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파티에서의 만남 (6/67)

# 파티에서의 만남

휙...! 휙.......!!

그녀가 옷장을 열어 이것저것 고르면서 내 앞에 재여놓은 옷들만 해도 대략 6벌은 되어 보인다...

"아냐...아냐.....아직도 뭔가가 부족해....... 유이님께 어울릴만한 옷이....어디보자....."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옷들만 해도 충분히 삐가번쩍 한데다가 이 이상의 옷은 상상하기도 힘든데.....그냥 아무거나 걸치고 가면....

그러나 순전 속으로만 말하고 입을 꾹 다문채 그녀의 옷고르기가 끝나기를 묵묵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몇벌을 더 올려놓은 그녀는 한숨을 쉰채 재여놓은 옷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봤다.

"왜 이런 것들밖에 없지? 진작에 더 들여놓을 껄 그랬나봐요. 뭐 어쩔 수 없죠... 마음에 안들긴 해도 

이것들 중에 하나를 골라야 겠어요."

윽!! 이 지긋지긋하게 화려한 옷들을 나보고 입으라는 거야!?

나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그녀가 꺼낸 옷들을 바라보았다. 

...몰락 가문이라더니 어디서 옷은 잘도 구해다 놔가지고선....;;;; 

이게 어딜봐서 몰락가문의 옷들이라는 거야!?

"도련님 이건 어때요?"

"멋진데.."

"아니에요, 이건 좀 유행이 지난 스타일이에요. 어디보자 이게 좋겠다! 이것 좀 입어보세요."

"....응..."

"어머... 이제보니 그옷도 별로네...... 그럼 이옷은 어떨까요?"

"..좋아...."

이러기를 대략 30분...... 그나마 내가 불평이라도 한다면 꼼꼼한 그녀의 성미에 역시 다른 옷들을 

골라야 한다고 날뛸까봐 그냥 이를 악물고 묵묵히 그녀가 내어주는 옷들을 한번씩 걸쳐보았다.

내 눈엔 다 그게 그거구만 도대체 여기서 뭘 고를게 있다고 하는 것인가?

"아휴 유이님, 마음엔 안들지만 이옷이 가장 나은 것 같네요. 

워낙에 이런 옷들을 잘 입으려고 하시지 않으셔서 평소 신경도 못 썼었는데......"

로이떼가 한숨을 쉬며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지만..

맙소사! 현재 내 주변에는 그 화려함 만으로도 입이 떡떡 벌어질 옷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내 평생에 가도 못입을 옷들이;;;; 이렇게 널려있는데;; 로이떼는 유행이 지났느니 전혀 화려하지 

않다느니라는 말투로 툴툴거리며 그것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내밀은 옷은 곤색의 옷에 금빛으로 자수가 놓아져 있고 자수정이 멋지게 깎여 소매 부분에

단추로 달려있고 그외의 보석들이 화려하게 박혀있는 옷이었다.

블라우스는 흰색의 실크로 하늘하늘하니 늘어져 있었고 가운데에는 프릴도 달려있다;;; 

전체적으로 꽤나 화려한 옷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너무 부담스럽다구...!!!!!

"로.....이떼......"

나는 신음하듯 그 이름을 내뱉었다. 

"그냥 차라리 이옷을 입고 가는 건 어떨까?"

내가 집어 올린 옷은 그나마 수수해 보이는 푸른빛깔의 바탕에 약간의 프릴이 달린 옷이었다.

"어디보자.........맙소사! 유이님!!"

곧바로 내게서 옷을 받아들고 살펴보던 로이떼가 안색이 굳어서는 비명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왜...왜......? 로이떼...?"

아아아..... 로이떼 진정 무서운 여자! 전에 함께 살던 고다할망구 보다도 더 무서운 로이떼!

"이런 칙칙해 보이는 옷을 입고 어디를 가신다구요? 말도 안돼요! 이건 유행이 지나도 한참은

더 지난 옷이라구요! 요샌 평민들도 이런 옷은 잘 안입어요!"

그런 옷을 잘 안입는게 아니라;; 입을 기회가 없는거야;;; 로이떼;;;;;

"무엇보다 유이님께는 좀 더 밝고 산뜻한 느낌의 옷이 필요하다구요!"

"그냥..... 이거 입고 가면 안될까?"

"뭐라구요오!!?"

로이떼의 인상이 구겨지면서 갑작스레 엄청난 공포가 들이닥쳤다.

"아.....아니....내가 생각해도 역시 네가 골라준 옷이 가장 좋을 것같아...."

어흑흑흑.........내가 주인인데 어째서 로이떼의 말에 반박을 못하겠는 걸까;;;

어떤 의미로 보자면 '그들'보다 더 두려운 존재가 바로 로이떼일지도........

그냥 눈 딱 감고 오늘만 입고 가자. 

어차피 이것은 나의 성공적인 거래이행를 위해서라도 무척........무척...이나 중요한 거니까!!

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져나오는 이 한숨이란......!!!!!!!.......

파티가 열리는 곳은 최고의 엘리트들만을 육성시킨다는 학원답게 

무척이나 넓고 웅장하고 화려하고 기타 등등의 수식어를 다 갖다 받쳐도 모자를 만큼 거대한 홀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사실.....이런 곳은 난생 처음이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떨렸다. 

내곁에 있던 로이떼도 나와 마찬가지 였는데 휘둥그레진 눈으로 이곳저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홀 안으로 들어섰다.  

웅성웅성.... 

아름다운 음악소리와 함께 눈이 돌아가시게 푸짐히 차려진 연회장 음식과 분주히 돌아다니는 시종들.........

여기저기에 갖가지 화려한 드레스와 장신구들로 치장한 여자들과 남자들......... 

모든게 내가 지내왔던 곳과는 확연히 틀린 곳이었다. 

"....멋져요. 유이님!! 파티장이 이런 곳이었다니!"

나도 로이떼의 작은 속삭임에 어느정도 동의를 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아는 녀석들이 하나도 없는데 어쩌지?

"꺄아아! 에스더제국의 황녀님 이신가봐요! 저 영롱하게 반짝이는 루비같은 눈동자를 보면 틀림없어요!

나베가 말해줘서 들어보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보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세상에....머릿결도 너무 좋아보여요. 저렇게 아름다운 검은머리와 붉은 눈동자라니..!"

뒤에서 작게 조잘되는 로이떼의 호들갑에 머리가 조금 아팠다. 

저까짓 검은머리랑 붉은 눈동자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확실히 무척 미인인건 틀림없지만.......아니아니....헤에.....보면 볼수록 예쁘게 생겼네?

주변에는 여러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들의 화려한 몸치장에 기가죽어 현재 구석진 곳에서 그저 구경이나 하고 있을 따름이지만...

그러나 나는 그보다도 그들의 옷에 달려있는 화려하게 빛나는 장신구들이나 옷에 달린 보석을 바라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내가 괜히 소매치기요, 미래의 대도둑이겠는가? 

저들이 가진 장신구나 보석을 슬쩍 하는 것은 식은죽 먹는 것 보다 더 쉽다.

태어나서부터 배워온 기술의 대다수가 다~아 이런 때 쓰이라고 준비된 비기들이니까 말이지.

아니.. 비기라고 할것 까지도 없이 시장바닥의 좀도둑들이라면 대충은 펼칠 수 있는 묘기이다.

다만 그들은 이런 끝내주는 비즈니스 장소에 들어올 신분이나 재간이 없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을뿐...

사실 일류도둑은 시장 바닥 곳곳에 널리 퍼져있는 그들일지도 모른다. 

여기있는 여인내들이나 남자들의 대부분이 아무런 생각 없이 호호 웃으며 이 시간을 즐길 뿐일지 모르겠지만 

시장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턴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고 자신이 가진 물건들을 꼭꼭 확인하고 

하나라도 더 챙기기 위해 악착같이 경계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턴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대단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아마 이곳에 오면 아마 더 이상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한개만 팔아도 평생을 먹고살지도 모르는 보석들이 무방비하게 널려있는 곳이니까...

명칭은 대충 보석밭 정도로 해두지.........  

로이떼야 정신없이 구경하며 감탄사나 내지르고 있었지만...

"...꺄아악!!"

그때였다. 

잠시간 비즈니스 구상으로 한눈을 판 사이 로이떼의 비명이 들려온 것이었다.

놀라서 쳐다본 곳에는 전에 봤던 그다지 반갑지 않은 무리들이 서있었다.

"...로이떼!"

"유...유이님...!"

로이떼는 현재 바닥에 쓰러진채 놀란 얼굴로 내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뭐야 이거? 멍청하게 생긴 계집년이 주제파악도 못하고 얼이 빠져서 여기저기 둘러본다 싶었더니만

알고 봤더니 역시나 멍청한 유이놈의 하녀였나보지?"

그들의 비웃음에 로이떼는 울상이 되어 나를 바라봤다. 

"하인은 주인을 따라 간다더니 둘다 아주 볼썽사납군! 이거..!!"

"저 멍청한 녀석의 시녀이니 어련하겠어?" 

"킥킥킥...킥!!!"

로이떼의 얼굴이 빨갛게 붉어지면서 그녀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로이떼.. 일어나도 좋아..."

내가 쓰러진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려고 하는 찰나에 패거리 중 한명이 나서더니 내가 잡은

로이떼의 손을 탁하니 쳐냈다.

"꺄악!"

"무슨 짓입니까!?"

순간적으로 화가나서 그들에게 소리치자 패거리의 우두머리인 노이드가 입가에 기분나쁜 웃음을 달고 말했다.

"너의 하녀가 우리가 지나가는데 몸을 부딪혔다! 감히 하녀 주제에 우리에게 몸을 부딪혔단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냥 넘어가줄 것 같으냐?"

내가 기가막힌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로이떼를 바라보자 로이떼는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아...아니에요...유이님. 제가 서있는데 저분들께서 저의 어깨를 부딪치셔서..."

대충 상황은 짐작이 갔다.

아마도 그들은 귀족특유의 오만함으로 자신들이 지나가는데 방해가 되는 그녀를 밀쳐냈을 것이고

그 반동으로 로이떼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졌을 것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노이드를 향해 말했다.

"크게 다치신 곳은 없는 것 같으니 이번 한번만 그냥 넘어가 주시죠. 

제 하녀는 나중에 제가 알아서 잘 타이르겠습니다."

이런 녀석들에게도 꼬박꼬박 경어를 써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 열받긴 했지만 않그러면 제라토나 휴젠에게

나중에가서 엄청나게 쿠사리를 들을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에 짜증을 눌러참고 말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내가 더욱 만만하게 보인 것인지 녀석들은 좀처럼 물러날 생각을 않고 

이죽거리는 웃음으로 나를 향해 말했다. 

"필요없어!! 네 하녀를 당장 우리에게 넘기도록 해라. 우리가 직접 이년의 죄를 다스릴테니까!"

"유...유이님..!"

겁먹은 듯한 로이떼의 간절한 음성이 들려왔다.

.....빠드득.....!!! 잘못은 로이떼가 아니라 너희들에게 있겠지!! 

괜히 죄도없는 로이떼에게 오히려 자신들의 잘못을 뒤집어 씌우려는 녀석들의 행동이 너무나 뻔뻔해서 치가 떨렸다.

빌어먹을 놈들!! 너희들이 가진게 있다해서 힘없는 사람을 마음껏 괴롭혀도 좋다는거야?

....그렇지! 귀족이란 하나같이!!

내가 그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무말 없이 경멸하는 눈초리로 그들을 노려보자 녀석들도 자신들을

바라보는 눈초리에 경멸이 섞였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낸건지 화를내며 날뛰기 시작했다.

"뭐야 이자식!! 지금 우리말이 우습게 들려!? 네까짓게 뭔데 그런 식으로 쳐다보고 난리야!"

"네 하녀가 지금 우리들에게 부딪혔다고!!!!"

"도이바!! 생각할것도 없어! 저 약골 자식에게 아무래도 매운맛을 보여줘야겠어!!"

그들과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쓰러진 로이떼를 일으켜 세우며 그녀의 손목을 잡고 걸었다.

"가자! 로이떼."

이미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관람하고 있었다.

그래...말그대로 관람이었다.

어느 누구하나 나서서 해결하려는 듯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 역시 이녀석들과 매한가지다. 

그들의 눈에는 내모습이 그저 몰락해가는 가문의 유약한 귀족나부랭이 정도로 보일 것이었다. 

그러므로 손을 내밀어 줄 필요 또한 느끼지 못하는 거겠지. 

지독히도 이기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자들이 바로 귀족이기도 하니까....

생각해보면 뒷골목생활과 그다지 다를 것도 없었다. 

인간의 본질이란 어찌되었든 모두 매한가지니...

"이 자식!! 거기 안서!?"

"저 겁쟁이 자식!! 우리가 무서워서 그냥 도망치다니!!"

"흥!! 약골녀석!! 평생 그렇게 도망이나 다녀라!!"

.....우뚝....!!!

.....약골녀석....겁쟁이 자식.... 모두 그냥 흘러버리면 그만일 말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멈춰선 이유는......

평생 이렇게 도망이나 다니라고? 평.생?

....웃기지마!!! 나는 도망가는게 아니라 단지 너희들과 상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야!!

"....유이님 어서 가요..!"

옆에서 로이떼가 불안한 눈초리로 나에게 작게 속삭였지만 한번 멈춘 발걸음은 도무지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안하는 듯 싶었다. 

"이 멍청이..."

"그만두세요. 여러분.. 이곳은 모두가 즐기기 위한 파티장입니다. 그런 무례한 욕설은 자제해 주세요."

순간적으로 녀석들에게 주먹이 튀어 나가려는 순간에 

맑고 고운 목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욕을 퍼붓던 녀석들이 움찔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아..아나이스 황녀저하. 저희가 무례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마구 설쳐대던 패거리들이 당황한 낯빚으로 설설기자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 여자는 아까 봤던 그 에스더제국의 황녀로군...

나 역시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대는 처음 보는 얼굴인데...이름이 무엇이죠?" 

.......처음보는 얼굴이라...

뭐 그렇겠지. 나도 당신을 처음보는 거니까 말이야. 

"저는 세이리어 듀 유이라고 합니다. 사정상 휴학을 하다가 이번에 이곳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그런가요? 어쩐지 얼굴이 많이 낯설다 싶었어요."

그녀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친절히 말하자 녀석들의 표정이 벌레를 씹은듯 구겨졌다.

"그런데 이분들과는 무슨 볼일이시죠?"

아나이스황녀가 그 아름다운 얼굴로 미간을 약간 찌뿌리며 묻자 녀석들은 당황한 눈초리로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두서없이 지껄이기 시작했다.

"아...아니 저희들은 그게.....저놈의 하녀가....눈에 거슬려서..아니 그러니까 저자의 하녀가

저희의 어깨를 밀쳐서 혼줄을 내주려고 했는데 저자식..아니, 저자가 반대하고 나서서.."

"그만...! 잘 알겠습니다. 이분의 하녀가 그대들에게 실례를 했단 말씀이시군요."

"아 예! 그렇습니다. 역시 영특하십니다..!"

녀석들의 어수선한 말을 아나이스황녀가 딱 잘라 정리해서 말하자 그제야 놈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잘보이기 위해 아부성 짙은 말도 함께 내뱉었다.

그녀가 나와 그들을 보며 어쩔까 고민하는 눈치를 보이자 나는 얼른 나섰다.

"죄송합니다만........저의 하녀가 잠시 저분들께 부딪히긴 했으나...그건 고의가 아니었을겁니다.

게다가 말을 들어보니 가만히 서있는데 밀친 쪽은 저분들이라고 하더군요... 이것은 아무래도

제 하녀의 실수라기 보다는 저분들의 부주의함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뭐...뭐라고!? 그래서 지금 우리가 잘못했다는거냐!?"

"아나이스 황녀저하!! 더 이상 들을 것도 없습니다!! 저 녀석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맞습니다!! 저놈은 정말 멍청하고 힘없기로 이 학원안에서 소문이 난.."

"그만들 하세요!!!!!"

그러나 녀석들은 아나이스황녀의 엄숙한 경고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듣자하니 당신들께서도 실수를 하신 것 같군요. 이번일은 그냥 없는 일로 하고 넘어가도록 해요.

괜찮겠죠? 노이드?"

그녀가 중재하고 나서면서 노이드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음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젠장...유이 자식! 다음번에 만나면 가만두지 않을거야! 힘도 없는 약골녀석 주제에!!"

"저 녀석...! 한동안 우리를 못봤다고 지금 막 의기양양 기어오르는 것 같은데 언제한번 혼쭐을!!"

녀석들은 몰려 나가며 저마다 한마디씩 협박성이 짙은 말들을 지껄이며 사라졌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그들을 바라봤다.

"저...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나이스황녀저하.."

내가 다시금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자 그녀의 백옥같은 피부에 슬쩍 홍조가 피어오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별로 한일도 없는데요........"

오호라아... 이 여자가 지금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건가?

물론 내가 무척 잘생기긴 했지만...이대로 가면 조금 위험하겠군;;;

무엇보다 황녀라니;;;;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저....네. 그러도록 하세요..."

그녀는 약간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그런 그녀에게 싱긋 미소를 짓고는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후우..........정말 미인이긴 하지만...;;; 어디 내 주제에 넘볼걸 넘봐야지;;; 쳇;;

내가 도둑만 아니었어도 낼름 그녀의 호의를 받아건데;;; 으아;; 아깝다.

로이떼는 재빨리 내 등뒤로 달라 붙으면서 작게 속삭였다.

"우와...에스더제국의 황녀님이랑 유이님이 직접 대화도 나누게 될줄이야!! 

그런데 왜 그자리에 안계시고 이리로 나오신 거에요?"

로이떼 역시 마찬가지로 무척 아쉽다는 듯이 작게 속삭였지만 나는 복잡한 기분을 털어버리기 위해

밤바람이 꽤나 상쾌할 듯한 테라스를 향해 걸어갔다.

"...유이님! 아까워요.."

.....피식...!! 

로이떼...아까울 것도 없어. 

어차피 나는 2년후에 이곳을 떠나갈 사람이니까........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는 법이지;;;

"하긴 뭐... 엄연히 보면 에스더제국의 아나이스황녀님도 유이님의 라이벌 되시는거죠!"

.....으잉? 얘가 잘나가다가 갑자기 왠 헛소리지? 내 라이벌이 되다니;; 그건 또 무슨 뜻일까?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한 눈빛으로 그녀를 망연히 쳐다보자 로이떼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내가 궁금해 했던 점을 주절주절 잘도 늘어놓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에스더의 2황녀님 부마자리 보다야 카이다의 황태자비 자리가 훨씬 더 

탐나는 자리가 아니겠어요? 유이님도 그렇게 생각하신거죠? 그러니까 에스더의 2황녀님 

앞에서도 그렇게 찬바람 쌩쌩 날리시며 이곳으로 오신거 아니냐구요?"

...내 참..... 난 또 무슨 소리를 하나 싶더니만....

"이봐...로이떼. 한가지 네가 크게 착각하는 사실이 있는데 말야..."

"...제가 뭘요?"

이거 참........곤란한데. 

이렇게 꿈과 낭만으로 얼룩진 소녀의 마음에 재를 뿌리자니;;; 조금 내키진 않지만;;

"시작하기도 전에 도다국 먼저 들이키지 말라는 말이 있지.

네 생각도 다 좋고 일리가 있긴 한데말야... 황태자저하나 황녀저하께서 언제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신 적이 있었냐?"

로이떼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럼 내가 언제 황태자저하랑 만나는 거 본적 있냐?"

"...아니요.."

로이떼도 나의 말에 대답을 하다가 뭔가를 깨닫았는지 표정이 점차 울상이 되어간다.

마지막으로 하나더..!!

"그럼 너랑 나 둘중에 황태자저하께서 어떻게 생겨먹은 면상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있냐?"

".............."

꿈과 실재는 공존할 수 없다는 슬픈현실이지........쯧...쯧......!!

나는 충격으로 얼굴이 하얗게 굳어버린 로이떼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로이떼... 너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어디 꼭 너 하나뿐이겠냐?

하지만 뭐... 그런 작은(?)소망 하나 정도는 품고 살아가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해. 

그런 재미가 없으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겠어? 안그래? 살다보면 말야... 마른 하늘에서

걸레조각이 떨어진다던지 괜히 가만히 서있다가 재수없는 귀족 나부랭이랑 맞부딪혀서

피곤해진다던지 또는 별 이상한 녀석이 다가와서 사람을 밟고 지나가려는 둥의 정말 재수털리는 일들이.."

"유...유이님!!"

"기다려봐. 로이떼. 나 아직 말 다 안끝났어. 어쨌든 그런 일들이 발생을 하지만 말야... 그래도 

인생을 즐겁게 살려면...응? 로이떼...너 표정이 왜 그래? 어디 아프냐?"

"그....그게 아니고...뒤...뒤좀....."

"...뒤에 왜...?........히...히익!!!!"

로이떼의 말에 뒤를 돌아보던 나는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며 움찔 하고는 뒤로 물러섰다.

"음? 재밌는데? 계속 말해보지 그래? 나는 신경쓰지 말고..."

빙글빙글 미소를 지으며 능글맞게 말을 하고 있는 이작자는 어제 길을 잃은 나를 도와준...

아니, 어쩌다가 도와주게 된 그 녀석이었다.

세크레틴이었지? 아마..

세크레틴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나의 굳어진 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여기에 이러고 서계셨습니까?"

나는 말끝이 경직되어 나오는 것을 느끼고는 속으로 침착하자고 몇번이고 되새기고 또 

되새겼지만 도무지 침착할 수가 없다;;;; 지금 여기에 서있는 이 자식이

그런 쪽팔리는 말들을 이자식이 들었을거라고 생각하니 또 품위니 뭐니가 우루루루 무너지는 듯한

생각이 들면서 무서운 제라토 양반이 죽이러 오겠다고 소리치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글쎄...네가 도다국 마시지 말라는 소리부터 들었다고 하면 되려나?"

......히익...!!

순간 로이떼와 나의 표정이 하얗게 질리면서 머리가 지끈지끈해 오는 것을 느꼈다.

이자식!!! 그런 말을 몰래 엿듣다니!! 

아니;;; 뒤에 사람이 다가 온 줄도 모르고 계속 지껄여 댄 이 빌어먹을 주둥이를 탓해야 하나;;

그나저나 내가 기척도 못느낄 정도라니;;;;

그간의 실력은 다 어다 내팽기쳐 두고 이런 것 하나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단 말이지?;;

젠장....요새 생활이 너무 편해져서 그런지 많이 풀어진 것 같군.

내일부터 다시 수련에 들어가는 것이...아...! 그나저나 이제 어찌한다.....;;;

"이쪽은 네 시녀인가? 귀엽게 생겼군..."

세크레틴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칭찬하자 로이떼의 얼굴이 방금과는 다른 의미로 붉게 달아올랐다.

...로..로이떼!! 그런 아부성 짙은 말 한마디에 넘어가서 얼굴을 붉히지 말란 말이다!!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 줄이나 알고서 그러는거야!?

그러나 차마 당사자 앞에서 입밖으로 꺼낼수도 없고 내 얼굴은 한없이 우울하게 굳어져 갔다.

녀석은 꽤나 깔끔하고 멋진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검은색 제복 위에 금실로 독수리 모양의 수를 놓고 어깨 위에는 가지런히 잘 정리된

수술들이 올려져 있었다. 

재질도 고풍스럽고 우아해 보이는 것으로 꽤나 비싸겠군......호오...저 단추는? 

하나만 떼어가도 1~2년은 충분히 놀고 먹을 수 있겠는걸?

이렇게 되면 제라토가 건네주기로 한 금화 100개 보다....차라리 여기있는 녀석들의 옷에 달린 보석을

스리슬쩍 하는것이 좀더 현명한...아니....아니지! 이게 아니잖아;;;

소매치기 또는 도둑으로써 직업의식이 투철한 나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본성(?)이 눈을 뜨려는 걸

힘겹게 눌러 참고 삐질삐질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그나저나 저 녀석은 내가 자기를 빤히 쳐다볼 동안 뭐하고 있던 거지?

신경쓰지 않는다는 건가?

"자꾸 그렇게 쳐다보면 곤란할텐데? 아무리 내가 잘생겼다지만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나도 조금은 곤란하다고. 물론 네가 원한다면 지금 당장 함께 방으로 달려가 줄 수도 있지만.."

왜 저소리가 안 나오나 했지...;;

그나저나 네녀석이 잘생기긴 했지만 이 엘리엇님의 끝내주는 외모에 비해선 

너는 아무래도 아니라고. 쯧쯧쯧...!!!

.....잠깐...! 방금 저 녀석이 그것들 말고도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로이떼를 흘끔 곁눈질하니 그녀가 민망한 듯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이런..정말 원하는거야? 그럼 지금 당장 방으로 가지..."

".....네..?.."

"음? 네가 나를 그렇게 불타는 시선으로 쳐다보는데 그런 의미 아니었어?"

....그런 의미? 어떤 의미?

그러다가 순진하디 순진했던 나의 머릿속으로 한가지 추악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으니....

.......화끈...!!!!

...이......이자식!!!!!!!!!!

"그....그런!!!"

세크레틴은 뒤늦게 그 의미를 깨닫고 발끈하는 나를 보더니 재밌다는 듯한 시선으로 피식하니 웃었다.

테라스에는 사람이 얼마 있지 않았다.

아니... 적어도 우리 주변에 사람들이 다가서지 않았다고 하는게 옳으려나?

뭐....이 학원에서 '유이'는 그다지 좋게 소문나지 않은 인물일테니 어울리고 싶지 않은걸지도...

어찌됬든 이 자식이랑 빨리 헤어지는게 현재로써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군..

"......죄송하지만 저는 피곤하니 먼저 들어 가겠습니다.......지난번엔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럼 이만.."

막 뒤돌아서는 내 등뒤로 세크레틴의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 들려왔다.

"아나이스황녀에게 했던것 만큼이나 냉정한 태도로군. 세이리어 듀 유이" 

....멈칫..!!!

"....그게 무슨...?..."

아마도 내 목소리가 현재 무척 떨리고 있지 않을까 싶다.

저 녀석 빙글빙글 웃으면서 심중을 알 수 없는 말들을 툭툭 내뱉고 있다.

나는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로이떼에게 먼저 가보라고 말해준 뒤 그를 향해 다시 돌아섰다.

로이떼가 종종 걸음으로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난 후에야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말도 엿들으신 겁니까?"

젠장...!! 저 자식! 그말까지 들었을 줄이야..!

그러나 세크레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엿들었다니... 그건 좀 실례 아닌가? 이래뵈도 나는 남의 말을 함부로 엿듣는 짓 따윈 하지 않아."

".....아...그렇군요. 그래서 그렇게 당당하게 뒤에 다가와서 저희들의 대화를 들으신 겁니까?"

나의 빈정거리는 말에 세크레틴의 안색이 슬쩍 굳어졌다가 다시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 잠시간 묘한빛이 번뜩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건 오해야. 내가 있던 자리에 너희들이 가까이 왔기 때문에 나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그리고 엄연히 말하자면 엿들은 건 아니지. 네 목청은 굳이 그 뒤로 가까이 다가서지 않아도 다 들릴만큼

꽤나 맑은 소리로 크게 울리더군. 난 단지 그 소리를 좀 더 잘 듣기위해 다가섰던 것 뿐이고.." 

......빌어먹을 자식! 맑은 소리가 어쩌고 저째?

이 자식아!! 이래뵈도 도둑인생 10년이야! 

내 말소리가 크다는 녀석은 이제까지 너밖에 없었다고! 네 자식의 귀가 비정상적으로 좋지가 않음에야

나의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렸겠냐!?

그러나 여전히 뭐라고 반박도 못하는 채 얼굴만 일그러 뜨리는 나를 보더니 그가 손을 들어 올렸다.

길고 곧게 잘뻗은 손이 내 이마로 다가오더니 내 미간을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무...무슨?.."

"아아...예쁜 얼굴을 가지고 그렇게 인상을 쓰면 곤란하다고. 좀 웃어 보는건 어때?"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나의 얼굴을 들여다 보며 말했다.

"........하!?.."

하도 어이가 없어서 절로 입이 헤 벌어지며 기막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래...적어도 아까 전의 인상쓰던 표정보다는 낫잖아?"

웃게 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건가?

그런데 어쩌지요? 

나는 당신의 그 잘생긴 면상에 나의 주먹을 매다꽂아주고 싶은 욕망이 지금 온몸을 휘감아 오는뎁쇼..?

"황송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군요. 할말은 다 하신겁니까?"

"아니."

......빠드득!!! 이 자식이 지금 나랑 무슨 원수라도 졌나!?

왜 조용히 알아서 찌그려지려는 사람을 잡아두고 이러고 있는건데!? 

"또 무슨 할말이...........우.....우읍!?"

순간 내 18년 인생에 있어서 믿을 수 없는 최대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이....빌어먹을 자식이 지금 나에게 무슨 짓을!?

현재 놀라서 동그랗게 커진 내 눈동자에는 분명 세크레틴 녀석의 웃음기가 담긴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그리고 현재..........입술에 맞부딪혀 온 이것은..!!

파악!!!!

"당신...이게 지금 무슨 짓이야!?"

재빨리 녀석을 밀쳐내고 뒤로 물러선 나는 녀석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다행히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녀석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세크레틴은 전혀 미안한 기색도 없이 나를 보며 작게 웃었다.

"....쿡....쿡쿡..!"

뭐야! 이자식!! 왜 갑자기 웃고 지랄이야? 이런 빌어먹을!!! 

그러나 한참을 웃던 그는 일순간 웃음을 멈추고 전과는 달리 냉막한 무표정을 지어 보였다. 

"......!!!??.."

정신나가 보일 정도로 헤프게 웃음을 짓고 있는 녀석이 갑작스레 무표정으로 변하니 그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싸늘해 보였다. 

...잘못은 자신이 해놓고 왜 갑자기 저런 표정을 지어보이는 거냐!?

나도 모르게 두려움이 드는 걸 느끼고 한걸음 더 뒤로 물러섰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이번 파티는 나름대로 즐거웠다."

다행이랄까? 

눈앞의 녀석은 자신이 할말만 하고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경직이 된 나를 남겨 두고

무표정한 얼굴로 어디론가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표정이 없는 녀석의 얼굴은 마치 싸늘한 밀랍인형과도 같았다...

조금? 아니..많이.......놀랐다. 

녀석이 그런 표정을 짓는다는 것과 그 표정이 왠지 심장을 옥죄는 듯한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것 모두...

........왜....갑자기 변한거지?

먼저 입술을 부딪혀 놓고는 자신 혼자 화를내고..... 

젠장 알게 뭐야;; 저런 이상한 녀석 따위!!

아....그러고 보니 아나이스황녀건은 어떻게 안거냐고 물어보지도 못했잖아!!! 이런;;; 바보같은;;;

그러나 엘리엇은 그런 자신을 놀란 눈초리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없었다.

".....어떻게....세크레틴님께서...!!..........저런 사람에게!?"

그리고 그 놀란 눈빛은 점차 질투라는 이름의 싸늘한 시선으로 변하고 있었다........

꽉 쥔 그녀의 두 주먹에 흰 뼈마디가 돌출되어 나와보였다. 

"......가만두지 않겠어! 감히....너 따위가!..."

...세이리어 듀 유이!! 너의 주제를 알게 해주지..........!!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설치고 다닌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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