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퍼라도] 126. 또 다른 리크
데스퍼라도(Desperado)
또 다른 리크
그때 갑자기 리크가 벌떡 일어났다.
"리크가 일어났어!"
"리크.."
그는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일일이 살펴보았다. 엷은 미소, 유난히 빛나는 눈빛, 여유 로운 표정, 결코 세도스의 모습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순진했던 혹은 여린 듯한 리크의 모습도 아닌 것 같았다. 분명 부드러운 미소를 볼 때 냉기가 팍팍 흐르는 세도스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고 또한 그저 미소라기 보다는 무엇인가 강인한,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듯한 모습은 과거의 리크 와도 또 다른 맛이 풍겨 나왔다. 그러므로 목유성, 마이클, 슬레이어, 카라펠리오, 가스톤, 아멜리온, 루베니우스 등 리크를 잘 알던 사람들 역시 전혀 새로운 표정의 리크를 어떻게 봐야 될지 혼란스러웠다. 그때 세도스가 사람들을 향해 느닷없이 말문을 열었다.
"제가 기억을 찾은 것 같습니까? 찾지 못한 것 같습니까? 후후."
"......"
갑작스런 질문에 사람들은 무어라 대답을 해야할지 모른 체 침묵을 지켰다. 그때 세도스가 사람들 앞으로 다가가더니 일일이 포옹을 하였다.
"목유성 스승님.."
"리크.."
"하하..."
"너..너 기억이 돌아 왔구나.."
리크는 그 서에 있던 마이클, 슬레이어 등 차례로 그들과 상봉 식을 가졌다.
"마이클..."
"리크..너 임마.."
"후후.."
"슬레이어님..카라펠리오님.."
"야 이놈아! 너 진짜 리크구나.."
"리크라니요? 저는 세도스인데요?"
"뭐..뭐라고?"
"하하. 물론 리크 가벤더입니다.."
"농..농담도 할 줄 아네.."
리크는 차례대로 과거의 사람들과 계속 포옹을 하며 반갑게 말을 걸었다.
"가스톤님...아멜리온님..그리고 이게 누구인가? 3군단 소속 17막사 르베니우스! 후후. 자식 많이 삭았군.."
"리크님.."
"와우..이..이런 모두를 이렇게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비록 리크의 기억이 돌아오긴 했지만 전과는 무척 달라진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아직도 멍한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리크는 그들의 표정이 재미있다는 듯 더욱 더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오늘처럼 이렇게 경사스런 날이 언제 다시 오겠습니까? 오늘저녁은 아주 흥겨운 만찬회를 여는 것이 어떻습니까? 자 르베니우스 지금 당장 나가서 파티를 준비하게나. 특히 많은 술이 필요할거야?"
제법 시간이 흘렀다. 그날 저녁 만찬회장 에는 그 옛날 리크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현재 반란군의 참모진들 역시 자리를 함께 하였다. 그러나 분명 이 자리에는 아직까지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과거의 리크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마이클.."
"네.."
"리크가 다소 변하지 않았니?"
"변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맛이 간 거 같은데요.."
"맛이 가다니.."
"헤헤. 그건 농담이고요. 좀 명랑해졌다고 할까요?"
"흠. 명랑하다..하지만 전에 세도스란 인물로 있을 때 그 눈빛은 살아있단다."
"눈빛이라니요. 마치 천진난만한 아이의 눈빛 같던데요."
"허허. 하긴 네 놈이 뭘 알겠냐?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분명 기억을 찾은 리크의 눈빛은 예전보다 더욱 고강해진 것 같단다."
"쳇. 또 그놈의 고수 타령이예요. 목유성 아저씨..여긴 무협세계가 아니란 걸 명심하세요."
[탁!]
"아 얏!"
"까불지 마!"
한편 저편 테이블에서 슬레이어와 카라펠리오 역시 술잔을 부딪치며 무엇인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변했지?"
"변했어.."
"흠. 분명 리크는 맞지만..또 다른 리크를 보는 기분이야.."
"또 다른 리크라니..어떤 식으로 말인가?"
"적극적이라고 할까..아니면 능동적이라 할까..예전 보다 자신만만한 모습인데..글세 전에 냉정한 세도스 란 인물보다도 더욱 강한 위압감이 느껴지는 것 같네."
"하하. 슬레이어. 자네도 그런 것을 느꼈나..나 역시 동감일세..하지만 그 위압감이라는 것이 과거의 세도스와는 천양지차(天壤之差) 다른 기류 같은데. 뭐라 할까..마치 공격적 보다는 압도하는 기분이랄까?"
"후후. 공격받는 거나 이나 압도당하는 거나 그게 그 소리 아닌가?"
"아니지. 둘 사이에는 엄연히 다른 뜻이 있지. 공격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방어 태세를 유발하게 하지만 압도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아예 방어 태세를 상실하게 만든다는 거야."
"흠. 자네 말인즉 마치 리크가 세도스라는 인물 보다 더욱 괴물 같은 자로 바뀌어 돌아왔다는 것 같군."
"괴물이라..그런 거 칠은 표현보다는 진정 우리들이 모셔야할 군주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떤가 ?"
"군주라? 흠."
슬레이어는 카라펠리오 말에 의미심장한 얼굴로 변했고. 잠시후 술을 한잔 쭉 들이키더니 나지막이 말문을 꺼냈다.
"자네 말대로 되었으면 좋겠군."
"하하. 물론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분명 리크는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변해서 돌아왔다고 생각하네.."
"후후. 자네 같은 늙은 고집불통의 고룡(古龍)이 오랜만에 제법 말 같은 말을 하는 군. 하하하."
"뭐라고 이 잡놈이..앞으로 늙었다고 헛소리 지껄이면 혼날 줄 알아! 이제부터 벌어질 일들에 재미있어 지려고 하는데. 쳇,. 나도 한 주역은 맡아야지. 젠장. 난 아직 젊은 놈들 못지 않게 쌩쌩하다고."
"후후.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심정 이해 하네만..좀 어찌.."
"더 이상 한마디라도 지껄이면 알아서 해!"
"하하. 알..알았네.."
한편 그 옆자리에 있던 가스톤은 홀로 술을 들이키며 저편 상석에 앉아 있는 리크를 슬쩍 슬쩍 쳐다보고 있었다.
'후. 저 늠름한 모습이 정녕 리크란 말인가? 처음 이 사계(四界)에 리크가 때 내가 처음 그를 만났었지. 그 당시에는 새파란 소년으로서 하몬의 검을 매고 무작정 이곳 세계에 발을 들였건만 지금은 옆자리에 앉아있는 무시무시한 헬시급 전사인 슬레이어 조차 무시 못하는 인물로 변해있군. 하지만..리..리크.."
가스톤 뭔가 혼란스럽다는 듯 술 두 잔을 연거푸 들이켰고 다시 생각에 빠졌다.
'후. 세아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물어 보지 않다니..분명 세아린을 내가 제자로 거둔 일등을 알고 있을 텐데..어찌 옛 연인에 대해 관심이 없는 거지? 혹시 세아린이 현재 정부군의 통치자 하몬의 딸이라는 것 때문에 그럴까? 후. 아냐 그건 아닐 거야..리크가 그렇게 옹졸할 리 없어.."
테이블 정 중앙 상석에서 술을 홀로 술을 들이키는 리크는 아까 낮에 보여주었던 활발한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진지해져 있었다. 그는 갑자기 술잔을 들고 만찬회장 오른편 테라스 쪽으로 나갔다. 테라스 밖으로 보이는 카젠모르의 숲과 하늘에는 세 개의 위성이 수많은 별무리들과 함께 빛을 발하고 있었다. 리크는 술잔을 난간에다 올려놓고 뒤짐을 지더니 고개를 들어 밤하늘로 향했다.
"세아린..캐시어스..하몬..이젠 그들을 만날 차례군.."
하늘을 향해 하염없이 바라보던 리크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갈비아스 위성, 아무르 위성, 프레아세톤 위성이라..후후. 그나저나 과연 하몬이 그 마지막 칠계 검의 비밀인 프레아스톤 위성의 비밀을 밝힐 수 있을까?"
뒤짐을 진 체 테라스를 왔다갔다하던 리크가 다시 중얼거렸다.
"후. 이젠 어떡한담..당장에 살성의 하몬 군대 33개 군단이 몰려올 테고 다음 차례가 멸성의 존재들인 천상인(天上人)들이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텐데.."
그 다음날 오전 리크는 무슨 영문인지 데스퍼라도인들을 따로 페이른 공터에 집합토록 명령했고 목유성과 마이클을 자신의 집무실로 따로 불러들여 긴밀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스승님..마이클.."
"후 어제 과음을 했더니만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군. 그나저나 리크 이른 아침부터 웬일인가?"
"그저 뵙고 드릴 말씀이 있어서.."
"아무튼 나도 자네와 그간 있었던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고 싶었는데 잘되었군."
이번엔 리크가 마이클을 보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자식! 마이클..너도 이젠 소년 티를 확 벗었구나."
"자식! 남 말하고 있네. 그나저나 네가 어떻게 반란군의 지도가 되었냐. 정말 넌 어딜 갔다 놓아도 꼭 사람들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된단 말이야! 부럽다 부러워.."
"마이클 너도 현재 데스퍼라도인들을 이끄는 대장 아니니?"
"내가 대장이라고? 후. 말도 마라. 그러다가 옆에 앉아 계신 목유성 아저씨 또 삐친다."
순간 목유성이 불끈했다.
"뭐..뭐라고.. 이 놈이..은근하게 나를 옹졸한 잡배로 몰고 가네.."
"하하하. 스승님과 마이클은 아직 변한 게 하나도 없는 거 같아요."
"그나저나 아침부터 우릴 부른 이유가 그저 가벼운 대화나 하자고 그런 것 같지는 않고 혹시 우리에게 긴히 말할 내용이라도 있는가?"
"아..예. 드릴 말씀이 있어서.."
"험. 할말이라니..이거 긴장되는데. 아무튼 해보게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