꾸....."

...헉!!!.......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니 아까의 앙칼진 표정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말그대로 청순가련에 엄청 여려보이는

소녀의 얼굴로 두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며 울먹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여전히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는 상태였고.........이거 자칫 잘못하면...

"저...저런 파렴치한 놈!!! 당장 레이디의 손을 놔드리지 못하겠느냐!!"  

"아니! 너는 유이아냐!? 이제보니 네놈....!!!"

"저런 자식은 혼쭐을 내줘야 해!!! 저런 쓰레기 같은 놈을 봤나!?"

......으....으헉!!...

자칫 잘못하면이 아니라 이미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재빨리 그녀에게 사실을 해명하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는 정말 가증스럽게도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정말 쓰러질 듯 연약한 소녀의 모습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미...미안해요. 나는 이렇게 일이 커질줄은 몰랐는데....으흑...흑....그래도 너무 무서워서......우흑...흑..."

......띠이이이잉!!!!!!!!!!...........

나는 머리를 해머로 강타하는 듯한 충격을 느끼며 뭐라고 해야할지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미 사람들은 흉흉한 눈빛으로 나를 짐승(...)을 보는 듯한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레이디! 괜찮으십니까? 이리로 오십시오."

그 가운데 어느 한녀석이 잽싸게 나서면서 그녀가 흐느적 거리며 걸어갔다. 

.......이런 빌어먹을!!! 나는 정말 아무짓도 하지 않았단 말이다!!

오히려 피해자는 나라구!!! 저여자가 먼저 욕을 하며 나를 때리려고 했단 말이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해명은 도무지 이상황에서 통할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미 학원에서 안좋게 소문이 난 인물이었던 데다가 나와는 달리 그녀는 꽤나

아름답고 청순한 외모로 사람들의 호감을 얻어내고 있었으니...아무리 내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믿어 줄리가 없지..!!

"...유이님.. 정말 유이님께서 이러신 겁니까?"

...어....어째서...아나이스 황녀까지..!?

나는 최소한 그녀에게라도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러기도 전에 

어느 한 녀석의 주먹질에 바닥에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퍼억!!!!!!!

"이 개같은 자식!! 감히 너 따위가 넘볼 수조차 없는 유토공작의 따님이신 세일린님께 무슨 

수작을 건거냐!? 이 버러지 같은 놈!!"

상대는 얼굴 가득히 희열에 찬 미소를 달고 두눈을 형형히 빛내고 있는 노이드였다.

노이드는 마침 패주고 싶었는데 딱 걸렸다라는 듯이 입가에 재밌어 죽겠다는 듯 비열한 웃음을 달고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스윽...!!

입가를 문질러 보니 피가 약간 묻어 있었다.

이미 주변에서 여자애들은 꺄악 거리며 난리를 피우고 있었고 몇몇 사람들은 흥미로운 눈길로...

몇몇 사람들은 경멸하는 눈길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점은 이중에서 내편은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아나시스 황녀조차도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얻어 맞아 보는군.........쳇..!!

이까짓 주먹질쯤이야 전에는 수도 없이 당해 봤는데.....큭..!!

노이드는 자신의 주먹질에도 불구하고 쓰러진 내가 작게 실소하며 일어서자 굉장히 자존심이 상한듯

인상을 찌뿌리며 다시 한번 나에게 달려들었다.

퍼억!!!!

...철푸덕...!!!

내 몸이 테라스의 난간에 부딪힌 뒤 힘없이 쓰러지자 그제야 녀석은 만족한 듯한 눈길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흥!! 네까짓 놈이 어디 감히 나에게 대들수나 있겠어!? 이 더러운 벌레자식!! 

예전에는 그래도 고개를 푹 수그리고 제 주제에 맞게 구석진 곳에 처박혀 눈에 띄지 않으려는

노력이 가상해서 봐줬더니!! 한 몇달 쉬고 오니 이젠 눈에 뵈이는게 없나 보지!?

이런 주제넘은 짓까지 해대고 말이야!!"

그는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로 나를 조롱하며 즐기고 있었다. 

슬핏 세일린이라고 했던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그녀쪽을 쳐다보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조금 움찔한 듯 했지만 이내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틈을 이용해 내게 혀를 내밀어 보였다.

.....으득!! 저 얄미운 표정이라니!!!

내가 아무런 말없이 침묵을 하고 있자 노이드가 다가와서 내 멱살을 잡아올렸다.

솔직히 이깟 녀석에게 반격하는 것 쯤이야 우습지도 않았지만 나는 그저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이상태에서 녀석에게 반격이라도 했다간 지금 당장이야 통쾌하고 후련할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후에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유이에게 피해가 갈것을 생각하니 도무지 멋대로 손이 나갈 수 없었다. 

녀석이 다시 주먹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그 쯤 해둬라. 노이드..."

누군가가 짧게 명령조로 말하며 상황을 제지하고 나섰다.

막 주먹을 날리려던 차에 누군가가 제지한게 불만스러웠는지 인상을 팍 찌그리던 노이드가 금새 표정이

풀어지면서 재빨리 나를 잡고 있던 멱살을 놓아주었다.

아니, 바닥에 내팽기쳤다. 

상대를 바라보니 미드나잇블루의 머리칼과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지닌...녀석이었다.

이걸로 총 3번째의 만남인건가?

.....피식...!!

녀석하고는 이상할 때마다 마주치는 것 같군.

그러나 주위는 나의 조소와도 상관없이 잠시간 술렁거리더니 녀석이 한발자국 떼자 곧 조용해졌다.

".....키....키레이저하...이곳엔 무슨 일이십니까?"

노이드가 슬쩍 말을 더듬으며 말하자 키레이는 현재 바닥에 쓰러진 엘리엇을 보고는 인상을 찌뿌렸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나약하고 볼품없는 모습이로군...

그때 보여줬던 그 당돌한 모습은 역시나 착각이었나...?...하긴...그럴테지만. 

키레이는 작게 혀를 차며 노이드를 바라봤다. 

그는 주춤한 눈빛으로 조심스레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이자 역시 제 아버지와는 전혀 닮은점이 없는 쓸모없는 놈이다.....

키레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세일린을 바라봤다. 

평소 늘 무표정함을 고수하고 있던 키레이였으므로 세일린도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무슨 의미가 담긴건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이 생각하던 것 이외로 일이 커져버린 것 같아 조금 조급해졌을 뿐이었다.

...뭐야? 카이다의 키레이황태자까지 이사건에 관여 할 줄이야..!

어쨌든 상황은 나에게 훨씬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나는 그저 표정이나 제대로 유지하고 있으면 그만이야.

이 모든건 에스더의 세크레틴황태자를 넘본 저 녀석의 잘못이라구!

같은 지위에 두 사람 다 대등한 세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일린이 카이다의 황자에게

무심한 까닭은 아무래도 전의 뼈아픈 기억 때문이기도 했다.

모든것에 무심한 카이다의 황태자... 

오직 검술과 공부를 빼고는 무엇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보다야 차라리

훨씬 자유분방하고 웃음이 헤프긴해도 매너좋은 에스더의 세크레틴 쪽이 훨씬 공략하기가 쉽다고

생각한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키레이황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의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맴돌았던가!?

유독 그녀만 그런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자들에 비해 자신의 외모가 월등히 뛰어났다고 자부할 수 있던

그녀였다. 게다가 그녀는 파로키학원내에서 성적도 꽤나 우수한 편이었던 것이었다.

모든 남자들이 자신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말도 걸어오고 선물을 보내기도 하며 그녀의 주위를 맴돌았다.

게다가 본래의 성격도 감춘채 완벽하게 친절한 레이디의 행세를 하고 다녔던 그녀는 이제껏

여신처럼 떠받들여져 오다가 처음으로 한남자에게 공을 들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의 노력들을 키레이황자는 알아주기는 커녕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는 늘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고 그의 심중을 알아챌 수 없었다. 

자신의 외모라던지 성적우수 기타적인 조건들 모두 키레이황자에게는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이상

더이상 그에게 미련을 둘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 찾은 상대가 에스더제국의 제 1황자인 세크레틴이었다. 

키레이와는 달리 그는 훨씬 인간적인 반응을 보여주었고 자신 나름대로는 그와의 관계에 

조금씩 진전이 있다고 생각하던 세일린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세일린의 눈에 엘리엇이 눈에 띈 것이엇다.

....흥!! 넌 이제 끝장이야. 유이....!!

"키레이저하! 유이 저자식은 여기 있는 레이디 세일린에게 파렴치한 짓을 했습니다.

저녀석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제가 저녀석을 처벌하겠습니다! 맡겨만 주신다면.."

노이드는 재빨리 키레이에게 있었던 일을 이르기 시작했다.

엘리엇은 그들이 뭐라고 하던지 말던지 잠시간의 충격으로 뒷골이 지끈거렸다.

......저 녀석이 황태자라고? 

그렇다면 방금 저여자가 말한 사람이 바로 이녀석이었던가? 

하지만 나는 이녀석과 별로 접촉을 가진적이 없는데...? 

아니, 접촉은 있었지만 그다지 썩 유쾌한 만남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걸 보고서 저자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준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상하군.......

세크레틴이 에스더제국의 제1황자라는 사실을 알리가 없는 엘리엇은 의아함에 잠시간 인상을 찌뿌렸다.

그나저나 오늘 하루종일 놀랄일들만 연달아 줄지어 생기는 것 같군...;;;

아무래도 로이떼의 상상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데.....흐음...

아무래도 황태자의 반려자리는 물건너 간 것 같군........이거 로이떼에게 미안해서 어쩌지?

이 순간에도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는 자신에게 엘리엇은 잠시 조소를 머금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지막지한 주먹으로 저를 열심히 때려줘서 고맙다고 해야하나요?

솔직히 힘껏 날린 주먹 치고는 일부러 그러신 건지 솜방망이보다 더 가벼워서 

저를 배려하신 것이 아닌가 놀라긴 했습니다만..."

일어선 엘리엇이 뜻밖의 빈정거림이 담긴 말을 하자 장내에 몰려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당황스러움으로 바뀌었다.

"......!!!!!...."

테라스의 난간에 부딪혀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엘리엇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일어서며

오히려 빈정거리기까지 하자 말을 하던 노이드의 표정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어떻게 저자식이!! 예전에는 한대만 맞아도 빌빌거리며 제대로 서지도 못했는데!?

방금 전에도 자신에게 주먹으로 얻어 터지고도 태연히 일어서던 유이의 모습이 떠오르자

노이드의 눈이 더욱 붉게 충혈되어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키레이의 눈동자가 잠시간 흥미로움으로 반짝였다는 것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와 반대로 주변에 몰려있던 사람들은 또다른 의미로 경악을 하고 있었다.

저 녀석은 자신이 처한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건가?

아무리 노이드가 잠시 주먹질을 멈췄다지만.. 후환이 두렵지도 않은건가!? 

게다가 여기는 카이다의 황태자도 있었다.

물론 지금이야 다 똑같은 파로키학원의 학생들이었지만 학원을 졸업하게 되면 엄연히 서열의 차이가

들어나게 되기 때문에 지금부터 꽤나 있는 집안의 자제들이나 다른나라에서 유학온 황자나 황녀 또는

공주나 왕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드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하물며 거의 몰락귀족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세이리어 듀 유이임에야!!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현재 그는 유토공작의 여식을 성추행하려던 파렴치한 놈으로 몰리고 있던 중이었다.

......과연 세이리어가의 자제는 너무 궁지에 몰려버린 나머지 미쳐 버리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그러나 엘리엇은 태연한 표정으로 테라스의 난간에 부딪혀서 욱씬거리는 목을 주물렀다.

그리고는 곧 세일린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그녀를 잠시간 노려보았다.

세일린도 엘리엇의 화가 난 눈빛에 잠시간 움찔하긴 했지만 이내 시선을 피했다.

...제깟게 그렇게 노려봤자 어쩔꺼야!? 어차피 너를 도와줄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을텐데! 

"뭘 잘했다고 큰소리를 치는거냐! 유이!! 이미 너의 파렴치한 행각은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알려졌다!! 이제와서 네까짓게 아무리 변명을 하려고 해봤자 통하지 않아!!"

세일린의 마음을 대변하듯 노이드가 크게 소리쳤다.

그랬다. 

엘리엇이 아무리 변명을 해도 통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때의 상황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나서서 해명을 해주지 않는 이상엔....

그러나 어느 누군가가 그 상황을 보았다고 하더라도 그는 유이를 위해 나서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괜히 별 도움도 안돼는 녀석을 도와주려다가 오히려 자신에게까지 피해가 올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몰락귀족으로 소문난 녀석을 돕기 위해 노이드패거리와 세일린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자신들도 같은류로 치부당해 버릴지 몰랐다.

좀 더 강력한 누군가가 나서지 않고서는...!!

그러나 안타깝게도 엘리엇의 유일무이한 친구라 할 수 있는 칼리안은 현재 이런 일이 발생한 줄도 모르고

무사태평히 침대에 누워 검술교본을 읽고 있었다. 

엘리엇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걸까? 자신은 그저 로이떼의 말에 따라 잠시간 귀족들의 파티라는 것을 구경하고

조용히 돌아가려했던 것 뿐이었는데...

그러나 이런 마음약한 표정을 저들의 앞에서 들어낼 경우 자신은 곧바로 맹수에게 물어 뜯기는

어린양신세가 될것이 불보듯 뻔했다. 

아마 저들은 자신의 마음이 약해졌다는 것을 알고는 그걸 빌미삼아 더욱 더 자신을 괴롭힐 것이었다.

엘리엇은 되든 안되든 일단 뭐라고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거의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다 때리셨습니까?"

엘리엇이 노이드에게 다가서서 말하자 노이드는 뜬금없는 엘리엇의 물음에 당황해서 말했다.

"뭐....뭐..?"

"...분에 풀릴 만큼 다 때리셨느냔 말입니다. 아무래도 표정을 보니 더이상 때리실 생각은 없으신 것 같군요.

그럼 저도 이제 맞을 만큼 맞은 것 같으니 그만 제 방으로 돌아갈까 합니다만..."

.....웅성...웅성..!!!

엘리엇의 태연한 말에 주위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레이디를 성추행하려 해놓고도 저런 뻔뻔스러움 이라니!!!

"그녀에게 사과도 안하고 그냥 돌아가시겠단 말씀이신가요? 유이!?"

그때 멍청히 유이를 바라보던 노이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유이를 질책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안봤는데 정말로 실망이에요. 유이! 저는 당신이 무척 좋은 사람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제 생각이 틀렸군요!"

상대는 실망한 티가 역력히 들어나는 에스더제국의 제 2황녀인 아나이스였다.

엘리엇은 순간적으로 가슴이 덜컹했다.

...나에게 실망이라..........아나이스황녀가.....나에게 실망을?

그말은 비수처럼 무척이나 아프게 엘리엇의 가슴을 찔렀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억울한 사정을 그녀에게 말하고 절대 오해라고 해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기엔 상황이 무척이나 좋지도 않았거니와 설사 그렇다해도 그녀는 믿어주기나 할것인가?

....어차피 나는 천한 도둑이고........저들은 그 잘난 귀족, 황족들이 아니던가?

"어서 그녀에게 사과하세요! 유이!!"

아나이스가 단호하게 말하자 주변에서 그녀를 거드는 말들이 곳곳에서 들렸다.

"맞아!! 당장 사과해!! 이 쓰레기 같은 놈아!!"

"빨리 세일린님께 사과해라!!"

"사과해!! 유이!!!"

"이 파렴치한 놈아!! 이대로 그냥 갈 참이냐!!"

......사과해!! 사과해...!!!!!

.....피식....!!

그러나 사람들의 비난과 힐난에도 불구하고 엘리엇의 얼굴 위로 미소가 떠올랐다.

"죄송하지만 저는 그녀에게 사과할 수 없습니다."

"......뭐라구요? 유이?"

아나이스의 기막힌 듯한 물음에 엘리엇은 얼굴에 띄웠던 미소를 여전히 유지하고 말했다.

"잘 못들으셨나 보군요... 황녀저하...죄송하지만 저는 방금 그녀에게 사과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변에서 비난섞인 야유가 들려왔다.

...저 짐승같은 놈!! 뭐가 어쩌구 어째!?

......아나이스황녀저하의 말이 말같지도 않다는 거냐!!!

"....어...어떻게 그럴수가..!!"

아나이스는 안색이 파랗게 질린채로 이제는 무척이나 경멸하는 시선을 엘리엇에게 보냈다.

엘리엇은 한숨을 내쉬며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저분께 사과해야할 이유 따윈 없습니다. 잘못한 것이 없으니까요."

"...우흑....흑...!! 그래요....유이님의 말씀이 맞아요....!! 다 제가...바보같아서.....

흑...흑흑.....제가 소리지르지만 않았더라도 유이님께서 이리 되진 않으셨을텐데....죄송해요...흑..!!"

때마침 세일린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가증스러운 것 같으니!!

엘리엇이 이를 사려물며 그녀쪽을 노려보았지만 이미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에게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이제는 빼도박도 못하고 자신은 파렴치한 치한으로 몰렸다.

".....이럴수가! 세일린이라고 했나요? 울지마세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나이스가 울고 있는 세일린에게 다가서서 그녀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엘리엇은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은 분명 잘못한게 없었다. 

성추행이라고? 하!! 말도 안돼는 소릴!!! 저여자가 때리려고 하기에 손목을 잡은 것 조차 죄가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자신은 여자가 자신을 내리치려 하는데도 멍청이 서서 당했어야 했다는 말인가!?

휙!!!

엘리엇은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는 몸을 돌려 그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등뒤로는 사람들의 야유와 힐책 비난등이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난 잘못한게 없다! 내 스스로에게 결백하니 상관없어!! 

저들이 아무리 뒤에서 뭐라고 떠들어도...나만 결백하다면..!!

"...고집이 세군..........유이..."

모든 상황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키레이의 입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흘러나오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의아한 시선으로 자신들의 황태자가 한 말을 곰곰히 되새겨 보았다.

...무슨 뜻일까?

그러나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나이스의 품에 안겨 울먹거리고 있는 세일린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떠오르며 

그녀가 승리에 도취된 눈동자를 반짝거리고 있었음을... 

...아니,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세일린이었던가? .....여우 같은 계집이군...

뒤돌아서서 걸어가는 키레이의 무심한 표정 위로 잠시간의 냉소가 떠올랐다.

나서진 않았지만 테라스에서 그들의 행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사람은 몇명있었다.

그들은 사건의 진상을 알지만 나서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한사람........ 사건의 진상을 알지만 나서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카이다 도네시어 에반 키레이......그는 그녀가 유이에게 다가 설 때부터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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