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남 말할 처지가 아니구만....
핑크색 편지봉투를 뜯으니 나오는 것은 핑크색 편지봉투.
찹으로 소녀틱!이라고 생각하며 안에 적혀 있는 단정한 글씨를 읽어내렸다.
조 태원씨에게...
안녕하세요...초면에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 실례인 줄은 아오나
곧 저의 남편이 될 수도 있는 분께라고 생각하니 이렇게 미리 연락을
취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되어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저는 대경물산의 첫째 딸로 김 은정이라고 합니다.
태원씨가 군대를 제대 후에 저와 맞선을 보게 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사진으로 태원씨를 보았으나 태원씨는 저를 아직 모르시니
사진도 동봉해드립니다.
2년뒤에 좋은 만남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김 은정.
".....맞...선?!"
군대로 맞선내용이 날아오다니 어이가 없어서 처다보고 있다가
편지 봉투 안을 뒤졌다. '동봉한 사진'을 보기 위해서..
그렇게 열어 본 편지 안에 든 사진의 여성은 참으로 단아하게 보이는
한국형 미녀!
"................"
힐끗 뒤를 보자 아직도 편지에 화풀이를 하고 있는 태원의 모습이 보인다.
내 편지도 저렇게 찢어 발겨 놨는데...나라고 하지 말란 법있나?!
막 편지를 찢어버리려고 하는데 뒤에서 정욱이 불쑥 튀어나온다.
"어?! 이거 태원이 형한테 온 편지죠...줘봐요."
내 손에서 편지를 쏙 빼가더니 줄줄 읽어내린 그는 에에...라며 편지봉투를
뒤진다. 뭘 찾는지가 뻔히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이라면 여기 있는데.."
사진을 들고 팔랑이고 있으려니 냉큼 달려와서 사진을 뚫어져라 처다본다.
그리고 갑작스런 탄성을 지른다.
"진짜 예쁘다!!"
사진을 뚫어져라 처다보던 녀석이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 벙글 거리면서
들고 태원이가 있는 쪽으로 열나게 뛰어간다.
"태원이형...이거 봐요..."
정욱의 말에 편지를 괴롭히다 말고 뒤를 돌아보는 태원이의 모습에 나는
생긋 웃으며 태원이에게 한 달 내내 지겹도록 배운 '변태가 덮쳤을 때 사용
할 수 있는 인간의 급소들. 잘치면 죽일 수도 있음' 을 처음으로 시전해야 했다.
가볍게 정욱이의 목을 탁 하고 치자 '켁'하는 소리를 내며 나자빠진다.
이내 그의 손에 쥐여 있는 사진을 빼앗고, 무슨 일이냐고 말하는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대답을 해주었다. 물론, 빼앗은 사진을 구기면서....
잔뜩 구겨졌다가 다시 펴진 사진에는 단아했던 미녀는 온데간데 없고
여기저기가 찌그러져서 이상해진 여자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이정도면 감지덕지지..."
계속 옆에서 추근대면서 뭐냐고 물어보는 태원이의 모습에 나는
생긋이 웃으면서 구겨졌다가 펴진 사진을 손에 쥐어 주었다.
"네 맞선 상대래."
"엉?!"
다 구겨진 조그마한 사진을 손에 든 녀석은 원인불명의 소리를 내며 나를 처다본다.
사진을 잡고 있는 태원의 손이 웬지 모르게 무진장 열받는다..
그런 그를 뒤로 한 채 또 다른 편지봉투를 집어든 나는 '김은정'씨의 맞선용(?)
편지와 아주 흡싸한 편지의 형태를 느낄 수 있었다.
거의 그런 편지라는 것이 확인되자 마자 자리를 뜨기로 마음먹은 나는
군화를 신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렇게 태원이 놈을 남겨두고 나와서 얼마 못 걸었을 때, 벌써 쫓아온 태원이
내 뒤를 졸레졸레 따라오며 말한다.
"기훈아.. 삐졌냐?!"
"전혀."
"삐진거 맞으면서... 이런거 가지고 화내지 말어...난 너뿐이야~"
"알아."
"에이...그러지 말라니깐. 너 지금 질투하는거 맞지?!"
"응."
".............."
뒤에서 떠들던 녀석이 갑자기 말을 그만둔다. 그리고 쫓아오는 기색도
영 느껴지지가 않는다. 슬쩍 돌아서 보니까 고개를 숙이고 못 박힌듯
서있는 모습을 하고 서 있다. 뭐야?! 하는 마음에 다가가서 처다보니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여우 아니랄까봐...'응'이라니..."
"..불만 있냐?!"
"....엑!? 어...어라..; 부..불만이라니.."
"질투 하지 말까?!"
"아니!! 해! 마음 껏"
내가 휙 하고 떠나기라도 할까 싶은지 내 옷자락을 잡고 있는 태원의
손이 보인다. 코찔찔이 얼라가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있는 모습을
엄마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그래..."
하도 그 모습이 귀여워서 슬쩍 주위를 살피고 살짝 발을 들어 그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좋아한다는 말이 쑥스러워서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
그의 얼굴이 헐레레하고 풀어진다.
2개월전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라져버린 모습이지만.
이 모습이 더욱 더 좋으니까...오히려 이렇게 바껴버린게 좋다.
이런걸 사랑의 위대함이라고 하는 거 겠지?!
"기훈아~"
꽉 하고 내 몸을 안아오는 이 무식한 곰탱이 덕분에 허리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일단은 귀여워서 봐주기로 했다.
귀여운 곰탱이라.... 만화의 캐릭터 푸우정도가 어울리지 않을까..싶다.
손에다가 꿀을 잔뜩 바르는 근육질 푸우가 연상되고 덕분에 기분이 나빠진다.
그렇게 방심하는 사이 내 입술로 입술을 들이미는 녀석의 기습키스를 받고
베이비 키스 이어질 딥 키스를 위해 딱따구리가 부리쪼듯 다가오는 입술을
손으로 탁 하고 막았다.
"그건 내 질투가 좀 풀리고 나서 해."
"엥?! 그...그런..."
"20통이었지?!"
"...다 지멋대로 보낸거라니까..."
그의 품에서 벗어나서 성큼 성큼 걸어오는 나를 쫓아오는 모습에
씨익 웃으며 더욱 걸음을 재촉했다.
조금만 더 있다가 '용서'해주도록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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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읏...하악...태원아.."
살짝 젖혀진 목이 가늘고 흰 라인을 형성한다.
그 라인의 사이에 작게 올라간 목젖이 짧게 헐떡인다.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주위에 울려퍼지고, 그 소리와 함께
태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