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알게 된 사실
이제 어느 정도 학원의 생활에 익숙해져 갈 무렵이었다.
전처럼 길을 잃지도 않을 뿐더러 어디에 뭐가 붙어있는지 정도는 알게 된 이 시점에서
나는 길을 잃는 것 따위가 아닌 다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래....길을 잃는 것 따윈 이것에 댈바도 못되지!! 젠장!!!!
"유이님. 이번 마지막 주 파티엔 또 참석하지 않으실 작정이에요? 이건 정말 말도 안돼요!
유이님께서 파티에 빠지다니! 다른 분들은 얼마나 멋지게 꾸미시고 나오시는데!
옆방에 있는 나베한테 들어보니 엄청 화려하고 아름답다고 했단 말이에요! 그것도 매번 오는게 아니라
이렇게 주말마다 그동안의 피곤과 수고를 조금 달래보라는 뜻에서 열리는 건데..!"
나베는 아마 로이떼가 이곳으로 오고 나서 새로 사귀게 된 시녀친구인 듯 싶었다.
로이떼는 무척 아쉽다는 표정으로 계속 내가 파티에 나갈 것을 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춤실력이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었고 그나마 할배한테 수련의 일종으로
어릴때부터 배운 키키댄스가 전부였다.
물론 이곳으로 오기 전에 그 앙칼진 댄스선생에게 엄청나게 쿠사리를 먹어가며 배운
춤들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런 휘황찬란한 파티에 내새울 만한 실력이 못된단 말이다;;;
그러나 로이떼의 생각은 다른 듯 했다.
로이떼는 우선적으로 나의 전속시녀이기 때문에 내가 파티에 나가지 않는 이상 그녀도
그 파티장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구경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아....여자들의 욕망이란!
하긴...뭐.........로이떼도 주인을 잘못 만나서 고생하긴 고생하는 구나...;;;;
적어도 다른 녀석의 시녀가 되었으면 이런 파티엔 빠짐없이 일일이 참석하게 될테고 이것저것
구경하는 것은 물론이요, 운이 좋으면 어느 골빈녀석을 꿰어차게 될지 모르니...인생대박의 기회가
언제 굴러 떨어질지 모르는 이 시점에서 로이떼는 나름대로 몹시 애가 탈것이었다.
내가 저 심정 잘 알지!
"제발요! 유이님!! 우리도 한번 파티를 구경하러 가보자구요!! 혹시 알아요?
황태자님의 눈에 띄게 되어 반려로 채택되실지!!"
....오잉? 그건 또 무슨 말이래?
".....로이떼 방금 한 말 다시해봐. 뭐라구?"
로이떼는 다 알면서 일부로 시침떼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초리로 흐응 거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에이 참! 유이님도 다 아시면서 뭘 그래요? 세이리어가의 자제가 황태자 저하의 반려후보자중
한명으로 오른건 왠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단 말이에요!! 설마 당사자가 모르셨다고 하시는 건 아니겠죠?
그러니까 빨리 지금부터 멋지게 꾸미자구요! 유이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구요!!"
....이봐...이봐.....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뭐...뭐시깽이? 황태자 녀석의 반......려후보자 중 하나라고?
이.......이런 망할!!! 제라토 그자식!! 그런말은 안해줬잖아!!!!!!!!
도대체 내가 시녀인 로이떼보다 모르는게 더 많아서야 어쩌라는 거야!!!?
하지만.........왠만하면 남자황비는 잘 안뽑아 왔던걸로 기억하는데?
"이봐 로이떼. 내가 반려후보자중 하나로 지정된건 맞지만 꼭 내가 채택될거라는 보장은 없잖아?
남자황비를 뽑는 경우는 꽤 드물다고. 게다가 나말고 다른 후보자들도 많은데 어째서 내가
황태자녀석의 눈에 띄어야 한다는거지? 그런거 별로 관심없으니까 신경끄자구."
나의 심드렁한 말에 로이떼의 눈꼬리가 쫘악 찢어지면서 흡사 마녀를 보는 듯 험상궂은 표정이
그녀의 얼굴 위로 떠올랐다.
"유이님!!! 말도 안돼요!! 카이다제국의 황태자비 자리는 누구나 다 넘보는 자리란 말이에요!!
다른 분들은 하나라도 더 황태자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매일매일 꽃물로 세수를 하고
값비싼 향료를 몸에 바른 뒤 멋진 옷을 입고 그분의 앞에 서신단 말이에요!
제가 유이님께 그런걸 하라고 하기엔 유이님께서 무척 귀찮아 하실걸 잘 알고있기 때문에
유이님께서도 그렇게 하라고 권하진 않겠어요! 하지만 최소한 파티때라도 나가셔서 얼굴을
익혀 두셔야지요! 그자리에는 꼭 황태자저하만 나오시는게 아니란 말이에요! 다른 나라에서 온
황자님들 또는 황녀님들도 오신다구요! 하다못해 대공작가의 귀족들이라도 만나 보셔야죠!"
로이떼의 엄청나게 빠른 말이 다다다하고 내 귀를 쏘아대자 나는 슬그머니 기가 죽어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무...물론 잘알고 있지. 하지만 꼭 내가 파티에 가야 할 이유가..."
"아이참!! 유이님!!! 이런 말씀 정말 드리긴 싫지만 세이리어가는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무척 휘청휘청
하고 있단 말이에요! 다른 곳에 가서 세이리어가에서 왔다고 하면 이름만 남은 몰락가문이라고..아...아니, 이건...!!"
흥분한 로이떼가 마구 말을 늘어놓다가 순간적으로 흠칫해서는 자신의 입을 두손으로 막고 있었다.
"...요...용서해주세요!! 저는 별뜻이 있었던게 아니라........그...그저 밖에서 들은 말을...자..잘못했습니다."
로이떼다운 솔직한 말이었다.
시녀가 자신의 주인에게 이렇게 까지 말한다면 이것이 무척이나 큰 죄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나는 딱히 그녀를 탓할 마음이 없었다.
로이떼는 그저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털어놓은 것 뿐이었다.
너무 솔직해서 문제지;;;;
앞에 드러나는 것 보다도 오히려 이렇게 하인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입소문이 훨씬 예리하고 정확한 법이었다.
나 역시 그런 생활을 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건 잘 알수 있었다.
그나저나 직접 들으니 조금 씁쓸한걸?
로이떼는 파랗게 안색이 질려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래도 이런말을 나에게 아무런 사심없이 할 정도라면 그만큼 내가 편하다는 뜻이니까...좋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그만큼 쉬워 보였다는 사실에 울상을 지어야 하나;;;; 허...이것참;;;
.....그 녀석들이 첫날에 그렇게 무시하던 것도 그런 이유였었나?
몰락 가문이라..........그때 보았던 세이리어 가는 무척 화려해 보였는데........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곳에서 나오는 학원 음식보다 조촐했던 식탁과 조금은 어두운 듯한 실내...
하인 몇이 돌아다니긴 했지만 여기로 와보니 그 숫자가 집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 정도는 깨닫을 수 있었다.
그때는 내가 워낙 평민생활에 익숙했기 때문에 그런 것 조차 알지 못했지만...
마지막으로 유이 녀석의 자책어린 눈길.........과 슬픈듯한 표정...
뭐야.....겨우 그런 것 때문에 그랬던 거였어?
....이봐 유이......내가 너에게 할말은 못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겨우 이런걸로 기가 죽으면 어쩌자는 거야?
물론 세이리어가문이 로이떼의 말처럼 몰락해가는 걸 보는게 그리 좋은 기분이 아니라는건 잘 알겠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너는 카이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평민들 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서 그들보다 훨배
좋은 옷을 입고 평생가도 입에 못넣을 고기를 먹고 살았잖아?
게다가 다른 녀석들 보다는 못하지만 하인들도 거느리고 살아왔고...
같은 얼굴을 지닌 엘리엇이라는 녀석보다 훨씬 멋진 인생을 살아온 녀석이 그렇게 기가 죽은 표정을 지어보이면
어쩌자는 거야? 아무래도 이번 거래가 끝나게 되면 유이에게 뭐라고 한마디 정도는 꼭 해줘야겠다.
세상에서 둘도 없는 멋진 얼굴을 가지고 그렇게 침울한 표정이라니...!!
같은 얼굴로써 무안하다 이자식아;;
너는 앞으로도 계속 귀족일테고 나는 2년후 다시 뒷골목을 진전하며 다닐지 모르지만...멋지잖아?
그래도 이런 추억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게!
이 목걸이를 돌려주게 되는 날 꼭 말해줘야지.
.......결코 너는 못난게 아니라고..!
나는 목에 걸린 목걸이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빙긋 웃었다.
"...로이떼.."
"...마... 말씀하세요. 유이님.....무슨 처벌이든지 달게 받을게요. 제가 주제넘었어요. 죄송해요!!"
로이떼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의 부름에 대답했다.
...히죽..!!!
"빨리 갈 준비를 하자. 네 말대로 시간이 얼마 안남았으니까 서둘러야겠군."
"...네...네?"
로이떼는 한동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네 말대로 언제 한번 파티에 나가볼 생각은 있었으니까...우리도 한번 준비해서 가보자고.
오늘 당장은 가려고 생각지도 못했지만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어?"
"유....이님........."
"시간이 없다며? 빨리 서두르지 않고 뭐하고 있어?"
"용서해 주시는 거죠? 그렇죠!?"
나는 히죽 웃으며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로이떼의 하얗게 질린 안색이 밝아지면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으...으엑? 로이떼!?"
"감사해요!! 감사해요!! 전..유이님이 저를 무척 싫어하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흐윽.....감사해요! 앞으론 절대 그런말 하지 않을게요! 좀 더 입조심도 하고 유이님만 따를거에요!"
두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은채 품에 안겨 조잘조잘 말하는 로이떼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어 주고는 미소지었다.
"괜찮아 로이떼. 음... 네가 한말이 솔직히 조금 충격적이긴 했지만 네 잘못이 아닌걸?
뭐랄까.......나는 오히려 로이떼가 무척 솔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은데?"
나의 말에 로이떼는 두 뺨을 발갛게 물들이고 쑥쓰러운 듯이 고개를 숙였다.
이녀석;; 평소에는 무지 억세게 나오다가도 이럴때면 얼굴을 붉히는게 역시 너도 여자였구나;;;
"아 참!! 내 정신 좀 봐! 정말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구요!! 유이님께서 파티에 나가기로 하신 이상!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이님을 멋지게 꾸며드릴게요! 모두들 유이님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내뱉을거에요!
두고보시라구요!!"
예전과 마찬가지로 다시 활발해진 로이떼를 보며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찝찝한 것이;;;
.....나....괜한 말 한게 아닌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