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 오로지 당신만 4
유령은 밤을 넘기고,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다. 한 번 시작된 눈보라는 그칠 낌새를 내비치지 않고 그때까지도 요란한 소릴 내며 유리창과 문을 두들겨댔다.
“아파…….”
마크가 깨자마자 통증을 호소했다. 벤은 유령에게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마크는 미간을 잔뜩 좁힌 채 몸을 비틀며 괴로워했다.
“호수 괴물한테 당한 겁니까?”
“알바.”
마크가 신음하듯 내뱉었다. 벤은 그것이 괴물의 이름임을 알아차렸다. 마크는 괴물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벤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상적인 산 사람 눈에 유령이 보이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다. 벤이 마크를 만난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포르노를 실컷 보면 자신이 모든 미련을 훌훌 털고 저승으로 갈 거라고 했던 유령의 말은 전부가 헛소리였다.
“대체 왜 이래요? 무슨 일인지 설명해 봐요.”
“아파, 흐으…… 진통제를 좀 줘.”
“유령한테 무슨 진통제가 필요해요.”
“수술 부위가 아파. 이건 정말……”
이마를 베개에 문지르며 허리를 비틀던 유령이 신음을 내지르며 자지러졌다. 시트를 쥐어뜯으며 온몸을 덜덜 떤다. 벤은 마크가 겪고 있는 극심한 고통에 놀랐다.
“천국은 무슨! 제길, 나한테 좋은 일이 있을 리가 없지!”
“마크, 그만 떠들고 약이나 먹어요.”
상대가 너무 아파 보였다. 벤은 가지고 있는 진통제를 내놓았다.
알약을 넘겼던 유령이 치받는 토기에 약과 물을 왈칵 토했다. 벤은 인상을 찌푸렸다.
“당신이 인간이었단 전제하에 얘기할게요. 속이 빈 채로 진통제를 먹으면 안 돼요.”
“됐어. 약이나 더 내놔.”
“당신 뇌세포는 다 죽었어요. 진통 효과건 뭐건 다 가짜예요.”
“자네가 한 번 아파 봐. 가짜란 말이 나오나!”
누렇게 뜬 얼굴로 마크는 눈을 홉떴다. 벤은 항복하고 약을 내놨다.
유령은 벤이 더 내어준 약을 꾹꾹 삼켰다. 이번엔 토하지 못하도록 입을 가리고 밀어 넣었다. 그렇게 애쓴 것이 허무하게 약효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유령은 계속해 통증을 호소하다 기진맥진해 축 늘어졌다. 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마크가 의식을 잃은 게 차라리 다행한 일이었다.
‘알바, 검은 머리, 여자, 악령.’
유령이 의식을 잃은 사이 벤은 몇 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잡다한 정보가 가득했다. 벤은 그 중 첫 번째부터 클릭했다.
-<알바 공작부인>, 1797년 히스패닉 소사이어티 오브 아메리카 뉴욕.
고야의 그림으로 벤도 알고 있는 작품이었다. 그림의 주인공인 알바 공작부인이 모래 위에 쓰인 고야Goya란 글씨를 가리키고 있었다. 엑스선 연구를 통해 Goya의 글씨 앞에 원래는 Solo란 단어가 씌워져 있단 걸 알아냈단 설명이 그림 밑에 덧붙어 있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생각하며 Solo Goya(오로지 고야)라고 썼다가 지워버린 화가 고야의 애틋한 마음을……. 거기까지 읽었을 때 유령이 신음과 함께 깨어났다. 잔뜩 찡그린 얼굴이 고통이 여전함을 알려줬다.
“몸이 왜 이래요?”
“낸들 아나.”
마크가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이 모르면 누가 알죠?”
유령이 벤을 노려봤다. 경계하고 계산하는 눈으로 한참 벤을 바라보던 유령이 한참 뒤 자신의 판단을 내비쳤다.
“난 다시 죽어가고 있는 거야.”
“당신은 이미 죽었어요.”
“나도 알아!”
치받은 통증에 마크의 말끝이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유령은 빠르게 숨을 내쉬며 통증을 다스리려 애썼다.
“하지만 통증이 너무 익숙해. 아팠던 부위와 신경을 긁는 아픔도, 내가 수술하고 난 뒤 느꼈던 어지럼증과 역겨움까지도 그때랑 똑같아. 대우주가 나한테 제자리로 돌아가라고 닦달하는 거야. 내 영혼에 죽기 전의 기억과 감각을 재주입시키면서 나더러 어서 빨리 죽은 걸 인정하고 저승으로 가란 거겠지.”
“한 번 죽었던 사람이 도로 죽을 수는…….”
벤은 말끝을 흐렸다. 라이언이 즐겨 읽던 괴담집의 내용들이 떠올랐다. 도로 위에서 비명횡사했던 남자는 유령이 된 뒤에도 길 위를 헤매다 여행객들의 사고를 유발했다. 호수에 빠져 죽었던 여자 유령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자신을 구해달라며 허우적댔다. 괴담 속에서 ‘죽음’은 악령들의 행동 패턴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곤 했다. 화형당한 사형수는 화염귀가 되었으며 노역에 시달리다 죽은 남자는 온몸에 쇠사슬을 두른 모습의 유령이 되었다.
라이언은 죽음의 충격적 경험이 인간의 영혼에 깊은 낙인을 남긴다고 말했다. 자신이 도로 죽어가고 있다는, 죽음 당시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와 동일한 경험을 재차 하고 있다는 마크의 말은 나름 일리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 끝이 어찌 될지는 이미 알고 있다. 거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어떻게 갈지가 문제였다.
“당신은 물에 빠져 죽었죠. 수술하고 나서 얼마 뒤 일이었나요. 그때까지 계속 아팠던 겁니까?”
벤의 잔인한 질문에 유령이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둘러썼다. 천 아래로도 마른 몸과 그 몸에 깃든 병색이 읽혔다. 벤은 유령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창백한 안색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던 유령의 얼굴은 딱딱했고 그 눈빛은 공허했다. 그건 오래도록 고통에 시달린 이의 눈빛이었다.
“당신은 당신이 죽었단 사실도 몰랐었는데, 그런 사람이 이젠 익숙한 통증만으로 당신이 죽어가고 있다고 너무 쉽게 판단을 내리는군요.”
유령이 얼굴을 반만 내보인 채 벤을 돌아보았다. 벤은 말을 이었다.
“당신은 당신에겐 ‘늘 겨울 뿐’이란 말을 했죠. 당신은 이걸 처음 경험하는 게 아니죠? 당신은 죽음 뒤의 기억이 있어요. 이런 일을 반복해 경험했던.”
유령이 눈을 깜빡였다. 벤의 짐작이 맞았단 표시였다.
“말해 봐요. 당신이 기억하는걸.”
벤은 잔뜩 굳어 있는 유령의 등을 쓸어내렸다. 성적인 의도가 전혀 없는 작은 동작임에도 유령이 움찔 몸을 떨어서 벤은 기분이 묘해졌다. 마크가 벤을 여전히 의식하고 있는 게 훤히 보였다. 그의 적나라한 태도를 무시하고 벤은 화제에만 집중했다. 재차 묻자 유령이 한참 뒤 입을 열었다.
“난 그게 다 꿈이라고 생각했어. 기억 속에서 헤맸던 걸까. 그건 마치 꿈을 꾸는 감각과 비슷했어.”
벤은 고개를 끄덕였다.
“춥고 아팠지. 겨울이었고, 과거였고, 어떤 때는 벽장 안이었어. 잠들었다 깨어났고 술 취한 이처럼 멍하니 걸어 다니다 어느 순간 정신이 온전히 맑아지기도 했지. 모든 게 몽롱했어. 암 수술을 위해 마취를 하고, 카운트다운 후 잠들었다 깨어나 보면 난 과거의 젊은이로 돌아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달려가고 있었어. 시간도 공간도 모두가 엉망진창이기에 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 난 내가 그 상태로 얼마나 있었는지 몰라. 한 달, 일주일?”
“시간 감각이 무뎌졌던 거예요.”
“그래, 덕분에 현실 감각도 사라졌지. 꿈을 꾸기 전 난 치료소의 병실에 있었어. 잠깐 잠들었다가 깨어나 보니 자네가 나타나 있더군. 내가 죽었다고 말하면서. 그러다 다시 통증이 시작됐지. 이건 정말…… 전부가 다 꿈같아. 꿈에서 깨어난 줄 알았는데 또 꿈이고, 다시 또 꿈인 거야.”
“우린 그 꿈에서 깨어나야 해요. 알바는 누구죠? 당신은 그 괴물의 정체를 알고 있어요. 전에도 그 괴물이 당신을 습격했나요?”
“그녀는 괴물이 아냐.”
“충분히 괴물 같던데요. 선량하고 평범한 여자라면 당신 발목을 물고 호수 바닥으로 끌어가진 않았겠죠. 그 괴물은 당신을 잡아먹으려고 잠복해있던 것 같던데요. 대체 어떤 관계면 그런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일 수 있는 거죠?”
“그녀는 내 연인이었어.”
벤은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짓을 했기에 연인이었던 여자가 저리 변해요?”
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유령은 모포 안으로 얼굴을 집어넣었다. 벤은 이불을 젖히고 유령의 마른 뺨을 쥐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요.”
“난 환자야!”
마크는 화가 나 버둥거렸지만 벤은 커다란 손으로 마크의 얼굴 전체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젠장, 난 그녀에게 홀딱 반했었어. 그녀가 자신과 죽어줄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난 기꺼이 그녀랑 같이 죽겠다고 했지.”
벤은 괴물로 변한 여자와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를 고려해 플롯을 짰다.
“그녀가 당신을 배신했군요. 당신은 그녀를 죽여서 호수에-.”
“멀쩡한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지 마! 난 아무도 안 죽였어.”
그건 다행이었다. 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하는 연인과 동반 자살하려던 이유가 뭔가요?”
물음에 마크의 눈동자가 떨리는 걸 벤은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유부녀였어. 난 그녀보다 스무 살 정도 어렸고.”
“맙소사, 불륜이었어요?”
마크의 얼굴이 미미하게 붉어졌다. 벤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유령의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여다보며 그 표정 속 숨겨진 감정을 읽어냈다. 두려움과 후회. 부끄러움과 슬픔. 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알바는 왜 저런 괴물 같은 모습이 되어서 당신을 노리는 건가요?”
“그녀는 나보다 먼저 자살했어. 나는 그녀를 따라 죽지 못했고.”
“그래서요?”
“그녀는 내 길 안내를 하러 온 거야.”
“저승으로요?”
마크가 고개를 저었다. 창백한 입술이 달싹이다 전혀 예상 못 한 단어를 내뱉었다.
“아니, 지옥.”
벤은 잠시 말문을 잃었다.
눈보라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벤은 날씨를 살피다 창문 틈새로 새어든 한기에 몸을 떨었다. 바깥 날씨와 아랑곳없이 유령은 침대 위에서 계속 나아졌다 도로 아팠다를 반복했다.
“……추워.”
마크가 신음했다. 벤은 뒤척이느라 밑으로 떨어진 모포를 바로 해 덮어주었다.
“좀 나아요?”
“전혀, 모포가 너무 얇은 것 아닌가.”
“그래요?”
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문 모를 일이지만 마크의 방은 전기가 끊기지 않았다. 낡은 히터가 뿜어낸 열기에 실내의 공기는 퍽 따뜻했다. 마크가 해쓱한 안색으로 벤을 바라보았다.
“양말이나 장갑 없나. 손발이 차가워.”
양말을 신기면서 만져보니 과연 열이 들끓는 이마와 반대로 유령의 손발은 만지고 있는 벤이 선뜩해질 정도로 차가웠다. 벤은 솜 인형처럼 늘어진 유령의 발에 양말을 신겼다. 마크가 갑자기 벤의 손을 쥐었다.
“따뜻하군. 부러워.”
벤은 몸을 굳혔다. 죽은 자가 산자의 온기를 부러워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마크도 어느 순간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채 호수의 괴물처럼 변해 벤을 잡아먹으려 할까. 아름답고 정상적인 이들이 죽음 뒤 끔찍한 모습으로 변하곤 했던 드라마 속 악몽 같은 일이 마크에겐 일어나지 않길 벤은 바랐다.
마크가 눈을 감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한땐 손발이 따뜻했어. 누구보다 건강했지.”
벤은 유령의 손을 떨쳐내려던 걸 그냥 내버려두었다. 유령이 벤의 손을 부여잡고 그 위에 자신의 아픈 머리를 가져다 댔다. 평소처럼 헐떡이며 벤의 손을 핥아댔다면 그대로 밀쳐버렸을 테지만 유령은 통증에 취해 색색 숨을 내쉬기만 했다. 힘겹게 이어지던 숨이 어느새 고요히 멈춰버렸다. 벤은 불길함을 느꼈다.
“마크?”
뺨을 두들겼다. 움찔, 반응이 있었다. 영영 굳어버린 줄 알았던 유령이 미간을 찌푸렸다. 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손을 들어 올리려는데, 마크의 얼굴이 벤의 손을 따라 올라왔다. 하얗게 일어난 입술이 그의 손등에 닿았다. 까칠하다. 벤은 헛숨을 들이쉬었다. “벤…….” 마크가 작게 중얼거렸다. 혀가 할짝거리며 벤의 손가락을 핥았다. 벤은 손을 쳐내려다 말았다. 그의 손을 부여잡고 있는 유령은 마치 한 마리 작은 짐승 같았다. 냉정하게 밀어내기 어렵다.
벤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이라도 마크가 번쩍 눈을 뜨고 벤을 덮쳐올 수도 있었다. 발정 난 유령은 미친 사람처럼 힘이 세지 않던가. 벤은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 서슬에 깨어난 마크가 몽롱한 눈으로 벤을 바라보았다. 상체를 일으킨 유령이 예고도 없이 벤의 입술을 훔쳤다. 주박에 걸린 것처럼 굳어 벤은 잠자코 입술을 빨렸다.
키스는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벤은 복잡한 기분에 말문을 잃었다.
마크를 도로 눕힌 뒤, 벤은 교수의 방 벽면에 달린 칠판 앞에 섰다. 그는 유령이 입에 담았던 무시무시한 단어 ‘지옥’을 썼다가 지워버렸다.
마크는 무신론자였다. 그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도 지옥을 겁내고, 자신이 지옥에 떨어질까 봐 이승에서 버티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벤은 이해했다. 죽음 뒤 자신이 유령이 되었다면 제아무리 냉소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이라 할지라도 신과 지옥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시’라고 썼다가 벤은 그 옆에 ‘부정’이라고 덧붙였다. 현실도피로 보였던 유령의 태평함 뒤에는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
간음은 큰 죄이긴 하나 그것만으로 자신이 지옥에 갈 거라 굳게 믿는 건 부족했다. 벤은 유령을 닦달해 얻어낸 정보와 몇 가지 궁금증을 칠판 위에 적었다.
1. 억눌렸던 욕망의 발현, 남색
2. 알바, 그녀의 정체
3. 하필 지옥에 갈 거라 생각하는 이유는?
4. 마크가 반복해서 꾸는 꿈
벤은 꿈의 내용도 함께 적어보았다.
A. 어린 시절
B. 알바와 만남, 그녀의 죽음
C. 벤자민을 찾아갔던 날, 끝내 그를 찾지 못하고 길을 헤맴
벤은 칠판을 들여다보면서 무언가 빠진 게 없는지 살폈다. 한 개 더 있었다.
5. 유령의 통증
벤은 마지막 5번 항목을 한참 들여다봤다. 그는 마크가 걱정됐다. 유령이 그의 주장대로 죽음의 순간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 거라면 유령은 암 수술 후의 통증과 부작용을 고스란히 감내하다 죽고, 다시 살아나 찰나의 삶을 즐기다 다시 발병해 죽는 과정을 영영 반복할 것이다. 그럴 바엔 라이언의 제안대로 뼈를 태워 영혼을 없애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벤은 낡은 전화기를 모뎀에 연결했다. 라이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바뀐 전화번호란 안내만 나왔다. 아차, 라이언의 번호가 바뀐 뒤 새 번호를 기억하는 걸 잊었다. 휴대폰의 단축키만 사용하다 보니 친형의 번호임에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벤의 휴대전화기는 호수의 시커먼 진흙탕 속에 빠져버렸다. 벤은 혀를 찼다. 라이언의 메일 주소로 편지를 띄웠다.
「라이언, 휴대전화기를 잃어버렸어. 연락이 당분간 안 될 거야. 별일 없으면 이곳에 한 번 와줘. 그리고 지난번 알려준 주소로 가서 마크 레이트너란 사람의 묘지를 살펴봐 줬으면 좋겠군.」
“뭐하게?”
유령이 벤의 옆에서 갑자기 얼굴을 내밀었다. 벤은 움찔 놀랐다.
“내 유골을 태워서 없애게?”
유령은 안색이 형편없었다. 벤은 그에게 이젠 좀 괜찮으냐는 멍청한 질문 따윈 하지 않았다.
“마크, 엑소시즘을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몰라요. 당신 말대로 알바가 당신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서 당신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면, 그녀보다 먼저 손을 쓰는 게 낫죠.”
유령이 턱 끝을 들고 자신보다 머리 하나 더 큰 사내를 올려다봤다.
“그럼 난 어떻게 되지?”
“네?”
“벤, 내 유골을 태워버린 다음 내 영혼은 어떻게 되나? 지옥으로 가나, 아니면 영영 사라져버리나?”
벤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다. 신이 아닌 인간이었기에 그는 죽음 뒤의 세계를 확실히 알지 못했다.
“이런 한심한 친구를 봤나.”
벤의 망설임에 마크는 실망했다.
유령은 비틀비틀 걸어가 칠판 앞에 섰다. 그는 벤이 써둔 내용의 1번부터 5번 항목을 한꺼번에 동그라미 쳤다. 그리고 두 단어를 적었다.
“죄, 지옥. 그게 답이지.”
“당신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요?”
“남색과 간음.”
“그럼 게이들은 모두 지옥에 가나요? 터무니없는 소리예요.”
“난 어릴 적에 아버지가 죽기를 기도했어. 날 좋아하는 여자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잤고, 사람의 마음을 속이면서 즐거워했네. 청년이 되어선 사랑하는 연인의 시신을 놓고 도망쳤지. 그보다 더 나이가 들었을 땐 젊은 사내에게 홀려 그를 어떻게든 갖고 싶어 안달했지. 추하고 의미 없는 삶을 살았어.”
마크의 말투는 무미건조했다. 하지만 벤은 그의 평온한 눈빛에서 음울한 어둠을 엿봤다.
“진통제가 더 있나.”
“없어요. 더는.”
“이런, 끔찍한 일이군.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냐.”
마크는 어기적어기적, 벽장 쪽으로 갔다.
그는 벽장 안에서 자신이 먹었던 흰 알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걸 발견했다. 그는 쓰게 웃었다. 유령은 벤이 보지 못하게 몰래 알약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추위와 고통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어. 먹은 음식은 소화되지 못하고 늘 굶주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묘사 같지 않나?”
벤은 유령의 말에 오싹함을 느꼈다.
“마크……”
“난 지옥에 떨어질 거라 떨었지만,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었나 봐. 실은 여기가 이미 지옥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거든.”
유령이 바닥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리처드 도킨스(클린턴 리처드 도킨스. 도킨스는 영국인문주의자협회(BHA)가 2009년부터 실시한 무신론 버스 광고 캠페인을 지지했다. 광고의 문구는 ‘아마도 신이라는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당신의 삶을 마음껏 누리세요.’(T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이다. 참고: 위키백과)가 날 속였어. 신은 존재하지 않으니 걱정 말고 인생을 즐기라더니…….”
발기부전 치료제를 숨겨놓은 책을 들고 괜히 엉뚱한 사람에게 화풀이하던 유령이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 “마크?!” 벤은 창문을 내다보았다. 괴물에게 홀려 호수 쪽으로 걸어간 건가? 다행히 마크는 그쪽엔 없었다. 벽장 안에도 유령은 없었기에 벤은 바깥으로 나와 주변을 살폈다.
지독히 퍼붓던 눈이 간만에 멈췄다. 늦은 시각, 교수들이 묵는 관사 근처엔 나뭇가지 위 눈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정적 속 유일한 소리였다. 건물을 빙빙 돌았지만, 유령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벤?”
벤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한 손에는 산책용 개 줄을, 다른 한 손에는 텀블러를 든 남자가 벤을 보고 아는 척을 했다. 제임스였다.
“자네 왜 여기 있나?”
벤은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당황했다. 벤을 위아래로 살피던 은사가 목소리를 낮추고 은밀히 물어왔다.
“마크가 정말 유령이 됐던가?”
만나봤느냐는 물음에 벤은 고개를 저었다.
“혹시 이 근처에 유령이 출몰하는 곳 아세요?”
“이 근처? 소문으로는 저쪽 옥상에 이상한 게 보인다는 말은 있었네만.”
벤은 제임스가 가리킨 옥상을 쳐다보았다. 순간 하얀 게 언뜻 보였다 사라졌다. 가리켰던 제임스가 도리어 놀라 입을 벌렸다.
“제임스, 위험하니까 절대 따라오지 마세요!”
“무서워서 같이 가자고 해도 거절할 참이었네.”
제임스는 현명한 남자였다. 벤은 바삐 몸을 돌렸다.
* * *
마크는 옥상의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바람에 환자복이 펄럭거려 마른 몸이 드러났다. 바람이 조금만 더 세다면 바로 날아가 버릴 것처럼 앙상했다.
“마크, 왜 여기 와 있어요?”
“벤?”
마크가 고개를 돌렸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벤은 유령이 뛰어내리기 위해 옥상에 온 게 아니길 빌었다.
“이쪽으로 와요. 거긴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
“아파…….”
“그건 어쩔 수 없는 문제예요.”
“너무 아파. 지긋지긋해.”
“방법이 있을 거예요.”
“아냐, 방법 같은 건 없어.”
마크가 쥐고 있던 주먹을 펴 손바닥의 내용물을 내보였다. 벤이 줬던 약이 고스란히 거기 있었다.
“자네가 준 진통제야. 나는 이 약을 소화시킬 수 없어.”
유령은 수북한 알약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당신 미쳤어요?”
“아니, 난 안 미쳤어. 고통에 취하긴 했지. 자네 좋은 약 더 가진 건 없나? 가급적 기분 좋은 상태에서 머리통을 날렸으면 하는데.”
“무, 무슨……. 거기 가만히 있어요! 뛰어내릴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요!”
아무리 유령이라고 해도 새처럼 날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었다. 벤은 옥상 가장자리에 선 채 건들거리는 유령에게 소리를 질렀다.
“벤, 걱정 마. 난 이미 죽었어. 자네 말처럼 이 모든 건 내 뇌가 나한테 거는 장난질인 거잖아? 머리통이 날아가면 다시는 아프지 않을 거야.”
유령은 완전히 맛이 갔다. 벤은 바닥에 떨어져 박살 난 마크의 몸을 상상하고 치를 떨었다.
“자살은 엄연한 대죄예요. 죽은 뒤에도 죄를 지으려고요?”
마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머리 없는 끔찍한 모습으로 벤자민을 만날 셈이에요?”
“뭐?”
벤자민은 역시나 유령의 아킬레스건이었다.
“벤자민을 만나러 가겠다고 했잖아요.”
“그래, 난 벤자민을…… 만나고 싶어.”
“지금 당신이 거기서 떨어져 자살해버리면, 통증은 그렇다 쳐요. 정말로 몸이 박살나서 그 상태로 영영 있다면 어떻게 할 건데요.”
“벤자민이 날 보고 도망치겠군.”
“당연하죠. 머리 없는 유령이라니 얼마나 끔찍하겠어요. 기왕 젊은 모습이 됐으니까 그 모습으로 만나면 좋잖아요.”
“그건 그래.”
유령이 건성으로 답했다. 여전히 그 시선은 옥상 아래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를 만나면 뭐라고 말하지? 사랑했었다고 고백해야 하나.”
“……미련 같은 것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유령의 어깨가 살짝 움직였다. 마크가 웃고 있었다.
“벤, 그건 거짓말이었어.”
마크가 주머니 안에서 오렌지 색 약병을 꺼냈다. 유령은 그 알약의 정체가 발기부전 치료제라는 걸 이미 밝힌 바 있다.
“나는 그랑 한번 해보고 싶어서 이 약을 남겨놓은 거야.”
벤은 히죽거리는 유령을 파렴치하다 욕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며칠간 보았던, 마크가 죽기 전에 겪었던 과정들이 너무 지난해 보였다. 벤은 유령을 동정했다.
“죽기 전에 한 번 시도해보지 그랬어요.”
“어차피 죽을 거니까? 좋은 생각이군. 어차피 뛰어내릴 거니까 진실을 하나 더 알려줄게. 자네랑 자고 싶은 생각 없다고 말했던 것도 실은 거짓말이야.”
유령이 유쾌하게 병을 흔들었다.
“어때? 난 병도 없고, 책임질 필요도 없는 남자야. 외과 의사들이 암세포 덩어리인 내 전립선 신경을 대부분 적출해버려서 발기가 안 되는 것 빼놓고는 나도 나름 괜찮은 남자거든. 말기 암 환자라서 자신은 없지만 내가 최대한 조이면 자네도 기분이 썩 나쁘진 않을 거야. 자네 성기는 단단할 것 같아. 아예 밑이 헤어지게 박아대면 몸이 갈라질 듯 아프겠지? 뇌는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고통을 감지할 수 없다더군. 자네가 날 엉망진창으로 찢어놓는 고통이 너무 크면 이 지긋지긋한 통증은 느낄 수 없겠지.”
“마크, 입 닥쳐요.”
“왜, 역겨운가?”
히죽거리던 유령이 거짓말처럼 미소를 지웠다. 흰 뺨이 달빛 아래 더욱 창백했다. 그가 망연히 중얼거렸다.
“자네 몸은 기분 좋고 따뜻할 것 같아. 그러나 내가 가질 수는 없지.”
유령이 뒷걸음쳤다. 한 걸음만 더 가면 그대로 뒤로 떨어질 위치였다. 빌어먹을, 벤은 욕을 뱉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거친 동작으로 다가가 유령의 뒷머리를 잡아챘다. 쿵 소리 나게끔 세게 바닥에 유령의 뒤통수를 떨어뜨리고 눌렀다. 유령이 통증에 신음을 흘렸다.
눈을 뜨고 놀라 쳐다보는 마크에게 벤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먼저 도발했어요.”
후회하지 말아요. 아프다고 징징거리지도 말고.
벤은 유령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의 옷을 벗겨 냈다.
‘이게 웬 떡이냐.’ 벤이 덮쳐 온 순간 마크는 속 좋게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등이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닿자 유령은 성적 판타지에서 깨어나 현실을 생각해야 했다. 마크는 벤의 가슴을 밀어냈다.
“여, 여기서 할 건가?”
벤이 바닥에 누워 있는 유령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청년의 눈동자에서 푸른빛이 흘렀다. 유령은 인간의 눈이 고양잇과 짐승처럼 광채를 뿜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겁먹었다. 그러나 그런 하찮은 두려움 때문에 벤이 먼저 자신을 눕힌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불만 있어요?”
“아니, 불만 없네. 잠깐만 마음의 준비만 하고 바로 속개하지.”
다소곳하게 가슴에 손을 모으고 있던 유령은 허겁지겁 오렌지 색 약병 뚜껑을 열고 알약 두 알을 빛의 속도로 삼켰다. 유령이 어차피 효과도 없을 걸 알면서 비아그라를 삼키는 게 맘에 들지 않아 벤은 인상을 찡그렸다.
“오케이, 준비 끝. 엉덩이 벌려요.”
“?!”
마크가 멍청한 눈으로 벤을 응시했다. 발정 나 달라붙을 때는 언제고 멍석을 깔아주니 정작 어수룩하게 구는 유령을 보고 벤은 혀를 찼다. 벤은 자신의 두툼한 겉옷을 벗어 유령의 몸 아래 깔았다. 달빛 아래 드러난 단단한 상반신에 마크는 꿀꺽 침을 삼켰다. 유령은 손을 뻗어 청년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단단한 근육질의 감촉이 뿌듯했다.
“밝히긴.”
벤의 비난에 그를 바라보던 마크의 얼굴에 황홀한 빛이 흘렀다. 푸른 눈엔 기대감이 반짝였다. 당장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다. 벤은 상대를 실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마크의 바지를 사납게 벗겨 내고 유령의 앙상한 두 팔을 아래로 이끌었다. 마크의 손은 엉덩이에 안착했다. 벤의 말을 뒤늦게 알아들은 유령의 상반신과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내가 그럴 맘이 들게끔 해봐요.”
당신이 나한테 했던 흉측한 짓들을 마음껏 풀어놓을 기회예요. 벤은 유령의 귀에 대고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관능적인 말투를 흉내 내는 어색한 말투에 유령은 확신했다. 벤은 포르노그래피 속 남자 주인공처럼 굴고 있었다.
“벤, 혹시 지금…….”
“만월에 옥상 위에서 늑대 인간과 정사를 벌였던 그 내용 맞아요.”
마크는 벤이 구술해줬던 포르노 속 내용을 떠올렸다. 벤이 그 내용대로 해주겠단다. ‘할렐루야!’ 포르노의 내용을 떠올리자 마크는 입안이 마르고 열이 올랐다. 벤과 마크가 함께 봤던 건 만월이면 늑대 인간이 되는 주인공이 자신을 잡으러 온 사냥꾼과 경찰 등을 차례로 먹어치운다는 내용의 판타지였다. 마크는 늑대 인간을 쫓아 옥상까지 따라왔다 결국 수난을 당하게 된 피해자, 경찰관 2에 자신을 대입했다. 처음에는 비명을 지르며 반항하다, 결국 녹아내려 스스로 엉덩이를 벌린 채 애원하던 금발머리 남자. 로션도 안 썼을 텐데 얼마나 안이 잘 젖는지 나중엔 성기가 파고들고 빠질 때마다 질척거리는 소리가 났었다. 자지러지던 남자의 쾌감에 찬 신음이 아직도 생생했다. 유령은 자신의 노력이 엉뚱한 데서 결실을 맺은 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다리, 더 벌려요.”
벤이 마크의 다리 사이에 파고들었다. 청년은 상대의 두 다리를 넓게 벌리며 포르노 속 남자 배우와 똑같이 대사를 쳤다. 마크는 황홀한 표정으로 멍청히 입을 벌렸다. 제정신이라면 폭소했을 테지만 열이 오른 상태에선 험악한 기운을 품은 낮은 목소리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했다. 마크는 이성이 점차 멀어지는 걸 느꼈다. 그는 몽롱하게 풀린 눈빛으로 청년을 응시하며 마른 입술을 핥았다.
“허리 들고.”
마크는 벤의 명령대로 허리를 들어 올렸다.
마음은 당장에라도 만리장성을 쌓을 기세였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허리가 무거워서 들어 올렸다 도로 떨어뜨렸다. 힘 빠진 팔로 지탱하기엔 하반신이 예상보다 무거웠다. ‘끙차’ 힘을 내려고 뱉은 노인 같은 신음에 벤의 얼굴이 고약하게 구겨졌다. ‘안 돼!’ 마크는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하늘에서 떨어졌던 떡이 도로 하늘로 올라갈까 다급해졌다. 엉덩이를 벌리고 있던 한 손으로 허리를 받쳤다.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벤이 그 손을 쳐내 다시 둔부로 옮겼다.
“엉덩이나 잘 받쳐요.”
“벤-.”
마크는 안타까움에 청년의 이름을 불렀다. 자신도 경찰2처럼 잘하고 싶었다. 두 다리를 넓게 벌린 채 요가 코치 저리 갈 정도의 유연함으로 허리를 굽히고 상대의 성기를 받아들여 그것이 들고 나는 모습을 그대로 관찰할 수 있는 음란한 체위를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불가능했다. 몸이 달아서 다리와 엉덩이를 벌린 채로 마크는 허리만 들썩였다.
“성급하긴.”
벤이 사악하게 웃는다. 마크는 꿀꺽 침을 삼켰다.
벤은 빠르게 벨트를 풀었다. 바지를 벗으며 그는 다른 손으로는 유령의 성기를 주물렀다. 포르노를 보니 받아들이는 쪽을 먼저 한 번 가게 한 뒤 몸이 부드러워지면 삽입을 하는 것 같았다. 유령이 벤의 손이 닿을 때마다 할딱거리며 가슴을 들썩거린다. 헤테로인 벤의 눈에도 그 모습이 꽤 선정적으로 보였다. 오른손 엄지로 엉덩이 안, 굳게 닫혀 있는 입구를 문질렀다. 마찰로 발갛게 물들어 움찔거리는 근육의 음란한 움직임 덕에 벤은 충분히 할 맘이 생겼다. 그는 천천히 속옷을 내렸다.
“…….”
마크는 멍청히 입을 벌렸다.
오른쪽 -8.5 왼쪽 -7의 고도근시인 그의 눈에 벤의 다리 사이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은 검붉은 덩어리가 비쳤다. 난시가 있기에 윤곽이 뿌옇게 흐려져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이나보다고 유령은 생각했다. 아무렴 그렇지 사람의 다리 사이에 저런 무식한 게 달려 있을 수는 없었다. 저게 자신의 몸 안에 들어온다고? 마크는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에서 손을 놓고 허리를 뒤로 뺐다가 벤에게 찰싹, 손등을 얻어맞았다. ‘……크, 크면 클수록 좋은 거지. 암, 좋을 거야.’ 수많은 포르노 속에서 바텀들은 거대하고 실한 페니스를 찬양하지 않던가. 마크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눈을 감아도 어른거리는 거대한 살덩어리 때문에 청년의 체온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벤은 마크의 발목을 잡고 불쑥 들어 올렸다. “흐!” 놀란 유령이 헛숨을 들이키는 게 귀여웠다. 그는 마크의 성기와 가슴을 거칠게 주무르며 넓게 벌린 다리 사이를 파고들어 회음과 엉덩이골 사이를 자신의 허리와 성기로 문질렀다. 비벼지는 살덩어리의 뿌듯한 부피감에 마크는 눈을 깜빡였다. 유령은 중얼거렸다.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다. 얼핏 한 측량이 정확한 것이었다. 베네딕트 쉘턴 2세는 거대했다.
벤이 마크의 발목을 쥐고 들어 올려 무릎을 가슴에 닿을 정도로 눌렀다. 몸이 들려 발갛게 달아오른 엉덩이가 위쪽으로 쳐들어 졌다. 무릎 뒤가 당겨 눈물이 찔끔 났다. 불행히도 마크의 몸은 선천적으로 매우 딱딱했다.
“어흐흐어으-!”
마크는 자신도 모르게 죽는소리를 냈다. ‘우드득’ 허리 근육이 놀라 비명을 지르는 소리에 벤은 장면을 다르게 찍어야 함을 깨달았다. 창백해진 채 허리를 부여잡고 있는 마크에게 벤은 새로운 체위를 제안했다.
“개처럼 하는 게 좋다고 했죠?”
벤의 말에 마크는 눈물을 닦으며 반색했다. 늑대 인간 시리즈 속 자세는 초보자가 하기엔 지나치게 난이도가 높은 것이었다. 벤과 마크는 후배위로 자세를 바꾸자고 합의했다.
그러나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등을 눌린 자세로서는 저항이 어려웠다. 게다가 등 뒤의 벤은 마크의 표정을 전혀 살필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을 마크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헤매는 게 전문인 유령은 미래의 일은, 그 일이 겨우 5분 뒤의 일임에도 예측하지 못했다.
유령의 허리를 꽉 잡고 벤이 포르노 업계의 황태자처럼 거만하게 물었다.
“어떻게 해줄까요?”
“세게, 깊게, 거칠게. 지옥 탕처럼 뜨겁게.”
유령이 어설프게 포르노를 흉내 낸다. 벤은 폭소를 누르느라 입매에 힘을 줬다.
“후회하지 마요.”
울어도 안 멈춰요. 청년이 왜 똑같은 경고를 두 번씩 반복하는지 유령은 곧 몸으로 알게 되었다.
“……벤! 하윽, 너무 커! 몸이, 몸이……망가져! 아, 아흑! 아, 안 돼!”
마크는 부들부들 떨며 울부짖었다.
“마크, 너무 부추기지 말아요.”
벤은 음란하게 흐트러지는 유령의 귀를 깨물며 타박했다. “아, 아냐!” 유령이 높은 신음 소릴 내며 허리를 비틀었다. 그 자극적인 모습에 유령의 안에서 벤의 분신이 좀 더 부풀었다.
“그만 ……안 돼 거기, 넓어져! 아, 아앗! 아!”
마크가 음탕한 소리를 내뱉으며 허리를 뺐다. 유령의 도발에 가만있을 벤이 아니었다. 멍이 들 정도로 강하게 허리를 잡아채자 유령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도망치려 했다. 빨개진 목덜미와 땀에 젖은 등줄기에 벤은 침을 삼켰다. 왼손으로 받치고 있는 유령의 가슴을 주무르며 작은 갈색 유두를 세차게 비틀었다. 유두가 멍울져 단단해지고 뾰족해지는 감각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가슴의 아픔에 유령이 뒤쪽으로 몸을 물렸다. 벤은 그의 품으로 파고드는 유령을 반갑게 맞이했다. 양손으로 잘록한 허리를 고정하곤 빠르게 움직였다.
“아파, 아, 아! 안이, 아흑, 터질 것 같아!”
마크가 흐느끼며 포르노 속 전형적인 대사들을 뱉어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벤이 무덤덤하게 봤던 포르노 속 장면보다 훨씬 야했다. 영상 속 사내들은 벤에게 조여드는 수축감도, 말캉하고 부드러운 감촉도, 훅 끼쳐오는 열기와 땀도 주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마크가 아니었다. 자신을 몰래 좋아했다던 주책없는 유령이 벤의 몸 아래 눌려 바르작대고 있었다.
다리 사이로 벤의 몸을 받아들인 채 괴로움을 호소하는 모습에 벤은 쉽사리 이성을 잃었다. 사내의 몸에 거부감이 들긴커녕 좁다란 근육이 잘라먹을 듯 조여드는 감촉은 벤에게 어지간한 여자에게서 맛보지 못했던 쾌감을 선사했다.
그는 ‘은혜 갚은 벤’이 되기로 했다. ‘세게, 깊게, 거칠게. 지옥 탕처럼 뜨겁게.’ 마크가 부탁했던 사항들을 표어처럼 되새기며 벤은 최선을 다했다. ‘전진, 전진!’ 그의 아래에서 마크는 자지러지며, 숨 막힐 정도로 달콤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너무 세! 아파! 아, 안 돼. 그만, 찌르지 마. 제발 살려줘. 죽을 것 같아. 아, 흑, 그만, 너무 깊어. 아앗! 그만, 더 못 견디겠어!”
저런 낯 뜨거운 소릴 아무렇지 않게 뱉을 수 있는 걸까. 벤은 마크에게 감탄했다. 벤은 유령이 자신의 숨겨진 취향-침대 위에서 적나라하게 욕망을 드러내는-을 알고 저러는가 싶었다.
마크가 등 뒤로 손을 돌려 벤과 자신이 결합된 부위를 직접 확인했다. 그 노골적인 모습에 벤은 훅, 눈앞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그는 마크의 팔목을 잡아 끌어당기며 유령의 몸 안에 깊게 파고들었다.
“아악!!”
내벽이 조여들며 벤에게 고통에 가까운 강렬한 쾌감을 안겼다. 벤은 달뜬 목소리로 유령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당신, 죽여줘요.”
“!”
흥분이 지나쳤는지 마크가 바르작거리며 벤의 손등을 깨물었다. 그것이 벤을 연이어 흥분시켰다. 발갛게 달아오른 연한 속살이 벤을 맞이한 채 놓아주지 않으려는 걸 벤은 한계까지 뽑아내었다 도로 밀어 넣었다. 작살에 맞은 것처럼 펄쩍 휘어지는 등줄기에 고통과 닮은 쾌감의 흔적이 역력했다.
……그건 모두 벤의 착각이었다.
“으허으아아아!!! 너무 커! 몸이, 몸이……! 아이고!”
마크는 끙끙거리며 죽는 소릴 냈다. 벤이 귀에 대고 뜨거운 숨을 내뿜으며 웃었다.
“마크, 너무 부추기지 말아요.”
벤의 목소리에 마크는 부르르 떨며 상대를 저주했다. 누가 누구를 부추긴단 말이냐. 기막힌 소리에 혈압이 상승해 자신도 모르게 뒤를 조였다. 벤이 쾌감에 찬 신음을 뱉은 뒤 움직임을 재개했다. 리드미컬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에 마크의 입에서는 꺽꺽거리는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인간적으로 너무 아팠다.
마크는 자신이 온몸이 저릴 정도로 강렬한 쾌감에 함몰당해 포르노 속 바텀들처럼 앙앙거리게 될 거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물론 맨 처음부터 기분 좋아지지 않다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두 개의 성기를 받아내던 존경스러운 남자도 처음에는 아파하지 않았던가. 마크는 자신이 꾹 참으면 벤이 거칠게 입구를 풀 때 느꼈던 불쾌한 통증과 선단을 집어넣었을 때 몸이 갈라질 것처럼 아팠던 대가를 받아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다. 지옥은 짧고 천국은 길게 이어지리.
‘헤븐!!’
그러나 천국은 야멸치게도 멀었다.
벤이 가슴이나 성기를 애무해줄 때면 살짝 보였던 가나안 평원이 벤이 무식하게 안을 쳐대기 시작하자 1만 광년 저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마크는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애써 머릿속으로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포르노 내용을 되새기며 손톱 조각만 한 쾌감을 필사적으로 부여잡으려고만 하면 벤이 짐승처럼 움직여 배 안을 온통 헤집어 놨다.
마크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죽는소릴 했다. 벤의 거친 움직임에 부어오른 입구가 쓰라리고 뜨거워 견디기가 어려웠다.
“뜨거워! 하, 그만…… 윽…… 너무 쓰라려. 아, 아파…… 싫어…….”
단순히 하소연을 했을 뿐인데 베네딕트 쉘턴 주니어가 몸 안에서 더 커졌다. 마크는 자신의 내장이 내용물을 채워 넣어 빵빵해진 소시지 모양이 됐을 거라 생각하며 떨었다.
신경이 밀집된 연약한 곳을 각도를 달리하며 여기저기 깊게 쑤셔대는 통에 눈앞이 하얘지며 의식이 혼몽해졌다. 너무 아파서 저절로 우는 소리가 목구멍에 걸렸다. 벤의 것은 자신이 감당하기에 너무 컸다. 엉덩이 안이 터져 나가고 몸이 망가질지도 몰랐다. 정신이 반쯤 날아가 마크는 자신이 무슨 말을 뱉는지도 모르고, 되는대로 살려 달라 애원했다. 역효과였다. 마크의 말에 벤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좋아하며 마크를 흔들어댔다. 사위가 허옇게 질렸다.
울고, 애원하고, 마지막으로 자기 손으로 직접 청년의 몸을 떼어내려고도 했지만 모두 청년의 완력 앞에서 수포로 돌아갔다.
“어흐어흐-.”
비명은 끝내 훌쩍임으로 변했다. 벤이 음모로 발갛게 쓸린 엉덩이를 대견하다는 듯 두들겼다. 얄미워 마크는 벤의 손등을 깨물었다가 그보다 배로 아프게 난도질당했다.
‘벤, 넌 악마야…….’
허물어지는 의식을 느끼며 마크는 이곳이 지옥이라는 자신의 추측이 맞아떨어진 것을 슬퍼했다.
* * *
“여기가 지옥이야…… 여기가 지옥이야…….”
침대에 누운 채 유령은 퍼렇게 질린 얼굴로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명백한 시위다. 한마디 하려다 벤은 시체보다 해쓱한 안색으로 송장처럼 누워 있는 마크를 보고 고개를 돌렸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안 뜨일 정도로 부어터진 얼굴을 마주 하고 ‘당신이 하란 대로 해줬는데 뭐가 불만이냐.’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통증은 좀 가셨어요? 당신 말대로 진통제는 그대로 있는데.”
벤은 벽장 안을 뒤져 알약을 찾아냈다. 마크의 말이 사실이었다.
“무슨 통증? 내 가랑이 사이에서 올라오는 지독하고 잔인한 동통?”
“아뇨, 당신이 옥상으로 올라가게 만들었던 통증이요.”
“내가 뇌는 고통을 선택한다고 말했지. 자네 덕에 병으로 인한 통증 따윈 느낄 기운도 없어.”
“불행 중 다행이네요.”
분노한 유령의 눈에서 시퍼런 불빛이 폭사했다. 벤은 두어 걸음 뒷걸음쳤다.
“그렇게 아파요?”
유령이 주먹으로 침대를 치며 벌떡 상반신을 일으켰다.
“수술 후 통증이 그냥 커피라면, 이 고통은 더블 샷 에스프레소야!”
분연히 일어나 분노를 터트렸던 유령이 삼 초도 안 되어 축 늘어졌다. 벤은 마크가 몸을 눕히다 놀라 움칠거리는 걸 봤다.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몸을 떠는 게 어떤 상황인지 바로 감이 왔다.
“저, 그건 좀 급한 상황이었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콘돔도 없이, 유령을 상대로, 옥상에서!”
마크는 안에다 해버린 상대의 배려 없음을 비난했다. 유령이라 그나마 다행인 것 아니냐고 벤은 지적했다.
“유령이니까, 뒤처리를 안 해도 저절로 사라지는 것 아닐까요?”
벤은 벽장을 가리켰다. 마크가 입을 떡 벌렸다.
“자넨, 내 엉덩이가 무슨 웜홀 입구인 줄 아나?!”
마크는 청년의 멍청함에 치를 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른발까지는 괜찮았는데, 왼발까지 내려놓자 허리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허으으윽!’ 말 못 할 곳의 고통에 몸을 둥그렇게 말고 허덕이자 벤이 다가와 부축해주었다.
“미안해요, 당신이 그렇게 경험이 없는 줄 몰랐어요.”
“나도 자네가 그정도로 못할 줄은 몰랐네!”
벤이 불만스러운 눈으로 유령을 흘겨봤다.
“나는 못하지 않아요. 당신 몸이 문제죠.”
“내가 어때서, 자네 몸이 문제지.”
유령은 이를 갈았다. 말도 아니고, 인간인 주제에 그리 험악한 걸 가랑이 사이에 키울 수 있을까. 무식하게 커다란 물건으로 신체 가장 연약하고 비밀스러운 부위를 후비고, 들쑤시는 행위는 고문에 가까웠다. 벤이 오만한 얼굴로 유령을 내려다보며 맞받아쳤다.
“당신의 벤자민도 나 같은 훌륭한 물건을 가졌을 거라고 했잖아요.”
“내가 잠시 실성했지. 벤자민은 자네와 달라. 그의 주니어는 좀 더 날렵하고, 우아하고, 스마트할 거야. 어렵지 않게 전립선을 찾아내 목표지점을 향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착지할 수 있을 정도로! 자네의 무식하고 성능 나쁜 주니어랑 같지 않아!”
어젯밤, 자신을 사랑했다는 마크의 고백에 내심 마음이 뭉클했던 벤은 ‘내비게이션 기능을 탑재한 벤자민 기옌의 주니어’를 찬양하는 교수의 망언으로 현기증이 일었다. ‘저런 사람한테 마음이 동해 짐승처럼 굴었으니…….’ 벤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러게 오해할만한 말을 왜 해요. 당신이 얼마나 음란하게 칭얼거렸는지 알아요?”
벤은 유령을 안아 올리며 물었다. 정신 나간 교수가 자신에게 잘하느니 못하느니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건 분했다. 그러나 마크가 아픈 건 분명 벤 탓이었다. 형편없는 안색으로 식은땀을 흘리는 사람을 욕실에 혼자 가게 할 수 없었다.
“나는 사실 그대로 말했을 뿐이야!”
“포르노 대사랑 똑같은 소릴 하는데 누가 오해하지 않겠어요.”
“……우주 평화와 인류 복지를 위해 게이 포르노는 다 태워버려야 해.”
“그래요? 난 보길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당신 말처럼 결국 사달이 나긴 났잖아요.”
무심한 벤의 말에 마크의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벤은 모른 척, 유령을 욕실로 날랐다.
벤은 욕실 밖으로 쫓겨났다. 불만족스러운 섹스는 마크를 가시 세운 고슴도치로 만들었다. 오만 신경질을 다 내며 벤을 쫓아낸 뒤 마크는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잘 걷지도 못하는 남자가 넘어지기라도 할까 싶어 벤은 욕실 바깥에 대기하고 있었다. 유령과 샤워, 기괴한 조합이라고 생각하면서. 욕실 안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마크는 몸을 씻는 걸 벤에게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우스꽝스럽긴 해도 어찌 됐든 몸을 나눈 사이인데 선을 긋는 게 벤에게는 신기한 일이었다. 정신을 잃었던 교수가 깨어나자마자 자기 몸을 가리고 얼굴을 붉혔던 게 떠올랐다. 말로는 무진장 밝힐 것 같던 양반이 정신을 차리자 부끄러워하며 꽤 귀엽게 굴었다. 굶주려 달라붙던 평소의 모습과 의지를 벗어나 제멋대로 반응하는 몸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서툰 모습의 차이가 퍽 귀여웠다.
욕실 안에서, 마크 역시 A와 B 사이의 간극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현실과 로망은 다른 거였어. 천국은 아니더라도 홍콩까지는 가고 싶었는데.’ 마크는 안타까움에 꺼이꺼이 울음을 삼켰다. 한꺼번에 너무 멀리 날아가려 욕심을 부린 게 화근이었다. 초보자면 초보자답게 부드럽게 해 달라 해야 했다. ‘세게, 깊게, 멈추지 마!’ 이런 말을 벤 같은 남자에게 한 게 실수였다.
저승과 이승을 왔다 갔다 하던 교수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허리를 부여잡고 지옥 밑에서 올라오는 것 같은 신음 소릴 뱉었다. ‘아무리 유령이라지만 마사지 정도는 해줬어야 했나.’ 벤은 욕실 밖에서 뒤늦게 생각했다. 타이밍 좋게 욕실에서 ‘으허허흐흑’ 하고 사람 죽어가는 신음이 들려왔다.
“마크, 많이 아파요?”
물소리와 함께 원한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이라고 해? 이 외계인, 다리 사이에 그런 괴상한 걸 키우다니. 이 망할 자식!”
“마크, 미안해요. 위로가 전혀 안 된다는 건 아는데, 중요한 걸 잊지 마요. 당신은 유령이에요. 당신 통증은 당신 영혼이 사기 치고 있는 거고 실제는 아닌…….”
“너 뒤로 사내를 받아내 봤어? 인간의 신체 중에 가장 취약한 급소를 내놓고 한밤 내 바이킹 타듯이 흔들려 봤어?”
“아뇨.”
“안 해 봤음 말을 마.”
마크의 목소리에 분기가 어릴수록 벤은 어째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다. 벤은 욕실 안에서 교수가 어떤 자세, 어떤 표정으로 분노를 터트리고 있을까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엉덩이 안을 씻어내며 씩씩대봐야 전혀 위협이 안 된다.
욕실 안에서 유령이 한탄했다.
“이상하다 했어. 나한테 그런 좋은 일이 있을 리 없잖아. 완벽하게 자유로운 삶에, 포르노는 잔뜩 쌓여 있고, 근육질의 귀여운 남자는 내 시중을 다 들어주면서 내가 원하는 걸 다 해주는 거야. 귀엽고 말랑말랑한 일상이 내게 주어질 리가 없지. 뭔가 끔찍한 반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것일 줄이야.”
욕조 안에서 낮고 크게 울리는 마크의 목소리는 연극배우의 것처럼 구슬펐다.
“근육질의 귀여운 남자는 날 가리키는 건가요?”
욕조 안이 고요해졌다.
유령은 부끄러워하고 있을까, 이를 갈고 있을까. 궁금해하며 벤은 계속 말했다.
“현실은 참담했군요. 암환자처럼 매일 아프기나 하고, 바랬던 탈버진의 경험은 실력도 없이 무식하게 힘만 센 근육 바보 때문에 허리만 작살난 채 끝나버렸고요.”
“정확해.”
벤은 웃어버렸다.
유령은 씩씩했다. ‘다시 기운을 차렸군.’ 벤은 피식거렸다. 죽는시늉을 하긴 했지만, 마크는 수술 후 통증과 항암 치료 당시 부작용의 기억을 고스란히 떠올리며 축 늘어졌던 어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킬킬대던 벤은 욕실 맞은편에 걸린 칠판을 발견했다. 그는 해프닝에 잠시 잊고 있었던 내용을 훑어보았다.
1. 억눌렸던 욕망의 발현, 남색
2. 알바, 그녀의 정체
3. 하필 지옥에 갈 거라 생각하는 이유는?
4. 마크가 반복해서 꾸는 꿈
5. 유령의 통증
A. 어린 시절
B. 알바와 만남, 그녀의 죽음
C. 벤자민을 찾아갔던 날, 끝내 그를 찾지 못하고 길을 헤맴
‘왜 마크는 유령이 됐을까.’
마크는 그 이유를 자신이 지옥으로 떨어져야 마땅하므로, 죽음 뒤에도 충분히 고통받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건 너무 잔인하고 작위적인 답안이다. 벤은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흐으, 흐으…….’ 신음만은 특정 업종 배우 못지않은 마크가 무얼 하는지 잔뜩 억눌린 소릴 내고 있었다. 벤은 욕실 문을 두들겼다. 노크 소리에 욕실 안 움직임이 딱 멈췄다.
“마크, 단순하게 생각해요. 당신은 생전에 미처 당신이 못했던 어떤 일 때문에 유령이 된 걸 거예요.”
“난 포르노를 보진 못했지만, 소리는 충분히 들었고, 남자랑 잠도 잤어. 그런데 아직도 유령이군.”
씻는 작업이 생각보다 힘든 걸까. 뭘 했는지 잠깐 사이 잔뜩 갈라지고 뾰족해진 목소리로 마크가 답한다. 물기 어린 목소리에 벤은 간밤의 기억이 떠오르는 걸 느꼈다.
“벤자민이랑은 안 했잖아요.”
대답 대신 물소리가 커졌다. 벤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마크가 ‘죄, 지옥’이라고 쓴 글귀를 지우고 그 옆에 ‘벤자민’이라고 썼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봐요. 당신은 벤자민과 만나고 싶어서 유령이 됐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싶었던 욕망 때문에 몸이 달았던 거고. 이게 더 적합한 설명 아닐까요?”
긴 침묵 뒤 마크가 재차 고집을 부렸다.
“나는 지옥에 떨어지려고 잠시 이곳에 머무르는 거야.”
“지옥에 가기 전에 스톱 오버할 필요가 있어요? 곧바로 직행이지.”
“림보란 데가 있어. 예수 이전의 죄는 없지만, 원죄를 대속 받지 못해 지옥으로 가야 하는 영혼들을 위한 중간 지옥이. 애매한 영혼들이 모이는 그런 지옥도 분명 있을 테지.”
“당신은 당신이 지옥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당신이 지옥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곳이 지옥이라 생각해요. 틀렸어요. 그건 모두 당신 생각이에요. 마크, 당신은 이미 죽었고, 과거의 삶에서 벗어났어요. 지금의 당신은 암에 걸리지도 않았고, 환자도 아니에요. 유령이 통증을 느끼는 일은 없어요. 당신은 단지 그럴 거라 믿고, 스스로 건 암시에 빠져 그렇게 느낄 뿐이에요. 자기 암시에서 벗어나서 당신 모습을 봐요. 당신은 젊고, 건강하고 아름다워요.”
“…….”
욕실 안에서 벤의 말을 듣고 있던 마크는 청년의 말에 씻던 걸 멈췄다. 그는 김이 서린 거울을 닦아냈다. ‘건강하고 아름답다고? 내가?’ 기가 차 웃음이 나왔다. 벤의 말은 터무니없었지만,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나쁜 시력 탓에 눈을 잔뜩 좁히고 거울에 달라붙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기분 탓인지 무언가 어른거리는 것 같아 긴장감에 심장이 죄어든다.
두려웠다. 죽음 직전의 푸르고 검은 안색의 늙은이가 공허한 눈을 들어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을까 봐 거울을 똑바로 보기 어려웠다.
거울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마크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젊어요. 물에 젖은 머리칼이 이마에 찰싹 달라붙고, 커다란 푸른 눈은 맑게 빛나고 있어요. 얇은 입술은 주름이 져 있고 턱은 날렵해요. 흰 피부 탓에 제대로 안 깎은 수염 자국이 턱과 목덜미에서 제법 푸릇하게 도드라지네요.”
욕실 바깥에서 벤이 거울에 비치지 않는 유령을 위해 그의 모습을 말해주었다.
“전반적으로 마른 몸이지만 볼품없지 않아요. 쇄골은 모양 좋게 뻗어 있고, 가슴 근육은 적당히 융기해 있어요. 허벅지는 꽤 단단하고, 종아리는 유연해요. 엉덩이는 찰싹 달라붙어서 예뻐요. 엉덩이부터 허벅지 뒤쪽에 어제 내가 남긴 자국들이 꽤 많이 남아 있을 걸요.”
“!”
마크는 고개를 돌리고 뒤를 돌아봤다. 당연히 엉덩이와 허벅지 뒤쪽은 전혀 안 보였다. 무릎 뒤가 욱신거리는 걸 봐서 거기 잇자국이 남아 있단 것만 짐작할 수 있었다.
“……맙소사.”
몸을 살피다 마크는 허리 양쪽에 떡 하니 자리 잡은 커다란 손자국을 발견했다. 벤이 손을 갖다 대면 탁본 찍은 것처럼 그대로 들어맞을 것이다.
어젯밤, 차가운 유령의 영혼에 닿았던 청년의 체온이 생각났다. 그것은 지나치게 뜨거웠다. 의식을 찾은 뒤 청년을 본 순간 마크는 지난밤의 열기가 떠올라 숨이 막혔다. 통증 때문이 아니라 실은 그 지독했던 열기에 대한 기억 때문에 도저히 청년의 눈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유령은 자신의 허리와 팔, 가슴과 쇄골 등을 어루만졌다. 탄력 있는 근육과 강건한 뼈대로 이루어진 젊은 몸이 느껴졌다. 그것은 그가 육십여 년을 지고 살아온 몸과는 달랐다.
죽음과 맞닿아 비틀거리다 종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늙은 몸이 아니었다. 하얗게 살갗이 일어나고, 각질이 벗겨져 붉은 속살이 드러나 피가 맺히던. 뼈는 조그만 충격에도 금이 가고, 내장이 썩어들어가던 악취에 구역질하게 만들던, 뼈와 거죽만으로 남았던 그 몸을, 자신은 더는 두르고 있지 않았다.
그랬기에, 벤은 그를 혐오스러워하지 않고 나아가 기꺼이 안을 수 있었던 걸까.
수많은 상상 속에서 마크는 벤자민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꿈속에서 벤자민은 마크의 옷을 벗긴 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몸에 거부감을 느끼며 물러나 버렸다. 벤자민은 오래전 햇빛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알바의 낡은 몸을 보고 흥분이 식었던 마크처럼 굴었다.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벤이 자신의 몸에 욕정해 그토록 날뛰었다는 게 마크는 실은, 신기했다.
욕실 바깥에서 벤이 계속해 말을 이었다.
청년은 유령에게 암시에서 벗어나란 말을 반복했다. 당신은 늙지 않았어요. 당신은 아름다워요. 마크는 젖은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벤이 별생각 없이 주워담고 있을 게 빤한 소리에 미련하게 가슴이 설렜다. 벤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계속해 들려왔다.
“당신은 정상이에요. 추위도 느끼지 않고, 실은 아픈 것도 아니죠. 그리고…….”
벤은 눈을 깜빡였다. 마지막 말은 할까 말까 고민했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사항이라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발기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에요.”
마크가 하반신만 가린 채 문을 벌컥 열었다.
“자네가 밀가루 반죽 문지르듯 마구 쳐대니까 그렇지! 아파서 부은 거야!”
벤은 마크의 분신이 자신의 손안에서 꿈틀거리던 감촉을 떠올렸다. 그걸 아파서 부었다고 표현하다니, 말도 안 되는 변명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약 때문에 그런 거야!”
“진통제도 안 듣는 몸이, 비아그라는 들어요?”
벤의 이죽거림에 마크가 입을 다물었다. 벤은 시선을 피해 눈을 내리깐 남자의 눈꺼풀을 응시했다. 여자들처럼 눈 화장을 한 것도 아닐 텐데 섬세하게 주름진 속꺼풀이 금빛으로 오묘하게 반짝거렸다. 메이크업이 묻어나는지 한번 만져보고 싶어졌다. 숱 짙은 속눈썹과 그 아래 숨어 있는 푸른 눈의 아름다움에 놀랐다가 벌어진 얇은 입술에 마침내 시선을 빼앗겼다. 벤은 넋 놓고 탐닉하듯 상대를 바라보았다. 마크의 눈이 이토록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던 게 신기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유령이 벤을 곁눈질하며 눈을 깜빡였다.
벤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핥는 듯한 상대의 시선에 마크가 크게 눈을 깜빡거렸다. 얼굴은 무표정한데 귀만 새빨개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발달한 광대뼈와 뺨이 붉게 물드는 걸 벤은 놓치지 않았다. 벤은 마크의 피부밑에서 열기가 피어오르는 걸 감지했다.
“여기가 당신 말대로 지옥이라면, 나는 뭘까요.”
“지옥엔 늘 희망 고문의 존재가 있는 법이야.”
마크가 말하고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벤이 자신에게 꽤 비중 있는 존재라는 걸 자백해버렸기 때문이다.
벤이 유령의 허리를 잡았다. 자신의 손자국이 남은 곳이었다.
“내기할래요? 난 당신 몸이 건강하고, 건강하게 잘 기능한다고 여기는데.”
“무슨 뜻이야?”
“한 번 더 해보면 확실히 알겠죠.”
놀란 유령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벤을 올려다보았다. 커다랗고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가 벤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많이 하면 좋아진대요.”
유령이 두려움과 욕정이 섞인 눈빛으로 벤을 응시했다. 유령의 얼굴을 끌어올려 벤은 장난을 걸듯 짧게 입 맞추었다.
침대 위 젖은 몸을 눕히고, 벤은 마크에게 깊고 부드러운 키스를 했다.
놀라 몸을 굳혔던 마크가 금세 평정을 되찾고 키스를 돌려주었다. 혀를 미끄러뜨리고 서로 부딪히고, 감아올렸다가 놓았다가, 풀었다가 다시 죄었다 했다. 벤이 입천장을 두들기자 마크가 눈썹을 움칠거리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좋아하는 곳이란 뜻이었다. 벤은 그 외에도 마크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입안의 곳을 찾아 꾹 누르고, 빨고, 잡아당겨 이로 잘근거렸다.
마크의 얼굴이 느슨해졌다. 가늘어진 눈매 속에서 열에 들뜬 눈동자가 벤을 응시해왔다. 벤은 그 눈빛에 답하듯 상대의 혀를 희롱했다. 날카롭고 집요한 키스와 함께 행해지는 부드러운 애무에 마크의 온몸이 들떴다. 머릿속이 멍해질 만큼 기분이 좋아졌다. 벤은 달콤한 신음을 흘리는 유령의 다리 사이를 갈라 넓게 벌렸다.
“벤…….”
마크가 청년을 부르며 헐떡였다.
떨어질 것 같지 않게 길게 이어지던 키스가 끝났다. 벤의 입술은 마크의 입술 밑 턱으로, 젖혀진 목울대로, 쇄골로, 복부로, 그리고 남은 곳을 찾아갔다. 벤은 움찔거리는 유령의 등과 허리를 꽉 끌어안고, 산소를 들이켜기 위해 거칠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상대의 가슴 위 갈색 유두를 핥았다. 여자의 것과 비교해서 거의 있으나 마나 한 흔적의 기관을 핥고 빨았다. 움켜쥔 채 주물러대자 서늘한 공기와 마찰 탓에 유두가 심지를 세우고 꼿꼿해졌다. 첨단 부분과 그 주변의 연갈색 부위까지 쭉쭉 소리가 나게 빨고 입안에서 굴렸다. 아플 정도로 늘였다 깨물었다 부드럽게 굴리는 걸 반복하자 납작하기만 했던 유륜이 몰린 혈액으로 부풀어 올랐다.
“남자도 흥분하면 여기가 통통해지네요.”
“으…….”
“지난번엔 여기 점이 있는 줄 몰랐는데.”
붉은 기가 퍼져 유두 아래 위치한 갈색 점이 도드라졌다. 점뿐만이 아니었다. 달빛 아래서 허겁지겁 해치울 때는 못 봤던 여러 가지가 불빛 아래서 확연히 드러났다. 울혈 진 채 타액으로 젖은 가슴과 긴장으로 꽉 조여든 마른 복부와 엉덩이가 들릴 정도로 넓게 벌어진 허벅지 사이 부드러운 살결이 보였다. 목덜미의 선을 따라 입술을 움직이며 벤은 물기로 젖어든 허벅지 사이로 자신의 허리를 밀어붙였다. 벤의 단단한 복부가 마크의 상반신을 덮었다. 간밤의 통증을 떠올린 유령은 화들짝 놀라 몸을 틀었다. 벤의 근육과 거죽이 실오라기 한 점 없는 맨살에 밀착되는 감각에 마크는 아찔함과 두려움을 함께 느꼈다.
벤은 고개를 돌려버린 사내의 귀를 혀로 핥고, 다시 한 번 꽉 껴안았다. 그것만으로 마크는 벤의 몸 안에 고스란히 갇히게 되었다. 흥분으로 팔딱거리는 경동맥 위에 입술을 대고 벤은 남자의 다리 사이로 두 손을 밀어 넣었다.
골반을 쥐고 주변을 부드럽게 문지르다 더 아래, 더 내밀한 곳으로 내려갔다. 벤은 마크의 성기를 양손으로 가볍게 쥐었다가 문질렀다 했다. 그때마다 성기가 살짝살짝 반응하며 두근거렸다.
“으……아아…….”
열이 올라 붉어진 입술이 벌어져 달뜬 숨을 뱉어낸다. 좀 둔하다 싶은 아래 사정에 비해 마크는 적극적으로 느끼고 꾸밈없이 신음했다. 벤은 마크가 어제 지옥을 보았다지만, 이대로 그를 거부하지 않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한 번 경험해 본 마크의 몸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실은 매우 좋았다. 유령의 괴팍하고 솔직하지 못한 성품 역시 꽤 귀여웠다. 한 번 하자는 유혹을 독특하게 하는 상대에게 훌렁 넘어가 버렸지만 그게 그리 싫지 않았다. 벤은 마크에게 욕정했다. 한 번 그의 몸을 안았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더 안고 싶었다. 더 흔들어놓고, 여전히 자신의 흔적을 안고 있을 몸 안을 열고 재차 자신의 체취를 묻히고, 그의 안을 흔들어 온통 자신의 것으로 채워 가장 깊숙한 곳에 낙인을 찍고 싶었다.
벤은 마른 손가락을 혀로 적셨다.
“아!”
꽉 다물린 주름을 검지로 문지르자 마크가 푸드득 몸을 떨며 놀랐다.
“약간 부었어요.”
“찢어지지 않은 게 대단한 거야.”
빨개진 얼굴로 지지 않고 한마디 하는 게 귀여워 벤은 풋 웃어버렸다.
“왜 웃어? -아!!”
벤은 마크의 몸을 옆으로 밀치고 그의 왼 다리를 들어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둔부 안 깊숙한 곳이 드러날 정도로 크게 다리를 벌리고 벤은 그곳에 검지와 중지를 넣었다. 어제 한 번 열렸던 곳은 처음보다 덜 빡빡하고 물기로 젖어 있어 들어가기 수월했지만 그건 순전히 벤의 판단이었다. 통증에 민감한 마크는 예민한 곳을 파고든 이물감에 놀라 허리를 들며 몸을 뺐다. 바짝 말라붙은 복부와 허리가 휘어지며 비틀리는 광경에 벤은 자신의 하반신이 반응하는 걸 느꼈다. 손길이 초조해졌다. 어깨 위 올려놓은 다리를 좀 더 들고, 벤은 마크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
벤의 입과 혀가 강하게 움직일 때마다 마크는 등과 목을 활처럼 휘었다. 그의 발바닥이 구부러지며 벤의 등을 문지르고 두들겼다. 푸른 눈 주변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벤, 벤……!”
“봐요. 멀쩡하잖아요.”
벤은 민감한 곳에서 입을 떼지 않은 채 짓궂게 놀렸다. 평소라면 벤의 말을 되게 받아쳤을 마크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온몸에 뻣뻣하게 힘만 줬다. 벤은 흥분의 기색이 여실한 마크의 성기와 주변을 핥아 질척이게 만들며 손가락으로는 그가 들어가야 할 곳을 풀었다. 예민한 곳을 혀로 자극하고 입술로 빨아들일 때마다 괄약근이 검지를 잘라먹을 듯 조여 왔다. 얇은 점막이 행여나 긁히지 않게 손가락을 회전시켜 빼냈다 도로 깊숙이 넣었다 하며 입구를 풀었다. 충분하다 싶어지자 손가락으로 입구를 늘려봤다. 속살이 넘실거리는 모습은 지나치게 음란해 벤의 숨을 들뜨게 만들었다.
앞과 뒤의 자극에 끝까지 몰려간 마크가 허리와 허벅지를 부들거리며 떨었다. 절정의 신호였다. ‘것 봐, 내가 뭐랬어.’ 벤은 입을 물리지 않은 채 더욱 깊고 강하게 빨았다. 그의 입안에서 꼿꼿해진 성기가 푸들거리고 꿈틀거리는 게 귀여웠다. 사내의 성기를 물고 절정으로 몰아가는 행위에 별반 거부감이 안 드는 게 신기했다. 그의 몸 아래서 무방비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상대의 모습이 오히려 벤을 더 흥분시켰다.
“놔, 놔! 아, 앗!”
벤의 머리칼을 잡고 밀어내려던 마크가 종내는 벤의 머리를 더 세게 잡고 자신의 아랫도리를 밀어붙였다. 새빨개진 얼굴로 의미 불명의 소리를 내뱉으며 마크는 벤의 입안에 사정했다.
너무 오랜만에 맛본 강렬한 감각에 유령은 몇 초간 정신을 잃었다. 반쯤 실신한 유령이 잠시 쉬게 내버려 둔 뒤 벤은 입안의 타액을 손바닥에 뱉어내 자신의 성기와 유령의 엉덩이골 사이에 발랐다. 액체들이 손가락 사이사이 맺혀 떨어지는 모습을 마크가 흐릿한 초점으로 바라봤다. 사정 뒤 몸이 달아올라 뜨겁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깊숙한 곳에 발리는 감각만으로 등줄기가 떨렸다.
손가락이 빠져나가고, 주름이 닫히기 전에 벤은 바로 밀고 들어갔다.
직장 안으로 뜨겁고 딱딱한 것이 파고들었다. 내장을 밀어 올리는 둔중한 부피감에 마크는 입을 벌리고 헐떡였다. 지난번처럼 몸이 두 쪽 날 듯 아프진 않았으나, 열리지 않을 곳이 부담스럽게 열리는 이물감은 여전했다. 타인의 뜨거운 체온이 여린 속살에 달라붙었다. 몸 가장 깊숙한 곳을 뿌듯하게 채우는 감각에 등줄기가 떨렸다.
“아으…….”
허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마크는 힘을 빼기 위해 호흡을 빠르게 뱉었다.
“좋아요. 잘하고 있어요.”
벤이 그를 칭찬했다. 마크는 자신을 아이 취급하는 애송이에게 무어라 한마디 하려다 대신 높은 신음만을 뱉었다. 벤이 강렬하게 파고들어 흔들어댔기 때문이다. 그는 마크가 준비되도록 꽤 오래 참았다. 이제는 마크가 참아야 할 때였다.
“아, 아!”
벤을 받아들인 곳이 불에 타는 것처럼 뜨겁고 쓰라렸다. 마크는 이를 악물었다. 밀착해 있는 아래쪽으로부터 탁탁, 하고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마다 상반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흔들리고, 깊은 곳이 열리는 감촉에 발끝이 벌벌 떨렸다. 여린 곳에 상대의 성기가 들어박힐 때마다 충격으로 눈앞이 번쩍거렸다.
내장 안을 가득 채운 걸로 모자라 더욱 부풀어, 꿈틀대는 성기가 이대로 안을 터트려 버리는 게 아닌지 겁났다. 두려움인지 흥분인지 모를 감각이 치받아 마크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허벅지 사이가 벤과 자신의 타액으로 질척였다. 오므려 닦고 싶은데 아래가 활짝 열려 힘을 줄 수 없었다. 한계까지 벌어진 골반이 위태로운 소리를 냈다. 불쾌감에 가까운 감각의 홍수 속에서 달콤한 감각이 연기처럼 희미하게 존재했다. 마크는 할 수만 있다면 그 감각을 잡아채고 싶었다. 사정 후 하얗게 차올랐던 쾌감을 다시 한 번 맛보고 싶다. 허리 아래가 녹아나던, 몸이 완전히 풀어져 버리던 부유감이 애달았다.
벤이 자세를 달리해 길게 빼고 얕게 치는 식으로 입구를 꿰뚫었다. 가장 굵은 부위가 입구를 쳐대는 아픔에 마크는 눈물을 흘렸다. 아픔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기는 힘을 잃지 않고 빳빳해졌다. 벤이 기분 좋게 웃었다. 묵직한 살덩이가 더욱 빠르게 출입했다. “!!” 마크는 애원하는 목소리로 신음했다. 입구는 아프고, 안쪽은 열을 내며 기괴한 간지러움으로 그를 괴롭혔다. 뇌가 더 강한 자극을 원했다. 차라리 아까처럼 성기를 핥고 강하게 빨아주면 좋겠다. 찌르고, 긁어주고, 더 깊은 곳을 무자비하게……. 그는 자신이 떠올린 생각에 놀라 몸을 떨었다. 본능적으로 조르려던 입을 다물었다. 서두르다 참혹한 결말을 맞은 경험은 어제 일로 충분했다.
벤은 변덕스러웠고 힘이 넘쳤다. 쑤셔 넣었다가 원운동을 하며 여기저기를 자극했다. 혼이 나갈 것 같았다. 마크는 안쪽을 들고나고, 휘젓고, 문지르는 감각에 취해 자신도 모르는 새 신음을 흘렸다. 기분 좋은 감각이 피어올랐다가 벤이 방향을 바꾸자 사라졌다. 찰나와 같았던 쾌감이 아쉬워 마크는 허리를 비틀었다.
“아! 안 돼……!”
흥분으로 붉어진 벤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여기군요. 이 앞쪽이 좋아요?”
“?”
벤은 허리 전체를 이용해 활을 쏘듯 반동을 주어 쳐올렸다. 마크의 골반에서 우둑거리는 소리가 났다.
“앗, 아! 아! 벤!!”
벤은 마크의 입술에서 신음이 터져 나오게 하는 데 성공했다.
“……아파요?”
“앗!”
마크가 세차게 도리질을 쳤다. 아파하는 것처럼 보여 당황했던 벤은 뜨겁게 달라붙는 점막의 움직임에 마크가 흥분한 걸 알았다. 여기가 맞다. 벤은 기분 좋게 웃었다.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장액으로 말캉해진 안을 성기로 휘젓는 감각은 어떤 상대와의 섹스보다 끝내줬다.
벤의 움직임에 맞춰 마크가 크게 입을 벌리고 높은 신음을 뱉어냈다. 평소 허스키한 목소리와 달리 신음 소리가 높았다. 성수를 끼얹었을 때 까마귀 우는 듯했던 3옥타브의 비명이 떠올라 벤은 웃었다.
“마크, 당신 목소리 때문에 미칠 것 같아요.”
“……이, 이상해? 아흐…… 차, 참을게.”
눈물 고인 눈으로 올려다보며 침을 삼키는 상대의 목덜미가 흥분으로 빨갰다. 벤은 기분 좋게 조여드는 안에 당장에라도 토해내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힘겹게 내뱉었다.
“너무 좋아서 자제가 안 돼요.”
벤은 한번 마음을 열어놓으면 한없이 친절해지는 남자였다. 마크는 어안이 벙벙했다. 벤이 다정한 눈빛으로 느끼한 밀어를 속삭이는 게 영 적응이 안 됐다.
“……노, 농담이지?”
“진심인데요. 제 아랫도리를 보고도 못 믿겠어요?”
“그게…… 아니라! 아, 아!”
벤이 짐짓 삐진 표정을 지었다. 청년은 새침한 아가씨 못지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하반신만큼은 짐승만큼 난잡히 움직였다. 마크만 죽어났다. 벤이 아까 찾아낸 곳을 박아대자 마크는 하얗게 밀어닥치는 사정감에 온몸을 굳혔다. 벤은 능숙했다. 마크는 하반신이 녹아난다는 말을 실감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마크는 중얼거렸다. 더 기분 좋아지고 싶다는 욕망과 더이상 속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이성이 싸웠다. 바닥까지 드러내고, 짐승처럼 나뒹굴어 버릴 것만 같다.
상대도 자신과 같을까. 마크는 간절한 눈빛으로 침착해 보이는 청년을 응시했다.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신음과 목소리를 좋다고 말해준 청년이 마크의 시선을 느끼고 그를 쳐다봤다. 벤이 군살이 박힌 커다란 손으로 땀에 젖은 마크의 얼굴과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마크는 지독히도 키스가 고팠다. 멍하니 입술을 벌리고, 자신의 혀로 입술을 핥았다. 벤이 뚫어지게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방금 무슨 짓을 한 걸까. 놀라 고개를 돌릴 찰나 벤의 입술이 다가와 마크의 입술을 눌렀다. 벤의 혀는 뜨거웠다. 마크는 신음했다. 벤의 혀에 입안이 짓눌리는 것만으로 연결된 허리가 움찔거리며 들썩였다.
벤은 그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내려다보았다. 허리를 밀어붙이며 안으로, 안으로 더 깊게 파고들었다. 마크의 몸 안에서 얻어낸 열락이 벤의 온몸으로 퍼져갔다. 뚝뚝, 격렬해진 움직임에 벤의 머리칼에서 땀이 떨어져 마크의 뺨에 묻었다.
벤이 빙긋 웃으며 잠자리에서 여자에게나 할 말을 마크에게 해댔다.
“당신 입술 참 예뻐요. 주름진 게, 내 걸 물고 있는 아래랑 똑같아요.”
“!!”
‘맙소사!’ 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마크는 청년이 새된 목소리를 좋다고 말할 때부터 청년이 이상하다고 여겼다. 그건 그냥 넘겼다. 그러나 입술과 항문을 같은 등급으로 칭찬하는 괴상한 심미안은 도통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청년의 부담스러운 말에 반응하는 자신의 몸이었다. 모든 감각이 날카롭게 깨어나고 청년의 작은 움직임에도 환희를 표하며 반응했다.
목선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움. 가슴의 작은 돌기 끝 아릿함. 근육이 조여 있는 복부에 존재하는 근질거리는 쾌감. 마크는 자신의 몸과 영혼 중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모두 버터처럼 녹아 하반신의 구멍 아래로 몰려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다. 깔때기의 구멍과도 닮은 맨 끝에서 그 밀액을 삼키고 있는 벤의 성기와 자신의 모든 영혼이 맞닿아 연결되는 환상에 전율했다.
어떻게 이토록 강렬한 감각이 있을 수 있을까.
자신은 청년과 몸을 나누고 있었다. 마크는 자신이 얼굴도 모르는 낯선 청년과 몸을 나누고 있단 사실에 불현듯 몸을 굳혔다. 자신은 서툴렀으며, 남자였고, 알맹이는 늙고 추한 유령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청년은 우스꽝스러운 자신의 목소리를 좋다고 해주었고…….
“당신, 사랑스러워요.”
벤이 욕망으로 헝클어진 목소리로 말한 순간 모든 게 허물어졌다.
감각이 파도처럼 덮쳤다. 마크는 신음했다.
넓게 벌어진 다리 사이 완전히 발기해 흔들리는 성기에서 느껴지는 배출 욕구와 동통을 호소하는 입구에서 올라오는 달콤한 아픔, 모든 게 한계 이상으로 달콤해 뇌 안을 시큰하게 달구었다. 마크는 더듬거리며 벤의 칭찬을 돌려주었다.
“……넌 따뜻해.”
대답에 벤이 그를 꽉 껴안고 파고들었다. 절정 직전에서 벤은 마크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빠르게 안을 쳐댔다.
“흐아! 으……!”
벤의 정액이 내벽 안에 토해지는 뜨거움에 마크는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를 조였다. 자신의 직장 안에서 사정하며 꿈틀거리는 성기의 감촉이 적나라했다. 배 안이 온통 뜨거웠다. 끝까지 해버렸다. 뇌 안이 범해진 것 같은 탈력감에 마크는 축 늘어졌다.
사정 후에도 벤은 금방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흥분이 식지 않아 여전히 단단한 성기로 흥건히 젖어 부드럽게 풀린 안을 휘저었다. 절정 직전에 멈춘 마크는 그 작은 동작에도 움찔거리며 상대를 조였다. 마크의 반응에 벤이 금세 다시 단단해졌다.
“이대로 한 번 더 해도 돼요?”
마크는 끙끙대며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한 번의 사정 후 여유로워진 벤은 아까보다 훨씬 부드럽고 느리게 움직였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허벅지 사이에서 정액이 흘러나왔다. 음란하고 질척한 감촉이 마크를 애타게 만들었다. 좀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해 마크는 빨개진 얼굴로 끙끙거렸다. ‘마크, 마크, 당신 안 뜨겁고 젖어서 기분 좋아요.’ 벤이 귀에 대고 속삭일 때마다 내벽이 크게 두근거렸다.
벤은 열에 들떠 할딱이는 마크의 입술을 핥고 빨아 부어오르게 만들었다. 말캉한 감촉의 입술을 짓누르는 것만으로 상대는 몸을 떨었다. 뿌듯한 정복욕이 인다. 추삽질을 하다 멈추고 벤은 마크의 오른 다리마저 들어 올려 어깨에 걸쳤다.
“마크, 어떻게 해주길 원해요?”
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마크는 가슴이 쿵쾅거렸다. 꿈틀거리는 감각이 뒤의 점막을 통해 생생히 전해졌다. 벤은 움직임을 멈추고 자신을 내려다보기만 한다. 상대의 심술궂음에 흥분이 고조됐다.
“만, 만져줘.”
벤이 유두를 비비고 잡아당겼다. 허리가 흔들렸다. 절정 직전에서 온몸이 저릴 정도로 예민해졌다. 가슴을 만져진 것만으로 성기가 반응했다. 그러나 마크가 정작 원했던 곳은 거기가 아니었다. 입구의 움찔거림이 심해진 걸 느끼고 벤은 긴 손가락으로 엉덩이 안쪽을 쓸어내렸다. 마크는 흥분을 참다못해 벤의 귀를 깨물고 말았다.
“아, 미안…….”
벤이 복수하듯 허리를 물려 빼내었다가 도로 깊게 처박았다. 격렬해진 움직임에 고여 있던 정액에서 거품이 일었다. 마크는 억눌린 신음을 뱉으며 쏟아 부어지는 감각을 견뎠다.
“아, 흐읏, 흐! 아아!”
“마크, 마크-.”
벤이 계속해 이름을 불렀다. 마크는 대답하지 못했다. 땀에 젖어 시야가 어른거렸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거리자 벤이 두 팔을 끌어다 목을 두르게 했다. 가슴이 맞닿았다. 벤의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황홀해졌다. 벤의 등을 정신없이 어루만지고 목덜미와 귀를 빨고 핥았다. 벤의 뜨거운 몸이, 부드럽고 탄력 있는 살 자체가 좋아서 몸을 뗄 수가 없었다.
“이상해…….”
“네?”
“네 몸, 이상해…… 어떻게…… 이렇게 기분 좋을 수가 있지?”
그저 몸을 나누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도 기분이 좋은 걸까. 마크는 혼란스러웠다. 벤이 크게 웃는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멍하니 울렸다. 그 소리에 반응해 마크는 정신없이 허리를 들썩였다. 허약한 허리가 한참을 혹사당해 빠질 것처럼 무거운데도, 본능은 주어지는 쾌감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주워담으려 격렬히 내벽을 조이고 골반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목구멍으로부터 신음이 새어 나왔다. 현에 닿아 소리를 내는 악기처럼 절로 튀어나오는 소리를 제어할 수 없었다.
오르가슴에 가까워지자, 더 큰 쾌감을 받아내기 위해 두 다리가 꽉 오므라들었다. 뒤쪽의 자극이 너무 강해서 앞쪽까지 아프게 저릿거렸다. 조금만 더 하면 절정에 달할 것 같은데, 벤은 뒤만을 자극하며 앞은 만져주지 않았다. 초조해진 마크는 앞을 문지르며 스스로를 달랬다. 마크의 손등 위에 벤의 손이 덮였다.
“손…… 손 치워……! 제, 제발…….”
“잠깐만요. 같이 가요. 절정 직전에 당신 안이 얼마나 끝내주는 줄 알아요?”
“나…… 난 십 년 만이야. 마, 망할 자식…….”
유령의 솔직한 말에 벤은 크게 웃었다. 마크가 무어라 험한 소릴 뱉기 전에 벤은 키스로 상대를 달래며 뒤를 빠르게 꿰뚫었다. 마크는 뒤쪽을 묵직하게 채우는 부피감과 한계치를 넘나들어 쌓이는 열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자의와 상관없이 흐느꼈다. 충분히 쾌감을 얻어낸 뒤 청년은 마크의 손을 놔주고 절정을 도왔다. 벤의 커다란 손이 마크의 성기를 훑고, 유령의 마른 복부에 눌러 문질러댔다.
혈관이 충혈되고 선단에 애액이 맺히기 시작했다. 결정적 순간에 달했을 때 벤이 호응하며 깊고 거칠게 박아 넣었다. 마크의 성기가 크게 움찔거리며 정액을 쏟아냈다. 율동적으로 조여드는 근육의 움직임에 벤 역시 두 번째 절정을 맛봤다.
“마크?”
제대로 정신을 놔버린 유령은 벤의 부름에도 깨어나지 못했다.
* * *
벤은 마크의 몸을 닦아준 뒤 자신도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이 노곤한 몸을 풀어주었다. 젖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벤은 혀를 찼다. 동성의 남자와, 그것도 살아 있지도 않은 존재와 섹스를 했다. 그러나 기회가 또 온다면 그는 다시 마크를 안을 것이 뻔했다.
벤은 침실로 돌아와 자신이 안았던 마른 남자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그는 시트 아래 드러난 마크의 맨다리를 모포 안으로 넣어주었다. 금발의 잘생긴 청년은 벤보다 나이가 어려 보였다. 마크의 앳된 얼굴 위로 나이 든 마크의 얼굴이 겹쳐졌다. 콧날과 턱, 이마의 모양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였다. 그런데도 그를 향한 감정은 너무도 달랐다. 이래서야 젊은 몸에 반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가 없다.
“마크, 잠시 집에 다녀올게요.”
마크는 깊게 잠들어 반응하지 않았다. 벤은 메모를 써놓고 밖으로 나왔다.
벤은 어제 괴물과 마주쳤던 호숫가 근처에 가볼 참이었다. 자신과 마크의 눈에만 보였던 건지, 다른 목격자가 있는지 알아봐야 했다. 벤은 마크와 관련이 있을 검은 여자의 정체가 궁금했다. 누군가 괴물에 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은 직장에 출근해 밀린 일을 하는 게 급선무였다.
밀려든 허기에 벤은 대학 내 구내식당부터 찾았다.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연 곳이 얼마 없었다. 벤은 맨 구석에서 일찍 문을 연 카페테리아를 찾아냈다.
"Bon Dia. (안녕하세요.)"
낯선 언어에 벤은 고개를 들었다. 에그 타르트와 생선튀김, 샐러드 따윌 파는 작은 가게 안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여주인이 빙긋 웃으며 손님을 맞이했다. 벤은 기억을 더듬었다. 예전에 여행했던 리스본과 신트라에서 저런 인사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벤은 메뉴판을 보고 더듬더듬 주문을 했다.
"Bon Dia, garoto e pastel de nata. (가로투-우유가 든 커피-와 에그타르트를 주시겠어요.)"
"Sim. (알았습니다.)"
고소한 커피와 바삭한 타르트는 예전 여행지에서 먹었던 맛 그대로였다. 벤은 계산을 위해 지갑을 열었다.
"Quanto custa? (얼마죠?)"
주인이 터무니없는 가격을 말했다. 벤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여주인이 손가락으로 가격을 알려주었다. 지나치게 쌌다. 벤은 몇 번이나 되물었으나 주인은 그 가격이 맞다고 우겼다. 몇십 년 전 가격으로 계산하기 미안해 벤은 팁을 후하게 내고 가게를 나왔다.
계절 탓일까. 사람들의 옷차림이 지나치게 칙칙했다. 전체주의국가의 사람들처럼 무채색 코트로 온몸을 두르고 어딘가로 바쁘게들 사라진다.
졸업 후 오랜만에 온 대학은 이곳저곳 많이 변했다. 벤은 대학 내 지하철역이 생긴 데 놀랐다. 부지가 워낙 커서 학생이었던 당시엔 학교 내 역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는데, 그가 졸업하고 나서야 공사가 된 모양이었다. 벤은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다 역 내를 장식한 타일 장식에 시선을 빼앗겼다. 푸른 타일 장식은 포르투갈의 아줄레주 장인이 직접 했다 해도 믿을 정도로 정교했다.
역은 비교적 한산했다. 개찰구 옆 벤치에는 세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세 명 다 작고 큰 상처가 났다. 한 남자는 아직도 피가 배어나오는 이마의 상처 위에 수건을 대고 있었다. 벤은 그들이 왜 앰뷸런스 대신 지하철을 타려고 하는지 궁금했다. 혹 도움이 필요할까 싶어 벤은 그들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피가 흐르는데요.”
까진 팔뚝을 들여다보고 있던 남자가 벤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
“이 근처에서 자동차 사고가 있었습니다. 우린 부상이 가벼워서, 앰뷸런스를 못 탄 축이죠.”
“사고요?”
“꽤 큰 사고였는데, 몰랐나요? 눈길에 버스가 미끄러졌는데 뒤따라오던 차들이 그걸 못 피하고 줄줄이 부딪혔죠. 정문 앞 사거리는 지금 완전히 막혔어요.”
대학 정문 앞 사거리는 교통량이 많아 원래 사고가 잦은 곳이었다. 요즘 같은 폭설이라면 눈길에 사고가 난 게 이상하지 않다.
“덕분에 도로가 차들로 엉망으로 엉켜 있어요. 그럴 땐 지하철을 타는 게 훨씬 빠르죠.”
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철이 방금 떠났습니까? 안내판이 없군요.”
“그래요? 저기 보이는데요.”
“?”
벤은 남자가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봤다. 전광판은 어떤 불빛도 없이 시커멓기만 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을 노려봐도 보이는 건 없었다. “벤.” 누군가 그를 불렀다. 벤은 몸을 돌렸다.
“어딜 가나?”
계단이 끝나는 곳에 마크가 서 있었다.
“언제 온 거예요?”
“그게 중요한가?”
마크가 처진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환자복 차림의 창백한 남자를 마주하고, 벤은 괜스레 자신이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집에 가봐야 해요. 해야 할 일들이 쌓여서요.”
“그래서 날 버려두고 가겠다고?”
“아뇨, 잠깐 들렀다 다시 돌아올 겁니다.”
“글쎄, 과연 그럴까.”
마크가 다가와 벤의 옷깃을 쥐고 키스라도 할 양 몸을 붙였다. 그의 다리가 벤의 다리 사이에 파고들었다.
“벤…….”
마크의 입술이 벤의 목덜미를 더듬었다. 벤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그들을 볼까 봐 주변을 살폈다. 무채색 코트를 입은 이들 중 누구도 그들에게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그들은 무기질의 덩어리가 되어 막 도착한 지하철을 향해 걸어가느라 바빴다. 어디선가 익숙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벤은 초조해졌다.
“마크, 이러지 마요. 내가 영영 가겠다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지 않아. 이걸로 끝이야. 넌 돌아오지 않을 거야. 난 알아. 벤, 넌 벤자민과 닮았어. 겉모습이 닮았으니 속도 그럴 테지. 너 역시 벤자민처럼 냉정하게 돌아서서 한 번도 날 찾아오지 않을 거야.”
벤은 죄책감에 심장이 따끔거렸다. 마크의 말처럼 벨라가 그 모든 소문의 주범인지도 모른다. 물먹은 종이에 물감이 번지듯 소문은 조용히 퍼져 나갔다. 벤 역시 그와 마크 사이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오가는 걸 내심 알고 있었다. 벤은 원래부터 먼저 마크에게 연락하는 법이 없었다. 얼핏 소문을 접한 뒤로는 연락을 받는 것마저 꺼려졌고, 마크의 메시지나 전화를 의도적으로 피하게 됐다. 마크는 별말 없이 그와의 연락을 끊었다. 사람 좋은 교수와 좋은 제자의 관계는 쉽게 끝났다. 벤은 마크가 죽었단 사실을 그가 죽은 지 한참 후에서야 알았다.
마크의 혀가 벤의 귀에 들어왔다. 벤은 참지 못하고 상대의 얼굴을 밀어냈다. 벤의 귓전에서 헐떡이며 몸을 비비던 유령은 끝내 벤의 완력을 이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몸으로도 안 되나. 늙고 추한 거죽을 벗어도, 내가 아무리 젊어져도, 나는 누구도 붙잡을 수 없나.”
부서질 것 같은 미소가 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마크.”
“한 번만 더, 하룻밤만 더 내 곁에 머물 수는 없나.”
벤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저 열차를 꼭 타야 했다. 열차가 곧 출발한다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곧 돌아올게요.”
벤의 말에 마크가 푹 고개를 숙였다.
벤은 막 열차 안으로 들어서려다 차창에 비친 마크의 뒷모습을 보게 됐다. 유령은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가 맨발이라는 걸 벤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추위에 발끝이 파랬다. 유령은 추위에 몸을 문지르며 얇은 환자복 차림으로 터덜터덜 계단을 올라갔다.
“……벤자민…….”
공허한 목소리였다. 벤은 유령이 다시금 벤자민을 찾아 헤맬 것임을 깨달았다. 저런 꼴로 복도와 강의실, 낙엽송이 이어진 가로수 길을 헤매고 다닐 모양인가.
……왜 저 사람은 저토록 나를 갈구할까.
벤은 마크를 쳐다보며 자문했다. 답은 너무도 분명했다. 깨닫자 머릿속이 멍해졌다. 마크는 벤자민 기옌이란 인간을 사랑했다. 불현듯 벤은 전신을 덮는 전율을 느꼈다. 가슴이 뭉클하고, 온몸이 감정에 대한 자각으로 한껏 아렸다.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외쳐대는 마크의 외침에 자신의 심장 판막이 뒤흔들렸다. 감정은 일방통행일 수 없었다. 사랑이 사랑을 불러왔다.
벤은 뒤돌아섰다. 그는 마크를 도저히 그냥 돌려보낼 수 없었다.
라이언이 이곳에 있었다면 벤의 오지랖 넓음을 욕했을 것이다. 하지만 또한 벤의 행동을 이해했으리라. 벤은 계단을 올라가는 창백한 안색의 남자를 쫓아가 그를 붙잡았다. 고개를 푹 수그리고 표정없는 얼굴로 걸어가던 유령의 뺨을 쥐고 벤은 망설임 없이 입을 맞추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이성을 잃고 멍하니 풀려 있던 푸른 눈동자에 빛이 돌아왔다. 처음엔 당황하던 마크가 이내 마주 웃으며 벤자민을 끌어안았다.
* * *
벤은 마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수정했다.
그는 지박령이 아니라 색귀인 게 분명했다. 마크를 붙잡아 돌아오는 길 내내 유령은 벤에게 달라붙어 그의 목덜미를 핥아댔다.
벤은 유령을 침대에 집어 던졌다. 벤을 도망치게 놔둘 마크가 아니었다. 그는 벤의 벨트를 붙잡고 셔츠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청년의 복부와 가슴을 쓰다듬었다. 마크의 차가운 손길에 벤은 흠칫 몸을 떨었다.
어느 기점에 넘어갔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벤은 이미 마크의 허리를 타고 올라 그의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벤…….” 나약한 목소리에 이성이 끊어졌다.
벤의 움직임에 맞춰 마크가 고개를 젖힌 채 몸을 떨었다. 유령은 솔직하고 탐욕스러웠다. 절정의 순간마다 모든 곳을 무방비하게 열고 온몸으로 매달렸다. 마크의 새된 목소리에 벤은 쉽사리 자제력을 잃었다. 벤과 마크, 결국은 둘 다 비슷했다. 한 번 봇물이 터지자 걷잡을 수 없었다. 꿀물을 핥아대는 진딧물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서로에게 달라붙었다.
그들은 그 뒤로 한참을 거의 침대 위에서만 있었다. 벤 쪽에서 먼저 달라붙기도 하고, 마크 쪽에서 한 발 일찍 다가오기도 했다. 달콤한 정사 뒤 잠들었던 벤은 자신의 침대맡에 선 마크의 기척에 짧은 단잠에서 깨어나야 했다. “……네 곁에서 떨어지면 도로 아플 것 같아서.” 마크가 열에 들뜬 몽롱한 표정으로 말했다. 벤은 그의 품을 내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유령을 끌어안아 자기 곁에 눕혀 잠재우려다 벤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목덜미에 이를 세우고, 얼마 전의 정사로 말미암아 달큼한 열기가 남아 있는 마크의 하반신에 자신의 성기를 뭉근하게 문지르고 말았다. 그 모든 일이 너무도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정상적이지 못한 욕망임은 분명했다. 그런데도 멈출 수 없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젖은 시트 위에서 그보다 질척한 목소리로 신음하는 마크의 목소리가 벤의 이성을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처럼 주름진 입술에서 뱉어내는 숨이 지나치게 달콤했다.
“……벤. 더 못 하겠어. 너무 강해. 느낌이…… 괴로워…….”
마크가 섹스에 지쳐 들뜨고 앓는 목소리로 헐떡거렸다. 마크는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끈적거리는지, 그 속에 색(色)을 조르는 기색이 얼마나 음란하게 묻어나는지를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아파요?”
“좋아서, 괴, 괴로워…….”
마크는 턱을 들고 도리질 치며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엉망진창인 말이었지만 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은 이해할 수 있었다. 좋으면서 괴로운 것은 벤도 마찬가지였다.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쾌감이 좋았고, 지나친 탐닉에 몸의 근육 여기저기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괴로웠다. 무리가 가는 자세로 벤의 온몸을 줄곧 받아내고 있는 마크의 온몸에는 여기저기 멍이 들어 있었다.
“벤…… 아! 난…….”
무어라 중얼거리던 입이 그대로 멈췄다. 푸른 눈을 꾹 감고, 입은 벌린 채로 마크는 벤이 주는 감각에 휩쓸려 버렸다.
벤은 언뜻언뜻 비치는 마크의 붉은 혀와 송곳니를 엿봤다. 윤곽이 분명치 않은 주름진 분홍빛 입술은 벤으로 하여금 절로 그 입술이 자신을 힘겹게 물고 빠는 걸 상상하게 한다. 벤은 자신의 상상을 마크의 귀에 대고 비밀 얘기를 하듯 속삭였다. 한계 이상 예민해진 감각에 멍해졌던 유령이 뜬금없는 벤의 음담에 눈을 껌뻑거렸다.
“위의 입은 그렇다 치고, 아래쪽 입안엔 나로 가득하니까. 일단은 그걸로 만족하죠.”
자기 할 말을 마친 벤이 다시 격렬히 움직였다. 무어라 받아치려던 마크는 입만 크게 벌리고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벤, 벤!”
마크는 이제 말을 잇지 못했다. 고작 벤의 이름만 연이어 불렀다. 물기 어린 목소리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벤은 당장 토해내고 싶은 걸 꽉 참아 눌렀다. 뒤로 물러났다가 괜찮겠다 싶었을 때 세게 밀고 들어갔다. 격렬한 흔들림에 흠뻑 젖은 마크의 이마에서, 고여 있던 땀이 후드득 바닥으로 떨어졌다. 허리를 거의 꺾다시피 휜 채 신음하고 있는 온몸이, 핑크빛 염료 속에 담갔다 뺀 것처럼 붉게 물들어 번들거렸다.
시각적 자극이 지나쳤다. 온통 붉고 붉다. 입술도, 광대뼈도, 목덜미도. 마크의 흥분이 그 붉은빛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벤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벤은 뿌듯함을 숨기려 미간을 찌푸렸다. 발기가 되지 않네, 어쩌네 하는 말은 다 헛소리였다. 벤이 파고들 때마다 마크는 지나친 고양감에 입을 벌리고 뒷머리를 시트에 비볐다. 벌어진 입에서 타액이 흘러 턱을 적셨다. 벤은 마크의 머리칼 안에 자신의 손을 찔러 넣어 유령의 상반신이 침대 밖으로 떨어지지 않게 했다. 땀에 흠뻑 젖은 두피는 열기로 뜨끈했다. 한계치 이상의 자극에 두개골 안에서 뇌가 과열된 채 열을 뿜었다.
넓게 벌어진 두 다리 사이에서 직접적인 자극 없이도 용케 꼿꼿해진 마크의 성기가 벤이 안을 쳐올릴 때마다 함께 꿈틀거렸다. 벤이 들고 날 때마다 마크의 직장 안에 남아 있던 타액이 허벅지 사이로 흘러내렸다. 크림이 녹아내린 것처럼 질척거리는 마크의 회음을 벤은 손으로 크게 문질렀다. 마크가 날카롭게 신음하며 토정했다.
“마크?”
마크는 잘게 움찔거리다 그대로 늘어져 버렸다. 마라톤을 전력 질주한 것처럼 거칠게 숨을 내쉰다. 설마 마크가 이리 쉽게 가버릴 줄 몰랐던 벤은 몸을 뒤로 빼며 일부러 그 끝내주는 감각을 피하며 절정을 늦춘 참이었다. 그는 아직 42.195km의 절반도 오지 못했는데 함께 뛰던 주자는 10km 코스를 완주했다며 주저앉아 잠들어버렸다. ‘마크!’ 벤은 절규했다.
내벽 안에서 벤의 것이 힘차게 맥박치는 감각에 잠깐 기절했던 유령이 꿈틀거리며 깨어났다.
“……벤?”
“괜찮아요?”
“어…….”
사정의 여운이 덜 가신 몽롱한 얼굴로 마크가 건성건성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와 남자의 관계에선 받아들이는 쪽의 체력적 부담이 더 크다고 어디서 들은 적이 있어요. 그 말이 맞는지, 아니면 내가 워낙 건강하고 당신 쪽이 좀 허약한 건지 모르겠네요.”
벤은 장난기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벤과 부대낄 때면 마크 쪽이 벤보다 너무 빨리 도달해버렸다. 마크는 늘어져 버린 채 근육에 힘도 안 들어가는 형편이건만, 벤의 아랫도리는 여전히 굶주려 있을 때가 잦았다. 곤란했다.
“뒤쪽으로 전혀 못 느끼는 사람도 있다던데 당신은 다행히도 잘 느끼는 편인가 봐요.”
“그거, 안 좋은 거지?”
“아뇨, 나쁘지 않아요.”
벤은 피식 웃었다. 마크는 너무 예민했다. 직장을 이용해 얻는 쾌감에 익숙하지 않은 만큼 참고 지속시키는 면에서는 아직 서툴렀다. 절정을 늦추고 벤과 호흡을 맞추는 건 마크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성급하게 먼저 사정해 버리곤, 탈진한 상태에서 가장 흥분한 상태의 벤을 받아내며 끙끙거렸다. 벤의 걱정스러운 시선에 마크가 턱을 들고 몽롱한 시선으로 벤을 바라봤다.
잘 보이지도 않으면서 초점을 맞추려고 애쓰는 유령을 벤은 조용히 응시했다. 벤이 워낙 커다래 그와 몸을 붙이고 있는 마크는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였다. 어깨는 벤보다 마르고 구부정했으며, 갈비뼈 아래부터 허리까지 이어지는 선은 가파를 정도로 앙상했다. 나신의 남자는 어린아이처럼 유약해 보였다. 벤은 늘 자신만만하던 교수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육십 대의 마크는 이보다도 왜소한 몸을 고급 슈트로 숨겼을 것이다.
마크는 생긴 걸로만 봐서는 고생 한 점 모르고 자랐을 금발 벽안의 미남이었다. 그러나 푸른 눈 안에 비치는 영혼은 불안정하고 고독했다. 벤이 주는 온기에, 벤의 손길 하나에, 가엾을 정도로 이리저리 흔들렸다. 지나친 방사 탓에 붉은 눈을 제외하고 얼굴이 온통 희게 질린 낯빛을 하고도 행여나 벤이 침대 위를 벗어날까 불안해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벤은 꿀꺽 침을 삼켰다.
벤은 마크의 납작한 배 위, 튀어 말라붙은 정액을 문질렀다. 그는 일부러 농밀하게 복부와 성기, 자신이 파고들었던 부분을 쓰다듬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이 몸을 섞었는지, 그것이 충동에 의한 일회적 행동이 아니었다는 의도를 함께 전했다.
“안심해요. 나에게는 완벽하니까.”
“너…….”
다른 여자들한테도 이리 바람둥이처럼 구느냐고 물으려던 유령은 자신이 주제넘은 참견을 하는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마음속이 이런저런 욕심들로 소란스럽다. 마크는 어지러운 마음을 숨기며 피식 웃었다.
“벤, 넌 아직 못 했지. 어서 해.”
“안 힘들어요?”
마크는 괜찮다며 벤의 목을 끌어안았다. 말과 달리 온몸이 땀과 소금기로 가득했다.
벤은 마크를 끌어안고 몸을 일으켰다. 서로 앉은 자세에서 벤의 다리 위에 마크가 걸터앉게 되었다. 벤은 마크의 몸이 미끄러지는 걸 막지 않았다. 결합이 점점 깊어졌다. 마크는 거친 숨을 토해냈다. 안이 상할까봐 벤은 조심하며 천천히 더 깊은 곳으로 허리를 밀었다. 마크의 엉덩이골 사이에 음모가 닿았다. 벤이 계속해 들어왔다. 직장 끝에 닿아 그대로 뚫고 나올 것만 같다. 결합을 확인하듯, 벤이 주름 하나까지 완전히 펼쳐져 벌어진 입구를 쓰다듬었다.
“그만…….”
마크가 못 참고 흐느끼는 소릴 냈다. 벤은 좀 뒤로 물러났다. 도로 고환이 빠져나오고, 그래도 좀 견딜만해 지자 마크가 안도해 나직한 숨을 내쉬었다.
마크가 느낄 수 있게, 벤은 그가 알고 있는 상대의 안 특정한 곳을 파고들었다. 그는 마크와 같은 박자로 몸을 섞고 싶었다. 마크의 몸이 벤의 움직임에 반응해 함께 호흡하고 함께 끝내기를 원했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우며 마음이 통하는 섹스를 하고 싶었다. 온몸이 녹아나며 영혼 깊은 곳까지 충만해지는 감각을 유령에게 주고 싶었다. 마크가 지나칠 정도로 받고, 물릴 만큼 즐기고,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자연스레 믿도록.
하지만 거창한 의도만큼 일이 잘 풀리진 않았다. 마크의 몸은 회복이 느렸고 자극을 받아내지 못했다. 미간이 좁혀지고 얼굴이 괴로움에 찌푸려졌다. 용케 버티던 마크가 얼굴을 가리고 신음했다. 거친 숨을 뱉어내는 남자의 귀는 빨갛고, 얼굴을 가린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더는 못 하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마크는 신음을 눌러 삼키며 계속 참아냈다. 벤은 동작을 멈췄다.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마크의 허벅지 사이로 전혀 반응하지 못한 하반신이 보였다. 벤은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베, 벤?”
벤은 땀에 젖은 정수리에 입 맞추고 그의 몸을 눕혀주었다. 잔뜩 긴장했던 대퇴부와 둔부를 마사지해주자 괴로움에 일그러졌던 마크의 얼굴이 편안하게 누그러졌다. 마크가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르는 동안 벤은 침대에서 벗어나 욕실로 향했다.
“벤, 아직 단단한 거지?”
마크가 아깝다는 얼굴로 벤을 바라보았다. 굶주린 표정으로 꿀꺽 침을 삼킨다. 벤은 혀를 찼다. 마크는 자기 얼굴이 어쩐지 모르는 게 분명했다. 열에 들뜬 몽롱한 푸른 눈의 위력은 대단해서 벤은 지금이라도 그를 안고 싶었다. 그러나 허리 아래로 더는 감각이 없을 사람을 안아봐야 그건 고문일 뿐이었다.
“괜찮아요. 화장실에 가서 뺄게요.”
“너만 괜찮으면, 입으로 해줄까.”
“네?”
벤은 자기가 잘못 들었나 했다. 한쪽 눈썹을 찡그리고 되묻자 교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식스티 나인, 그건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벤은 실소해버렸다. 마크는 한 번도 안 해본 주제에 자신이 게이 섹스에 탁월한 재능이 있을 거라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분명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벤은 어렵사리 벗어난 침대로 도로 기어들어갔다. 마크가 자연스레 자리를 내어주었다. 벤이 옆으로 눕자 마크가 벤의 다리 쪽으로 상반신을 옮겼다. 얼굴을 다리 사이로 처박으려는 남자를 벤은 놀라 말렸다.
“잠깐만요. 좀 씻고 올게요.”
벤은 안을 휘저었던 성기를 마크가 그냥 핥게 하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
“내가 싫어요.”
벤의 거절에 마크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는 벤이 침대를 벗어나는 게 두려웠다. 샤워 후 흥분이 식어버린 벤이 자신이 잠깐 홀렸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영영 사라져버릴 거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난 그대로도 잘할 수 있어.”
마크의 의지에 찬 눈을 믿을 벤이 아니었다. 하지만 샤워를 하고 나서 어중간하게 흥분이 가라앉은 채로 돌아오는 건 그도 싫었다. 벤은 타협했다. 생수와 시트를 이용해 어느 정도 닦아냈다.
흥분한 성기와 단단한 허벅지가 물로 젖어드는 걸 마크는 홀린 눈으로 쳐다봤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욕실에 같이 들어가자고 할 걸 그랬나.’ 벤의 단단한 몸 위로 물줄기가 떨어지는 모습은 화보의 한 장면처럼 강렬할 것이다.
벤이 몸을 닦는 동안 마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각오를 다졌다. 깊게 한 번 숨을 쉬고 귀두를 입안에 담고 울퉁불퉁한 혈관과 기둥 부분까지 넣었다. 자신과 같은 사내의 몸이라서 어디가 가장 예민한지, 어떻게 하면 기분이 좋을지 알지만, 마크는 손재주도 적응력도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선단을 삼키고 물고 핥고 빨며 나름 포르노에서 본 대로 어설프게 따라 했다.
마크가 벤의 다리 사이로 바짝 붙자 벤의 눈앞으로 마크의 붉어진 엉덩이가 가까워졌다. 음모에 쓸린 자국까지 훤히 보였다. 벤은 생각지도 못한 구도에 침을 삼켰다.
입으로 해주기엔 벤이 침대에 앉고, 마크는 바닥에 앉아 벤의 성기를 빠는 게 편했다. 그러나 마크는 반사적으로 식스티 나인 자세를 언급했다. 유령이 오랫동안 꼭 해보고 싶어 했던 소망을 엉겁결에 털어놓은 것임을 벤은 눈치챘다. 오랜 소망이라면 제대로 하는 게 옳다.
벤은 옆으로 누운 자세인 마크의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다리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고 엉덩이 양쪽 살점을 쥐고 벌리자, 놀란 마크가 펄쩍 몸을 튕겼다가 벤의 팔에 눌려 도로 잠잠해졌다. 벤은 긴장해 암팡지게 오므라드는 엉덩이를 팡, 소리가 나게 때렸다. 마크의 얼굴과 둔부가 동시에 붉어졌다.
“벤?”
“식스티 나인이라면서요.”
“!”
혀로 입구를 핥는 감각에 마크가 펄쩍 뛰었다.
“더러워, 그러지 마!”
사내끼리는 항문을 사용했다. 안 그래도 꺼려지는 곳인데다 거의 틈 없이 이어진 격한 정사로 안쪽 사정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 곳에 벤이 입을 댔다.
“콘돔도 안 썼잖아!”
“그러게요.”
벤이 여상한 말투로 대꾸하곤 입구를 눌렀다. 정액이 눅진하게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벤이 바로 코앞에서 바라보며 밑을 닦아낸다. 마크는 낯이 뜨거워 온몸을 벌벌 떨었다.
“난 그대로도 잘할 수 있어요.”
벤은 마크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벤이 말할 때마다 뜨거운 숨이 밑에 닿는다. 마크는 시야가 멍해지는 열을 경험했다.
“내가 싫어. 하, 핥지 마!”
기분 좋은 기색을 품고 울리는 청년의 웃음소리는 청각뿐만 아니라 촉각도 자극했다. 소리의 작은 파동이 가장 민감한 부분에 닿았다. 등줄기를 젖히며 파들거리는 반응에 벤이 유쾌하게 웃었다. 마크의 귀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마크, 식스티 나인은 잘할 수 있다던 말도 허풍이었어요?”
왜 입을 가만히 있느냐는 농에 마크는 반사적으로 벤의 성기 쪽으로 입을 붙였다. 하자고 먼저 말했던 건 자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내의 성기를 입으로 애무해본 경험이 없다. 본 적은 많았다.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넣고 볼이 홀쭉해지도록 빨아내 상대를 절정으로 이끌어 가면 되는 것이다. 마크는 자신의 목구멍 안에 토해지는, 혓바닥 가득 쏟아지는 뜨거운 정액의 감촉을 상상했다. 마크의 머릿속에서 황홀감에 취한 벤의 표정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청년의 생김새는 정확히 알 수 없어 마크의 머릿속에서 벤은 벤자민의 얼굴을 갖고 있었다.
마크는 벤의 성기를 혀로 할짝거리며 고환을 최대한 정성 들여 주물렀다. 벤의 신음 소릴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마크는 이어진 벤의 방해에 애무를 중단해야 했다. 벤이 다시 마크의 엉덩이 쪽을 건드렸다.
“벤!”
청년은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마크는 포기했다.
“저, 정 할 거면 놔줘. 좀 씻고 올게.”
샤워하는 척하며 일단 몸을 뺄 생각이었다. 벤이 피식 웃었다. 그가 긴 팔을 내밀어 침대 옆 탁자에서 물병을 가져 왔다. 벤의 성기를 씻어낼 때 다 썼던지라 물은 병 바닥에만 고여 있었다. 마크는 그것 보라며 욕실로 가려고 했다. 벤이 새 물병을 갖고 침대로 돌아왔다. 아까와 같은 자세를 취하고는 벤은 부드럽고도 강하게 마크의 상반신을 벽 쪽으로 밀고는 그 앞에 자신의 하반신을 밀어붙였다.
물병의 뚜껑을 여는 소리가 났다. 마크는 벤의 허벅지를 밀어냈다. 벤 쪽이 빨랐다. 얼마 전까지 벤을 담고 있던 입구가 수월히 벌어졌다. 벤은 손가락으로 안을 열고, 병을 입구에 대 물을 부어 넣었다.
잔뜩 달아오른 안에 차가운 액체가 부어지자 내장이 오그라드는 충격이 왔다. 마크는 밀어내던 벤의 허벅지를 꽉 쥐었다.
“미안해요. 다음에는 미지근한 물로 할게요.”
“다, 다음은 없어.”
대답하는 마크의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벤은 부드럽게 엉덩이를 문지르며 그를 달랬다.
“당신 몸이 식는 건 싫어서 그랬어요. 달아오른 채로 있는 게 더 예뻐요.”
마크는 제정신이 아닌 청년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금세 배 안이 요동쳤다. 마크는 허리를 비틀었다. 청년의 눈앞에서 안에 들어찬 것들을 쏟아낼 맘은 없다. 마크는 인상을 찌푸렸다.
“벤, 그만 일어나. 화장실에 갈래.”
마크는 자신보다 배는 어린 청년에게 화장실을 조르게 된 상황이 한심했다. 벤이 툭툭 마크의 엉덩이를 두들겼다.
“싸요.”
“뭐?”
싸려면 화장실에 가야 했고, 그러려면 마크의 목을 누르고 있는 벤의 다리가 치워져야 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니까,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난 이런 어중간한 상태로 당신을 안고 거기까지 갈 자신이 없어요.”
벤의 성기는 반쯤 선 채였다. 흥분한 건 보였지만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다. 마크가 혼자 걸어가면 되는데, 뭘 안고말고 한단 말인가. 마크는 크게 숨을 토해냈다. 벤이 설마 침대 위에서 오물을 흘리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나 싶어 마음이 섬뜩했다.
벤을 밀치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마크는 벤의 몸에 눌려 도로 털썩 누웠다. 둘은 옆으로 누워 상하 반대로 얽힌 자세였다. 벤의 다리가 마크의 목을 누르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의 손바닥이 마크의 아랫배를 장난치듯 문질렀다. 마크는 배를 누르는 힘에 순간적으로 힘을 뺐다가 화들짝 놀라 허벅지와 등줄기를 단단히 굳혔다.
“벤, 장난하는 거 아냐. 정말 나…….”
벤이 허리를 마크 쪽으로 들이밀었다. 호언장담했던 것처럼 식스티 나인에 열중하란 암묵적인 시위였다. 어중간한 상태로 안고 갈 수 없다고 했으니, 벤을 빨리 가게 하면 화장실까지 안고 가준다는 거다. 마크는 진땀을 흘리며 벤의 성기를 빨았다.
벤이 자꾸만 그를 방해했다. 입구를 손으로 문지르고 달아오른 엉덩이를 주물렀다. 입구가 벌어질까 봐 마크는 흠칫흠칫 떨며 필사적으로 힘을 주었다. 벤의 지분거림은 마크를 점점 코너로 몰아갔다. 엉덩이를 쥐고 힘껏 벌리더니 기어이 안을 비집고 들어왔다. 눈앞이 번쩍 튀었다. 간발의 차이로 마크는 직장 안 액체를 쏟아내지 않을 수 있었다. 손가락은 이미 들어와 버린 뒤였다. 청년은 긴 손가락을 이용해 찰랑거리는 내부를 휘젓고, 약한 부분을 자극했다. 마크는 턱을 든 채로 허리를 뒤틀었다. 그는 벤을 애무하는 걸 포기했다. 혀를 쓰는 것도, 목구멍 안 깊숙이 상대의 성기를 들여놓고 입 전체를 이용해 강하게 빨아들이는 것도 다 잊어버렸다. 오로지 그의 머릿속에는 입구를 벌리려는 손가락에 대한 생각과 입구가 벌어진 순간 침대를 더럽힐지도 모른단 두려움만이 가득 찼다. 벤의 허벅지에 젖은 이마를 문지르며 마크는 아래를 조이는 데만 애를 썼다. “흐으…… 으으…….” 짐승의 울음소리를 닮은 괴상한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힘이 들어간 발끝이 곱아 든다. 화를 내야 하는데, 벤의 손길이 닿자 그것을 점점 쾌감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몸의 반응에 마크는 상대를 밀쳐낼 수 없었다.
참는 데 열중하다 보니 벤을 제대로 애무하지 못했다.
“난 더는 못 기다리겠는데요.”
벤은 마크보다 사정이 편했다. 마크는 벤에게 대답을 돌려줄 형편이 못됐다.
마크의 얼굴은 땀과 눈물로 젖어 있었다. 벤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크의 몸을 풀어주었다. 마크는 시트를 쥐고 몸을 일으키려다 벤에 의해 허리가 들렸다. 허공에 몸이 붕 뜨는 감각에 하마터면 몸 안의 액체를 그대로 쏟아낼 뻔했다.
벤은 아래를 시트로 틀어막은 채 마크의 성기를 불시에 입에 담았다. 뿌리가 들릴 정도로 강하게 빨아들인다. 마크는 눈앞이 빨갛게 변하는 걸 느꼈다.
“!”
벤의 입속 점막은 놀랍도록 뜨거웠다.
물을 머금은 뒤쪽은 차갑고, 앞쪽은 뜨겁다. 그 차이에 경악해 마크는 힘을 풀고 말았다. 쑥, 안을 채운 액체가 아래쪽으로 이동하는 느낌이 섬뜩했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목에는 핏대가 섰다. 마크는 마구잡이로 벤의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벤의 머리를 밀어냈다. 벤이 물러남과 동시에 입구에 닿은 시트가 젖어들었다.
쏟아지는 느낌은 한참 동안 지속되었다. 힘을 줘도 뒤가 잘 닫히질 않았다. 열만 훅훅 났다. 긴 과정이 끝나고 벌름거리며 움찔거리는 느낌과 더불어 소변을 지린 것 같은 낭패감이 밀려왔다. 마크는 흐느낌을 닮은 낮은 신음을 토했다.
벤이 무심한 표정으로 마크가 쏟아낸 것들을 받아냈다. 그는 더럽혀진 시트를 구겨 구석으로 치웠다. 어린애의 기저귀를 갈듯, 다리를 벌려 깨끗한 시트로 하반신을 닦아내는 동작까지 모든 게 군더더기 없이 효율적이었다. 진이 빠진 채 마크는 멍한 얼굴로 벤을 올려다보았다.
“마크?”
“으으…….”
벤이 웃으며 묻자 그제야 바짝 굳었던 몸이 풀리며 입이 열렸다. 잔뜩 질린 신음이 새어나왔다. 벤은 마크의 젖은 뺨과 온몸에 흘린 진땀을 깨끗한 시트로 닦아주었다.
“무, 물로…… 씨, 씻을래. 욕실에서…….”
마크는 눈을 깜빡이며 어린아이처럼 어눌하게 중얼거렸다. 엉망진창으로 떨리는 자신의 목소리에 그는 깜짝 놀랐다.
머릿속이 난삽하게 엉켜 있었다. 자신이 방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얼떨떨했다. 물속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사위가 뿌옇다. 왜 자신은 이토록 충격을 받은 걸까. 궁금해하다 마크는 이유를 짐작했다.
이사 과정에서 잃어버린 짐처럼, 그도 죽음의 과정에서 몇 개의 기억을 잃어버렸다. 특히 죽음에 가까운 시기의 기억일수록 드문드문 앞니가 빠진 것들이 많았다.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는 상자가 지금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그것은 병에 패배한 뒤의 기억이었다. 병은 마크에게서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빼앗아 갔다. 그 시절 마크는 거죽과 뼈만 남은 자신의 몸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차원의 존재로 방치해야만 했다. 제멋대로 열이 오르고, 주인인 그의 사정은 고려 없이 아무 때나 쓰러졌다. 멋대로 싸고 토해내던 몸에 갇혀 마크는 죽음을 기다렸다. 오물로 젖어든 몸을 닦아주던 간병인의 침착한 얼굴을 내려다보며 그는 자신이 더는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마크는 벤을 뿌리치며 황급히 욕실로 달려가 몸을 씻었다. 다리가 며칠 굶은 사람처럼 후들거렸다. 뒤따라온 벤이 미안해하며 사과했다.
“난 당신이 예전에 해 달라고 했던 기억이 있어서, 싫어할 줄은 몰랐어요.”
마크가 그런 말을 하긴 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말이다. 마크는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라는 시를 얼굴에 붙인 채, 정욕에 휩싸여 청년에게 자신의 비틀린 로망을 줄줄 늘어놨었다. 그 것에 관장은 물론 별별 해괴한 난이도 체위들이 수두룩했다.
청년이 ‘유령은 이런 걸 좋아할 거야♥’ 라며 철석같이 믿고 피스트 퍽을 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마크는 떨떠름한 얼굴로 욕실 문에 기대 서 있는 벤을 돌아봤다.
따지고 보면 벤이 사과할 일은 아니다. 청년이 친절함을 베푸는 과정에서 오해가 빚어진 것뿐이다. 플레이에 지나지 않는 행위에-해보고 싶어서 정신이 나갔던 모습을 보인 주제에- 뒤늦게 맘에 안 든다고 뛰쳐나온 자신이 문제였다. 상냥한 청년이 동정을 베푼 데 감사하는 게 옳다. 백 퍼센트 맘에 들지 않는다며 투덜거리는 건 염치없는 짓이었다.
마크는 짐짓 퉁명스레 말했다.
“시트나 세탁실에 넣어버려. 안 보이게, 최대한 멀리.”
“벽장에 넣을까요?”
“벤, 누누이 말했지만, 거긴 웜홀 입구가 아니야. 그리고…… 나야말로 미안해.”
마크는 벤의 하반신 어디쯤을 대충 훑어보며 말했다. 마크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하반신을 내려다본 벤이 풋 웃어버렸다.
“난 대단하죠. 이 지속력은 내 자존심의 근간이에요.”
“자넨 정말 잘난 남자로군.”
마크는 이죽거리며 유치장 안의 조커처럼 손뼉 쳐 주었다.
“혀로 핥는 게 싫었어요?”
“…….”
벤이 마크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의 표정을 살폈다. 마크는 푸른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청년의 시선을 피했다. 혀를 쓰는 건 싫지 않았다. 벤과 몸을 겹치는 횟수가 늘면서 마크는 페니스보다 뒤쪽이 더 예민한 부위일 수 있단 걸 알게 됐다. 벤은 마크가 그의 애무를 싫어하지 않음을 눈치챘다. 그는 자신의 하반신을 가리키며 선언했다.
“이번엔 당신이랑 같이 갈 거예요.”
“덩치는 커다란 녀석이 왜 이리 쓸데없이 집요해?”
마크는 괜히 툴툴거렸다.
벤의 선언에 마크는 이번에야말로 식스티 나인을 해내겠다 답했다. 벤은 마크야말로 쓸데없이 집요하다며 툴툴거렸다. 둘은 침대로 돌아왔다. 마크는 벤의 성기가 자신의 할딱거리는 숨과 혀의 움직임에 단단하게 심지를 세우는 걸 느끼며 자신의 하반신에 올 자극을 기다렸다.
손가락으로 공간을 만든 벤이 혀를 그 공간에 끼워 넣었다. 혀는 잠시 멈췄다가 이내 탄력 있게 움직였다. 안으로 파고들어 내벽 안을 핥자 마크의 등줄기가 팽팽하게 휘어졌다.
“으……응!”
마크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젖빛으로 흐려졌다.
그는 벤에게 엉덩이를 핥아달라고 달라붙어 애원한 적이 있다. 포르노 속에서 자지러지는 바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대입하고, 밑을 핥는 탑에게 벤자민의 얼굴을 그려 넣어 본 적도 있다. 머릿속으로야 무슨 짓을 못할까. 실현될 리 없는 망상이라 광대처럼 히죽거리며 엉덩이를 벌리고 추잡스럽게 청년에게 욕망을 늘어놓을 수 있었다. 현실에선 교태를 지어내기도 어려웠다. 직장 안에서 미끈한 살덩이가 휘어지고 튀어 오르며 플라나리아나 거머리, 뭐 그런 비슷한 무척추동물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이성이 부서지려 했다.
마크는 혀로 점막을 눌리는 것만으로 사정에 가까운 충격을 느꼈다. 엉덩이골 안쪽을 핥는 동작에 기력이 다해 시들었던 성기가 반응해 두근거렸다. 원래 이런 걸까. 자신이 비정상인 걸까. 거부감이 일었으나 신음이 터져 나오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벤이, 벤자민을 닮은 청년이 그를 탐하고 있었다.
“으윽, 흐윽, 으, 응!”
마크는 코로 숨을 내쉬며 끙끙거렸다. 벤은 웃어버렸다. 유령은 펠라를 지독히도 못 했다. 호흡곤란이나 일으키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벤은 유령의 입에서 성기를 빼냈다.
이완된 입구를 강하게 빨아 당기자 바깥쪽으로 속살이 딸려왔다. 벤은 혀를 꼿꼿하게 해 안을 파고들었다. 성기처럼 쑤셔 넣었다 빼며 안을 핥았다. 뜨거워지고 민감해진 비부가 벌름거리며 반응한다. 도리질을 치던 이가 목을 젖히고 하소연했다.
“모, 못 참겠어. 이, 이상해!”
“싫어요?”
“으-!”
싫은 건지, 그만두고 싶은 건지 마크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벤이 음모를 거칠게 쓸어내리며 속삭였다.
“위는 금빛인데, 아래는 거의 백색에 가깝네요.”
“……뭐, 뭐가?”
“이쪽 털이 머리칼보다 연해요.”
보통은 아래쪽이 더 진하기 마련인데, 백금발에 가까운 게 신기하다며 벤은 마크의 그곳 색을 품평했다. 마크는 자신이 줍다시피 얻게 된 청년이 실은 자신이 감당 못 할 능글맞고 뻔뻔한 인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마크의 허리가 저절로 들썩거리고 허벅지 사이가 움찔거렸다. 벤은 고개를 들고 상대의 앞쪽, 갈라진 부위에 걸린 방금 흘러나온 애액을 핥았다.
“벤…… 빨리, 빨리!”
마크는 절정이 멀지 않았다. 이번에도 먼저 해버릴까 봐 애타게 벤을 재촉했다. 벤은 입꼬리를 올렸다.
“더 유혹해 봐요. 벤자민한테 했던 것처럼 가슴을 쥐고 주무르면 정말 예쁠 것 같은데.”
마크는 말문을 잃었다. 벤자민에게 한 적 없다. 뻔히 알면서도 청년은 히죽거리며 마크가 했던 말을 놓치지 않고 써먹었다.
벤은 마크가 제정신인 채로 자신이 내뱉었던 욕망의 바닥을 경험하도록 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것 실컷 다 하고 천국으로 갑시다!’ 바이브레이터 박스를 들고 와 소리치던 벤의 모습이 떠올라 마크는 픽 웃고 말았다.
벤에게 쏱아냈던 망상들은 마크가 상상해왔던 것이었고 어렵지 않게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그러나 실천하기는 어려웠다. 머뭇거리자 벤이 다리를 풀고 마크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세를 취했다. 청년은 상대의 두 다리를 넓게 벌리는 특이한 방식으로 마크를 독려했다. 벤의 성기 끝이 엉덩이골 사이에서 비벼졌다가 멀어지길 반복했다. 마크는 자신이 몸을 열어야 하는지 닫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몸 안, 깊숙한 곳의 근육이 일어날 행위를 기대하며 꿈틀거리고 욱신거렸다. 사위가 열로 뿌옇다. 금방이라도 정신이 나갈 것 같다. 몸이 비틀리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해요. 괜찮아요.”
마크는 혀로 입술을 축였다. 입구가 청년이 어서 들어오길 바라며 묵직하게 열을 뿜는다. 목구멍 안이 바짝바짝 탔다. 벤의 뜻대로 해주면 청년은 대가로 아찔한 쾌감을 줄 터였다.
벤의 섹스엔 몰아붙이는 구석이 있었지만, 청년은 그를 한 번도 진심으로 비웃은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자신이 가슴을 끌어 쥐고 벤을 유혹한다면 그 형편없는 몰골에 ‘너무 웃겨서 못하겠어요.’란 말로 폭소할지언정 싸늘한 눈으로 쳐다보진 않을 것이다. 마크의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근육뿐인 마른 가슴은 쥘 살점도 거의 없었다. 미약하게 솟아오른 가슴에 입을 묻고 벤은 수월히 부드러운 끝을 빨았다. “맛있네요.” 청년의 말에 미간이 구겨졌다. 이 모든 상황이 어처구니없었다. 그런데도 좋았다. 가까워진 청년의 몸이 평소보다 뜨거워서 벤 역시 잔뜩 흥분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뿌듯한 만족감이 일었다. 마크는 벤의 입술을 끌어다 입 맞추고 어깨와 목덜미에도 달라붙어 핥았다. 주제넘지만 그는 청년이 자신의 것처럼 느껴졌다.
벤은 마크를 밀어내지 않았다. 그는 혼을 빼놓는 키스를 마크에게 돌려주었다. 마크가 입술에 정신이 팔린 틈에 벤은 마크의 안으로 치고 들어와 허리를 움직여댔다. 충분히 흥분한 몸이 빨아들이듯이 벤을 삼켰다.
내장이 가득 차는 충격에 마크는 턱을 젖히며 이를 악물었다. 감은 눈꺼풀 안에서 빛이 터졌다. 벤의 송곳니에 긁혀 입술이 살짝 찢긴 것 정도는 느낄 새도 없었다. 벤의 거대한 몸이 깊은 곳까지 들어와 가장 취약한 부분을 찍어 눌렀다. 번갯불에 찍히는 것 같은 날카로운 감각에 온몸이 경련했다. 거칠게 박힌 것만으로 마크는 파정할 뻔했지만 벤이 먼저 움직여 성기를 틀어쥐었다. 젖어드는 끝을 세게 문지르자 뒷목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절정에서 억지로 끌어내려진 마크가 몸부림치며 저항했다. 벤이 상냥하게 속삭였다.
“마크, 잠깐만요. 조금만 참아요. 저번에도 말했던가요? 참아낼 때 당신 안이 얼마나 좋은지.”
벤이 나직이 신음을 내뱉었다. 벤의 들뜬 숨이 마크의 목덜미와 귀에 쏟아졌다. 오싹한 느낌에 마크의 귀에 붙은 솜털들이 일어섰다.
“가슴 놓지 마요. 죽여주게 야해서 빨리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마크는 손을 내려 벤의 손을 뜯어내려다 도로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자신의 몸을 만지는데도 기분이 묘했다. 벤의 타액으로 젖고, 그의 이빨로 인해 부어오른 끝을 만질 때는 등줄기가 움찔 떨렸다. 가슴을 스스로 만지면서 만족감을 얻는 자신이 터무니없었다. 하지만 벤의 말을 따랐다. 청년은 자신보다 어렸지만, 잠자리에 있어서만큼은 마크는 벤을 이길 수 없었다. 그의 주도대로 휩쓸렸고, 완전히 자신을 놔버리자 쾌감은 배가 됐다.
“마크-.”
벤이 재차 그를 불렀다. 계속 파고들고 박고, 빼내고, 치고 들어와 회전하며 흔들었다. 온몸의 체액이 출렁거렸다. 비명을 지르고 쾌감에 자지러지다 결국 마크는 바르작거리며 흐느꼈다. 금방이라도 실신할 것만 같은 몽롱한 상태가 왔다.
열이 몰려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날카로운 쾌감에 불붙고 타버려 빠개지고 조각난 영혼이 몸에서 살짝 벗어나 부유하는 것을 느꼈다. 온몸의 근육이 경련했다. 의지와 상관없이 벤을 조이며 마크 역시 애타게 벤을 불렀다. 제발, 제발! 자신이 뭘 빌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몸 안의 심지가 바짝바짝 탔다. 벌겋게 일어난 심지 위를 청년의 몸이 무두질하듯 문질러댔다. 뱃속을 제멋대로 유영하며 열을 가하고 문지르며 두들겨댄다.
초점이 나가 이리저리 흔들리던 시선 끝에 청년의 입술이 닿았다. 마크는 눈을 깜빡였다. 땀과 눈물이 만든 물막이 렌즈처럼 작용해 순간적으로 시력을 높였다. 무언가를 보고 마크는 몸을 굳혔다. 턱선과 이어지는 목덜미 위, 깨끗한 피부 위에 찍힌 점은 어딘가 모르게 에로틱한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벤자민과 위치가 같았다.
손끝이 떨렸다. 마크는 가슴에서 손을 떼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청년이 마치 벤자민 같다고 느낀 순간 어째서인지 왈칵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마크?”
벤이 마크의 손을 걷어내고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창백히 질린 얼굴을 발견한 벤이 빙긋 웃으며 유령을 달랬다. 벤의 혀가 유령의 젖은 얼굴을 핥고 지나갔다. 다정한 목소리에 잔뜩 굳었던 몸과 마음이 풀렸다. 벤은 벤자민이 아니었다. 그의 제자는 이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당신이 좋아요.”
“나도 네가 좋아.”
마크는 두려움을 몰아내고 빙긋 미소를 돌려주었다.
불가사의한 만족감, 말로 설명하기 힘든 뿌듯함이 밀려들어 마크를 허우적대게 만들었다. 절정 직전에서 헐떡이는 몸은 괴로웠지만, 마음은 충만했다. 동성의 성기에 몸 깊숙한 곳이 열리고 안을 자극받아 사정하는 것과는 다른 기쁨이었다.
“벤, 좀 더…… 좀 더…….”
흐느끼며 애원했다. 더한 쾌감을 달란 표현이 아니었다. 벤은 마크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다. 절정의 순간 벤은 그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