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딸기맛 아이스크림.
계속 인사을 쓰고 있는 태원이를 나무라자 태원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반박해온다.
꽤나 쌓인 모양이다.
"애를 맡는다고 했지. 유원지 같은 곳에 온다는 말은 없었잖아?!"
"그럼 물릴까?"
나의 짧은 한마디에 그는 또 다시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대답한다.
역시 90%의 성욕과 10%의 이성으로 살아가는 것 같은 모습이다.
아니...솔직히 하는 짓을 생각해보면 10%도 아깝다.
"....알았어. 유원지라 이거군...제기랄."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태건이의 손을 잡고 있는 나를 뒤로 하고 자유이용권 같은 것을
끊어 온 태원이의 머리를 부비부비해주었다. 그렇게 부비부비에 기분 좋아하는 태원이의
모습에 태건이가 어리광을 부리고 나는 태건이의 머리에도 부비부비해주었다.
"역시 불공평해. 쟤는 왜 어리광을 부리는 걸로만..."
"억울하면 애가 되던가."
"그럼 나를 애라고 생각해줘."
"진짜?"
"응."
"나는 애랑은 야한 짓 안하는데..."
"난 어른이야."
....역시 10%가 아깝다.
결국 다시 투덜거리며 태건이에게 '잘들어?! 동훈이는 내꺼야. 니께 아니라고'라는 경고를
하고 태건이의 손을 잡아 준다. 그렇게 가족처럼 안으로 들어간 우리가 처음으로 간 곳은
역시나 안전하게 탈 수 있는 것. 이라고 생각한 회전목마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회전목마에 도착한 우리의 반응은 열렬했다.
"이걸 타잔 말이야?! 애도 아니고...."
정작 애새끼인 태건이는 애냐고 화를 내면서 안타려고 고집을 부린다.
누구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거기다가 태원이는 한술 더 뜬다.
"기훈아 타봐. 문진장 귀엽겠다."
"....넌 좀 빠져라."
결국 회전목마 앞에서 10여분을 싸우다가 타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겨야 했다.
시작부터 참으로 않 좋은 조짐을 보인다. 그렇게 두번째로 도착한 곳은 범버카라는 곳.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길게 늘어진 줄에 눈 앞이 캄캄해진다.
"이걸 과연 오늘 안에 탈 수 있을까?"
"이래서 인간이 많은 곳은 싫어."
역시 태원이도 어른이었는지 기다릴 생각으로 막막함을 표현한다.
다른 것을 타고 싶어도 태건이의 신장때문에 딱히 탈 수 있는 것도 없다.
결국 끝에 남은 기다리는 좌석에 주저 앉았고, 자리가 없는 덕에 내 무릎에 태건이를 앉혔다.
그러자 태원이는 삐죽거리며 내 뒤에 서서 내 머리카락을 헝클어댄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20여분.
어쩐지 따끔따끔하게 느껴지는 시선에 주위를 둘러보니 모조릴 우리를 처다보고 있다.
별로 시끄럽게도 안 했고, 딱히 한 것도 없는데....시선을 모우고 있는 듯한 느낌...
이제는 자리가 생겼음에도 이제 무릎에 안 앉혀 줬다고 삐지기라도 했는지 아직도 내 뒤에 서있는
태원이 쪽으로 고개를 뒤로 젖혀 위를 보니 태원이는 만지던 머리를 자연스레 놓아주며 나를 처다본다.
"왜?"
시선이 모인 원인을....대충 알 것 같다.
성격이고 뭐고 다 빼고라도 얼굴이랑 몸매는 진짜 국보급이니까....시선을 모울만도 하지.
옆쪽에 줄을 서 있는 세명의 여성들은 이미 힐끗힐끗을 넘어서서 지긋이 바라본다.
저렇게 침을 질질 흘리면서 처다봐도 내건데 미안해서 어쩐다냐....괜한 우월감이 든다.
"태원아. 나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나의 말에 태원이는 '그래? 그럼 사올까'라고 묻는다. 그런 태원의 반응에 태건이가
고개를 회까닥 돌려서 말한다.
"삼촌!! 나는 초코맛."
"누가 너한테 사준다냐...?"
태원이의 핀잔에 태건이가 내 품에 파묻히며 징징거린다.
"형~! 삼촌이 치사하게 아이스크림도 안 사준데..."
징징거리는 태건이의 모습에 나는 태건이의 머리카락을 슥- 쓸어주고, 태원이에게
웃으며 주문을 만들어 주었다.
"초코맛 하나랑 딸기맛 하나."
".....제길! 알았어."
못마땅해하면서 '여기 꼼짝말고 있어'라고 신신당부를 받아내고는 터벅터벅 걸어가버린다.
그런 태원이의 뒤를 시선으로 쫓던 여자들이 슬금 내 쪽으로 다가온다.
한자리정도의 차이가 있었는데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고 그녀들이 나에게 묻는다.
"애인있으세요?"
"....네? 쟤요?"
"아뇨. 그 쪽이요. 저 분도 보기 드문 미남이시지만....아무래도... 아까부터 노려보는게 무서워서."
"하지만 아까 웃을 때는 진짜 멋있었어...그지?"
"응! 응! 남자 둘이 온 것 같은데 저희랑 같이 안 다니실래요?"
....와.... 헌팅이다.
유원지에서 애를 안고 있는 남자 둘에게 거는 헌텅이라니....대단들하시네...
나는 그런 그녀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해주었다.
"애인이 있어서요."
"엑?! 말도 안돼...저희가 마음에 안들어서 그러는 거예요?"
"아뇨. 진짜로 애인이 있어서요. 무진장 무서운 애인이라서 바람 피우면 어떻게 나올지
모르거든요....그러니까...포기해주세요."
나의 말에 그녀들은 안타까운지 뾰루퉁하는 표정을 짓는다. 역시 여자는 귀엽다.
군에서야 씨커먼 남자들하고만 부닥치다보니 몰랐지만...진짜 여자는 귀엽다.
그녀들은 내가 애인이 있다는 말에 '알았어요'라고 대답했음에도 계속 나의 옆에서 말을 걸어온다.
"애인이 있어도 좋은데 같이 안 다니실래요?!"
"맞아요! 맞아요! 남자 둘이서 유원지는 좀 그렇잖아요..."
"애도 있는데요."
"애랑 남자 둘로 정정할게요. 아무튼 우리랑 같이...꺄앗!"
그녀가 내 팔을 잡고 말하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손이 그녀를 떼어 놓는다.
커다랗고 골격이 굵으면서도 긴 손가락을 보니까 주인이 딱 떠오른다. 손의 모양을
보지 않아도 나에게서 얼른 그녀의 손을 떼어 놓은 것으로 보아 누구의 손인지는 충분히
추정할 수 있지만 말이다.
"뭐 하는거야?"
태원이의 말에 그녀들은 입을 다물고 우물쭈물거린다. 어째 무서운 모양이다.
예전부터 의문인데...곰탱이가 노려봐야 곰탱이지 뭐가 그렇게 무서운 것일까?
한참 쓸 때 없는 생각을 하는데 녀석이 투덜거리며 말을 건다.
"아무튼 조금만 한눈을 팔지도 못하겠다니까...태건이 너는 보고만 있냐?"
"응. 저 쪽에 머리 긴 누나는 가슴이 커서 마음에 들었거든."
"........아이스크림이나 먹어."
그는 결국 화난 표정으로 손가락을 이용해서 한손으로 잡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나와 태건이에게 내민다. 태건이에게는 초콜릿색을 그리고 내게는 핑크색의 아이스크림을
주는 태원이에게 아이스크림을 받아든 태건이는 냉큼 아이스크림에 집중한다.
"네건 안 사왔어?"
"아이스크림 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해."
"그래?"
싫어하는 사람에게 강요할 생각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꽤나 달아 보이는 아이스크림에
입을 가져다 댔다. 달면서도 딸기향이 나는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혀에 닿으며 기분 좋게
녹아간다. 그렇게 한입 또 한입을 먹었을 때 옆자리에서 태원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자들은 어느새 또 한자리정도 뒤로 물러났고, 자연스럽게 생긴 자리에 주저 앉은 것 같다.
"맛있어?"
"응. 꽤나."
나의 대답에 그는 내 아이스크림을 처다본다. 먹고 싶은 것일까? 해서 그의 입이 있는 곳으로
슥- 하고 내밀고 '먹을래?'하고 물었다. 나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스크림을 치우고
내 입술을 덥친 녀석은 놀래서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비집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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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 딸기맛도 나고."
.....그걸 지금 감상이라고 내어 놓은거냐?!
사람들이 다 처다보고 있는 상태에서 내 입에다가 입을 맞춰놓고
그것도 짧은 키스도 아닌 딥키스를 해 놓고 입맛을 다시며 하는 소리가....
달아?! 딸기맛이 난다고?! 이...이...웬수같은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