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황당무계 택택이와 눈까리.
예상했던 결과가 눈 앞에서 펼쳐졌다.
일방적인 구타에 당한 수현이는 끝까지 눈에 힘주고 있다고 화나서 몇대 더 맞고
정욱이의 즐거움을 위해 '눈까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군대의 특징은 일단 애칭(?)이 붙으면 다른 놈들보다 더욱 구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넷은 지금 연병장에서 뺑뺑이를 하고 있다.
수현이가 얻어 맞는 것을 말린다고 남은 신삥 둘이 태원이게 다 달라든 바람에 다
몇 대씩 얻어 맞고 물세례를 받은 후 연병장을 뺑뺑 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열심이 돌고 있는 놈들 중 택택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태택이는 운택이로...말을 더듬을 때마다 태택...이라고 해대서 정욱이의 또 다른 타깃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귀여운 애칭(?)을 첫날부터 받은 둘은 열심히 달린다.
그렇게 달리는 그들 중 멈춰선 택택이는 열심히 우리 쪽으로 오더니 '뭐야?'하는
표정이 되서 택택이를 처다보는 태원이에게 참으로 황당무계한 한마디를 꺼낸다.
"저...저기요! 병장님. 바..발에 물집 생겨서 양호실 가고 싶은데요"
우리는 어의를 잃었다.
확실히 처음에 새 군화를 받으면 발에 물집이 잡혀서 무척이나 쓰라리다.
하지만 그거 가지고 양호실 간다고 하면 군대를 어떻게 제대하겠는가?
그걸 당연히 알고 있는 우리는 입 다물고 훈련을 받았고,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인
분위기인데 이 놈은 마치 당연한 소리를 하듯이 말한다.
그런 그를 보고 나온 반응은 가히 폭팔적이었다.
"너 여기가 어딘 줄 알아?! 군대야...이 새끼 아직 군기다 덜 잡혔네...?"
"물집 생겨서 양호실에 갈 수 있으면 여기는 군이 아니지~ 다 아프면서
군화 길이 드는거야....가서 뛰어!!"
그들의 말에 나도 한마디 거들자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군화 길 들이고나면 아픔은 없어. 여기 있는 사람은 다 격은 거니까
너도 가서 뛰어라."
나의 말에 그는 고개를 숙이고 터덜터덜 돌아간다.
그런 택택이의 뒷 모습을 흐뭇하게 처다보고 있는데 동기들이 불만 어린
목소리로 원망어린 말을 내뱉는다.
"다 한번씩 겪기는...정작 지는 안 겪어 놓고."
"웃기셔. 나는 태원이가 니 군화에 양초 칠을 하는것을 본 사람이야!!"
"맞어. 진짜 뻔뻔해요. 형은."
....쓰읍...저것들이 싸그라니 나를 매도하네....부러우면 그냥 부럽다고 할 것이지.
사람을 매도하고 나서다니...몹쓸 놈들....
그렇게 군장하고 연병장을 빙글 빙글 돌던 놈들은 이 겨울에 땀을 찔찔 흘리녀
일열종대로 선다. 그런 그들을 보며 태원이가 천천히 말을 꺼낸다.
특히나 눈까리에게 짙은 경고를 보낸다.
"잘 봐. 앞으로 또 얘를 괴롭히다 걸리면 다 죽는다."
태원이의 사람 뿌듯하게 하는 말에 곰탱이 훈련하나는 내가 잘 생겼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눈까리가 당황한 눈을 하더니 정욱이 쪽을 보고
태원이에게 말한다.
"저는 그 병장님께는...저 쪽에 저 병장님이..."
눈까리의 말에 눈까리가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의 끝을 따라 시선을 옮긴 태원이의
시선에 어색하게 웃고 있는 정욱이가 있다. 태원이가 슬쩍 약이 오른 듯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정욱이를 보며 손가락을 까닥인다.
"에헤헤...형...그게 아니고."
"3초안에 튀어 와라. 하나...둘..."
"형!! 잘 못 했어요!! 용서해주세요!!"
부랴부랴 달려와서 태원이의 다리에 매달리는 정욱이의 모습에 모두의 표정이
미묘해진다. 태원이는 그런 정욱이를 팰 가치가 느껴지지 않는지 쥐고 있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 뿐 때리지는 않는다.
"너 다음에 또 그러면 죽는다."
"에헤헤...."
"그리고 너희들은 쟤 건드리다 걸리면 죽어."
"네! 알겠습니다."
그런 그들을 한번 훑어본 태원이는 나한테 추운데 빨리 들어가자고 재촉한다.
그렇게 '휘잉~'이라는 바람 소리가 어울리는 장소가 되어버린 연병장에 선 모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좌절하고 있다. 고통에 찬 표정을 한 정욱이와 함께...
한 달이 지나자 녀석들도 군에 익숙해졌다.
행군도 몇 바퀴 돌고, 사격도 몇 발하고 탄피를 줍는데 눈알을 붉히는 일이 생기고,
이제는 말을 시키면 여자친구와의 연예 이야기가 '3류 에로영화'로 변화되어 만들어지는
솜씨까지 보이는 정도가 되었을 때,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조교의 심술. 야산에서 하루 보내기!!
나야 매번 태원이와 짝이었기 때문에 편했다. 산에 올 때마다 찝적대는 것만 빼면.
이번에도 그 것은 시작되고, 택택이와 눈까리가 파트너가 되었다.
저것들 진짜 고생하겠네...딱하게 여기는 눈초리를 받는 눈까리의 심정이 표정에 들어난다.
반면 택택이는 꽤나 안심한 듯한 눈초리다. 아무튼 힘내보시게...
그들을 안타깝게 여기며 태원이와 언제나 가던 동굴로 갔다.
이 일이 있기 이틀 전에 삽으로 묻어 둔 걸 파서 꺼내서 깔고 불도 키고 비닐로 바람도 막고,
그 아늑한 공간에 들어가서 누워 있으니 태원이가 챙겨온 식량까지 꺼낸다.
가방에 이것저것 챙겨왔다..했더니 먹을것 투성이다. 역시..니 놈 뿐이야!!
같이 뭣 좀 먹고 불러온 배를 통통 치고 자리에 누웠다.
등따시고 배부르고....행복함을 만끽하고 있으려니 태원이의 손길이 느껴진다.
슬슬 발동할 때가 됬다고 했기에 나는 담담하게 내 위로 올라오는 태원이의 엉덩이를
애를 칭찬하 듯 톡톡 쳐줬다. 그런 나의 행동에 이맛살을 찌푸리면서도 싫지는 않은지
내 입술을 덥쳐온다. 그렇게 그의 입술과 나의 입술이 맞닿았을 때, '엄마야!!'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태원이를 확 밀었다.
방심하고 있던 태원이도 뒤로 밀려서 머리를 부딪히고, 난리가 났다.
나는 소리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불투명하지만 밖이 보이는 비닐을 확 하고 걷어냈고,
그곳에는 눈까리가 택택이의 입을 막고 서 있었다.
"아하하....저희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그냥 차라리 봤다고 해라.
결국 그들에게 담요를 하나 내밀고 앉혀 놓고 나도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옷을 풀어놨기에 잠그고 나가서 담요를 둘둘 말고 앉아 있으니 태원이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밖으로 나온다.
"뭐야?! 대체..."
"죄송합니다. 저는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는데..."
"의도가 없어도 결론적으로 방해가 됬으면 문제가 있는거야...그렇지?"
"죄송합니다!"
태원이가 투덜거리는 소리와 죄송하다는 눈까리....그리고 아직 제 정신을 수습 못했는지
택택이는 고개를 약간 수그리고 잘 안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뭐라고 웅얼거리고 있다.
뭔가 정신이 나갔다던가...하는 것은 아니겠지 하며 슬쩍 그 쪽을 보니 애가 확하고
고개를 든 녀석이 불타오르는 눈동자로 나를 보며 묻는다.
"왜 두분히 키...키스 하고 계셨습니까?!"
...그냥 못 봤다고 하는 쪽이 좋구나...;
너무나도 당당하고 단호한 말에 나는 움찔하고 뒤로 물러나야 했다.
쭈그려 앉아서 담요를 감고 있던 상황이라 그대로 뒤로 자빠질 뻔 한 것을 태원이가
손을 뻗어서 아슬아슬하게 잡아서 도로 앉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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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 좀 해라."
"응. 고마워."
그런 우리 둘은 부담스러울정도로 빛나는 눈으로 처다보는 택택이에게 나는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태원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