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로키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젠장!!! 음식이란 그냥 뱃속에 집어 쳐넣으면 다 똑같이 똥이 되어 나오는 건데
뭐가 이리 복잡한거야!!!?"
"그런 천박한 말투를 사용하시면 안됩니다. 그리고 나이프를 쥐는 손은 그쪽 손이 아닙니다."
엘리엇이 인상을 퍽퍽 구기며 맞은편에 앉은 예법선생의 날카로운 일침에 나이프를 집어 올리던
왼손을 움칫하고는 다시 오른손으로 바꿔들었다.
"이거나 저거나....찍어서 입에 집어넣으면 될것 가지고.......빌어먹을...!!!"
"그런 천박한 말투는..."
"아...알겠어!! 알겠으니 조용하라구! 도대체 그말만 몇번째야?"
휴젠이라고 불리는 자신의 예법선생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대답했다.
"오늘 하루동안 현재까지 모두 34번 말씀드렸습니다."
어이구!! 누가 그딴걸 말해달랬나;;;; 아니아니, 그걸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렇게
진지하게 대답하면 어쩌자는 거야;;;;
엘리엇은 나이프에 썰린 고기를 입에 퍽퍽 집어 넣으면서 불만스럽게 그것들을 씹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이런 호사스러운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기뻤었는데
차라리 딱딱한 호밀빵이라도 좋으니 맘놓고 식사를 하는게 훨씬 좋을 것 같았다.
"유이님, 음식은.."
"알았어!! 알았다구!! 소리내서 먹으면 안된다는거지? 잘 알겠으니까 그만 좀 해. 휴젠...
으으...지겹다구..!!"
휴젠이 마저 다 말하기도 전에 잽싸게 말을 가로챈 엘리엇은 입을 꾹 다물고 씹기 시작했다.
이제는 얼마나 잔소리를 많이 들었는지 제법 식사예절에 익숙해지는 듯한 엘리엇이었다.
젠장....유이인지 뭔지;; 다 집어치울까? 이렇게 귀찮고 어색한 짓을 자그마치 2년동안이나
해야한다는 거야!? 지금!!?
"음식은 다 드시지 마십시오. 지난번 처럼 배탈이 나시면 곤란합니다."
휴젠의 말에 엘리엇의 얼굴이 퍽퍽 구겨졌다.
지난번에는 뭣도 모르고 음식을 남기는게 아까워서 말그대로 뒷골목 거지근성으로 배가 부름에도
불구하고 입에다가 꾸역꾸역 다 집어넣다가 기어코 탈이 나고야 말아버렸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보통 귀족의 식사는 음식을 어느 정도 남기는 것을 예의로 여기기 때문에
보통은 1인분에 약 2~3인분 양의 음식이 담겨져 나오는 것이었다.
적당히 먹고 남겨도 넉넉할 만큼의 음식이 나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엘리엇은 그것들을
다 먹으려다가 탈이나고 만것이었지만....
제길!! 이거야말로 돈지랄이라고!! 돈지랄!!!
누구는 없어서 못먹는데 누구네들은 일부로 음식을 남겨? 허! 참!!! 기가막힌다;;
사치스러운 귀족들의 음식문화를 욕하면서도 결국 입밖으로는 꺼내지 못하는 엘리엇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자신도 현재는 그 돈지랄 음식문화에 동참하고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내려긋기와 찌르기를 연속적으로 500회 실시해 주십시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장검을 들고 앞으로 쭉쭉 내려긋기를 검술선생의 지시대로 하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아무래도 굳이 이렇게 일도류 검술을 배울 필요가 있을까?
사실 뒷골목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느정도 자신을 방어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나도
내 나름대로의 검술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
다만 그것이 이도류인데다가 도둑 특유의 조잡함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다름아닌
돌아가신 나의 할아버지가 직접 전수해 준 것이었다.
실제로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그 검술의 유용함은 나의 목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고 붙어있는 것을
통해 증명이 되었고, 일이야 어쨌건 어떤 상대를 만나도 지지 않을 정도는 된다고 생각되었다.
뒷골목의 제왕인 츄카토조차 나의 검술실력 만큼은 인정해 주었으니까.
사실 익숙치 못한 일도류를 가지고 이렇게 훈련하는 것은 꽤나 고역이다...;;;;
뭐.....어쨌든 공짜로 가르쳐 주는 거니까 군소리 없이 시키는 대로 따르고 있긴 하지만...
"갈수록 자세가 안정되고 계십니다. 내일부터는 직접적인 대련에 들어가셔도 괜찮겠군요."
구리빛의 울끈불끈한 근육을 지닌 검술선생의 말에 나는 기쁜게 아니라 한숨이 나왔다.
저 빌어먹을 체력을 감당해내야 하다니;;;
저자와 대련을 했다간 내 뼈가 무사하지 못할거야;;;
부들....부들...!!!
"허리는 똑바로 펴시고 시선은 앞으로!! 어깨는 당당하게!! 유이님!! 그런 구부정한 자세가
아니라 당당하게 펴시란 말입니다!!"
"그...그렇지만 머리 위에 있는 책들이...;;"
엘리엇은 현재 머리 위해 5권의 책을 이고 걷는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원래는 댄스를 배우기 위해 온거였지만 현재는 자세교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댄스교사에 의해 걷기 연습을 하고 있는 도중이었다.
덜렁...덜렁...
머리 위에 있는 책들이 상당히 위태로워 보인다.
턱..!!!
우르르르르!!! 푸더덕...!!
"유이님!!!!!"
책이 떨어지는 순간 댄스교사의 앙칼진 외침이 울려퍼지면서 엘리엇의 등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처음부터 다시!!!!"
....깨갱...!!!
눈물을 머금고 머리 위로 책들을 다시 올리는 엘리엇이었다...
엘리엇이 그 빌어먹을 품위라는 것을 익히기 위해 이것저것을 익히며 지낸지 어언 한달이
다 되어갔다.
이제는 음식을 먹을 때 소리를 내서 먹지도 않고 칼질도 우아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식한 근육맨 선생덕분에 검도 어느정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걸음걸이도 전과는 달리 무척이나 단정해지고 왠만한 춤들은 무리없이 추게 된 것같았다.
말투도 꽤나 고상해지고...어쨌든 엘리엇은 모든게 바뀌었다.
지저분한 뒷골목을 누비던 엘리엇에서 세이리어 듀 유이로!!
"때가 된 것 같다..."
괜시리 무게를 잡고 말하는 제라토를 나는 아니꼬운 눈길로 흘겨주려다가 얼른 눈을 내리깔고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너도 이제 어느정도 쓸만해진 것 같군."
나는 그의 말에 울컥하려다가 그냥 참기로 했다.
쳇!!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파로키학원으로는 이틀 후에 떠난다. 현재 유이님께서는 몸이 약해서 휴학하신걸로 되어있으니
별 무리는 없을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최대한으로 언행을 조심해야돼. 만일 유이님의 품위에
해라도 끼치는 행동을 했다가는!! 가만두지 않겠어...천한 도둑놈!"
쳇..!! 그 천한 도둑놈한테 거래를 하자고 먼저 제안한 사람이 누군데?
이제는 다 되었다는건가? 이렇게 성격을 드러내는 걸 보면...! 뭐...알바없지. 나도 돈만
받고 나면 이쪽과는 볼일이 없을테니까.
"알겠어요. 어쨌든 최대한 이쪽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죠. 뭐...피해갈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만.."
나의 빈정대는 말투에 제라토의 한쪽 눈썹이 사납게 올라갔지만 나는 눈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늘...네 머리를 염색시키겠다. 2년동안 물이 빠질것을 대비해서 따로 약상자도 챙겨놨다.
대략 3개월 마다 한번씩 다시 염색해 주어야 한다. 만일 제대로 못해서
.....들키는 날이 바로 네 제삿날이라는 것을 명심해두고 있는게 좋을거야."
....거참 이 인간 말 한번 살벌하게 하네;;;;;;
"잘.......알겠어요."
"그럼...가시죠. 세이리어 듀 유이님..!!"
......이제....시작인가?
세이리어 듀 유이의 대신으로 파로키 학원에서 2년을 지낸다!!
할 수 있어!! 엘리엇!!!
이제까지의 잡초같은 근성으로 잘 살아왔잖아? 지금에 와서 못할 것도 없지!!!
가서 녀석들의 보석도 싸그리 털어주겠다!!!
.....아...이건 아니었던가? 흠흠...뭐 어찌되었든...!
파로키 학원으로 떠나기 하루 전날이었다.
엘리엇은 자신의 붉게 변한 머리를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어딘지 어색하기도 했지만 염색을 하고나니 이제는 정말로 자신이 유이라도 된 것 같았다.
...달칵...!!
"...누구?.."
문을 열고 방안에 들어온 사람은 유이였다.
엘리엇은 휘둥그레 놀란 눈동자로 유이를 바라보았다.
유이 역시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엘리엇을 보고는 잠시간 시선을 떼지 못하고 바라봤다.
"....이밤중에 무슨 일이세요?..."
엘리엇이 먼저 운을 떼자 유이는 그제야 주춤거리며 엘리엇에게 다가왔다.
"그러니까 저기...엘리엇...에게 줄 것이 있어서 왔어요."
약간은 어눌하게 머뭇거리는 말투로 유이가 엘리엇의 눈치를 보며 말하자
엘리엇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에엣;;; 전 평민이에요. 굳이 존댓말 쓰실 필욘 없어요;; 그냥 하대하세요."
엘리엇이 당치도 않다는 듯이 두손을 휘휘젓자 유이는 그 모습에 작게 미소지었다.
"아니요...다행이에요. 엘리엇은 좋은 사람 같군요........역시 찾아오길 잘했어."
그러더니 유이는 엘리엇의 손을 잡아 끌고 그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손위에 놓여진 물건은 목걸이였다. 붉은자수정이 아름답게 세공되어 매달린...
".....이...건?..."
엘리엇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유이를 바라보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젠 엘리엇이 내가 될거잖아요. 그건 유이로써의 증표입니다.
2년간 그것을 당신에게 맡길게요. 나중에........다시 돌려주세요."
희끄무레한 미소를 짓고있는 유이에게 엘리엇은 다시 그것을 돌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유이의 단호한 눈빛이 그것을 거절하고 있었다.
"전 도둑이에요. 당신의 목걸이를 가지고 튈지도 모른다구요."
엘리엇의 당황한 음성에 유이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게 당신이라면 그것도 좋을 것 같군요.
내일이면 가는...거겠지요. 파로키학원으로........당신에게 큰 짐을 지우는 것 같아....
....정말 미안해요...엘리엇..........그곳에서 부디 저를 원망하지 말아주시길..."
엘리엇은 유이의 씁쓸한 표정에 의아해졌다.
어째서 내가 자신을 원망할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럼 잘자요....엘리엇.......그리고......정말 미안해요....."
.....사실 난 무척이나 겁쟁이랍니다. 엘리엇...!
당신처럼 강인하지 못한...나약하디 나약한.........바보같은 도망자일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