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페라도-105화 (105/157)

[데스퍼라도] 105. 천상제단

데스퍼라도(Desperado)

천상제단

아미라스루텐 제국 북쪽 지역에서 벌어진 성자(聖者) 피격사건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난 젊은 성자(聖者)의 죽음은 모든 병들고 지친 사람들의 아쉬움을 더했다. 또한 그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또한 왜 젊은 여인에게 피격을 당했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그날 어디서부터 갑자기 한 남자가 나타났는지 파르테 언덕에 누워있던 성자(聖者)를 거두어간 사람이 있었다. 정체불명의 그 남자는 자신이 데리고 간 성자(聖者)와 함께 아예 자취를 감추어 버렸으니 한때 파르테의 성자(聖者)라 불렸던 리크의 행적은 여기서부터 끊겼던 것이다.

그로부터 한달 후 언덕에 모습을 보인 자들이 있었다. 범상치 않은 복장의 젊은 남녀가 언덕에 앉아서 이리저리 무엇인가 살펴보고 있었다. 세아린과 케이사르는 지난 한달 동안 리크의 흔적을 찾으려고 돌아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다. 결국 케시어스의 고향을 수소문한 끝에 이곳 북쪽에 위치한 반데라스 가문이 마주 보이는 언덕에 도착했던 것이다.

"흠. 과연 명문가답군. 정말 아름다운 성이야. 안 그래 세아린?"

"관심 없어!"

"쳇 하긴 네 마음속엔 오로지 리크 생각뿐이겠지.."

"내려가자."

"세아린 내게도 좀 부드럽게 대할 순 없는 거야. 후."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따라와!"

"후. 성질머리하고는. 저것도 매력이라고 졸졸 따라 다니는 나는 뭐야? 하하."

잠시후 세아린과 케이사르가 반데라스 성문 앞에 이르자 성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리고는 한 여인이 성문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세아린이 깜짝 놀랐다. 창백하고 수척한 여인은 놀랍게도 케시어스가 분명하였던 것이다. 세아린은 그 옛날 백옥 같이 통통한 볼 살과 초롱초롱한 눈방울의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차갑게 변한 그녀를 의아한 표정으로 살펴보았다.

"리크 어디 있죠?"

".........."

다짜고짜 리크에 대해 물어보는 세아린의 질문에 케시어스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일단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였다. 세아린은 케시어스의 안내를 받으며 본 건물 안으로 향했다. 그때 세아린이 그녀의 등뒤에서 다시 물어보았다.

"리크는 어디 있죠?"

그 순간 케시어스가 발걸음을 멈추고는 세아린을 노려보았다.

"그걸 왜 내게 물어보는 거죠?"

"지난번 기아몬 신전에서 당신이 어디론가 데리고 가지 않았나요? 그리고 줄곧 리크와 같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튼 지금 리크는 어디 있죠?"

케시어스는 세아린을 똑바로 쳐다보고는 냉랭하게 말했다.

"기아몬 신전에서 제가 리크를 데려온 건 사실이지만 그는 회복하자마자 어디론가 떠났어요."

"떠나다니요? 그렇다면 어디로.."

"그..그 이상은 저도 몰라요. 아..아무튼 이렇게 오셨으니 안으로 들어가서 좀 쉬었다 가세요."

세아린은 케시어스의 표정이 흔들리고 말마저 더듬으니 그녀가 뭔가 감추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리크에 대해서 단호하게 모른다고 하니 더 이상 캐물을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케이사르 등뒤에 있는 메스트린트의 붉은 검이 우웅거렸다. 케이사르는 이게 뭔 일인가 하고 자신의 등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뭐야? 시도 때도 없이 진동을 하다니.."

그 순간 케시어스가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 반데라스 가문의 규칙상 무기는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세아린의 표정 역시 굳어지면서 냉랭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이죠. 설마 우리를 못 믿는 건 아니겠죠."

"원래 규칙이 그렇다는 겁니다."

"어느 가문이던지 그런 규칙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저희 가문은 예외입니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두 여인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으며 오고가는 대화에서 냉랭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 케이사르가 그런 분위기가 어색한지 끼여들었다.

"이봐 세아린! 이곳 가문의 규칙이라잖아. 어쨌든 이곳에 왔으니 무기를 밖에 두고 들어가자."

"난 못해!"

세아린이 말하자 케시어스 역시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본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저 또한 애초부터 들어갈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럼 이만.."

세아린이 방향을 틀어 성문 밖으로 나갔다. 케이사르는 난처한 표정을 짓고는 세아린을 따라나갔다. 성문 밖으로 어느 정도 나와서야 케이사르가 못내 아쉬운 듯 말했다.

"세아린 뭐야? 안에 들어가서 뭐라도 먹고 가자. 어차피 규칙이라면 그녀의 말을 따라야지."

"난 솔직히 그녀를 믿지 못하겠어. 그리고 너 바보냐? 세상에 헬 전사이자 프리즘의 전사까지 올라간 네가 저까짓 인간 가문의 규칙을 따라야하겠니? 멍청하기는.."

"후. 그런가? 말을 들어보니..그렇기는 하네.."

"더구나 저 반데라스 성안에는 뭔가 음침한 기운이 흐르고 있단 말이야. 아까 네 메스트린트의 검이 진동을 할 때 내 라우타르 지팡이도 반응이 있었거든..빌어먹을 혹시 저 계집애가 리크를 숨겨두고 있는 거 아니야."

"설마.."

[쿵]

그때 반데라스 성문은 저절로 닫혔고 성루 위에는 케시어스가 세아린과 케이사르의 뒤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세아린이 고개를 돌려 케시어스를 노려보았다.

'이번엔 예의 상 그냥 돌아가는데. 이 지역 근처를 한번 둘러보고 다시 오겠다. 그때는 반데라스 성을 박살내고서라도 샅샅이 뒤져야지. 젠장. 어디 두고보자..'

한편 성루에서 세아린을 바라보는 케시어스 역시 내심 혼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후. 정말 무서운 여자야. 그녀의 살기가 여기까지 풀풀 나다니. 마음 같아선 차라리 모든 걸 밝히고 그녀의 손에 죽고 싶지만..그럴 수도 없는 입장이니..'

그로부터 3 일 후 세아린과 케이사르는 파르테 마을 언덕근처까지 오게되었다. 세아린은 한달 전쯤 파르테의 성자(聖者) 피격사건의 소문을 듣고는 수소문 끝에 그 현장에 와있었던 것이다. 파르테 성자라 불리는 그의 인상착의가 금발에 푸른 눈과 나이마저 들어맞으니 혹시라도 리크가 아닌가 생각했던 것이다.

"젠장. 내 말이 맞아! 분명 파르테의 성자로 불리던 자는 리크가 틀림없어."

"세아린 무슨 근거로 그렇게 확신 할 수 있지?"

"모르겠어. 그냥..느낌이.."

세아린의 눈가는 촉촉하게 적어있었고 그가 피격을 당했던 파르테 언덕 여기저기에서 리크의 흔적을 찾으려고 했다.

"흑. 도대체 그를 누가 어디로 데려간 거야? 생사(生死)만이라도 알면 좋을 텐데."

케이사르는 언덕 풀밭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세아린을 보자 한숨을 푹 쉬었다.

"휴. 리크가 아닐 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때 한 노인이 저편 언덕 아래에서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잠시후 그 노인은 세아린과

케이사르에게 다가오더니 말문을 열었다.

"허. 당신들도 성자(聖者)님의 흔적을 보러왔소? 하긴 하루에도 전국 각지에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10명 이상은 되니.."

세아린의 눈빛이 번뜩거리더니 갑자기 노인에게 질문을 하였다.

"할아버지 혹시 그 성자가 피격 당하는 것을 직접 보셨나요?"

"후. 보다마다 뿐인가? 난 파르테 마을의 촌장으로서 바로 그분의 옆에 있었으니..세상에 성자님의 동행으로 알았던 여자가 갑자기 단도를 가슴에서 꺼내 성자님의 가슴을 찌를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소."

"혹시 그 여자의 인상착의를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는 없나요?"

"내 어찌 그 악마 같은 여자의 모습을 잊을 수 있겠소. 백옥 같은 피부에 검붉은 머리카락, 진한 초록의 눈 빛등 마치 천사와도 같은 모습이었지만 정녕 그녀가 악마인줄은 전혀 몰랐다오."

노인의 말을 듣는 그 순간 세아린은 온몸이 얼어붙는 것처럼 경직이 되어버렸다.

"케..케시어스.."

노인이 말한 그녀의 인상착의 중 세아린을 경악하게 만든 것은 바로 초록빛의 눈동자였다. 인간종족 중에서 겨우 몇 퍼센트 비율로 극소수만이 초록의 빛을 띠고 있었고 케시어스 역시 초록의 눈동자가 아닌가? 케이사르 역시 한 손으로 자신의 턱을 만지더니 무엇인가 골몰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후. 우연치고는 뭔가 딱 들어맞는 느낌인데.."

세아린은 노인에게 한가지 더 질문을 했다.

"그후 성자는 어떻게 되었지요? 그리고 누가 데려갔는지.."

세아린의 입술을 바짝 타들어 갔으며 오로지 노인의 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 당시 나와 주변 사람들이 성자님을 부축하였는데 그때까지는 분명 숨은 쉬고 있었다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더니 자신이 의사라며 성자님을 들쳐없고는 어디로 사라졌다오. 워낙 생명을 다투는 일이라서 우린 그저 그가 성자님을 데려가는 것을 보고만 있었지요.

그 뒤로는 우리도 성자님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 다오."

"성자를 업고 간 사람의 인상착의를 말해줄 수 있나요?"

"글세 자신을 의사라고 하긴 했지만..나이가 너무 어려서..고작해야..20살 아니지 그보다도 더 어린 것 같았는데..하지만 그런 위급한 순간에도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성자님의 가슴을 눌러 지혈시키니 놀랍게도 꾸역꾸역 솟아오르는 피가 멈추더라고..그러니 우린 그 청년이 의사라 믿을 수밖에 없었지."

세아린은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방향을 틀어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케이사르 역시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세아린. 제발 다음부터는 어디 간다고 할 땐 얘기 좀 해줘! 혼자만 내빼지 말고."

"........"

"후후. 너 물론 반데라스 성으로 가는 거겠지?"

"모조리 죽여버릴 거야!"

세아린의 얼굴은 이미 살기가 풀풀 날 정도의 독기로 채워져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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