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윗의 탑-1화 (1/18)

[BL] 다윗의 탑 1

……뜰에 교수대가 세워지면,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해 밤에 몰래 독방을 빠져나와 교수대에 가서 스스로 목을 매는 죄수와 같이.

- 프란츠 카프카

*다윗의 탑(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슬럼과 주거지역들로 가득 찬 도시에 ‘다윗의 탑’이 있다. 1900년대 초 어느 은행의 사무동으로 지어졌지만, 모든 은행들의 줄도산 이후 여러 해 동안 미완성으로 비어 있던 이 건물에, 지금은 700가구 이상이 스스로 들어와 살고 있다. 다윗의 탑은 현재 가장 큰 수직 슬럼으로 여겨진다. (출처: 디자인 비엔날레, ‘이완 반’의 사진, <다윗의 탑>, 2011)

다윗의 탑 1

미셸은 묶인 사지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단단하다. 삶고 또 삶아 탄성을 아예 없앤 줄이라도 준비한 걸까. 온 힘을 다해도 철제 침대에 묶인 손을 한 뼘 이상 당겨올 수가 없다. 한참을 의미 없이 몸부림쳤다. 달뜬 호흡에 자신을 납치한 이에 대한 증오가 들끓는다.

개새끼.

그를 납치해 이곳에 가둔 남자에게 미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욕과 저주를 퍼부었다. 아직도 마취제의 역한 냄새가 입안에 감도는 것 같다. 독한 약품의 부작용으로 신장이 훼손될 수도 있었다. 개새끼. 반복해 욕하다 미셸은 지금 자신이 장기 하나에 연연할 때가 아니란 생각을 했다. 미셸은 자신을 납치한 이의 정체도, 그가 자신을 잡아온 목적도, 무엇 하나 아는 것이 없다. 미셸이 묶여 있는 침실 너머 바깥은 차가 다니는 작은 소음도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인적 드문 산중으로 자신을 납치해온 납치범이 혹여 시신을 토막 내 염장하는 게 취미인 미친놈이라면? 불길한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아닐 것이다. 그러기엔 자신이 납치당한 시점이 미묘했다. 미셸의 할아버지가 위독해지고, 유력한 상속인인 미셸과 그에 반감을 품은 백부가 대립할 찰나 일이 벌어졌다. 미셸은 친구들이 불러낸 클럽 뒷골목에서 납치를 당했다. 그의 행동 패턴을 아는 자의 짓이다. 단순한 엽기 살인범의 짓은 아닐 거라고 미셸은 기대했다.

미셸 클뤼젤은 이번에도 그가 이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독려했다. 두려움에 잠식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납치에 내성이 있는 인종이야.’ 그는 중얼거렸다. 백신의 항체로 병을 넘기듯,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있으니 다른 사람보다는 이 끔찍한 상황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자기 최면을 걸어본다.

그의 할아버지는 항공기 회사에서 시작해 세계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호텔 체인을 마련한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할아버지는 특히 예뻐했던 손자 미셸을 여러 차례 언론에 노출시키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 때문에 미셸은 여러 차례 납치 위기를 겪었고 한 번은 실제로 만 하루 동안 갇혀 끔찍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어릴 적 얘기다. 아버지가 가문에서 의절당한 뒤 미셸은 그 나이대 평범한 청년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다. 군에 들어간 뒤로는 더욱 그랬다. 미셸은 이스라엘과 예멘 등을 헤매며 닥치는 대로 굴러먹었고, 산전수전을 겪으며 거칠고 험악해졌다. 정신만 바짝 차렸다면 결코 이런 꼴로 묶여 있지 않았을 것이다. 미셸은 분해하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예민해진 귀에 쇠사슬 따위가 바닥을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장실에 가게 해줘! 줄을 이딴 식으로 묶어놓으면 어쩌자는 거야?!”

미셸의 고함에 끌리는 소리가 바로 딱 멎었다. 납치범 사내가 바로 옆에 있단 얘기였다.

“이것 좀 풀어줘. 쌀 것 같단 말이야!”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다 미셸은 헛숨을 들이쉬며 잠시 동작을 멈췄다. 납치범 남자가 유령처럼 문 앞에 서 있었다. 사슬을 두른 창백하고 음침한 모습이 디킨즈 소설 속 크리스마스의 악령 뺨친다. 남자가 사슬을 바닥에 내려놓고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왜?”

왜라고? 사람을 납치해놓고, 뭐가 불만이냐고 묻는 건가. 미셸은 이를 갈았다. 그는 과장되게 허리를 비틀었다.

“줄 좀 풀어줘. 당장 폭발할 것 같아.”

“그냥, 싸.”

“뭐?”

“……싸라고.”

“…….”

남자는 무표정하고 말이 없었다. 기껏 입을 열어도 세 음절 이내로 말을 뚝뚝 끊어지게끔 말했다. 평범한 사람과는 전혀 다른 말투와 병자처럼 깡마른 체구엔 어딘가 모를 오싹함이 있었다. 남자가 방에서 나간다. 부엌 쪽에서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미셸은 불길한 예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납치범 사내가 대야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여기.”

“장난해? 소변은 그렇다 치고 대변도 거기에 받으려고?”

“…….”

납치범 사내가 고요히 가라앉은 푸른 눈으로 미셸을 노려보았다. 미셸이 묶인 채라 정확히 비교할 수는 없으나 남자의 키는 미셸과 비슷하고, 체구는 미셸보다 살짝 말랐다 싶은 정도다. 묶여 있지만 않다면 이 정도 남자는 단 일 분 만에 제압할 수 있다. 미셸은 마음속에 몰려드는 두려움을 밀어내려 애썼다. 그러나 남자의 눈동자에 맺힌 미묘한 눈빛은 미셸을 움츠러들게 했다.

“사슬로.”

한참 뒤에야 사내는 말을 이었다.

“묶을 테니.”

무슨 소린가. 미셸은 한참 뒤에야 사내의 말을 알아들었다. 줄을 긴 사슬로 바꿔줄 테니 그때까지 참으란 소리다. 치가 떨렸다.

“개 같은 소리 마! 당신 뭐 때문에 날 납치한 거야? 이렇게 더럽게 굴지 말고 원하는 게 있으면 말을 해.”

지익, 납치범 사내가 예고도 없이 미셸의 바지 지퍼를 내렸다. 미셸은 놀라 흠칫 몸을 떨었다. 사내가 미셸의 성기를 들고 그 밑에 대야를 댔다. 미셸은 소름에 뒷목의 머리칼들이 꼿꼿이 솟는 걸 느꼈다. 사지를 꿈틀댔으나 끈은 끔찍하게도 단단했다. 모든 상황이 역겹고 더럽다. 하지만 사내를 필사적으로 불러댄 요의는 진짜다. 미셸은 사내를 꼬여내려 거짓말을 한 게 아니다. 얼굴을 가리고 결국 방광에 가득 찼던 액체를 방출했다.

“……시팔…….”

실험실의 청개구리처럼 사지를 쫙 벌리고 같은 사내놈에게 소변 시중이나 받고 있다니. 미셸은 유일하게 자유로운 입으로 낡은 시트를 물어뜯었다. 자신의 이가 칼처럼 날카로웠다면 끈을 끊고, 나아가 눈앞에 있는 개자식의 멱을 따버릴 터였다.

정신 나간 사내는 미셸의 하의를 벗긴 그대로 방을 나가버렸다. 찬바람에 훤히 샅을 드러낸 꼬락서니가 미셸을 더 미치게 만들었다. 대야를 비우고 돌아온 남자가 이어 환장할 짓거리를 했다. 젖은 수건으로 끝의 젖은 곳까지 샅샅이 닦은 뒤 마른 수건으로 재차 그 짓을 반복했다. 상황 모를 자가 본다면 고급 골동품을 손질하는 걸로 오해할 것이다. 미셸은 성기를 쥐고 놓지 않는 남자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일갈했다.

“그만 놔! 토할 것 같아!”

“닦…….”

닦아주는 것뿐이라고 말하려던 남자가 무슨 연유에서인지 입을 다물었다.

“필요 없으니까 놓으……!!”

미셸은 뱉던 말을 삼켰다. 허리가 움찔 떨리며 하반신이 비틀렸다. 미셸의 몸을 닦으며 기분 나쁜 동작으로 샅 부분을 만지작거리던 남자가 깊숙이 성기를 입에 물은 탓이다.

“놔! 이 미친……!!”

사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미셸의 성기를 목구멍 안까지 깊게 빨아들이고 끝을 혀로 할짝거렸다. 입안은 뜨겁고 습했다. 두 손으로 살점을 쥐고 한참 공들여 살덩이를 빨던 남자가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미셸을 올려다보는 눈매가 축축하게 젖었다. 싸구려 포르노를 흉내 내는 듯한 엉성한 구음에 미셸은 흥분했다.

침대의 아래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남자가 바지를 벗었다. 철그렁, 벨트가 풀려 쇠 부분이 바닥에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눈앞에서 자기와 같은 게 달린 사내가 옷을 벗고 있다. 미셸은 달아올랐던 흥분이 싹 가시는 걸 느꼈다. 끔찍함이 스멀스멀 피부를 타고 올랐다. 사내는 미적거리며 침대로 곧장 올라서지 않았다. 이마를 침대에 묻고 침대 아래에서 손을 움직였다. 사지가 꽁꽁 묶인 탓에 미셸은 남자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잘 보지 못했다. 바지가 벗겨지는 소리와 남자의 밭은 숨소리에 미셸은 사내가 잔뜩 흥분한 상태에서 콘돔을 끼느라 낑낑대는 줄로만 짐작했다.

귀와 목덜미를 새빨갛게 물들이고 미약하게 어깨를 떨며 무언가를 하고 있던 남자가 이내 하던 걸 멈췄다. 바지를 벗은 채로 올라오는 남자의 헐벗은 하반신에 미셸은 어울리지 않게 풋, 웃어버렸다. 흉하고 끔찍했다. 실소하는 미셸을 남자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납치범 사내가 미셸의 몸에 타올랐다. 미셸은 몸 전체로 웅크렸다. 사내의 몸무게에 헉, 하고 신음이 터져 나왔다. 거부감에 구역질이 났다.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미셸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남자를 노려보았다. 납치범 사내가 떨리는 손으로 미셸의 성기를 쥐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신의 엉덩이를 벌리고 미셸의 성기 위로 주저앉듯 몸을 내렸다. 미셸은 비명을 내지르고 싶은 걸 참았다. 남자의 안이 너무 빡빡해 성기가 아팠다. 손이 자유로웠다면 미셸은 남자의 허리를 밀어내 몸을 아래로 내리는 남자를 막았을 것이다.

납치범 사내의 몸이 진땀으로 젖어들었다. 끙끙거리는 숨이 코에서 새어나왔다. 그는 미셸의 배에 손을 얹고 바들바들 떨며 좁고 뻑뻑한 안으로 천천히 미셸의 몸을 끌어들였다. 가장 굵은 부분까지 넣고 사내는 밭은 숨을 내쉬며 잠시 쉬었다. 그제야 미셸도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뭐, 뭐하는 거야?! 내 몸에서 비켜!”

미셸은 허리를 비틀며 저항했다. 바들바들 떨리던 무릎이 풀리며 납치범 사내는 그대로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예기치 않게 깊게 삽입된 고통에 사내의 허리가 크게 휘청거렸다. 뜨거운 이마가 잠시 미셸의 어깨에 닿았다. 사내의 축축하게 젖은 고수머리가 맨살에 닿은 게 끔찍해 미셸은 이를 갈았다.

“하아…… 하아…….”

바들바들 떨던 남자가 이내 기운을 차리고 멋대로 허리를 움직였다. 아래위로 움직일 때마다 미셸의 허벅지와 고환에 사내의 맨 엉덩이가 닿았다 떨어졌다 했다. 접합부로부터 피인지, 사내가 흥분해 뱉어낸 애액인지 모를 것이 축축하게 묻어났다. 끔찍했다. 그러나 미셸은 성기 전체를 꽉꽉 조여오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사정하고 말았다.

“아아…….”

정신 나간 상태로 허리를 흔들던 상대는 직장 안이 뜨거워지는 감각에 잠시 움찔거리더니, 그렇게 한참을 더 허리를 흔들었다. 사내가 만들어낸 마찰에 금방 절정에 도달한 성기가 예민하게 반응하며 움찔거린다. 미셸은 울부짖었다. 온몸이 다 범해진 듯한 더러운 기분에 눈앞이 새빨개졌다.

“……그만 꺼져! 그만하란 말이야!!”

눈을 감고 있던 사내가 고함에 눈을 떴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일어서서 방을 나갔다.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이고 비슬거리며 걸어가는 자세만이 조금 전 일이 사실이었다는 걸 증명했다.

사내는 잠시 후 돌아와 익숙하게 미셸의 다리 사이를 닦고, 꽁꽁 묶은 끈을 기다란 사슬로 바꾸어주었다. 미셸은 눈을 껌뻑이며 그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겁간의 충격으로 혼란에 빠졌던 미셸은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납치범 사내가 커다란 실책을 저지른 걸 알아냈다. 사슬은 미셸이 화장실에 가고도 남을 만큼 길었다. 사내가 이 방의 공간 안으로 들어오기만 한다면 미셸은 어렵지 않게 사내의 목에 사슬을 감아 그를 목조를 수 있었다.

희망이 엿보였다. 미셸은 몸을 단련하며 기회를 노렸다. 사슬이 절그렁거리는 소리에 납치범 사내는 건넛방에서 작게 몸을 말았다. 그가 납치한 것이 반짝거리는 유리 인형이 아닌, 터무니없는 야수였단 사실이 그를 겁먹게 했다.

깊은 산 속의 버려진 폐가 속에서 납치범과 인질은 서로를 쫓고 피하며 좁은 집 안을 빙빙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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