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승천하는 알통구보.
"아...야야...아퍼 죽겠네.."
"입 닫아. 다른 쪽도 땡겨버리기 전에."
"칫, 태원이 형은 인간적으로 너무 인간 안같어... 너무 못 됬잖아...
못 됬어.. 그죠~~ 기훈이 형~"
"그래..그래..."
살갑게 웃는 정욱이는 보며 피식 웃고 있으려니 태원이가 심통이 났는지
돌아 앉아 팔을 괴고 정욱이를 무시한다.
그러던지 말던지 정욱이의 수다는 계속되고 있엇다.
"형! 올라가서 대따 고생했지?!"
"별로."
진짜로 고생이라고는 거의 안 했지...내 엉덩이가 수난을 당한거만 빼면 말이야...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는데...녀석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한다.
"센 척하기는...저는 진짜로 안 힘들었지롱요~~ 세상에 상등병들은 그런가봐요.
담요를 들고 온거 있죠...으흐흐...얻어 덮었는데 졸라 따듯했어요..."
"그래?!"
"안 놀랬어요?! 군장에 담요를 넣어서 왔다니까요..."
놀래야 하는 건가....라는 눈으로 그를 처다보고 있으니...
에이...재미없다..라고 중얼거리며 밥을 퍼먹는 정욱의 모습이 보였다.
그냥 놀래지 말자. 하고 밥을 퍼먹고 있으려니 정욱이 놈이 밥을 퍼먹다 말고
문득 태원이에게 물어온다.
"그런데 태원이 형은 왜 밥도 안 먹으면서 여기 앉아 있어요?!"
"내 마음이다."
"에이...또 기훈이형 챙긴다고 그러는구나... 형은 너무 오버야.."
"내가 오버를 떨던 말던 넌 찌그러져 있어. 내가 확 찌그러뜨려버리기 전에."
"찌그러뜨릴 수 있으면 찌그러트려보래요!! 메~~"
혀를 낼름 내밀로 에베베 거리고 있는 꼴을 보니 정신 연령이 굼금해져 온다.
지금 '정욱이 몇살~?' 하고 물어보면 '세살~'하고 대답할 분위기이다.
슬슬 나도 때리고 싶어지는데 태원의 손이 쑥- 튀어 나가더니 정욱이 놈의
볼을 꽉아고 잡아서 늘어뜨린다.
"오냐 찌그러뜨려주마."
"으갸갸...잘몬했어요....농담이었어요..."
....좋군.
하지만 그렇게 해가지고 찌그러지겠냐?! 하는 생각도 없잖아 든다.
그렇게 나는 식사를 싹 비우고 식판을 들고 일어났다.
그런 나의 모습에 볼을 놓아준 태원이 나를 따라서 일어선다.
볼이 자유로와지자마자 방금전의 일을 잊어버리기라도 했는지 커다란 목소리로
태원이에게 물어본다.
"칫, 폼은 그래도...맞구만...기운이 형 챙기는거...그냥 사귀지 그래요!?"
정욱이 놈의 말에 태원이 발끈 했는지 정욱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한다.
"니가 걱정 안해줘도 이미 사귀고 있으니까 걱정 말아라."
그렇게 꺼내 놓은 태원의 말에 갑자기 식당의 곳곳에서 풋- 하는 소리와 함께
콜록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럽게시리 입 안에 있던 것들을 뿜어내는 모습에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식판을 씻어 놓고, 밖으로 나갔다.
별로 남아 있고 싶은 분위기가 아닌 덕분이 가장 컸다.
"어제 밤에 시원하셨습니까?!"
"....예!"
"그럼 어제 굳었을 몸을 풀기위해 모두 상의 벗습니다!"
"예?!"
"뭣들 합니까?! 상의 벗습니다. 실시!!"
조교의 말에 상의를 벗어던지 우리는 직후 달리기를 해야 했다.
물론 군가와 박수가 골고루 첨가된 달리기를 말이다.
이것이 소위 알통구보인가...하면서 달리고 있는데... 4바퀴를 다 돌아갈 때 쯤?!
뒤에서 달리던 정욱이 갑자기 뚝하고 멈춰섰다. 그리고 그에 뒤이어 내 뒤에
뛰던 인간들이 하나 둘씩 멈춰 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갑작스레 멈춰서는 인간들의 모습에 조교가 뛰어와서 그들을
다그치는데, 그런 그들은 변명도 없어 입을 떡하니 벌리고 내 쪽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쪽을 보던 조교가 모두 제자리에 서!! 라고 말하면서 뛰어 온다.
"자네."
"이병 조 태원. 부르셨습니까?"
"그래. 좀 뒤로 돌아봐."
조교의 말에 태원이 뒤를 돌아봤고, 나는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다.
용 새끼가 승천을 하다가 나를 야리는 모습이 보인 덕분이었다.
저 놈들이 왜 뚝 하고 멈춰 섰는지 알만한 경우에 조교는 태원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대더니 막 문질러 댄다.
그리고 이내 진짜 문신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태원이에게서 크게 네 발자국정도 물러서더니만 질문한다.
"자네 등에 그게 뭔가?"
"문신입니다."
"그걸 묻는게 아니잖는가?! 자..자네 검열 안 받고 군대 왔나?!"
"받았습니다."
"그럼 그 문신을 그냥 통과 시켜 주던가?!"
"통과 시켜 주셨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용문신을 처다보았다.
용 새끼가 아주 처절하게 나를 노려 본다.
저 눈깔이 왜 무서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주춤했다.
정말로 저 용의 눈깔과 내 눈이 마주치게 하기 싫어진다는 것은 절실했다.
잘 발달 된 등 근육 위의 용이라니...멋지기도 하고...무섭기도 하고...
"대체 그런 문신을 무슨 정신으로 새긴 건가?!"
"...정신이라기보다는 대대로 성인이 되면 새기게 되어 있는게 저희 집
전통이라서 그렇게 됬습니다."
대체 어떤 가문이길래...용문신을 등판에다가 저렇게 크게 새기는 건지..;
왠지 이놈이랑 잘 되도 될까...하는 걱정이 살짝 피어 오른다.
"대체 그걸 왜 통과 시켜주던가. 눈에 보기에 혐호스러울 정도의 문신은
분명 통과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그 문신 소지를 검문관이
모르거나 했나?!"
그의 질문에 모두 긴장한 채로 태원을 처다본다. 태원은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을 지으며 또박또박 대답한다.
"멋있으니까 됬다고 하셨습니다."
.............어이 없다.
지금 조교의 표정이 딱 이거였다.
하긴 나부터 시작해서 모두 다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인데 당연하지 않을까?!
우리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멋있으니까 그냥 통과라니...황당하다.
"아...아무튼 앞으로 알통 구보 때도 자네는 옷 입고 뛰어."
"알겠습니다."
"그럼 전체 다시 달린다. 실시...!!"
천천히 사라져가는 용이 조금 더 뛰었을 때 다시 뚜렷하게 모습을 들어낸다.
그 탓인지 뒤에 뛰던 사람들이 고개를 못 들고 땅만보고 달린다.
그런 꼴에 고개들라고 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숙이게 뛰도록 놔 두기도
뭣해서 그런지 조교는 갈팡 질팡 하다가 뛰어가서 태원이 옷을 줏어다 준다.
"입고 뛰어."
이 우스꽝스러운 경우는 군대의 몇 없는 조교가 당황한 재밌는 사건이 되고...
이 사건은 [승천하는 알통구보]라고 해서 군대의 전설이 됬다고 한다...
물론 나는 제대한 뒤에 떠돌게 된 소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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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통구보 사건이 있고부터 또 한달.
군대에 들어와서 가장 반가운 것은 역시나 사회에 있는 친구들이나
가족의 편지나 연락. 그리고 가끔씩 오는 소포들이다.
특히나 오래동안 군대에 남았으면 남았을 수록 뜸해지는 연락에
연락이 절실해진다고 하는데 그게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