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대대장님의 호출.
고참들의 이상한 시선에 얼른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키려다 좌절했다.
그 순간 어제 밤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변태에 색골같은 곰새끼가 역시나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을 어쩔 수 없었는지 내무반에서
무려 4번이나 하고 나를 놓아 주었다. 정확히 말해서 내가 정신을 잃은 것이다.
덕분에 갑작이 일어나다가 허리가 끊어질 뻔 했다.
다시 조심스럽게 일어나려다가 잠시 생각해보니 어제 홀딱 벗은 채로 기절했는데...하는
생각에 슬쩍 이불을 들어서 내 상태를 확인 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그 곰탱이 짓인지 옷은 제대로 입혀져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 쉬고, 고참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힘에 겨운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아니, 정확히는 일으키려 했다.
갑작스레 뻗어 온 커다란 손이 내 몸을 확 하고 채가더니 두 팔 안에 나를 가두고
제 품 안에 나를 꼬옥 품어낸다. 살짝 고개를 들어서 상황을 파악해보니 고참들의
눈빛이 하나같이 미묘하고 나를 끌어 안고 있는 태원이 놈과 나를 번갈아 다니다가
내 눈과 눈이 마주치면 확 하고 시선을 피한다.
왜....저러지?!
일단 이 놈부터 떼 놓고 봐야겠다는 생각에 힘껏 녀석을 밀었다.
허리가 아파서 힘이 안들어가는 건지 이 놈은 잠을 자고 있는 중이면서도 꼼짝도 안한다.
구원 요청을 해 볼까 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헛기침만 할 뿐 도와줄 기미는 안 보인다.
이 놈을 깨워서 떨어 뜨리자는 생각에 손을 끄집어 내서 녀석의 얼굴을 후려 갈겼다.
아픔 탓인지 짝 하는 커다란 소리 탓인지 녀석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슬쩍 눈을 뜬다.
"정신이 좀 드냐?"
"모닝 키스 치고는 강렬하군."
"헛 소리 그만 하고, 좀 놔주지."
나의 말에 녀석이 싱긋이 웃으며 팔을 풀어준다. 잽사게는 불가능 했지만 최대한
빠르게 그 녀석에게서 벗어나서 일어나려는데 녀석의 손이 그것을 저지한다.
그리고 진지한 눈으로 보면서 말한다.
"오늘은 그냥 누워 있어. 어제 무리 했잖아."
"훈련은?"
"내가 잘 말할테니까."
"지랄."
니 놈 눈에는 저 시선들이 안 꽂히냐?!
이상하다 못해서 미묘해진 시선으로 나와 네 놈을 번갈아 보고 있는 저 시선 말이다.
일어나자 싶어서 힘껏 몸을 일으키려는데 녀석이 내 몸을 확 하고 잡아 당겨서 도로
눕혀버리고 말한다.
"누워 있으라면 누워 있어."
"내가 왜?"
"어제 다섯...읍!"
황급히 이 놈의 주둥아리를 손으로 막고 노려보았다.
진짜 개념이 없는 모양이다. 내가 눈치가 없는 편이기는 하지만 너 처럼 그러지는 않어.
내가 눈치가 없고, 개념은 있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개념이 없었으면 어쩔 뻔 했는가?
그런데...다섯이라니....
분명히 나는 네번째에서 기절했는데......이 변태가...설마?!
나는 아주 작은 소리로 녀석을 노려보면서 물어보았다.
"너...내가 기절했을 때..."
그 순간 녀석의 눈이 씨익 웃는다. 어떻게....기절한 내 몸을....
이 놈의 옆에서는 절대로 기절해서는 않 된다는 사실을 각인하며 나는 손에 힘을 풀었다.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온다. 여자한테도 그런 느낌은 안 들겠다.
그렇게 녀석은 자유로워진 주둥이로 '그러니까, 오늘은 가만히 쉬어.'라는 말을 하며 웃는다.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난 녀석은 이불을 잘 정리 하더니 나를 보고 손을 흔들고
고참들을 슥 훑어보며 묻는다.
"훈련들 안가십니까?"
나한테 말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정감이라고는 하나도 묻어나지 않는 목소리에 고참들은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서며 나를 힐끗 거린다. 이런 상황이 너무 쪽팔린다.
어떻게 변명이라고 하고 싶어서 '역시 어제 승급 심사때문에 했던 훈련이 너무 심했어...'라고
들릴 정도로 중얼거렸음에도 그들의 시선은 변화하지 않는다.
진짜로 알고 싶지 않지만....혹시나...혹시나...어제 깬걸까?!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안 들렸는데.....하긴 들을 정신도 없었지만....
"그럼 갔다 올게. 푹 쉬어."
"......그래."
녀석은 모두가 나간 것인지 확인이라도 하는지 두리번거리더니 내 이마에 쪽- 하고는
벌떡 일어서서 다다닥 나가 버린다. 대체 뭘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 것인지 어이 없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렇게 눈을 감자 조용한 주위 탓인지
잠이 솔솔 몰려 왔다. 그래....자자...
"기훈아..!!"
으음......내 단잠을 방해하는 목소리에 나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그렇게 눈을 떠서 내 시아에 잡힌 것은 다름 아닌 태원이 놈이었다.
뭐야?! 싶어서 부시럭 거리며 일어나 앉았다. 아까보다 훨씬 편해진 허리가
내가 일어나는데 큰 방해를 끼치지 않은 덕분이었다.
"왜 깨운거냐?"
"오래."
"누가?"
"대대장."
"......대대장이 왜?....뭐?! 대대장님?!"
얼떨결에 말을 받아 치다가 정신이 확 하고 들었다. 대대장님이 갑자기
나를 왜 부른단 말인가?! 어이가 없어서 녀석의 얼굴을 처다보고 있으니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응. 대대장이 너랑 나랑 오란다.'라고 가볍게 대답한다.
갑작스러운 대대장님의 호출.
특히나 찔리는 것이 많다보니까, 어째 가기가 싫어진다.
아침에 고참들 눈길이 좀 이상한 게 설마 진짜로 이 놈이랑 그렇게 된게 뽀록 났다거나....
아니라도 오늘 훈련을 빼 먹은 것도 있고, 그러고보니까, 내가 어떻게 훈련을 빼먹었지?!
분명히 내가 없으면 데리러 올 줄 알았는데....이상하다.
"안 갈거야?"
"말이 되냐?! 가야지."
"그럼 옷 입고 가보자."
그의 너무나도 간단한 말에 나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느릿느릿 옷을 갈아 입고 군화를 잘 매서 신은 나는 한숨을 내 쉬며 뭐가 그리 즐거운지
'룰루랄라~'거리며 내 팔을 잡고 가는 태원이 놈을 처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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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들어가기 싫은 곳의 문.
결코 열고 싶지 않은 문이다. 마치 학교 다닐 때 사고치고 나서 들어가기 싫어졌던
생활지도부실의 문과 똑같이 보인다.
그런 문을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열고 나를 데리고 들어간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녀석은 아주 당당하게 말한다.
"충성. 이병. 조 태원. 대대장님의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