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퍼라도] 156. 최후의 결전
데스퍼라도(Desperado)
최후의 결전
하지만 리크는 정작 자신은 변한 것이 없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계 전사들 앞으로 다가왔다. 그 누구 하나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자 다소 실망한 듯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대뜸 한마디했다.
"왜 사람을 그렇게 괴물 보듯 해요?"
그때였다. 케시어스가 앞으로 나오더니 리크를 살펴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디 다친 데 없니?"
그 동안 사계 전사들 뒤편에서 말없이 따라다니기만 했던 천인 출신 케시어스가 말하자 리크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사실 이곳 멸성인들 중 제일 하급계열에 속하는 천신들이 흑신룡과 고룡 카라펠리오에 의해서 전멸 당하자 같은 천신 출신 케시어스는 자신의 동족이 살육 당하는데 그리 반길만한 입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종족을 무참히 학살한 그들이 죄값을 받는데 스스로 인정하기로 했다. 정작 그녀가 서운했던 것은 자신의 자격지심에 대한 서운함이었다. 사계에 있을 때만 해도 천인 출신인 자신의 능력이 대단하다 느꼈지만 점점 사계 전사들의 전투 기술이 일취월장하니 그 스스로는 한없이 낮아지는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더구나 리크는 세아린에게만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으니 그녀는 아예 뒤로 물러나 평범한 사계 전사로서 임무를 수행하고 이 전쟁이 끝나면 영원히 떠나버릴 참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조금 전 거의 신(神)들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대 격돌을 보고는 다른 사계 전사들괴는 달리 오로지 리크의 안위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현재 케시어스의 심정을 굳이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나중에 그이 곁을 떠나야만 하는 그녀 입장에서 현재 리크에 대한 절실한 사랑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어 난 괜찮아..후. 그래도 날 걱정해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구나.."
리크는 갑자기 세아린을 보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야 임마. 넌 케시어스처럼 따뜻한 한마디조차 할 줄 모르니? 빌어먹을.."
갑자기 당황한 세아린이 얼굴을 붉히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케시어스는 자신이 괜히 나섰나하고 그냥 저 사계 전사 뒤로 사라져버렸다. 그때 마이클이 어색한 분위기를 바로 잡으려고 잽싸게 앞으로 나왔다.
"헤헤. 리크. 너 진짜 대단하다. 세상에 리크 네가 기절초풍할 정도로 그렇게 셀 줄은 몰랐어. 자식 지금까지 힘을 숨기고 있었군. 엉큼한 놈 같으니.."
"후후. 진짜 그렇게 보였냐?"
"그럼. 임마.."
아무튼 사계 전사들이 본 리크의 전투 광경은 실로 평생에 뇌리에 남을 정도로 엄청난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대장으로 자신들을 리더 하는 리크에 대한 확실한 신뢰와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그들을 기다리는 자는 실질적인 멸성인들의 절대자인 3명의 천신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진정한 싸움은 지금부터이다. 골드 드래곤조차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니 과연 산 넘어 산이라 했던가. 오로지 믿는 사람은 리크 그리고 흑신룡과 백신룡 정도 나마지 사계 전사들은 더 이상 앞으로 나타날 멸성인 초상급전사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날 밤 사계전사들은 그곳 바위산 중턱에서 야영하기로 하고 모닥불을 피워 빙 둘러서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날도 모처럼 만에 즐거운 대화가 오고 가고 있었다. 한편 리크는 나무 막대기로 땅바닥에다 뭐라 쓰고는 모두 보라고 했다. 사람들은 도대체 리크 뭘 적었는지 저마다 궁금한 듯 쳐다보았다.
"줄리아탄.."
"줄리아탄이라니.."
"리크. 그게 뭐야?"
리크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빙그레 웃었다."
"하하. 이 이름으로 바꿀까 하는데.."
"갑자기 이름을 바꾸다니.."
"리크보단 줄리아탄이 괜찮지 않아. 뭐 어감도 그렇고 좀 강해 보이잖아."
"아냐. 난 리크가 훨씬 좋아."
"나도. 리크란 이름에 정이 들었는걸."
"나도. 리크가 좋아. 줄리아탄은 뭔지 모르게 좀 생소해서.."
"알..알았어요. 전 앞으로도 그냥. 리크에요. 후. 난 옛날 이름이 더 마음에 드는데.."
"예날 이름이라니.."
"아..아니에요. 그나저나 세아린과 케시어스는 어디 갔어요?"
저기 숲 속 안에서 지들끼리 불 펴놓고 있어."
"왜요?"
"뭐 자기들끼리 할 얘기가 있다고.."
"참. 여자들이란. 그냥 여기 와서 같이 어울리기나 하지..꼭 티내기는.."
"나둬라. 우리같이 선머슴들과는 달리 아마 이 칠계의 밤을 낭만적으로 즐기고 싶은가 보겠지."
"무슨 얼어죽을 낭만이에요. 그것도 여자들끼리..젠장."
"하하하. 그럼 우린 남자들끼리 술이나 한잔하며 낭만을 즐겨볼까..어차피 다음에는 마지막 전투가 될지 모르니 말이야."
목유성이 자신의 베낭에서 술 가죽 통을 꺼내더니 각자 잔을 쥐고 있던 사계 전사들에게 한잔씩 따라주었다.
"비록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새 정이 들었군. 자 슬레이어 자네부터 한잔 받게나. 자넨 진정 나조차 흠모할 남자 중에 남자란 말이지. 허허."
"후후. 목유성 자네 역시 나와 배포가 맞는 것 같은데."
그때 마이클이 어이없다는 듯 외쳤다.
"쳇! 둘이 사귀는 아니죠. 징그러워서..정말.."
"저..저런 싸가지 없는 놈 보게나.."
한편 숲 속 안에는 세아린과 케시어스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긴 아도라의 영역으로서 초상위 공간이자 천신들의 의식이 창출한 세계이지만 모든 것이 완벽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실제로 동. 식물들이 저마다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고 풀벌레 소리마저 찌르르르 울리니 한밤의 정막 속에 연주를 하는 느낌이었다.
"아름답지.."
"응."
세아린과 케시어스는 얼마 전부터 친구로 지내기로 하고 이젠 친구처럼 서로 말을 놓고 지내고 있었다. 이 칠계로 오던 날 그리고 케시어스의 동족인 천신들이 흑신룡들에 의해서 학살당하던 날. 세아린만이 유일하게 케시어스를 위로했고 다독거려주었다. 또한 같은 여성들이어서 그런지 남자들이 느낄 수 없는 섬세한 감정 등을 나누고 있었으니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친한 친구사이가 되어 버렸다.
"이 전쟁도 이제 그 끝을 향해 다가가는군."
세아린이 말하자 케시어스가 빙그레 웃었다.
"후. 정말 지루한 싸움이야.."
"케시어스. 지루하다니..그 동안 정신없이 싸워왔는데."
"모르겠어. 다른 한편으로는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 멸성인들이 창조주를 역행했다고 말하는데 솔직히 지금은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잘 모르겠어. 우리 같은 하위 존재들이야 위에서 역행을 하던 말든지 그저 자연 만물 속에 생을 거듭하며 살아가면 그만이잖아. 이렇게까지 나서는 것도 사실은 신(神)들의 영역에 대한 도전이잖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호호. 사실 나도 그래..난 저 아래 일계 휴론계에서 그저 평범한 시골처녀로 태어나서 지금은 뭐 라우타르 대마법사의 기연을 얻고 리크라는 전사를 좋아하게 되어 여기까지 올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거든. 정말 이 모든 것들이 꿈만 같아. 마치 상상 속의 세상에 와있는 것 같아."
"세아린 너 오늘따라 무척 감상적이다. 치. 어울리지 않게.."
"케시어스 내가 비록 성격이 선머슴 같지만 나에게도 여린 구석이 많아."
"알았어 믿어줄게.."
"진짜야. 이 계집애야..!"
"어! 너 아무리 친해졌다고 하지만 말투가 너무 거친 것 아니야?"
"호호. 그럼 너도 한번 해봐. 넌 너무 내숭 떠는 게 흠이야. 여우같은 계집애 같으니. 아까 는 네가 리크의 안위를 걱정하는데 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더라고. 정작 리크를 좋아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나는 리크의 안위보다 그가 갑자기 두렵다는 생각부터 앞섰거든."
"미안해!"
"바보 같은 계집애..그냥 있는 대로 솔직하게 살아! 내가 리크를 좋아한다고 괜히 내 눈치를 봐가며 속으로 끙끙 앓을 것까지는 없어. 그러니 그냥 편안하게 살자."
"후후. 솔직히 지금 난 리크보다 세아린 너 같은 친구를 얻은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나도 그래..그까지 사랑이야 마음만 먹으면 아무 때나 할 수 있지만 이렇게 좋은 친구는 쉽게 얻을 수 없거든.."
"이제야 말이 통하는 것 같군..호호호."
"호호호."
한편 공터에 술을 마시던 사계전사들은 저 숲 속 안에서 세아린과 케시어스의 웃음소리가 들이니 저마다 의아한 표정들을 지어 보였다.
"젠장. 여자들이 수다들이란.."
"누가 뭐래! 그냥 여기 와서 우리와 같이 어울리지. 아무래도 여자들이 와야지 분위기가 좋은데."
그때 마이클이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리크에게 말했다.
"리크 너 솔직히 세아린이 더 좋니 아니면 케시어스가 더 마음에 드니..흐흐. 둘 중에 하나 선택하라면 누굴 선택할거야?"
"미친놈..세아린과 케시어스는 내게는 똑같이 친구란 말이야."
"후후. 자식 그런 말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 자식아 그냥 술이나 먹어. 괜히 그런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아무튼 난 네가 부럽다. 친구든지 애인이든지 나도 그런 삼각관계에 빠져드는 것이 소원이다. 빌어먹을.."
* * *
아도라의 영역. 언제부터 그렇게 불렸는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단지 3명의 천신들이 그렇게 명칭 지었으니 다른 모든 칠계 주민과 멸성인들 역시 그렇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여하튼 이 아도라의 영역이 3명의 천신들에 의하여 창조되고 그 나름대로 자연의 법칙이 운행되고 있었으니 현재 칠계의 차원을 갖고 있는 이 조그만 우주의 주인 그들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이 아도라의 영역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일파만파 퍼져 전 구역의 초상위 신(神)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즉 신(神)들의 사냥꾼 저 아래 중간계인 사계에서 출현하여 베론소니프 영역에서 천인들과 레드 드래곤을 멸살 시키고 베른의 영역으로 올라와 천공전사들과 블루 드래곤을 살육한데 이어 마지막 초상위 공간인 이곳 신(神)들의 영역인 아도라에 까지 와서는 4대 정령들 마저 소멸 시켰으니 모든 멸성의 신들이 경악해마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었다. 이 소우주의 창조주마저 가두어 놓고 역행을 성공시킨 뒤 나름대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이 들 멸성인들에게는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음이 분명했다.
도대체 오늘날 이곳 구역까지 쳐들어와서 초토화를 시키는 전사의 실체가 누구란 말인가? 결국 창성인이라고만 알려졌던 리크의 실체가 빛의 전사로 밝혀지던 날 이곳 아도라의 영역의 본성은 발칵 뒤집혔다. 아도라의 영역에서 각 구역의 실권자들과 수많은 원로원, 신(神)드르이 능력을 지닌 장군과 고위 대신들이 저마다 아도라의 본성으로 모여들었으니 이는 빛의 전사 리크에 대한 대비책 강구의 대 회의에 참석하기로 한 것이었다. 3명의 천신들이 소집명령을 내렸고 전국의 모든 멸성인들 실권자들은 그들 천신들의 명령을 거절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어쨌든 멸성인들이 창출한 이 세계에 다가오는 최대의 위기가 아닐 수 없기에 모든 존재들은 저마다 극도의 긴장된 표정으로 회의장에 속속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도라의 본성은 높은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져 있었기에 사실 육로로 통해서 들어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렇게 이 성에서 열리는 대 회의 참석하기 위에서는 하늘을 날아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날개 달린 존재들, 혹은 거대한 드래곤을 타고 참석하는 자들 어떤 존재들은 날개 없이 공간이동을 하는가 하면 순간 이동으로 단번에 본성 안으로 직접 참관하는 존재들도 있었다.
그날 오후가 되어서야 아도라 영역의 전국 모든 멸성인들의 지도자들이 모여들었으니 그 숫자만 하더라도 근 2000여명이 넘었다. 대강당에 빼곡이 앉아서 3명의 천신들을 기다리는 그들의 표정은 매우 엄숙했으며 숨소리하나 들리지 않았다. 참으로 이채로운 광경이었다. 아도라의 세계가 세워진지 수만 년 동안 이처럼 모든 관장 신(神)들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없었기에 그저 이런 대회의가 열린다는 것 자체가 실로 대사건이 아니랄 수 없었다. 잠시후 화려한 복장을 입은 세 명의 천신이 나타나자 전 참석자들이 일시 일어나 저마다 오른손을 가볍게 들었다. 이에 세 명의 천신들 역시 손을 들어 답하니 참석자들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세 명의 천신들은 놀랍게도 이제 20초반에 정도의 젊은이들로서 두 명은 남자이고 한 명은 여자였다. 그중 금빛 문양을 수놓은 망토를 입은 자가 앞으로 나서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의 백성들이여! 아도라의 전사들이여! 이렇게 오늘 대 회의에 참석하여 고맙게 생각한다! 나 엘르 천신은 여기 페론 천신과 시스리아 천신을 대신하여 여러분을 대 환영하는 바입니다.."
긴 검은머리의 엘르 천신은 유난히 횐 피부에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큰 키의 미남형이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제왕과 같은 엄숙함이 서려 있었으니 그 누구도 감히 범접 못할 기도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이에 반해 다른 남자 천신인 페론은 다소 작은 키에 귀여운 소년의 용모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일한 여성 천신인 시스리아는 초록의 긴 머리를 하나로 딴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만물을 호령하는 천싱이라기 보다는 그저 아름답고 부드러운 미모의 여성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쨌든 엘르 천신에 의해서 회의는 시작되었고 곧이어 원로급의 고위층 멸성인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위대한 엘르 천신님. 현재 이 아도라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작금의 사태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사태라..후후. 사태라 보기에는 그 단어가 별로 어울리지 않는군요. 단지 정령들이 소멸 당했을 뿐인데.."
"분명 4대 정령들이 그 리크라는 자에게 소멸 당했을 텐데 어찌 그것이 큰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4대 정령은 전투를 목적으로 하는 전사라기 보다도 그저 이 칠계의 자연적 힘을 의지하는 영령체에 불과한 존재들이오. 어차피 전투를으로 전문으로 하는 그 리크라는 자에게 패한 것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는 거죠."
"소문에 듣기에는 그 리크라는 자가 창성인이 아닌 빛의 전사라 하는데 그 진위를 엘르 천신님께서 직접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엘르 천신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겨우 말문을 열었다.
"그는 빛의 전사가 맞소이다."
순간 대강당의 수천 명의 참석자들이 술렁거렸다.
"소문이 확실하군."
"빛의 전사라면..그 조홀 우주의 빛과 암흑의 전쟁에 참가한 위대한 전사들 아닌가?"
"후. 빛의 전사가 하필 이곳 칠계 소우주에 나타난 이유가 뭐지?"
그때 엘르 전사가 큰소리가 대강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다들 조용히 하시오!]]
[ ..... ]
순간 소란스러웠던 대강당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잠시후 엘르 천신이 계속해서 말문을 이어갔다.
"왜 빛의 전사가 이곳 소우주에 나타났나 여러분이 궁금해하실 것 같은데. 그 건 바로 오래 전 이 곳 창조주가 우리의 반란을 예상하고 그곳에서 빛의 전사를 데려 온 것입니다."
"데려 왔다고요?"
"그렇소. 우리 천신들 조차 그런 사실을 최근에 들어서야 알 수 있었소. 사실 빛의 전사들은 그 숫자가 아주 많습니다. 그들 모두가 전투실력이 우릴 능가하지는 않소이다. 하지만 진짜 심각한 문제는 이곳에 온 빛의 전사 리크는 그저 단순한 빛의 전사가 아니라 바로 그 빛과 암흑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변형된 창조주이자 위대한 전사의 아들이란 말입니다.."
대강당은 또 다시 술렁거렸다.
"그런 사실을 지금에야 말하다니.."
"어쩐지 사대 정령들이 맥도 못 추고 소멸 당한 것이 당연하겠지."
"그나저나 전 창조주가 엄청난 자를 이곳으로 데려 왔군."
엘르 천신 역시 침통한 표정으로 일관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힘차게 말했다.
"사실 이 소우주에서 그런 대전사의 아들이 왔다는 자체가 아주 크나큰 위협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리크는 단지 위대한 전사의 아들일 뿐 너무 과대평가 할 필요는 없습니다."
"과대평가라니요. 그는 사계전사들을 데리고 저 베로소니프 영역에서 베른의 영역을 거치며 단숨에 아도라의 영역으로 쳐들어와 4대 정령들을 일거에 박살낸 무서운 자요. 그런 그를 오히려 과소평가 할 생각은 없습니다."
"맞아.."
"암 그렇지.."
"빛의 전사 중에서도 아주 상급 전사에 속하는 존재란 말이야. 더구나 그 위대한 전사의 아들이라면 그 아버지의 절기도 다 물려받았을 텐데.."
엘르 천신은 대강당이 다시 소란해지자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쯧쯧. 어이없군. 과연 이 놈들이 자칭 신(神)들이라 뻐기며 행세하는 존재들이란 말인가? 그나저나 이 사태를 수습하고 대비책을 만들려고 회의를 소집했건만 오히려 이들에게 두려움만 더욱 안겨주었군.'
렐르 천신은 잠시 생각에 빠져 있다가 다시 큰소리로 말했다.
"다들 조용히 하고 내 말을 들어보시오. 그 리크라는 자의 전투 실력이 어느 정도 이건 간에 그는 우리 천신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들어와 버렸으니 다 이상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오. 자 지금부터는 우리 천신들을 믿으시오. 우린 이 세계를 창조한 절대자인자 새로운 창조주입니다."
"물론 천신님들이 절대자로서의 능력을 가진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빛의 전사 리크라는 자가 나타난 이상 아도라님이 현신 하셔야 된다고 보는데.."
"아도라님은 이따위 소란에 나타날 분이 아니오."
"이 따위 소란이라니오? 지금 아도라의 영역에 엄청난 힘을 가진 전사가 나타났는데 그저 모른 척만 하지는 않겠지요."
"이보시오. 진정 우리 천신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거요?"
그날 대 회의는 이렇다 할 좋은 방안도 끌어내지 못한 체 끝이 나버렸다. 아도라의 본성 꼭대기 테라스에는 3명의 천신들이 저 펼쳐진 세계를 내다보며 다소 시무룩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까 낮에 열렸던 대회의에 대해서 곱씹으면서 씁쓸한 마음을 달래고 잇는 것 같았다.
"기가 막히는군. 우리조차 믿지 못하다니.."
"엘르..그들이 우릴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의 전사 리크에게 너무 큰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일 거야."
"페론. 우린 명색이 전 창조주를 몰아내고 이 세계를 다시 구축한 절대자의 신분이란 말이야. 그런 우리를 믿지 못하고 아도라님까지 들먹이니 이거 영 자존심이 구겨지는군."
"그나저나 이번 일에 아도라님은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네."
"이봐 페론 자네까지 그런 약한 생각을 하면 어떡하나? 어쨌든 이번을 우린 선에서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우리 셋이 합친다면 그 힘은 이 소우주가 들썩거릴 정도로 막강한데 설마 그 애송이 빛의 전사하나 제압을 못하려고. 후후."
"흠. 그런가? 어찌 보면 그런 대로 상대 해줄만한 존재는 된다고 보는데.."
그때까지 도통 말수가 없는 여성 천신 시스리아가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
"후. 며칠 뒤에 빛의 전사들과 사계 전사들이 이곳에 마지막 결전을 위해 올 때 우리 세 명의 천신들 그리고 다른 관장 신(神)들과 골드 드래곤들 전부다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는다면 그 승리를 확신할 수는 없어."
엘르와 페론 천신은 시스리아 천신의 말을 듣고는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시스리아. 너도 리크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구나?"
"사실이 그래..그나저나 너희들 벌써 우리들 신분을 있은 건 아니겠지. 우린 원래 이곳 칠계 소우주 출신은 아니잖아. 그 옛날 조홀 우주에 원정 온 상급 천신의 자격으로 왔다가 전쟁에 염증을 느껴서 새로운 우주를 찾기 위해 이곳까지 흘러 들어왔지만..쳇 이곳에서는 그래도 대접을 받으며 조용하게 살려했건만..설마 그 위대한 전사의 아들이 올게 뭐 람."
"줄리아탄이 원래 리크의 이름이지. 내 정보가 맞다면 줄리아탄은 그 위대한 전사의 직속 후계자란 말이야."
"젠장."
"후후. 재수 없는 일이지. 하필 그런 존재가 이런 조그만 우주까지 나타날 줄이야."
"결국 우리가 이곳 칠계 차원의 창조주를 역행하고 우리 세계를 구축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보기 좋게 참패 한 거나 마찬가지야. 전 창조주가 리크를 불러왔으니 말이지."
"벌써부터 그런 약한 소리하면 어떻게 해! 마지막 결전이 비록 힘든 싸움이 돌지라도 우리 역시 그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을 거야."
"그래 야지. 기필코 그래 야지. 우리가 이 세계에서 이룩해놓은 것을 지키려면.."
"하긴 우린 그 옛날 무적의 다르 천신 출신이 아니었던가. 하하하."
"다르라 오랜만에 들어보는 군. 후. 다르 우주에서의 초전사로 활약하던 시절도 괜찮았는데. 여하튼 이렇게 셋이 눈이 맞아서 동료들을 떠나고 이곳에서 절대자 행세를 하는 것이 너무 좋았는데. 뭐 그간에 희생자들이 적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만한 자리에 오르려면 그 정도 희생은 감안을 해야겠지."
"물론이지. 자. 그럼 본격적으로 전력 검토를 하고 작전을 세워 볼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