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원수업이 시작되다..
"유이님!!! 유이님!! 얼른 일어나세요!!!"
...크으........로이떼..!! 제발 잠좀 자자...잠좀!! 너는 잠도 없니?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오갈데 없이 침대위에서 마구잡이로 흔들리던 나는 결국엔 항복하고야 말았다.
"아...알았어! 일어날게;; 일어나면 되는거지? 일어나면..!"
아직도 눈앞이 희뿌연 했지만 로이떼의 억센손에 이끌려 내몸은 어느새 세수를 마치고 있었다.
"유이님. 학생복은 침대위에 올려놨으니 얼른 입으세요. 옷을 다 입으신 다음에는 2층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식사하고 오시구요. 오늘부터 새학기 수업이 시작된다구요! 이렇게 꾸물거릴 시간이 없단 말이에요."
로이떼의 말에 침대위로 시선을 돌리자 학생복이 눈에 띄었다.
검은 제복위의 카라부분에 은룡이 새겨져 있었고 가슴 부분과 옷단 밑에 은색으로 작게 띠무늬가 수놓아져 있는
전체적으로 무척이나 깔끔해 보이는 옷이었다.
어제 그녀석들도 이옷을 입고 돌아다니고 있었지........한 녀석만 빼놓고 모두 돼지목의 진주같아 보였지만.
"아이참!! 유이님! 뭐하시는 거에요? 빨리 식당으로 내려가셔야 한다니까요?
수업시간까지 이제 얼마 안남았단 말이에요!!"
로이떼의 재촉에 나는 재빨리 옷을 꿰어입고 방문을 나섰다.
"잠깐! 로이떼 너는 식사안해?"
나의 물음에 로이떼는 얼핏 당황해 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곧 대답했다.
"저는 이미 하인전용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왔어요. 유이님이나 얼른 가셔서 드시고 오세요!!"
.....그런가? 하긴...여긴 로이떼 말고도 손시중 드는 하녀나 시종들을 한명씩 대동하고 들어오는 곳이니...
"그럼 갔다올께!!"
"빨리 드시고 오세요! 오늘의 수업 일정표는 제가 받아 두었으니까요!!"
.....수업 일정표까지 벌써 다 챙겨두었다니....대단하군;; 로이떼;;;;;;
나는 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식당이라......
2층의 어디에 있다고 한것 같기는 한데...이놈의 건물이 좀 넓어야 말이지;;;
나는 재빨리 다리를 움직이면서도 주위를 살폈다.
도대체가...식당이 어디야!?
탁탁탁...탁!!!!
"이봐! 거기!"
한참을 달리던 나는 뒷쪽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왠 붉은머리의 사내녀석이 나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제길;; 이번엔 또 무슨 일이려나?
"네 주머니에서 이게 떨어졌어. 중요한 것 같은데 조심해서 가지고 다니도록해."
녀석이 내민 것은 유이가 나에게 맡겼던 목걸이였다.
녀석은 아마도 나에게 이것을 돌려주기 위해서 잠시 불렀던게 틀림없었다.
"아....이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잃어버릴 뻔했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 내리면서
이것을 주워서 건네준 상대방이 무척이나 고마워졌다.
내가 공손이 고개를 숙여서 그에게 몇번이고 인사를 하자 녀석은 조금 당황한 눈빛으로 말했다.
"...별거 아닌데 뭐...그렇다고 그렇게 대단히 고마워 할것까지는 없고...
그나저나 너...처음보는 얼굴인데?"
"아...몸이 아파서 잠시 휴학하다가 이번에 다시 편입한 유이라고 합니다."
녀석은 나의 대답에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몸이 약한 것 치고는 너무 쌩쌩한것 같은데...?"
그의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움찔하고는 어색하게 웃어보일 수밖에 없었다.
젠장;;; 그런 사정도 있었구나;;;
이제부터는 있지도 않은 병때문에 빌빌거리는 녀석 흉내도 내줘야 하는건가;;;
"그건 그렇고........뭔가 급한일이 있는 것 처럼 보였는데 안 가볼거냐?"
나는 그제야 내가 식당을 찾아다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아....맞다!!
그러고보니...이녀석에게 식당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물어보면 되겠구나!!!
"저기...제가 너무 오랜만에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기 때문에 식당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가르쳐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어느새 내 입에서는 휴젠이 밤낮으로 가르쳤던 품위있는 고상한 말투가 술술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아...이래서 세뇌교육은 무섭다는 거다;;;;;;
"식당? 아.........네가 뛰어다녔던 이유가 그거였어? 마침 나도 식당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같이가자.
너도 이곳이 너무 오랜만이라서 익숙치도 않을테니까.."
순간 나의 얼굴은 구세주라도 만난 사람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그런 나를 잠시간 놀란듯한 표정으로 쳐다본 그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내이름은 시오릭 리 칼리안이야. 그런데 네이름은 뭐냐?"
그의 소개에 나는 조금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답했다.
"저는 엘리...아! 아니......세이리어 듀 유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순간적으로 본명이 튀어 나오려다가 흠칫하고는 재빨리 유이녀석의 풀네임을 말했다.
제길;;; 좀 더 조심해야겠군;
"...세이리어 듀 유이? 음...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긴 한데....."
"...그...그렇습니까?"
나도 모르는 유이의 모습을 녀석이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연 행동에 좀 더 신경이 쓰이는 나였다.
에구에구.........그러고 보니 유이가 학원생활을 어떻게 했는지는 전혀 듣지도 못했잖아;;;
이럴줄 알았으면 그날밤에 유이가 찾아왔을 때 조금이라도 물어봐 두는 것이었는데...
아.....유이는 진짜 귀족이니까 나같은 평민이 그런말을 해달라고 부탁하는건 무리이려나?
"조금만 더 걸으면 식당이 보일거야."
"아....감사합니다."
칼리안의 설명에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데 그가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옷을 보니 나이도 동갑인 것 같은데 그냥 말을 놓는건 어때?
아무래도 그런 경어는 익숙치가 않아서... 사실 조금은 많이 부담스럽다고."
"그....그렇습니까?"
"말 놓으라니까."
나는 칼리안의 제안에 잠시간 당황해서 버벅거렸다.
다른 녀석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콧대를 세우려 들기 마련인데 이녀석은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나저나 귀족에게 반말이라니....우와;; 이거 엄청 가슴떨리는데?
"예...그러면...아..아니, 응. 그럼 앞으로 말 놓을게. 잘...부탁해."
칼리안은 더듬거리며 말하는 나를 보며 씨익 웃더니 앞장서서 계속 걸어갔다.
"칼리안이라고 편하게 불러도 좋아. 유이."
"..그...그래! 칼리안!!"
나는 그야말로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칼리안은 그런 나를 당혹스럽게 바라보더니 덩달아 씨익 웃어주었다.
"귀여운 녀석같으니..."
.....으음...? 방금 칼리안이 뭐라고 한 것 같은데?
....자...잘못들은거겠지? 하하...하......!!
얼마간 칼리안의 뒤를 따르다가 칼리안이 향긋한 음식냄새가 풍기는 문앞에서 멈춰서자
나는 그제야 식당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가 식당이야. 부페식으로 되어있으니 먹고 싶은것을 골라 집어먹는 것 정도는 기억하고 있지?"
"무....물론이지. 하하..하..."
칼리안이 식당문을 열고 들어서자 매우 많은 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들어가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와......사람 엄청 많네.
그나저나 엄청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한가득이잖아?
역시......돈을 쳐바른 학원답게 식사도 끝내주는군...!!
나는 재빨리 칼리안의 뒤를 따라 식기를 집어들고 나이프와 포크를 챙겼다.
......이것도 맛있겠고, 저것도 맛있겠고...호오...이건 뭐지? 처음보는 음식인데?
"이봐...유이.......너 혼자서 그걸 다 먹을수는 있겠어?"
칼리안의 부름에 고개를 돌려 녀석을 쳐다보니 녀석이 조금은 질린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으음....다 먹을수 있겠느냐니? 당연히 다 먹을 수 있지!
"...당연하지. 먹지도 못할 것을 왜 올려놓겠어...?"
나의 대답에 칼리안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나와 식기위의 음식들을 번갈아 보았다.
"....생각외로 대식가구나. 유이는..."
나는 그의 말에 조금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고 보니 귀족들은 얼마 먹지 않고 남기는게 예의라는 괴상한 풍습이 있었지;;;;;
젠장...알게뭐냐.
어차피 여기엔 제라토나 휴젠도 없으니 음식은 조금 많이 먹어도 상관은 없겠지.
"내가 조금....다른 사람들 보다 많이 먹는 편이긴 해....아하....하하..."
칼리안은 이것에 대해 더 이상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테이블로 가서 식기를 내려놓고
자리를 잡았다.
나도 그런 칼리안의 뒤를 따라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이었다.
"아니...이게 누구야? 우리 유이군 아니신가?"
"약골에다가 겁쟁이 유이!!"
"킬킬...킬킬...킬...!!"
뒤에서 기분나쁜 음성들이 들리면서 점차로 얼굴이 굳어져 가는게 느껴졌다.
이녀석들은 어제 만났던 바로 그 녀석들 이로군...
내가 자리에 앉으려다 말고 인상을 찌뿌리는 걸 본 칼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희들은 노이다패거리? 그런데 이곳에는 무슨 볼일이지?"
"...카...칼리안? 네가 왜 이녀석이랑...!!"
노이다패거리라고 불리던 녀석들 중 대표인 듯한 녀석이 놀란표정으로 칼리안을 보고 외쳤다.
그러자 칼리안은 나와 마찬가지로 대답은 하지 않고 녀석들을 향해 미간을 찌뿌려 보였다.
놈들은 잠시간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더니 짧게 욕설을 지껄이고 나를 노려보았다.
"...흥!! 칼리안 녀석을 어떻게 꼬신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이대로 끝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해 유이!! 칼리안 네녀석도 저 녀석과는 되도록 어울리지 않는편이 좋을거다! 저 놈은
무척이나 멍청하고 겁만 많은 바보같은 녀석이니까!! 쳇!!!"
"그래!!! 노이다의 말이 맞아!! 저 녀석은 멍청한 바보놈이라구!!"
옆에서 패거리들이 아마도 대장으로 보이는 노이다라는 녀석을 거들어 뭐라고 한마디씩 떠들어댔다.
..........멍청하고 겁만 많은 바보같은 녀석.......이라...
.....적어도 쓰레기보다는 낫지 않을까?
젠장.........아는 사람이라고는 방금 사귄 칼리안 녀석밖에 없었는데 아마 이녀석들 때문에 떨어져 나가겠군.
뭐...어쩔 수 없지.
칼리안 녀석이 떨어져 나가면 전처럼 혼자 다니는 수밖에..!
괜찮은 녀석인것 같아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데...........많이 아쉽구만.....쩝...
"그게 내가 유이와 함께 있는 것과 무슨 상관이라는 거지? 식사하는데 방해되니 빨리 사라지기나해.
여기는 너희만 사용하는 곳이 아니야. 시끄럽게 꽥꽥 거리지 말고 어서 가라구."
그러나 뜻밖에도 칼리안은 녀석들을 향해 기분나쁘다는 투로 말했다.
....나와 함께 있는게 싫지 않은건가?
"너....너 칼리안!! 왜 유이녀석을 감싸주는거지? 저따위 녀석이 어디가 좋다고!
너도 우리에게 혼쭐이 나고 싶은거냐!? 저 녀석과 함께 다니는 녀석들은 우리가 가만두지 않을거다!!"
노이다가 살만 뒤룩뒤룩 쪄서는 불룩히 튀어나온 배를 출렁거리며 소리쳤다.
이미 주변에 있던 학생들은 식사를 하다말고 이쪽을 흘끗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칼리안은 노이다의 협박이 담긴 윽박에도 불구하고 눈하나 까딱하지 않은채 태연히 말했다.
"맘대로 해보시지. 노이다... 하지만 그전에 너희 아버지인 그란도백작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란도백작이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노이다 녀석은 자신의 아버지 이름이
칼리안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마자 안색히 하얗게 질려서는 욕설을 낮게 지껄이고 등을 돌렸다.
"젠장!! 가자!! 여기 있어봤자 유이놈의 더러운 냄새만 몸에 밸뿐이야!!!"
일부러 나에게 들으라는 듯 크게 소리치고 녀석들은 우르르르 몰려나갔다.
"오히려 그 정반대겠지........!!"
칼리안이 그런 그들을 향해 낮게 비웃어 주었다.
"미....미안...괜히 나때문에 너까지 끌어들여서..."
나는 정말로 미안한 마음에 칼리안에게 사과를 했지만 칼리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네탓이 아니야. 나는 처음부터 저 녀석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저녀석들이 굳이 너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어도 언젠가는 부딪혔을 녀석들이야.
네가 신경쓸 필요는 없어. 어차피 후광이 무서워서 제대로 기도 못펴는 한심한 녀석들일 뿐이니까."
.........후광? 그거 혹시 뒷배경을 말하는 건가?
.....어디를 가나 저런 녀석들은 존재하기 마련이지....그건 소수특권층들의 자제들이 모이는 이곳 역시 마찬가지군.
나는 어느새 입맛이 뚝 떨어져 그릇에 담아온 음식의 반도 먹지 못한채 남겨버렸다.
으윽...!! 아까워!!
"그러게 내가 뭐랬어. 음식은 적당히 퍼둬야지...어쩐지 너무 많이 담는 것 같더라니..."
옆에서 칼리안의 핀잔이 들렸다.
나는 뭐라고 말도 못한채 칼리안이 못보게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녀석들을 한번 본 것 만으로도 이렇게 입맛이 떨어지다니...
젠장! 그 자식들을 그냥 콱!!;;;
".....유이?"
"으...으응...!! 아..! 이제 곧 수업이 시작할 것 같은데.........서둘러야겠어."
칼리안은 복도에 걸린 시차막대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편입했다고 했지? 혹시 몇반에 편입되었는지 말해줄래?"
"....아...나는 4반에..."
나의 대답에 칼리안녀석의 갈색 눈동자가 반짝 빛나더니 곧 녀석의 입가에 기분좋은 웃음이 걸렸다.
"나도 너와 같은 4반인데...!! 우연치고는 꽤나 기분이 좋은데?"
...우....우엇! 정말?
칼리안녀석도 나와 같은 4반이라고? 앞으로 아는사람 걱정은 할 필요없겠군.
나는 히죽 웃었다.
"그럼 나 먼저 가볼께. 유이! 오늘 첫시간은 역사니까 잊지말고 잘 챙겨오도록 해. 이따가 보자구."
칼리안이 먼저 손을 흔들며 달려갔다.
나 역시 칼리안에게 손흔들기가 무섭게 나의 방을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로이떼가 기다리고 있을텐데;;;;
역시나랄까....
방안에는 로이떼가 무섭게 도끼눈을 치켜뜨고 나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이님! 도대체 왜 이렇게 늦으신 거에요? 벌써 시간이.."
"아 잠깐!! 로이떼!! 네말대로 지금 시간이 무지 촉박하니까 나먼저 가볼께!"
로이떼도 상황의 급박함을 깨닫았는지 별말 안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럼 나 갔다올께!!"
내가 방문을 닫고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방안에서 로이떼의 푸념이 들려왔다.
"유이님도 참! 수업 첫날이신데 저렇게 덜렁거리시면 어떡하신담...!!"
급하게 복도를 달리던 나는 한가지 중요한 점을 깨닫았다.
.....그러고 보니 수업받는 교실이 어디에 있더라?
탁탁탁탁!!!
한참을 돌아다닌 것 같은데 도무지 교실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알수가 없다;;
때마침 모퉁이를 돌아서 나오는 순간 한 녀석이 눈에 띄었다.
"이보세요!! 잠시만요!!"
나는 재빨리 그녀석을 불러세웠다.
녀석은 큰 키에 검은 머리칼과 붉은 눈을 지닌 무척 아름답게 생긴 사내녀석이었다.
옷을 보니 나와 마찬가지로 학생인 듯 싶었다.
"방금 나를 부른거냐?"
"예..에..!! 저.......제가 수업을 받으러 가야하는데 도무지 교실을 못찾겠어서 그러는데..."
"...그런데?"
"..네...네!?"
사정을 설명하다가 녀석의 반문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입이 벌어졌다.
녀석은 재밌다는 듯이 한쪽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내가 다음에 할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그러니까.....교실 찾는것좀 도와주시면 안될까요..?"
"물론..."
휴.....그래도 생각만큼 이상한 녀석은 아니었...
"싫다."
.....어?
뭐....뭐야 이자식!! 사람 놀리는거야? 물론 싫다라니;;;;;
이 싸가지 없는 녀석!!
"...그...그런...법이 어딨!!"
"내가 어째서 네가 교실을 못찾는데 도와줘야 한다는거지? 너야말로 이상한거 아닌가?
누구든지 네가 곤란하면 도와줘야 한다는건가? 그렇다면 네 생각이 무척이나 잘못됬다고
말하고 싶군. 나역시 보다시피 무척 바쁜 몸이라서 그럴 시간따윈 없다."
.....녀석은 웃음기를 띈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청산유수처럼 줄줄줄 말을 늘어놓았다.
물론 저녀석의 말이 맞다.
나의 곤란이 저녀석의 곤란이 될 수는 없는 일이고, 내가 손을 내민다고 해서 누구나 다 도와줘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나 또한 내가 곤란하다고 해서 누구라도 달려와서 도와주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
다만........!! 도와줄 수 있다면 도움을 주길 바랬던 것일뿐!!!
그런데 이자식은 나를 꼬나 보며 말한다.
자신은 무척 바쁜 몸이라서 그럴 시간따윈 없노라고..
하지만 아무리 녀석을 살펴봐도 그건 아닌것 같았다.
녀석은 현재 바지주머니에 손을 집어놓고 건들건들한 모습으로 이 상황을 즐기는 듯 미소까지 머금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바쁘다면 그냥 지나가면 될것을 굳이 서서 할말은 다 하게 만들어놓고 이제와서 바쁘다고
내빼는 심보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아무리 봐도 이자식이 나를 놀리려는 것 밖에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쓰벌...!! 하여간에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요;; 젠장!!
이놈이나 저놈이나...!!
"그렇습니까? 바쁘신 몸 잡아둬서 정.말.로. 죄송하군요. 얼마나 바쁘시면 가시던 길까지 멈춰서서
제 설명도 구구절절 다 들어주시고 나서 교실로 가는길도 가르쳐 주시지 못하실 만큼 바쁘신 건지......
이거 괜히 바.쁘.신.분 잡아두고 실례를 했군요. 그럼 이만 안녕히 가세요."
나는 상대방을 향해 맘껏 빈정댄후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알아서 찾아가리라 마음먹고 몸을 돌렸다.
뒤에서 쿡쿡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어깨를 붙드는 손길만 없었더라면..!
"...이거......이거...성질이 여간내기가 아니군. 그저 얌전한 범생인줄만 알았더니..."
....그래서 불만이냐? 물론 원래의 유이라면 얌전한 범생정도는 되어줬겟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몸은 뒷골목 인생만 18년인 평민이라서 말이야!
상대가 먼저 걸어온 도전은 결코 마다할 이유가 없지!! 그게 아무리 말싸움이라도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아...말싸움은 아니었나? 뭐... 일이야 어찌되었든...
"아직 하실 말씀이 남으셨습니까?"
나의 불퉁한 말에 그는 쿡쿡거리던 웃음을 멈추고 멋쩍게 흠흠거리며 헛기침을 했다.
"아...생각해보니 그렇게 급한일도 아닌것 같아서 말야. 교실을 찾는다고?"
"...예..4반을 찾고 있습니다만..."
자식이 이제와서 말바꾸기는!! 그래도 어쨌든 도와줄 마음이 들은 것 같으니...믿어볼까?
"음.. 이번에 새로 온건가? 이곳엔?"
"예..몸이 좀 약해서 잠시 휴학을 하다가 이번에 다시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어째서 내가 이녀석의 물음에 시간도 없어 죽겠는데 고분고분 대답을 해줘야 하는건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자동적으로 녀석의 물음에 대답하고 있었다.
"...쿡..! 어쩐지...교실을 코앞에 두고도 못찾아 가는게 이상하다고 생각되긴 했지."
..으응? 뭐...라고? 방금 이녀석이 뭐라고 한거지!?;;;
녀석이 그 긴 다리를 옮겨 복도의 한모퉁이를 돌자마자 거짓말 같이 1반부터 7반까지 붙은
교실의 팻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이럴수가!! 아까전엔 아무리 찾아도 찾을수가 없던 것들이;;; 이렇게 단 두발자국만에;;;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것들을 바라봤다.
"...뭘 그렇게 멍하게 서있는거야? 지금쯤이면 롬바선생이 수업을 시작했을텐데?"
....롬바선생?
녀석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자 나도 그를 따라 걸었다.
그나저나 저 녀석도 왠지 나랑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 같은데...아닌가?
탁..!
그러나 내가 본것이 착각은 아니었는지 녀석 또한 4반의 문앞에 정확히 멈춰섰다.
드르륵..!!
"....헉!!"
순간적으로 내입에서는 경악비슷한 신음성이 튀어나왔고 녀석은 나를 향해 한쪽눈으로 슬쩍
윙크를 한뒤 교실안으로 들어섰다.
.....저 녀석도 나와 같은 반의 학생이었단 말이야!?
머리를 둔기로 한대 때린듯한 충격이 강타하면서 절로 입이 벌어지는 나였다.
그러나 곧 나는 허겁지겁 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시차막대가 수업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해주고 있었으므로..!
"세크레틴님!! 왜 늦으셨는지 납득이 가게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교실안으로 들어서자 방금 봤던 녀석과 대치하고 있는 사납게 생긴 남자선생 한명이
눈을 부리부리하게 치켜뜨고 그에게 말했다.
그 형형한 기세에 녀석의 뒤를 따라 교실 안으로 들어온 나도 덩달아 흠칫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크레틴이라고 불린 녀석은 태연자약한 얼굴로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그건........"
그러더니 이쪽을 한번 쳐다보고는 슬쩍 미소를 짓는게 아닌가?
....으으....불안하다;;; 뭔가가 굉장히;;; 찝찝한 기분이 드는걸?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길을 잃은 작은 어린양 한마리를 발견했거든.
그 어린양을 친절히 이곳으로 인도해 주느라 잠시 시간이 좀 걸렸지."
.....어버...버...!!!
저 썪을놈이 어린양이 뭐가 어쩌고 저째!?
이 사기꾼같으니!!! 바쁘다고 단박에 거절할때는 언제고!?
언제 네녀석이 나를 친절히 인도해 주었다는거냐!!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술술 늘어놓는 녀석의 뻔뻔함에 나의 안색이 붉어져 가던 도중
나와 마찬가지로 못마땅한 듯 인상을 찌뿌리고 있는 남자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그쪽은..?"
세크레틴을 못마땅하게 노려보긴 했지만 딱히 할말을 못찾았음인지 내쪽으로 화살이 돌려진 것 같았다.
"아..이번에 편입하게 된 세이리어 듀 유이라고 합니다.
...방금 저분께서 말씀하신대로 장소가 조금 낯설어서 길을 잃었다가 도중에 도움을 받고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뿌득..!!"
차분히 고개를 숙이며 이를 슬쩍 갈았다.
마음에 안들긴 했지만 어쩔수 없이 빙글빙글 웃고 있는 저 얄미운 낯짝의 녀석을 거들어주게 되었다.
일이야 어쨌건 도움을 받은건 사실이니까..
그게 단 몇발자국 이었다해도 말이지;;;;
휴젠의 교육은 실로 엄청난 것이라서 실은 무척이나 버벅거렸을 나의 말이 깔끔한 경어체로
줄줄줄 쏟아졌다. 끝의 이갈림은 거의 우발적인 것이었지만;;
"아..이번에 새로 편입하게 된 세이리어가의 자제가 자네였나?
길을 잃었었다고?.....음...이번엔 첫날이니 그냥 넘어가 주겠네.
하지만 다음부터는 절대 늦지말게. 세크레틴님도 다음부터는 좀 더 주의해 주십시오!"
"그러도록 하지."
남자선생은 못 석연찮다는 듯이 눈살을 찌뿌리긴 했지만 그 이상 별말은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자리에 앉긴 앉아야 할텐데..
그때 나를 향해 작게 손짓하는 붉은머리의 소년이 눈에 띄었다.
.....아 맞다! 칼리안!!
나는 녀석의 손짓에 따라 그녀석의 옆자리로 가 앉았다.
"어떻게 된 일이야? 세크레틴과 함께 오다니?"
"......별거없어. 길을 잃었는데 잠시 도움을 받은것 뿐이야.."
"..그래? 흐음..."
칼리안은 잠시 뭔가를 더 묻고 싶어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곧 입을 다물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