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오늘은 용서해주겠어...
"조 태원."
결국 참다 참다 못해서 내가 먼저 그를 불렀다. 나의 부름에 맞닿은 등이
움찔 하는가 하더니 왜..? 하고 대답한다.
그런 그에게 나는 아주 진지하게 물어 보았다. 사실 제일 걱정이 이거였다.
"내 거기...썩어서 떨어지진 않겠지...?"
"뭐?!"
"너 하면서 만져도보고...그..입에도 넣었었잖아... 독 같은거 없었지?"
"................"
대답이 없다.
진짜로 걱정되는데...대답도 안해주고 버팅기던 그는 잠시 후 짙은 한숨을
내쉬고 나에게 질문을 해 온다.
"너 방금전에 내가 한 짓을 잊어버렸냐?!"
"안 잊었어?!"
"그런데 지금 그게 중요해?!"
"그럼?! 너는 거시기가 떨어질 수도 있는데...안 중요해..?"
".........중요하네..."
잠시의 고요...그리고 '풋'하는 태원의 웃음소리와 함께 같이 웃어버렸다.
솔직히 이 상황에 웃음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냥 웃었다.
그렇게 한참 웃다가 뒤로 돌아서 서로 마주 보았다. 태원이 나에게 묻는다.
"화나지 않아?"
"화나."
"나 용서 안할거야!?"
"응."
나의 대답에 녀석이 움찔하더니 각오했는지 담담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씨익 웃고 이야기 했다.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빴다면 용서 안하려고 했는데....나도...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으니까...용서하마. 이때 동안 고생한 것도 있고..."
"아...정말?"
"그래."
금방 환하게 웃는게 어쩐지 어린애 같이 느껴진다.
저 덩치에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지만 그래도 지금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고백하지..그랬어...나 무진장 둔한데..."
"고백했으면 받아 줄거였어?"
"아니."
"......안하길 잘했구만..."
"그런가?"
또 다시 이어지는 시덥잖은 대화. 그런 대화에 여러 표정을 지어 보이는
태원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이게 재미있어서 녀석도 내 표정 변화에
그렇게 웃었나 보다...아...재미들릴 것 같아.
"그런데...왜 내가 좋냐?!"
나의 질문에 그는 피식 웃으면서 '나도 몰라'라며 획하고 뒤로 돌아 눕는다.
모르면서 좋아한다니 날 가지고 논거 아냐?! 라는 생각이 슬쩍 기어 올라와서
저 뒷통수를 퍽 하고 때려줄까?! 하고 손을 들었는데...
태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냥 미칠만큼 다 좋아. 쌔까만 머리카락이 좋고, 날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도 좋아.
손에 감기는 기분 좋은 흰 피부도 좋고, 부드러운 입술도 좋고, 살짝 웃을 때 올라가는
입꼬리도 좋아. 저음도 고음도 아닌 따듯한 목소리도 좋고, 걸을 때 들리는 타박임도 좋고,
지금 나를 때리려고 들어 올린 손도 다 좋아."
....이 놈은 뒷통수에도 눈이 달렸나...내가 때리려고 손을 든건 어떻게 알았대...
쪽팔린 소리를 쭉 나열하는 그의 목소리에 얼굴로 피가 몰리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뒷모습이라서 잘은 알 수 없지만, 귀가 빨갛게 물든 것으로 보아 분명 저도 말해놓고
쪽팔려서 얼굴을 빨갛게 칠하고 있을 것이다.
"칫...말은...쪽팔리게시리..그런건 좋아하는 여자한테나 읊조려"
나의 투덜거림에 그가 획하고 돌아본다. 덕분에 놀라서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그의 미간이 좁혀진 채로 나를 처다본다.
"....그래서 너한테 읊조렸잖냐...? 나야 말로 궁금한데...그럼 넌 왜 날 용서했냐?
내가 널 좋아하는데...그걸 받아들여서 그런거 아니었냐?!"
"마...맞을걸..."
"그럼 너는 내가 널 좋아하는걸 알고, 너도 날 좋아해 줄 뜻이 있다는거 아니었어?!"
"마..맞지..."
"그런데 좋아하는 여자한테나 읊조리라는 소리가 나오냐?!"
태원이는 심통이 났는지 내 볼을 양손으로 잡고 쭈욱 늘어뜨린다.
아프지는 않지만, 어째 이러고 있는게 부끄러워서 그의 손을 탁 하고 쳐서
떨어뜨리고 괜히 '아파'라고 말을 꺼냈다.
"쳇...하나도 모르고 있구만..."
그는 불만이라는 듯이 표정을 구긴다.
확실히 나도 싫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남자끼리 그러는게 좀...그렇기도 하고..
사귄다던가...하는 건 좀...뭔가 이상하기도 하고... 그래도 태원이는 좋은 편인거 같고...
키스를 해도 기분 나쁘기보다 무진장 좋다.
....에라...모르겠다... 골치가 아픈건 딱 질색이니까....복잡하게 생각 말자.
결국 결론이 안나는 것을 잡고 고민하는 것을 포기하고 아직도 표정을 빡하고 굳히고
있는 태원의 입술에 쪽하고 키스해 주었다. 나의 행동에 그는 놀란 건지 멍한 표정을 짓는다.
의외로 표정이 다양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며 풋하고 웃었더니...
녀석이 장난스레 화가 난 표정으로 내 허리를 잡아 당긴다.
"너....감히 날 놀려..."
"하하하...허리 아프단 말이야..땡기지 마.."
"날 놀린 벌이야...!!"
".................."
".................."
눈이 서로의 모습을 담고 천천히 입술이 맞닿는다.
가벼운 베이비 키스를...그리고 짙은 딮키스를 나누고 그는 표정 변화 없는
나에게 삐졌는지 '곰으로 봤더니...완전 여우야...'라고 중얼거리며 뒤로 돌아 눕는다.
그런 그를 보며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그의 귀에 속삭였다.
"다음번에는 조금 살살 해줘야 돼..."
나의 말에 그는 확 하고 돌아 눕는다. 그런 그의 모습에 나도 쌱 돌아 누웠더니..
녀석이 역시 여우라면서 투덜댄다. 푸하하...이거 진짜 중독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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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남아들]
"기훈이 형~~"
식판을 들고 뛰어와서 내 앞에 앉는 정욱이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녀석은 앉자 마자 내 옆에 앉아 있는 태원이를 보며...
'태원이 형도 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낸다.
그런 정욱이의 인사에 태원의 손이 정욱의 볼을 잡아서 인정 사정 없이 댕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