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매너가 좋은 남자란?
"쿡, 표정이 참 다양하게 바껴가네.."
"그..그럴 수도 있는거지, 그게 다 고민한다는 증거야! 이거나 좀 들어 줘."
"알았어."
그렇게 짐을 받아든 그는 한번 더 피식 웃더니 짐을 챙긴다.
그런 여유로운 모습에 문득 몇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궁금한건
못 참는 진정한 한국의 남아 아니겠는가!?
"근데, 몇살이야?!"
"스물 셋."
"........스물...셋?!"
"응. 왜그러지?!"
"갑이네...거짓말..."
절대로 연상!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갑이었습니다. 라는
사실에 절대적으로 놀랬다. 그런데 스물 셋이면서 외국에서 군대를 갔다가 오고,
운동을 그렇게나 많이 한거래?!
"스무살에 입대해서 스물 둘에 나왔다."
"엥?!"
"언제 다른 군에 갔다 왔을까...하는 표정이길래..."
"내 표정이 그렇게 티가 나냐?!"
"어."
당당한 대답에 나는 괜시리 무안해졌다. '어'라니..좀 너무하지 않는가?!
어떻게 저렇게 대 놓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살다보면 표정에 티가 날 수도 있는거고, 그걸 못 숨기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거지..
"그래서?! 꼽냐?!"
"아니. 귀엽네."
"그래...귀엽....엉?!"
....귀...귀엽다고?! 이건 이거 나름대로 미묘하네...
물론, 태원이처럼 근육으로 몸이 다져져서 크고 넓고 길고를 다 같춘 완벽한 남자적
몸매는 아니지만, 그래도 귀엽다는 소리를 들을만큼 작지고 여리지도 않은 인간인데...
그리고 내 얼굴도 귀엽다보다는 아름답다...미소년이다...가....훗...진짜다...
"...또 재밌는 표정이네."
"칫, 남의 표정을 읽지마. 기분 나뻐...., 그것보다 안 힘드냐?! 넌.."
"별로."
"진짜?! 몇년을 운동하면 안 힘들 수 있냐?! 대단하다. 난 허리 아파 죽겠는데...
거기다가 군화가 새거라 그런지 발까지 아퍼."
나의 말에 그는 피식 웃더니 군화를 벗어보라고 한다.
약 2일전에 받은거라 완전 새것인 군화는 다리를 조여서 졸라 아프게 만들고
있었던 덕분에 벗자마자 다리가 훨씬 편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내게서 군화를 받아든 그는 갑자기 군화를 이리저리 꺽고, 늘리기를
반복한다. 그걸 신기하게 처다보는 사이 다시 행군이 시작된다는 말이 나오고
그가 건네준 신발을 냉큼 신었다.
"우와....훨 낫다."
"나중에 돌아가면 양초라도 사서 발라 둬. 훨씬 부드러워 질거야."
"어. 땡큐."
나는 훨씬 편해진 군화를 이리 저리 돌려보다가 이내 그의 템포에 맞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좀 전에 그의 걸음에 맞췄더니 굉장히 걷기 쉬운 느낌이 좋아서
이번에도 그의 걸음에 발을 맞춰보았다.
초반에 약간 힘든듯 하더니 이내 금방 편한 템포로 돌아온다. 신기하네...
이건 처음에는 힘들다가 뒤로갈 수록 편해지는 건가?!
"모두 10분간 씻고 식사를 하도록 합니다.."
"예!!알겠습니다."
우르르 씻으러 들어간 사람들의 특색은 옷을 다 벗어던지고 샤워를 하러
들어가는 놈들이 있는가 하면 그냥 세수나 하고 말자는 식의 인간들이 있었다.
겨우 10분밖에 없는 시간 안에 샤워는 무리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그냥 세면대로 가서 세수를 열심히 하고 박박 밀려서 2달동안 제멋대로
자란 머리를 대충 감고, 발을 씻었다.
태원이도 나와 생각이 같았는지 똑같이 세면과 팔다리를 씻는데 여념이 없다.
샤워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이 증명 되듯이 10분이 지났을 때 제대로 씻기는 커녕
물을 뚝뚝흘리며 나오는 인간들이 보였다. 우매한 놈들...쯧쯧...
그렇게 저녁을 먹으러 간 나는 과도한 운동 뒤에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대단한 것인지 알았다... 열심히 밥을 퍼먹고, 즐겁게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부터 자유시간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아침에 기상하고, 아침구보후 세면 식사하고 훈련, 점심먹고 훈련하고 교육 받고 식의
군대이다보니 지금같은 자유시간은 즐거운 법이다. 하지만, 마냥 기쁘지만도 않다.
말이 자유시간이지 고참들의 갈굼 시간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아...피곤하다...거기. 그래 너."
"예, 이병 강 동욱."
"이리로 와서 어깨 좀 주물러 봐라."
"예, 알겠습니다."
동욱이라는 남자는 척척척 가서 고참의 어깨를 열심히 주무른다. 그 고참 이외에는
안마에 관심 없는지 다들 자유시간을 만끽하고 계신다.
그렇게 이등병들은 긴장을 타고 입 다물고 조용히 앉아 있는 사이 태원이 나를
'툭'하고 친다.
덕분에 놀라서...'엉?'하는 소리를 냈더니 그런 나를 보며 숨죽여 웃는
그를 볼 수 있었다. 제기랄 싶은 사이에 얼굴이 빨개졌는지 그 모습에 다시
쿡 하고 웃고는 내 귀를 쪼물딱 거리며 말한다.
"귀까지 빨개졌네...웃은게 잘 못이려나...풋..."
"됬어."
그는 내 귀를 손가락으로 쓰다듬다가 손을 떼고는 나를 향해 눈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의외의 미소에 당황하고 있는데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자."
"뭘?!"
"군화 손질. 양초로 좀 만져줄게."
"에...진짜?! 짜식 너 밖에 없다. 고마워."
기쁨에 얼른 군화를 벗고 있는데, 고참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뭔가 잘 못 됬나 싶어서 군화를 벗고 있던 손을 멈추고 슬쩍 고개를 들어서 눈치를
살피니까, 하나같이 '크흠-'하는 소리와 함께 슬쩍 고개를 돌린다.
뭔가 잘 못한건가 해서 슬쩍 군화에서 손을 치우니까, 태원이 왜그러냐며
얼른 벗으라고 재촉하고, 그래서 벗으려고 손을 가져가니 고참들 눈빛이 이상하다.
군화를 손질하면 안되는 것일까?! 싶어서 결국 손을 놨는데 태원이 답답했는지
내가 신고 있던 군화를 획- 벗겨 버린다.
"야! 왜 벗기고 그래!!"
"왜?! 좀 벗기면 어때서...? 어차피 벗어야지 할거 아냐."
"그렇지만...좀 그렇잖아..."
"알았어. 시끄럽게 굴지마."
그는 곧 군화를 꺽고 늘리고 양초를 바르는데 집중한다. 그런 녀석 덕분에
신발 없이 슬쩍 발을 빼고 앉아 있는데, 고참들이 그런 나와 녀석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태원이만 뚫어져라 처다본다.
결국 태원이도 시선을 느꼈는지 군화 손질이 다 되서 할 짓이 없어진 건지
내게 군화를 내밀고 자신을 처다보고 있는 고참들에게 묻는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왜 계속 처다보고 계십니까?"
간도 크게 고참들에게 질문을 하는 태원이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처다보고
있으려니 고참들은 헛기침 소리를 내며 이리 저리로 시선을 회피한다.
그러다가 문득 한 사람이 말을 꺼낸다.
"쟤 군화 손질은 왜 해주냐?!"
"...발이 아프다길래 그랬습니다."
"그럼 혹시나해서 그러는데 다른 애들이 아프다고 하면 해 줄거냐?"
"안 해줄겁니다."
엥?! 뭔가 모순이 피어오르는 대답.
내가 발이 아프대서 해줬는데... 다른 애들이 아프다고 하면 안 해준다니...
그럼 나만 해주고 딴 놈들에게는 안 해준다는 소리가 되지 않는가?!
"에?! 어...저기...그건 뭔가 이상하지 않나?"
어색하게 물어 오는 고참의 말에 너무나도 당당해서 오히려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될 정도로 당당한 목소리로 말한다.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그래?! 어. 그런가 보다.."
고참들은 이내 고개를 돌렸고, 나는 그가 내민 군화를 처다보다가
어색하게 신어 보았다.
펴...편하다!!
그래..어색 하면 어떤가....군화는 편해졌는데....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생각을 끄기로 했다. 어쩐지 고참들의 눈빛이 측은하다는 듯한 빛이 되어서
나를 향해 왔지만, 신경쓰지 말자고 생각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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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의 수요일이 되자 '전투 체육 시간'이라는 것이 나를 반겼다.
'태권도'를 배운다는 명목하에 모여서 아주 디립다 고문을 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고참들의 말에 괜히 더욱 더 긴장이 된다.
그렇게 모두 모이고 그렇게 태권도 수련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