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페라도-118화 (118/157)

[데스퍼라도] 118. 프리즘

데스퍼라도(Desperado)

프리즘

하몬의 진행으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프리즘의 전사들이여! 먼길을 오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여러분을 뵈오니 우선 반가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군요. 요즘 같이 한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이 사계(四界)가 빠진 난국(亂國)에 모든 주민들은 오로지 우리 프리즘의 전사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그때 마족 프리즘 전사인 골고트가 벌떡 일어나서 하몬의 말을 끊었다.

"주민들이 우리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는 얘기는 이제 옛말이오!"

"그게 무슨 말이오?"

"하몬! 진정 몰라서 묻는 거요? 도대체 지방소속의 천살전사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내가 이곳 캐록시아 대륙으로 오는 동안 무려 5차례에 걸쳐 암살자들이 나를 죽이려 합니까? 내가 프리즘의 전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오. 쳇. 이젠 프리즘이란 칭호를 달고 다니기도 겁이나니 나 원 참."

리아몬 역시 골고트의 말을 거들었다.

"도대체 천살전사들이란 괴물 같은 군대를 왜 만든 거요? 이건 천상인들 하나 때려잡으려고

그 주변에 있는 죄 없는 자들을 아예 통 체로 소멸시키니. 원래 인간종족이 믿을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까지 잔인한 줄 몰랐소."

여기 저기 불만 섞인 소리가 들렸지만 하몬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허허. 일년만에 만났는데 초반부터 너무 나를 탓하시느구려. 그리고 기억 나지 않소? 천살전사들은 오래 전 여러분들의 동의를 얻어 탄생된 3 개 종족의 협력군대라는 것을..그리고 천살전사의 임무는 요즘 주민들의 몸을 숙주로 취해서 나타나는 천상인(天上人)들을 소멸시키는 것 아닙니까?"

"하하. 천상인을 잡는 군대라..한마디로 웃음만 나오는군요. 그 잘난 천살전사들이 얼마나 주민들을 살육했으면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환영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소. 물론 대도시 사람들이 그런 내막을 모르니 우릴 반겨줍디다만 대도시를 벗어난 지방 소도시 혹은 산골 마을 주민들은 아예 돌 세례를 퍼붓더군요."

잠시후 케이사르가 발언했다.

"잠깐만 제 말씀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아주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참석자들은 케이사르가 잔뜩 굳어진 표정과 함께 그 목소리마저 낮은 톤으로 말하니 무슨 중대한 사안이라도 있는지 그를 주목했다.

"비록 소규모이지만 일종의 반란 조짐이 이곳 케록시아 대륙의 남서쪽 지방에서 일고 있습니다."

케이사르 말에 다른 프리즘의 전사들이 경악에 찬 표정으로 변했다.

"반..반란이라니요?"

"반란이라.."

"누가 감히.."

케이사르는 오늘과 같은 중대발표를 위해서 이미 준비해놓은 지도를 테이블에 활짝 폈다.

"여러분 잠시 이 지도를 주목해 주십시오. 이곳 케록시아 대륙 북쪽에는 아미라스루텐 제국내에 프리즘의 본부건물이 있고 바로 하몬님과 세아린이 이곳에 기거하시고 있습니다만 저는 남쪽에 위치한 레아 제국에 머물면서 주로 그쪽 동향을 살피고 있었지요. 사실 지방 소속 천살전사들은 자체적으로 독립된 행정기관을 만들어 천상인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소멸하지요. 그 와중에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의 무지막지한 만행을 말릴 수 있는 엄두조차 안 납니다. 그 이유는 이 대륙이 너무 넓다라는 것이지요. 제 관할 구역에서는 천살전사에 의해서 절대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철저한 감시를 하지만 그 외 방대한 지역의 각 지방소속 천살전사들에 의한 살육은 저로서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자 이제 제가 가리키는 이 지점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몬을 비롯한 프리즘의 전사들이 저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지도를 살펴보았다.

"그곳은 타레탄 마을 아니오?

"타레탄 마을이라.."

"타레탄.."

"케이사르 도대체 자네가 말하고 싶은 것이 뭔가?

"반란의 진원이 최초로 일어난 곳입니다."

"반란의 진원이라.."

"레아 제국 남부 지방 소속 천살전사들의 무리한 천상인 토벌 작전으로 인하여 결국 타레탄 마을 사람들이 반기를 들었다는 겁니다. 반기는 2 달 전에 일어났지만 현재로서는 타레탄 마을 사람들을 동조하는 주변 인접 마을과 여러 소도시까지 합쳐 제법 반란의 규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현재 그들은 요고르 제국의 국경을 넘어 하폰소 제국의 필라펀 평야를 가로지르는 중입니다."

그때 하몬이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더니 말문을 열었다.

"흠..내 예상이 맞다면 그들이 하폰소 제국의 필라펀 평야를 가로지르는 것은 여기 남서쪽의  카젠모르 숲으로 향하는 것이 틀림없겠군."

"네. 정확히 보셨습니다. 서남쪽의 방대한 숲 지역인 그곳은 예로부터 죄수들이나 노예들이 탈출해서 숨는 지역이기도 하지요. 요즘 들어 천살전사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그 숲으로 들어가는 주민들이 많아졌지만..아무튼 이번 반란군들 역시 카젠모르 숲으로 향하는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흠. 한가지 이해 못하는 것이 있는데 도대체 여기 타레탄 지방 마을 농민출신들이 어떻게

걸어서 2 달 정도 걸리는 이곳 하폰소 제국의 필라펀 평야까지 올 수가 있지? 그간에 적지 않은 천살전사들의 추격을 받았을 텐데. 더구나 그들의 무리에 합류하는 다른 마을 혹은 소도시사람들까지 생겨서 지금은 제법 그 숫자가 불어 있겠군."

"현재 그들의 숫자는 상당수에 이르니 웬만한 소규모 천살전사들은 그들에게 위협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 농민들 출신이지만 그 중에는 전직 천살전사 출신인자, 전직 군단에 소속된 전사들과 탈영 병사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답니다."

"뭐라고 전직 전사와 탈영병사들도 합류했다니?"

"후. 불행하게도 지방 주민들의 민심이 이제는 우리에게 많이 돌아섰다는 증거이겠죠."

"하여간 무지한 시골 촌놈들이란?"

"하몬님. 그들이 카젠모르의 숲으로 피난 가는 거나 반란군에 가담하는 것은 그들의 무지(無地)에서 일어난 단순한 동요가 아닙니다. 바로 천살전사들의 무모한 살육을 피하기 위한 것이지요."

"케이사르! 자네는 도대체 누구를 두둔하는 건가? 천살전사들은 엄연히 국가의 군대야. 또한 그들이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소 희생과 부작용이 따르는 법이네. 더구나 우리 프리즘의 전사들은 사계(四界)라는 방대한 세계를 통치하는 최상층 집권부 아닌가. 그런 우리가 일일이 시골에서 일어나는 부작용에 신경을 써야 한단 말인가? 생각을 해보게 만약 천상인(天上人)들의 숙주가 순식간에 전염병처럼 지방에서 대도시로 번진다면 그때 가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대 혼란이 가중되고 더 많은 인명이 희생당할 수도 있단 말이야. 누구는 지방 주민들이 죄 없이 희생당하는 것에 일말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단 말인가?  나 역시 가슴이 아프다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천상인들의 숙주가 누가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안전한 선택의 일환으로 소집단이 희생당하는 것은 필연(必然)이란 말일세."

그때 마족 골고트가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후후. 나 같은 마족 출신은 단순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간들이란 그 속을 알 수 없을 만큼 사악한 존재라는 것은 틀림없군. 어떤 이유간에 일단 대(大)를 위해서는 같은 인간종족이라도 때려잡는다는 식의 개념 정말 놀랍군. 그나저나 이걸 어쩌나 천사인들의 숙주가 하필 우리 마족이나 어둠의 종족들은 나두고 인간들에게만 붙어 기생을 하니. 후. 결국 인간들만 불쌍하게 되었군. 하하하."

그때 하몬의 표정이 굳어졌다.

"골고트! 감히 내 앞에서 그게 무슨 망발인가? 당신 마족들이야 단순개념에 사로잡힌 미물주제에 인간들의 고뇌를 알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저 힘만 쓰는 족속들이.."

"뭐..뭐라고 힘만 쓰는 족속이라고?"

"그렇게 노려본다면 어떡할 건가?"

골고트는 자신의 분을 못 참고 하몬에게 다가가려다 그의 등뒤에서 하몬의 검이 번쩍거리자

멈칫거렸고 억지 미소를 지었다.

"후후. 제가 감히 현재 사계의 통치자에게 뭘 어떡하다니요? 조금전 말은 내 취소하겠으니 그만 노여움을 푸시지요."

하몬 역시 더 이상 문제를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인지 화를 누그러트렸다. 그리고 그는 다시 케이사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일개 마을이 이 정도의 반란 규모까지 커지려면 누군가 주동자 역할을 했단 얘기야. 도대체 어떤 놈이.."

"후.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괴물 같은 자가 현재의 타레탄 반란군을 이끌고 있다 합니다."

"괴물같은 자라니?"

"그는 세도스라 불리는 자입니다."

"세도스?"

"정보에 의하면 그는 아주 잔인하다못해 악마의 광기를 부리는 자라 합니다. 지방 소속 천살전사들은 그를 일컬어 죽음의 사신이라 합니다. 더구나 그는 기상천외한 전투 술과 작전으로 벌써 남부 지방 천살전사들의 전체 병력 중 7할 정도를 희생시킨 자입니다."

"죽음의 사신이라고? 더구나 일개 지방 반란군 대장이 그저 농민들로 구성된 병사를 가지고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검은 망토에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큰 낫을 가지고 다니기에..마치 죽음의 사신과 닮은 그는 이미 남부 지방의 모든 천살전사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낫을 들고 다닌다니 좀 특이하군. 어쨌든 그냥 넘어 갈 일은 아니야."

"하몬님 지금 남부와 서부 지역 농민들은 천살전사들의 무차별한 만행을 피하기 위해 서쪽 카젠모르 지방으로 피난을 가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 피난민들 중에는 세도스의 반란군에 합류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는 반란군의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것이 뻔합니다.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적어도 지방소속 천살전사들의 자치권 행정을 해체하고 중앙집권형식으로 직접 그들을 통제하는 방법입니다. 현재의 반란군들은 잘 달래서 그들의 고향으로 보내는 것이."

"천살전사들의 지방자치권을 해체하다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어쨌든 이건 명백한 반란이야. 천살전사들 역시 천상인(天上人)인들이 숙주를 찾기 위한 방편으로 어느 정도 희생이 따를 수 있는 것이고 이게 다 저들을 위해서 하는 국가 임무란 말이야.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저들 지방 반란군의 여파가 대도시에 미치지 않도록 철저히 소멸시키는 것이지."

그때였다. 잠자코 있던 마족 프리즘 전사 골고트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후후. 하몬. 내가 반란군들을 진압하리다."

하몬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멈칫거리자 골고트가 다시 말했다.

"무엇을 그리 고민하시오. 어차피 당신 휘하의 군대대신 종족이 다른 마족인 내가 직접 해결한다면 도움이 되지 않소?"

"흠. 좋소 사실 그곳은 어둠의 종족 출신 케이사르 전사 관할이지만. 그대 또한 나선다면 굳이 말릴 필요가 없겠지요. 어차피 마족들이야 청소하는 데에는 정통이나 있으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마치 우리 마족들이 살육을 즐겨한다는 말투 같군요?"

"후후. 내가 그리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고 보는데."

그때 세아린이 아버지 하몬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싸늘한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아버지..저도 그리로 가겠습니다?"

"세..세아린."

"아직 제 말 안 끝났습니다. 제가 가는 이유는 반란군 진압보다도 과연 천살전사들의 만행이 어느 정도인지 진상규명차원에서 가는 겁니다. 그게 사실로 밝혀질 경우 더 이상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없을 줄 아세요. 그리고 저를 속인 대가 또한 지불할 겁니다."

"진상규명이라.."

하몬의 표정이 금새 어두워졌다. 세아린은 그런 아버지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세아린..거긴 위험한곳이라.."

"걱정해주는 척 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아버지에게 속은 것 만해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까짓 권력과 명분이 뭐가 중요하다고 죄 없이 죽어 가는 사람들이 안중에도 없어요? 그리고 뭐. 다수(多數)가 살아남기 위해서 소수(小數)가 희생당해야 한다는 그런 말 같지도 않은 개념의 아버지가 이 사계(四界)의 통치자라니 정말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세..세아린 모든 걸 크게 보거라.."

"제발 그만 하세요! 이번만큼은 제가 직접 내려가서 두 눈으로 확인 할 테니까요."

"세아린.."

결국 회의는 케이사르가 안건을 던진 반란군에 대해 초점이 모아졌으니 그날 회의는 필라펀 평야로 가서 반란군을 진압할 파병군을 가리는데 있었다. 반란군 진압부대는 골고트 휘하 총 5개 군단과 케이사르 휘하 남부 정규군 2개 군단이었고 세아린 휘하의 수도방위군 1군단은 자체적인 진상조사위원회 형식으로 파병하기로 결정되었다. 그 동안 세아린은 리크의 행방불명에 충격을 받은 체 궁 안에만 틀어 박혀 있었으므로 세상 물정 돌아가는 것에 등한시  했지만 천살전사들의 만행이 지방에서 일어난다는 소문이 그녀로 하여금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지방 자치 소속의 천살전사들의 만행이 오죽 심했으면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서남쪽의 카젠모르 숲을 향하고 그것도 모자라 반란을 일으킨단 말인가? 그날 회의가 끝나고 케이사르는 성문 앞까지 배웅 나온 세아린을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후. 이번 파병은 마음이 편치 않으니..이건 애초부터 잘못된 거야. 천살전사 군대를 창설할 때 온갖 수단을 가리지 말고 천상인(天上人)들을 척살 하라 했건만 설마 지방 소속 천살전사들이 죄 없는 사람들을 해칠 줄이야."

"그나저나 케이사르..너 진짜 반란군들을 해칠 거야? "

"명령에 따르자니 그렇고 그 명령을 어기자니 또한 내키지 않는데. 후. 이번 진압에서 빠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그나저나 마족 골고트 녀석은 이번 진압작전에 꽤나 흥분한 것 같은데 걱정되는군. 더구나 자신의 직속부대만 해도 무려 5개 군단을 끌고 가니..젠장. 반란군 모두가 몰살당하는 건 시간 문제겠군. 반란군 중 대부분은 농민 출신이라는데.."

"만일 천살전사들이 만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난 오히려 그 새끼들을 잡아다 죽여버릴 거야. 단 한 놈이라도 찾아내서.."

"후. 세아린 제발 큰일날 소리 좀 하지 마라! 하몬님이 그렇게 하게 나둘 것 같아..그리고 그건 반란군들을 도와주는 반역 행위란 말이야. 또한 통치자인 네 아버님의 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도 된단 말이야!"

"빌어먹을! 개 뿔 정책은 무슨 정책! 사람들 죽이는 것이 정책이라면 이건 정부가 아니라 대규모 살인집단과 다를 바 없지.."

"아무튼 잘 생각해 봐 이건 네 아버지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문제이니.."

"애초부터 아버지 정 없이 살아온 내가 갑자기 이제 와서 무슨 부녀(父女)의 정을 쌓겠다고..후후. 기대를 말아야지. 아무튼 점점 갈수록 아버지 행동이 실망스러울 뿐이야."

"그나저나 그 세도스라는 반란군의 주동자는 어떤 사람일까? 아까 회의석상에서는 말을 않했지만 그 세도스라는 사람은 케록시아 대륙 남부지방의 사람들로부터 구세주라고 불리니 말이야. 분명 대단한 자임이 틀림없어. 골고트와 우린 결국 그와 대적하게 되겠지만.."

**********

지구 고대국가인 이집트에서 구세주 모세가 노예로 있던 많은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이집트의 넓은 광야와 홍해를 건너 극적으로 탈출해 오는 과정이 시간과 공간이 다른 이곳 사계(四界)의 영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곳의 구세주라 불리는 세도스가 바로 그러한 역할을 떠맡고 있었으니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구세주요 성스럽기까지 한 신(神)의 전사이기도 하였다. 신비한 기적(奇蹟)마저 자유자재로 행하는 세도스의 행적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성스러운 전사라 추앙까지 하게 되었다. 한편으론 그의 기이한 옷차림과 무시무시한 낫을 들고 전투에 임하는 지라  죽음의 사신이란 별호도 따라 붙었지만 어쨌든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밤낮으로 처절한 사투를 벌이니 과연 그 누가 그를 단순히 살육 전사라 부를 수 있겠는가?

세도스는 타레탄 마을 사람들 500 여 명을 이끌고 요고르 제국의 광야와 수많은 강을 건너기까지 그 얼마나 많은 마을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단 말인가? 하지만 그가 국경을 넘어 하폰소 제국으로 넘어 올 때에는 이미 소문을 듣고 많은 농민들이 그의 대열에 합류하기에 이른다. 그 중에는 천살전사 출신과 전직 군단 전사들도 있었으니 대부분 인명경시(人命輕視) 풍조의 현 정권에 염증을 느낀 자들이 대부분이었고 혜성처럼 등장한 세도스의 휘하에서 목숨을 받칠 각오마저 되어 있던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불어나니 세도스의 행렬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전직 전사출신들로 구성된 세도의 주민 보호 군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세도스는 전직 장교, 수호전사들을 중심으로 주민보호 군대의 정립을 꾀했고 그 자신은 이들의 대장으로서 그 위치를 굳건히 하였다. 주민보호군대의 인원만 하더라도 근 7000여 병력에 피난민들은 약 20000여명에 가까웠으니 프리즘의 정부가 이들을 반란군이라 규정짓고 진압부대를 파견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어쨌든 현 체제의 사계(四界) 입장에서 본다면 세도스의 군대는 케록시아 대륙 남과 서쪽을 잇는 요고르 제국과 하폰소 제국에 커다란 위협을 주는 반란군이 틀림없었다. 지금도 전국 지방 농민들과 탈영병사들은 세도스의 군대에 합류하려고 모여들고 있었다. 과연 천상인(天上人)들의 숙주 공격대신에 사계 정부는 새로운 골칫덩어리가 생긴 셈이었다. 필라펀 평야 어느 초원 지대에 위치한 대형 막사에는 세도스를 비롯한 여러 반란군 관계자들이 회의를 열고 있었고 현재 세도스의 참모인 르베니우스가 보고 중에 있었다.

"정보에 의하면 3일전 사계(四界) 정부가 있는 아미라스루텐 제국에서 프리즘의 전사 회의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 회의 결과는 놀랍게도 우리를 반란군으로 규명 짓고 진압군을 파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전직 아멜리온 페몬 수호전사가 말했다. 그는 현재 세도스 군의 부사령관이란 직책을 맡고 있었다. 한때 3군단에서 리크의 상사로 있던 자로서 리크가 하몬의 후계자로 떠오를 때 케시어스 군단장에게 적극적으로 추천을 했던 페몬 수호전사였다. 어쨌든 지금은 리크가 기억을 잃고 세도스라는 다른 인물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리크에 대해서 강직한 충성심과 신임을 갖고 있었다. 3군단 시절 역전의 용사라 불릴 만큼 명장인 아멜리온은 나이가 50세에 가까운 중년이었고 전략과 각종 군 계통에 능통한 자였다. 세도스는 그에게 현 반란군의 서열 2위 자리인 부사령관 자리를 책정했다.

"루베니우스. 혹시 진압 부대의 자세한 내역을 알 수 없겠나?"

아멜리온은 반란군에 가담하기 직전까지 전직 페몬 수호전사 출신에다 대도시 관할 천살전사의 대장직을 맡고 있었기에 현재 사계(四界)의 행정 조직과 군주요 요직자 등의 정보를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그가 궁금한 것은 과연 진압부대의 전력 수준이었다.

"후. 그게 말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이해 할 수 없다니?"

"프리즘의 전사들 6명 중 무려 3명이 자신들의 휘하군사를 이끌고 내려온답니다."

그 순간 회의 막사 안에는 경악에 찬 신음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었다. 회의 참석자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낯빛이 허옇게 변했으니 과연 프리즘의 전사란 이들에게 그렇게도 두려운 존재들이었던가?

"이건..말..말도 안돼! 우리를 완전히 소멸시키려고 작정했나?"

"프리즘의 전사들이 직접 올 줄은 꿈에도 몰랐건만..그것도 여러 명이.."

"후. 분명 그들의 작전은 속전속결(速戰速決)로 끝내버리려는 심산이야."

세도스는 각 회의 관계자들이 프리즘의 전사라는 말에 저마다 공포의 빛을 띠고 있으니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도대체 프리즘의 전사들이 누구이기에 그토록 두려워한단 말입니까?"

그 순간 회의 참석자들 대부분이 일시에 세도스를 바라보고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는 잠시후 세도스를 이해한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들은 전직 전사들이었기에 하몬의 후계자였던 리크를 알고 있었고 또한 현재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세도스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행동들이었다. 그때 아멜리온 부사령관이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재빨리 말문을 열었다.

"그들은 이런 지방에 반란군이나 진압할 정도로 급수가 낮은 자들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현 사계에서 가장 전투급수가 높은 자들로서 일명 아무르 위성 혹은 백색의 빛을 받은 프리즘의 전사라 합니다."

"백색의 빛이라?"

"사실 세도스님도 기억을 잃으시기 전 기아몬 신전에서 그들과 같이 백색의 빛을 받으신 적이 있으셨죠. 그 당시 리크님은 그게 좀 잘못되긴 했지만 어쨌든. 그들은 백색의 빛을 받기 전에도 이미 최고의 전사들이었지요. 2000 년 전 인간 종족의 대 영웅 하몬과 어둠의 종족의 헬 전사 출신인 리아몬과 포니, 세아린과 케이사르, 고대 마족 대살육전사인 골고트등은

아무르 위성의 선택을 받음으로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사계의 신(神)의 전사들 혹은 프리즘의 전사들이라 불리는 자들입니다."

"내가 그들을 아는가?"

"하몬의 후계자자로 계셨을 때 리크님 아니 세도스님도 거의 그들과 같은 급의 대 전사셨습니다."

"후후. 대 전사라..그런 용어도 있었나?"

갑자기 아멜리온 부사령관이 르베니우스 참모에게 말했다.

"프리즘의 전사들 중 누가 내려오지? 그리고 병력은 상황을 자세히 말해줄 수 있는가?"

"골고트 휘하의 5개 마족 군단과 남부 총 사령관 케이사르 휘하의 2개 군단 그리고 아미라스루텐 제국의 수도 방위 사령관 세아린 휘하의 1개 군단이 이미 3일전에 출발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8일에서 10일 정도면 이곳 필라펀 평야에 도착 할 것입니다."

"젠장. 그러니까 총 8 개 군단(약 32 만 명/ * 참고 : 여기서 보통 1군단이라 함은 고대 로마 제국의 기준으로 볼 때 40000명 기준이다. 로마는 한때 28개 군단까지 보유한 적이 있다고 한다.)이 되는 군. 이..이건 도저히 말도 안돼는 병력 수준이군. 파리 한 마리 잡기 위해  한 무리의 새들을 풀어놓는 거와 마찬가지라고..어쨌든 그들이 도착하기 전 카젠모르 숲으로 무조건 가야한다고 생각한다만..빌어먹을."

"필라펀 평야가 끝나는 지점의 센부르크 강 유역이 지난번 집중 호우로 상당히 범람한데다 급 물살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으니.."

"그곳을 건널 수 없다면 우린 저 괴물 같은 프리즘 전사들의 군대와 맞 탁 트려야 한단 말이야. 만일 강을 건널 수 있다면 그곳으로부터 일주일 거리에 있는 방대한 카젠모르 숲 지역으로 들어감으로서 저들의 사정권을 벗어날 수도 있지만..문제는 잔뜩 불어난 강물이 언제 빠지냐 하는 것인데.."

"일단 강 유역으로 이동한 다음 센부루크 강 유역에 진을 치는 것이..아마 수일 내로 강은 원상태로 돌아 올 것입니다."

"문제는 센부르크 강 유역에 예상치 못한 집중 호우가 내린다면.."

아멜리온 말에 회의 막사 안은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잠시후 르베니우스가 침묵을 깨트리고 다시 말문을 이었다.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어쨌든 이곳 필라펀 평야에서 정면으로 저들을 맞는 것보다는 센부르크 강유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야기서 죽나 거기서 죽나 하는 문제는 같은데..젠장.."

"하늘이 도와 더 이상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계절적으로 현재 이곳 남부지방은 한창 장마철 아닌가? 그리고 르베니우스 자넨 항상 하늘 타령인가? 하긴 그 옛날 3군단장인 케시어스 군단장님도 언제나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늘 타령을 했었지? 후후. 그때가 좋았는데. 케시어스 군단장님과 하몬의 후계자이신 리크..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는데..허허. 세도스 님 혹시 케시어스 군단장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까?"

세도스는 아멜리온 부사령관이 회의하다 말고 갑자기 케시어스 군단장에 대해 물어보니 다소 당황한 듯 했다.

"케시어스라니..?"

"후. 세도스님이 리크 시절에는 케시어스 군단장님과 한 막사에서 밤새도록 대화의 꽃을 피운 적이 많았지요. 군단장과 부하의 관계가 아닌 마치 남녀가 사이좋게 연예를 하는 것처럼..그나저나 케시어스님과 그분의 반테라스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깜 쪽 같이 사라져 버렸으니..도대체 뭔 일이라도 생긴 건지? 워낙 요즘 사계 돌아가는 것 보면 이건 완전히 개판이니..허허."

결국 이날 회의는 주민보호군대 70000여명과 주민 20000여명 모두 센부르크 강유역으로 대이동을 하기로 했다. 그들이 갈곳은 오로지 그곳이었고 하늘의 운명에 맡겨야만 하였다. 한편 세도스는 회의 참석자들이 모두 가고 없는 막사에서 홀로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는 아까 회의 때 아멜리온 부사령관이 언급한 여러 사람들의 이름들이 가슴에 와 닿는 것 같았다.

'세아린...케시어스..도대체 그들의 이름이 왜 이리 친숙한 것이지..젠장. 하긴 내가 기억을 잃기 전 그들과 안면이 있다고 했지. 그러니까 그 이름들이 그렇게 낯설지 않을 수밖에..후후.'

세도스는 갑자기 막사 밖으로 나가더니 하늘을 오려다 보았다. 초저녁의 푸르스름한 하늘에

세 개의 위성이 떠 있었다.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의 눈길은 무엇인가 깊은 심연(深淵)의 늪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리크 가벤더라..내가 리크 가벤더라니..하몬의 후계자였고 하몬의 검 주인 리크 가벤더..후후. 어쨌든 제법 한가닥하는 인물이었군..그런 자가 한순간에 기억을 잃고 지금 세도스의 이름으로 다시 살아간다. 하하하. 도대체 내가 왜 기억을 잃은 거지..이제는 그 이유가 궁금해  지는 군..또한 내 가슴에 단도를 꽂은 여인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감히 내게 말이야 하하하..감히 내게.."

그 순간 세도스는 자신의 손바닥을 가슴 높이로 올려서 짝 폈다. 잠시후 신기한 일이 그의 손바닥 위에서 벌어졌다. 조그만 빛의 구체(具體)가 형성되자 세도스는 저 편 하늘에 떠있던 아무르 위성을 향해 그 구체를 던졌다. 그 빛의 구체는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아무르 위성의 방향으로 향하더니 그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세도스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무르 위성의 백색의 빛을 받은 자들이 온다고. 하하하. 고작 저따위 위성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라..웃기는군..자 아무르 위성. 네 놈이 선택한 프리즘의 전사들이 아마 이런 피로 물 들으리라. 하하하"

세도스는 방향을 획 돌려 자신의 막사로 돌아갔다. 잠시후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조금 전까지 만 해도 하얗던 아무르 위성이 순식간에 붉은 피 빛 색으로 변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잠시 후 원래의 백색 위성으로 돌아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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