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퍼라도] 153. 아도라의 영역
데스퍼라도(Desperado)
아도라의 영역
사계 전사들 중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아도라의 영역으로 가기를 원했고 결국 리크는 그들의 지원을 받아들였다. 사실 이곳까지 오면서 사계 전사들 대부분이 큰 부상 없이 온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도라의 영역에서조차 운이 따라준다는 보장은 없었다. 어쨌든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듯 하였다. 그날 밤 이들은 베른의 영역에서는 마지막 만찬을 끝낸 셈이 되었다.
그 다음날 오전.
끝없이 펼쳐진 산맥에 간간이 눈까지 덮여있었다. 가파른 능선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한 줄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사계 전사들이었고 아주 조심스럽게 앞으로 한발씩 전진하고 있었다. 구름까지 뚫고 올라온 능선 위에는 발을 조금만 잘못 디뎌도 저 천길 절벽 아래로 추락사할 것만 같았다. 그 중에서 유독 고소공포증이 있는 마이클이 엄살을 부렸다.
"젠장. 이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도저히 앞으로 못 가겠어. 도대체 아도라의 영역으로 가는 길이 여기밖에 없는 거야?"
"이길 밖에 없어. 여긴 파뢴프아스 산맥이라 불리는 곳으로 바로 아도라 영역과 맞닿은 경계지역이란 말이지.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통로는 이 협소한 능선 길과 이어진 저 위 절벽 길이란 말이야."
"그렇다면 저기 절벽으로 또 올라가야 한단 말이야! 이거 정말 미치겠군. 지금도 어지럽고 추워 죽겠는데.."
"조금만 참아! 저 절벽만 통과하면 곧바로 아도라의 영역 초입지역과 맞닿아 있으니..사실 거의 온 것이나 마찬가지야."
"물론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하지 않고 산다면 말이지.."
"하하. 천공전사까지 물리친 위대한 마이클이 추락사한다면 그 누가 믿겠니..그만 엄살 부리고 자 가기나 하자고."
"하..하긴..난..위..위대한 전사인데..설마 추락해서 뒈지는 건 아니겠지..빌어먹을..."
잠시후 리크와 일행들은 절벽에 나있는 외길을 따라 겨우 정상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고지대인 산맥 정상에 바라보는 주변 광경은 한마디로 장엄했다. 모든 구름이 발 아래로 깔리고 칠계의 푸른 태양이 엄숙하게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분명 한낮인데도 마치 밤하늘에 떠있는 별무리가 그 모습을 짝 들러냈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대우주의 경이로움과 지상의 경관이 한데 어우러지니 정말 이곳은 신(神)들의 세계임이 맞는 것 같았다. 그때 고룡 카라펠리오가 한마디했다.
"후. 이곳 정상 지점은 정확히 베른과 아도라 영역의 경계점인데 저 맞은편 세계가 바로 아도라이지..그러니까 우리는 이제부터 신(神)들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거란 말이야."
그때 마이클이 갑자기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동작을 취했다.
"아멘. 신이시여 제발 노여워하지 마시기를...적어도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리크 역시 주변을 쭉 살펴보더니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후후. 신(神)들의 영역이라. 그렇다면 이거 영광이군. 우리 같은 하위계 미물들이 감히 이런 신성한 영역에 들어왔으니..어쨌든 지금부터 시작이란 생각이 드는군..."
일단 이들은 정상 위에서 쉬고 잠시 후 저 아도라의 영역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제법시간이 흐른 뒤 드디어 리크와 일행들은 신비의 공간인 펼쳐 저 있는 아도라의 경계선을 넘어섰다. 벨론소니프 영역과 베른의 영역의 들어서는 기분과는 자못 다른 분위기였다. 무엇인가 강렬한 에너지가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벌써부터 사계전사들 가슴에 와 닿고 있었다. 저 지대로 내려올수록 짙은 초록의 숲들과 들판들이 보였다. 가끔 이상한 모양의 신전들이 곳곳에 있었고 기묘하게 생긴 동물들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뭔가 불안해!"
마이클이 말하자 목유성이 거들었다.
"정말 평화롭군. 아니 너무 고요하다고 할까?"
"그 고요함이 오히려 더욱 기분 나쁘게 만드는데.."
"여기가 그 무시무시하다는 아도라의 영역이 맞는가?"
"일단 안으로 좀더 들어가 보자. 주변에 신전 건물들이 보이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아."
그때 리크가 허리를 굽히더니 땅바닥의 흙 한줌을 쥐고는 살펴보았다. 다른 사계전사들은 도대체 리크 뭘 하는 지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리크 뭐야? 갑자기 흙을 한줌 쥐고 뭐 하는 거야?"
"이 흙을 잘 보라고.."
[획]
리크가 흙을 하늘로 던져서 뿌리자 흙은 푸른빛으로 변하더니 허공에서 '팟' 하고 사라졌다.
그 광경에 사계전사들은 저마다 깜짝 놀랐다.
"흙이 사라졌어."
"그렇다면..우리가 딛고 있는 땅이 허상이란 말인가?"
"여긴 누군가의 강력한 마법 결계로 만들어진 세계이지."
"땅뿐만 아니라 주변 산, 숲, 신전 등이 모두 허상체들이란 말이야?"
사계 전사들 사이에서 혼란함이 일자. 리크가 한마디했다.
"허상이지만 그저 단순히 허상 체로 보아선 안됩니다. 여긴 실제로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살고 여러 신들과 정령들이 사는 실상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실상과 허상의 차이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거죠."
"리크 말이 좀 어려운데 쉽게 설명 좀 해주겠니?"
"간단하게 말씀 드리자면 여긴 천신(天神)들이 만들은 세상이란 말이죠. 바로 그들의 관념으로 만들어진 영역이란 거죠."
그때 목유성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결국 우린 천신(天神)들이 만든 결계 지역으로 갇히게 된 셈이군. 그러니까 천신들은 여기 아도라의 초입지역에다 미리 결계를 쳐 놓고 우릴 기다린 거였지. 바로 함정을 팠단 말이야. 어때 내 말이 맞지 리크?"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그렇습니다. 우린 천신들의 결계 안으로 갇히고 말았습니다."
리크의 말에 사계전사들은 저마다 당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평소 냉정을 좀처럼 잃지 않던 슬레이어 역시 이번만큼은 당황한 목소리는 말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결계 안에 갇혔다면 곧 저들의 공격이 시작될텐데.."
"맞아. 우린 저들의 감옥에 갇혔으니 이젠 우릴 어떻게 요리할건가 의논이나 하고 있겠지..젠장."
"리크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하하. 갑자기 왜들 그러십니까? 저는 이곳 초입지역이 결계 안이라는 것을 알고도 일부러 들어왔는데요."
순간 세아린이 불끈했다.
"헉! 알고 들어왔다니..적의 함정이란 것을 알고도 일부러 들어왔다는 거야?"
"응."
물론 사계전사들은 리크의 반응에 의아했음은 당연했다.
"리크 너 제 정신이야!"
"응. 난 말짱해! 어차피 아도라의 영역 중 그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어. 뭐 그럴 바에는 천신(天神)들이 만들어 놓은 관념의 세계에 들어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 아니 오히려 재미있을 것 같은데..과연 그들은 우리를 가두어 놓고 어떤 방법으로 요리를 할지 기대가 된단 말이야. 하하하."
리크의 행동에 사계 전사들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일부러 함정에 들어와 적들의 공격을 기다린다는 자체를 즐거워하지 않는가? 과연 리크가 저토록 여유를 부리는 이유에 대해 이해를 할수 없었다.
"리크 너 혹시 미친 거 아니야? 여긴 신(神)들의 영역이라 불리는 곳인데 리크 네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스스로 적들의 결계 안으로 들어 올 것까지는 없잖아. 더구나 우리마저 몽땅 이끌고 말이야. 자식 너야 어떻게든 살아 남을 테지만 우리 사계 전사들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할텐데. 이거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야?"
마이클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리크가 등을 획 돌려 앞으로 나갔다.
"다들 따라 오세요. 그렇게들 두려워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야 임마! 여긴 결계 안인데 어떻게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겠니?"
"저들은 결계까지 만들어놓고 우릴 기다렸으니 아마 쉽게 우릴 죽이진 않을 것 같아. 내 생각에는 말이야 아주 천천히 즐기면서 이리저리 요리도 해보고 서서히 우릴 피 말리는 듯 한 고통으로 우리의 숨을 쥐어 올 거란 말이지."
"천천히 죽인다고?"
"일종의 게임이지. 어쨌든 저들이 그런 식의 게임을 원한다면 나 역시 마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리크 너 설마 여기 천신들과 정령들의 방식대로 전투를 벌이는 건 아니겠지. 더구나 그들은 신(神)이란 말이야. 젠장. 기습공격을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아예 일부러 함정에 빠져서 적들을 기다린다니..이것 참.."
"후후."
이번에 리크는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