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페라도-128화 (128/157)

128.데스퍼라도(Desperado)

또 다른 리크

그로부터 10일이 지난 후.

케록시아 대륙의 남쪽 지방인 카젠모르 숲 상공 위에는 라프시오스와 케시어스가 은빛 날개를 펼친 체 하늘을 날고 선회를 하고 있었다. 잠시후 그들은 방대한 숲 속 어느 곳에 내려앉았다. 제법 시간이 흐른 뒤 라프시오스는 팔짱을 낀 체 저 쪽에서 쉬고있는 케시어스를 살펴보고 있었다. 케시어스 역시 하프시오스의 눈을 의식했는지 애써 그의 시선을 피하려고 하였다. 그때 라프시오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후후. 내가 무서운가?"

"아..아닙니다."

"사실 난 원래 무서운 존재이지. 내가 생각해도 말이야."

"......."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라프시오스는 입을 실룩실룩 하고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후후. 나도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부류이지만 케시어스 넌 더하는군. 혹시라도 내가 상관이라서 부자연스러운가?"

"아닙니다."

"형식적인 대답 말고 뭐 내게 다른 할말은 없나?"

"없습니다."

"좋아 할말이 없다면 내가 뭐하나 물어보지..네가 암살했다는 그 창성인에 대해서 말해줄 수 있겠는가?

순간 케시어스의 낯빛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라프시오스는 그런 케시어스의 모습을 보더니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했다.

"흠. 표정변화가 심한 걸 보니. 그 창성인과 너와는 보통사이가 아니었나보군."

"아..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분명 얼굴에 써있는데. 후후. 그래 좋아했던 사람 칼로 찌르는 기분이 어떠했지?"

라프시오스는 혹시나 하고 넘겨짚는 질문을 하나 던졌다. 케시어스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그 순간 케시어스가 싸늘한 표정으로 라프시오스를 노려보았다.

"라프시오스님. 항상 그런 식의 질문으로 부하들을 괴롭히나요?"

라프시오스는 케시어스의 냉랭한 대답에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흠. 이번엔 반응이 좀 있군. 후후. 난 곤란한 질문으로 누구를 괴롭히는 성격은 아니야. 단지 케시어스 자네에 대해 웬 지 모를 호기심이 생겼을 뿐이지. 각성을 하지 못한 창성인 존재에게 접근해서 나중에 믿는 도끼에 꽉! 발등을 찍어버린다. 하하하."

그때 케시어스가 벌떡 일어났다.

"그만하시죠!"

"알았네. 후후. 어차피 그건 피할 수 없는 임무였으니 한편으론 이해가 가지. 더구나 네가 임무를 다하지 못할 경우 네 가족들이 죽게 생겼으니 마지못해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겠지..하지만 나라면 과연 그랬을까? 가족이 중요하냐 사랑하는 사람이 더 중요한가? 후후."

케시어스는 두 눈을 지긋이 감고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후 눈을 뜬 그녀는 두 손을 꽉 쥐고 부르르 떨었다.

"아무리 상관이지만..한마디 더하면 죽여버릴 거야.."

"후후. 세게 나오는데. 나도 이제 그만하지. 명색이 천상 단장인 내가 부하를 상대로 말장난이나 걸다니. 하하하. 그나저나 이제 슬슬 그 반란군의 지도자인 세도스라는 친구나 보러 갈까?"

페이른 공터 남쪽 방향으로 거대한 돌산이 보였고 그곳이 바로 현재 카젠모르의 숲 반란군의 본부였다. 산 정상 바로 아래 천연적으로 생긴 동굴을 다듬어 사령관 숙소와 집무실을 개조하였고 현재 리크가 기거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동굴 밖 바로 앞에는 테라스 식으로 카젠모르 숲의 드넓은 전경이 보일 정도로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늦은 밤 테라스에서 모습을 나타낸 사람은 바로 리크였다. 리크는 횐 옷을 좋아했고 항상 즐겨 입었다. 반란군의 지도자로 보이기엔 너무나도 소박한 옷차림인지라 당장에 곡괭이 하나 들고 밭을 일군다 할지라도 어울릴 것만 같았다. 잠시후 리크는 어느 숲 속 방향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갑자기 은근한 미소를 머금었다.

"손님들이 오는군.."

리크는 잠을 청하러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30 분 후 테라스에는 은빛 날개를 번쩍이며 내려앉은 자들이 있었다. 바로 라프시오스와 케시어스였다. 그들은 독특한 기류에 이끌려 이곳 산 정상에 위치한 반란군 지도자의 숙소를 정확하게 찾아온 것이다. 라프시오스는 테라스와 동굴 안쪽의 천연적인 내부와 정교하게 깎아 만든 기둥, 부조, 조각품들을 보더니 한마디했다.

"사계 놈들 작품치고는 제법인데. 후후. 그것도 일개 반란군 지도자 주제에 할건 다하고 사는군. 그나저나 지금은 밤늦은 시간이니. 직접 그 놈의 방으로 가서 확인해볼까?"

그때였다. 천장에 달린 상드리에 안에 수많은 초가 저절로 타오르면서 실내를 환하게 밝혀주었다. 라프시오스와 케시어스는 깜짝 놀라 방어태세를 갖추고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뭐야! 촛불이 저절로 켜지다니.."

갑자기 벽으로만 알았던 한쪽 서문이 열리더니 횐 옷을 입은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얼음장이 처럼 빳빳하게 얼어붙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케시어스였다. 그에 반해 리크는 케시어스를 보고도 은근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라프시오스는 갑자기 자신의 턱을 만지작 거리더니 리크를 보고 말문을 꺼냈다.

"우리가 오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

리크는 대답대신 오른쪽 어두운 구석을 향해 손가락을 팅겼다.

[파팟]

놀랍게도 그곳의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여러 개 촛대에 불이 붙었고 리크는 그곳으로 가더니 테이블을 직접 끌고 중앙으로 나왔다. 테이블 위에는 고기와 과일이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가운데에는 금으로 된 술병과 잔 세 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리크는 한밤중에 자신을 찾아온 라프시오스와 케시어스를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자 이리 앉으시지요. 뭐처럼 손님이 오셨지만 대접할거라곤 요것밖에 없습니다."

라프시오스는 리크의 행동에 처음엔 놀라다가 갑자기 팔짱을 낀 체 입술을 실룩실룩 했다.

"후후. 대단하군. 우리의 방문을 미리 알아차리고 이런 야찬 준비도 하셨다..그나저나 내 추측이 분명하다면 그대는 세도스가 맞는가?"

리크는 대답대신에 시선을 케시어스 쪽으로 돌렸다. 아직도 그녀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표정으로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 있었다. 바로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 리크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리크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케시어스.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여기 자리에 앉아서 뭐라 들지."

순간 이번엔 라프시오스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뭐야? 둘이 아는 사이였나? 이 봐 케시어스 뭐라 설명 좀 해봐!"

케시어스는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아무 말이 없자 이번엔 리크가 그녀에게 다가가더니 직접 손을 잡고 테이블로 데려왔다. 더구나 케시어스는 리크가 의자까지 손수 빼주는 바람에 자리에 털 석 앉아 버렸다. 라프시오스 역시 그 장면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자신도 의자에 앉았다. 아닌 밤에 홍두깨라 했던가? 참으로 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라프시오스는 다시 리크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때 리크가 라프시오스에게 한마디 했다.

"나를 찾아온 용건은.."

"흠. 묘하군. 처음에는 그저 그나저나 그대가 뭐 기적을 일으켰다는 소문에 호기심으로 찾아왔건만 지금은 케시어스와도 잘 아는 사이인 것 같고. 더욱 놀란 것은 우리의 방문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니.."

리크는 다시 시선을 케시어스에게로 돌렸다. 고개를 푹 숙이고 눈마저 감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가련하기까지 했다. 그때 리크가 나지막이 말문을 열었다.

"케시어스..고마워!"

"....."

"넌 애처부터 날 죽일 생각은 없었던 거야.."

"리..리크.."

그제 서야 케시어스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라프시오스는 뭔가 상황이 이상하다 생각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혹시. 너. 너는 바로 케시어스가 제거했다는 창성인.."

라프시오스는 리크와 케시어스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더니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그러면 그렇지. 애초부터 케시어스 네 관상을 볼 때 말이야. 네 애인을 죽일 만큼 모질지 못하다고 생각했는데..결국 이렇게 된 거군. 그나저나 아직 창성인이 살아있다니. 더구나 이렇게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전혀 몰랐는데.."

"천상인의 실체인 멸성 존재가 칠계로부터 직접 이곳에 내려왔군..후후."

"엉. 후후라니. 그 사악한 웃음소리는 뭔가? 창성인도 그런 속된 표정을 짓다니. 이거 정말 놀랍군. 더구나 평화, 사랑 타령하는 창성인이 갑자기 살성인과 우리 멸성인의 대립에 껴드는 이유가 뭐지? 아무튼 나 라프시오스를 만나 것이 네 운이 다했다는 증거가 되겠지. 후후."

"최후의 만찬은 들고 시작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최후의 만찬이라? 흠 죽기 전에 소원이라면 들어주지.."

"내가 아니라 바로 너의 만찬을 준비했으니 좀 뭐라도 들지.."

"뭐..뭐라고?"

"칠계의 창성인들에게는 긍정의 극 존재라는 것은 잘 알려진 일..허나 나는 좀 돌연변이라서..그리 순하지만은 않지.."

"하하하. 이거 살다보니 별일이군. 멍청한 창성인 놈들이 변해봤자 개미새끼 한 마리 죽일 것 같은가? 너희들 잘난 족속들은 만물의 모든 존재들을 소중히 여긴다고 그랬는데 네 놈 역시 그 거대한 논리와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건 이미 창성인의 위대한 능력을 잃고 마는 과오를 저지르는 것이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네 놈은 절대 나에게 손끝하나 대지 못할걸."

"물론 과거엔 그랬지. 그래서 말인데 난 소중하게 여겨질 것들 중 예외 적인 것을 고르려고 칠계에서 일부러 저 아래 밑바닥 세계로 내려가 일계 차원부터 고생하며 이곳 사계까지 오게 되었지."

"쳇. 제법 말투는 그럴싸하게 위압감을 주는군. 하지만 창성인의 한계는 벗어날 수 없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숭고하게 희생한다는 식의 정신구조 말이야. 하하하. 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사용하지 않으면 별 볼일 없는 것."

"과연 그럴까. 후후."

라프시오스는 갑자기 리크에게 다가가더니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연인에게 칼에 찔려 배신당하고, 하몬에게 검을 뺐긴 멍청한 놈. 그게 바로 창성인의 실체란 말이지.. 하하하. 그리고 입만 까대는 존재로 전락해버린 놈. 바로 그것이 지금 그대의 진실 된 모습이리라."

"말 다 했나?"

"흠. 뭐야 그 표정은..이거 은근히 겁주는데.."

순간 리크의 몸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강폭한 살기가 풀풀 솟아 나왔다. 라프시오스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으며 케시어스 역시 움찔거렸다. 지금 리크의 모습은 분명 세도스의 모습이었으리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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